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6. 타락자(4) 밑바닥 인생

fiction-google 2024. 3. 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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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을 앞두고 있는 조중구 앞에 도금동이 나타났다.

"웬일이냐?"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어볼까 하고....."

"그럴까? 그러고 보니 너나 동우와 어울린 지가 꽤나 된 것 같구나."

"그게 다 네가 지나치게 바쁘게 살아서 그런 거야."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구실의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 외제차를 팔았다며? 요즘 집안 형편이 안 좋으냐?"

자신의 차로 향하던 도금동이 문득 조중구에게 물었다. 조중구는 굳이 변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집안 형편이 아니라 요즘 나 개인의 베팅감이 사라져서 그렇게 된 거야."

"베팅감? 이제까지 네 특유의 이론인 확률이 아니고 감으로 승부를 걸었었단 말이야?"

조중구는 자신을 바라보는 도금동의 입이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그 감으로 제법 벌었었지. 한데 지금은 그 감이란 것에 스스로 빠져서 어느 것이 진짜 감인지를 모르겠더라고....."

"이제까지 네가 승부를 조작한 적은 없고?"

도금동의 갑작스러운 말에 조중구는 뜨끔한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누가 그따위 말을 하데? 내가 무슨 재간으로 승부까지 조작해? 서 회장 정도라면 모를까...."

"서 회장이 승부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쯤은 문외한인 나도 어느정도 들어 알고 있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내 생각엔 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승부를 조작할 약물의 배합쯤은 손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냐? 틀렸냐?"

조중구는 새삼 도금동의 말에 놀라서 미쳐 대답을 하지 못 했다. 그러자 도금동이 한 마디를 보탰다.

"근래에 네가 야간 당직을 연속으로 자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지 말고 정 돈이 필요하면 내게 말을 해. 이젠 나도 지분을 나눠가져서 현금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 누가 돈이 필요하댔냐? 넌 내게 참견할 생각 말고 회사 일에나 신경을 써."

"참견? 내가 하는 말이 네겐 참견으로 보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놈의 돈 타령에 네 인생이 망가지는 걸 보기 싫어서야."

"아무튼 고맙긴 한데 참견은 말아줘."

"알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도금동은 자신의 차에 올라타고 조중구는 회사에서 지급해 준 그랜저로 그 뒤를 따라갔다.

이틀 후인 일요일이었다. 조중구는 수원에서 멀지 않은 초등학교 폐교에서 벌어지는 투견 대회에 나타났다. 조중구가 도착하자 어김없이 하수인 격인 허름뱅이 문이수가 반겼다. 그는 서른 정도의 청년이었다.

"아이고 왜 이제야 오세요? 조금 전에 큰 판이 있었는데요? 도사 대 아끼타견 두 마리가 시합을 했는데 배당액이 엄청났었지요."

"그래? 그렇다면 도사가 이겼겠군."

"? 그걸 어찌 아세요? 사람들은 덩치가 큰 아키타가 두 마리나 되니 도사를 가볍게 물리칠 줄 알았지요. 한데 시합이 시작되고 채 오 분이 못 되어 도사가 목을 물어버렸어요. 그러니 그걸로 끝이지 뭡니까?"

'이거 여기서도 냄새가 나는 짓들을 하는 모양이군. , 나도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는 걸.'

조중구는 자신이 해 오던 장난질이 혹여 그런 놈들에게 들켰을까 몸을 떨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바엔 어쨌든 돈은 따고 봐야 했다.

"다음 시합에 사람들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개가 있을까?"

"요즘 투견 판에 나오는 개들은 거의 최고급 도사들이라 어느 개가 유리하다고 보긴 어려워요. 다만 그 개에게 따라다니는 전적이 제일 믿을 만 하지요. 물론 보기에 따라 개의 크기도 믿음이 가게 하지만요."

문이수는 되도록 조중구가 원하는 대답이 되었기를 바라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건 그래. 나부터도 겉을 보고 베팅을 하니까 말이야."

"저기 링에서 멀리 떨어진 도사가 보이시죠? 저 개가 경기도 챔피언을 두 번이나 거머쥔 갭니다. 아직 젊은 데다 덩치도 좋잖아요? 다음에 저 개가 나온다면 나부터라도 저 개에게 베팅을 하겠어요. 보나 마나 이길 거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 개에게 베팅을 하면 배당률이 형편없을 것 아니야?"

"그래도 고액을 베팅하면 남보다는 더 먹을 수 있거든요. 안전 빵이고요."

"그래? 그럼 가까이 가서 저 개를 좀 더 살펴두자고."

조중구는 문이수를 데리고 느릿한 걸음으로 말뚝에 묶인 많은 개들 사이를 지나 그 개 앞에 섰다.

", 네 말대로 멋지게 생긴 놈이군. 이놈에게 베팅을 하면 틀림없어 보이는 걸?"

"그렇다니까요. 현찰만 많다면 이런 판엔 그저 돈 싸움이거든요."

"네 말대로 돈만 많이 걸면 한몫 잡긴 잡겠는데 말이야..... 그만 가지."

조중구는 문이수의 팔을 잡아끌며 한편 다른 손은 호주머니의 구멍 사이로 근육 이완제가 든 고기 알갱이를 슬쩍 떨어뜨리며 돌아섰다. 조중구는 개들이 묶인 말뚝 사이를 빠져 나가며 슬쩍 뒤돌아 보았다. 개가 바닥에서 나는 냄새를 따라 주둥이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문이수의 말대로 다음 경기는 조금 전에 본 경기도 챔피언이었다는 개가 링 안으로 들어왔다. 사회자의 격정적이고도 조금은 과장된 전적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상대 개를 볼 필요도 없다는 듯 그 개에게 열광했다. 뒤를 이어 상대 개가 링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경기도 챔피언이라는 오함마라는 개에 비해 너무나 빈약해 보이는 몰골 때문이었다.

"아무리 추첨으로 뽑혔다 해도 어느 정도 레벨이 맞아야지 저걸로 어쩌겠다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야. 이런 시합은 영 재미가 없는 법이거든.…"

"지금이라도 다른 개로 바꿔라."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사회자가 얼른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 경기도 챔피언을 한 오함마 호에 비해 여포 호가 형편없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여포도 한때는 충청도 바닥을 휩쓴 싸움꾼으로 오늘의 시합에 전혀 밀리지 않을 걸로 봅니다. 부정을 없애기 위해 추첨으로 뽑은 개를 이제 와서 바꾼다면 그야말로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많습니다. 경기는 속개되겠습니다."

사회자의 꿋꿋한 한마디에 사람들은 입을 다무는 대신 오함마에게 베팅을 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배당액이 적어질까 베팅액을 올린 탓에 많은 상금이 걸린 경기가 된 것이다.

"오함마에게 얼마나 베팅하시렵니까?"

문이수가 조중구의 눈치를 살피며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조중구가 돈을 따야 자신에게도 몇 푼의 돈이 쥐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함마? 난 오함마에게 베팅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 무슨 말씀인지?"

"오함마에게 베팅 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이럴 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상대 개에게 베팅을 해 보는 수밖에 없단 말이야."

", 그렇다고 굳이 지는 쪽에 베팅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배당액이 적어도 잃는 것보담이야 훨씬 났지요."

"시끄러워. 어쨌든 난 여포 쪽에 삼백만 원을 걸 거니까."

시시한 촌 동네 개싸움에, 그것도 첫판부터 삼백만 원을 베팅한다는 조중구의 말에 문이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 같으면 열 번쯤 나누어 베팅을 할 것이고 안전하고 적은 배당액에 만족할 것이었다. 조중구는 선뜻 돈을 꺼내 여포 쪽에 베팅을 했다. 베팅이 끝나자 곧바로 시합에 들어갔다.

양쪽 견주에게서 풀려난 두 마리의 도사가 맞붙었다. 역시 경기도 챔피언 출신다운 오함마의 공격에 초반부터 여포가 밀리기 시작했다. 오함마는 걸쭉한 침을 흩뿌리며 측면을 치고 들어가서 여포를 쓰러트리는 작전을 썼고 여포는 여포대로 오함마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밀리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의 차이가 나기 시작하더니 오함마의 세찬 공격에 여포가 드디어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오함마는 지체 없이 여포의 목을 노렸다. 그런데 오함마가 막 여포의 목에 이빨을 박으려는 순간 무엇 때문인지 입을 반쯤 벌린 채 주춤거리고 있었다. 밑에 깔렸던 여포가 그 순간을 노칠 리가 없었다. 여포는 누운 자세 그대로 코앞에 다가온 오함마의 목줄기를 물고 늘어졌다.

'옳커니, 타이밍이 죽이는군.'

조중구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스멀스멀 피워 올랐다. 이제 그 자세 그대로 삼 분만 버티면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일 초 일 초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사람들은 목청이 터져라 오함마를 응원했지만 만사가 다 그렇듯 오함마도 이젠 투견 판을 떠날 때가 된 모양이었다. 여포의 완벽한 승리였다.

"아이고, 진짜로 이변이 일어났네요. 형님이 이겼습니다. , 배당금은 얼마나 될까?"

문이수는 넋이 나간 듯 배당액을 중얼거렸다. 잠시 후 계산된 배당액은 무려 열두 배나 되었다. 삼백만 원이 삼천육백만 원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중구는 그 금액으로 만족했다. 다음 시합에 큰 미련을 갖지 않기로 하고 문이수를 데리고 투견 판을 벗어났다.

"운이 왔을 때 몇 번 더 해 보시지요. 아무 때나 돈이 막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잖아요?"

문이수가 아쉬운 듯 투견장을 바라보았다.

"기회가 지금뿐이겠냐? 가서 점심이라도 먹고 헤어지자. 어디가 좋으냐?"

"해장국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집이 있거든요. 점심때에도 손님이 많아요."

"여기서 멀어?"

"아니요. 가까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친구에게 다음 경기 장소를 알아 올게요."

조중구는 혼자서 운전석에 앉아 문이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수가 나타났을 때였다. 문이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뒷좌석으로 세 명의 건달들이 올라타더니 문이수가 히죽 웃으며 조수석에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 뭐냐? 네 친구들이냐?"

조중구는 순간적으로 공포감에 사로잡혔지만 문이수를 향해 애써 침착하게 말을 했다. 그런데 문이수가 뭐라고 하기 전에 뒷좌석에서 이죽대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친구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디로 봐서 우리가 저놈의 친구로 뵈냐? 나이로 봐도 우리는 네놈 형뻘이 되고도 남는다."

조중구는 얼른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세 놈 가운데 누가 한 소린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좋아요, 형씨들이 누군진 몰라도 이러는 이유나 알고 싶소. 조금 전에 딴 내 돈을 뺏겠다는 거라면 두말없이 주겠소. 대신 나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니까."

"어쭈? 이 자식이 처음부터 세게 나오는데? 일단 시동을 걸어. 그래서 저 녀석이 가자는 데로 차를 몰란 말이야. 싫으면 저놈에게 운전대를 넘기던지."

백미러를 보니 뒷좌석의 가운데 앉은 자가 턱으로 문이수를 가리키며 말을 하고 있었다.

"형님,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내 말을 들어야겠소. 사실 나는 저 형님들의 지시로 형님에게 접근했거든요."

"? 그럼 처음부터 내게 친절을 베푼 것이 모두 작전이었단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일단 차를 출발시키란 말이요."

문이수가 뒷좌석을 힐긋 바라본 후 조중구에게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조중구는 두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저 앞에 보이는 강 옆길로 쭉 가세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차가 출발한 후 십여 분도 되기 전에 문이수가 턱으로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조중구는 시키는 데로 강을 따라 차를 몰았다. 잠시 후 강 옆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컨테이너가 나타났다. 게다가 그 옆에는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스톱, 차를 세워요."

문이수가 느릿한 말씨로 차를 세우게 한 후 자신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승용차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뒷좌석의 유리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웬 덩치가 큰 사내가 나오더니 조중구의 차로 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밖을 살피던 조중구의 뒷좌석에 탔던 사내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추운데 떨지들 말고 너희들은 저기로 들어가 있어. 이제부턴 내가 저놈을 상대할 테니까 말이야."

문이수를 비롯한 사내들이 컨테이너로 들어가는 사이 덩치가 큰 사내는 선 듯 조중구의 옆자리에 올라앉았다. 조중구는 차를 출발시키려고 변속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더 갈 것 없어. 여기서 마무리를 할 테니까."

아까부터 사태를 주시하던 조중구는 사내들이 어떤 폭력도 쓰지 않자 의아한 가운데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수원의 심사장 형님을 모시는 박용칠이란 사람이야. 심사장 형님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니까 싫어도 들어야 할 거야. 그렇지 않다면 오늘 내로 너는 우리들 손에 죽는 수밖에 없거든."

스스로 박용칠이라고 말한 사내가 거칠게 나오지 않자 조중구는 일단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런 분들이 내게서 무얼 바랍니까? 나는 단순한 회사원에 불과하고 그저 투견이 좋아서.... 아니 내기 자체에 흥미가 있는 사람일 뿐이란 말입니다."

"시끄러워. 자식이 점잖게 나오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임마, 그동안 우리가 네놈의 정체도 캐 보지 않고 이러는 줄 알아? 우리는 네놈이 과천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주목을 했던 놈이란 말이야. 왜냐고? 네놈은 외모부터 어딘가 인텔리 냄새가 났었거든."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외모로 투견 판을 드나들게 하는 규칙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한눈에 네놈은 시골 장바닥의 투견이나 구경하러 다닐 외모가 아니었단 말이야. 우린 처음에 네놈이 투견 판을 수사하러 온 검사 정도로 봤었지. 한데 알고 봤더니 굴지의 제약 회사에 다니시더군. 더구나 연구소의 박사님으로 말이야."

"내 뒤를 캤다는 말이군요. 그래, 더 알아낸 것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내가 무슨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나를 납치한 이유가 뭡니까? 혹시 오늘 딴 돈이 목적이라면 당장에라도 드리지요."

", 어리석은 척하기는.... , 임마 돈이었으면 넌 주먹 한 방이면 충분한 놈이야."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이유를 알아야 당신들의 요구를 들어 줄 것 아닙니까?"

"다른 것 없어. 이제까지 네놈이 장난하던 그 약을 조금 나누어주면 그걸로 다 덮어줄 거니까."

"뭐요? ?"

약이라는 박용칠의 한마디에 깜짝 놀란 조중구가 눈알이 튀어나오는 듯 소리쳤다.

"놀라는 척할 것 없어. 우리가 그동안 네놈을 감시하며 네놈이 쓰는 수법을 다 알아냈으니까. 네놈의 호주머니에 구멍이 뚫려있다는데 베팅을 할 자신도 있단 말이다. 어때? 지금이라도 호주머니를 뒤져볼까?"

", 그럴 리가?"

"사실 조금 전의 시합도 문이수를 시켜 우리가 유도한 게임이었단 말이지. 우리는 경기도 챔피언이었던 오함마를 네놈에게 보여주었지.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거는 놈이라고 말이야. 한데.... 미안하지만 우리는 네놈이 오함마에게 베팅을 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다. 이길 놈을 지게 만드는 게 네놈 전문인 걸 아니까."

"그건 당신들의 착각이거나 오햅니다. 나는 그저 그날의 운에 따라...."

"시끄러워. 이런 개자식을 봤나? 가능한 한 인격적으로 대우를 해 주니까 사람을 갖고 놀려고 덤비는군. 내려. 차에서 내리라고 개새끼야."

박용칠이 먼저 차에서 내리더니 운전석의 문을 왈칵 열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조중구의 멱살을 잡아 차에서 끌어내려 번개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조중구는 언제 자신이 맞았는지도 모르게 길바닥에 쓰러졌다. 조중구는 코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더듬으니 손에는 붉은 피가 잔뜩 묻어 나왔다.

"꼭 맞아야 말이 통하는 놈들이 네놈 같은 새끼들이야. 주먹 대신 주둥이로 살아온 놈들 말이야. 개새끼, 몇 대만 더 맞아라."

"형님, 저희들이 손을 볼까요?"

밖에서 나는 소리에 컨테이너 안에서 기다리던 사내들이 문 사이로 눈알을 굴리며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일 없어. 이런 새끼는 서너 대 정도면 골병이 들 테니까."

쓰러진 조중구가 일어서려고 버둥대고 있었다.

"말로 합시다. 형씨의 말을 들을 테니 말로 합시다."

"좋다. 네 말대로 더 때리진 않겠다. 얼른 차로 기어 들어가."

간신히 운전석에 올라탄 조중구가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에는 코피로 범벅이 된 멍청한 녀석이 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자존심으로선 비참한 순간이었다.

"아무리 시골의 조직이라지만 우리도 알 것은 다 알고 있고 알아내야 할 건 다 알아낼 실력도 있단 말이다. 너는 그 동안 서울의 서 회장이 하는 고급 투견 클럽 회원이었던 것도 알고 있어. 거기서도 개 공급 업자와 짜고 장난질을 했더군. 그러다 서 회장의 수법에 오히려 네놈이 당했지?"

"아니오. 그건 내가 약을 쓴게 아니란 말이오. 서 회장의 장난을 역 이용했을 뿐, 나는 결백합니다."

"누가 뭐래냐? 거기서 다 털리니까 이런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거잖아? 이번엔 네놈이 직접 만든 약으로 말이야."

"그까짓 약은 약국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약인데 내가 그걸 왜 만듭니까? 그러니 형씨도 내게 없는 약을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또 맞아볼래? 우리가 그런 약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줄 알아? 네놈이 만든 약이야말로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 하게 정교하다는 걸 아니까 하는 소리지. 약방에서 파는 약은 멀쩡한 놈도 죽이니 이제는 애들도 속지 않는 단 말씀이야. 잘 싸우던 놈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는데 누가 그런 장난에 속아 넘어가겠냐고?"

"."

조중구는 짧은 신음을 토했다. 이제 보니 이들은 그동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히 꿰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버틸 필요도 여력도 없다는 계산이 섰다. 조중구는 박용칠과의 타협을 해 보기로 했다.

"좋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지요. 여기서 몇 번 약으로 재미를 봤지요. 하지만 시골이라 판이 크지를 못해 큰 재미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미 아신다니 말씀을 드리지요. 여기서 자금을 모으면 서 회장의 큰 판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제까지와는 달리 내가 만든 확실한 약으로 말이지요."

"좋아,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그런데 말씀이야 이제부터는 우리도 그 사업에 동참을 해야겠거든. 서 회장의 아들 서유석이 검단에 상설 투견장을 만들어 놓았단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 박사, 당신은 말이야 우리와 손을 잡고 큰 돈을 벌어들이란 말이야. 우리가 당신의 신변은 물론 모든 안전을 보장할 테니까. 단 이익은 반반이야."

조중구의 말에 박용칠의 목소리가 약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어서 조중구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 바닥에선 누구와 손을 잡던 손을 잡지 않으면 죽음이란 말이야. 당신이 그동안 서 회장의 손에 죽지 않은 건 당신의 몸값이 그만했었다는 얘기지. 당신의 몸값을 알아본 건 우리들도 마찬가지거든. 우리 심사장 형님을 믿어 보란 말이야. 예상 밖의 힘을 가지신 분이니까."

"좋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당신들과 손을 잡지요. 그럼 이곳에서 우선 적은 돈이라도 긁어모을 테니 당분간은 편의를 봐 주시지요."

"서유석의 투견 클럽으로 복귀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거라면 우리 심사장 형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야. 그깟 돈 몇 억이 돈인가?"

"그렇다면 더욱 좋지요. 나도 어서 본전을 만회해야겠거든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약의 성능을 실험할 필요도 있지요."   

"그럼, 우리가 연락할 때까지 근신하고 있으라고. 물론 성능이 더 좋을 약은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것이고."

다시 한 번 조중구의 어깨를 툭 친 후에 차에서 내린 박용칠은 컨테이너 옆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다가갔다. 그러자 밖의 동정을 살피던 건달들이 쏟아져 나와 박용칠이 탈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강태기, 너는 문이수를 데리고 저 친구의 차로 가라. 가다가 식사 대접도 하고 말이야."

". 형님."

박용칠은 개중에 한 녀석을 지목해 문이수와 함께 조중구의 차를 타게 했다. 박용칠은 자신의 꼬붕들과 함께 되돌아가고 있었다. 조중구는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본 후 차에서 내려 강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물을 적신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닦은 후 옷에 묻은 피를 대강 지웠다.

"그만하면 멀끔하구만 그러셔. 우리도 어서 출발하자고."

강 뚝에서 강태기란 자가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중구는 다시 한 번 손수건을 빨아 얼굴을 닦은 후 자신의 차로 돌아왔다.

"문이수, 정말 네가 계획적으로 접근을 했었냐?"

조중구는 새삼 문이수의 허름한 차림새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이수란 인간이 괘씸했던 것이다.

"거 무슨 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단지 이 형님들 말씀대로 투견 판에 낯선 형씨를 안내했을 뿐이란 말입니다. 그랬더니 형씨가 고맙다고 용돈을 쥐여준 것 아닙니까?"

"어찌 됐든 계획적이잖아? 나는 널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말이야."

"앞으로도 형씨를 위해 투견 판의 안내나 정보는 제가 맡기로 되어 있으니 큰 불만은 없기 바랍니다. 강태기 형님, 아까부터 가려던 해장국집부터 가시지요."

"그렇게 해. 그 집 해장국이라면 새벽이든 낮이든 맛은 있으니까."

조중구는 문이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난 뒤여서 인지 몹시 배가 고프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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