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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86

투견판 6. 타락자(4) 밑바닥 인생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을 앞두고 있는 조중구 앞에 도금동이 나타났다. "웬일이냐?"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어볼까 하고....." "그럴까? 그러고 보니 너나 동우와 어울린 지가 꽤나 된 것 같구나." "그게 다 네가 지나치게 바쁘게 살아서 그런 거야."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구실의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너, 외제차를 팔았다며? 요즘 집안 형편이 안 좋으냐?" 자신의 차로 향하던 도금동이 문득 조중구에게 물었다. 조중구는 굳이 변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집안 형편이 아니라 요즘 나 개인의 베팅감이 사라져서 그렇게 된 거야." "베팅감? 이제까지 네 특유의 이론인 확률이 아니고 감으로 승부를 걸었었단 말이야?" 조중구는 자신을 바라보는 도금동의 입이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의 소설 2024.03.03

투견판 6. 타락자(3) 목적의 달성

퇴근 시간쯤 되었을 때 도금동이 전화로 물어왔다. "어, 중구냐? 너 또, 퇴근 안 하고 실험실에 혼자 남아 뭐 하냐?" "할 일이 남았거든. 이것마저 끝내고 가려고...... 한데 넌 지금 어디냐?" "방금 사무실을 나섰다. 낮에 동우에게서 전화가 왔더라. 이스프리에서 한잔하자고 말이다. 너도 꾸물거리지말고 얼른 나오는 게 어때?" "아, 난 이 일을 끝내야 해. 내일 실장님께 보고해야 하는 일이거든." "그래? 별다른 신약 프로젝트가 아닌 바엔 너 혼자 애쓸 필요가 있냐?" "그렇긴 하지만 먹고 살려니 별 수 있냐? 그 건 네가 잘 알잖아. 동우에겐 다음으로 미룬다고 전해다오." "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 도금동과의 짧은 통화를 마친 조중구는 잠시 모니터 속의 복잡한 공식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오늘의 소설 2024.03.03

투견판 6. 타락자(2) 탐나는 물건

"아, 고사장님, 박 사장님도 오셨군. 그러지 않아도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들어들 가십시오. 야, 성태. 너 개장에 가서 조선족 좀 불러와라." 아마도 황 총무가 말하는 조선족이란 조금 전 밖에서 본 그 사람이리라. 황 총무는 뒤돌아 두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로 들어서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곳은 사무실이라기엔 지나치게 호화로워서 어느 부잣집의 응접실을 옮겨놓은 듯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페넌트가 걸려 있고 무슨 경기에서 딴 것인지 모르는 각종 트로피로 장식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큼직한 탁자를 가운데 두고 일인용과 다인 용의 가죽 소파가 놓였는데 그 중앙에 서 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달수도 두어 번 본 적이 있는 서 회장의 아들이란 자가 다리를 꼬며 ..

오늘의 소설 2024.03.03

투견판 6. 타락자(1) 큰 판의 준비

몇 주가 지난 11월 중순이었다. 간밤에 내린 서리가 개집 위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배철권은 아침 일찍 태산이와 동방불패의 견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는 동안 두 마리의 개들은 밖으로 끌어내 기둥에 묶어두었다. 두 견사의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개들이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짖고 있었다. 보나 마나 한열이와 우람이가 다가오는 것을 먼저 안 것일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더운물이든 통을 든 한열이와 앞장을 선 우람이었다. 이제 겨우 넉 달이 갓 지난 우람이지만 크기는 다 큰 풍산개만 했다. 개들은 신이 나서 코를 맞대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며 꼬리를 흔들었다. "제가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벌써 끝나셨어요?" "이깟 걸 도우긴 뭘 도우냐? 넌 학교 갈 준비나 해라." "아직 시간이 충분해요. 여기로 이사를..

오늘의 소설 2024.03.03

투견판 5. 추락의 길(6) 의심

다음 주말이었다. 어쩐 일인지 금요일인 어제까지 고달수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조중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늦게까지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연락이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어서 먼저 전화를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시합이 있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조중구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고달수의 전화를 기다렸다. 아침을 먹은 조중구는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먼저 전화를 걸었다. "조중굽니다. 어째서 연락이…." "아, 그러지 않아도 지금 막 전화를 하려던 차였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 게 말이요. 어제 밤늦게까지 황 총무나 서 회장을 기다렸소만 그들이 오지 않았지 뭐요. 그래서 나를 의심해서 거래처를 바꾸려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삼십 분 전에 황 총무가 갑자기 나타나..

오늘의 소설 2024.03.02

투견판 5. 추락의 길(5) 확률은 이분의 일

늦게 잠이 들었던 조중구가 늦잠에서 깨고 보니 오전 열시가 넘었다. 조중구는 먼저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니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꺼칠하게 변한 것 같았다. 조중구는 샤워와 면도를 한 후 어제의 일은 잊고 새로운 기분을 갖기로 결심했다. "오빠, 밥부터 먹어." 조중구가 욕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린 동생 문숙이가 식탁에 국그릇을 갖다 놓았다. "아버진 드셨니?" "에이 지금이 몇 신데 아직 안 드셨을라고? 그리고 아버진 병원에 가셨어." "일요일인데?" "일요일엔 병이 안 나나 뭐? 게다가 물리 치료실은 쉬는 날이 없다나 봐." "그래? 그럼 누가 모시고 갔냐?" "아빠가 누구와 가실 분인가? 내가 모시고 가려 해도 싫다 시는 걸." "현구와 향숙이는 뭐 하고?" "현구 오빤 어제 안 들..

오늘의 소설 2024.03.02

투견판 5. 추락의 길(4) 다음에는 반드시

링 안의 두 마리의 개가 힘차게 튀어나와 앞 발을 번쩍 들어 맞부딪쳤다. 개들은 앞발로 상대보다 높은 위치를 잡기 위해 서로를 마구 누르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두 마리 다 힘이 남아돌아가는 초반이어서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자 앞발을 내린 두 마리의 개들은 스피드를 이용한 공격을 퍼붙기 시작했다. 상대의 아무 곳이든 물려고 빠른 입질로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허점이 보이면 단번에 급소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두 마리의 작전이 비슷한 가운데 차츰 입질이 빨라지는 쪽은 도사였다. 도사는 전적이 말해주 듯 경기를 노련하게 이끌고 있었다. 급소인 자신의 목을 내 줄 듯하다가 가볍게 머리를 휙 돌려버리는 수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롯드 와일러의 턱밑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계..

오늘의 소설 2024.03.01

투견판 5. 추락의 길(3) 승승장구

저녁 여섯 시쯤 되자 밖은 이미 어둠에 묻히고 있었다. 조중구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시합은 서 회장의 먼 인척이라는 서 사장 네 구로 서비스 공장에서 한다는 연락이 있었다. 서 회장과 그의 아들인 서유석이 적극적으로 나서 회원을 모집한 결과 요즈음엔 참가 인원이 팔구십 명에 달했다. 조중구가 처음 참가했을 때보다 거의 세 배로 불어난 숫자였다. 그러니 웬만큼 넓은 공간이 아니고는 지름 4미터의 링과 관중을 수용할 장소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서 회장은 검단의 창고를 전용 투견장으로 개조하고 있었다. 그 투견장이 완성되는 동안은 실내가 기중 넓고 주차공간도 넉넉한 서 사장의 공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중구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어 기어를 주차에 둔 채로 가속 페달을 살짝 밟았다. 그러자 부드러우..

오늘의 소설 2024.03.01

투견판 5. 추락의 길(2) 각성

"그래 어떻게 됐나?" 오토바이에서 내리기도 전에 헬멧을 벗으며 양구택이 숨 가쁘게 물었다. "아, 선배님. 그게...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양구택의 물음에 배철권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듯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다른 개도 아니고 태산이에게 물렸는데 죽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내가 묻는 건 태산이가 어째서 도사를 물어 죽였나 하는 걸세. 아직까지도 싸울 생각을 하지 않던 태산이가 아닌가? 그런 태산이가 한열이도 없는데 도사에게 덤벼들었단 말인가?" "그게 말입니다. 한열이가 학교로 가고 없는 사이 저 우람이란 놈이 도사가 있는 철망 쪽으로 다가갔나 봐요. 그랬더니 도사가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어 우람이를 물었지 뭡니까. 저는 마침 태산일 데리고 동방불패의 집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우람이 비명 ..

오늘의 소설 2024.03.01

투견판 5. 추락의 길(1) 극과 극의 세상

단풍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어서 TV에서는 연일 산을 오르내리는 행락객을 보여주고 있었다.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이었다. 사람들은 낙엽이 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듯 단풍을 찾아 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단풍이 꼭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심 속, 양재천변에 산재된 나무들도 제각기 노랗고 붉은 단풍잎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정시에 퇴근을 한 조중구는 자신의 주차 자리에 정확히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차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지난달 새로 구입한 최신형 아우디 A6였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만큼 미끈한 새 차였다. 천호동 빌라촌에서 강남의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 조중구가 처음 느낀 것은 이웃의 차들이 엄청 좋구나 하는 것이었다. 거의 보기만 해도 ..

오늘의 소설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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