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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단편 소설 80

투견판 4. 동업자들(5) 싸우지 않는 투견

"준비 됐냐?" 전화기 넘어에서 고달수가 대뜸 물어왔다. 그러자 양구택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준비할 게 뭐가 있어? 네놈이 와서 이 형님을 모셔가면 그만이지." "아, 그 자식하고는. 임마, 길 떠나기 전에 밥도 먹고 화장실도 미리 갔다 왔는지 네놈을 걱정하는 것 아니냐?" "네 놈이 이제야 철이 나는가 보다. 안 하던 내 걱정까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게 널 걱정하는 거냐? 태산이를 돌볼 놈을 걱정하는 거지." "아, 시끄러. 빨리 오기나 해. 너 지금 어디냐?" "너의 집에 거의 다 와 간다. 끊어." 고달수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자 양구택은 손에 든 전화기를 멍 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 이 자식들이 언제부터 제 맘대로 전화를 탁탁 끊냐?" 양구택은 놈들의 행동이 동업을 하기로..

오늘의 소설 2024.02.29

투견판 4. 동업자들(1) 피스 오브 케익

토요일 오후 여덟시경이었다. 조중구는 간신히 게임 시간에 맞춰 투견장에 도착했다. 투견장은 지난주와 같은 장소인 인천의 외곽 지대인 남촌이었다. 조중구가 서울에서 출발한 것은 여섯 시 반 경이었다. 이곳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었기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떠났으나 지난번에 왔던 길을 기억에서 더듬느라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조중구가 도착했을 때 검은 보온 덮개를 씌운 커다란 비닐하우스 앞에는 이미 차들이 꽉 들어차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였다. 구석에다 차를 세운 조중구가 서둘러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황백구 총무가 첫 번째 시합을 소개하고 있었다. ".....에, .... 그렇게들 아시고 베팅을 하시되 일본에서 온 도사는 A, 한국의 도사는 B로 표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

오늘의 소설 2024.02.28

투견판 3. 투견꾼들(3) 돌변

"아저씨, 저러다 태산이가 큰일나겠어요. 말려주세요. 예? 아저씨." 한열은 양구택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하나, 양구택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잔뜩 굳은 얼굴로 한열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저놈을 키웠다. 저놈 말고는 이젠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도 태산이 저놈은 도통 싸울 생각을 않으니 최후의 방법을 쓰는 것이다. 끝까지 싸우지 않겠다면 저놈은 죽은 목숨이고 나 역시 모든 걸 잃는 순간이란 말이다. 이왕 시작한 것.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래도... 아저씨. 태산이가. 태산이가 불쌍하잖아요? 저것 보세요. 곧 죽을 것 같아요. 제발 말려주세요." 한열은 눈물을 글썽이며 양구택의 팔을 마구 흔들었다. 허나 양구택의 결심은 변하지 않아서 도사들이 태산이를 죽이는 것..

오늘의 소설 2024.02.27

투견판 3. 투견꾼들(2) 투견 훈련

다음 날이었다. 양구택은 엉성한 냄비 밥을 지어 대강 저녁밥을 먹은 후 태산이를 끌어내 투견장 옆 쇠 말뚝에 묶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태산이와 싸움을 할 개들을 차례로 개장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 다음 먼저 두 마리의 진돗개들을 투견장 안에다 풀어주었다. 그다음 도사를 진돗개들과 합쳤다. 도사가 들어오자 진돗개들은 단번에 이빨을 드러냈다. 도사도 마찬가지여서 들어가자 말자 싸울 준비를 갖추며 눈빛이 달라졌다. 두 견종이 앞발을 낮추어 싸울 태세를 하는데 양구택은 롯드 와일러를 또 집어넣었다. 그러자 진돗개들과 도사는 물론 방금 들어간 롯드 와일러까지 상황이 이상함을 알았는지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느라 좌우를 둘러보기 바빴다. 갑자기 삼파전으로 변해 어떤 놈을 공격해야 하고 어떤 놈을 방어해야 할지 몰라 당..

오늘의 소설 2024.02.27

투견판 3. 투견꾼들(1) 태산이

"오, 마침 두 부자가 다 있었구먼." 양구택은 경비실로 들어서며 배철권과 한열을 향해 들고 있던 수박을 내밀었다. "아니? 이게 웬 겁니까?" 의외의 물건에 놀란 배철권이 수박을 받아들 생각을 잠시 잊고 눈이 커졌다. "우선 받게나. 오는 길에 사 왔네." "원 선배님도.... 이런 건 선배님 가족에게 갖다 드릴 것이지...." 수박을 받아 든 배철권이 놓을 곳을 찾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아들 한열이가 재빨리 그것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물통에 담아놓으려는 것이다. "안양에 갔다오는 길일세." "안양이오?" "박철구라고 한때 동업을 하던 친한 사이지. 그 친구가 안양에서 개 농장을 하거든." "아, 지난주에 도사와 진돗개를 사오신 곳 말이지요?" "그렇지. 하지만 진돗개는 시흥의 고달수라는..

오늘의 소설 2024.02.27

투견판 2. 투견 게임(9) 소발이 쥐를 잡다

조중구가 서비스 공장의 간판을 찾은 것은 정확히 출발 후 이십오 분이 지나서였다. 공장 마당에는 회원들이 타고 온 차들이 그득했다. 조중구는 주차를 하자말자 공장 건물로 들어섰다. 조중구가 들어섰을 때는 이미 개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공장 가운데에 둥근 쇠창살의 울타리 안에서 두 마리의 커다란 도사견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중구는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오, 조 박사, 오늘은 늦었구려. 이번 판은 베팅이 끝났으니 말이오." 조중구가 돌아보니 몇 걸음 옆에 있던 곽 사장이 조중구를 향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예, 차가 좀 막혀서요." 조중구는 투견들과 곽 사장을 번갈아보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조중구는 두 마리의 도사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 가를 판단이라도 하려는 듯 판세를 자세히 살펴..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8) 조마조마한 마음

통화를 끝낸 조중구는 방금 고달수로부터 들은 몇 마디를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고달수가 말한 내용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 지난주에 출전했던 진돗개들이 이번 주에 다시 출전한다. 둘째, 회장 영감은 출전할 개들에게 양고기를 먹이지 않았다. 셋째, 회장은 이제까지 거래하든 롯드 와일러 견주를 배제하고 다른 양견장을 택했다. 조중구는 세 가지를 회장 영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번 대회에서 베팅된 돈의 전부를 먹을 수 있었던 회장이었다. 참가자 모두가 롯드 와일러가 우세할 것으로 보였던 경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롯드 와일러에게 베팅이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난데없이 조중구라는 복병이 진돗개에 베팅을 하는 통에 자신은 얼마 먹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투견에 대해 잘 모르는 조중구라는 신입 ..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7) 달콤한 유혹

조중구는 올 때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상계 교차로를 통과할 무렵이었다. 주머니에 든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아까 투견장에서 방해가 될까 봐 진동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조중굽니다." "오빠, 지금 어디야? 오빠, 어디냐구?......" 수화기를 통해 동생 문숙이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중구는 침착을 가장하며 급히 물었다. "어, 문숙이냐? 왜 무슨 일 있냐?" "오, 오빠. 빨리 와. 아빠가... 아빠가.…" "뭣? 아버지가 왜? 어떻게 되셨는데? 아, 말해. 문, 문숙아." "오빠,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나 봐. 방금 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어. 어떡해?" "어느 병원이래? 내 그리로 곧장 갈 거니까... 어느 병원이냐고?" "한강 종합 병원. 화양동. 한강 종합 병원..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6) 횡재와 거래

견주들이 재빨리 수건을 거두어 철망 밖으로 나섰다. 먼저 돌진 한 것은 롯드 와일러였다. 허나 지름이 4 미터에 불과한 철망 안에서의 돌진은 오히려 진돗개에게 기회를 주었다. 돌진해 오는 롯드 와일러가 흡사 멧돼지와 같아서 진돗개들은 본능적으로 훌쩍 갈라선 것이다. 그 통에 브레이크가 늦은 롯드 와일러는 철망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순간을 노린 듯 진돗개들은 롯드 와일러의 뒷다리를 물려 들었다. 뒷다리에 진돗개의 입이 닿자 깜짝 놀란 롯드 와일러가 재빨리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는 좌우의 진돗개를 향해 눈길은 바삐 움직였다. 롯드 와일러는 두 마리 진돗개 중에 한 놈을 택해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약해 보이는 놈을 먼저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롯드 와일러는 단숨에 정해 놓은 상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

오늘의 소설 2024.02.26

투견판 2. 투견 게임(5) 운 아닌 운에 맡기다

드디어 기다리든 소식이 신동우의 전화기를 통해서 조중구의 귀로 들어왔다. "내일 저녁? 거 좋지. 어디래?" "지난 번 거기. 거기서 한번 더 한다더군." "그래? 밤중에 앞차를 따라갔던 길이라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지. 허나 우리 같은 회원이 많을 거니 전화로 알아볼 게." "시간은?" "이번엔 좀 빠르더라. 여덟시 반이라니 말이다." "알았어. 같이 갈까? 아니면 각자 갈까?" "금동이 하고 같이 가려면 한 차를 타는 게 낫지 않겠냐?" "글쎄다. 이번 주엔 통화만 했지 금동이 얼굴도 못 봤다. 아무래도 동생 문제가 불거지나 봐. 금동이 아버지 건강 문제도 있고 말이야." "그래? 그럼 일단 의정부역까지는 각자 가는 걸로 해. 내가 금동이에게 이따 전화 해 볼 테니까." "그러..

오늘의 소설 20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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