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13. 대혼란(3) 이상한 납치

fiction-google 2024. 3. 17.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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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에 신동규는 마쓰다와 밀실에서 술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신동규패가 관리하는 일본식 술집 중 한곳이었다. 술상은 간결했다. 정종에 단 세 가지의 안주 뿐이었다.

"오늘 낮에 떠났다고?"

"."

"언제 다시 접촉하기로 했어?"

"그건 그곳의 사정에 맞춰야 되지만 늦어도 7일 오전까지 일을 마치기로 했습니다."

"7일이면 내일 모레 아냐? , 좀 앞당길 순 없는 건가?"

"약속하고 만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곳의 형편에 맞춰야지요. 납치란 완벽한 기회가 아니면 반드시 뒷탈이 나게 마련이지요."

"그걸 누군 모르나? 그러니까 돈을 들여 그 방면의 전문가를 썼지. 누군 일할 사람이 없어 그깟 놈 하나 잡아오는데 돈까지 싸다 바치겠어."

신동규는 애써 기분이 상하려는 것을 참으며 마쓰다가 따라 준 술잔을 들었다.

", 같이 들자고."

", ."

신동규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마쓰다가 단번에 입에 술을 홀짝 털어 넣었다. 신동규도 질세라 고개를 발딱 젖히며 술잔을 비웠다. 안주는 표고 무우조림과 은행과 메추리 완자꼬지였다.

"너희 나라의 술은 좀 싱거워, 아니 싱겁다기보다 약해. 술은 역시 양주가 제일이지."

신동규가 조그만 정종잔을 마쓰다 앞으로 내밀며 씩 웃었다.

"하하, 그래도 이 술에 당하지 않은 장사가 없답니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먹고 담엔 술이 술을 먹고 마지막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속담이 바로 일본 속담이니까요. 솜처럼 부드럽고 약해 보여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하."

"그래? 어쨋던 막걸리보다야 나을 테니까.....그건 그렇고 좌우간 수고 했어. 신분은 철저히 숨겼다니 출국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일단 장철규 쪽에서 성공을 하느냐가 문제지요. 출국 문제는 성공했다는 연락이 온 후에 눈치를 봐서 결정하지요."

"그래, 그러는게 좋겠군."

신동규는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밖에서 기다리기라도 한 듯 금세 문이 열리더니 기모노 차림의 여자 종업원이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살짝 굽혔다.

"필요하신 거라도..."
"
, 종철이 좀 오라고 해."

종업원이 사라지자 잠시 후에 오정철과 안순태가 문 밖에서 인기척을 냈다.

“들어 와"

방안을 들어선 두 사람은 신동규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뒤 마쓰다와도 눈인사를 나누었다.

"사장님,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정철과 안순태에게 답례를 한 마쓰다가 자리를 비워주려는 듯 일어났다.

"아니 , 아니야. 그대로 있어. 물건을 어떻게 인수인계할 것인지 서로 의논을 하자는 거니까. , 너희들도 앉어. 그리고 자, 먼저 한잔 씩들 해."

"아니 사장님, 곽덕배 그놈을 잡았답니까"

자리에 앉기 무섭게 안순태가 물었다. 새 술병의 마개를 비틀던 신동규가 안순태를 삐딱한 시선으로 잠깐 노려보았다.

", 어쩌면 그 급한 성격을 평생을 달고 다니냐? 내가 열여덟 살때부터 널 봐 왔지만 그동안 도무지 변한 게 없어. 이젠 변할 때도 됐잖어?"

", 그건 사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뭐야? 그때나 지금이나라니"

", 순태, 입 다물어. 사장님, 장철규가 그곳으로 떠나긴 했답니까?"

오정철이 얼른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 본론으로 화제를 이끌고 나섰다.

", 헌데 네 생각엔 그놈을 어디서 받는 게 좋겠냐?"

"언제 옵니까?"

"내일이나 모레."

"그럼 잘됐네요. 토 일요일 아닙니까? 휴일이니 회사 지하 주차장이 좋겠습니다."

"그럴까? 허긴 놈을 옮겨 실어야 하니 남의 눈도 있으니까....어이, 송길천이. 물건을 인수하면 회사 주차장으로 와. 그게 좋겠어."

송길천은 마쓰타 요시가와(松田 吉川)의 한국식 이름이었다.

"캐시콜 본사를 말씀하십니까?"

"? 무슨 소리. 송파동 풍전 빌딩 말이야. 알지? 오기 전에 전화하라구."

",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마쓰다가 일어나 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신동규는 걱정이었다.

"일서 놈이 알려오기를 김기동의 하우스는 연일 대박을 친다더라. 내일은 장소를 옮긴다더라. , 너희들이 갇혔던 광산 아래라더라. 그놈이 밑에 애들 한테는 15일 동안 판을 벌릴 것이라 했다더라. 허지만 놈의 꼼수를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알지? 내가 이미 얘기 했지만 길어야 열흘이야. 헌데 그놈도 인간이라 욕심이 있을 테니 하루 이틀 더 하려고 들지 몰라. 하루만 더하면 수입이 수억일 테니까 말이야.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냐? 하루 더 눈 감고 있으면 수억을 그놈이 벌어다 주는 꼴인데 말이야. 그러나 우린 욕심을 딱 접고 애초의 계획대로 10일 밤 열두 시에 덮치는 것으로 딱 정하자고. 괜한 욕심에 그놈을 놓치면 곤란 하니까. 정철이 넌 정말로 쓸 만한 놈들만 골라 열 명만 준비 해. 많아도 소용 없어, 아차하면 정보가 세니까. 그리고 거기 서른 명 중에 김기동이나 천태종 보다 내 말을 따르는 애들도 있을 것이니까. 안 그러냐?"

자신의 생각이 어떠냐는 듯 신동규는 두 사람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안순태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허나 오정철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 정철이 넌 내 생각이 잘못 되었냐?"

"그게 아니라 곽덕배의 일과 겹칠 것 같아서 그럽니다. 곽덕배를 7일 날 인수를 한다해도 별장까지 가서 손을 보고 나오면 8일 아닙니까? 10일 날 덮치자면 그 전날 미리 그 부근에 매복을 하고 있어야지요. 저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장님도 윤 검사와 의견을 조율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윤검사는 윤검사대로 그곳 검경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필요할 테고 말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내일 윤검사를 만나기로 되어 있어. 김기동은 우리가 먼저 손을 본 후에 검경이 들이닥치는 걸로 할 거라구."

"그럼 곽덕배의 일은 언제 처리합니까?"

"일이 공교롭게 겹쳤을 뿐 어차피 곽덕배는 조직과 연계가 되어 있어 그냥 항복만으론 그놈 사업을 우리가 인수 못해. 곽덕배는 약물을 이용해서라도 입을 열게 할 거야. 그놈은 지난 번 연합을 결성한 자금에 대해서 훤할 테니까 그걸로 연합파와 흥정을 할거야. 연합파 회장인들 감빵에 가고 싶겠냐?    윤검사를 만나면 그것도 의논을 해 봐야지. 어쨋든 너희들은 걱정들 말어."

", 아까 다음 하우스가 광산 밑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10일 밤까지 그 굴속에다 애들을 숨겨두면 됩니다. 그곳은 언제라도 신호만 보내면 순식간에 내려와 칠 수 있는 가까은 곳이거든요. , 순태, 안 그러냐"

", 맞아, 그 굴...씨발 그런데 그 굴에 또 들어가자고?"

순태는 춥고 어두운 그곳을 생각하자 저절로 몸서리가 쳐 질 판이었다.

"순태 너 또 욕했다. 헌데 그까지 안 들키고 올라갈 수는 있냐?"

"조금만 우회하면 됩니다. 하우스가 쉬는 시간인 오전 일찍 말입니다."

"또 다른 할 말은 없냐?"

"장철규의 솜씨를 믿긴 하지만 혹시 주먹으로 해결하려 덤빌까 걱정입니다. 주먹으로 곽덕배를 제압했다는 놈을 본 적이 없거던요."

"그래? 곽덕배가 그렇게 세다구? 너희들 정도로도 안 된단 말이야?"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장담 못 합니다. 목포의 쌍태가 한방에 나갔다니까요."

"뭐야? 그 정도라구?"

항상 큰소리 잘 치고 주먹질 잘하던 순태 역시 오정철의 말에 동의하듯 말이 없었다.



"어디야?"
"
, 남원주 톨게이트에 다 왔습니다.형님."

"그럼 한라대 쪽으로 벗어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형님네 과수원 쪽 아닙니까?"

", 그래, , 너도 알겠군. 내 차를 갈림길에 세워두고 있을 테니까 그리로 와."

", 그러죠,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유명우와 통화를 마친 장철규는 뒤따라오는 여동생 장미자에게도 인터체인지를 벗어날 때까지 네비를 잘 보라고 다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실 장미자는 유명우의 동생이 아니라 장철규의 동생이었다. 작전상 덕배에게 유명우의 이름을 들먹였을 뿐인 것이다. 인터체인지에서 벗어난 장철규는 한라대 앞 사거리까지 속도를 늦추었다. 이제부터는 동생을 위해 자신이 네비게이션 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자 농로 갓길에 유명우의 차가 라이트에 비췄다. 운전석의 유명우가 손바닥으로 빛을 가리며 인상을 찌프리더니 자신도 상향등을 한번 껌벅인 다음 장철규의 앞장을 서 차를 출발시켰다. 유명우의 차는 온통 논밭인 어두운 길을 십여 분쯤 가다가 산 밑의 외진 길로 들어섰다. 장철규도 그 뒤를 따라 그 길로 들어섰다. 길 입구에는 붉은 페인트로 과수원 낚시터라고 쓴 엉성한 팻말이 서 있었다. 그러나 라이트가 비치는 어느곳도 과수원이라 할 만큼 과일나무가 많지 않았다. 다만 집 앞에 작은 연못이 있어 유료 낚시터로 쓰이는 것 같았다. 그나마 겨울인 지금은 을씨년스런 광경이었다. 차들이 집 마당에 들어서니 이미 연락을 받은 유명우의 늙은 엄마와 누나가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유명우가 나고 자란 집으로 엄마와 누나 내외가 살았다. 장철규가 덕배를 업었다. 그리곤 유명우가 이끄는 이층으로 향했다. 집은 이층 슬라브 집으로 밤에 보아도 제법 규모가 컸다.

"이 친구 깰 때 안 되었냐?"

"아직 아닙니다. 정신들게 주사 한대 놓을까요?"

"아니야, 우선 너희들 밥부터 먹어야지. 나도 아직 못 먹었다. 내려가자."

"아니 형님은 왜 아직 안 드셨습니까?"

", 성공했단 소리 듣기 전에 밥이 넘어 가냐?"

거실엔 세 사람 분의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일등 공신인 미자 네가 많이 먹어라."

유병우가 장미자를 향해 싱글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미모인 나를 보고도 뻣뻣하더니 사장님이 우리 오빠라고 했더니 저 사람이 갑자기 고분고분하던데요? 웃기죠? 하하하."

"충분히 그럴 사람이지. 의리 하난 끝내주는 사람이니까. 하핫."

잠시 후 저녁상을 물린 세 사람은 다시 이층 방으로 올라와 의논을 했다.

"그럼 이제 깨우지요?"

유명우의 결단을 기다리던 장철규가 대답을 재촉하듯 물었다.

", 그래야겠지. 허지만 이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는군."

"엎어진 물 아닙니까. 또 생각해보면 차라리 우리들에게 걸린 것이 다행 아닙니까? 놈들에게 직접 당했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건 또 그렇지만...어쨋든 마냥 둘 수만도 없으니 주사를 놔."

"그러지요. 미자 넌 이 친구 소매 좀 걷어."

"아이 오빠는. 아까는 옷 위에 잘만 놓더구만..."

"시끄러. 그땐 급해서 그랬지. . 어서 걷어."

면허도 없는 돌팔이 장철규는 능숙한 솜씨로 덕배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그러고 나서 세 사람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곽덕배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0여 분 뒤에 곽덕배의 눈꺼플이 경련으로 떨리더니 갑자기 눈을 뜨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눈동자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제 정신이 아닌 듯했다. 미자는 겁이나는지 앉은 채 뒷걸음을 쳐 물러났다. 조금 뒤,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덕배의 눈동자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동생, 이제 정신이 드는가?"

유명우가 걱정스런 얼굴로 덕배에게 다가왔다. 덕배는 유명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문을 몰라 눈만 끔벅였다. 일이 분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덕배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니? 형님 아닙니까? 형님이 여긴 웬 일이신지.... 여긴 어딥니까?"

그때 유명우는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고 덕배에게 머리를 깊히 숙였다. 장철규와 미자도 황급히 같은 자세를 취했다.

", 아니 왜들.... 형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덕배, 내가 자네에게 죽을죄를 지었네. 용서 하게. 아니면 자네 뜻대로 하게.."

유명우는 깊히 고개를 숙여 움직이지 않았다. 덕배는 그제야 유명우 옆에 반쯤 엎드려 자신을 흘깃흘깃 바라보는 여인을 발견 했다. 그리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이거 봐요, 아가씨, 당신 말이야. 호의를 이런 식으로 보답하긴가?"

덕배가 무서운 표정으로 여인을 지목하고 나서자 미자는 오히려 숙였던 고개를 바짝 들었다. 찔끔할 줄 알았던 여자가 당당한 자세로 가슴을 펴자 덕배는 더 할 말을 못했다.

"저 애는 내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네. 다 내 잘못이야."

"아니, 형님이 어째서 날 이렇게 만든단 말입니까? 이유가 있을 테지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군요."

"말하기 전에 먼저 여기 철규랑 그의 여동생 미자의 사과부터 받아주게."

"? 저 아가씨가 형님의 동생이 아니라구요? 이런, 내가 속았군."

"음 그렇게 됐네. 내가 다 털어놓을 테니 먼저 이 사람들의 사과를 받아주게나."

장철규와 미자가 새삼스레 무릎을 다시 꿇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저와 제 동생이 짜고 한 일입니다. 용서 하십시요."

장철규의 태도를 유심히보던 덕배가 먼저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잘못은 했으되 비굴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용서고 말고가 어디 있겠소? 서로 잊고 넘어갑시다. 형씨가 장철규라니....소문은 듣고 있었소".

"역시 듣던대로군요. 고맙습니다."

장철규가 다시 고개를 꾸벅했다. 미자는 얼굴을 들어 뱅긋이 웃고 있었다.

"아가씨는 내가 용서를 못해요."

"아니? 왜요?"

미자가 덕배의 눈길을 맞받으며 항변했다.

"헛 참, 챙피하게 여자 앞에서 기절하게 만든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단 말이요? 그러니 내게 빚진 거 잊지 말아요."

"그럼 절 남자 앞에서 한번 기절 시키면 공평하잖아요. 단 전기 충격기론 안되요. 하하"

덕배는 할 말을 잃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던 유명우는 때가 왔다고 느낀 듯 혼자서 과장된 웃음을 웃었다. 그 순간을 노리기라도 한 듯 덕배에겐 특별한 밥상이 차려져 올라왔다. 밥상이라기보단 술상에 가까운 상이었다. 그날 밤 유명우와 장철규는 교대로 이 일을 하게 된 사연을 말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의뢰와 그 일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도 털어놓았다. 돈도 돈이지만 납치 대상이 덕배인지라 놈들에게 그냥 넘길 수도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덕배와 돈을 교환한 후 다시 안전하게 구출할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듣고 있던 덕배가 한마디 했다.

"좋습니다. 협조하지요. 그러나 형님이 돈을 건네받는 거기까지만 입니다. 이후의 일은 제가 해결하도록 하지요. 이런 일을 꾸민 놈이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곽사장님을 노릴만한 놈은 캐피탈 애들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장철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덕배는 가볍게 놀랐다.

"어째서 말이요?"

"곽사장님이 계시는 그곳이 물이 좋다는 건 어느 조직에서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헌데 거긴 사장님이 속한 연합파와 캐시콜뱅크가 세력을 키웠잖아요? 그러다 최근에 곽사장님이 그 지역을 평정했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습니다. 야쿠자 자금을 끌어다 쓰던 캐시콜이 오히려 사장님 수완에 항복했다더군요. 헌데 거기서 물러난 게 누구냐 하는 겁니다. 바로 캐시콜 신회장의 외아들 신동규 아닙니까? 그놈은 저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성격이 급해 일을 잘 저지르지요. 그러니 이번 일도 곽사장님의 납치를 사주한 배후 인물은 틀림없이 그놈일 겁니다."

장철규의 앞뒤가 딱 맞는 조리 있는 말에 덕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찐드기 유명우는 껍대기요 조조 장철규가 알맹이다란 말이 도는 이유를 덕배도 알 것 같았다.

"잘 봤군. 나도 그놈을 지목했던 거요."

"아까부터 제게 존댓 말을 쓰시는데 그러지 마십시요. 사실은 지갑에 든 신분증을 확인 했습니다. 저보다 한 살 위시더군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우리 형님의 의동생이신데 제겐 말씀을 낮추셔도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철규 말이 맞아. 덕배 자네도 말을 놔. 그래야 없던 정도 생기지. 하하. , 이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들 해보지."

유명우가 새롭게 협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러면 어떨가요. 제가 쓰는 장비도 있고하니..."

장철규가 생각하고 있던 작전을 설명했다. 듣고난 덕배는 자신의 생각을 보태는 조건으로 일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내 핸드폰 내 놔요."

뒷곁에 물러나 자신을 보고있던 미자를 향해 덕배가 손을 내 밀었다.



다음날인 6일 오후였다. 석호의 상처를 소독하던 진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덕밴가 했더니 칠수였다.

"형님, 혹시 거기 사장님 계십니까?"

"? 여기 안 왔는데? 너희 사장은 낮엔 여길 안 오잖아?"

"? 안 계시다구요? 사장님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 나가셨거든요."

"어제? 나와 헤어진 후 곧바로 말이냐?"

"저녁 여섯 시 좀 못 되어서요."

", 그때 쯤 내가 전화를 했더니 손님이 와서 카지노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 아마 카지노에서 밤을 새고 거기서 쉬나보지. 너무 걱정 말어."

"카지노라구요? 알았습니다. 알아보고 다시 연락 드리지요."

칠수와 통화를 끝낸 진우는 일단 석호의 등에 거즈를 갈아 반창고로 마무리 했다. 그리고 나서 혹시 모친의 병세가 더하다는 연락을 받고 집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덕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궁금증이 차차 더해져 칠수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먼저 벨이 울렸다.

"거기도 오지 않았답니다. 어제 입장권과 포커 판의 자리를 부탁하시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더랍니다. 형님, 혹시 짐작가시는 곳은 없습니까?"

"집에도 오지 않았다니 알 수가 없구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무슨 사정이 있겠지."

"글쎄요. 한 번도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행동하신 적이 없으신 분이라서 말입니다."

"그건 그래. 어쨋든 알아 볼 곳이 있으면 사방에 알아 봐. 소식 있으면 연락주고..."

무언가 딱 짚이는 건 없어도 진우는 영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다. 몇 시간도 아니고 24시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게 말이되는가 말이다. 진우는 지난여름 야간열차에서 느꼈던 것과 꼭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목구멍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밤이 깊어 컨테이너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모로 누워 잠이든 석호의 어깨를 이불을 끌어올려 준 진우는 난롯가 의자에 앉았다. 난로는 열기가 사그러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나무토막 넣는 걸 깜박한 탓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간신히 불씨만 남아 있었다. 불씨를 살려 나무토막을 넣자 불길은 다시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난로의 뚜껑이 빨갛게 될 정도였다. 진우는 천천히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덕배는 친구가 아니라 형제였다. 자신의 모든 과거 속에는 덕배가 함께 녹아 있었던 것이다. 내일 아침엔 덕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진우에겐 불안하고 우울한 밤이었다.

"형님이 나보다 늦게 일어날 때도 있네요. 밥은 지어 놨어요. 전 먼저 먹었고요."

아침 아홉 시가 넘어서 일어난 진우에게 석호가 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다. 늦잠을 잔 것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든 때문이었다.

"밥도 좋지만 너 아직은 가만히 누워 있는게 좋잖아? 그러다 실밥 터지면 난 꿰멜 줄 모르는 거 알지?"

"에이, 거의 다 나았어요. 괜찮아요. 헌데 사장 형님이 어디 가셨나보지요?"

"어제 들었냐? 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지 않아도 밥 먹고 내려가 보려고 한다"

대강 밥을 먹은 진우가 산을 내려와 지나는 일톤 트럭을 얻어타고 덕배의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얼추 정오에 가까웠다. 사무실엔 서너 명의 손님과 칠수와 만기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상담이 한창이었다. 서로 눈인사만 나눈 진우가 사무실을 서성이다 문 밖으로 나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일층은 고급 차종을 보관하는 차고로 쓰였다. 그 차고 앞에 손님이 타고 온 차가 있었다. 그제 저녁에 왔던 차도 이런 식으로 주차를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주차장 입구 기둥에 매달린 카메라가 눈에 띄었다. 카메라는 주차장과 사무실 건물 전체를 담을 만큼의 거리에 있었다. 뭔가가 찍혔을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든 진우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마침 손님들도 일어나고 있었다. 차 열쇠를 쥔 만기를 따라 손님들이 나가자 칠수가 다가왔다.

"그래도 손님은 여전하구나."

"그럼요. 요즘은 김기동이 덕에 손님이 배로 늘었습니다."

"그만큼 김기동이에게 다들 털린다는 얘기겠지. 헌데 아직이야?"

"알아 볼 곳은 거의 알아봤습니다. 이젠 할 수없이 본부에 알리는 길만 남았지요."

"본부라니?"

"큰형님이신 회장님 라인을 말하는 거지요."

"거기다 알리면 오늘이라도 사장이 나타나나? 그보다 먼저 우리가 알아봐야지. 저 입구의 카메라는 메인이 어디 있냐? 녹화기 말이야."

칠수가 새삼 입구 쪽을 뻔히 보더니 그제야 카메라의 존재를 안 듯 고개를 갸웃했다.

", 저런 게 언제부터 있었지? 전 지금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평소엔 누구나 저런 것에 무관심하기 마련이야. 단말기가 혹시 사장 방에 없을까?"

"모르겠습니다. 컴퓨터 밖에 보질 못했는데요."

"일단 가보지."

진우의 예상대로 녹화기는 모니터의 받침대로 놓였고 컴퓨터와도 연결된 상태였다. 이틀 전인 5일자의 화면을 찾아 17시부터 재생을 시작했다.

"다섯 시 이후에는 손님이 없었군."

", 그저께 저녁엔 손님이 별루였습니다."

화면을 건너 뛰어 덕배가 퇴근했다는 다섯 시 반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입구로 들어서는 차량이 보였다.

", 렉서스, 바로 이 찹니다."

칠수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르켰다. 사무실 쪽으로 들어서는 차의 뒷 번호판이 히미했다. 그러나 부분 확대로 본 차의 번호 판은 식별이 가능했다. 29389x였다.

"차 적을 조회하려면 경찰서로 가야하는데 어쩌지?"

차 적을 알기위해 섣불리 실종신고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경찰망을 뚫을 만큼 해킹기술을 가진 것도 아닌 진우였다.

", 그건 제가 해결하지요. 번호를 적어 주십시오. 추심사 애들이 차적이나 신상을 터는데는 귀신같으니까 말입니다."

번호를 쥔 칠수가 전화를 거는 동안 진우는 계속해서 화면을 재생해 보았다. 그런데 덕배가 운전석을 향해 있는 장면은 일 분에 불과했다. 곧이어 차를 돌아 조수석에 타는 것이다. 되돌린 차가 입구의 카메라 쪽으로 오자 화면을 정지했다. 유리에 빛이 반사되긴 했으나 확대된 화면의 운전자가 여자라는 것은 알아 볼 만 했다. 진우는 비로써 안도하는 마음이 생겼다. 혹시 무지막지한 놈들에게 납치라도 되지 않았을까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서 였다. 덕배가 설마 여자에게 잡혀가기야 하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덕배의 애인일 지도 모를 일 아닌가? 쓸데없이 혼자서 노심초사한 것이 우습게까지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애인과 함께 있다 해도 이틀씩이나 아무런 연락이 없을 덕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진우는 다시금 불안감에 휩싸였다. 두어 시간 후에 진우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형님, 이거 이상합니다. 조회 결과 그 차는 일본인 무역회사의 법인으로 등록된 차랍니다. 그 회사는 주로 술을 취급하는데 야마구치 패에서 나온 사람이 사장이랍니다. , 야마구치라면 형님은 모르시겠군요. 이놈들은 일본 야쿠자들입니다. 이놈들이 한국까지 진출한 거지요. 헌데 야마구치 자금을 쓰는 곳이 캐시콜이거든요. 그러니 그 차와 신사장이 연루된 건 아닐까요?"

"?"

진우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했다. 127일 하루가 또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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