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1.야간열차(2) 수상한 물건

fiction-google 2024. 3. 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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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진우에 대한 그녀의 친절이 계속되자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그녀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야만 했다. 고향은 증평이라는 곳이고 교사인 친구와 함께 월세 아파트에서 산다고 했다. 서울에서 사범대를 나온 그녀는 교원자격증을 가지고도 공인회계사가 되려고 공부 중이었다. 어학원에서 그녀가 공식적으로 하는 일은 수강상담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원의 속성상 잡다한 다른 일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강사들이 쓸 사무용품을 사전에 준비하거나 강의실 청소상태와 매점의 커피자판기의 위생 상태까지 챙기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외벽에 걸 플랜카드의 제작 주문이나 전단지를 뿌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레 빠진 강사의 자리를 대신 메꾸는 일도 해야했다. 한마디로 그녀가 하는 일은 학원이 탈없이 굴러가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매니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지도 못한 것이 급료를 더 주어야 하는 매니저는 이미 원장이 겸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오후 세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가 그녀의 근무 시간이었다. 그런 그녀가 회계사 공부까지 한다니 진우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진우는 퇴근 후에 단 두 시간을 할애하는 학원의 공부만으로도 집에가면 녹초가 되었다.

"진우씨 이제까지 여자 친구가 없었죠?"

그녀가 느닷없이 물었다. 영화를 보고 막 극장을 벗어나던 때였다.

", ..맞습....아니?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십니까?"

"아니예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에이,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 추측을.... 연애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했습니다만..."

"호호 말씀하시지 않아도 알아요. 추측한 게 아니예요. 제가 관찰한 게 맞을 걸요?"

"관찰이요? 그러고보니 그 쪽은 꽤 여러가지를 전공하셨나 봅니다."

"어머 그런 뜻은 없었어요. 극장에서는 남녀가 손 정도는 자연스럽게 잡잖아요? 헌데 진우씨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그래서...아니예요 . 죄송해요."

"아 그런 뜻이었다면 제가 미안하죠. 앞으로 우리가 사귀게 되면 그럴 예정입니다."

"어마, 그럼 우리가 지금 사귀는 게 아닌가요?"

"글쎄요, 우리가 지금 사귀는지 사귈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군요."

진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동안의 만남은 고추가루 때 보다는 그녀의 이미지가 한결 부드러워진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썩 와 닿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꼭 그녀에게만 가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진우에게 여자 친구가 없었다는 것을 눈치 챈 정순복 역시 관찰을 제대로 한 것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여자 친구조차 없었다는 것은 진우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정신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혼자서 살기에도 힘든 세상임을 일찌감치 체험한 탓이 컷던 것이다. 부모도 형제도 없는데다 재산이라고는 직장 생활 오륙 년이 넘어서 겨우 오천 짜리 지하 셋방이니 누굴 데려다 어쩌겠다는 자신이 도통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자의 매력이니 섹시함을 보는 눈이란 진우에겐 참으로 무책임한 정신적 사치로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음의 생리적 욕망 마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진우의 딜레마였다.

어쨋던 그런 관계가 육 개월 쯤 되었을 즈음의 토요일 오후였다. 날이 슬슬 더워지던 초여름이라 진우는 반팔의 티셔츠 차림으로 약속한 장소에 나갔다. 그녀는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커피숍 문 밖에서였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약속한 커피숍 안에서 만난 것은 단 두번이었다. 그것도 어쩌다 진우가 먼저 와서 안에서 기다릴 때였고 자신은 주문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도 계산은 늘 그녀가 하는 것이다.

"이 더운데 꼭 밖에서 이래야 하는 겁니까?"

"저도 방금 왔어요. 커피는 이따가 마시죠 뭐."

"커피값까지 아낄 이유가 없는 접니다. 그걸 아껴 벤츠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신경 쓰이신다면 다음부터는 같이 마실게요. 하지만 커피를 많이 마시면 해롭다잖아요? 비싸기만 하구요."

"그래서 매일 제게 커피를 마시게 했군요."

"어마, 그런 뜻은 아닌데..."

"좌우간 몸에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라 입에 좋으니까 마시는 거고 커피값이 아니라 냉방이 된 곳에 앉아 있던 시간 값을 지불하는 것이지요."

"제가 졌어요. 진우씨 말씀이 옳아요. 제가 장사를 한데도 사실 저 같은 손님은 미울 거예요. 호호."

"미운 정도가 아니라 때려 죽이고 싶을지 모르죠."

"어마나 그렇드래도 그렇게 과격한 말씀을..."

"허어,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지요."

으레이 만나면 극장에 갔다가 밥을 먹거나 아니면 밥을 먼저 먹고 극장을 찾는 게 순서였다. 진우는 술 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대신 영화는 많이 보는 편이었다. 그녀 역시 영화를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옛날에 본 영화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끙끙대는 진우에게 어쩌다 제목을 아르켜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극장 안은 시원했고 주말 이라서 인지 관객도 만원이었다.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된 얼마 후에 그녀가 살그머니 진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껏 없던 일이었다. 은근히 신경이 쓰인 진우가 고개를 돌리니 머리카락에서 묘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묘하다는 것은 향기라면 향수 냄새일 것이고 그냥 냄새라면 좋지 못한 냄새를 연상할 것이나 이 냄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우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였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 맡아본 적은 있으나 그동안 잊어버렸던 냄새일지도 몰랐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머리에서만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반팔 티셔츠에서도 그녀의 드러난 팔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것은 사전에 수록된 냄새라는 일반적인 단어가 지닌 의미와는 또 다른 냄새였다. 아니 냄새라기보다 체취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 체취를 맡는 순간부터 진우는 말할 수 없는 푸근함이 느껴졌다. 의식이 마치 따뜻한 물속을 유영하 듯 편안했다. 영화의 자막이 눈에 가물거려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너무나 생소하고 너무나 익숙하기도 한 이 체취의 원천을 찾아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보아도 이런 냄새의 기억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영화 속의 남자는 열심히 기관총을 난사하고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를 군인들 역시 부지런히 쓰러지고 있었다. 팔걸이에 올려진 진우의 손등에 그녀의 손이 가만히 올려졌다. 그러자 손을 뒤집은 진우가 그녀의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따뜻하구나 하는 느낌이 이어졌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즐비하게 쓰러진 군인들 사이로 어떤 남자가 피를 흘리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실내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우루루 일어서는 것이었다. 진우는 어리둥절했다. 영화를 다 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끝이 난 것이다. 실내의 좌석이 거의 비어갈 무렵까지 멍 하고 있는 진우의 손을 이끈 것은 그녀였다.

"진우씨 우리도 나가요."

그녀가 진우의 표정을 살피며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극장을 나선 그들은 다른 때와 다름없이 맛있다는 집을 찾아 저녁도 먹고 책 한 권 사지않을 서점과 옷핀 하나 사지않을 백화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거리에 어둠이 내릴 무렵 그녀가 진우의 팔장을 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진우의 턱 밑에서 살랑이자 다시 그 묘한 냄새가 코를 따라 기억의 샘에 빠져들었다. ,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젖냄새인지 살냄새인지 아니면 둘 다 합쳐진 이 냄새는 분명히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아니었다. 이 냄새는 진우가 유년기에 안겼던 어느 여인의 품속을 확연히 형체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진우가 기억하는 생모는 몇 장의 사진 속에 있을 뿐이었다. 집집마다 다 있는 결혼 사진 대신 여학생 시절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앳되 보이는 여학생이 웃고 있었다. 진우는 그 여인이 자신을 낳은 엄마라는 사실에 아무런 느낌도 실감도 끌림도 없었다.    진우가 기억에 새기기도 전인 네 살 때 스물여덟의 나이에 죽었다. 사인은 어이없게도 급성 맹장염이었다. 그 후에 몇 번인가 새엄마가 바뀌었지만 뚜렷히 생각나는 얼굴은 없었다. 어느 엄마든 한결같이 오래 있지를 못한 것이다. 짧으면 두세 달이요 길어야 일 년이었다. 광부로 썩기에는 아깝다는 소리를 들은 젊은 날의 진우 아버지에겐 여자들을 따르게하는 외모가 있었다. 후리후리한 체격에 짙은 눈썹과 그윽한 눈과 곧은 콧날은 술집과 다방의 여인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마법의 무기였다. 그러나 광부라는 직업과 수입으로는 그녀들을 언제까지나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린애까지 있으니 가정적이지 못한 그녀들이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진우가 초등학교에 들 무렵까지 그렇게 엄마라는 여인이 나가면 또 다른 새엄마가 들어왔다. 그 후엔 아버지의 건강이 차츰 나빠지는 시기였고 규폐의 진단이 확실하게 나자 마지막 엄마도 그들을 떠났다. 진우의 기억에 흐릿한 얼굴만 해도 네댓 명의 여인이 떠나간 것이다. 기억 이 전까지 합하면 열 명은 넘으리라.



좌석에 최대한 깊이 묻혔던 진우가 신발을 찾아 신었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기 때문이었다. 일어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기차도 속도에 탄력이 붙은 듯 엔진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렸다. 열차가 약간씩 기우뚱거렸다. 승객의 머리를 피해 좌우의 좌석을 교대로 잡으며 몇 걸음을 걸어 문을 열었다. 기차가 아니고는 맡을 수 없는 기름 냄새와 술먹고 토한 듯한 냄새가 확 끼쳐왔다. 흐린 불빛 아래서 젊은 사람이 세면대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진우는 화장실의 문을 열려다가 사용중 표시를 보고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삼십대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나오다가 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얼핏보아도 어깨가 벌어지고 키가 커서 운동을 한 사람 같았다. 게다가 얼굴의 중심인 콧등이 약간 휜 듯한 것이 전형적인 권투선수를 연상케 했다. 사내는 자신보다 작은 진우의 아래 위를 훑어 보았다. 키에 비해 턱없이 빈약해보이는 진우의 몸집에 지극히 안심되는 표정이었다. 이어서 세면대 옆에서 담배 연기를 내 뿜고 있는 청년을 잠시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심하다는 듯 진우와 청년을 다시 훑어보고는 반대 쪽 객차로 들어갔다. 오늘 저녁까지 별로 먹고 마신 것도 없건만 오줌은 끝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소변을 마지막으로 눈 것이 종각 지하철 역에서였다. 점심 때 보고 한번도 볼일을 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몇 시간인가 손을 꼽다가 피식 웃던 진우의 눈에 낯설지 않은 뭔가가 보였다. 변기의 모퉁이에 절반 쯤 가렸으나 노란 놋쇠부분과 원통만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진우는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들었다. 역시 그것은 엽총의 탄환이였다. 쏘고 남은 탄피가 아니라 사용하지 않은 실탄인 것이다. 탄환을 불빛에 비춰보던 진우가 옛날 일이 생각나 쓴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왜 객차의 화장실에 떨어져 있을까? 열차 화장실과 엽총 탄환이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조금 전 콧대가 휜 권투선수 같던 그 사람이 흘린 걸까? 그건 아닐 것이었다. 그 덩치에 주먹이라면 모를까 엽총이라니 얼른 연상되는 바가 없었다. 게다가 사냥철이 되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뭔가 찜찜한 마음이 들어 변기 옆에 다시 던져버리려든 진우가 쓸 곳은 없으나 버리기도 아까워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기다린 듯 담배를 피우던 청년이 슬금슬금 다가와 화장실의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던 청년이 다시 한번 진우를 돌아보았다. 진우 역시 청년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담배를 문 청년의 윗 입술에 찢어진 흉터가 보였다. 진우는 제자리로 돌아 와 앉았다. 이곳이 어디쯤 일까? 창 밖을 보니 여전히 암흑이었다. 그러다 차츰 밝음이 다가오더니 역사의 이마에 동화라는 글씨가 휙 지나가는 거였다. 정차하지 않는 동화라는 시골역인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났을까? 나 스스로 만든 착각의 냄새가 아니었을까? 아니야. 그것은 그녀만의 냄새가 분명해. 그 후 수미에겐 그런 냄새가 없었으니까.'

아직 원주까지도 못 왔으니 남은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 진우가 의식적으로 냄새에 젖어들었다. 그러면 그 냄새의 주인에게 끼쳤던 미안함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는 것 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순복이의 입장에서는 나라는 인간의 배신은 충격 그 자체였겠지.'

아련한 기억의 냄새를 간직한 그녀와의 만남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진우가 처음 이 학원을 찾았을 때와 같은 계절이 돌아왔다.

"밖이 상당히 춥죠?"

", 추워. 바람도 불고..."

"이거 드세요. 뜨거워요. 조심하시구요."

그동안 순복의 요청으로 존댓말의 꼬리를 자른 것 말고는 둘의 인삿말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자판기에서 나오던 커피가 보온병으로 바뀐 뒤부터 생강차나 율무차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잣죽이 쏟아질 때도 있다는 것 정도가 변했을 뿐이었다. 허긴 몇 달 전부터 변한 것은 또 있었다. 정순복이 진우의 수강료를 대신 내고 수강증을 내미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말에 만나서 쓰는 비용의 일체도 순복이 감당하던 것이다. 체면과 자존심의 문제라 진우가 화를 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순복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알듯 모를 듯한 이런 이상한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진우가 순복에게서 그 체취를 맡은 이 후에 비로서 결혼이란 것에 대해 약간이나마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했다. 여하튼, 이 후부터는 진우가 지갑을 여는 것을 원천봉쇄한 정순복은 다음 순서로 저금의 중요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것이었다. 12월 중순의 토요일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머지 않아서인지 거리엔 인파가 넘쳐나고 저녁식사 때가 지났건만 식당은 붐볐다. 책방에서 만나 잠시 신간서적을 훑어본 뒤에 곧바로 온 식당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북창동에 장어탕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집이 있다는 거였다. 장어탕이란 의외의 메뉴를 들고 나오는 순복의 말에 진우가 약간 놀랐다.

"장어탕이라니? 그냥 햄버거로 때우고 말자고. 난 비린건 질색 이거던."

"안 비리데요. 아니 장어탕이 비릴리가 있나요?"

"허 참, 뱀장어가 비리지 않으면 무슨 물고기가 비리겠어?"

"아녀요. 제가 장담해요. 저도 장어탕 먹어봤어요. 우리 아버지랑요."

"그럼 차라리 냉면을 먹으면 어때?"

"점심이라면 모를까 냉면이 저녁으로는 좀 그렇찮아요?"

"좋아, 그럼 뭘 먹을까?"

"장어탕 드세요. 그게 몸에 좋다고들 하잖아요?"

"몸에 좋다면 쥐약이라도 멕일 기세군."

"앞으로 진우씨의 몸에 좋다는 보장만 있으면 쥐약도 마다하지 않을 건데요?"

"뭐야? 쥐약을 멕인다구? 정말 그럴거야?"

"쥐약이라 생각하고 오늘만 장어탕을 드세요. 그럼 제 말대로 되는 거잖아요?"

"없는 줄 알았더니 고집도 좀 있었군."

"진우씨가 이러실 때만이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님들은 끊이질 않았다. 테이블마다 장어탕에 소주병이 가득하고 사람들 역시 먹으랴 마시랴 바빴다.

"이런 식당 하나하면 떼돈 벌겠군."

"그러게요. 손님이 많군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미어터지는군."

"호호 그 정도는 아니지만 소문대로 장어탕은 정말 잘 하나봐요."

"좋아, 먹어보지. 먹어보면 알겠지."

곧 음식이 나왔다. 장어탕과 소주 한 병, 그리고 튀김이었다. 헌데 튀김의 모양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겼다.    젓가락으로 들고 자세히보니 미꾸라지가 분명했다. 튀김이라기에 새우튀김일 거라고 생각한 진우의 오판이었다. 진우는 소주병부터 따서 한잔 마셨다.

"이거 쥐약을 너무 노골적으로 먹이는 거 아니야?"

"이게 몸에 좋다고 소문난 쥐약이래요. 드세요. 식기 전에."

"내 몸의 건강은 그동안 한번도 병원신세를 지지않은 걸로도 충분히 증명이 되거던."

"계속 그런 기록을 세울려면 이런 건강식품이 필요한 거죠. 다 식어요. 드세요. 드신다음에 품평을 하세요."

장어탕은 의외로 맛이 있었다. 깡촌에서 길들여진 진우의 입에 시래기 맛이 특히 좋았고 걱정했던 뱀장어는 그릇 밖으로 튀었는지 흔적이 없었다. 무슨 약초 냄새만 아니면 장어탕이란 결국 맛있는 시래기국일 뿐이었다. 오히려 튀김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순복의 몸타령과 쥐약타령으로 술안주삼아 먹어보니 먹을만 하였다.

"먹을만 하죠?"

식당을 나온 그녀가 진우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 시레기국과 별로 다를 것도 없더군. 시레기 된장국이라면 나도 좋아하는 거니까."

"그러게 선입견이 문제예요. 좋고 싫다는 건 경험해서가 아니라 선입견의 문제 같아요. 진우씨도 경험하기 전에 벌써 싫다는 감정이 굳어 있었잖아요. 호호."

"그럼, 물린 경험이 없는 뱀은? 뱀은 선입견이고 뭐고 누구나 무섭고 싫어하는 것 아니야? 뱀을 난생 처음 본 사람이라 해도 말이야."

"그건 다르죠. 뱀이 무섭고 싫은 건, 태고적에 이미 인류가 뱀의 독을 경험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그 공포감이 계속 유전화되어 내려왔겠죠."

"그렇다면 장어탕이 몸에 좋다는 건 경험적으로 봐서 몸 어디에 좋다는 거야? 이를테면 견과류는 두뇌에 좋다던지 부추는 혈액을 맑게 한다던지 하는 거 말이야."

"글쎄요. 우리 아버지 말씀으로는 원기회복에 좋다셨어요."

"원기회복에? 허어, 쓰지도 않은 원기를 어째서 돈들여 회복을 한단말이야?"

"어머머, 그건 순 억지예요. 진우씨는 앞으로도 계속 일할 것 아니예요? 그렇다면 원기를 비축한다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거죠."

"그런 뜻이 아니라 나 같은 경우엔 원기나 스테미나가 넘쳐도 쓸 곳이 없다는 말이지."

"어마, 진우씨..."

진우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하던 순복이 멈칫하더니 진우의 팔을 더욱 끌어당겼다. 이때 예의 그 순복의 체취가 진우의 코를 괴롭혔다. 주량이 소주 한 병인 진우의 아랫배로부터 스멀스멀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겨울 날씨 답지않게 푸근한 밤이었다. 둘은 밝은 불빛에 이끌리듯 가까운 명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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