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배와 진우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사이였다. 진우가 세 살 무렵, 덕배네가 이웃으로 이사를 오고부터였다. 덕배 부모는 시장통에서 장사에 바빴고 진우는 집에 있기보다는 덕배와 노는 것이 좋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덕배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자연히 자주 바뀌는 새엄마보다 덕배 엄마를 친엄마 처럼 따랐고 그녀 역시 진우를 아들 처럼 대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덕배와 함께 먹고 자고 같이 학교에 다녔다. 진우에겐 자신의 집이 오히려 서먹했다. 그만큼 새엄마라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이다. 당시에 덕배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는데 처음보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로 알았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 만했다. 덕배는 그의 아버지가 환갑이 지나서 낳은 아들이었다. 덕배 엄마는 남편보다 40년이나 젊었다. 어떤 사람의 말로는 덕배 아버지는 전국을 떠돌던 유명한 노름꾼이었다고 했다. 진우 엄마를 노름으로 땄다는 말도 있고 살림을 차리려고 돈을 주고 처녀를 샀다는 말도 있었다. 어쨋던 환갑이 넘어서 덕배가 태어나자 그때부터 한곳에 정착해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덕배 아버지는 말린 고추장사를 했는데 덕배방에도 언제나 고추자루가 쌓여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덕배네는 아예 시장통으로 이사를 갔었다. 바로 그 해,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덕배의 집에 놀러간 진우를 그날따라 안방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야, 너 오늘 좋은 거 보여줄게."
"좋은 거?"
"그래, 기다려 봐."
다락문을 열고 재빨리 올라간 덕배가 갖고 내려온 것은 길쭉한 낚시 가방이었다. 갈색인지 검정색인지 얼른 구별이 안될 만큼 낡아빠진 것이었다.
"야, 낚시가방이잖아?"
"히히, 이게 낚시가방이라구?"
덕배가 뻑뻑해서 잘 열리지 않는 낡은 가방의 지퍼를 억지로 열자, 먼저 진우의 눈에 띈 것은 개머리판이었다. 놀랍게도 가방 안에는 반 토막이 난 총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덕배는 자랑스런 얼굴로 개머리판과 기다란 쇠막대를 양손에 꺼내들었다.
"야, 이게 뭔줄 아냐? 이게 바로 엽총이라는 거야. 이걸 이렇게.."
언젠가 한번 서부 영화에서 본 총 아닌가? 호기심에 긴장한 진우는 총을 결합하려는 덕배의 손놀림을 넋을 빼고 보았다. 개머리판을 세워 총신을 끼워 맞추려는 것 같았다.
"이게 그러니까, 이걸...아니, 잠깐만 기다려. 이걸 요렇게. 아닌데?"
덕배도 총의 결합은 잘 모르는 듯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맞추고 끼워보더니 어느 순간 덕배의 입이 벌어졌다.
"자, 어떠냐? 내 실력이. 야, 잘 봐라. 이걸 옆으로 재끼면...이렇게 꺾이거던?"
"야, 나도 한번 해보자."
진우가 받아든 엽총은 생각보다는 엄청 무거워서 겨냥은 커녕 들고 있기도 힘이 들었다. 겉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총은 새것은 아니었다. 특히 개머리판은 칠이 벗겨지고 긁혀서 꺾여나간 부분이 보기 흉했다. 진우가 레버를 재끼니 총의 허리가 꺾이며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휑한 구멍 속은 번쩍이는 빛이 어른거렸고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총알은 여기다 넣거던. 그래가지고 이렇게 해서 쏘는 거야. 탕,탕."
총을 다시 뺏어든 덕배가 신이 나서 쏘는 흉내를 냈다.
"너, 이 총 진짜로 쏴 봤냐?"
진우의 갑작스런 물음에 눈을 껌벅이던 덕배가 다락을 다시 기어 올랐다. 무엇을 찾는지 한참을 부스럭대던 덕배가 갖고 온 것은 빨간색의 엽총 탄환이었다.
"야, 쏘는 건 간단해. 이걸 여기다 이렇게 넣고, 요기 방아쇠만 당기면 탕하고 나가는 거지. 뭐 쏘는게 별거 있냐? 총알을 뺄 때는 또 이렇게..."
덕배는 여러 번 해본 듯 익숙한 솜씨로 레버를 젖혀 탄환을 빼내 보였다. 진우도 그대로 해 보고 싶었다. 방바닥에 앉은 채 총을 받아 레버를 재꼈다.
"총알 이리 줘 봐."
"야, 진우 너 조심해라. 총알은 쏠 때만 넣는 거래."
덕배에게서 받은 탄환을 약실에 밀어 넣고 철컥 총을 세워 들었다. 총에는 두 개의 방아쇠가 있었다.
"그런데 쏠 때는 어느 쪽 방아쇠를 당기냐?"
"음, 글쎄 그건 잘 모르겠고 야, 총알부터 빼."
"알았어. 헌데 방아쇠 하나는 왜 약간 뒤에 있을까?"
"야, 이리 내. 내가 뺄 테니까."
"야, 나도 할 수 있어."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덕배가 진우의 손에서 총을 잡는 순간이었다.
"꽝."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소리와 함께 방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진우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방 안에서 발사된 총소리는 탕 소리도 쾅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순간, 백 개의 징과, 천 개의 쇠북을 동시에 두드린 소리였다. 총은 화약의 반동으로 튕겨지고 진우와 덕배는 소리와 반동에 놀라 자빠졌다. 화약 연기와 뽀얀 먼지 사이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총알은 방문 위에 걸어둔 덕배 할아버지 사진틀에 맞아 박살이 났고 벽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일부분의 총알은 천정귀퉁이를 헤집어 먼지와 죽은 쥐껍질까지 쏟아져 내렸다. 지은지 수십 년이 된 집이라 천정은 도배지만으로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덕배 할아버지의 초상화는 한장 뿐인 낡은 증명사진을 확대 모사한 것이었는데, 사진틀 귀퉁이에 넣었던 원본 사진은 절반이 달아나 버렸다. 작은 갓을 쓴 노인이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진우도 본 적이 있는 누런 사진이었다. 총소리는 얼마나 컸는지 평소에 귀가 먹어 잘 듣지 못하던 옆집 딱쟁이 할멈이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을 정도였다. 마침 점심을 차리려고 집으로 오던 덕배 엄마가 깜짝 놀라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까지 진우와 덕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먹멍하던 귓속에서 째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덕배 엄마가 둘을 이르켜 밖으로 몰았다.
"덕배야, 빨리 진우집으로 같이 가거라. 아버지한테 혼난다. 빨리 가거라. 여기는 내가 뒷처리를 하마. 가서 하루이틀 있다가 오너라."
그제서야 상황을 실감한 둘은 신발을 손에 들고 진우의 집으로 냅다 뛰었다. 그 일로 덕배 아버지는 곤경에 처했는데, 오발 사고가 파출소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나와 현장조사를 하는 과정에 엽총이 등록이 안 된 것을 알았다. 덕배 아버지는 당연히 파출소로 연행되었다. 이틀에 걸쳐 조사를 받던 덕배 아버지가 사흘만에야 풀려 나왔다. 인명 피해가 전혀 없었는 데다가 고령인 점이 참작이 된 것이다. 당시의 덕배 아버지의 나이는 75세였다. 파출소 소장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다. 압수당했던 엽총도 멀쩡히 찾아왔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사건이 있고나서 진우는 덕배의 집을 한동안 가지 않았다. 덕배 아버지를 만날까봐서였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날 덕배를 찾아갔더니 그의 아버지가 점심을 먹다가 진우를 보았다.
"저놈, 저거 쉰관이 아니냐? 너, 이리 들어오너라."
도망을 가기에는 이미 늦은 것을 안 진우가 덕배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놈, 진우 너는 이제부터 이름을 쉰관이라 바꿔야겠다. 알았느냐?"
"예?"
"허허허. 왜? 이름이 쉰관이라니까 이상하냐?"
진우는 갑자기 쉰관이란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덕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덕배 아버지는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중에 덕배의 말을 들어보고서야 진우를 쉰관이라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게 말이야, 우리 아부지하고 엄마가 얘기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말이야."
말인 즉 불법무기소지죄란 어마어마한 죄명을 벗기 위해, 덕배 아버지는 태양초 쉰 관(貫)을 팔고나서야 간신히 무마했다는 것이다. 고추 한 부대는 대략 열 관으로 40킬로그램이니 쉰 관이면 2백 킬로그램이었다. 고춧값이 비쌌던 때라 얼핏 계산해도 쉰 관이면 2백만 원이 훨씬 넘는 돈이었다. 당시의 그 액수는 몇 달치 광부 월급인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 단 한장 뿐이던 덕배 할아버지의 원본 사진을 비슷하게라도 다시 꿰맞춰 그리려면 또 몇 관의 고추가 들어갈 판이였다. 어쨋던 그 후에도 덕배 아버지는 진우를 볼 때면 항상 쉰관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산꼭대기를 비추던 햇볕이 발아래로 내려오자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신발은 진흙이 잔뜩 묻어 있고 바짓가랑이는 여전히 축축했다. 개울로 내려선 진우는 신발을 물로 대강 닦고 바지를 털었다. 작은 아버지의 집은 2km를 더 가야 했고 덕배에게 가려면 새벽에 기차에서 내렸던 태백역으로 되돌아 가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으로선 작은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었다. 광부들을 위해 지었던 아파트를 중심으로 몇몇의 가게와 집들이 좌우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곳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낯익은 풍경이었다. 아파트 앞 정류장에는 버스를 타려는 노인 둘이 길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콩대가 삐죽하게 나온 커다란 보따리와 아욱 잎이 보이는 또 다른 짐으로 보아 시장으로 가는 노인들이었다. 기다리는 사이 진우는 가게의 유리창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동안 봉고차 한 대가 지나갔을 뿐 한참을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얼마동안의 무료한 시간이 지나서야 버스 한 대가 슬금슬금 나타났다.
"할머이, 장에 가요?"
"으, 풋콩대 팔러가재이."
우둥퉁하게 생긴 버스기사와 노인들은 친숙한 듯했다. 노인이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다가가자 기사는 발판에 나와 콩대를 받아들어 복도에 내려놓았다. 아욱 보따리까지 선듯 들어준 기사가 운전석에 털썩 앉더니 밖에 선 진우를 뻔히 바라보았다. 탈거냐 말거냐 하는 눈치였다. 택시가 먼저 왔다면 사북으로 곧장 가려던 진우는 할 수 없이 버스에 올랐다. 생각해보면 까짓거 서두를 이유도 없는 것이다. 버스에는 진우와 두명의 노인 말고는 없었다. 창밖은 어두웠던 새벽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은 진우가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타향에서 쫒겨 내려 온 고향이었으나 있을 곳도 갈 곳도 없었다. 이곳에 뿌리가 없어져서 일까? 밝을 때 다시보니 무엇인가가 달라보였다. 딱히 무어라고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생경감이 왈칵 밀려왔다. 창 밖의 풍경이 더 이상 고향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지금 버스에 실려가는 진우 자신은 이미 타향의 나그네일 뿐이었다. 불현듯 진우의 눈앞에 순복의 얼굴이 환한 웃음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곤 다시 고춧가루가 낀 이빨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마지막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진우를 못 가게 하는 몸짓이였다.
'빌어먹을...'
버스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주며 달리고 있었다. 열 번도 더 본 영화처럼 곧 나타날 풍경이 눈앞에 미리 펼쳐지는 것이다. 진우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마저 소용이 없었다. 기억에 찍힌 비디오가 쉬지 않고 돌고 있어서 눈을 감아도 바깥의 풍경이 환히 보이는 것이다. 통리장은 마을 입구의 작은 공터에서 열리는 것 같았다. 버스가 닿자 노인들을 따라 진우도 내렸다. 장날 구경이나 하려는 것이다. 이곳은 5일장이 아니고 열흘장이었다. 진우는 이제껏 이곳의 장을 구경한 적은 없었다. 장이 서려면 아직 이른 듯, 사람들이 바쁘게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진우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소형트럭에서 내리는 물건은 다양했다. 바다가 가까워서인지 생선류가 많았다. 산 오징어와 문어도 내렸고 건어물도 보였다. 호미와 낫과 괭이등의 철물이 산처럼 진열되고 옷장사도 보따리들을 풀었다. 순대국 솥에 불을 지피고 도넛 장수는 기름솥을 걸었다. 채소가 쌓이고 올망졸망한 곡식 자루가 펼쳐지고 있었다. 넓지 않은 공터에 천막이 늘어서고 탁자와 의자가 놓였다. 길가엔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노인 둘이 콩대와 아욱을 풀어 놓았다. 철 늦은 옥수수와 감자를 갖고나온 노인들과 호박, 가지, 오이를 나누어 쌓는 사람도 있었다. 통리의 장은 생각 밖으로 풍성했다. 이제 곧 가까운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한 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몇몇의 여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조잘대고 있었다. 잠시 후에 버스가 도착하자 진우는 미련 없이 몸을 실었다. 버스는 과거를 달리 듯 진우가 왔던 길을 단숨에 달렸다. 태백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기사가 피우던 꽁초를 창 밖에 버리고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사북으로 갑시다."
"예. 사북으로 모시지요."
차가 스르르 움직이더니 금세 속력을 높였다. 미터기를 꺽지 않은 채였다.
"손님, 사북까지 요금은 3만원 되겠습니다."
젊은 기사가 연신 백미러로 뒷자리를 힐끔거리더니 뱉은 말이었다. 사북까지는 20km 정도의 거리였다. 낯선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것 같았다.
"미터기대로 아니요?"
"아하, 그거는 손님이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인데요, 거기는 시외라 관행으로다가 그리 받는 거래요."
관행?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백미러에 비친 기사의 두 눈은 여전히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허, 8년 만에 많이 변했군. 버스로 가는 게 낫겠소. 역 앞으로 돌아갑시다."
"예? 그럼, 손님은 고향이 사북이래요?"
"아니, 철암이요. 사북은 친구를 찾아가는 거요."
"친구 분이 사북 어디 사시는데요?"
"글쎄, 그걸 잘 모르겠소. 가서 물으면 알꺼라고들해서 갑니다마는..."
"친구분 성함이 어찌되시는 데요?"
사북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알고 있다는 듯 자신에 찬 목소리였다. 아니라면 역전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진우의 말을 눙치자는 수작인지도 몰랐다.
"곽덕배라고....."
"아하, 덕배형이요? 덕배형 친구래요? 아 진작 말씀하시지. 저는 김상구래요."
진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과 입이 커진 기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집어 버튼을 재빨리 몇 번 눌렀다. 그 다음 윗주머니에서 선그라스를 척 꺼내 쓰더니 등을 뒤로 한껏 재꼈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겠다는 자세였다.
"덕배형 친구시면 저한테도 형님이시니 앞으로 말씀 낮추세요."
"글쎄요, 그건 그렇고, 덕배가 사업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혹시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아시요?"
"예? 지금 모르고 가시는 기래요?"
"글쎄 무슨 사업인지는 잘...."
"에헤이, 아까 8년만이라 하시더이 진짠가 보네요. 덕배형은 여기 온지 3년 만에 돈 많이 벌었다고 소문났어요. 건물도 두 갠가 세 갠데요, 뭐."
"3년? 덕배가 여기 온지 3년이나 됐단 말이요?"
"아마 그쯤 되 갈 끼래요."
진우가 덕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다. 그 당시 덕배는 원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두 번째의 구금이었다. 첫 번째는 단순한 패싸움에 말려 6개월의 징역을 살았었다. 덕배는 대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진우와 함께 징병 신체검사를 받던 날이었다. 다른 지방에서 온 청년들과 시비가 붙어 패싸움으로 번졌다. 싸움에 자신이 없던 진우는 이층의 찻집으로 피했다. 이날의 싸움으로 십여 명이 잡혀갔으나 덕배와 상대방의 한 명만 교도소행이었다. 이 일로 인해 이십여 년 가까이 붙어 다니던 진우와 덕배의 행로가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덕배의 두번 째 징역은 첫 번째 징역에서 풀려난 몇 개월 뒤였다. 이번에도 폭력이었다. 교도소에서 알게된 조직 폭력배에 가담하고서였다. 이 무렵, 덕배의 부모는 소리 소문도 없이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동네 사람은 아무도 몰랐다. 삼 년 형을 사는 동안 진우는 일 년에 두세 번 덕배의 면회를 갔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진우가 면회를 신청했을 때는 덕배의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덕배와의 면회가 되지 않았다. 다른 교도소로 이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출소가 임박한 죄수의 이감이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경북북부교도소였다. 소위 청송교도소인 것이다. 곧이어 진우는 징집이 되었고 전역을 한 뒤에는 몸 붙일 곳을 찾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청송까지 면회 갈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덕배가 삼 년 전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진우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님은 덕배형을 몇 년 만에 만나는 기래요?"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진우의 모습을 백미러로 확인한 기사가 몇 번 더 힐끔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덕배는 중학교 때부터 각종 무술에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덕배는 물론, 진우에게 누구도 시비를 걸지를 못했다. 심지어 초등학생일 때 진우와 덕배를 때리던 용수는 아예 덕배의 꼬붕이 된 것이다. 덕배는 공부를 못하는 만큼 운동에 열심이었다. 게다가 신체 조건이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 같았다. 덕배와 싸워 이겼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진우와는 계속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카지노에 사람들이 많아요?"
차가 터널로 들어서자 기사를 향해 진우가 물었다. 조금 전 용연동굴을 지났으니 사북이 가깝다고 느낌이 나서였다.
"카지노요? 그럼요. 개장 시간되서 가보시면 깜짝 놀래실 끼래요. 엄청나요."
"몇 시에 개장 하는 거요?"
"10시요. 오늘은 늦었어요."
"돈은 택시가 벌겠군. 카지노가 붐비면 택시도 손님이 많을 것 아니요?"
"에이, 요새는 자동차 없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히히, 택시 사업은 이미 틀렸어요. 형님도 아까 역전에서 보셨지요? 줄 서서 기다리는 빈 택시들 말이래요."
"글쎄요, 그래서 처음오는 사람한테는 관행 요금을 받는 거요?"
"에에이, 그거는 형님이 카지노 가는 손님인줄 알았지요. 카지노 가는 사람들은 택시비가 얼마든 별로 신경 안 쓰거든요."
썬그라스를 콧등 아래로 내린 기사가 백미러를 처다보며 어설프게 웃었다.
"농담이요. 나도 관행대로 낼 테니 걱정 마시요."
"에헤이, 그게 아이라니까요. 몰랐다면 모를까, 덕배형 친구 분한테 어찌 돈을 받아요? 그러지 않아도 덕배형한테 받아 쓴 돈이 얼만데...안 돼요. 못 받아요."
죽어도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듯,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터널을 벗어난 택시는 한적한 도로를 잘도 달렸다.
"곧 사북이래요."
줄곧 38번 국도를 달리던 택시가 버스 터미널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북읍의 관문이었다. 이제부터는 기존의 구도로를 타야했다.
"덕배가 있는 곳이 역 부근이요?"
"오거리 근방이래요. 거의 다 와 가네요."
삼거리에서 다리를 지난 택시는 개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왼 쪽에 사북역이 보였다.
"어, 저기, 저, 덕배형이 하마 나와 계시네요."
기사가 진우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경적을 짧게 한 번 울렸다. 진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정말 덕배가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두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서로의 등을 감싸 안았다. 진우는 콧등이 시큰했다. 덕배 역시 격한 감정을 감추 듯 외면을 한 채 슬쩍 손으로 코를 문질렀다.
"이자식 이거, 이제야 만나네. 허허."
덕배가 새삼 진우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10년 사이에 덕배의 겉모양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광대뼈가 더 불거지고 각진 턱이 예전보다 훨씬 강인해 보였다. 눈빛도 변해 있었다.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하던 눈매는 간 곳이 없고 상대를 제압하는 듯한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진우를 돌아볼 때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아니, 부드럽게 느껴졌다.
"참."
진우가 지갑을 꺼내 돌아서자 기사는 재빨리 창문을 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불이나케 차를 몰았다.
"놔 둬. 저놈한테는 용돈을 따로 주니까."
"그래도 그렇지, 줄 건 줘야지. 그래야 그 친구도 먹고 살지."
"허, 진우 넌 어째 조금도 안 변했냐? 네가 안 줘도 그놈은 안 굶어 죽어. 네가 온다고 알려 준 것이 상구 저놈이야. 뿐이냐? 새벽에 네가 산소에 간 것까지 알고 있다야. 그건 상태 동생 진태가 알려준 거고. 상구나 진태가 다 내 심부름꾼이야. 여기선 정보가 곧 돈이거던."
"어쩐지 택시에서 꼬치꼬치 캐묻더라고...그때 연락을 했구나."
"8년 전 떠난 친구가 온다고 해서 넌 줄 알았지. 가자, 점심이나 먹자."
덕배가 성큼 앞장을 섰다. 진우가 시계를 보았다. 바늘은 12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야, 너, 회 좀 먹냐?"
덕배가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입이 산골 촌놈이라 회는 끝까지 싫더라.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허어, 나라고 산골 촌놈이 아니겠냐? 허지만 사업상 자꾸 먹다가 보니까 그것도 먹을 만 하더라야. 어떠냐? 먹겠다면 동해가 가까우니 그리로 가자."
덕배가 갑자기 장난스러운 얼굴이되어 싱글거렸다.
"싫다. 나는 짜장면이나 먹을란다."
"짜장면? 거 좋지. 하지만 오늘은 회 대신 저 집에 가서 고기나 먹자."
무슨 가든이란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결국 갈비와 냉면을 시켰다.
"덕배 넌 여기 내려온 지 3년이나 되었다며?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뭐냐. 내게 연락할 방법을 몰라서는 아닐 테고, 왜 소식이 없었냐?"
"지난 설에 상태가 내려왔을 때 네 소식 들었다. 상태하고는 이따금 통화를 한다며? 나라고 왜 네가 보고싶지 않았겠냐마는...서로 가는 길이 다르고...또, 너는 나와 얽혀서 좋을 일이 없겠더라고. 그래서 상태한테도 말하지 말랬다. 네가 이해해라."
"널 보러 원주에 갔을 때, 청송으로 이감을 가고 없더구나. 청송까지 가 보고싶었는데 나 한몸 의지할 곳이 없어서 고생하던 때라 못 갔다. 네가 같이 있었으면 힘이라도 났을 텐데...참 그때, 출소할 때가 다 된 놈이 이감은 왜 간 거냐?"
그때를 생각하는지 덕배는 한 번 풀썩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다 철없던 시절 객기때문 아니겠냐. 그만두고 어서 먹기나하자."
종업원이 불판 위의 갈비를 날렵한 솜씨로 잘라주었다. 이때 덕배의 핸드폰이 울렸다.
"성회장이 아니야?...아들? ....알았다. 계속 붙어."
간단하게 통화를 끝낸 덕배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젓가락을 집었다.
"너희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아버님은 돌아가셨지?"
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작부터 물어보고 싶던 말이었다.
연신 고기를 진우에게 밀어주던 덕배가 어이없는 얼굴로 눈을 치켰다.
"야, 돌아가시는 게 뭐냐? 어찌된 노인네가 어머이보다 더 쌩쌩하시다야."
"뭐야? 아버님이 생존하시다고? 백세에 가까우실 텐데?"
"허, 아흔 일곱이시지. 일구일구년 생이시니까."
"하하, 맞다, 삼일운동나던 해라고 했지? 지금 어디 계시냐?"
"음, 가까워. 내일이나 모레 쯤 가려던 참이다. 그때 같이 가보지 뭐. 참, 넌 언제 올라가냐?"
"글쎄, 나도 모르겠다. 작은아버지 집으로 가려다 네 소식 듣고 먼저 이리로 오긴 왔다만 서울을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음, 평일에 불쑥 내려온 것부터 사연이 있겠지. 천천히 듣기로하고 밥이나 먹자."
덕배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알았어, 대기 해."
이 후에도 덕배의 핸드폰은 쉴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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