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7. 납치(1) 헛다리

fiction-google 2024. 3. 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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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우가 덕배 아버지의 집에 머문 지 어느덧 한달이 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여름의 막바지였으나 한달 쯤 지나자 완연한 가을이였다. 가득이나 산꼭대기에 가까운 곳에 집이 있어 가을은 더 일찍 온 듯했다. 시월로 들어서자 옻나무나 화살나무들은 이미 새빨갛게 단풍으로 물이 들었다. 진우는 멀고 가까운 산과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골짜기 전체가 불바다였다.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는 네로의 눈에도 이렇게 보였을까? 진우는 네로역의 피터 유스티노브의 우스꽝스런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순간 자신은 웃을만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애써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허공엔 깔깔대며 비웃는 수미의 얼굴에 눈물이 글썽한 순복이 얼굴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진우야아."

집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큰소리로 대답부터 한 진우가 눈길을 돌리자 덕배 아버지가 휴대폰을 높이 흔들고 있었다. 진우는 뛰었다. 덕배에게서 걸려 온 것일 터였다.

"덕배다. 받아라."

", , 여보세요? 어 덕배냐?"

". 아무래도 캐시콜뱅크 놈들이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사방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걸 종합해 보니 캐시콜 애들이 확실해. 놈들이 너의 작은 아버지 집도 갔었나보더라. 어제는 전당사에 나타나 너와 나와의 관계를 물어보드래."

"나는 널 만나보고 금방 되돌아 간 걸로 하지 그랬냐?"

"물론 왔다가 다음날 서울로 다시 간걸로 애들에게 교육은 시켜놨었지. 허지만 그놈들이 그리 쉽게 속을 놈들이 아니니 문제지. 사실 내가 하는 일도 그래.    신사장이 없는 틈에 전당사 연합회를 다 구성했는데 내 뒤를 캐대면 곤란 하단 말이야. 그래서 차라리 네 채무를 내가 대신 갚고 끝낼려고 캐시콜뱅크에 전화를 했었지. 헌데 잠시 후에 다시 걸려온 캐시콜 부장이란 놈이 수상한 말을 하는 게 아니겠냐? 처음엔 채무를 대신하려는 너와의 관계를 묻더니 자꾸만 네가 나와 함께 있는지 알려는 눈치더라고. 이건 놈들이 대출금 회수만 노리는 게 아니라 너와 다른 문제도 있다는 뜻 아니겠냐? 이건 분명히 지난번 오정철 패가 잃었다는 엽총 총알을 찾자는 수작이 뻔 해. 놈들은 그걸 네가 가진 줄 아는 거지. 좌우간, 그 총알이 뭔 진 몰라도 네 대출금 보다는 훨씬 중요한 건가봐. 돈에 환장한 놈들이 돈보다 너의 행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그것 말고 더 있겠냐? 그러니 나를 통해 네 행방을 캐자는 수작인데 그놈들 입장에선 나 역시 문제거든. 놈들이 이제껏 내 신상을 모르고 있겠냐? 나는 신사장의 라이벌 아니냐? 그러니 위험한 건 너만이 아니잖아? 이참에 경쟁자인 나까지 없애고 싶어 할 거란 말이다. 아무래도 찜찜해서 지원 병력 몇 명 보내라고 우리 회장에게 연락했다. 놈들이 지금도 대여섯 명이 쑤시고 다니는 모양인데 나는 나대로 방비를 할 테니까 넌 가만히 엎뎌 있어라. 이러다 놈들과 전면전으로 번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야.    참 다음부턴 다른 휴대폰으로 우리 어머이 한테 걸테니까 그리 알아라. 도청 당할 수도 있으니까. 알았지?"

통화를 마친 진우는 망연했다. 괜히 고향으로 내려와 친구를 곤란한 지경으로 몬 것 같아서였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백세 노인이 지어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진우로서는 못 견디도록 송구한 노릇이었다. 밥 짓는 것 쯤은 자신이 대신하고 싶었지만 노인의 고집이 허락치 않았다.

"덕배가 네 걱정을 하더라. 돈놀이 하는 놈들이 내려 온 것 같다지?"

마당을 서성이던 덕배 아버지의 말이었다.

"아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님 어쩌면 좋을까요?"

"허허 창이 들어오면 방패로 막아야지. 몸으로 막을 테냐? 허고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도망을 다니는 데는 한계가 있느니라. 그러지 않아도 급하면 숨을 곳을 마련해 달라고 덕배가 부탁하더라. 나를 따라 오너라."

"? 아버님을요?"

앞장선 노인이 향한 곳은 벌통이 있는 양봉장이었다. 노인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처럼 진우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는 눈이 있을지 모르니 말로 하마. 저 왼 쪽에서 두 번째 줄, 세 번째, 푸른색 벌통이 보이느냐?"

"."

"저 벌통 뚜껑을 열면 맨 뒤에 앞 뒤가 막힌 소광이 있니라. 그 속에 지난번에 네가 본 콘테이나 열쇠하고 그 집과 땅 양도증이 들어 있다. 누런 봉투에는 은광에 대한 모든 서류와 갱() 입구 열쇠가 들어 있다. 두곳 모두 채굴권도 아직 십여 년씩 남았느니라. 덕배가 감옥에서 나오면 마음잡고 광산이나 하라고 십여 년 전에 사 놓은 것이다. 헌데 그놈은 이런 거에는 도통 관심이 없더라. 그저 항상 날건달 질로 한몫 챙길 궁리만 하는 놈이거든. 그러니 이제 나는 늙었고 덕배는 저러니 저 속에 있는 것은 네가 가지거라."   

"?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저는 그런 방면에 소질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덕배가 있는데 저라니요? 아이고 전 못 받습니다."

덕배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 듯 차근 차근 이르는 말에 듣고만 있던 진우가 펄쩍 뛰었다.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친아들인 덕배가 있는데 내가 뭐라고 나에게 광산을 물려준단 말인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진우야 내 말을 새겨 듣거라. 내가 이제껏 죽지 않고 살아보니 인생이란 별 거 없더라. 첫째 사람 사는 것이 덧없이 짧더란 말이다. 네 생각에 백년이라면 긴 것 같지? 아니야. 백 년도 금세야. 그 짧은 인생에, 거기다 황금 같은 젊은 시절에, 네놈 같이 쫓겨만 다니면 너는 언제 네 인생을 살겠느냐? 네게 닥친 이런 시련은 아무 것도 아니니 힘을 내서 털어 버리고 짧으나마 네 인생을 살아라. 나는 네가 보다시피 많이 늙었느니라. 네게 은광과 콘테이너와 땅을 주는 것은 다른 뜻도 있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지? 나라면 절대 그놈들 돈을 더 이상 갚지 않겠다마는 너는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하는지 보고싶구나. 은광을 팔든 땅을 팔든 놈들의 돈을 갚을려면 갚고 말려면 말아라. 놈들이 채권을 포기하게 만들면 더욱 좋겠지만 어쨋던 법이든 주먹이든 앞으로 네 맘대로 해결해 보란 말이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그놈들과 어찌 해결하는지 구경값으로 저걸 미리 주는 것이니 부담 가질 것도 없다. 그러니 한번 해 보거라."

진우는 난감했다. 노인의 말을 되 집어 보면 광산을 팔아서라도 캐시콜뱅크 놈들과 해결을 보라는 것인데 달리 해석하면 절대 더 이상의 빚을 갚지 말라는 요지 아닌가? 결국 아무 것도 팔지말고 놈들의 빚을 해결하라는 숙제를 준 것이다. 이걸 나보고 어찌 해결하라는 걸까? 진우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여우는 굴로 드나드는 구멍이 둘이요, 토끼는 입구가 셋이니라. 너도 은광 두 구멍과 콘테이너 하나가 있으니 입구가 셋 아니냐? 그러니 너도 이제 해볼만 하겠지? 범 사냥에는 힘보다는 꾀요. 꾀는 다름 아닌 그곳의 지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포수는 지리를 이용해서 몫을 잡고, 가만히 기다렸다 쏴야 하느니라. 놈들이 여길 찾아오면 너도 지리를 이용하거라. 그러자면 먼저 네게 준 세곳의 지리를 익혀 둬야겠지?"

말을 마친 덕배 아버지는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진우는 혼란스럽기까지 한 이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를 썼다. 놈들의 돈을 갚을 수만 있다면 정말 갚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에겐 돈은 없다. 대신 방금 덕배 아버지로부터 받은 부동산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팔아 놈들에게 바치는 짓은 죽어도 못할 짓 아닌가? 덕배 아버지의 의중도 그런 것이었다. 차라리 법에 호소해서 자신도 사기대출 피해자임을 증명해 볼까? 그러려면 막대한 변호사 고용 비용은 어쩌고? 파산 신청을 해 버릴까? 그것도 시간과 돈이 드는데다 판결을 기다릴 동안 먹고 잘 곳도 없는 몸이 아닌가? 그보다 먼저 법원으로 가기도 전에 놈들에게 잡힐 것이다. 설사 잡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곳을 벗어나면 머물 곳도 없었다. 당장 갈아입을 팬티 한 장없고 볼펜 한 자루 없는 철저한 거지 신세인 것이다. 진우는 우울했다. 지난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울한 삶의 연속이었다. 수미와의 짧은 단꿈이 악몽이 되고 부터는 우울뿐 아니라 절망적 패배감까지 자신을 괴롭혔다. 그렇다고 자살을 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덕배 아버지의 말 대로 이 난관을 극복해 보리라. 이 문제만 해결되면 일자리도 다시 알아보리라. 놈들은 합법을 가장한 비열한 협박으로 인간의 심신을 파괴시키는 악마였다. 캐시콜뱅크 놈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는 몸 아닌가? 진우는 덕배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내가 쓰던 것이다. 너도 필요할 게다."

말씀을 따르겠다는 뜻을 전하자 덕배 아버지가 진우에게 작은 배낭을 내 밀었다.

"이건....?"

"풀어 보거라."

배낭 속에서 나온 것은 광부용 헤드램프와 손전등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보던 물건인 것이다. 시험 삼아 스위치를 켜자 환한 빛이 벽을 비추었다.

"둘 다 집에서 충전이 된다. 근래에도 간간히 밤에 쓰곤 했니라. 광산에 들어갈 때 꼭 필요하니 여벌 건전지까지 충전을 항시 해 놓거라."

"."

"그건 탐사용 망치니라. 내일이라도 네 이름으로 돌려놓겠지만 광산권이 네게 넘겨지면 너도 광산 공부는 좀 해야 될 게다."

", 이건 영화에서 봤습니다. 이걸로 바위를 톡톡 치더군요."

"치기만 하면 무얼 하느냐? 금돌인지 은 돌인지 그걸 알아봐야지. 노름판에서 보는 눈을 훈련하듯 광맥을 보는 눈을 키운다면 부자 중에 떼 부자가 될게다.. 허허."

배낭에는 그 밖에도 나침반과 줄자, 호루라기, 라이터와 양초가 들어 있었다.

"철이 섞인 광산에서도 나침반이 제 방향을 가르킬까요?"

"글쎄다. 그런 건 써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광산을 살 때 다른 연장들과 함께 있던 것이니라."

"다른 연장이요?"

"삽이나 곡갱이들 말이다. 콤푸레샤도 있더라. 참 안전모는 연장 칸 벽에 있니라."

그때 아랫방에서 전화 벨 소리와 진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 누구? 오냐, 알었다."

이어서 방문이 열리더니 전화기를 잡은 덕배 엄마의 손이 불쑥 나왔다.

". 진우야. 덕배가 널 바꾸랜다. 이놈이 갑자기 왜 내 전화로 너를 찾냐?"

조금 전에 통화를 한 덕배가 그새 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급한 일 때문일 거였다. 전화기를 건내받는 진우는 가벼운 전율마져 일었다.

", 나다."

"야 야, 이상한 일이 터져버렸다. 우리 애 하나가 잡혀가 버렸다.?"

"뭐야? 누가 잡아가? 어디로?"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전당사 직원이냐? 아니면 호텔?"

"둘 다 아니야. 실은 내가 주류 도매상에 취직시켜 감춰둔 애들이 둘 있었거든. 걔들 중에 한 놈이 잡혀갔단 말이다. 걔들은 태백 정선 영월로 다니며 거래처에 술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데 한놈이 잡혀 갔나봐. 오전에 태백 지역을 다 돌고 사북으로 오는 길에 승용차가 한 대가 추월을 할 듯 말 듯 계속 빵빵거리더래. 기분이 상한 우리 애들이 차를 세우고 그쪽으로 다가가니까 차에서 두 놈이 내리더니 다짜고짜 손을 쑥 내 밀더라지. 헌데 그 뒤는 전혀 생각 안 난 댄다. 전기 충격기로 제대로 한 방 먹은거지 뭐겠냐? 운전하던 놈이 깨보니 자기는 운전석에 다시 실려 있고 같이 있던 구본웅이란 애가 없더란다. 내게 연락을 하려는데 놈들이 전화기도 갖고 갔더란다. 이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겠냐?"

"아니? 납치를 하려면 둘 다 하지. 왜 한 사람만..."

", 그건 그럴 이유가 있지."

진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덕배의 황급한 말이 뒤따랐다.

"그게 말이다. 다 얘기 하려면 긴데...네가 태백에 내려오던 날 탔던 열차 말이다. 사실은 그날 그 열차에 오늘 납치 된 놈도 타고 있었어. 신사장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우리 회장의 지시가 있었던 데다 마침 신사장이 안순태에게 심부름을 보낸다는 정보가 들어 왔었거던. 그게 실은 죽은 용수가 내게 몰래 알려 준 거였어. 그래서 그 구본웅이란 놈이 순태를 밀착 감시를 했는데 이게 어떻게 들통이 났나봐. 아 참. 그날 열차에서 안순태가 네 몸을 뒤지는 것도 구본웅이 봤다더라. 구본웅이 말로는 안순태가 화장실에서 엽총 총알을 잃은 것 같더래. 도대체 그 총알이란 게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거기에 구본웅이 연루 되서 놈들에게 잡혀간 게 틀림없어. 놈들은 진우 너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네 행방을 모르니까 다음으로 의심이 가는 구본웅을 납치한 것 같아. 문제는 놈들이 구본웅을 털다보면 내가 들어날 것이고 내가 들어나면 너와의 관계도 밝혀 질 거란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지는 것 아니겠냐? 하여튼 우리 애들을 다 풀어서 놈들의 행방을 쫓고 있으니 너는 거기 꼼짝 말고 짱박혀 있어라. 알았냐?"

", 알만하다. 그날 화장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 청년이구나. 나 다음에 화장실로 들어 갔었지. 그리고나서 안순태라는 덩치가 나를 찾아왔었고...납치됐다는 사람이 그 청년이었구나. 어쨋던 이렇듯 일을 꼬이게 만든 내 잘못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도울 길은 없겠냐?"

". 네가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잘 숨어 있는 것만도 나를 도와주는 거야. 이럴 때 너까지 놈들에게 잡히면 진짜 골치 아파진단 말이다."

통화가 끝나자 진우는 비로써 열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너무나 소상히 알고 있던 덕배가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자신은 약간이나마 의심했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신사장 패는 어떻게 구본웅이 안순태의 감시자인 걸 알았을까? 구본웅의 얼굴은 어떻게 알았으며 있는 곳은 또 어떻게 알아냈을까? 진우는 그날 새벽 태백의 해장국 집에서 오정철 패를 향해, 자기 뒤에 화장실을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안순태가 복도에 서있던 구본웅의 얼굴을 평소에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진우로서는 구본웅을 어떻게 알고 놈들이 납치를 했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알고보면 구본웅의 존재가 들어난 것은 실은 일주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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