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10. 사느냐 죽느냐(1) 또 다른 계산

fiction-google 2024. 3. 15.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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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태종이 어떻게 됐어?"

"오덕일 보냈으니 곧 올겁니다."

"아까 내가 말한 대로만 해. 쓸데없는 인정 베풀지 말고."

"인정이라뇨? 어림없습니다. 형님이 눈만 감아주신다면 아예 묻어버리고 싶은 걸요."

"안 돼. 보내야 돼. 그리고 이제껏 그놈들을 이용해 시간을 끌었는데 어쩌면 고마운 놈들 아니냐?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서 우리가 비행기 좌석에 앉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하면 안 된단 말이야. 알어?"

"물론이지요. 형님, 그래서 지금껏 참은 것 아닙니까?"

좁은 찜질방의 온도계는 90도에 육박해 있었다. 땀으로 온 몸이 번들거리는 천태종은 호흡마져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기동은 포식한 살무사가 햇볕을 즐기듯 오히려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땀을 빼니 비로소 피로가 조금 가시는 듯했던 것이다. 석호를 데리고 죽은 원무현이 숨어 있던 장소를 다녀온 김기동은 맥이 빠져 있었다.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험한 산길에서 죽도록 고생만 한 때문이었다. 지난날의 경험을 살려 컨테이너의 안팍을 샅샅이 살폈으나 하일의 말처럼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산을 내려올 때쯤엔 실망감이 피로를 재촉해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럴 땐 술이고 계집이고 다 귀찮기만 할뿐 휴식만한 약이 없을 것이었다. 일찍 잠이나 잘까 하던 김기동은 천태종과 함께 찜질방을 찾았다. 심신의 피로를 푸는데엔 찜질방만한 게 또 없었다.

"다시 한 번 얘기 하는데 목표로 한 돈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그리고 끝까지 오정철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고. 알았냐?"

"그러지 않아도 애들 입조심은 시켜놨습니다."

"잘했어. 신사장이 내달에나 내려오면 좋겠는데....어쨋든 오정철을 잘 대해 줘."

". 형님."

김기동이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을 하려다보니 이제는 목구멍까지 더운 공기로 차서 천태종은 정신마저 혼미스러웠다. 그렇다고 당장 뛰쳐나가기도 자존심 상하는 노릇이라 천태종은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천태종은 김기동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수건을 머리에 올린 김기동이 몸을 좌우로 흔들며 눈을 감은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그 입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천태종이 뜨거움도 잊고 픽 웃음을 흘렸다. 입술만 보고도 지금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빈가..바아...."

역시였다. 들릴 듯 말 듯 김기동은 사랑은 나빈가봐를 부르고 있었다. 현철이 부른 그 노래를 자신의 18번으로 삼은 김기동은 다른 노래는 부를 줄 몰랐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이자식은 이럴때 오면 좀 좋아? 에이 빌어먹을....’

천태종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덕이었다. 천태종은 정신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유리창 넘어의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기로 했다. 건너편 샤워기 밑에는 서너 명의 사내들이 시원한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그들은 얼굴의 생김새는 물론이고 키나 체격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물건의 크기 역시 제멋대로였다. 비곗살에 파묻힌 배불뚝이의 그것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 옆의 두 사람은 크기가 비슷한 보통 사이즈였다. 그러나 끝에선 사내가 돌아서자 천태종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비쩍 마른 몸통에 매달린 그 물건은 당나귀가 무색할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물건의 크기만큼은 내심 자부심을 갖고 있던 천태종이었다. 그러나 그 사내의 물건에 대면 갓난애에 불과했다. 이제껏 부하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의 기를 죽여 온 자신의 물건이 단번에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보던 천태종이 무심코 김기동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껏 몰랐던 사실이 눈에 들어오자 천태종은 쾌재를 불렀다. 수건 아래에 보이는 김기동의 물건에 비하면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당나귀였던 것이다. 이제껏 그 물건 앞에서 쩔쩔매던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짜아식이 말이야..."

천태종이 무심코 내어 뱉었다. 순간 김기동의 눈이 반짝 떠졌다. 그리고 짐승을 닮은 특유의 고리눈에 살기를 띄워 자신의 아랫도리에 시선을 둔 천태종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태종이 흠칫 놀라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으나 이미 자신이 반 박자 늦었음을 스스로 알았다.

"참 대단하십니다. 형님, 지금 온도가 거의 90도나 됩니다. 전 더워서 쓰러질 것 같은데요?"

사태를 얼버무리려는 천태종의 과장된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렸다. 아무런 일 없다는 듯 김기동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에게 병신이란 말은 욕이 아니지만 병신에겐 전혀 다른 법이다. 김기동에겐 청소년 때부터 콤플렉스로 자리 잡은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물건 크기였다. 친구들에 비해 반 밖에 되지 않는 크기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이 파탄이 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후 중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재혼은 생각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여자를 밝혔다. 다만 그의 물건을 경험한 여자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즐거움을 포기할 김기동이 아니었다. 돈이면 다 통했다. 여자를 돈으로 잠시사면 되는 것이다. 당나귀만한 물건이라고 해서 쾌락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토끼 같다고 해서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고객으로서의 김기동은 여자를 만족시키려 애쓸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좋았다. 내 돈 내고 여자들의 기분까지 맞춰 줘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자란 배가 고플 때 식당과 같은 존재였다. 고객인 자신이 이집 음식 맛이 있느니 없느니 따질 일이지 식당 주인이 손님의 입맛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짬뽕이건    짜장이건 다 마찬가지였다. 바닥이 보이도록 다 먹어 치우든 먹기 싫어 남겼든 그걸 가지고 따지거나 불평하는 식당 주인은 없었다. 뿐이냐? 휘젓고 들쑤셔 온통 짬뽕 국물이나 짜장 찌꺼기로 더럽힌들 그릇이 젓가락을 원망하는 법도 없었다. 그 간단한 원리를 깨닿는 순간부터 김기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자만 상대했다. 그녀들에게 김기동은 왕이었고 속으론 어떨지 몰라도 겉으론 감히 그를 비웃지 못했다. 아니 김기동의 물건을 비웃기 전에 짐승 같은 그의 고리눈에 먼저 질리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김기동 쪽에서 먼저 음식 맛을 불평하기 시작했고 매번 지불한 돈보다 더 많은 댓가를 요구했다. 갈수록 김기동은 여자들을 가학적으로 다루어 쾌락을 추구했다. 정상적으로는 점점 만족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속에는 더 큰 콤플렉스가 깊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 마당에 물건에 견주어 자신을 깔보는 듯한 천태종의 말을 듣자 용서 못 할 앙심이 생긴 것이다. 김기동은 부엉이와 천태종 모두를 없애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 여기다."

창밖에 눈길을 꽂고 있던 천태종이 문을 밀며 큰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구세주 오덕이가 나타난 것이다. 옷을 입은 채 사방을 두리번 거리던 오덕이 어그적 거리며 천태종 쪽으로 다가왔다. 어색해진 분위기와 뜨거운 열기로 거의 탈진 상태 직전이던 천태종은 오덕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 그 새끼들 기부스는 풀었냐?"

", 과장님,"

"그래서?"

"방금 이발을 끝내고 탕으로 들어갔습니다."

"알았어, 곧 나갈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

천태종과 오덕이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김기동이 몸을 일으켰다. 천태종이 황급히 따라 일어나 문을 열었다,

"끝나면 일서네 가게로들 오라구 일러라."

천태종에게 지시를 한 김기동이 수건 자락을 꼭 잡고 냉탕으로 향했다.

"새옷 입혀서 일서네 가게로 열시까지 오란 말야. 알았지?"

". 과장님."

김기동을 따라 냉탕으로 가려던 천태종은 갑자기 발걸음을 땔 수 없었다.    찬물로 더욱 쪼그라질 김기동의 물건을 차마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결국 샤워 부스에 들어가 따로 물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북은 바닥이 좁아 인구로 보나 가호수로 보나 규모면에서는 여느 읍보다 작은 동네였다. 개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빽빽히 늘어선 집들은 거의가 낡은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빌라이고 좀 번듯하다 싶을 건물은 예외없이 술집과 식당이었다. 한걸음 나아가 좀 더 높고 깨끗한 건물들은 밤이면 하나 같이 네온을 번쩍이는 호텔과 모텔이었다. 그리고 전당사라 이름 붙여진 간판이 많은 곳이기도 하였다. 외부인이 보기엔 카지노가 지척에 있어 읍내로 눈먼 돈이 펑펑 쏟아질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도 않았다. 돈을 버는 곳은 한정된 업종 뿐이었다. 인간의 삶의 기본인 먹고 마시고 자는 곳이 장사가 되는 것이야 당연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특성상 돈을 버는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북의 상징이라 할 전당사라는 대출업인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전국에서 몰려든 도박꾼들이 오히려 갖고온 돈을 몽땅 털린 다음 잃은 돈을 만회해보려는 욕심에 타고 온 차나 귀금속을 잡혀 돈을 빌렸다. 따도 갚아야 하고 잃어도 빌린 돈은 갚아야 하니 그동안 새끼를 친 이자가 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노름꾼이나 관광객이 사북에서만 먹고 자거나 돈을 쓰는 것은 아니었었다. 사북의 좌우로 가까은 태백과 영월이 있어 오히려 큰손들은 그리로들 몰렸다. 사북에 비해 규모가 열배 이상 큰 태백은 식당과 술집도 많았다. 그 업종 만큼은 광산 경기가 좋을 때와 다름없이 번창해 온 것이다. 태백에도 신사장이 확보한 두 군데의 영업장이 있었다. 그 역시 오정철의 부하를 시켜 영업을 하던 곳이었다. 그 두곳 술집 모두를 최근에 의정부에 있던 천태종 자신의 부하들을 불러내려 교체를 했었다. 이로써 태백 사북 지역의 사업장은 천태종이의 손아귀에 든 것이다. 밀려난 오정철의 부하들은 당장에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하자 할 수없이 택시나 트럭 기사로 나섰고 아니면 다른 술집의 바텐더가 되어 나갔다. 사북의 업소도 마찬가지였다. 오정철이 관리하던 호텔 한곳과 두 군데 전당사는 이미 천태종이 접수했고 유일하게 일서가 운영하는 술집만 남아 있었다. 일서가 워낙 수완이 있어 운영을 잘 하기도 했지만 신사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일서는 신사장과 먼 친척 관계였다. 또한 일서는 오정철 밑이긴 했지만 업소에서 밀려난 무리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다. 용수와 유시종이 죽고 없는 지금으로서는 오정철, 안순태, 다음이 일서였다. 오정철과 안순태가 없는 사이 흩어진 조직을 단속하고 결속을 유지시킬 의무가 있다고 믿은 일서는 계속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천태종과 김기동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어디 계시냐?"     

", 저 뒷방으로 가 봐. 헌데....?"

가게로 들어서는 오덕을 본 일서가 김기동이 있는 밀실을 가르키며 눈은 출입문에 두었다. 두어 명의 덩치들의 뒤를 따라 오정철과 안순태가 들어서고 있었다. 방금 이발과 목욕을 마친 멀끔한 얼굴에 검은 양복을 입은 모습이 잘 어울렸다. 오정철은 그동안 햇볕을 보지 못해 가득이나 희던 얼굴이 더욱 희었고 안순태는 배가 쑥 들어가고 볼에 살이 빠져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형님들, 안녕들 하셨습니까?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일서가 감방에서 방금 출소한 형님에게 하듯 진정이 묻어난 자세로 깊이 허리를 굽혔다.

"고생은 업소를 꾸려나가는 네가 더 했겠지....나야 뭐....."

"제가 고생이라니요? 아닙니다 형님, 아니 과장님."

"애들에게 연락은 되냐?"

", 소식을 듣자말자 연락을 했습니다."

"음 알았다. 나중에 얘기하자."

일서의 어깨를 다독여 준 오정철이 오덕이 간 곳으로 향하자 일서가 냉큼 앞장을 섰다. 밀실에는 벌써 김기동과 천태종이 대작을 하고 있었다.

", 오과장, 오랜만이군."

김기동이 예의를 갖춘답시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손을 내 밀었다. 오정철이 건성으로 손을 잡았다 놓으며 김기동의 맞은편 자리로 한걸음 옮겼다. 그 자리에 있던 천태종이 마지못해 김기동의 옆으로 옮겨 앉았다. 오정철과 안순태는 탁자 밑으로 다리를 뻗고 등을 소파에 기대어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했다. 깁스를 제거한 부분이 몹시 불편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이 건방지다고 느낀 천태종이 한마디 하려고 몸을 세우자 눈치빠른 김기동이 먼저 손을 들어 제지를 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고생들 많았지?"

김기동이 술병을 들어 오정철에게 내밀었다. 오정철이 말없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자 김기동이 술잔을 가득 채웠다.

"안순태 너도 한잔 받어, , 받으라구,"

"뭡니까? 이거? 화해하자는 술입니까?"

"?"

고개를 숙여 눈만 치켜든 안순태가 김기동을 향해 쌓인 감정을 들어내자 의외라는 듯 김기동 역시 안순태의 눈빛을 맞 받았다. 오정철에 비해 단순한 안순태였다. 이제껏 굴 속에 갇혀 고생한 생각을 하니 김기동에게 감정이 없을 수 없었다. 오정철은 말없이 술잔을 비워 빈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김기동은 안순태로 향하다 멈추었던 술병을 방향을 바꿔 오정철의 잔에 다시 기울였다.

"어이 안순태, 내게 감정이 있나본데 조직 생활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냐? 내게 개인적인 감정을 가질 건 없어. 그리고 사실 원인 제공을 한 건 너잖아? 안 그래?"

"설사 그렇다 해도 같은 조직에서 그래선 안 되는 겁니다. , 씨발, 우리도 가오가 있는데 애들을 시켜 욕을 보이다니요."

"? 씨발? 안순태, 너 지금 나하고 한번 해보자는 거야?"

"해보자는 게 아니라 그러는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우리를 조져서 얻은 정보로 그동안 총알은 찾았습니까?"

"네가 물은 총알 건을 먼저 말하지. 그건 신사장에게 이미 말했지만 범인은 네가 생각했던 대로 이진우라는 바로 그놈이야. 모든 정황으로 봐서 그놈이 네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 이미 총알은 그놈 주머니에 있었단 말이야.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그날 네가 서울로 무언가를 가지러 갔다는 정보가 연합파 곽덕배에게 샌 거야. 오정철이 너의 파트에 용수란 놈이 있었다지? 그놈이 곽덕배 친구인 걸 알았어 몰랐어? 보나마나 그놈이 곽덕배의 첩자였단 말이야."

"뭐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요. 용수는 10년 이상을 우리와 생사를 같이 한 사이란 말입니다. 곽덕배와는 어릴 적 동창일 뿐이었어요."

"맘대로 생각해, 그놈 행방을 찾고 있으니까 잡히기만 하면 너도 알게 되겠지. 또 한 가지, 이진우가 캐시콜뱅크 돈을 떼먹고 나른 놈인 건 알고들 있었냐? 몰랐지? 나는 그놈이 어디 있는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어. 잡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란 말이야.    이제 곧 그놈의 꼬리가 보일 거라구."

"그 정도의 정보를 얻자고 그렇게 우리를 욕보였단 얘깁니까?"

"좋아. 그점에 대해서는 내가 깨끗히 사과를 하지. 그러나 내가 직접 너를 다룰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윗분의 지시를 어길 수도 없으니 어떻하냐? 그래서 그랬던 걸 네가 이해해야지 누가 하냐? 안 그래?         

김기동이 선선히 사과한다는 말을 하자 안순태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사과를 하는사람에게 계속 시비를 건다는 건 건달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계속하면 단번에 쪼잔한 놈으로 찍힐 것이었다. 안순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스스로 잔에다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김기동이 안순태에게 한 사과는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 사흘 후에 시작될 도박장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사과는 열번이라도 할 용의가 있었다. 현 시점에서는 돈이 목적이지 체면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부터 첫번 째 장소인 모처에 시설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하던 하우스를 열기 전에 오정철 패거리를 보내놓고 볼 일이었다. 그러자면 잠시라도 말썽이 있어선 안 될 것이었다. 지금도 옆에 있는 천태종이 안순태가 말 할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이는 걸 탁자 밑으로 허벅지를 찔러 참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천태종은 불만스런 얼굴로 김기동을 돌아보았다. 충성을 보이려는 심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였다.

"너 산통 깰래?"

김기동이 눈에 힘을 주며 천태종에게 낮게 일렀다. 천태종은 그제야 기가 죽었다.

"길게 얘기 하지 않겠다. 오정철 너는 내일 서울로 갈 때 밑에 애들 모두 데리고 가라. 단 일서는 당분간 여기다 그냥 둬. 당장은 일서 만큼 할 놈이 없으니까. 나머지 열한 명을 다 데려가도 좋아. 일서가 벌써 연락을 취했을 테지?"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신사장님이 내리신 지십니까?"

이제껏 말이 없던 오정철이 뚜벅 물었다.

"그럼 내 마음대로 한 줄 알았나?"

"그렇다면 좋습니다. 지금 태백으로 가겠습니다. 애들 오는 대로 데리고 가서 내일 올라가겠습니다. 그럼..."

"? 술이나 마시다 천천히 가라고. 이러면 섭섭하잖아?"

"오랜만에 마시니 잘 받지를 않네요. 야 순태, 일어나. 그럼...."

오정철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그대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순태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 , 저 새낀 인사도 없이... 저걸 그냥...."

천태종이 발을 구르며 뛰쳐 나가려하자 김기동이 천태종의 소매를 잡았다.

"놔 둬, 역시 오정철이야. 생각 밖으로 긴 말이 필요 없어 좋구만..... 이럴 땐 매보다 사탕을 줘야지...가서 일서나 불러 와."

오정철을 배웅하던 일서가 자신을 부르는 천태종의 고함 소리에 놀라 달려왔다.

"너 돈 좀 갖고 있지? 여비하게 이백 만원만 종철이 갖다 줘. 아니 애들이 많으니까 한 삼백만 원 갖다 줘라."

제 것도 아닌 돈이니 인심을 쓴들 아까울 게 없는 김기동이 이럴 때는 통이 큰 척했다. 일서는 그러지 않아도 돈을 주고 싶던 차에 잘됐다는 듯 재빨리 금고의 돈을 꺼내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언제 모였는지 택시와 트럭 기사를 하던 부하들이 죄다 오정철과 안순태에게 엉겨 있었다. 오정철은 일일이 그들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감정이 여린 어떤 녀석은 눈물을 짜고 있었다. 그동안 천태종과 그의 부하들에게 당한 수모가 생각난 것일 터였다. 일서는 그중의 한명인 삼수를 불러 돈을 주었다. 그는 일서 다음 서열로 매사가 꼼꼼한 인물이었다.

"과장님 잠깐만 좀..."

일서가 오정철에게 눈짓으로 불렀다.

"? 그러지."

몇 발자국 옆으로 떨어져 나온 오정철이 일서와 마주섰다.

"네가 여기 남게 되어 어찌 보면 잘 됐다. 김기동이와 천태종을 잘 감시 해. 무슨 일 있으면 연락 하고...재까닥 달려 올 테니까."

", 과장님, 그리고 지난번 제가 드린 것 잘 간수하셨지요?"

"그럼, 혹시 잃을까 그걸 여태 깁스 사이에 끼우고 있느라 혼났다. 가서 분석을 할 테니 걱정마라."

"조심하십시요. 그게 탄로 나면 전 죽습니다. 지하 창고에 가둬놨던 구본웅이란 놈도 지난달 오덕이 패가 끌고 나갔습니다. 뒤에 들으니 묻었답니다."

"납치해 왔다는 연합파 곽덕배 하수 그놈 말이지?"

"."

"신사장의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니냐?"

"아닙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몰라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김기동은 조직과 따로 노는 느낌이 듭니다."

일서는 말을 하면서도 연신 출입구를 살폈다.

"좌우간 너는 위험한 행동은 절대 하지 말고...몸조심해라. 알았냐? 어서 들어가 봐. 놈들이 의심할지 모르니까."

", 과장님, 안녕히 가십시요."

"내가 아주 가냐? 사장님 모시고 곧 내려 올 테니 걱정마라."

불안 해 하는 일서를 뒤에 두고 오정철은 일행과 섞였다. 잠시 후 오정철을 비롯한 부하들은 택시를 나누어 타고 태백을 향해 출발했다. 그때까지 밀실에서는 김기동과 천태종이 두 병째의 양주를 비우고 있었다

"시작 날짜에 맞출 수 있겠지?"

김기동이 몸을 젖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럼요. 오늘 하루만에 두 동의 골조가 다 세워졌습니다. 내일 지붕을 씌우고 바닥을 깔면 된답니다."

"된답니다? 아무리 경험이 없대도 그렇지.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지 된답니다가 뭐야? 그놈들 말을 믿지 말고 네가 직접 챙기란 말이야. 시작부터 차질이 생기면 우린 끝이야. 끝이라고. 물주들이 가버리면 그 걸로 끝이지 별 수 있어?"

김기동이 벌떡 몸을 이르키며 고함을 질렀다. 천태종이 깜짝 놀라 고개를 떨구었다.

"잘들어. 당장이라도 판을 벌려도 좋을 만큼 어떻케서든 내일까지 하우스를 완성을 하란 말이야. 모레는 기술자들을 시켜 예행연습을 하게 해야 돼. 그래야 다음날 개장을 하지. 일손이 부족하면 업소의 애들이라도 데려다 쓰란 말이야. 네 일은 어떻하던 내일 까지 끝을 내. , 천태종이....우리가 지금 남의 일 하냐? 이거 실패하면 너나 나나 남은 인생 좆되는 거 모르냐? 이번 일은 우리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란 말이다."

김기동이 무슨 소리를 하며 악을 쓰고 욕을 해도 천태종은 끽 소리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김기동의 말이 다 옳은 소리인 것이다. 조직 생활 16년에 처음이요 마지막일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남은 인생을 거지처럼 살거나 조직을 배신한 죄로 죽음일 것이었다. 약간은 안일 했던 자신의 생각을 깨달은 천태종은 김기동의 말에 승복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정신을 차려 내일까지 모두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개장 후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할 준비를 해 놓겠습니다."

", 알았다니 더 얘기 안 하겠다. 그리고 끝나는 대로 곧바로 다음 장소에도 설치할 준비를 해 두란 말이야. 낌새가 이상하면 곧바로 이동을 할 테니까. 그러니 미리미리 제 3의 장소와 다음 장소에도 설치 준비를 해 둬. 한곳에서 삼사 일 이상은 못 해."

". 형님. 그런데 목표로 했던 날을 채울 수가 있을 까요?"

"멍청한 소리.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지. 언제 끝장이 나던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목표로 했던 돈은 채우고 말 거라는 것 말이다."

"그 전에 신사장이 내려오면 어쩌지요?"

천태종이 신사장을 들먹이자 김기동은 아랫 입술을 윗 송곳니로 지긋히 깨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리눈의 시선을 허공에 두고 한손을 품안에 찔러넣었다.

"방해물은 없애야겠지......"

김기동이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천태종은 분명히 들었다. 또한 그가 품에서 꺼내드는 권총을 보았다.

"이판사판이란 말 알지?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이번 판에 내 모든 걸 걸었다. 기회는 이번 한번 뿐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사장이든 회장이든 그 누구도 판을 망치게 둘 수가 없어. 필리핀에서 왕으로 사느냐 여기서 조직을 배신한 거지로 땅에 묻히느냐 그야말로 이판사판이란 말이다. 태종이, 너도 이 권총이 쓰이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것이다."

천태종은 김기동의 말하는 표정과 손에든 38구경 권총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그동안 보인 그의 행동으로 봐서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정말 이번 일을 방해하는 사람은 모조리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신사장이나 천태종 자신도 예외가 없을 것이었다. 천태종은 이번 일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에 절대 동감했다.

"이판사판이라는 형님의 말씀을 저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 일을 실패하면 형님과 함께 죽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형님 말씀을 적극적으로 따를 테니까 그 총은 치우시지요. 애들이 보면 곤란합니다. 형님."

"내일 오정철이 올라가 신사장을 만난다 해도 당장 나와바리를 되돌려 주지 않을 건 뻔 해. 돌려줄 거였으면 풀어주는 즉시 돌려 줬겠지. 네게 나와바리를 인계하란 소리도 없었고 말이야. 이게 다 내 아이디어 아니냐. 이깟 나와바리를 어디에 쓰겠냐마는 하우스가 끝날 때까지 네가 여기 있어야겠기에 내가 신사장에게 손 좀 썼었지. 하우스를 운영할 기술자와 인원을 확보하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더구나 그놈들이 눈치를 채면 곤란 하잖아? 그래서 그놈들의 배신을 좀 부풀렸지. 신사장이 오죽 화가 났으면 심복 중에 심복인 오정철과 안순태를 그렇게 가둬 놓고 연락마져 끊었겠냐? 오늘 놈들을 풀어준 것도 내 입김이 들어갔기 때문이야. 그놈들을 보내야 우리 사업을 시작할 것이니까. 허지만 오래지 않아 놈들이 다시 내려올 건 틀림없어. 이번 일도 신사장 성격으로봐서 오정철을 용서하고 당분간 쉬게 할 거야. 교통사고 때 다 낫지도 않은 놈들을 가뒀었잖아? 최소한 열흘 정도는 쉬게 하겠지. 신사장 자신도 아직 물리치료를 하고 있으니까...어쨋든 그 전에 너와 난 번개 처럼 일을 해치우잔 말이야. 알아들었지?"

", 형님."

개장을 눈 앞에두고 천태종에게 너무 겁을 줘도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김기동은 신사장과 오정철이 당분간 내려오지 않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찰도 아닌 자신이 권총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잘못하면 그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술이고 나발이고 그냥 자야겠다. 오랜만에 걸음 좀 걸었더니 다리에 쥐가 다 나네그려. ."

"참 낮에 석호 데리고 산에 가셨다던데 가신 일은 잘 되었습니까?"

순간 김기동은 아차 싶었다. 석호의 주둥이를 막아놓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입단속을 시킬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김기동이 산에 가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지형을 살피고 잡초 밭 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주인 없는 컨테이너를 건성으로 둘러보는 척 했을 뿐이었다. 원무현이 외부로 돈을 빼돌린 흔적이 없는 한, 돈은 죽기 전에 살던 곳 어딘가에 있다고 김기동은 굳게 믿고 있었다. 지난번 하일의 말대로라면 오정철을 가두었던 은광이 더 그럴듯 하나 묻은 장소가 굴 안인지 밖인지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어쨋든 원무현이 감춘 돈의 행방에 관해서는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성질이 아니었다.

"비상시에 대피할 장소를 물색해봤지. 하우스 자리도 점검할 겸 해서 말이야."

"비상시엔 자동차가 있지 않습니까?"

". 또 시작이군. 도로를 막고 검문검색을 하는데 어디로 뛰겠다고 차 타령이냐?"

", 그렇군요. 역시 형님은..."

"형님은? 그래 나 짭새 출신이다. ? 짜식..."

"..."

김기동이 장난 끼 섞인 억양으로 흘겨보자 천태종도 그제야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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