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9. 끝의 시작(3) 컨테이너의 침입자

fiction-google 2024. 3. 1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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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산골 해는 생각 밖으로 짧아서 저녁 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았다. 밤을 기다린 소쩍새가 사방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소연 하는 듯한 그 울음소리는 마치 비극의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뱉는 피맺힌 절규 같았다. 그만큼 그 소리는 처량맞고 음울한 것이었다. 그리고 놈은 소리없는 날개짓으로 철저히 모습을 감추며 날아다녔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캄캄한 밤하늘에 무언가가 휙 얼굴을 스치 듯 지나가자 진우는 깜짝 놀랐다. 말이 휙이지 사실 휙 소리도 없는 검은 그림자 뭉치였다. 재빨리 랜턴을 허공에 비쳤건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 나뿐 새, 소쩍새인 것이다. 덕배가 얼추 도착 할 시간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좀 더 서둘러 걸어야 했다. 그러나 산 아래 도로에 자동차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덕배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서둘러 걷던 진우는 안도와 함께 약간 맥이 빠져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때였다. 산중턱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자동차의 전조등이 몇 번 깜박거렸다. 이미 덕배가 와 있었나 보았다. 산을 내려오며 비추는 진우의 랜턴 불빛을 먼저 본 덕배가 신호를 한 것이다.

"아니? 일찍 왔구나. 언제부터 와 있었냐?"

"네가 늦은 거지. 나야 정시에 도착했었지. 추우니까 들어와라."

덕배가 몸과 팔을 늘려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 놀라지 마라. 오늘 저녁은 너의 엄마가 해 주신 밥을 먹었다. 부엌일을 다시 해보시니 좋으신가보더라. 꿩 탕에 꿩 볶음까지....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꿩 탕을 다시 맛봣지 뭐냐?"

", 약이 효과가 있었나보구나. 그건 그렇고 오늘 노인네랑 꿩 사냥 갔었댔냐?"

"갔었지. 저 고추밭 윗쪽으로....헌데 말이다. 떼 꿩을 만났는데 말이야....."     

진우는 꿩 사냥 할 때의 생생한 중계를 위해 손짓 발짓을 동원해 현장감을 살리려 애를 썼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덕배 아버지의 신기에 가까운 총 솜씨를 얘기했다.

"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재장탄을 하셨는지 말이다. 게다가 그 많은 꿩 중에 장끼만 골라서 쏜다는 게 넌 이해가 가냐?"

"난 말이다. 노인네 총 솜씨보다 노인네 자체가 더 미스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어찌된 노인네가 젊은 나보다 뭐든 나으시니 말이다. 총을 그렇게 잘 쏘시는 줄은 네가 말 안 했으면 나도 모르고 있을 뻔 했잖어?"

"난들 보기 전에야 알았겠냐? 어쨋든 오늘 잡은 꿩으로 아주 포식을 했다. 네가 그 맛을 못 본 게 안 됐다만...."

"글쎄 꿩고기보다 어머이가 좋아하셨다니 그러면 된거지 뭐.”

덕배는 자동차 포켓을 뒤져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다시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이어서 불꽃이 일고 담배 끝이 빨갛게 어둠을 태우는 것이 보였다.

"너 언제부터 담배를 피냐? 너 담배 안 폈었잖어?"

"어쩌다 답답할 때 한 대씩 피긴 하지."

"그래? 그럼 지금은 뭣 때문에 답답하냐?"

덕배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휙 던져버리더니 잠시 어둠을 응시했다.   

"어머이가 오래 못 가실 걸 생각하니 답답하단 말이다."

"머라? 네 엄마께서?"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진우는 덕배를 쳐다보았다. 불과 사흘 전에 자신이 덕배에게 그 사실을 주지시키던 말 아닌가? 그러나 오늘의 덕배 엄마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었다.

"이제까지 내가 하는 얘기는 안 들었냐? 너의 엄마께서 오늘 부엌일을 다 하셨단 말이다. 며칠 전과 확 다르시더라고. 네가 지난 번 갖고 온 그 약이 효과를 발휘 했나보더라."

"... 그게 사실은.... 근육 이완제하고 일시 동안 말초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이다. 일종의 마약 이나 마찬가지라더라. 팔 다리뿐 아니라 몸속의 장기가 굳어서 거의 수명이 다 되셨단다. 그냥 굳은 상태로 한 달을 사시느니 잠시나마 움직이시다 가시는게 낫지 않겠냐? 그러니까 그 약은 마지막으로 환자의 근육을 잠시 풀어줄 뿐인 거야."

"?....."

"약은 이 주일 치니까 그 후는 뻔한 것 아니냐?"

"약을 계속 처방할 수는 없단 얘기냐?"

"일주일치 밖에 못 준다는 걸 그나마 우겨서 타 온 거다. 일 주일 이상은 책임 못 진다니 언제 가실지 사실 나도 모르겠다."

"정말 답답하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

그것도 모르고 덕배 엄마가 마당을 돌 때 완쾌까지 기대하지 않았는가? 진우 역시 난감하고 답답했다.

"할 수 없지. 이미 각오는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너도 너무 걱정 마라."

"걱정을 안 한다고 안 하게 되냐?"

", 널 내려오라고 해놓고 아차하면 그냥 갈 뻔했네. 이거..."

덕배는 실내등을 킨 다음 뒷 좌석으로 손을 뻗어 커다란 비닐백을 들어 진우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진우에게 내 밀었다.

"서울로 가지 않겠다니 이 게 필요할 게다. 다른 놈 이름으로 개통 시켰다. 급할 땐 연락은 돼야지. 허고 그건 네 옷하고 신발이다. 나 보다 한 치수 작은 걸 골랐으니 맞을 거다."

"옷이야 아무려면 어때서?"

",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맞아야지 내 옷이 네게 맞을 턱이 없잖어?"

"이거 인터넷 되냐?"

"될 리가 없잖어? 이런 산골에서 통화가 되는 것만도 고맙지"

화면을 켜서 이것저것 확인해보던 진우는 폰을 윗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납치된 너의 직원 행방은 영 못 알아냈냐?"

"아마 죽었을 거라 본다. 살려두면 제놈들이 다칠 거니까. ."

", 나도 잊을 뻔했네. 너 뭐 좀 알아봐 다오."

"뭘 말이냐?"

진우는 낮에 본 일을 그대로 얘기 하려다가 덕배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 자신이 혼자 본 걸로 하기로 했다. 결국 낮에 있었던 일을 아침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아침에 컨테이너를 둘러보러 가다가 산을 내려가는 두 사람을 보았고 컨테이너는 경첩이 뜯겨 안이 난장판이었다는 것을 말했다. 컨테이너와 자신과의 연관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을 찾는 캐시콜의 추심자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용무로 그곳에 왔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 삼년 전 그 곳에 살다 살해당한 사람의 정체를 알아달라고 했다. 진우의 얘기가 끝나자 덕배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그자가 살해된 곳이 정말 그곳이란 말이지?    노인네가 그러시데? 그렇다면 놈들은 그 사건과 관계가 있는 놈들이 분명해. 이거야 원, 넌 어찌된 녀석이 사건마다 얽혀드냐?"

"너도 알고 있는 사건이냐?"

"그럼 알고말고. 삼년 전 내가 출소하던 무렵 일어난 사건이었어. 그때도 캐시콜 놈들은 우리 조직의 최대 라이벌이었지. 그래서 사방에 정보원을 깔았나보더라. 놈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우리 조직으로 정보가 들어오게 말이다. 당시에 캐시콜놈들은 전국을 돌며 불법 도박 사업을 벌였는데 게 중에 책임 기술자 하나가 돈을 갖고 튄 사건이 터졌나봐. 허니까 놈을 추적해서 돈을 찾겠다고 좀 심하게 팬 모양이야. 그러다 결국 불기도 전에 잘못 되서 그 놈이 죽었는데 파묻지도 않고 그냥 토꼈다고 그러더군. 초짜배기들이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한 거지. 그곳이 영월 어디라더니 여기 어디라고? 허기야 여기도 다 영월군에 속하긴 한다만...."

쫓기는 진우가 이어지는 사건마다 다 연루가 되어가는 상황에 덕배는 기가 막혔다. 단순히 대출금 문제 뿐이라면 자신이 대신 갚아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총알 건도 어쩌면 돌려주는 선에서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은광 역시 하우스를 철거 할 때까지 놈들을 못 본 척하면 그냥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놈들이 원무현이 감춘 돈의 행방을 찾고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게다가 원무현이 숨어 있던 컨테이너까지 진우가 연관된 것을 알아낼 경우 놈들이 쉽게 물러날 것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반드시 돈의 행방을 알아내려 악착같이 진우를 추적할 것이다. 만약 놈들에게 잡혔을 경우에는 정말 위험한 처지가 될 것이었다. 돈의 행방은 진우 역시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놈들이 진우의 말을 믿겠는가 하는 것이다. 대출금을 떼먹고 총알을 감춘 전력만으로도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덕배는 얘기를 하면서도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말끝을 흐렸다.

"그럼 죽은 사람이 도박사였단 말이냐?"

진우는 낮에 나무 사이로 얼핏 본 사람이 자신을 좇은 것이 아니라는데 안도했다. 그러나 컨테이너의 뜯겨나간 경첩을 생각하면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도박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속임수 기술자지. 그놈 이름이 원무현인데 나도 아는 놈이야. 지금 사북에 내려와 있는 부엉이 최태식이와 한패였지. 그 두 놈이 깜방 동기였으니까.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그놈들과 같은 교도소에 있었다. 방은 서로 달랐지만 서로 안면은 트고 지냈었지."

"너도 도박 사업인지 뭔가를 시작한 댔잖아? 그렇다면 잘 안다는 부엉인가 하는 그 사람을 부르지 왜 다른 사람을 불러왔냐?"

", 했었지. 그놈이 출소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한데 연락했을 땐 이미 다른 사람하고 계약이 됐다잖아? 누구랑 계약했냐니까 김기동이라기에 두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 짭새 출신 김기동이란 놈이 널 좇고 있다고 말한 적 있지? 그놈이 바로 그 김기동이야. 악랄한 놈이지. 부엉이가 깜방을 가기 시작한 것도 그놈 때문이라더군. 그놈이 친 함정 수사에 두번이나 걸렸다더군.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놈에게 뭔가 약점이 잡혔을 테지. 그러니까 저렇게 꼼짝 못하지. 그렇지 않다면 내가 부르는데 안 올 놈이 아니거든.    헌데 놈들이 이곳에서 판을 벌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나도 준비가 다 된 마당에 어느날 부엉이란 놈이 떡하니 나타나잖아. 환장할 노릇 아니냐? 김기동 그놈은 대출금 관계나 아니면 총알의 행방을 찾아 내려온 줄로만 알았지 도박 사업을 하리란 생각이야 했겠냐?"

"그럼 네가 먼저 하우슨지 뭔지를 먼저 시작하면 되지 않냐?"

"전당 연합을 설립하느라 한박자 늦었으나 준비는 다 돼 있다. 헌데 오늘 네가 말하는걸 들어보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란 생각이 드는군."

"무슨 생각을?"

"네가 원무현이 건만 연루가 안 되었어도 당장 선수를 치고 싶은데 거기까지 얽혔다면 좀 곤란한 일이야. 너도 생각해 봐라 김기동이란 놈이 네 일을 캐다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알거 아니냐? 너라면 수상한 생각이 안 들겠냐? 뿐이냐? 나는 나대로 전당 연합을 결성해 금융업을 장악했으니 신사장은 신사장대로 나를 죽이고 싶을 것 아니냐? 이 마당에 하우스까지 차려 대항을 하려들면 놈들은 아마 총력을 기우려 나를 치려 덤빌 게야. 그렇게되면 조직이 서로 전면 전쟁이 일어나고 마는 거지. 그건 바보짓이야. 이겨도 져도 경찰이 덤빌 테니 깜방 신세는 면할 수 없어. 그러니 자연히 하우스는 보류하던지 취소할밖에?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걸 나도 요즘에야 알았다. 사업을 주먹으로만 하던 시대는 지났어. 사업을 아무리 크게 한들 노인네 말씀대로 깜방이나 들락거리며 사는 인생이 무슨 성공이라 하겠냐? 안 그러냐?"

핸들 위에 팔을 걸친 덕배가 어둠이 짙게 내린 차창 밖에다 시선을 꽂은 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한탕의 꿈을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하우스를 그만 두려는 덕배에게 진우는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하우스를 취소하는 이유를 말했지만 사실은 친구를 위해 사건을 키우지 않으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은 자신만 이곳에 오지만 않았어도 생기지 않았을 문제 아니겠는가?

"마지막 구절은 삼십 년 동안 처음 들어보는 감동적인 말이 다만, 나 역시 너 한테 이렇게 미안하기도 삼십 년 만에 처음이다. 정말 여길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이런 미친 놈. 여길 안 온다고 네 문제가 해결 되겠냐?"

"내 문제는 해결이 안 나더라도 최소한 네게 폐는 되지 말았어야 했단 말이다."

"시끄러,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는 내가 더 미안한 판에 네가 지금 누구 양심을 찔러 보는 거냐. 걱정하지 말어. 그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어본 나야. 놈들이 액션을 취하면 거기에 맞춰 대처해 나가면 돼. 이곳까지 와서 컨테이너를 뒤진 걸 보면 나름대로 바짝 좇아온 모양인데 그렇다고 너무 쫄 필요 없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니냐? 돌아가는 판세가 어쩌면 네 일이 끝나려는 것일지도 몰라."     

소심한 친구에게 용기라도 주려는 듯 덕배가 주먹으로 진우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러나 진우는 밖의 어둠 속에다 시선을 두고 있었다. 랜턴 불빛에도 잘 보이지 않던 소쩍새가 방금 차창을 스치며 날아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며 낮게 중얼거렸다.         

"글쎄, 끝이 아니라 왠지 끝의 시작 같은 느낌이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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