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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86

투견판 3. 투견꾼들(1) 태산이

"오, 마침 두 부자가 다 있었구먼." 양구택은 경비실로 들어서며 배철권과 한열을 향해 들고 있던 수박을 내밀었다. "아니? 이게 웬 겁니까?" 의외의 물건에 놀란 배철권이 수박을 받아들 생각을 잠시 잊고 눈이 커졌다. "우선 받게나. 오는 길에 사 왔네." "원 선배님도.... 이런 건 선배님 가족에게 갖다 드릴 것이지...." 수박을 받아 든 배철권이 놓을 곳을 찾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아들 한열이가 재빨리 그것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물통에 담아놓으려는 것이다. "안양에 갔다오는 길일세." "안양이오?" "박철구라고 한때 동업을 하던 친한 사이지. 그 친구가 안양에서 개 농장을 하거든." "아, 지난주에 도사와 진돗개를 사오신 곳 말이지요?" "그렇지. 하지만 진돗개는 시흥의 고달수라는..

오늘의 소설 2024.02.27

투견판 2. 투견 게임(9) 소발이 쥐를 잡다

조중구가 서비스 공장의 간판을 찾은 것은 정확히 출발 후 이십오 분이 지나서였다. 공장 마당에는 회원들이 타고 온 차들이 그득했다. 조중구는 주차를 하자말자 공장 건물로 들어섰다. 조중구가 들어섰을 때는 이미 개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공장 가운데에 둥근 쇠창살의 울타리 안에서 두 마리의 커다란 도사견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중구는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오, 조 박사, 오늘은 늦었구려. 이번 판은 베팅이 끝났으니 말이오." 조중구가 돌아보니 몇 걸음 옆에 있던 곽 사장이 조중구를 향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예, 차가 좀 막혀서요." 조중구는 투견들과 곽 사장을 번갈아보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조중구는 두 마리의 도사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 가를 판단이라도 하려는 듯 판세를 자세히 살펴..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8) 조마조마한 마음

통화를 끝낸 조중구는 방금 고달수로부터 들은 몇 마디를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고달수가 말한 내용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 지난주에 출전했던 진돗개들이 이번 주에 다시 출전한다. 둘째, 회장 영감은 출전할 개들에게 양고기를 먹이지 않았다. 셋째, 회장은 이제까지 거래하든 롯드 와일러 견주를 배제하고 다른 양견장을 택했다. 조중구는 세 가지를 회장 영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번 대회에서 베팅된 돈의 전부를 먹을 수 있었던 회장이었다. 참가자 모두가 롯드 와일러가 우세할 것으로 보였던 경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롯드 와일러에게 베팅이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난데없이 조중구라는 복병이 진돗개에 베팅을 하는 통에 자신은 얼마 먹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투견에 대해 잘 모르는 조중구라는 신입 ..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7) 달콤한 유혹

조중구는 올 때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상계 교차로를 통과할 무렵이었다. 주머니에 든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아까 투견장에서 방해가 될까 봐 진동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조중굽니다." "오빠, 지금 어디야? 오빠, 어디냐구?......" 수화기를 통해 동생 문숙이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중구는 침착을 가장하며 급히 물었다. "어, 문숙이냐? 왜 무슨 일 있냐?" "오, 오빠. 빨리 와. 아빠가... 아빠가.…" "뭣? 아버지가 왜? 어떻게 되셨는데? 아, 말해. 문, 문숙아." "오빠,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나 봐. 방금 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어. 어떡해?" "어느 병원이래? 내 그리로 곧장 갈 거니까... 어느 병원이냐고?" "한강 종합 병원. 화양동. 한강 종합 병원..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6) 횡재와 거래

견주들이 재빨리 수건을 거두어 철망 밖으로 나섰다. 먼저 돌진 한 것은 롯드 와일러였다. 허나 지름이 4 미터에 불과한 철망 안에서의 돌진은 오히려 진돗개에게 기회를 주었다. 돌진해 오는 롯드 와일러가 흡사 멧돼지와 같아서 진돗개들은 본능적으로 훌쩍 갈라선 것이다. 그 통에 브레이크가 늦은 롯드 와일러는 철망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순간을 노린 듯 진돗개들은 롯드 와일러의 뒷다리를 물려 들었다. 뒷다리에 진돗개의 입이 닿자 깜짝 놀란 롯드 와일러가 재빨리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는 좌우의 진돗개를 향해 눈길은 바삐 움직였다. 롯드 와일러는 두 마리 진돗개 중에 한 놈을 택해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약해 보이는 놈을 먼저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롯드 와일러는 단숨에 정해 놓은 상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5) 운 아닌 운에 맡기다

드디어 기다리든 소식이 신동우의 전화기를 통해서 조중구의 귀로 들어왔다. "내일 저녁? 거 좋지. 어디래?" "지난 번 거기. 거기서 한번 더 한다더군." "그래? 밤중에 앞차를 따라갔던 길이라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지. 허나 우리 같은 회원이 많을 거니 전화로 알아볼 게." "시간은?" "이번엔 좀 빠르더라. 여덟시 반이라니 말이다." "알았어. 같이 갈까? 아니면 각자 갈까?" "금동이 하고 같이 가려면 한 차를 타는 게 낫지 않겠냐?" "글쎄다. 이번 주엔 통화만 했지 금동이 얼굴도 못 봤다. 아무래도 동생 문제가 불거지나 봐. 금동이 아버지 건강 문제도 있고 말이야." "그래? 그럼 일단 의정부역까지는 각자 가는 걸로 해. 내가 금동이에게 이따 전화 해 볼 테니까." "그러..

오늘의 소설 2024.02.25

투견판 2. 투견 게임(4) 월급쟁이

다음 날이었다. 조중구에게 전화가 왔다. 신동우였다. "퇴근하면 금동이 하고 신정으로 나와라. 신정 알지?" "영동 우체국 뒤 말이지?" "음, 일곱 시까지 그리로 와라. 같이 밥이나 먹게." "그러지. 단, 밥도 술도 내가 사는 거다. 어제는 네 덕에 돈도 좀 땄고.... 사실 나도 그럴 때가 있어야 하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통화를 끝내자 조중구는 곧바로 도금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우가 퇴근 후에 신정으로 같이 나오라 더라." "어? 나 지금 회의 들어가는데?" "회의? 일곱 시에 보자고 했으니 설마 그전엔 끝나겠지?" "글쎄. 좌우간 넌 일단 먼저 가라. 나도 끝나는 즉시 뒤따라 갈 테니까. 참, 어디서 만나제?" "아, 지난 달인가? 신정이란 곳에서 밥 먹은 적 있잖어? 영동 우..

오늘의 소설 2024.02.25

투견판 2. 투견 게임(3) 배팅

두 번째의 베팅을 끝냈을 때까지 두 마리의 개들은 서있던 위치만 조금 바뀌었을 뿐, 그 상태 그대로였다. 이삼 분의 시간이 정적 속에 흘렀다. 귀를 물고 있던 갈색 개가 다시 한번 좌우로 머리를 뿌리치듯 흔들기 시작했다. 검은 개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두발을 지탱하며 뒤로 몸을 빼려 했다. 그러나 그도 쉽지 않아 보였다. 갈색 개는 또다시 머리를 거칠게 마구 흔들었다. 개들의 입과 머리는 피투성이로 변했다. 정적 속에서 일초 일초가 지나는 초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갈색 개는 앞발을 버티며 검은 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그래그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치고 있었다. 갈색개가 갑자기 작전을 바꿔 거칠게 머리를 휘..

오늘의 소설 2024.02.25

투견판 2. 투견 게임(2) 투견판

"뭐 하냐?" 조중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왜? 좋은 일 있냐?" "꼭 좋은 일이 있어야 전화하냐? 나와라." "어딘데?" "창 밖을 봐. 금동이와 함께다." 신동우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금동이의 차가 보였다. "잠깐 기다려." "그래." 신동우는 대충 옷을 갈아 입고 아래로 내려왔다. 창문을 내린 운전석에서 도금동이 말없이 타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시간에 날 불러내냐?" 뒷좌석에 등을 붙인 신동우가 조수석의 조중구를 향해 물었다. "금동이가 울적하댄다. 그래서 술이나 한 잔 하려는데 널 빼고 술이 넘어 가겠냐?" "우울해? 왜 우울 해? 금동이 너, 무슨 일 있냐?" 신동우가 앞에 앉은 도금동의 어깨를 툭 치며 궁금한 듯 물었다. "우울은 무슨..

오늘의 소설 2024.02.24

투견판 1.미친 개들 (7) 기대와 불안

드디어 그날이 왔다. 개가 새끼를 낳기 시작하자 양구택은 숫제 기도하는 자세로 한 마리 한 마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마리가 나올 때까지도 비슷한 색에 비슷한 크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일곱 마리 씩을 낳았다 했으니 좀 더 지켜 보아야 했다. 여섯 마리째를 낳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마지막인 일곱 마리 째를 낳았을 때, 결국 양구택은 주저앉고 말았다. 만사휴의(萬事休矣)였던 것이다. 양구택은 이제껏 들인 돈이나 노력보다 그렇게 기대했던 강아지를 얻지 못한 실망감이 더 커서 눈물이 솟았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양구택은 그저 조용히 일어나 개장을 나오려 했다. 헌데 암캐가 다시 끙끙거리며 앞발로 자리를 긁는 것이었다. 아직 낳을 새끼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양구택은 별 기대를 ..

오늘의 소설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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