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6. 타락자(2) 탐나는 물건

fiction-google 2024. 3. 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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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장님, 박 사장님도 오셨군. 그러지 않아도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들어들 가십시오. , 성태. 너 개장에 가서 조선족 좀 불러와라."

아마도 황 총무가 말하는 조선족이란 조금 전 밖에서 본 그 사람이리라. 황 총무는 뒤돌아 두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로 들어서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곳은 사무실이라기엔 지나치게 호화로워서 어느 부잣집의 응접실을 옮겨놓은 듯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페넌트가 걸려 있고 무슨 경기에서 딴 것인지 모르는 각종 트로피로 장식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큼직한 탁자를 가운데 두고 일인용과 다인 용의 가죽 소파가 놓였는데 그 중앙에 서 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달수도 두어 번 본 적이 있는 서 회장의 아들이란 자가 다리를 꼬며 들어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란 소파엔 이미 대여섯 사람이 나누어 앉아 있었다. 한데 고달수와 박철구로서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철원과 포천의 견주들과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며 개를 공급하는 인천 쪽 견주들이었다. 두 사람은 회장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 마침 수도권 견주들이 왔구먼. 그럼 다 모였으니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 이유를 설명을 해야겠군. 내가 이곳에다 상설 투견장을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동안 여러분도 느꼈겠지만 투견을 할 만한 장소를 구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었소."

다시 말을 시작한 서 회장이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띠며 좌중을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여기는 시내와 동떨어진 곳이고 주위에 인가도 전혀 없으니 투견장으로선 최상의 입지로 생각하오. 이만하면 현재의 회원들은 물론 앞으로 늘어날 인원까지 다 수용할 수 있을 것이오. 이제 이만하면 전국의 VIP 회원들이 다 모일 수 있을 것이요."

"그럼요. 이곳의 소문만 나면 전국의 VIP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오게 될 겁니다."

서 회장의 말에 황 총무가 재빨리 아첨을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 , 그전에 서로 소개를 해야겠군. 방금 온 사람들은 경기 지역에서 도사와 진돗개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견주 들이고.…"

"회장님, 소개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서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포천에서 개 농장을 하는 쌍태라는 사내가 잽싸게 서 회장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사실 수도권에서는 웬만한 개장수나 사육자들 끼리는 서로 거래를 통해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 그렇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만 소개하면 되겠군.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도 사실 거기 있으니까. 이 사람은 내 아들이오. 이제부터 투견 동호회의 모든 운영권을 넘겨받을 것이오. 그러니 앞으로 이곳에 투견을 공급할 여러분들은 이곳의 새로운 회장인 내 아들과 의견들을 나누기 바라오."

말을 마친 서 회장이 입을 닫자 옆에 앉았던 아들이란 자가 꼬았던 다리를 내리고 상체를 바로 세우더니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꾸뻑하더니 입을 열었다.

"서유석이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사업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지만 어쨌든 아버님이신 회장님을 대신하여 이곳을 책임지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서유석은 온순한 말씨와 달리 사뭇 위압적인 얼굴로 좌중을 쓱 둘러보더니 황 총무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 총무가 눈치를 알아차리고 얼른 일어나 문간을 살폈다. 마침 연변 조선족 사육사란 자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장님, 진가구가 왔습니다. 계속하시지요."

서유석은 황 총무의 말을 무시하고 진가구란 사육사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사육사와 처음 보는 또 한 사람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했다.

"이 두 사람은 연변에서 투견 전문 흥행사를 하던 사람 올시다. 각자 인사들 하시오."

서유석의 말에 먼저 인사를 한 사람은 방금 들어온 작업복의 사내였다.

"진가구라고 합네다."

뒤를 이어 멀끔하게 생긴 낯선 사내가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윤일수라고 불러 주시라요."

윤일수라는 사람은 서른대여섯 살쯤의 눈매가 날카로운 젊은이었다. 그는 차고 날카로운 눈으로 마주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고달수는 윤일수란 사내의 눈길이 영 못마땅하고 꺼림칙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전국에서 가장 투견을 많이 보유한 견주 들인 데다 투견이라면 모두 일가견이 있는 분들 아니오? 그래서 내가 오늘 여러분들께 의견을 구할 겸 제안을 하려든 거 였소이다."

"사장님이 일개 개 농장을 하는 저희들에게 무슨 의견을 구하신단 말입니까?"

서유석의 정면에 앉아있던 포천 농장의 견주가 불쑥 물었다.

", 한수 이북에서 제일 많은 도사를 훈련시킨다는 포천 견주구려. 좋소, 먼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은 투견에 관해서요. 사실 내가 투견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지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말이요. 기존의 도사견들끼리 싸우는 방식이 이미 식상해 있더란 말이오. 그래서 도사 대 다른 개의 싸움이나 단체전을 벌이는 시합을 구상하는 중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런 시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더란 말이요. 해서, 전문가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오."

무슨 말이 나오는지 서유석의 입만 바라보던 고달수는 다소 맥이 풀려 버렸다. 이른 시간에 사람을 오라고 한 것이 고작 이런 문제를 물으려 한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박철구는 서유석의 말을 듣는 순간 서 회장을 돌아보았다. 서 회장의 투견 시합에 개를 몇 번 공급하지도 못한 자신을 쫓아 내더니 이제 와서 그 아들이란 자가 이따위를 묻는가 싶어서였다.

"단체전은 기술적 문제가 있어서 드물지만 지금도 전국 어디서나 다른 견종끼리의 시합은 많지 않습니까? 이북의 풍산개가 수입되면서 도사 대 두 마리의 풍산개가 맞붙는 경우도 있고요."

옆자리의 어떤 견주가 서 회장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서유석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다른 견종끼리의 경기는 우리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하오. 그러나 투견으로 쓸 수 있는 견종이 한계가 있으니 문제란 말이오. 여러분들이 추천할 만한 견종은 없소?"

"그래도 투견이라면 도사견이 세계적으로 대세지요. 난다 긴다 하는 개들도 도사를 이기는 견종은 없거든요. 도사를 이길 견종이 있으면 그것 자체가 흥행감 아니겠습니까?"

서유석의 말이 끝나자 입이 쓴 박철구가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그러자 서유석이 소파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우며 엄지와 중지를 비틀어 딱 소리를 냈다.

"바로 그거요. 그래서 중국에서 몇 종류의 개들을 수입해 왔지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 마리도 없는 견종들이라 합디다. 오부차카라는 개와 만주 개가 며칠 전에 들어왔소. 수일 내로 짱아오란 개도 들어올 것이오."

"? 짱아오(藏獒)라면 엄청 비쌀 뿐 아니라 국외로 반출이 안 될 텐데요?"

풍산개를 수입해 본 고달수가 서 회장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하하,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법과 원칙만 존재하겠소?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수가 있는 것이지. 내가 여러분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런 개들과 싸움을 대등하게 할만한 견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오."

"오부차카란 개를 밖에서 보았습니다만 덩치에 걸맞은 전투력을 가진 개 같지는 않습디다. 그렇게 덩치만 커서야 호위견이나 번견으로 밖에 쓰이지 못할 것 같은데요?"

고달수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서유석보다 먼저 진가구란 자가 발끈 성을 내며 고달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 그 양반 아까부터 무식한 소리만 골라서 하기요? 아까 밖에서 내가 말하는 건 어디다 저당을 잡혔소? 범이 크오, 개가 크오? 범을 이기는 개를 봤소? 범이 크지 않고 괭이 새끼만 하다면 어찌 개를 이기겠소? 범이 개보다 크니까 범이 아니오? 당신은 어째 자꾸만 덩치가 커서 싸움을 못한다고만 하오?"

진가구란 사내의 항변에 고달수는 입을 닫았다. 그러자 서유석이 다시 여러 사람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곳의 운영 방침은 내가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사들끼리의 시합 이외에 못 보든 견종을 무대에 올릴 겁니다. 여기 안양에서 양견장을 하는 분이 누구시지요?"

",..... 나요만 왜 그럽니까?"

안양이란 말에 박철구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 그러시군. 황 총무에게 들으니 그쪽이 전국에서 롯드 와일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디다. 총 몇 마리나 갖고 있습니까?"

"쓸만한 도사가 이백여 마리가 넘지만 롯드 와일러는 팔십여 마리가 채 안 됩니다."

박철구는 첫인상부터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서유석의 말이 시답잖아서 자신도 역시 건성으로 받았다. 그러자 서유석이 다시 황 총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봐. 황 총무. 현재 국내에 롯드 와일러를 사육하는 농장이 거의 없다고 했지? 그러면 저분을 앞으로 우리와 거래를 트도록 하라고. 그리고 오늘 모이신 여러분들도 우리 투견장과 공급 계약을 정식으로 맺도록 합시다."

서유석이 갑자기 결론을 내리듯 앞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포천과 철원의 농장주들은 새로운 공급권이 생기는지라 입이 벌어졌고 인천의 업자들은 현재도 공급을 하고 있으니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고달수와 박철구는 선뜻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곧 태산이의 시합에 주력해야 할 판에 그깟 도사나 진돗개를 공급한다고 좋아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서로 눈빛을 마주쳤다. 그러자 고달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계약을 맺고 보자는 것이다. 서 회장 측과 개인적 감정이 남아있던 박철구는 고달수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손해를 볼 일은 없기에 따르기로 했다.

결국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황 총무가 내미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황 총무가 사인을 마친 서류를 챙겨서 돌아서자 이제껏 입을 닫고 있던 서 회장이 슬그머니 몸을 세웠다.

"계약에 동의해 주신 여러분들 고맙소.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더 많은 수입을 올릴 것이오. 왜냐하면 규모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합이 이곳에서 벌어질 테니까 말이요. 그리되면 지금보다 투견의 질도 훨씬 높아야...."

"이곳은 언제 개장합니까?"

서 회장의 말을 자르고 누가 불쑥 물었다. 철원의 견주 신수달이었다. 전국의 투견장을 찾아다니며 시장 바닥을 돌던 그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멋진 곳에다 자신의 투견을 공급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했던 것이다. 갑작스런 신수달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 서 회장의 이마가 약간 찌푸려졌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서유석이 물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신수달을 노려보았다.

"당신, 회장님 말씀 중에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처음부터 좋은 말로 시작하니까 동급으로 아는 거야 뭐야? 죽고 싶어?"

서유석은 신수달 뿐 아니라 좌중의 모든 사람들을 한번 훑어본 뒤 황 총무를 불렀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계약서 찢어버려."

"? , ."

뜻밖의 말에 당황한 황 총무가 머뭇거리며 서류를 찾는 사이 진짜 놀란 사람은 신수달이었다. 신수달이 벌떡 일어나더니 서유석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사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봐 주십시오."

"봐주긴 뭘 봐 줘? 나가, 나가라고. 당신 아니라도 개를 공급할 사람은 넘쳐나니까."

"사장님, 그래도 제겐 특대형 도사가 있지 않습니까? 전국에서 제일 큰 도사가 있단 말입니다."

"뭐야? 크다고 해 봐야 도사일 것 아닌가? 도사가 커 봐야 기껏 백 킬로쯤 될 테지?"

"아닙니다. 그보다 큽니다. 백이십 킬로가 넘는 초 특대형이지요. 아직 그 개를 이기는 개는 없었으니까요."

"그래? 그럼 오부차카와 한 판 붙어 볼만하겠구먼."   

"오부차카가 뭐지요?"

이제껏 오부차카란 개가 세상에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는 신수달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러자 서유석은 애써 여유를 찾으며 연변 조선족인 진가구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진가구, 가서 한 마리 데리고 와."

서유석의 말이 떨어지자 진가구가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갔다.

"좋아, 당신 말이야, 이번 한 번은 봐 주지. 하지만 앞으로 회장님이나 내 말을 자르지 말란 말이요. 조직이나 사업엔 위계질서가 있는 법이니까. 알았소?"

", 그럼요. 조심하겠습니다."

신수달이 죽다가 살아난 듯 고개를 연신 숙였다. 개장수 십수 년에 처음으로 안정적인 공급처를 찾아서 좋아했던 그가 일순간에 계약이 파기될 뻔한 것이다. 신수달이 조심스럽게 다시 자리에 앉자 잠시 후에 진가구가 털이 북슬북슬한 개 한 마리를 끌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데 이미 밖에서 본 고달수와 박철구를 제외한 다른 견주들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본 견종임은 물론 덩치가 거의 중 송아지만 했기 때문이다.

"이 개가 바로 오부차카라는 개요. 도사 대 도사의 싸움에 식상한 투견 팬들을 위해 특별히 십여 마리를 구해 왔지요. 한데 말이요. 과연 이 개와 일 대 일로 맞짱을 떠서 이길 개가 우리나라에 있겠소?"

"보통 투견으로선 이길 개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 도사라면 한 번 해 볼만하겠는데요? 이 개는 털 때문에 커 보일뿐, 제 개와 무게는 비슷할 것 같으니까요."

서유석의 말에 신수달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초 특대형 도사를 다시 거론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 달 첫 시합에서 한 번 붙여보지. 어이. 윤일수, 네 생각은 어때?"

서유석이 윤일수라는 조선족 흥행사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윤일수는 차고 날카로운 눈으로 신수달을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이 묻은 표정을 지었다.

"도사는 오부차카와 달리 너무 크면 못 쓰오. 몸집이 커지면 거기에 따라서 운동신경과 반사 신경이 같이 움직여 줘야 한단 말이오. 도사의 적당 체중은 팔십 킬로요. 그 걸 넘기면 못쓴단 말이오. 그러이 어째 도사가 이 개를 이기겠소?"

"그래도 내 개는 달라요. 아무리 큰 개도 내 개를 이기진 못했단 말이오."

자존심이 상한 신수달이 윤일수의 말을 반박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윤일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개를 이기려면 더 큰 개가 덤벼야 할 거요. 그런 큰 개가 연변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소. 한데 내 연변에서 들으이 한국에서 온 누군가가 그 개의 어미를 사갔다고 합디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 개를 갖고 있거나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없소?"

고달수와 박철구는 윤일수의 말에 다시 한 번 뜨끔한 심정이 되었다. 아까 밖에서 진가구란 사내가 하던 말을 윤일수가 다시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놈들은 동방불패를 찾으러 온 놈들이 틀림없다고 느낀 것이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서로를 슬쩍 바라본 후 시침을 떼고 가만히 있었다.

"그 개는 보통 개의 두 배 보다 크오. 그러이 쉽게 눈에 띠일 거란 말이오. 암캐지만 무게도 백이십 킬로가 넘을 것이오. 그렇게 큰 개를 보통 사람이 사 갔을 리가 없으이까네 이거는 보나 마나 투견을 하는 사람일 거 아이겠소? 한국 땅에서 투견장이라면 모를 곳이 없는 여러분 앙이요? 누가 그런 소문을 들은 적도 없소?"

윤일수가 재차 물었지만 선뜻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달수는 윤일수의 눈길을 바라보다가 서 회장과 서유석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니 조선족으로부터 이미 그런 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고달수는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사실 그 개는 내가 갖고 있소. 재작년에 연변에서 사 왔지요."

"뭣이요? , 당신이 말이요?"

윤일수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 옆에 앉았던 진가구 역시 깜짝 놀라 일어섰다. 서 회장과 서유석도 눈을 빛내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 개가 지금 어디 있소?"

"그야 내 개니 내 집에 있지 않겠소?"

"좋시다. 이 자리에서 톡 까놓고 얘기합시다. 그 개를 우리에게 파시오."

"팔라면 못 팔 것도 없지만.... 그래 얼마에 사겠다는 거요?"

"산 값의 스무 곱을 주겠소."

", 그래봐야 운임에 세금도 되지 않는 값 아니오?"

"좋소. 한국 돈으로 삼억을 주겠소."

"삼억? 만약 내 개가 새끼를 낳아서 연변에 있었다던 그 개보다 더 크다면 얼마나 하겠소?"

", 그거야 새끼를 낳아봐야 알 것이지만 오십억 원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어미가 그런 개를 낳을 확률이 크지 못하단 말이요. 그래서 사실 삼억도 복권을 산 셈 치려는 값이란 말이요."

"그래도 삼억으론 안 되겠소. 왜냐하면 내 개는 이미 새끼를 낳아서 그 강아지가 세상에서 제일 큰 괴물개가 되었단 말이오. 크기로 친다면 저 오부차카의 두 배가 넘소."     

고달수가 최후의 말을 뱉자마자 실내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침묵에 빠져들었다. 도무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였다. 사태를 지켜보던 서유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선 나와 협상을 합시다. 애미 개는 연변에서 온 이 사람들에게 팔더라도 괴물이란 개는 내게 파시오. 십억을 주겠소."

"? 십억이라니요? 조금 전 저 사람은 오십억의 가치가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야 그 개의 존재를 몰랐을 때의 얘기지. 흥정이란 늘 그런 식 아니오? 십억이면 사실 개 장수로선 평생 꿈에서도 만지지 못할 돈 아니겠냐 말이요."

"개장수요? 좋습니다. 개장수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시지요. 하루 정도는 생각해 볼 문제군요."

"생각하고말고 할 게 뭐요? 십억도 내가 큰맘을 먹은 것이란 걸 아셔야지. 지금 내 마음이 변하면 그 돈도 챙기지 못할 거요."

"좌우간 그 문제는 차후에 알려드리지요."

고달수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박철구를 돌아보았다. 박철구도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내쳐 투견장의 정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트럭을 향해 걸었다.

"이거 보우, 나 좀 보고 가오."

뒤에서 조선족인 진가구와 윤일수가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두 사람을 기다렸다.

"우리가 큰 개를 사는 조건으로 어미 개도 같이 사리다. 큰 개는 이십오억 원을 내겠소. , 어미 개도 오억을 쳐서 합이 삼십억을 드릴 테니 우리에게 그 개들을 넘기시오. 어떻소? 눈치를 보니 저 서 사장 부자는 공짜로 먹으려는 것 같습디다. 우린 그런 짓 앙이 하오. 우리에게 넘기시오."

고달수는 두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눈치로 살아온 사람이오. 서 회장의 속셈 정도는 아오. 당신들 제안은 마음에 드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생각할 여유를 주시오. 내 개만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수백억 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아오만 임자가 있을 때 파는 게 또한 우리 개장수요. 대신 당신들이 꼭 내 개를 사고 싶으면 돈은 좀 더 써야 할 거요."

"얼마를 더 원하오? 딱 부러지게 말해 보오."

"십억쯤은 더 받고 싶소."

"그럼, 사십억을 달라? 그 정도의 가격은 내 마음대로 못하오. 오늘 밤 연변의 우리 조직에 물어보고 할 노릇이요."

"어차피 잘 되었구려. 서로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오."

"좋소. 일단 내 연락처를 알려주겠소. 그 전에라도 마음이 변하면 연락 주기요. 돈은 즉시 주겠소."

윤일수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수첩을 쭉 찢어 고달수에게 내밀었다. 고달수는 그 종이쪽을 대강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 어떻게 하려고 네 마음대로 태산이를 처분하려는 거냐?"

트럭에 올라타려는 고달수의 소매를 당기며 박철구가 볼멘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고달수가 히죽 웃으며 박철구의 손을 툭 쳐냈다.

"내가 돌았냐? 그 돈에 태산이를 팔 게? 게다가 동방불패는 덤으로 줄 판인데?"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왜 그따위 흥정을 하느냐 말이다."

", 시끄러워.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태산이의 존재를 드러냈단 말이다. 그러니 일단 가서 구택이랑 함께 의논해 보자고. 잘하면 대박이 날 것 같으니까."

"무슨 소린지 원.... 좋다 가서 네 그 알량한 생각을 들어 본 뒤에 얘기하자."

고달수는 운전대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박철구도 재빨리 자신의 차에 뛰어올랐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막 출발을 하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황 총무가 팔을 벌리며 고달수의 트럭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입니까?"

고달수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저 연변 조선족 새끼들 말을 듣지 말라는 사장님의 지시요. 그리고 그 개들은 우리 사장님 이외의 사람에게 양도하면 재미가 적을 것이란 경고도 있었지요. 두 분이 오래도록 이 바닥에 붙어 있으려면 알아서 하라는 말씀도 계셨고요."

"뭐라고? . 기가 막히는군."

"어쨌든 나는 확실히 전했으니 나머지는 두 분이 알아서 행동하시지요."

고달수는 트럭을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냅다 속력을 높여 양구택이 기다리는 시내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다 백미러를 보니 박철구의 차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양구택의 농장에 도착한 것은 열한 시 경이었다.

"뭐야? 학교 가기 싫어 땡땡이쳤냐? 아니면 몸이 아파 조퇴를 했냐? 어째 이렇게 빨리 와?"

사무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본 양구택이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게다가 고달수와 박철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시끄러워. 땡땡이는 네가 전문이지. 그보다 여기 앉아 봐라. 긴급회의를 좀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긴급이라고 했냐? 무슨 일이 있구나."

양구택은 고달수의 표정을 살피며 재빨리 의자를 끌어당겼다.

"우리가 서 회장에게 가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생략하겠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가 공급 계약 같은 시시한 소리만 들었으니까. 한데 말이다. 서 회장이 오부차카라는 개와 함께 연변에서 조선족을 데려왔더란 말이지."

"오부차카? 그 개라면 내가 연변에서 본 적이 있지. 개는 투견용으로 들여왔다 치고 조선족은 무엇 때문에 데려와?"

"그게 말이다. 흥행사와 사육사라는 명목으로 데려온 것 같더라. 하지만 내가 볼 때, 그 조선족들은 동방불패를 찾으려고 온 것이란 말이야. 즉 그놈들은 네 행방을 찾고 있더란 말이다."

"? 그놈들이 왜 날 찾아?"

양구택은 이유 없이 가슴이 뜨끔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찾는 영문은 알 수가 없었다.

"너 혹시 연변에서 동방불패가 낳았다는 엄청 큰 투견을 본 적이 있냐?"

"봤지. 태산이 보다 조금 작았지만 엄청난 놈이었지. 내가 그 개를 본 후에 동방불패에게 올인을 했으니까."

"바로 그거야. 그 개가 몇 달 전에 죽었다더라. 그래서 동방불패가 있으면 혹시 또 그런 개를 낳을까 해서 찾는 것 같더라."

"낳고도 남지. 그거야 태산이를 보거나 우람이를 봐도 알쪼 아니냐? 그런데 나를 찾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 모르냐?"

"그 게 말이다. 사실은 놈들을 떠 보려고 동방불패를 사온 사람은 나라고 했다. 그랬더니 삼억을 줄 테니 동방불패를 자기들에게 팔라고 하더군."

"삼억? 삼억이면 내가 동방불패에게 투자한 돈보다는 많으니 좋긴 한데, 그래서 판다고 했냐?"

"팔고말고 보다 내가 오늘 그곳에 간 것은 태산이를 서 회장 네 투견장에서 데뷔를 시키려고 흥정을 하러 갔던 거야. 시시한 투견장에서 피 터지게 싸워 봐야 얼마나 벌겠냐? 그래서 아예 판돈이 넘쳐나는 그곳에서 데뷔를 하는 조건으로 오억쯤 요구하려고 했던 거란 말이다. 그런 다음 조중구라고 내가 아는 회원을 동원해 베팅을 할 속셈이었지."

얘기를 시작한 고달수가 이제껏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태산이를 세상에 공개해서 첫 번째 투견 시합을 벌였을 때 예상한 수익은 약 십억 원이다. 데뷔 전 몸값으로 오억을 받고 조중구를 내세워 베팅하면 또 오억은 벌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지금 조선족이 제시한 금액이 이십 오억에 동방불패를 얹어 삼십억이다. 하지만 자신이 요구한 금액은 사십억 원이니 사십억을 받기만 한다면 태산이를 데리고 전국을 누비는 수고를 감안하면 단숨에 횡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어떠냐? 길게 더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들 이해가 가잖냐?"

고달수는 눈을 껌뻑이며 생각에 잠긴 박철구와 눈을 빛내며 머릿속으로 계산에 바뿐 양구택을 바라보았다. 고달수는 두 사람이 더 많은 돈에 관심이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다시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첫 사업에서 단칼에 삼사십억을 벌어들이기란 하늘의 별 따기 아니냐? 게다가 사업이래야 사실 개 한 마리를 믿고 우리 모두가 달려든 건데 솔직하게 말해서 태산이가 계속 이기기만 해도 돈 구경 못한다는 건 너희들도 알게다. 그렇다고 태산이에게 약을 먹여 승패를 조작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러니 이참에 사십 억쯤 챙겨서 물러나는 게 현명한 처사일지도 몰라. 태산이를 보여주기도 전에 벌써 연변에서 조직이 달려들고 서 회장의 아들놈까지 끼어드는 걸 보라고. 아차 하면 놈들이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돈 한 푼 구경 못하고 뺏길 수도 있는 문제란 말이다."

"미쳤냐? 태산일 왜 뺏겨?"

박철구가 굴리던 눈알을 고달수에게 겨냥하고 뚜벅 물었다.

", 이 자식, 머리 되게 안 돌아가네. 생각해 봐라 연변 조선족이 이미 움직인 데다 서 회장의 아들이 누구냐? 그놈도 알아주는 국내 조직의 보스 아니냐? 그 둘이 태산이나 동방불패의 쟁탈전을 치르면 우리는 무사할 것 같으냐? 혹여 태산일 지킨다 해도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절대 불리한 조건은 투견 판이 없어진다는 거란 말이다. 아무리 천하무적의 태산이가 있다 해도 투견 판이 있어야 돈을 벌 것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놈들의 협박과 완력에 태산이를 넘기지 않을 재간이 있냐?"

고달수의 말에 박철구는 단번에 눈알을 아래로 깔았다. 그러나 정작 태산이의 주인인 양구택은 좀 더 현실을 파악하려는 듯 잠시 고달수의 표정을 살폈다.

"태산이와 동방불패를 네 개라 했고 네 농장에 있다고 했냐?"

"내 개라 했으니 내 농장에 있는 걸로 알겠지."

"좋아, 네 말대로 사십억을 받을 수 있다면 솔직히 말해 대박은 대박이다. 우리가 수백억 원의 큰 꿈에 취해있지만 그것은 예상할 수 없는 험난한 길을 간 다음의 얘기니 변수도 많겠지. 하지만 내 욕심대로라면 오십억은 불러보고 싶구나. 태산이가 사십억 동방불패가 십억의 가치는 있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그건 네 욕심일 뿐, 사십억이면 현재 인천의 아파트 몇 채 값이냐? 그것만 해도 우리들은 이미 부자 아니냐?"

고달수의 말에 양구택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번쩍 들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좋다, 달수 네 말대로 태산이와 동방불패를 조선족에게 넘기자."

"결정이 났으면 얼른 넘기는 게 우리에게 이로울 거다. 서 회장 아들 놈이 알기 전에 말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놈은 태산이를 아예 공짜로 쳐드실려는 모양이 아니더냐?"

"맞아, 태산이 얘기가 나오자 그 놈의 눈알이 쏟아져 나오던걸."

박철구는 새삼스럽게 서유석의 번들거리는 눈빛이 기억난 양 몸을 떨었다.

"할 말 끝났으면 너희들은 이만 집에 들 가 봐. 나도 혼자서 생각 좀 해 봐야겠다."

"태산일 넘기기로 했으면 그걸로 끝이지 무슨 생각을 더 해 보겠다는 거냐?"

양구택의 말에 즉시 고달수가 말끝을 잡았다. 일껏 팔기로 작정한 일을 조금 더 받을 욕심을 부리려는 게 아닌가 해서였다.

"걱정 말어. 내가 한 말은 지킨다는 걸 모르냐? 다만, 공들이고 애써 키운 정이 있고 이제 막 후배인 배철권이나 그의 아들이 태산이에게 정이 흠뻑 들었을 걸 생각해서니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사정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 대신 우리가 돈을 일부분 떼서 배철권에게 장사를 하게 해 주면 될 것 아니냐?"

"그건 나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자고. 그 친구도 어찌보면 우리와 같이 태산이에게 올인한 처지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고달수는 양구택의 말에 대답하는 한 편 얼른 박철구의 눈치를 살폈다. 박철구가 반대한다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내 눈치 볼 것 없다. 배철권이 이곳으로 아예 이사를 왔을 때엔 태산이 하나 보고 온 것 아니냐? 그런 그를 모른 척 할 수야 없지."

"좋아. 역시 박철구답구나."

"과연 철구다."

고달수와 양구택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칭찬에 어색해진 박철구가 괜스레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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