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6. 타락자(5) 지킬 힘

fiction-google 2024. 3. 4.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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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은행 앞이다.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돈을 받았다는 양구택의 말에 고달수는 다시 한번 액수를 확인하고 싶었다.

"? 그래? 잘 되었구나. 확실히 팔십억이더냐?"

"그렇다니까. 확인 즉시 철구하고 네 계좌로 이십 억씩 이체했으니 걱정들 말어."

"배철권에겐?"

"물론했지. 우람이 값만도 이십억인데....."

"잘했다. 얼른 들어와라. 일이 쉽게 풀린 기념으로 쐬주나 한 잔 하자."

"이제 그 중국 사람들에게 받았다는 연락을 한 다음 농장으로 갈 테니까 그리들 알고 이제부터 개들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라. 알았냐?"

"걱정도 팔자네. 주먹이라면 챔피언 출신인 배철권이 있고 게다가 내가 있잖아? 뿐이냐? 성질 급한 박철구는 맹물이냐? 얼른 오기나 하라고."

"알았다. 내 곧 가마."

양구택은 통장을 점퍼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은 뒤에 냉큼 자신의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힘차게 악셀을 밟아 자신의 농장을 향해 출발했다. 양구택은 생각보다는 일이 빨리, 그리고 일이 쉽게 끝나서 만족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연변에서 동방불패를 사 올 때가 생각났다.

그뿐만 아니라 태산이가 태어날 때의 놀람과 기쁨이 한꺼번에 필름처럼 주르륵 눈앞을 지나갔다. 태산이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몰래 키우느라 애쓰던 당시도 생각났다. 그러다 아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자 개 장수를 접고 바닷가 허허벌판에서 태산이의 투견 트레이닝에 올인 한 것이다.

거기서 배철권 부자를 만나 오늘날까지 돕고 도우며 가깝게 지내고 있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의 친구들인 고달수와 박철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양구택이 어려움을 당하자 두말없이 도움을 베풀던 친구였다. 그 뒤 그들과의 동업을 하기로 한 것은 사실 투견에 문외한인 양구택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녀석들과 배철권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엄청난 돈이 굴러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이제 이 돈은 두말없이 사 등분을 해서 이십억 씩 나눠 가져야지. 이 돈이면 이제부터 모두가 부자다.'

기분이 좋아진 양구택이 막 자신의 농장 입구인 비탈길을 돌아설 때였다.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검은색의 승용차 한 대가 앞길을 막아서 있었다. 깜짝 놀란 양구택이 트럭의 브레이크를 황급히 밟았다.

'이게 뭐야? 누가 이런 길에.....'

양구택은 차창을 내린 후 전방의 승용차를 주시했다. 그러자 그 차의 조수석에서 어디선가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인물이 내리더니 양구택이 탄 트럭으로 다가왔다.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바라보니 검단에서 본 황 총무란 사내가 틀림 없었다.

"당신이 양구택이란 사람이지? 우리 사장님이 좀 보자고 하니 차에서 내리시오."

"당신 사장이 누군데 나를 보자고 합니까?"

"만나보면 알 것 아니오? 잔말 말고 내려요."

양구택은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게다가 그들에게 꿀릴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선 듯 차에서 내려 황 총무를 따라 검은 승용차로 다가갔다. 그러는 순간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가 내리더니 양구택을 향해 턱으로 먼저 타라는 신호를 했다. 양구택은 두말 없이 뒷좌석으로 오르며 먼저 타고 있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황 총무가 사장이라고 칭한 인물은 역시 서유석이었다. 양구택이 타는 순간 내렸던 건장한 사내도 얼른 옆자리로 끼어들었고 황 총무는 어느새 조수석으로 올라타고 있었다.

"결국 개는 당신이 갖고 있다는 걸 알았소. 고달수가 잔꾀를 부리지만 않았으면 좀 더 일찍 당신과 흥정을 벌였을 텐데.... 긴 말 않겠소. 십억을 낼 테니 그 개들을 내게 넘기시오. 다시 말하지만 십억이면 당신에겐 큰 돈이오."

서유석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양구택을 서서히 돌아보며 입을 떼고 있었다.

"개들이라니요? 내가 연변에서 사 온 개를 말씀하신다면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흥정을 끝내고 계약을 했으니까요."

"뭐라고? 계약이라니? 그 사이 언제 누구에게 팔았단 말이야?"

"중국인이라는 것만 알지 그들의 신원은 알지 못하오. 나 같은 개 장수야 고객이 누구든 돈을 받고 팔면 그만이니까요."

"어라, 이것들 봐라. 고달수는 우리를 속여 허탕을 치게 하고 그 틈을 노리고 개들을 처분했다고? 좋아, 돈을 받았어도 개들은 아직 수중에 있지? 그럼 됐어, 계약을 파기하면 될 테니까. 지금 당장 나와 새로 계약을 하자고."

"그럴 수야 없지요. 장삿꾼은 신용이 제일인데 계약을 파기하다니요?"

"시끄러워, 이거 십억이라는 거금을 준다는데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큰마음 먹고 줄 때 받을 것이지..... 좋아,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 돈도 없는 걸로 하겠단 말이야."

양구택은 어이가 없었다. 우람이를 빼고서도 육십억이나 되는 개값을 이젠 숫제 공짜로 먹겠다니 말이다.

"그럴 수는 없지요. 이제 곧 중국인들이 개들을 싣고 가려고 올 겝니다."

"누구 맘대로 개들을 싣고 가? 어림없는 소리. 이 봐, 무철이, 애들에게 컨테이너를 싣고 이쪽으로 오라고 해. 우리가 개들을 먼저 싣고 가야겠으니까."

서유석은 양구택의 옆에 있는 건장한 사내에게 지시를 내렸다.

", 형님, 개들을 검단 투견장으로 가져가면 되는 거죠?"

"거기가 가장 적당하잖아? 개를 다룰 조선족도 있으니 말이야."

", 당장 애들을 부르지요."

무철이라 불린 사내는 휴대폰을 눌러 똘마니들을 호출했다.

양구택은 서유석과 무철이 사이에 끼어 꼼짝을 못 하는 가운데서도 일이 난감하게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농장에서 기다리는 고달수나 박철구 또는 배철권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다. 양구택은 어쩌면 좋을까 하여 연방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학교에 갔던 한열이 커브길을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한열은 한열대로 길가에 서 있는 낯익은 트럭과 낯선 검은 승용차를 보았다. 먼저 트럭 쪽을 바라보니 양씨 아저씨가 보이지 않아서 승용차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짙은 선팅을 한 유리 저편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이 보이자 한열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서유석이 뒷좌석의 창문을 내리더니 한열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 학생. 너희 집이 저 쪽이냐?"

", 그런데요? ? 양씨 아저씨 아니세요?"

한열은 서유석의 옆자리에 끼여 앉은 양구택을 발견하고 눈이 커졌다. 그러자 양구택이 한열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네 아버지께 태산일 부탁한다고 일러라."

"? 태산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어서 가기나 하라니까."

한열은 양구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미쳐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잠깐, , 잠깐만 기다려."

양구택의 말이 심상치 않음을 안 서유석이 뒷좌석의 문을 왈칵 열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한열이 반사적으로 집 쪽을 바라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 서지 못 해?"

서유석의 말에 조수석의 황 총무가 황급히 내리더니 한열을 잡으려고 했다. 한열은 지체하지 않고 커브길을 돌아 집으로 달렸다. 서유석의 고함 소리와 황 총무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워낙 뜀박질에 소질이 있는 한열은 다람쥐 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농장까지는 불과 몇 백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여서 비록 승용차가 방향을 바꿔 추적을 한데도 한열이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이다. 한열은 대문을 들어서며 사무실의 문을 밀었다.

"? 한열이 아니냐?"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향해 배철권이 놀라 소리쳤다. 한열은 아버지와 함께 한가하게 난로에 오징어를 굽고 있던 고달수와 박철구를 동시에 보았다.

"아버지. 큰일 났어요. 양씨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들에게 잡혔나 봐요."

놀란 세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시에 한열에게로 눈길이 쏠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양씨 아저씨가 어디서 누구에게 잡혔단 말이냐?"

고달수가 배철권보다 먼저 물었다.

"저기 길모퉁이에서 검은 승용차를 탄 사람 사이에 있어요. 양씨 아저씨가 저 보고 얼른 가라면서 태산이를 부탁한다고 하던데요?"

"? 이거 무슨 소린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양씨 아저씨가 어떻게 생긴 사람에게 잡혔는지 차근차근하게 다시 설명을 해 봐라."

고달수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한열을 다그쳤다.

"그게. 눈이 기분 나쁘게 생긴 아저씨가 양씨 아저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있었어요. 그 차에는 다른 사람도 몇 명 더 있었고요."

"뭐라? 눈이 기분 나쁘게 생겼다? 그렇다면 혹시 그 자는 서유석이 아닐까? 내 농장을 뒤져서 없으니 내 주변 사람을 뒤졌나 보다. 맞아. 그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양 씨 아저씨 곁에 앉은 사람도 어쩐지 깡패처럼 무섭게 생겼었어요."

"그럴 테지, 입금이 되었다고 말한 시점이 삼십여 분밖에 되지 않으니 놈들이 여기 농장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무작정 구택이를 구하러 갈 수도 없다. 일단 우리는 이곳을 철저히 지키며 중국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자."

어느새 고달수는 야전부대의 사령관이 되어 있었다.

", 철구야, 너는 저 배철권 군과 함께 결사적으로 개들을 지켜라. 이미 대금을 다 받았으니 물건을 확실히 인도해 줘야 일이 끝날 것 아니냐?"   

"그야 당연하지, 이 봐, 배철권이, 우리는 태산이가 있는 곳으로 가지?"

박철구는 구운 오징어를 쭉 찢어 입으로 넣으며 한 손에 든 오징어는 한열을 향해 내밀었다.

"졸업반이어서 일찍 온 거냐?"

느닷없이 배철권이 한열에게 물었다.

"요즘은 수업이 거의 없어요. 게다가 며칠 내로 방학이잖아요?"

"태산이에게 너도 가자."

"그러지요."

한열이 앞장을 서고 배철권과 박철구가 그 뒤를 따랐다. 개장이 가까워지자 한열이의 존재를 감지한 개들이 껑충거리고 있었다. 한열은 태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함께 동방불패와 우람이를 차례로 안아주었다. 이미 아버지인 배철권으로부터 모든 것을 들었던 것이다. 한열은 투견으로서의 생을 보내야 하는 태산이의 경우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태산이가 한국에 있을 경우 매 경기를 따라다닐 수도 없고 그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만 아직 강아지에 불과한 우람이는 좀 더 자신이 키우고 싶었으나 그 역시 혈통적으로 투견이라 자신의 힘으로써는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한열은 이 개들을 아버지의 말대로 양씨 아저씨에게 되돌려 주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철구야, 이 새끼가 구택이를 잡고 우리에게 협박을 하고 있다."

개장으로 고달수가 달려오며 한 말이다.

"무슨 소리냐?"

박철구가 얼른 고달수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서유석이란 놈이 내게 연락을 했단 말이다. 이제부터 양구택의 농장은 완전히 자신의 수중에 들었으니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란다."

"그놈 미친놈일세, 너나 나는 양구택이 아닌데 왜 제 놈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한단 말이냐?"

"구택이가 제 손안에 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만 하기야 하지. 하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가는 우리는 완전히 거지가 될 판 아니냐?"

"그걸 말이라고. 아이 씨팔 이제 더 성질을 못 참겠다. 내 가서 이 새끼들과 사생결단을 하고 오마."

박철구는 두말없이 대문을 향해 내 달리기 시작했다. 말리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던 고달수와 배철권은 순간 멈칫했으나 곧바로 박철구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대문을 향해 뛰자 한열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태산이의 목줄을 풀더니 그 뒤를 급히 쫓았다. 태산이는 산책을 하자는 것으로 알고 신이나 달렸다. 한데 흥분한 박철구를 비롯한 고달수와 배철권이 트럭이 있는 모퉁이까지 왔을 때에는 서유석의 검은 승용차는 어디로 갔는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새끼들 다 어디로 갔어?"

주먹을 불끈 쥔 박철구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고달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문제는 구택이다. 구택이가 놈들에게 잡혀갔으니 얼마나 고초를 당하겠냐?"

그 순간 고달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이, 고씨 당신은 그동안 우리 투견장에 개를 공급한 공로도 있고 하니까 내 다시 좋게 타협적으로다 얘기를 하지. 우리가 보내는 컨테이너에 개들을 실어 보내. 그럼 여기 양 씨는 즉시 풀어 줄 테니까. 어때?"

서유석의 느물거리는 말소리에 고달수는 입에서 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참았다.

"돈을 받았으니 이미 개들은 우리개가 아니란 것은 서 사장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니요? 조금 후면 그들이 개를 실으러 올 것이오. 또 나로서는 개를 못 싣게 할 힘이 없소. 솔직히 말해 그럴 기분도 아니고."

"개들의 주인인 양구택이 여기 있는데 안 될 일이 어디 있어? 계약을 파기하고 안 하고는 여기 있는 양구택을 생각하면 될 것이오. 어쨌든 우리에겐 그 괴물 개가 꼭 필요하다고. 왜냐? 이번 토요일 밤, 연말 총 결선전 겸 새로 마련한 검단 투견장의 오픈 기념행사에 나오는 걸로 이미 회원들에게 다 통보가 되었으니까 말이야. 다시 말해 그 괴물 개의 데뷔 전 한 번으로 대박을 쳐야 한단 말이야."

"서 사장, 그러지 말고 양구택이부터 풀어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다시 해 볼 테니. 어떻소? 우리 새로 좋은 쪽으로 타협을 보잔 말이오."

"이거 약은 수를 쓰려고 하는군. 좋아, 그렇게 나오면 이제부터는 돈도 대화도 없는 걸로 하지. 양구택이를 죽이기 싫으면 당신들 손으로 직접 그 개들을 싣고 검단으로 오라고. 그전에 협상은 없어. , 또 한 가지. 경찰에 알리는 것은 당신들 자유야. 하지만 그럴 경우, 양구택을 없애는 것도 내 자유란 것만 알아 둬."

"뭐야? , 당신 말이야. 그러는 게 아니야. 서 사장, 서 사장? 어라? 전화를 제멋대로 막 끊네?"

손에 든 수화기를 내려다보는 고달수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서유석 이 자식이 구택이를 잡고 우리를 협박하고 있으니 우리는 우리대로 구택이를 구할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이보게, 배철권 군, 그 중국인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건 자네뿐이니 그들이 오면 일단 자네가 개들을 넘기게나."

", 그러지요. 한데, 양 선배는 지금 어디에 있답니까?"

"보나 마나 검단 쪽으로들 가고 있겠지. 태산이도 그곳으로 데려오라 하더군. 이번 토요일에 태산이를 거기서 시합을 시키려고 한다네."

"강도 같은 놈들이군요. 일단 개들을 넘기고 난 뒤 우리도 검단 쪽으로 이동을 하면 어떨까요?"

"숫자에 밀려서 될라나 모르겠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써야지."

고달수를 비롯한 박철구와 배철권 그리고 한열이까지 양구택의 세워진 트럭 주변에서 서성거릴 때 무엇을 보았는지 태산이가 길모퉁이 넘어를 향해 그르렁 거리며 나아가려 했다. 한열은 급히 태산의 목줄을 당기며 외쳤다.

"아버지. 태산이가 무엇을 보았나 봐요."

아들의 소리에 놀란 배철권이 한발 먼저 모퉁이를 돌아 나아갔다.

"이 쪽으로 승용차와 커다란 개장을 실은 트럭이 오는구나. 서 사장이란 사람인가 보다. 이걸 어쩌냐? 고 사장 형님, 박사장 형님. 어쩌면 좋을까요?"

"어쩌긴, 침착하게 행동하자고. 자네는 우선 이 트럭으로 길을 막고 우리는 일단 농장으로 빼자고. 그리고 놈들의 다음 행동을 봐 가며 대처하면 되는 거여."

고달수의 제안에 배철권은 재빨리 양구택의 트럭에 올라 길 가운데다 세우고 키를 뽑았다. 그리고는 모두들 힐금힐금 뒤를 돌아보며 농장의 대문으로 향했다. 고달수 일행이 농장에 거의 다 와서 뒤를 돌아보니 검은 승용차와 트럭은 그새 양구택의 트럭에 닿은 듯했다. 한데 길 가운데 막힌 트럭 때문에 더 오지 못하자 차에서 사람들이 내려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 아버지 저 사람들은 어제 여기 왔던 중국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구나. 어제 왔던 그 사람들이다. 한열아 너는 태산이를 다시 우리에 가둬라. 고 사장님, 저들이 바로 개들을 산 그 중국인들입니다."

", 그래? 빨리도 도착했군. 잘 됐네. 한시바삐 저들에게 개들을 넘기고 보세."

"그러지요. 그러려면 우선 저 트럭을 빼 줘야겠습니다."

배철권은 왔던 길을 단번에 달려가 중국인들에게로 다가갔다. 역시 어제의 중국인 둘이 트럭이 길을 막고 서 있는 이유를 찾으려는 듯 사방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두 분 오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곧 트럭을 옮기겠습니다."

", 우리에게 아침밥을 해 주시던 분이시군. 우린 개들을 실으러 왔습니다."

통역인 마량이 아는 채를 했다.

"그러시지요. 우리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배철권이 트럭에 올라 농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자 승용차와 개장을 실은 트럭이 그 뒤를 따랐다. 양구택의 트럭을 선두로 세 대의 차가 마당에 멈추어 섰다.

"아버지, 이분들이 싣고 온 개장이 엄청 커요. 태산이가 불편할 것 같지 않아서 좋은데요?"

한열의 말대로 개들을 싣고 갈 개장의 크기는 넉넉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어이, 배철권 군, 차가 온 이상 어서 개들을 싣고 보는 게 어떻겠나?"

"맞아, 그게 모두를 위해서 좋겠지."

박철구와 고달수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그러지요. 한열아, 어제 네게 한 얘기를 명심해라. 동물에게 지나치게 깊은 정을 줄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하는 거니까. 그러니 어서 태산일 저 트럭에 태우거라."

", 아버지. 저도 알아요. 어떻게 보면 우람이도 투견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가서 태산이를 데리고 오죠. 아버지는 우람이를 실어주세요."

"오냐 그러마."

두 부자는 각각 태산이와 우람이를 데리고 중국인들의 트럭으로 다가가 개들을 개장에 들어가게 했다.

", 아무리 봐도 기가 막히게 멋진 개들이란 말이야."

이 선생이란 사람이 중국 말로 감탄의 신음을 토했다. 그러자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통역인 마량도 그 말을 인정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지난번 대륙에 있던 개 보다 훨씬 늠름하고 멋이 있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한열은 동방불패까지 데리고 와 트럭에 실었다.

"이 선생님이 학생에게 말 해달랍니다. 우리를 위해 어제부터 친절을 아끼지 않더니 결국 큰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요. 수고했소. 그리고 고맙소."

"아니요, 정이 든 개들이라 모든 걸 제 손으로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통역한 한열의 말을 들은 이 선생은 마량에게 가만히 말했다.

"이게 바로 한국인 특유의 정서로군. 우리 중국인들은 두 번 볼 일이 없는 일에는 감정을 낭비하는 법이 없거든."

중국인들은 사무실로 들어가 인수증에 도장과 서명을 함께한 다음 그것을 고달수에게 내밀었다.

"이것으로 거래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되었군요. 한데, 아까부터 궁금했었는데 양 사장은 어디 갔소?"

마량의 통역에 고달수가 억지웃음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럴 일이 좀 생겼습니다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조선족과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까?"

", 아닙니다. 조선족이 아니라 국내인이 더 문제지요."

", 그렇다면 대강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우리 권한 밖의 문제라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어 유감이군요.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 양 사장 문제에 한 가지 사적인 조언을 드리지요. 연변 조선족을 이용하시오. 알았소? 그럼 우리는 가 보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선 중국인들은 승용차에 먼저 올랐다. 그러자 이미 개장을 덮개로 씌워 출발 준비를 마친 트럭이 시동을 걸었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승용차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배철권 부자는 막연한 눈빛으로 트럭 위의 개장을 바라보았다. 배철권은 아들의 어깨를 감싸며 투덕였다.

"이 아버지를 이해해 주어 고맙다. , 하지만 이것도 견디기 어려운 노릇이구나."

"아버지, 아니에요. 우람이를 제 곁에 둔다고 해도 서 사장이란 사람 때문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연변에서도 태산이나 동방불패를 찾고 있다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개들을 지킬 힘이 있나요?"

"그건 그렇다. 우리가 감당하기엔 개들이 평범하질 않거든."

그사이 승용차와 트럭은 대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농장에 남은 네 사람은 차들이 좁은 도로를 지나 길모퉁이를 돌아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 드디어 다 끝났다. 배철권, 자네와 한열군이 수고가 많았네."

"별말씀입니다. 박 사장 형님이나 고 사장 형님이 저보다 더 노심초사하셨지요."

"어쨌든 이제부터 구택이를 구출할 묘안을 짜야 할 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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