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3. 투견꾼들(3) 돌변

fiction-google 2024. 2. 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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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러다 태산이가 큰일나겠어요. 말려주세요. ? 아저씨."

한열은 양구택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하나, 양구택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잔뜩 굳은 얼굴로 한열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저놈을 키웠다. 저놈 말고는 이젠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도 태산이 저놈은 도통 싸울 생각을 않으니 최후의 방법을 쓰는 것이다. 끝까지 싸우지 않겠다면 저놈은 죽은 목숨이고 나 역시 모든 걸 잃는 순간이란 말이다. 이왕 시작한 것.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래도... 아저씨. 태산이가. 태산이가 불쌍하잖아요? 저것 보세요. 곧 죽을 것 같아요. 제발 말려주세요."

한열은 눈물을 글썽이며 양구택의 팔을 마구 흔들었다. 허나 양구택의 결심은 변하지 않아서 도사들이 태산이를 죽이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래야만 하는 내 마음도 아프다. 한열아. 곧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될 것 같구나. 이만 네 아버지께 돌아가거라."

"아니요. 아저씨. 그만. 그만 그치게 해주세요."

"보지 않는 것이 좋아. 어허, 어서 돌아가."

한열은 대답 대신 철망에 매달려 태산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태산이는 이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다만 쓰러진 채 작별 인사를 하듯 애절한 눈빛으로 한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열은 태산이의 그런 눈빛에 가슴이 저렸다. 그 순간 한열은 자신도 모를 행동을 저질렀다. 무작정 투견장의 문을 확 열어버린 것이다.

"태산아. 나와. 나와. 어서 나오라고....."

한열이 투견장의 문을 연 것을 본 양구택이 기겁을 하여 한열의 팔을 잡아끌어당겼다.

"어 엇, 문을 열면 어떡해? 저 도사들이 흥분했는데. 아차하면 사람도 문단 말이다. 넌 어서 피하거라."

"아니요, 아저씨 저 태산이가..... 태산아. 얼른 나와 도망을 쳐. 도망을 치라고."

양구택은 막무가내로 철망으로 다가가려는 한열의 팔을 끌어 당겼다. 그런데 그럴 시간을 도사견들이 주지를 않았다. 문이 열린 것을 안 도사들이 늘어진 태산이를 놓아둔 채 일제히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 것이다. 다섯 마리의 커다란 도사들은 위험한 상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한열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장섰던 도사가 펄쩍 뛰며 한열에게 덮쳤다.

". . 아저씨. 이 개.. 이 개.…"

한열의 다급한 외침에 양구택이 급한 대로 가까이 있던 삽을 들고 한열이의 어깨를 문 도사의 등짝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놈의 머리를 치려는데 뒤따라 오던 도사가 양구택의 팔을 덥썩 물었다. 또 다른 도사는 넘어지는 한열의 다리를 향해 덤볐다.

급한 양구택이 삽을 떨어뜨리며 한열에게 다가가는 도사의 주둥이를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팔이 물린 상태였든 지라 발길은 헛 나가고 말았다. 양구택의 삽에 맞아 잠시 주춤하던 도사가 다시 한열에게 덤벼들었다. 모두 세 마리의 도사가 한열이를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막 일어서려던 한열이 세 마리가 한꺼번에 덤비자 다시 쓰러져 버렸다. 한열은 쓰러지면서 본능적으로 얼굴과 가슴을 두 팔로 감싸고 꼬부렸다. 그러나 입으로는 연방 태산이를 부르고 있었다.

"악 태산아. 태산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모로 쓰러진 한열이를 덮쳐서 어깨를 문 도사가 갑자기 공중으로 번쩍 들리더니 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퍽 떨어졌다. 눈을 감은 채 꼬부리고 있던 한열은 무엇이 철퍼덕 떨어지는 소리에 움찔했다. 이어서 꺼컹 하는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땅이 마구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한열이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거기엔 전연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투견장 안에 쓰러져 있던 태산이가 한열이의 급박한 외침을 들었는지 어느새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태산이는 입에 문 도사를 공중에서 몇 번을 휘젖고는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있었다. 한열에게 덤볐던 두 마리는 이미 걸레짝처럼 널부러졌고 양구택의 다리를 물었던 도사는 허리가 부러져 즉사했다.

양구택의 팔을 물어 당기던 도사는 그제야 낌세를 채고 얼른 돌아섰다. 그러다 태산이와 눈이 마주쳤다. 태산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도사의 머리통을 덥썩 물더니 우두득 소리가 나게 씹어버렸다. 잔치는 금새 끝나버렸다. 신나게 잔치를 벌였던 다섯 마리의 도사는 눈 깜짝하는 사이에 모조리 국수 가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태산이는 무슨 생각에선지 이번엔 대기조로 묶어두었던 개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양구택이 이틀에 걸쳐 박철구에게서 갖고 온 도사와 두 마리의 진돗개, 그리고 롯드 와일러였다. 태산이가 다가가자 도사와 롯드 와일러는 겁에 질려 쇠사슬이 팽팽하도록 뒤로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그러나 태산이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도사를 향해 성큼 다가가더니 단번에 목을 물었다. 도사의 목뼈 부러지는 소리가 우두득 들렸다. 롯드 와일러는 오줌을 싸며 말뚝을 맴돌았지만 태산이가 허리를 덥썩 물고 몇 번 흔들자 척추가 부러져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태산이는 남은 진돗개들도 차례로 물어 죽였다. 개들을 물어 죽이고 돌아서는 태산이는 아까와는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처음 개들을 죽이고 난 태산이는 마치 지옥을 평정한 야차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까부터 닫힌 철망의 문을 부수려는지 동방불패의 짖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한열의 다급한 소리를 동방불패도 들었나 보았다. 그러나 동방불패가 갇힌 쇠창살은 너무도 튼튼했다. 동방불패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울부짖더니 상황이 끝나 밖이 조용해 지자 비로소 새끼들 곁으로 돌아갔다.

양구택의 투견장 안 팍은 죽은 개들의 시체와 그들이 흘린 피로 그야말로 피바다였다. 태산의 몸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귀와 콧등이 특히 심한 듯 쉼 없이 피가 솟았다. 태산이 뿐만 아니었다. 한열이 자신의 옷도 피투성이였다. 한열은 태산이의 목을 왈칵 끌어안았다. 그러나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물린 어깨의 통증이 강하게 전해 왔다.

"아저씨 다친 곳은 없으세요?"

한열이 묻는 말에도 양구택은 말이 없었다. 그냥 땅바닥에 다리를 뻗고 촛점 없는 눈으로 널브러진 도사견들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한열이 아픈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며 양구택에게로 다가갔다.

". 아저씨 팔에서 피가 많이 나요. 다리도요. 아무래도 병원에 가셔야겠어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그렇게 싸우기를 겁내던 놈이 네가 곤경에 처하니 이렇듯 단숨에 역전을 시키다니? , 물린데는 없니?"

"전 어깨를 약간 물렸어요. 하지만 아저씨 상처가 더 심한 것 같아요. 어서 병원으로 가시죠?"

"큰일 날뻔했다. 아이구, 네 어깨뿐 아니구나. 온몸에 피 아니냐?"

"이건 태산이 피가 묻은 거예요. 한데 태산이부터 병원에 데려가야 할 텐데요? "

"아니다, 개라면 내가 잘 안다. 저 정도로 탈이 나지 않는다. 약은 있으니 저놈은 가둬놓고 갔다 와서 치료를 해주면 된다."

"그래도... 피를 너무 흘리잖아요?"

"난들 저놈을 치료해주고 싶지 않겠냐? 사람과 동물이 한꺼번에 병원엘 갈 수 없는 걸 모르냐? 가자, 너부터 얼른 치료를 받아야지."

양구택은 태산이를 컨테이너에 몰아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태산이는 양구택의 손길을 거부하며 컨테이너 쪽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 이놈아, 내가 널 그렇게 만들고 싶어 그랬겠냐? 나도 궁지에 몰리고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아니냔 말이다. , 들어가자. 내가 미안하다. 자 어서."

양구택이 다정한 목소리로 태산이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태산이는 양구택을 피해 저만큼 물러가 버렸다. 그리고는 양구택을 향해 강한 불신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보다 못한 한열이 태산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산아, 아저씨하고 얼른 갔다 올 테니까. 잠깐 들어가 있어라. ?"

태산이는 한열이를 한번 힐긋 돌아본 후 잠시 망설이다 스스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양구택은 다친 다리를 끌며 간신히 차에 올랐다. 그리고 한참을 애쓴 끝에 열쇠를 꽂아 막 시동을 걸려는데 배철권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난장판이 된 현장을 발견한 배철권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이거..... , 한열아.... 너 괜찮냐?"

개들이 널브러진 피바다 속에서 아들을 단번에 알아본 배철권이 급히 한열이 곁으로 달려왔다.

"아버지. 전 괜찮아요. 저보다 양씨 아저씨가 더 다치셨어요."

"그래? 아니, 선배님, 이거 안 되겠습니다. 운전은 제게 맡기고 옆으로 가세요."

양구택이 뭉기적거리며 옆으로 옮겨 앉자 배철권은 재빨리 운전석에 올랐다.   

"한열아. 빨리 타라."

배철권은 차를 몰아 허허벌판인 공터를 빠져나와 잠시 후 좁은 시골의 도로도 벗어났다. 그러자 그때부터 가속 페달을 밟아 더욱 속도를 높였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배철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자 서먹함을 면하려는지 양구택이 먼저 입을 땠다.

"자네 보기에 면목이 없네. 모두 내 잘못이네. 한열이가 다친 것도 다 나 때문일세."

"어쩐지 개 소리가 심상치 않습디다. 그래서 가 본 거지요."

"적시에 와 주었네. 아예 큰 병원으로 가세."

배철권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계속 악셀을 밟았다. 차는 빠른 속도로 시내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구택과 한열이 병원에 들어선 것은 출발 이후 거의 한 시간 뒤였다. 배철권은 서둘러 차를 응급실 입구에 들이댔다.

어깨를 물린 한열이의 상처는 다행히 심하지 않았지만 양구택의 경우는 상태가 좀 더 심각했다. 도사가 물고 흔드는 통에 팔뚝 뼈가 부러진 것이다. 다리에도 깊은 자상이 있었다.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광견병 검사를 위해 혈액이 체취 되었다. 양구택에게는 입원이 결정되었다. 치료를 마친 한열은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며칠간의 통원 치료만 하면 된다는 소견이 떨어진 것이다.

"선배님, 태산이는 내가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료와 물을 주고 산책을 시키면 될 것 아닙니까?"

배철권이 양구택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미리 나섰다. 양구택은 임시로 부목을 댄 팔의 통증으로 콧등에 주름을 지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나 때문에 아들이 다쳤는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네. 한데 말일세. 태산도 심하게 다쳤다네. 염치없는 말이지만 기왕 자네가 태산이를 봐 준다면 그놈의 상처도 좀 봐주게. 약은 컨테이너 안에 있네."

"그러지요. 하지만 약을 바를 동안 태산이가 내 말을 잘 들으려 할까요?"

"글쎄, 사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심한 상처를 입은 태산이가 배철권의 치료를 받아들일지는 양구택도 사실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아닌 이상 친하지 않은 사람의 치료 행위를 자신을 해치려는 행동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제가 할게요. 저라면 태산이도 가만있을 거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한열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건 안 된다. 넌 내일 학교를 가려면 지금 집으로 가야지."

배철권이 손을 저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요. 얼른 가서 약을 발라주고 다시 집으로 가면 되니까요."

", 자네가 하는 것보다 한열이가 한다면 나도 안심일세. 그럼 이렇게 하게. 가서 치료를 해 준 뒤에 자네가 다시 트럭으로 한열이를 집으로 데려다주게. 지금 떠난다면 자네 근무시간 전 까진 한열이를 집에 데려다 줄 시간은 충분할 걸세."

"그게 좋겠군요. 사실 태산이는 저도 좀 겁나거든요. 한열아, 그래도 괜찮겠냐?"

"그럼요. 아버지 어서 가요."

배철권은 한열과 함께 트럭을 타고 검단으로 출발했다. 그들 부자가 병실을 떠나자 양구택은 비로소 입원 소식을 집으로 알렸다. 그런 다음,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안양의 박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개들의 사망 통지부터 띄웠다.

", 철구야. 네 개들이 전원 전사했다."

"?"

양구택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연 알 수가 없는 박철구였다.

", 임마. 네 개가 물려죽었단 말이다."

"뭐라고? 네 개가 물려죽었어? 그야 당연하지. 도사 다섯 마리를 이길 개가 세상에 어디 있냐? 내가 처음부터 그럴 거라 했잖아. 하하하."

박철구는 양구택의 개가 죽으리라 미리 단정을 했으므로 당연히 승리를 한 쪽은 자신의 도사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제야 양구택과의 정상적 대화가 가능해진 것에 박철구는 만족한 웃음을 웃었다. 이어서 양구택의 말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할 때의 네 개란 바로 철구 너의 개라는 뜻이야. 그러니 네 개란 즉, 내가 어제 너에게 빌려 온 도사를 뜻하지 않겠냐?"

"그야 아무래도 좋아, 네 개가 죽어도 찡찡대지 않겠다고 한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말이야."

", 박철구. 정신 차려. 죽은 쪽은 내 개가 아니라 도사견 다섯 마리란 말이야. 도사견이 전멸했다니까."

"? 뭐라고 했냐? 정말 네 개 한 마리에게 내 개 다섯 마리가 당했단 말이냐?"

"아이고 답답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냐? 도사 다섯 마리뿐만 아니라 그전에 가져온 개들까지 전원 사망했단 말이야."

"이거야 원 믿을 소리를 해야 믿지. 그러고도 네 개는 멀쩡하고?"

"좀 다치긴 다쳤지."

"그러니까. 네 개는 몸에 기스만 조금 나고 내 개들은 전원 몰사를 했다는 말이냐?"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즉시 이곳으로 와라. 네 개의 장례 절차도 의논하고 남은 유족은 없어도 보상 문제를 매듭을 지어야 하니까."

"이 자식이 점점 모를 소리만 하네? 너 지금 있는 곳이 어디야? 내 당장 달려갈 테니까."

"여긴 인천 길녀 병원이다. 일반 병실 6013호로 와라. 끝는다."

"? 길녀 병원? 거긴 인간들이 가는 병원 아니냐? 네 개가 다쳤다면 동물 병원엘 가야 할 것 아니냐?"   

"이런 화상 하고선.... 네 개에 물려서 내가 지금 전치 십이 주의 진단이 나왔단 말이다. 이건 네가 보상할 문제고...."

"이거 무슨 해괴한 말씀을 하시나? 개들끼리 싸우는데 네가 왜 물려? 네가 개들이 싸우는 링 안엔 왜 들어가냐고?"

", 제발 뭣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하지 마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일단 빨리 좀 와라. 와서 얘기하자고."

"네가 있는 병실이 몇 호라고 했냐?"

"6013 . 너 빨리 와라."

침대에다 전화기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양구택이 비로소 아구구 소리를 내며 간신히 누웠다. 진통제 주사의 효과가 떨어지는지 오른팔이 뻐근하고 저렸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무릎뼈 위를 물려서 다리를 폈다 굽히기도 힘이 들 지경인 것이다.

'배철권 부자가 가긴 갔다만... 그 현장엘 다시 들어서면 섬찟할 터이지? 아차, 죽은 개들은 어쩌지? 옳지, 그건 박철구가 오면 아예 싣고 가라고 해야지. 그런데.... 다른 건 해결할 수 있는데 배철권 부자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특히 한열이가 내 개 때문에 어깨를 물렸으니.... 내 아들에게 쫓기고 맞았다더니 이젠 내 개들에게 물리다니... 빌어먹을.... 태산이 그놈은 왜 싸우지 않으려고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냔 말야.'

진통제의 효과는 사라지고 진정제의 효과는 많이 남아서 양구택이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결인듯 싶은 말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제수씨. 수고가 많습니다. 그래,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박 씨 오셨군요? 어마, 고씨도 오시네요. 그새 어떻게들 알고 이렇게 오셨어요?"

", 이 친구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양구택이 꿈길에서 현실로 의식을 갈아타자말자 눈을 번쩍떴다.

"? 이 친구 눈을 떴군."

고달수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 죽긴 철구 개가 죽었는데 달수 너는 왜 왔냐?"

양구택은 박철구와 고달수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 문병을 와도 지랄이냐? 왜 노려 봐?"

고달수가 양구택의 꼴을 살피며 이죽거렸다.

"문병? 문병 좋아하네. 과일 바구니는 아니더라도 생수병 하나 들고 오지 않는 문병꾼도 있다더냐? 달수 너, 몇 년 전 술 먹고 교통사고 냈을 때 내가 홍삼 드링크 사다 준 것 기억하지? 그거 다시 내 놔."

", 그 자식 기억력 하고는... 머리를 다치지 왜 팔은 다쳐가지고선.... 우리가 빈손인 것은 사실이다. 하나, 개싸움에 입원을 했다는 네놈 말이 말이 돼야지. 그걸 어떻게 믿고 덜컹 과일 바구니부터 들고 오냐?"

고달수가 변명을 늘어 놓는 사이 박철구가 양구택이 누운 침대로 바짝 다가왔다.

", 네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냐?"

박철구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사실이지. 뿐이냐? 네 개들 아홉 마리가 죽는 시간은 채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네 개 한 마리에게 말이지?"

"몇 번을 말해야 알겠냐?"

"좋다, 그럼 그 개의 크기가 얼마나 되냐?"

"어깨 높이는 일 미터 정도고 무게는 2백 키로에 가깝지."

"뭐라고? , 달수야, 갑자기 이 자식 말을 들으니 자꾸만 사실일 거라는 강한 망상이 생긴다. 이걸 어쩌면 좋으냐?"

고달수도 그제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양구택 가까이 다가왔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네 말이니 일단은 믿는 걸로 하고 다시 묻겠다. 세상에 그런 개가 있냐?"

"있으니까 철구네 개나 내가 이 꼴이 난 것 아니냐?"

"좋다, 그럼 그 개는 지금 어디 있냐?"

"검단에 투견 훈련장을 만들었는데 거기 있다. 여러 소리 말고 지금 너희들이 가서 수습을 좀 해다오. 죽은 개들은 싣고 가던지 파묻어 달라고. 그리고 내 개를 구경은 하되 가까이 가진 말어. 그놈 어쩐지 오늘부터 좀 달라진 것 같으니까. 아차 하면 너희들도 사망이야."

", 우린 개 장수야. 하룻강아지라도 개장수는 알아보는 법인데 그깟 덩치 좀 큰 개가 무서워 봤자지. , 달수야. 안 그러냐?"

박철구가 큰소리를 치는 동안 고달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양구택의 말이 사실일 경우..... 이건 어쩌면 자신에게도 대박이 터질 찬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세상에 이런 흥행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만약이란 단서가 붙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이니까.... 도사 다섯 마리와 또 다른 개 네 마리를 정말로 단 삼 분만에 죽였다면 그 개야말로 개가죽을 덮어쓴 호랑이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건 투견 사상 최대의 특종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시바삐 현장을 수색해서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 만약, 지금 상상하는 공상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어떡해서든 양구택과 손을 잡고 볼 일인 것이다. 사실 요즘의 투견 판이란 모두 비슷해서 어딜 가나 도사들끼리의 싸움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떤 견종도 결국 도사에게는 이길 수 없으니 너도나도 도사를 투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고 질리게 마련 아닌가? 요즈음의 투견 판이 바로 그런 기로에 있었다.

또다시, 만약, 이럴 때, 양구택이 말하는 그런 개를 투견 판에 선을 보인다면? 그러면 단번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확 끌어당길 것이다. 시선뿐인가? 전국 투견판과 도박계의 폭발적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그럴 때, 몇 번만 흥행을 성공 시키면..... 그 뒤는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박사라는 조중구와 미리 정보를 교환할 필요도 없고 그가 나눠주는 돈에 연연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좋다. 속는 셈 치고 일단 가서 실물을 한번 보기로 하자. 물론 양구택이 말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말의 절반만 믿는다 해도 그런 개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한 마리의 투견이 다섯 마리의 투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 자체로 이미 흥행은 되고도 남을 터였다.

‘흥행이 대박을 치면? 흐흐... 돈이 그냥....’

", 임마. 달수. .... 정신은 홍삼 드링크를 사러 보냈냐? 철구가 하는 말이 안 들리냐?"

고달수가 대답이 없자 누웠던 양구택이 또다시 홍삼 드링크로 물고 늘어졌다.

"아앗, 미안. 내 잠시 다른 생각을 했었다. 야 철구야 방금 나 보고 뭐랬냐?"

"너 따윈 구택이 개 앞에 가면 오줌을 지릴 거라 했다."

"미친 놈. 하룻강아지라도 개장수는 알아보는 법인데 그깟 덩치 좀 큰 개가 무서워 봤자지."

"? 저 자식 정신 나간 척 쇼를 했었구나.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따라하다니?"

",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가려면 어서 가자."

고달수의 재촉에 박철구도 서둘러 양구택이 그려주는 약도 한 장을 받아들고 병실을 나섰다. 양구택의 아내가 양손에 자판기 커피를 들고 오다 문 앞에서 마주쳤다.

"에그, 이거라도 한 잔씩 하시고 가세요."

"아이고 제수씨 우리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요."

"그럼, 들고 가시면서 드세요. 호호."

고달수는 양구택 마누라의 정성으로 봐서 일단 한 잔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박철구도 매정하게 돌아설 수 없어서 나머지를 받았다.

박철구와 고달수는 양구택의 아내에게 대강 인사를 한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구택이는 죽을 상으로 누웠는데 저 마누라는 뭐가 좋아서 호호하고 웃고 야단일까?"

박철구가 뜰뜨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얌마, 그 게 좋아서 웃는 거겠냐? 개에 물려 아들 죽자, 이젠 서방이 개에 물려 죽을 뻔했으니 어이가 없다는 뜻일 테지."

"그건 네 말이 맞는 말이다. 저 여잔 옛날부터 구택이가 무슨 짓을 하든 잔소리 안 하기로 유명한 여자 아니냐."

"그걸 이제 알았냐?"

두 사람이 지하로 내려와 주차장 표시를 찾다가 갑자기 고달수가 무엇을 보았는지 방향을 돌리더니 복 죽이라 쓴 죽집으로 불쑥 들어갔다.

", 여긴 뭣하러 왔냐?"

박철구가 급히 따라 들어가 물었다.

"보면 모르냐? 죽 시키려는 중이다."

", 구택이 주려고? 그럼 내 것까지 네가 시켜라."

"넌 공짜 병문안을 하겠다는 말이냐?"

"넌 아직 재벌들 시다바리지만 난 요즘 실업자 아니냐?"

"그 놈, 좋다. 네 것까지 배달을 시키지. 6013호 고달수 앞으로 전복죽 일 주일 동안 보내 줘요."

고달수는 지갑을 열어 주인이 부르는 죽 값을 치르고 돌아섰다. 생각 보다 죽값이 더럽게 비싸다고 생각되었으나 <만약의 개를> 생각하면 그깟 죽값은 그야말로 죽값이려니 하고 말았다.   

"고맙다. 헌데 말이다. 구택이 저놈이 거짓말로 우리를 속일 놈은 아니지?"

"넌 삼십 년을 넘게 보고도 모르냐? 저 자식이 과장은 심해도 생판 거짓말은 안 하는 놈이니 아직까지 친구로 지내잖냐?"

"하지만 아무리 뻥이 심하다 해도 도사 다섯 마리가 일시에 박살이 났다잖냐? 그게 믿어질 소리래야 지?"

"긴 소리가 필요 없어. 가보면 알 테니까."

"만약 가봐서 구택이 말이 사실이면 넌 어쩔래?"

박철구의 말에 고달수도 약간 뜨끔한 바가 있었다. 말하는 억양으로 보아 이미 박철구도 그 괴물 같은 개에 욕심이 생긴 눈치가 역력한 것이다.

"어쩌긴 어째. 내 개도 아닌데 그걸 투견 판에 내 맘대로 끌고 갈 재간이 있냐?"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구택이로 부터 그 개를 우리 둘이서 공동 출자로 사는 게 어떻겠냐?"

"구택이가 바보냐? 그런 개를 우리에게 팔게? 허고, 만약 판대도 값을 어마어마하게 부를걸? 그것만 가지면 전국의 투견 판을 휩쓸어 돈을 끌 텐데 그 녀석이 그걸 모를라고?"

"그럼 동업을 하자고 해볼까?"

"동업? 동업은 더 싫다고 할걸? 애초에 우리를 끼워줄 이유가 없잖아?"

"그럼 어떡하면 좋겠냐? "

"어떡하긴..... 미리 침 흘릴 것 없어. 일단 가서 확인부터 하는 게 우선이지. 하지만 도사 다섯 마리를 물어 죽인 개가 정말 있을라고."

"내 생각도 계속 그랬었지. 하지만 구택이 저놈이 하도 일관되게 진술을 하니까 나 역시 세뇌가 되지 뭐냐."

"여기서 우리가 아무리 길게 토론을 해 봐야 쓸데없는 짓이야. 가자고. 가서 일단 눈으로 그 개의 존재를 확인하자고."

"그래. 네 생각이 곧 내 생각이다. 가자."

두 사람이 이유 있는 기대를 하며 지하 주차장에서 각자 자신의 차를 빼내 검단으로 향했다. 고달수는 행여 앞서가는 박철구의 차를 놓칠까 뒤를 바짝 쫓았다. 앞차는 뒷 차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잘도 달렸다. 그러기를 사십 분쯤 하자 눈앞에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앞차가 제자리에 서자 고달수도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창을 열어 소리를 질렀다.

", 왜 세우냐? 약도는 폼으로 들여다보냐?"

"아 그 자식. 말이 많아. 이 넓은 곳에 건물이라곤 저 가운데 창고처럼 생긴 저곳뿐이잖아? 약도엔 저곳 뒤랬는데 저 뒤에 뭐가 있냐? 아무 것도 없잖아?"

고달수도 차에서 내려 창고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박철구가 들고 있는 약도를 뺏어 들었다.

", 우리가 선 곳이 이쯤이니 창고와 구택이 컨테이너가 일직선 아니겠냐? 그러니 창고에 가려 컨테이너가 안 보일밖에..... 에잉 쯧쯧."

", 그거 그럴듯한 이론이구나. 네 말이 맞는지 일단 가 보자."

"가만 서둘지 말아. 기왕 차를 세웠으니 기름도 아낄 겸, 구택이한테 전화로 확인을 하고 가자."

고달수는 전화기를 꺼내 양구택을 불러냈다.

", 우리 여기 다 왔는데 네 컨테이너는 창고에 가려서 인지 안 보인다. 그래도 무조건 가 볼까?"

"안 가면? 그럼 그냥 돌아올래?"

", 알았어. 가 보지 뭐. 한데 네 개를 돌봐준다는 사람이 아직 거기 있겠냐?"

", 조금 전에 그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들 데려다 주러 집에 가고 지금 거기 없더라. 하지만 컨테이너 문은 잘 잠갔다니까 개가 너희들은 잡아먹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구경들 해. 또 한 가지. 죽은 개들은 그 후배가 친절하게도 한 곳에 쌓아놨다니까 너희들이 작업하기도 쉬울 거야. 삽은 찾아 보면 근방에 있을 거다. 기왕이면 깊이 묻으라고.... 잘못 하면 냄새나니까 말이야."

"아 그놈, 시끄럽게 말이 많네. 입은 안 다쳤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러냐?"

"여하튼 내 개는 조심해서 구경해. 네놈들이 물려 죽으면 이 나이에 어디서 친구를 새로 사귀냐?"

"넌 평소에 우리들 보다 개랑 더 친하게 지냈잖아? 그런 개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개와 아무리 친한 들 어떤 개가 누워 있는 내게 전복죽을 사준단 말이냐? 정말로 그런 개가 있다면 너희들은 필요가 없지."

"얼씨구. 아까는 홍삼 드링크 타령을 하더니 이제 와서 전복죽에 우정을 양념으로 치시겠다?"

"전복 죽까지 사 줬는데 그게 보통 우정이냐?"

"아 시끄러워. 네 말 듣기 싫어서 철구는 벌써 떠났어. 나도 따라가 봐야 해."

폴더를 덮은 고달수는 운전석에 올라 비포장으로 기우뚱대는 박철구의 차를 따라갔다. 몇 백 미터를 가니 창고에 가려졌던 양구택의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후 앞선 박철구의 차가 서자 양구택도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

", 인천에 이런 데가 있다니? 전 후방이 툭 터진 게 넓고 시원해서 좋다야."

고달수는 팔을 넓게 벌리며 바다 공기를 힘차게 들어마셨다. 이를 본 박철구도 따라서 코로 바람을 힘껏 빨아드렸다.

"구택이 녀석이 그동안 지리 공부를 좀 했었군. 이렇게 넓고 조용한 곳이 흔치 않은데 말이야. 야 달수야. 너도 돈 있는데 이런 곳을 골라잡아라. 이런 곳에 투견장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냐? 주차장은 무한정 넓지요. 그러니 관람객도 한꺼번에 수천 명도 올 수 있지요. 시끄럽다고 신고 들어갈 일 없지요. 이거 얼마나 좋으냔 말이다."

"좋은 것 모르는 놈이 어딨냐? 그럴 돈이 있으면 호텔을 세워 카지노를 차리지 미쳤다고 투견판을 차리냐? 여긴 보나 마나 구택이가 땅 주인 허락 없이 몰래 쓰고 있을 것이다."

"가만, 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데... 이거 이상하다. 우리가 가면 보통 개들은 백 미터 밖에서도 조용한 법인데..... 저놈은 큰 소리로 짖지 않고 낮게 으르렁거리는게 어째 겁에 질린 소리가 아닌데? 이 개가 구택이가 말한 그 갠가 보다."

"잠깐,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다. 덩치가 크다는 그놈 말고 또 한 마리가 있나 보다."

"그렇군, 한데 다른 놈도 겁을 먹은 소리가 아닌데?"

"이렇게 되면.... 확실히 구택이가 보통 개를 키우고 있었던 건 아니로구나."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살살 다가가자. 일단 조심은 해야지."

고달수와 박철구는 가능한 한 조용한 걸음으로 컨테이너를 향해 다가갔다. 컨테이너 부근에 이르자 먼저 땅바닥 곳곳에 핏자국이 눈에 띠었다. 그리고 투견장으로 보이는 철망 옆에 죽은 개들이 쓰레기더미 마냥 쌓인 것이 보였다. 또한 낯선 발자국 소리를 경계하던 낮은 으르렁거림은 계속 같은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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