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6. 타락자(1) 큰 판의 준비

fiction-google 2024. 3. 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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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가 지난 11월 중순이었다. 간밤에 내린 서리가 개집 위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배철권은 아침 일찍 태산이와 동방불패의 견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는 동안 두 마리의 개들은 밖으로 끌어내 기둥에 묶어두었다. 두 견사의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개들이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짖고 있었다. 보나 마나 한열이와 우람이가 다가오는 것을 먼저 안 것일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더운물이든 통을 든 한열이와 앞장을 선 우람이었다. 이제 겨우 넉 달이 갓 지난 우람이지만 크기는 다 큰 풍산개만 했다. 개들은 신이 나서 코를 맞대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며 꼬리를 흔들었다.

"제가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벌써 끝나셨어요?"

"이깟 걸 도우긴 뭘 도우냐? 넌 학교 갈 준비나 해라."

"아직 시간이 충분해요. 여기로 이사를 온 뒤론 무엇보다 학교가 가까워서 좋아요."

"그렇기는 하지. 여긴 시내와는 가까우면서도 시골 같은 곳이니까."

"여기로 이사 오길 잘했어요. 우람이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으니까요."

"글쎄다.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이 든다만 다음 달부터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태산이의 시합 날짜가 정해졌대요?"

"그렇다더라. 수도권에서 먼저 경기를 치르고 전국으로 다닐 계획인가 보더라."

"태산이가 이젠 저나 우람이가 없어도 링 안에만 들어가면 잘 싸우잖아요. 그러니 크게 다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다치지만 않는다면 그보다 다행한 일은 없겠지만 시합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부상은 각오를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태산이 저 녀석에게 모든 시간과 재산을 투자한 양 선배를 생각하면 제 몫을 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잖냐?"

"양 씨 아저씨뿐인가요? 고씨 아저씨나 박 씨 아저씨도 마찬가지잖아요? 아버지도 역시 같으시고요. 그러니 무조건 이겨야 해요."

"그래야겠지. 이왕 싸워야 한다면 이기고 봐야지. 싸움에서 지는 순간 나처럼 도태되고 마니까."

"아버진 연세가 드셔서 그만두신 거잖아요?"

"전성기가 지나면 결국 신예에게 지게 되는 거야. 그러면 설자리가 없어지긴 마찬가지 아니냐? 어쨌든 태산이는 이제 시작이니까 일단은 승승장구하고 봐야겠지."

"그럼요. ? 아버지. 대문 밖에서 양씨 아저씨 트럭 소리가 들리는데요?"

한열의 말대로였다. 자동차 소리를 먼저 구별한 태산이와 동방불패가 짖는 가운데 묶이지 않은 우람이는 대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열이는 우람이를 따라가 대문의 빗장을 풀었다. 그러자 양구택은 손을 번쩍 들어 보인 후 트럭을 마당 가운대로 몰고 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이렇게 일찍 웬일이세요?"

차에서 내리는 양구택에게 다가간 한열이 물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온 것은 좀처럼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배철권도 궁금한지 견사에서 나왔다.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오늘 태산이 시합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

"아닐세. 친구들과 여기서 모이기로 해서 일세. 안양과 시흥 친구들이 일찍 전화를 했더군."

". 박 씨와 고 씨 말씀이죠?"

"미리 말을 안 하는 걸로 봐서 보나 마나 태산이의 첫 시합 장소를 알아온 것일 거야. 하니까, 자네도 태산이를 언제든지 출전시킬 수 있게 준비를 해 두라고."

"그러지 않아도 태산이 훈련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산책이나 휴식도 알맞게 시키고 있고요."

"알고 있네. 역시 선수 생활을 해 본 자네라 태산이를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킬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 싸우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던 태산이가 이젠 링 안에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말이지."

"그건 제가 훈련을 시킨 것이 아니고 지난번 우람이 사건 이후에 스스로 가족은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아무튼 그동안 자네의 수고가 많았네."

양구택과 배철권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한열은 태산이와 동방불패의 목줄을 잡고 농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람이는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한열이 주위를 뛰어다녔다.

", 한열아, 밥 먹어라. 학교 갈 시간이야."

집 쪽에서 한열의 엄마가 소리치고 있었다.

"알았어요. 얘들을 묶어두고 올게요."

한열은 개들을 데리고 견사로 향했다. 그러자 배철권 역시 한열이를 일깨웠다.

"넌 어서 학교 갈 준비를 해야지?"

"그럴 거예요. 얘들을 묶어두고요."

"그럴 것 없다. 청소를 다 마쳤으니 곧바로 우리 안에 풀어주려무나."

"그 게 좋겠네요."

한열은 태산이와 동방불패를 각각 우리에 넣은 뒤 우람이와 함께 집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배철권이 개들에게 사료와 물을 주는 사이 양구택이 사무실로 가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박철구였다.

"나는 거의 다 왔다만 달수 도착했냐?"

"그걸 물어보려고 운전 중에 전화했냐?"

"기다릴까 봐 전화를 해 주었더니 그런 식으로 대답하기냐?"

"그 자식 아직 안 왔다. 됐냐?"

"학교 가까이 사는 놈이 꼭 지각을 하더니만 달수 그놈도 누굴 닮아가는군."

", 설마 나 들으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 내가 거짓말했냐? 학교에서 백 미터 밖에 안되는 곳에 살던 넌 항상 지각을 했었잖아? 지각은 태만에서 오고 결석은 염증에서 온다고 정문에 큼직하게 쓰여있는 걸 넌 매일 지각하느라 본 적이 없지?"

"말은 바로 해. 사실 태만과 염증의 산 모델은 내가 아니라 너였지. 넌 숙제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온 적이 있냐? 뻑 하면 결석을 한 놈도 너 아니었냐?"

"그거야 여름 한철 장사로 바쁜 우리 아버지를 도와드리다 보니 그렇게 됐었던 거잖아? 그러는 넌 왜 밤낮 몸에서 개털 그을리는 냄새가 나서 준표놈의 놀림을 당했었냐?"

"네 말을 누가 들었으면 놀림은 나만 받은 것 같겠다. 그러는 네놈 몸에선 장미 향기가 나서 준표 놈의 쌍코피를 터트렸단 말이냐?"

"그거야 네놈이 그렇게 부추겼잖아? 가만, 준표 말이 났으니 말인데 달수가 지난주에 준표 그 자식을 투견장에서 봤다더라."

"? 그 자식은 경마에 미쳐있다고 하지 않았냐?"

"경마나 투견이나 사실 그게 그거 아니냐? 그런 놈들은 판돈이 걸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얼굴을 내민단 말이다. 삼십 년을 투견 판에서 보낸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그런 놈들은 경마나 투견뿐만 아니라 쥐 싸움이던 바퀴벌레 경주던 내기라면 가리질 않는 법이거든."

"그래서? 준표 놈도 달수를 알아 보드래?"

"글쎄, 달수 말로는 전연 모르는 눈치 더래. 하긴 투견 구경하러 온 놈이 개를 끌고나온 놈에게 신경 쓸 일이 뭐겠어?"

"달수 놈이 열을 좀 받았겠군. 그놈과 달리 아직도 개나 끌고 다니고 있는 제 처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랬겠지. 좌우간 네 농장에 거의 다 왔다. 끊는다."

전화를 끊은 박철구가 양구택의 농장 사무실에 나타난 것은 대략 오 분 후였다. 대문에 도착한 박철구가 크랙션을 울리자 마침 학교를 가려고 대문 쪽으로 오던 한열이 얼른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운전석에서 박철구가 한열을 향해 웃으며 트럭을 앞 마당으로 몰았다.

"한열이 학교 가는구나?"

차에서 내려서며 한열을 향해 박철구가 물었다.

", 아저씨. 일찍 오셨네요?"

", 그렇게 됐다. , 대문은 그대로 두어라. 이제 곧 고씨 아저씨도 올 게다."

한열이 대문을 나서자 박철구는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자 사무실 작은 창문이 열리더니 양구택이 밖을 내다보았다. 박철구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내가 온 걸 알았으면 얼른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할 일이지 전당포 주인처럼 창문만 빼꼼히 내다보냐?"

"전화로 알려도 될 걸 아침부터 사람을 대기시키는 놈에게 인사가 다 무어야?"

"전화로 끝날 일이면 미쳤다고 아까운 휘발유 태우며 여기까지 오겠냐?"

"도대체 무슨 일인데 달수까지 온다는 거야?"

"달수가 오면 내가 먼저 그걸 물어보려 던 참이다."

"이게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있어야지. 좋다, 달수가 올 때까지 궁금증을 참기로 하지. , 마침 달수가 오나 보다."

양구택의 말대로 귀에 익은 차 소리가 들리더니 고달수의 트럭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고달수는 차에서 내려 박철구의 트럭을 쓱 훑어본 뒤에 천천히 사무실로 다가갔다.

", 만나야 할 용건이 뭐기에 나를 아침부터 서두르게 하냐?"

사무실로 들어서는 고달수에게 박철구가 대뜸 물었다.

"시끄럽고.... 여기들 앉아 봐라. 의논할 게 있으니까."

"이거.... 제법 엄숙한 표정일세."

평소와 달리 농담을 받지 않는 고달수의 태도에 박철구는 지레 맥이 빠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양구택은 시합할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나 보다고 생각했다.

"구택이 넌 잘 모르겠지만 어제저녁 내가 개를 공급하는 투견장의 황 총무란 자에게서 전화가 왔더라. 오늘 오전에 만나자는 전화였지."

"개를 갖고 오란 말은 없고?"

고달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철구가 말 꼬리를 잡았다.

"주말도 아닌데 개를 왜? 그리고 내가 말하는 동안 끼어들지 말어. 장난이 아니니까."

", 그 자식. 무슨 독립 선언서라도 낭독할 것처럼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네."

"조용히 듣기나 해. 황 총무가 너도 함께 오라고 했으니까."

"뭐야?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무슨 일로?"

박철구가 심드렁한 얼굴로 고달수를 바라보았다.

"검단으로 오라는 걸 보면 그 게 아닌 것 같아. 공터에 있던 커다란 창고 알지? 너랑 함께 거기로 오라더라."

검단이라는 말에 양구택이 고달수의 말을 받았다.

"거기라면 배철권 후배가 근무하던 곳 아니냐?"

"누가 아니래냐? 몇 달 전부터 그곳을 투견장으로 만든다더니 이제 다 됐나 보더라. 그러니 경험자인 우리의 조언을 듣자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 오프닝 게임을 근사하게 기획하려나 보군."

"가보기 전에야 알 수 있냐? 구택이 네 말대로 오프닝 게임에 관한 거라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거다."

"무슨 기회? 오라, 거기서 태산이를 데뷔 시키면 되겠구나."

박철구는 자신의 생각이 어떠냐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네 말이 맞다. 기왕 투견장에 세울 거라면 큰 돈이 도는 곳에 데뷔를 시켜야지. 그래야 몸값을 뽑을 것 아니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우리끼리 미리 좋아할 필요는 없어. 일단 가보자고. , 구택아, 갔다 와서 보고하마."

박철구가 먼저 문을 나서 자신의 트럭으로 휘적휘적 가버리자 고달수도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양구택은 그런 두 사람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네가 앞장을 설 거냐?"

고달수가 박철구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무려면 어떠냐? 그냥 내차를 따라와라."

박철구는 고달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먼저 차를 출발시켰다. 두 대의 트럭은 검단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 두 사람이 허허벌판인 창고 부근에 당도했을 때는 양구택의 농장을 떠난 지 한 시간이 약간 넘어서였다.

그런데 창고 앞에는 이미 몇 대의 승용차와 트럭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고달수와 박철구가 차에서 내려 창고의 문으로 가려 할 때 가까운 곳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한데, 개들과 함께 세월을 보내온 두 사람 귀에는 전연 생소한 견종의 소리였다. 도사견이나 일반 투견들의 소리가 아닌 것이다.     

"이거 무슨 개가 짖는 소리냐?"

"글쎄, 못 들어본 개 소린데?"

호기심이 발동한 두 사람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난 곳은 창고의 오른쪽에 붙여지은 개장 안이었다. 두 사람이 개장 앞으로 다가가자 개들의 소리가 더 커졌다. 얼핏 보아도 개장은 스무 칸이 넘어 보였다, 그런데 그 개장 안에 갇힌 개들의 생김새가 난생처음 보는 견종이었는데, 우선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도사견의 두 배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런 개가 십여 마리나 되었다. 개들의 털 빗깔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개는 회색과 검은색이 섞였고 어떤 개는 검은색이 훨씬 짙었다. 하지만 빛깔은 달라도 모두가 털이 긴 장모형이었다.

"이거, 개장수 삼십 년에 처음 보는 개들이로군. 어라? 이쪽은 똥개같이 생긴 것이 크기는 왜 또 이렇게 크냐?"

박철구가 놀란 소리와 함께 다른 쪽 개장을 가리켰다. 박철구가 가리킨 개장에는 귀가 처지고 털이 짧은 누렁이들이 갇혀 있었는데 덩치는 모두 슈퍼 헤비급이었다.

"이 개는 연변에 갔을 때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선 만주 개라고 하더라. 이런 색 말고도 누렁이도 있고 회색에 가까운 놈도 본 적이 있다."

만주 개를 알아 본 고달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곳 사람들 말로는 이 개가 유일하게 도사와 맞붙어서 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보기에도 벌써 도사와 맞짱을 뜰만하게 생겼구먼. 한데, 무엇하려고 십여 마리나 갖다 놨을까?"

"그야, 투견 시합용이겠지. 설마 보신탕용으로야 쓰겠냐?"

두 사람이 개장의 개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밖으로 향할 때였다. 개 짖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웬 사람이 급히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 듯 눈앞으로 다가왔다. 마흔이 될까 말까 한 상고머리에 작업복을 걸친 사내였다.

"당신들 뉘기요? 어째서 남의 개장에서 얼쩡대는 거요?"

사내는 눈을 부라리며 두 사람을 개도둑 보듯 다그쳤다.

"우리는 서 회장에게 볼 일이 있어 온 사람이오. 개들이 짖기에 웬 개들인가 잠깐 보았을 뿐이요. ? 개 구경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하오?"

고달수는 대꾸를 하는 한편 앞에 선 사내의 아래위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사내는 세수도 하지 않았는지 꾀죄죄한 얼굴에 말씨까지 이상했다. 한눈에 보아도 남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누가 돈을 내라고 하오? 하기야 돈을 내면 좋기야 하지만 말이요."

"어째 말소리가 어디서 들어본 말씨 같구려. 혹시 연변서 오지 않았소?"

"어째 알았소? 내 말이 여기 사람과 많이 다르오?"

"하하, 반갑소이다. 어쩐지 연변에서 듣던 말소리 같습디다. 한데, 만주 개는 알겠는데 저 개는 무슨 종자요? 생전 처음 보는 갭디다."

"털 긴 개 말이요? 그 개는 오부차카라는 개요."

사내는 고달수의 너스레에 그만 처음의 열이 식어버렸는지 한결 고분고분 해졌다.

"오부차카? 거 이름만 들어도 중국이나 조선 개는 아닌 것 같소."

"노서아 개요. 성질이 사납기 그지없소."

"러시아 개를 어째서 여기로 데려왔단 말이요?"

", 그야 싸움을 붙여 돈을 벌자는 것 앙이겠소?"

"저 개가 도사에게 이길 수 있단 말이요?"

"저 산만한 몸집을 보오, 도사 정도는 한 입에 물어 죽이게 생기질 않았소."

"몇 킬로나 나가오?"

"무게 말이요? 서른 관이 넘소."

"서른 관? 서른 관이면 삼사는 십이라.... 백이십 킬로 아닌가? 백이십 킬로면 도사견의 두 배에 가깝구먼. , 철구야. 너희 집 도사 중에 저만한 놈이 있냐?"

"구십오 킬로 짜리가 있긴 하지만 무거운 만큼 날렵하지 못해서 싸움을 제대로 못해. 저 개도 보나 마나 무겁고 둔해서 싸움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박철구는 오부차카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사내가 비웃는 표정으로 박철구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오. 무식하단 소리 듣소. 범을 보오. 범이 가볍소? 큰 범은 근수가 일흔 관이 나가는 놈도 있단 말이오. 그런 범이 무거워서 싸움을 못한단 소리 들어나 봤소?"

", 그 건 호랑이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저건 개 아니냔 말요."

지기 싫은 박철구가 이의를 달았다. 그런 박철구를 흘겨보던 사내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 모르는 소리 마오. 우리 연변에는 마흔두 관 짜리 개가 있었소. 마흔 관이 넘는 개를 생각해 보오. 그 크기가 얼마나 크겠소? 그 개가 얼마나 큰지는 보기 전에는 믿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요. 그 개가 싸움 판에 나서면 한꺼번에 오부차카 다섯 마리와 싸워서 이겼소."

"뭐요? 마흔두 관? 마흔두 관이면 백육십 킬로가 넘는데 세상에 그렇게 큰 개가 있단 말이요? 그리고 있었다니? 그럼 그 개가 지금은 없다는 얘기요?"

고달수가 재빨리 물었다. 그 개에 관해서 양구택에게 들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 참 아까운 개였소만 다섯 달 전쯤에 죽었소. 그 개가 살았을 적에는 연변은 물론이고 중국 본토를 쓸고 다녔소. 그러니 그동안 돈은 또 얼마나 벌었겠소?"

"투견 판에서 우승 상금을 탄 돈 말이요?"

"어째 상금뿐이요? 내기에서 딴 돈이 한국 돈으로 치면 천억 원이 넘소. 중국의 도박판은 그 크기나 판돈이 상상을 초월하오. 그러이까네 삼합회까지 나서서 그 개를 뺏으려고 싸움을 벌이지 않았겠소?"

"뭐요? 삼합회라면 중국 최대의 범죄 조직 아니요? 그런 조직이 누구와 싸움을 벌였단 말이오?"

"연변이라고 조직이 없는 줄로 아오? 우리 조선족도 조직이 있소. 연변 조직은 삼합회도 함부로 건드리질 않소. 우리 조선족이 물불을 안 가린다는 걸 삼합회도 잘 알기 때문이요."

"그럼, 그 개는 애초에 연변 조직이 갖고 있던 개란 얘기로군."

"아니오. 처음엔 개 장수에게서 산 투견장 주인 것이었소. 그러다 그 개가 돈을 벌어들이자 연변 조직에서 날래 접수를 했지요. 그리고는 그 개를 데리고 본토를 돌며 엄청난 돈을 벌었소. 그 개가 싸우는 걸 보려고 사람들이 돈을 싸 들고 구름같이 몰려들었단 말이오. 그러니 돈이라면 제 애비라도 잡을 삼합회 장꿰놈들이 보고만 있었겠소? 당연히 개를 뺏으려고 삼합회와 연변 조직 간에 싸움이 붙었지요."

"그래서 개는 어찌 되었소?"

"그 때는 허난성(河南省)에서 투견 판을 벌렸을 때라 연변에서 너무 떨어졌었소. 본토에서 노는 삼합회에 비해 조선족에게 영 불리한 싸움이었단 말이오. 그러니 어째? 싸움에 밀려 개를 뺏기게 생겼으이까네 악에 받힌 연변 조직이 그 개에게 쥐약을 멕이고 칼과 도끼로 마구 쳐 죽이고 말았단 말이오. 내가 못 먹으면 너도 먹지 말라는 거 앙이겠소?"

", 뭐요? 그 개를 그렇게 죽이고 말았단 말이요?"

", 참 나.... 세상에 다시없는 개였는데.... 그런 개가 한 마리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중국의 도박판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소? 그러이, 그런 개가 한 마리만 더 있으면 세상 돈을 다 긁을 수 있을 거 앙이겠소?"

", 왜 그런 개를 못 구한단 말이요? 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은 이상 그 개를 낳은 어미가 있을 것 아니오? 그 애미는 또 그런 개를 낳을 텐데 무얼 걱정하오?"

얼핏 동방불패가 떠오른 고달수가 사내를 바라보며 슬쩍 찔러보았다. 그러자 사내는 또 한 번 힝하고 웃더니 입에서 침을 튀겼다.

"당신은 삼합회와 우리 조선족 조직을 바보로 아오? 진작에 투견장 주인 놈을 잡아다 족쳐서 그 개가 태어난 개 사육장을 찾아갔지요. 그런데 말이우다. 그 개 애미는 이미 한국서 온 어떤 사람이 사가고 없더란 말이오."

"아니? 한국 사람이? 한데 말하는 품이 어째 당신이 직접 그 개의 어미를 찾으러 다닌 것 같소."

"잘 봤소. 까놓고 얘기하면 내가 그 개의 애미를 찾는 임무를 받은 사람이오. 저 개들 관리인으로 오긴 했지만 사실 한국에 온 것도 그 개의 애미를 사간 사람을 찾기 위해서란 말이요. 이제 아셨소?"

사내의 말에 고달수와 박철구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결국 동방불패를 사 온 양구택을 찾는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찾는 사람이 연변의 조직폭력배들이라니 놀라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 개를 사간 한국 사람이 있는 곳을 알아냈소?"

", 만주 벌판에서 잃었던 단추도 찾는데 이깟 좁은 한국 땅에서 사람 하나를 못 찾겠소?    시간문제지비."

"찾으면 그 개를 다시 사 가겠다는 거요?"

"그 개가 아직 있다면 사간 값에서 열 배를 더 주려고 하오. 그래도 싫다면 백 배를 주고라도 사려고 하오."

"그래도 싫다면?"

", 그때 얘긴 지금 할 필요가 없는 거 앙이요? 돈 싫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살 필요가 없는 것 앙이겠냔 말이오."

"뭐라고? 개가 사람 보다 중하단 말이요?"

"물론 개보다 사람이 중하오, 하지만 사람보다 중한 건 바로 돈이란 말이오. 세상에 돈 보다 중한 건 없소."

고달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박철구 역시 입이 쓴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 약속 시간이 늦었구먼. 이만 가 봐야겠소."

고달수는 박철구의 뒤를 따라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 창고로 향했다. 그런데 창고로 들어서든 고달수와 박철구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창고 안은 밖에서 보든 그냥 그런 창고가 아니라 거대한 투견장으로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냥 바닥에 쇠 올타리를 친 보통 투견장이 아니었다. 천정의 조명을 받은 링을 중심으로 사방을 빙 둘러 대략 삼백여 명이 앉을 자리에 뒷사람도 잘 보이게끔 앞 쪽이 낮고 뒤를 높인 것이 흡사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투견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구로의 서 사장 네 서비스 공장은 여기다 비하면 애들 소꿉장난 같았다. 고달수와 박철구의 눈에 비친 투견장은 웬만한 체육관의 권투경기 링 보다 좋았다. 평생을 투견판에서 보낸 두 사람은 전국 어디에서도 이런 투견장을 본 적이 없었다. 서 회장이 그동안 창고를 완전히 투견장 전용으로 꾸며놓은 것이다.

두 사람은 멀리서 보던 창고 안에 이런 시설이 있으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두 사람이 창고 끝 쪽으로 다가가자 사무실이라고 쓰인 곳 앞에 서너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청년들이 서 있었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갈까를 망설였다.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황백구 총무가 나오다가 두 사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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