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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86

파투(破鬪) 2. 수상한 총알(2) 고향

진우가 떠난 후에 용수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오정철은 젓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실눈을 하고 있었다. 왼쪽에 있는 순태는 턱을 주먹으로 고이고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유시종이 용수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눈을 찡긋했다. 결론이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오정철의 젓가락 소리가 멈추었다. 순태가 고개를 들어 좌우를 돌아봤다. 용수와 유시종은 젓가락에 시선이 쏠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별 방법이 없다. 아까 순태가 말한대로 서울 가서 똑같이 하나를 만들어오면 그보다 좋은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없어. 그러니 롯드 남바고 지랄이고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어. 가까운 도계에 총포사가 있지만 소문이 나면 안 되니까 순태 너는 지금 당장 영월로 가. 그곳 총포상에..

오늘의 소설 2024.03.08

파투(破鬪) 2. 수상한 총알(1) 작은 실랑이

태백역에 기차가 닿은 것은 새벽 3시가 가까워서였다. 승객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플랫폼에 내리자 고산지대 특유의 서늘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이곳의 새벽 기온은 늦가을을 미리 끌어 온 듯 했다. 역사를 빠져나오던 진우가 양 팔을 문지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 앞에는 시동을 걸어 둔 택시가 대여섯 대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의 집을 가려면 택시를 타야했다. 그러나 새벽에 들어닥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길 건너의 몇몇 식당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새벽 손님과 기사들을 겨냥한 밥집이였다. 식당을 본 순간부터 허기가 느껴졌다. 진우는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으슬으슬한 느낌이 드는 이럴 때에는 역시나 해장국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오늘의 소설 2024.03.08

파투(破鬪) 1.야간열차(5) 뒷통수

앞자리에서 남자가 일어나더니 입을 한껏 벌리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선반의 가방을 내렸다. 이어서 여기저기서 부스럭대며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가 일어나 실내를 둘러보니 십여 명이 보따리를 챙기거나 윗옷을 걸치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는지 통로를 지나는 사람도 있었다. 종착역인 태백에 가깝다고 판단한 진우가 신발을 신고 바로 앉았다. 짐이라고는 비닐봉투 하나 없으니 챙길 것도 없었다. 옷가지 하나 제대로 가져올 경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창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진우는 미리 화장실이나 다녀올까 하다가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에 그만두었다. 기차가 경적을 길게 뽑은 후 곧이어 속력을 줄였다. 한 손으로 눈썹을 덮고 밖을 내다보니 거리의 네온 불빛이 밝았다. 헌데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오늘의 소설 2024.03.07

파투(破鬪) 1.야간열차(4) 해병대

'빌어먹을, 내가 돌았었지. 그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좌우간 여우는 여우였어." 맥주가 소변으로 변하는 시간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이번엔 정말 오줌보가 터지는 것 같았다. 화장실 문을 열기도 전에 지퍼를 내리고 뛰어들었다. 시원하게 나오는 오줌줄기를 바라보다가 변기 옆의 바닥에 눈이 갔다. 탄환이 있던 자리는 물론 아무 것도 없었다.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니 마침 석항역이라는 글씨가 스쳐 지나갔다. 석항이라면 영월을 지난 역이다. 기차는 영월역에서 분명히 정차했을 것이었다. 진우가 생각에 빠져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화장실을 나와 원주역 어름에서 만난 사내가 들어간 객차 쪽을 바라보았다. 탄환을 왜 화장실까지 가지고 왔을까? 무언가 모를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도대체 열차 화장실에 떨어뜨린 ..

오늘의 소설 2024.03.07

파투(破鬪) 1.야간열차(3) 수미

"잠시 후 이 열차가 도착할 역은 원주, 원주 역입니다. 원주역에서 하차하실 승객..." 정순복의 생각에 몰두했던 진우는 갑작스런 안내방송에 의자에 묻었던 몸을 벌떡 세웠다. 하차하려는 여자승객이 선반의 비닐봉투를 내려 들고 복도로 나오고 있었다. 순복의 생각을 채 떨치지 못한 진우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날 밤만 생각하면 까닭모를 죄의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이다. 기차가 멈추자 제법 많은 승객이 내리더니 몇 사람이 올라와 복도의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반이나 빈 좌석을 두고 굳이 자신의 번호를 찾는 것이다. "형씨, 나 좀 봅시다." 등 뒤에서 누가 진우의 어깨를 탁 치며 말을 걸었다. 가볍게 놀란 진우가 돌아보니 아까 화장실문 앞에서 본 콧대 휜 그 사내였다. "아까 화장실에서 주운 거 내..

오늘의 소설 2024.03.07

파투(破鬪) 1.야간열차(2) 수상한 물건

그 후에 진우에 대한 그녀의 친절이 계속되자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그녀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야만 했다. 고향은 증평이라는 곳이고 교사인 친구와 함께 월세 아파트에서 산다고 했다. 서울에서 사범대를 나온 그녀는 교원자격증을 가지고도 공인회계사가 되려고 공부 중이었다. 어학원에서 그녀가 공식적으로 하는 일은 수강상담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원의 속성상 잡다한 다른 일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강사들이 쓸 사무용품을 사전에 준비하거나 강의실 청소상태와 매점의 커피자판기의 위생 상태까지 챙기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외벽에 걸 플랜카드의 제작 주문이나 전단지를 뿌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레 빠진 강사의 자리를 대신..

오늘의 소설 2024.03.06

파투(破鬪) 1.야간열차(1) 이진우

340.000. 거래명세표의 남은금액 칸에 표시된 숫자였다. 그것이 다였다. 서울 생활 8년의 결과가 겨우 이 숫자로 남은 것이다. '삼십사만....원.' 몇 번이나 들여다 본 어이없는 액수였다. '천삼백만 원이 넘던 게...겨우.…' 직장마저 잃었으니 이제 이진우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의 서울 생활은 흙 한줌 없는 바위틈에 붙어 기어이 싹을 틔우려는 풀씨 같은 것이었다. 인고의 시간이요 세월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 온 시간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회사 생활만 해도 그랬다. 방문 세일이란 문자 그대로 발품으로 시작해서 발품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지구를 두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그렇게 8년 동안 꾸준히 한 길을 걸은 결과가 실적으로 나타나 드디어 윗선의..

오늘의 소설 2024.03.06

투견판 6. 타락자(7) 마지막 경기

이튿날인 토요일이었다. 오후 한 시가 되자 검단의 투견장에 천막을 둘러친 트럭과 또 한대의 낡은 트럭이 멈추어 섰다. 그 뒤를 따라 커다란 검은 승용차가 따라서 엔진을 멈추었다. 짙은 선팅으로 안이 비치지 않는 그 차에선 아무도 내리지 않았고 창문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광경을 보고있던 고달수는 취재를 위해 몰려든 방송국의 스탭들 사이를 겁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문 앞에 선 검은 양복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의 청년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아가더니 잠시 후에 황백구 총무를 데리고 나왔다. "아, 고 사장. 양 사장을 데리러 왔구먼. 그래, 개는 어디에 있소?" 고달수는 말없이 저 쪽에 멈추어선 트럭을 가리켰다. "오, 정말이로군. 하지만 개가 있는지 천막은 벗겨 봐야지?" ..

오늘의 소설 2024.03.04

투견판 6. 타락자(6)

출근을 마친 조중구가 막 탈의실에서 가운으로 갈아입고 연구실의 문을 열려 할 때였다. 조중구의 눈앞에 이른 나이에 이미 머리에 서리가 앉은 윤정수 실장이 딱 막아서고 있었다. 조중구는 얼른 목례부터 했다. "안녕하십니까? 실장님." "안녕은 됐고, 조중구씨 당신 나 좀 봅시다." 실장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인 실장 실로 조중구를 데리고 들어갔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조중구씨가 자청한 야간 당직 때 쓴 에스로테트라민과 에피네프린 계열의 약품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윤정수 실장은 자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두 손을 깍지 껴 턱밑에 고이며 안경 너머로 조중구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 앞에 선 조중구는 갑작스런 실장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자신이 그동안 ..

오늘의 소설 2024.03.04

투견판 6. 타락자(5) 지킬 힘

"여기는 은행 앞이다.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돈을 받았다는 양구택의 말에 고달수는 다시 한번 액수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 그래? 잘 되었구나. 확실히 팔십억이더냐?" "그렇다니까. 확인 즉시 철구하고 네 계좌로 이십 억씩 이체했으니 걱정들 말어." "배철권에겐?" "물론했지. 우람이 값만도 이십억인데....." "잘했다. 얼른 들어와라. 일이 쉽게 풀린 기념으로 쐬주나 한 잔 하자." "이제 그 중국 사람들에게 받았다는 연락을 한 다음 농장으로 갈 테니까 그리들 알고 이제부터 개들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라. 알았냐?" "걱정도 팔자네. 주먹이라면 챔피언 출신인 배철권이 있고 게다가 내가 있잖아? 뿐이냐? 성질 급한 박철구는 맹물이냐? 얼른 오기나 하라고." "알았다. 내 곧 가마." 양구택은 통장..

오늘의 소설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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