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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86

파투(破鬪) 10. 사느냐 죽느냐(1) 또 다른 계산

"이봐 태종이 어떻게 됐어?" "오덕일 보냈으니 곧 올겁니다." "아까 내가 말한 대로만 해. 쓸데없는 인정 베풀지 말고." "인정이라뇨? 어림없습니다. 형님이 눈만 감아주신다면 아예 묻어버리고 싶은 걸요." "안 돼. 보내야 돼. 그리고 이제껏 그놈들을 이용해 시간을 끌었는데 어쩌면 고마운 놈들 아니냐?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서 우리가 비행기 좌석에 앉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하면 안 된단 말이야. 알어?" "물론이지요. 형님, 그래서 지금껏 참은 것 아닙니까?" 좁은 찜질방의 온도계는 90도에 육박해 있었다. 땀으로 온 몸이 번들거리는 천태종은 호흡마져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기동은 포식한 살무사가 햇볕을 즐기듯 오히려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땀을 빼니 비로소 피로가 조금 가시는 듯했던 것이다. 석..

오늘의 소설 2024.03.15

파투(破鬪) 9. 끝의 시작(3) 컨테이너의 침입자

11월의 산골 해는 생각 밖으로 짧아서 저녁 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았다. 밤을 기다린 소쩍새가 사방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소연 하는 듯한 그 울음소리는 마치 비극의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뱉는 피맺힌 절규 같았다. 그만큼 그 소리는 처량맞고 음울한 것이었다. 그리고 놈은 소리없는 날개짓으로 철저히 모습을 감추며 날아다녔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캄캄한 밤하늘에 무언가가 휙 얼굴을 스치 듯 지나가자 진우는 깜짝 놀랐다. 말이 휙이지 사실 휙 소리도 없는 검은 그림자 뭉치였다. 재빨리 랜턴을 허공에 비쳤건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 나뿐 새, 소쩍새인 것이다. 덕배가 얼추 도착 할 시간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좀 더 서둘러 걸어야 했다. 그러나 산 아래 도로에 자동..

오늘의 소설 2024.03.14

파투(破鬪) 9. 끝의 시작(2) 꿩 사냥

"그래 아직 쓸 만 하더냐?" 컨테이너를 살피러 갔다 돌아오는 진우에게 덕배 아버지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덕배 아버지는 마당에 나와 지게를 고치고 있었다. "예, 청소만 하면 되겠던데요?" "그래? 내 그걸 처음 봤을 때는 뒤집혀 있었니라. 놈들이 무엇을 찾는지 바닥도 다 파헤쳤더구나. 그걸 사람들을 사서 다시 제자리에 앉혔지. 꼬박 열 품이 들었느니라." "찾다니요? 뭘 찾으려고 땅까지 팟을까요?" "난들 자세히 알겠느냐마는 죽은 사람이 건달패였다니까 아마 돈되는 물건을 숨겼던 게지. 그런 패거리야 돈에 죽고 사는 놈들이니 그런 행패를 부렸을 게고. 암." "그래서 찾긴 찾았답니까?" "허허, 거기까진 나도 모르지. 왜? 못 찾았으면 네가 보물찾기라도 할 테냐?" "웬 걸이요. ..

오늘의 소설 2024.03.14

파투(破鬪) 9. 끝의 시작(1) 50억의 행방

"아니 형님, 온지 한 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 가시게요?" 천태종이 출입구로 향하는 김기동의 뒤를 따르며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이제 막 슬롯머신에 몰입되려는 참인데 옆의 김기동이 먼저 일어나 마지못해 따라나온 것이다. "한두 번쯤 당겨 봤으면 됐지 남의 장사에 내돈 보태 줄 일 있냐?" "부엉이는 두고 갑니까?" "전국구 물주들을 만난다니까 그냥 둬. 우리도 곧 시작해야 할 것 아니냐." "부엉이가 데려온 기술자 말입니다. 그놈 솜씨가 어떤지 알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놈 솜씨 하나에 우리 운명이 걸린 꼴 아닙니까?" "부엉이 솜씨도 쓸 만한 편인데 부엉이가 선생님으로 모시는 걸로 봐서 믿어도 되겠지. 그리고 솜씨에 따라 배당금이 달라지는데 제 놈도 쓸 만 한 놈으로 골라왔겠지. 넌 신경끄고 일이 시작..

오늘의 소설 2024.03.13

파투(破鬪) 8. 은광의 침입자(3) 두개의 은광

은광 안으로 발을 들여 보지도 못한 진우가 집으로 들어서자 마침 덕배 아버지가 마루로 나서고 있었다. "아니? 그새 갔다왔단 말이냐? 축지술을 익혔더냐?" "아, 예. 그게...그만..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다니? 굴을 못 찾겠더냐?" "아니요. 쉽게 찾았습니다. 헌데..." "헌데, 누가 굴을 들락거리더란 말이지?" "아니? 아버님께서 그걸 어찌 아시는지요?" "허허,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다. 사오년 전에 가 본 것이 마지막이니 그럴만도 하지. 자고로 사용하지 않는 동굴에 박쥐 살게 마련이고 캐지 않는 금광에 잠채꾼 붙기 마련이니라." "그래도 입구에 철문이 있는데 그걸 따고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빈집에 도둑들기 예사지. 허나 도둑은 쫓아야지 잡자고 들면 안 되느니라." "쫓는 것보다..

오늘의 소설 2024.03.13

파투(破鬪) 8. 은광의 침입자(2) 퍼즐 맞추기

며칠 전 오정철과 안순태의 동정을 살피러 왔다가 그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알았다. 굴속이라 해도 고산 지대라 밤이면 몹시 추울 터였다. 헌데 석호를 보고도 두 사람 모두 춥다느니 이불을 갖고 오라는 등의 말이 일체 없었다. 특히 걸핏하면 성난 멧돼지 처럼 날뛰던 안순태는 더욱 말이 없었다. 안순태가 말이 없으니 오히려 석호가 불안했다. 그래서 생각타 못해 김기동 몰래 오늘 담요 두 장과 라면을 끓일 도구들을 갖다주었다. 그러나 랜턴 불빛에 비친 두 사람의 얼굴은 냉랭한 기운마져 서려 있었다. "김기동이 갖다주라더냐?" 오정철이 갖다준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과장님 몰래 갖고 온 겁니다." "그래? 석호랬지? 어쨋던 고맙다. 하나만 묻자. 너, 신사장 소식을 들은 게 ..

오늘의 소설 2024.03.13

파투(破鬪) 8. 은광의 침입자(1) 수상한 그림자

구본웅이 납치되었다는 덕배의 전화를 받은 며칠 후였다. 진우는 랜턴과 간단한 연장이 든 등산용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걷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은광으로 가는 길이었다. 구본웅이 납치되었다면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화가 닥칠지 몰랐다. 그럴 때를 위해 만약을 대비해야 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덕배 부모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진우는 벌통에서 필요한 몇 가지를 챙겼다. 가는 길은 덕배 아버지로 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지도와 나침반이 있으니 걱정 없었다. 게다가 십여 km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 아닌가? 시월 중순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산 지대 인지라 단풍이 물들었던 나무에선 벌써 낙옆이 떨어지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일자 낙엽송의 작고 노란 ..

오늘의 소설 2024.03.12

파투(破鬪) 7. 납치(3) 행방불명

오정철과 안순태를 광산 갱도에 감금한 다음날부터 김기동은 바쁘게 조사에 착수했다. . 먼저 이진우라는 인물을 조사를 해보니 안순태의 말대로 곽덕배의 친구였다. 곽덕배는 신사장이 하려는 사업의 최대 경쟁자로 태백과 사북 일대를 쥐고 있는 인물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곽덕배의 친구가 열차에서 없어진 탄약 사건에 연루된 것은 몹시 수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가 태백 출신인 것을 안 김기동이 내친김에 이진우의 가족 관계를 조사해보니 부모 형제는 없고 철암동에 숙부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이진우가 숙부의 집에도 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곽덕배의 동태를 더욱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며칠을 살펴도 이진우와 곽덕배가 함께 있다는 낌새는 없었다. 할 수없이 김기동은 서울의 전 동료인 최경감의 도움을 받아 알아낸..

오늘의 소설 2024.03.12

파투(破鬪) 7. 납치(2) 심문

전치 12주의 골절상을 당한 오정철과 안순태는 사고 후 열흘이나 입원해 있었건만 사장도 천태종도 연락이 없자 퇴원 해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삼주 쯤 지나자 깁스한 팔다리에 전혀 통증도 없고 순태는 목발을 집고 걷는 것에 큰 불편이 없었다. 그 사이 숙소의 생활비는 배일서가 대 주었다.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아침에 배일서가 숙소로 찾아왔다. "네가 어떻게 아직 거기를 관리 하냐? 천태종네 애들이 아직도 안 내려왔냐?" 오정철의 물음에 배일서가 머리를 긁으며 머뭇거렸다. "자식 묻는데 왜 대답이 없어?" 옆에 있던 안순태가 눈알을 부라리며 배일서의 뒷통수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며칠 전에 내려왔습니다." "뭐? 며칠 전에 내려와 있다고? 그렇다면 너희들은 어쩔거래?" 오정철이 급히 물었다..

오늘의 소설 2024.03.12

파투(破鬪) 7. 납치(1) 헛다리

이진우가 덕배 아버지의 집에 머문 지 어느덧 한달이 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여름의 막바지였으나 한달 쯤 지나자 완연한 가을이였다. 가득이나 산꼭대기에 가까운 곳에 집이 있어 가을은 더 일찍 온 듯했다. 시월로 들어서자 옻나무나 화살나무들은 이미 새빨갛게 단풍으로 물이 들었다. 진우는 멀고 가까운 산과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골짜기 전체가 불바다였다.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는 네로의 눈에도 이렇게 보였을까? 진우는 네로역의 피터 유스티노브의 우스꽝스런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순간 자신은 웃을만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애써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허공엔 깔깔대며 비웃는 수미의 얼굴에 눈물이 글썽한 순복이 얼굴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진우야아." 집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

오늘의 소설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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