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1.야간열차(1) 이진우

fiction-google 2024. 3. 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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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000. 거래명세표의 남은금액 칸에 표시된 숫자였다. 그것이 다였다. 서울 생활 8년의 결과가 겨우 이 숫자로 남은 것이다.

'삼십사만.....'

몇 번이나 들여다 본 어이없는 액수였다.

'천삼백만 원이 넘던 게...겨우.…'

직장마저 잃었으니 이제 이진우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의 서울 생활은 흙 한줌 없는 바위틈에 붙어 기어이 싹을 틔우려는 풀씨 같은 것이었다. 인고의 시간이요 세월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 온 시간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회사 생활만 해도 그랬다. 방문 세일이란 문자 그대로 발품으로 시작해서 발품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지구를 두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그렇게 8년 동안 꾸준히 한 길을 걸은 결과가 실적으로 나타나 드디어 윗선의 인정을 받았고 또 바라던 내직으로도 옮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말이다. 이제야 일을 제대로 한번 해보려는 순간 일이 터진 것이다. 결국 회사는 짤리다시피 사직해야만 했다. 그나마 수백 장의 이력서를 없애고 간신히 얻은 직장이었다. 게다가 직장과 함께 단칸방까지 사라져 당장 이슬 피할 곳도 없었다. 그것도 기숙사 생활 5년만에 마련한 방이었다. 헌데 그 곳에서도 쫓겨나 졸지에 노숙자가 된 것이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주지 않았다. 돈과 직장과 전셋방이 사라진 것은 약과였다. 진짜 남은 것은 따로 있었다. 갚아야 할 거액의 빚이었다. 자신은 십 원 한장 만져보지도 못한 대부업체의 빚이 목줄을 조이는 것이다. 참으로 환장할 일이었다. 한번의 어리석은 선택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부업체 놈들은 잔인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로 신경을 긁어댓다. 하루의 일과를 공갈로 시작해서 협박으로 끝을 맺었다. 어느날 부터는 회사에 까지 덩치들이 찾아왔다.

"이봐, 남의 돈을 썼으면 갚아야 할 것 아니여?"

사무실 직원들의 눈길을 모으기 위해 놈들이 처음 뱉는 말은 항상 같았다. 그리곤 거대한 덩치를 앞세워 기를 죽였다. 심리전과 무력전을 교대로 펼치는 것이다. 룰에 따라 링 안에서 정당하게 치루는 경기라면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차라리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놈들과의 싸움은 물리적인 싸움과 달라서 손발을 한번 쓰지 못하고 당할 뿐이었다. 일방적으로 몰리는 이 싸움이 진우로서는 지긋지긋했지만 항복할 수도 없었다. 항복한다고 상대가 패배를 인정해 줄 싸움이 아니었다. 놈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갚을 만큼 갚고도 살인적인 이자에 이자가 붙어 또다시 두 배에 가까워진 대출금의 상환 뿐이었다. 만약 이진우에게 유일하게 남은 절망감을 저울로 달 수 있었다면 놈들의 대출금보다 열 배는 무거웠으리라. 하지만 채무자의 절망감 따위에 아랑곳 할 놈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절망이란 단어는 채무자가 자신의 신체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진우의 경우는 콩팥 하나로 해결될 액수가 아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죽음 아니면 돈인데 이진우가 가진 것이라곤 지폐 몇 장과 그리고 카드에 남은 금액 340.000. 그것이 다였다.

'망할년.'

이진우는 주머니 속의 명세표 조각을 구겨 쥐었다. 눈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유리창엔 눈이 퀭한 어떤 얼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 밖은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와락 커텐을 당겨 얼간이를 어둠에 가뒀다.

'멍청한 놈.'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조금만 빨리 끝냈더라도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진우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왼쪽과 오른쪽 좌석을 둘러보았다. 승객은 좌석의 절반 정도 뿐이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서 십오륙 년 전과 또 달랐다. 진우가 군대 가기 전만 하더라도 이처럼 승객이 없지는 않았었다. 그때는 빈 좌석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통로를 오가며 아는 얼굴 한둘은 꼭 만났던 것이다. 진우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은 이렇게 변한 것이다. 하기야 자동차 없는 사람이 없고 총알 처럼 빠른 KTX가 있는 요즈음 세상에 누가 이런 무궁화 열차를 타고 다니겠는가? 그것도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청량리발 1125분 야행열차를....   

', .'

실소를 하는 자신이 한심하여 쓴웃음이 뒤따랐다. 다시 시선이 창으로 향했다. 얼간이와의 재회가 두려워 커텐을 조금만 밀치고 재빨리 창문에 얼굴을 붙였다. 실내의 빛이 유리에 반사되어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두손으로 이마를 감싸 듯 하고서야 창밖이 굉장히 어둡다는 것을 알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달리는 속도에 비례 해 전봇대만 빠르게 스칠 뿐이었다. 산을 지나는지 들을 지나는지 모를 지경인 것이다.

"까짓거 어디면 어때. 달라질 것도 없는데.."

앞좌석 밑으로 발을 뻗고 고개를 젖혀 몸을 쭉 펴 보았다. 천정의 길고 희미한 아크릴 등이 눈에 들어왔다. 촛불보다 나을 것도 없는 흐릿한 불빛이었다. 야간열차라 승객의 수면을 배려한 밝기 일 것이나 최소한 글씨는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주머니 속의 어이없는 명세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려던 진우가 마음을 접었다.

'이제, 어쩌면 좋지?'

백 번도 더 생각했던 문제였다.

'되는데로 되겠지.'

역시 백 번도 더 생각하던 해답이었다. 신발을 벗고 오른발을 스팀 커버에 올렸다.    분명히 몸은 피곤한데 졸리지가 않았다. 바퀴가 레일의 틈을 지나며 내는 덜그덕거리는 소리와 디젤 기관차 특유의 묵직한 엔진 소리가 가벼운 소음이 되어 쉼없이 이어졌다. 열차에 오른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엉덩이와 어깨가 저려왔다. 진우는 엉덩이를 조금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허공에 깍지 낀 두 손을 뻗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깨와 다리가 스트레칭을 하고나니 조금은 나은 것 같았다. 기차는 커브를 도는지 정차할 역에 신호를 보내는지 길게 경적을 울렸다. 잠시 후 기차가 속력을 줄이고 있었다. 정차할 역에 닿은 것일 터였다. 이윽고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끼이익 마찰소리와 함께 덜컹 멈추었다. 커텐과 창틀 사이로 내다보니 역사(驛舍)의 지붕 밑에 양평이란 글씨가 보였다. 플랫폼에는 역무원만 있을 뿐 타려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여자 승객 한 명이 내려 바퀴달린 작은 가방을 끌고 역사로 향하고 있었다.

"!"

진우가 커튼을 와락 재꼈다. 심장이 멈춤과 동시에 정수리가 화끈했다. 역사로 빨려들어가는 여자의 걸음걸이나 뒷모습이 수미와 흡사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벌떡 일어나 쫓아갈 뻔했다. 진우는 쥐어짜듯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우는 멀어지는 역사의 불빛에 눈길을 떼지않았다. 한밤중에 기차에서 내린 저 여인은 어두운 시골길 어디로 향하려는 것일까?

'내 잘못이지. 그러고보면 수미 그것도 불쌍한 인생인데...'



강원도 산골 탄광촌 출신의 이진우가 서울생활을 시작한 것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8년 전이었다. 시시한 지방대를 졸업하고 병장 계급을 예비군복으로 바꿔 입고보니 기다리는 것은 백수 계급장 뿐이었다. 취직이 급했다. 그러나 깡촌에 취직할 곳이라곤 탄광 밖에 없었다. 그나마 여기저기 폐광된 곳이 많았다. 남아 있는 광산도 규모가 많이 줄어서 광부모집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진우는 탄광에서 제발 와주십사 해도 그 쪽은 전혀 생각이 없었다. 규폐로 고생고생하다가 죽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놀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아버지 사후(死後)에 학비의 반이나 보태준 작은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폐가 되는 것도 싫었다. 그럴 즈음 고향에 내려온 초등학교 동창놈을 만난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배워 서울의 알만한 고속버스회사에 정비사로 있었다. 무작정 그놈이 사는 서울의 반지하 자취방을 찾아가 꼽사리를 끼었다. 다음날 부터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하여 그동안 버린 것만도 이백여 장은 되리라. 동창놈이 슬슬 눈치를 보일 때쯤에야 와보라는 곳이 있었다.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내일부터 출근 하시요."

이진우에게 회사의 상무라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사회학과를 나온 진우로서는 회사의 광고나 홍보 또는 마케팅을 지도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의 생각은 사뭇 달라서 책상도 사무실도 필요없는 간편한 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기다리던 것이었다. 말이 근사하여 마케팅이지 실은 학교나 병원 또는 약품회사로 다니며 실험 기구를 팔아오라는 말이었다. 쉽게 말해 의료실험기구를 만드는 회사의 외판원 자리였다. 어렵게 말해도 전혀 달라질 것이 없는 이 직업이 불행히도 당시의 이진우에게는 선택하고말고 할 형편이 못 되었다. 막차에 좌석표가 없다고 입석표까지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서울생활이 오륙 년이 지나자 오천만 원짜리 단칸 전셋방까지 얻었다. 무정하다 못해 비정하기까지 한 서울에서 최소한 등을 붙일 나만의 공간은 생긴 것이다. 박봉에 술까지 즐기는 진우로서는 각고의 노력과 인내로 빚은 결과였다. 이제부터는 월 백만 원의 피나는 지출이 없어도 되었다. 백만 원의 반은 나를 위해 쓰고 반은 작은 아버지댁에 보내드려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다. 밀린 학자금대출을 갚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때 눈 딱 감고 이천만 원을 뚝 떼어 갚았더라면 지금 떳떳할 텐데...'

50만 원씩 열한 번을 부치다가 그걸로 끝이었었다. 방을 조금 늦게 얻더라도 작은아버지의 돈은 먼저 갚아드려야 했었다. 그랬다면 조금은 떳떳하게 작은아버지를 뵐 수 있을 터였다. , 도착 후에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진우는 등을 뒤로 밀어 붙이며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이름만 그렇지 않았어도, 아니 그때 고추가루만 못 봤어도...아니, 수미만 만나지 않았어도...'

헛바람 같은 쓸데없는 변명과 후회였다. 저축의 압박에서 어느정도 여유를 찾은 진우가 중국어에 도전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몇 년 사이에 회사가 부쩍 커져서 동남아와 중국시장에 회사가 뛰어들었다. 회사는 기존의 의료실험기구 외에 의료 장비를 만드는 라인을 새로 가동했다. 그동안 마케팅에 자신이 생긴 진우도 국내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자면 중국어를 익혀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것이다. 지출이 술을 친구로 삼기 전에 당장 학원에 등록을 했다.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마치 중국의 손에 달린 것처럼 학원은 수강생으로 넘쳤다. 퇴근 후에 곧바로 들려 두시간을 배우고 나와 저녁을 먹고 어두운 셋방으로 들어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달쯤 됐을까? 너무 일찍 왔는지 강의실이 비워지지를 않았다. 휴게실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자판기 커피를 양손에 들고와 그중 하나를 내 밀었다. 진우가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밖이 상당히 춥죠?"

", ."

다시 엉겁결에 한 대답이었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상대는 이 학원의 접수창구에 있는 여자였다. 그냥 여자라고 생각 한 것은 아가씨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스타일과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옷과 머리 스타일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얼굴만 알 뿐 진우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던 여자였다. 설혹 관심을 가지고 봐 왔다 하더라도 그 여자는 누구의 주목을 받을 얼굴이 아니었다. 예쁘구나 하는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못생긴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눈, , 입 어느 것도 트집잡을 곳이 없었다. 다만 너무 평범하고 흔한 얼굴이어서 사람들 앞에 잘 들어나지 않는 타입일 뿐이었다. 한마디로 튀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조금 빨리 오셨네요? 항상 일곱 시 정각에 오시더니.."

", . 그렇게 됐습니다."

항상? 정각? 그렇다면 그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단 말인가? 별 일이었다. 다음날이었다. 막 도착해서 강의실 의자에 앉으려는데 어제의 그 여자가 종이컵을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어제와 같은 인사를 했다.

"밖이 상당히 춥죠?"

", ."

"오늘은 정각에 오셨네요, 호호."

", . 그렇게 됐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진우의 얼굴만 보이면 종이컵이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공짜커피 공세가 한 달쯤 되자 몇 번은 힐끗거리던 수강생들도 못 본 척들 했다. 서로의 인삿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춥죠?. 매우 줍죠? 좀 풀렸죠? 많이 풀렸죠? , . , . 그렇게 됐습니다로 답보 상태였다. 그때 쯤엔 진우의 부담감도 슬슬 자라서 그 동안 마신 커피값만큼의 부채를 되갚기로 마음을 먹었다. 쉬는날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말에 그 여자는 마치 기다린 듯 응낙을 했다. 토요일 낮 지하철을 타고 명동역에서 내려 약속한 장소로 와보니 커피점 문 앞에서 그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안에서 기다리시지 않구요?"

"아니예요. 우리 그냥 가요. 커피는 이따가 마시구요."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저기 스텍하우스로 갈까요?"

"저는 칼질에 서툴러요. 비싸구요. 날씨도 찬데 칼국수 어때요? 명동 하면 칼국수잖아요.    칼국수 싫으세요?"

"싫긴요. 저야 좋죠. 허지만 그쪽이 칼국수를 택하신 건 의외인데요?"

"어머, 제가 할머니 처럼 보이신다는 말씀 같아요."

", 아닙니다. 저도 포크보다는 젓가락에 더 익숙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노인은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예요. 사실 제가 나이보다 늙어 보이나 봐요. 친구들과 식당엘 가면 계산서가 항상 제 앞에 놓이거든요. 호호."

"아니? 나이가 어떻게 되시기에..."

", 스물여덟이예요. 그쪽은 어떻게 되세요. 어마,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저는 정순복이예요. 이름이 촌스럽죠?"

지금은 서른이 되었을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아닌 게 아니라 약간은 그런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름이 개똥인들 진우와 무슨 관계랴? 채무를 이행하면 그 뿐일 터였다. 이름보다 오히려 진우가 그녀를 관심 밖으로 돌린 일은 따로 있었다. 언젠가 교수에게서 들은 적도 있고 책에서도 본 이야기가 하필 그날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추운날 매운 김치와 함께 먹는 칼국수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였다. 진우가 국물까지 다 마시는 것을 본 그녀가 맛이 괜찮죠? 하며 상냥하게 싹, 웃는 입을 무심코 쳐다보자 잇사이에 굵은 고추가루가 끼어있는 것이다. 백 번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왜 그런지 그날의 진우에겐 충격이었다. 못 볼 것을 본 듯 외면하고 말았지만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잇사이 고추가루가 맴돌았다. 관심 밖이던 그녀의 웃는 입이 어쩌면 그리 선명하게 오래도록 그리고 집요하게 따라붙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다음날 여전히 종이컵 뒤에 나타난 그녀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웃는 입만 보일 것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시종 외면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잇사이는 다행하게도 고춧가루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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