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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86

파투(破鬪) 6. 또 다른 음모(3) 김기동

"어서 오십시요. 형님." 밀실에서 기다리던 천태종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꺾었다. 배일서의 안내를 받으며 김기동이 나타난 것이다. "어, 오래 기다렸어?" "아 아닙니다. 형님." 김기동은 먼저 자리에 앉은 다음 천태종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천태종은 조심스럽게 마주 앉았다. 그리고 문 앞에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신일서에게 일렀다. "술은 어제 그거 하고 아가씨도 왔던 애들 들여보내." "예. 과장님." "아, 천과장 잠깐. 아가씨는 조금 뒤에 부르고 우선 술만 갖고오라구 해." "예? 아예. 너 들었지? 우선 술만 보내." "예, 과장님." 신일서가 나가자 김기동은 밀실의 이곳 저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그렇지. 인테리어가 형편 없구만. 문자 그대로 신장개업을 다시 해야겠군...

오늘의 소설 2024.03.11

파투(破鬪) 6. 또 다른 음모(2) 갈팡질팡

다음날 오전 열 시 경이었다. 응급처치를 할 때 마취와 함께 잠이들었던 신동규가 눈을 떴다. 진통제를 놓았는지 아픈 곳도 없었다. 낯선 병실의 침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밤에 이곳에 올 때까지 정신이 멀쩡했던 신동규가 김은애에게도 연락을 했었는데 아직 콧배기도 보이지 않아 또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어나셨군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김은애가 들어서고 있었다. 화가 나 있던 신동규는 자신의 주위를 재빨리 둘러봤다. 그러다 집어 던질만한 물건이 없자 더욱 화가 치솟았다. "야, 너 무슨일을 그따위로 해? 지금이 몇신데 이제 나타나는 거야? 엉?" 삿대질을 하려고 손을 들려다 오른 팔에 링거 호스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신동규는 다시 왼손의 식지를 마구 흔들었다. "넌 내가 안중에도 없냐? 내가 죽..

오늘의 소설 2024.03.11

파투(破鬪) 6. 또 다른 음모(1) 신동규

"컷 하시겠습니까?" 이제 막 셔플을 끝낸 딜러가 윤치우에게 물었다. "음. 신사장, 자네가 하지? 오늘은 자네가 운이 따르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럼 그럴까요?" 윤치우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신동규는 딜러가 건네는 컷 나이프를 가운데에 찔러넣었다. 그들은 지금 5층에 있는 VIP룸 가운데서도 큰 테이블 하나와 작은 테이블 여러개가 놓인 방에서 미니 바카라를 하고 있었다. 큰 테이블은 비어 있었고 다섯 개의 테이블은 제각각 대여섯 명 씩 둘러싸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테이블 가운데 두 테이블은 배팅액이 미니멈 10만 원에 맥시멈 300만 원의 판이었고 윤치우와 신동규가 앉은 테이블과 나머지 둘은 미니멈 20에 맥시멈 500까지 배팅이 가능한 테이블이었다. 미니멈 20만 원이란 액수..

오늘의 소설 2024.03.11

파투(破鬪) 5. 덕배 아버지(4) 북으로 남으로

얼마 동안 얼이 나갔던 최포수가 감격에 젖은 듯 중얼거렸다. 곽순도의 가슴은 아직도 뛰고 있었다. 난생 처음 목격한 호랑이였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말이다. 호랑이란 짐승이 그렇게 늠름하고 위엄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은 곽순도에겐 상당히 충격적 감동이었다. 그런 감동이 심장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저 범을 꼭 잡고 말겠네. 저렇게 멋진 범이 조선의 마지막 범이라면 박제로 만들어 후손에게 남겨야지. 암, 남겨야 하고말고. 내가 잡은 한 마리는 일본에 있으니 조선에도 한마리쯤은 있어야 조선 포수와 조선범의 체면이 서지 않겠나 말이야." 최포수는 장비를 다시 챙겨 짊어졌다. 최포수의 얼굴은 어느 덧 결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곽순도는 오히려 뒤쫓고 싶은 의욕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

오늘의 소설 2024.03.10

파투(破鬪) 5. 덕배 아버지(3) 범 사냥

그 해 가을에 곽순도는 총포사 주인의 집에서 한 달을 묵었다. 주인의 이름은 최윤수였고 사람들은 그를 최포수라 불렀다. 최포수는 엽총은 물론이고 38식이나 99식 장총에 관해서도 박사였다. 곽순도는 총과 사냥에 관한 것이라면 모두 알고 싶어 했다. 최포수 또한 가르침에 인색함이 없었다. 엽총의 종류에 따라 다루는 법과 고치는 법, 그리고 쏘는 법을 아르켜 주었다. 엽총의 구경(口徑)과 탄약의 호수(號數)가 제각각 다른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곽순도는 노름판의 기술을 익히 듯 사냥꾼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알아갈수록 사냥에도 무한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준비를 마친 최포수와 곽순도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용봉산으로 향했다. 몇 번의 갈아타기와 고장이 잦은 목탄차의 짐칸에 시달리며 ..

오늘의 소설 2024.03.10

파투(破鬪) 5. 덕배 아버지(2) 옛날 이야기

덕배 아버지 곽순도씨의 고향은 동해안 울진이었다. 1919년 삼일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죽자 큰형의 집에서 자랐다. 큰형은 동생이 열 살이 되자 새경 없는 머슴으로 남의 집에다 주어버렸다. 밥만 간신히 얻어먹으며 죽도록 부려먹히던 곽순도는 열여섯 살이 되는 해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갈곳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덩치가 컷던 그는 공사판을 찾아갔다. 그 때부터 몇 년간을 전국의 공사판을 전전했다. 공사판 인부가 묵는 합숙소에는 날마다 노름판이 벌어졌다. 인부들은 일당을 받으면 일단 노름판부터 벌렸다. 곽순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날마다 노름으로 품삯을 날리기 예사였다. 가족도 없는데다 술도 담배도 가까이 하지 않는 그로서는 돈에 큰 애착이 없었다. 그렇게 노름판에서 몇..

오늘의 소설 2024.03.10

파투(破鬪) 5. 덕배 아버지(1) 산 속으로

이튿날 진우가 눈을 떳을 때는 정오에 가까운 한낮이었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쌓인 피로가 기절에 가까운 잠을 불러 온 것이다. 피로감이 조금 남았지만 싫컷 자고나니 정신은 맑았다. 밖으로 나오니 강렬한 햇볕에 눈이 부시고 막바지에 다다른 여름의 절규인 듯 후끈한 열기가 목구멍으로 빨려들었다. 덕배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일어났니?" 호미를 든 덕배 엄마가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걸음이 눈에 띄게 느리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아 예, 정신없이 자다보니 그만....좀 늦었습니다." "밥 먹어야지? 잠깐만 기다려라. 내 곧 내 오마. 너한텐 아침밥이고 우리도 점심을 먹어야 하니까." "덕배는 아침에 갔습니꺼?" "아니야, 벌써 새벽에 갔어. 걘 밝을 때는 이곳에 안 온단다." "아버님도 안 ..

오늘의 소설 2024.03.10

파투(破鬪) 4. 한밤의 피신

그날 밤, 결국 덕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덕배가 경영한다는 호텔에서였다. 호텔은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다만 객실 수나 규모면에서는 호텔이라기보다 모텔 급이래야 옳았다. 진우의 이야기를 들은 덕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갈 곳이 없더라. 도대체 태백 말고는그놈들을 피해 갈 곳이 없더란 말이다." 진우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이는 자신이 한심했다. 사내가 오죽 못났으면 여자에게 홀랑 털린단 말인가? 게다가 강도 같은 놈들에게 쫓겨 막다른 곳으로 도망까지 친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말을 듣는 동안 덕배는 줄곧 미간을 찌푸리고 아랫입술을 지긋이 물고 있었다. "진우 네가 처한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단 말이다. 허나, 너무 걱정 마라." "나도 알..

오늘의 소설 2024.03.09

파투(破鬪) 3. 죽마고우(2) 배달사고

"부장님, 점심을 드시고 시작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윤치우 부장검사의 안색을 살피며 신동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배가 불러서는 곤란해.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특히 사격은 정신이지. 배가 부르면 정신이 나른해서 몸이 표적을 못 따라가." "그래도...준비가 되어 있을 텐데 말입니다." "밥은 갔다와서 먹기로 하고 우선 가자고." "그럼 가시죠." 신동규와 윤검사는 오정철이 운전하는 차에 함께 올랐다. 매봉산에 임시로 마련한 사격장으로 가려는 것이다. 윤치우를 위해 신회장이 장비와 기술자를 파견해 만든 사격장이었다. 윤치우는 검사들 중에도 어쩌면 좀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마흔셋이라는 나이임에도 신체는 서른네 살인 신동규보다 좋았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자기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늘의 소설 2024.03.09

파투(破鬪) 3. 죽마고우(1) 덕배

덕배와 진우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사이였다. 진우가 세 살 무렵, 덕배네가 이웃으로 이사를 오고부터였다. 덕배 부모는 시장통에서 장사에 바빴고 진우는 집에 있기보다는 덕배와 노는 것이 좋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덕배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자연히 자주 바뀌는 새엄마보다 덕배 엄마를 친엄마 처럼 따랐고 그녀 역시 진우를 아들 처럼 대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덕배와 함께 먹고 자고 같이 학교에 다녔다. 진우에겐 자신의 집이 오히려 서먹했다. 그만큼 새엄마라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이다. 당시에 덕배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는데 처음보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로 알았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 만했다. 덕배는 그의 아버지가 환갑이 지나서 낳은 아들이었다. 덕배 엄..

오늘의 소설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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