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송원일 제1장 유전(流轉) 2.유랑민들

fiction-google 2024. 5. 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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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랑민들

광릉(光陵)의 이곡 골짜기는 숲이 우거지고 터가 넓어 이십여 채의 움막을 짓기에 넉넉하였다. 좌우가 산이요 오솔길이 또한 여러 갈래라 동서남북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유랑민들이 이곳에다 움막을 지은 것은 지난가을이었다. 이곳은 외진 골짜기인데다, 동북으로는 포천현이 가깝고 서북 쪽에는 양주가 역시 가까운데 남으로는 다락원이 지척에 있었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삼각형의 중앙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니 흩어져 동냥을 하기도 좋고 뭉쳐서 약탈을 하기도 좋을 뿐 아니라 여차하면 튀기도 좋은 곳이었다. 유랑민들은 이곳에서 아무 탈 없이 겨울을 넘긴 것이다. 이곳에 유랑민이 모여 있는 것을 관에서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유랑민들의 행패가 그리 심하지 않았고 관아가 나서서 흩어버릴 명목도 대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고픈 유랑민을 먹일 구휼미도 없고 한 곳에 정착시킬 농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축석고개에서 벌어진 살육은 유래를 찾기 힘든 엄청난 사건이어서 포천 현감의 장계가 닿으면 조정은 물 끓듯 할 것이었다. 양반의 일가가 도륙을 당한 것이다. 양반 사내와 가마를 타고 가던 규수가 셋이나 죽고 자식도 죽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흉황이 들어 백 명의 천한 것들이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 양반이었다. 그러나 천한 것들이 양반에게 손가락질만 하여도 아예 손목을 잘라버리거나 때려서 죽였다. 그래야 양반의 위엄과 안전이 담보된다는 것이다.       

축석고개를 물러난 유랑민들이 노새를 잡아서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엉뚱한 놈들이 나타나 한 푼도 못 건진 대신 나귀와 노새를 몰아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움막에서 기어 나와 노새를 잡는 것에서부터 굽는 것까지 침을 흘리며 구경을 하였다. 그러나 그중 제일 큰 움막 안에서는 고기 냄새에 코가 간지러워도 침을 흘리지 못하였다. 유랑민의 선두(先頭) 격인 노달구가 오장(伍長)들을 모아놓고 호통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밥으로 죽을 쒀 먹을 놈들아 그걸 뺏긴단 말이냐? ? 그렇게 먹기 쉬운 행차를? 오늘 망을 본 놈이 누구냐? 엉치 너냐? 이놈아 너는 행차가 고개 중간에 왔을 때 군호를 보내야지 가마가 마루턱에 다 닿을 때까지 뭘 했느냐?"

"바위 뒤에 칼 든 놈들을 먼저 봤기 때문입죠. 만약 그때 군호를 보냈더라면 우리 패에서도 죽은 자가 한 둘이었겠습니까요?"

엉치란 놈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변명을 늘어놓자 노달구가 더욱 화를 내었다.

"칼 맞아 죽는 것은 겁나고 굶어 뒈지는 것이 겁이 안 나더냐? 이놈아 네놈 때문에 쉰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굶어죽게 생겼단 말이다."

"굶어죽다니요? 향도님, 지금 굽고 있는 노새 말고도 나귀가 또 남았는 뎁쇼?"

"이놈. 이 마당에 농이 나오느냐? 내일 당장 뿔뿔이 흩어질 판에."

유랑민 쉰세 명 가운데 다섯을 묶어 기중 빠릿빠릿한 놈을 오장을 시키니 오장은 모두 6명이었다. 오륙은 삼십이니 나머지는 여자와 어린애들인 것이다. 모처럼 떠돌지 않고 한 곳에 임시나마 정착을 했는데 뿔뿔이 흩어진다는 노달구의 말에 오장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였다. 오장 가운데 하나인 개바우가 나섰다.

"아니, 여기같이 포실한 곳이 어디 또 있다고 여길 두고 흩어진단 말이야?"

"뭐야? 저놈이 뒈질려고 환장을 했느냐? 말이야? 너 뉘에게 은근슬쩍 혀 짧은 소리냐? 이놈 보게? 지금 나를 능멸하려는 수작 아니냐? 아니면 내게 덤벼보겠다는 수작이렸다?"

노달구가 비위가 뒤틀려 개바우를 노려보니 개바우보다 정작 옆에 있던 오장들이 더 놀라는 것이다. 노달구의 화를 돋구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훤히 알기 때문이었다. 다섯 명의 오장들이 죽일 듯이 노려보니 그제서야 말이 짧았음을 안 개바우가 무릎을 꿇었다.

"향도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요놈의 주둥이 탓입죠. 화를 삭이십시오. ."

"향도 자리가 탐이 나서 나에게 덤벼드는 것은 좋다. 그러나 향도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이놈들아 쥐새끼들을 이끌고 다녀도 고양이 따돌릴 꾀는 지녀야 향도를 하느니라. 하물며 사람 목숨을 이끌면서 관군을 피할 꾀가 없고서야 어찌 향도라 하겠느냐? 자 내일 관군을 피할 꾀를 지닌 놈이 있으면 나서거라. 누구라도 그런 놈이 있으면 내 이 자리를 내어주마."

"향도님 제발 화를 푸십시오. 개바우 저놈은 저희들이 징치를 합지요. 한데 왜 아까부터 자꾸만 관군 관군하고 겁을 주시는지요?"

엉치가 참지 못하고 궁금한 얼굴로 노달구를 바라보았다.

"이놈도 실성을 했군. 내가 언제 관군 관군 했느냐? 내일 관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뿔뿔이 흩어지자는 말을 했지."

"그러게 말씀입죠. 이제껏 조용하다가 무슨 일로 관군이 온다는 것입니까요?"

"... 이런놈들을 오장이라고 믿은 내가 죄가 많구나. , 이놈아 오늘 일어난 축석고개의 살변은 그새 잊어버렸느냐?"

오장들이 서로 돌아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들을 하였다. 개바우가 다시 나섰다.

"아까 엉치의 말을 들어보아도 살변을 낸 놈들은 따로 있다던데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다 하십니까요?"

"그래서 네가 향도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놈아 칼 든 놈들이 아직 그자리에 있더냐? 아니면 그 사당패라는 것들이 여태 남아 있더냐?"

"그야, 미친놈들이 아니고서야 남아 있을 턱이 없습죠. ."

"그렇게 잘 아는 놈이 가마 속의 양반 년들 속곳을 벗겨온단 말이냐?"

"삼회장 저고리가 탐이 난 치동이 여편네가 벗기긴 했습니다만 다른 가마에는 기껏 무명옷에 피범벅이라 그대로 두었다 하던뎁쇼?"

"그게 그 말이지 별 수 있느냐? 양반 년의 옷을 벗기고도 무사타첩으로 넘어가리라 생각했느냐? 양반이 그냥 양반인 줄 아느냐? 양반이란 지독한 종자들이니라. 옷까지 벗겨 간 것은 유랑민 말고 누가 있겠느냐? 그러니 오늘 살변은 곱다시 우리가 뒤집어쓰게 생겼단 말이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나느니라. 보나 마나 지금쯤 포천 현감이 띄운 파발이 한양에 닿았을 것이다."

"그럼 어쩌면 좋겠습니까요. 향도님."

말이 이쯤에 이르자 비로소 향도로서의 위엄이 되돌아왔다고 느낀 노달구가 거드름을 부리며 천천히 좌중을 돌아보았다. 열두 개의 눈알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어쩌긴 뭘 어째? 뜨면 그만이지. 장계가 오늘 임금 손에 들어갔다고 해도 내일이나 되어야 조정에서 논의되겠지. 그다음에는 병판이 좌우 포도청에 동원령을 내릴 것이고 포도청 군사들이 준비를 해서 이곳까지 오려면 아마 내일모레 해거름은 돼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그 전에 삼삼오오 흩어져 약속한 장소에 모이면 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역시 향도님의 말씀은 버릴 것이 없사옵니다. 어찌 조정의 일을 그리 소상히 아시는지요? 벼슬을 사신 적이 있으신 게 분명하옵지요?"

들은 풍월로 지끄려본 노달구는 마음 한구석은 뜨끔하고 한편은 흐뭇하였다. 벼슬은커녕 홍천(洪川)의 화촌골 노 첨지네 머슴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달구였다. 부모형제 없이 떠도는 달구를 노 첨지가 데려다 새경 없는 머슴으로 부려먹은 것이다. 하루 두끼 얻어먹는 대신 농사지으랴 나무 하랴 단 하루도 쉴 사이없이 일만 한 것이다. 눈썰미와 기억력이 남다르고 힘까지 좋은 달구가 열다섯 해를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십수 년을 개 부리듯 부릴 뿐 서른에 이르도록 짝을 맺어주는 일이 없는 것이었다. 사실 노 첨지네 집에는 스물이 될까 말까한 얼굴이 헤반주그레한 계집종이 있었는데 달구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기다리면 장가나 들여줄까 기다리다 못해 어느 날 노 첨지에게 조심스럽게 계집종을 내려주십사 하였더니 노 첨지 영감의 안색이 단번에 물귀신보다 무섭게 변하였다. 그리고는 없는 이빨을 앙 다물고 씨암탉 잡아가는 족제비 보듯 달구를 노려보는 것이다. 그런 표독스러울 정도의 눈빛을 노 첨지에게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섬뜩한 것이었다. 달구는 제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나 좌우간 일이 틀렸음은 알아채었다. 노 첨지가 왜 그렇게 노려보았는지는 한참 후에 알았다. 노첨지 제가 계집종의 방을 들락거리는 것이었다. 달구는 어이가 없었으나 양반이 하는 짓이라 입에 꿀을 바른 듯 함구하였다. 얼마 후의 일이었다. 때는 삼복이라 낮에만 더운 게 아니라 밤에도 덥고 끈끈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뒷개울에 멱이나 감을까 하여 개울로 내려가 막 옷을 벗으려는데 물 가운데 바위 뒤에서 누가 발딱 일어서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는 가운데서도 상대가 알몸인 것과 노 첨지 딸인 것도 순간적으로 알았다. 노 첨지 딸도 놀란 듯 어디를 가려야 하는지도 잊고 망연히 서 있다가 새삼 깜짝 놀라 주저앉는 것이었다.

"저리 가. 징그러운 머슴 놈아. 너 아버지에게 이를 거야."

알몸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화들짝 몸을 돌린 달구의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달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몇 해 전에 노 첨지의 말 한마디에 맞아죽은 둑개라는 종이 생각난 것이다. 큰일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던 날이 새기도 전에 멍석말이를 당할 것이다. 몇 걸음 집으로 향하던 달구가 앞니를 사려 물고 되돌아섰다. 성큼성큼 물속으로 다가가 웅크린 노첨지 딸의 허리를 벼락같이 감아올리며 동시에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놀라서 꿈틀대는 것을 한 손은 허리에서 아래 위로 마구 주무르고 뺨에다 입까지 쭉하고 맞추었다. 그리고는 손을 놓으며 엉덩이를 철썩 갈겨버렸다.

", 일러봐라. 더러워서 나는 간다."

물 밖으로 걸어 나오며 뒤를 바라보니 노 첨지의 딸은 달빛 아래 두 손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멍청히 서 있었다. 머슴살이 십수 년에 새경 한 푼 못 받고 더럽게도 비싼 손호사만 한 것이었다. 그날 밤 홍천을 떠난 노달구는 몇 년을 혼자서 떠돌다 결국 춥고 배가 고파 유랑민 패에 섞이고 말았다. 죽어도 양반 밑에서 머슴살이하는 것은 싫은데다 마땅히 정착할 곳도 없었던 것이다. 그 뒤에 힘 좋고 말빨센 노달구가 향도 자리를 꿰 차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달구는 동냥질로만 유랑민을 몰고 다니지 않았다. 슬금슬금 도둑질도 하고 때로는 산도둑으로도 변하는 것이다. 달구는 향도의 체면상 성()도 필요했다. 낯선 성보다는 입에 익은 노씨 성을 붙여 노달구라 하였다. 꼭 반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고기를 굽던 자들이 구운 노새 고기를 목판에 가득 담아가지고 왔다. 노달구가 먼저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기에 이놈 저놈의 손이 목판 위에서 바삐 움직였다. 고기를 굽고 있는 곳을 돌아보니 고기 누린내가 진동을 하는 화톳불 주위에는 누구 하나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남녀노소 누구라 할 것 없이 두 손에 고기들을 잡고 아귀처럼 물고 뜯는 것이다. 그런데 화톳불에서 불과 삼십여 보 떨어진 움막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고기를 먹으러 다 나왔을 터인데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것아, 나와. 나오라고."

조금은 짜증이 묻은 소리였지만 움막안에서 대꾸가 없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아, 그러다 그것마저 죽어. 저년이 말을 들어야 해 먹지. , 빨리 못 나와?"

"내 새끼 또 뺏을라고 그러지?"

움막 안에서 삵쾡이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되받았다.

", 너도 애도 처먹어야 살지 그렇게 애만 끼고 지랄하면 둘 다 죽지 별 수 있는 줄 아느냐? , 빨리 나와, 나와서 고기를 처먹으라니까."

", 죽어도 내 새끼는 못 줘."

밖에 있던 판덕이는 그만 열이 나서 움막으로 뛰어들어 마누라의 품에서 아이를 뺏으려 하였다. 그러자 마누라가 아이에게 닿으려는 판덕이의 손을 마구 물려고 덤비는 것이다. 약이 오른 판덕이가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눈알을 뒤집는 마누라의 머리채를 잡았다. 여편네는 미친 듯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판덕이가 더욱 화가 나서 머리끄댕이를 단단히 잡고 회술래를 시키며 흔들었다. 그리고는 등짝을 발로 질끈 내지른 다음, 마누라를 끌어내기 시작하였다. 여편네가 질질 끌려가면서 아이의 겨드랑이 사이로 두 팔을 끼워 가슴을 힘껏 안았다. 가슴을 조인 아이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니 울지도 못 하였다. 불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찢어지는 비명에도 아랑곳 없이 고기를 뜯고 있었다. 판덕이는 마누라가 워낙 발버둥을 쳐대자 힘이 빠져 머릿채를 놓았다.

"아이고 저걸 어찌해야 좋을꼬? 저러다 또 죽일게 뻔하고만... ."

잠시 움막을 노려보던 판덕이가 체념을 한 듯 불가의 고기 굽는 곳으로 가더니 고깃덩어리를 잡았다.

"어이 판덕이 썰어논 걸로 가져다주게. 엣네."

동칠이 애비가 바가지 채 내 민 것을 판덕이가 움막 속에 던지 듯 넣어주었다.

"저건 누구 여편네여?"

고기를 먹을 만큼 먹은 노달구가 잇 사이에 낀 고기조각을 빼려고 꼬챙이를 꺾으며 물었다.

"누구 긴요. 판덕이 여편넵지요."

"그런데 고기는 안 처먹고 밤중에 웬 지랄들인가?"

"그게 말입지요. 낮에 축석고개에서 판덕이 여편네가 아이를 하나 줏어왔거던요. 그러자 판덕이란 놈이 아이를 내다 버리라니까 저리 포달을 떠는 것입죠."

먹으랴 말하랴 바쁜 개바우가 개트림을 하며 방귀까지 빌빌 뀌어 대었다.

"그렇다면 그건 양반의 씨가 아니냐? 그걸 길러 어떡하겠다는 게야?"

"그러니까 판덕이란 놈이 저렇듯 뺏으려 하옵지요. 한데 저 여편네는 저 아이가 세 번째 올습지요."

"세 번째라니? 그럼 둘은 어디 있단 말이냐?"

"둘 다 죽었습죠. 하나는 굶겨 죽이고 또 하나는 지난겨울에 얼어서 죽었으니깝쇼."

"둘 다 제 새끼가 아니었단 말이냐?"

"그럼입쇼. 재작년 흉년에 제 자식을 굶겨 죽이자 그때 살짝 정신이 나가설랑 어린애만 보면 모두 제 자식으로 보이나 봅디다요. , 오늘 일만 해도 저 여편네가 애 우는소리에 제일 먼저 난장판에 다다가 가마 속을 들여다보구설랑 엎드려 죽은 시신 밑에서 아이를 꺼내지 뭡니까."

"너는 구경만 하고 있었단 말이냐? 뺏어서 패대기를 칠 게지. 엥이, 츳츳."

"가뜩이나 미친년을 제가요? 판덕이도 어쩌지 못하는 걸입쇼?"

"허기야 송아지 잃은 애미소는 망아지도 기르는데 까짓것 그냥 둬라, 죽이던 살리던 저것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흩어져서 다시 모일 곳을 알려주셔얍죠? 어디서 모이란 말씀이 온지."

이번엔 개바우 대신 이제껏 말 한마디 없던 대장간 하던 억수가 물었다. 억수는 대장장이답게 힘이 좋고 솜씨도 좋아 농투성이 유랑민과 사뭇 달라서 노달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유일한 오장이었다. 먹고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던 대장장이 억수가 떠돌이가 된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마누라가 무슨 병인지도 모르게 죽고 나자 사는 것이 심드렁해져서 술만 푸다가 홧김에 풀무간에다 불을 지른 것이다.

"이천 여주로 내려갈 것이니 내달 보름에 와부강변에서 만나기로 하자."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지 노달구의 대답이 쉽게 나왔다. 억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묻는 것이다.

"와부라면 여기서 백여 리나 되는 곳인데 하필 그곳에서 모이려는 연유는 뭡니까? 허고, 내 달 보름이면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동안 어디서 어찌 지냅니까?"

"허어, 답답하구먼... 쯧쯧. 잘들 들어보거라. 하루 이틀 뒤면 토포군이 이곳을 덮칠 것이고 여기가 빈 것을 알면 요소요소에 기찰꾼들이 깔릴 것이다. 떼로 몰려다니면 몰사 죽음이 뻔하니 거미 새끼처럼 흩어졌다 다시 모여야 할 터인데 가근방에는 모일 곳이 없느니라. 포천은 이미 적경이 알려졌을 테고 다락원은 도성과 가까워 곤란하니 어디가 좋겠느냐? 동서남북 가운데 빈 곳은 오직 와부쪽이 아니겠느냐? 허고, 기한을 한 달로 잡은 것은 조선 공사 사흘이라고 하나 이번 일만은 뿌리를 뺄려고 덤빌 게야. 그러니 흩어져 빌어먹다가 조용해지면 만나는 것이 좋단 말이다."

모두들 수긍하는 눈친데 억수가 그래도 미진한 듯 입을 열었다.

"옳으신 말씀이긴 한데 우리는 배를 탈 처지도 못 되는데 하필 덕소 나루와 미음 나루가 가까운 와부입니까? 나룻이 가까워 잘못 기찰이라도 당하면 어쩔라구요?"

"누가 강을 건넌다더냐?"

노달구가 화를 벌컥 내었다. 향도가 한마디 하면 따르면 그뿐이지 패에 섞인지 얼마 되지도 않는 억수 이놈은 꼬박꼬박 따지고 드는 것이다.

"그러니 묻는 것 아닙니까? 허허벌판 백사장에 떼거지가 몰려 있으면 쉽게 남의 눈에 띌 것이고 그러다 기찰 포교 놈의 눈에라도 들면 몰사 죽음 아닙니까?"

"허허, 배 타고 강을 건널 처지라면 광나루(廣津) 건너 송파로 가지 뭣 빨겠다고 와부에 모이자 하겠느냐?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곡식이 흔한 남쪽으로 가야 해. 그러자면 와부 윗 쪽의 예봉산 밑이 제일 수심이 얕은 곳이란 말이다. 얕어야 건널 것 아니냐? 게다가 예봉산이야 와부에서 강을 따라 반나절이면 닿으니 와부에서 모이잘밖에 더 있느냐?"

억수 생각에도 이미 포천이고 양주고 경기 지경에서 꾸물대다가는 죄없이 떼죽음을 할 팔자라 멀리 남쪽으로 튀어서 어디 화전이라도 일굴만한 땅을 찾는 게 좋을 듯하였다. 그러나 노달구가 남쪽으로 가려는 목적은 화전이 아니었다. 거추장스런 것들을 떨어내고 젊고 악착스러운 놈들을 모아 이참에 아예 화적질로 나설 작정이었다. 관군에 쫓기다 살아남는다면 화적이 될 자격이 충분할 터였다. 그동안 팔도를 떠돌며 노달구가 느낀 것은 돈이 양반이란 것이었다. 돈만 있으면 자기도 노 첨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달구는 화적질로 한밑천 움켜쥐어 어디다 땅을 장만할 작정이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조를 짜서 삼삼오오 흩어지라고 노달구가 오장들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개바우가 또 나서는 것이다.

"향도님, , 저기 묶인 나귀는 제가 타고 갈깝쇼?"

노달구가 어이가 없어 개바우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하였다.

"나귀를 타면 포도 대장이 네놈에게 하정배라도 올린다더냐?"

"그게 아니라 나귀가 혼자 남겠기에 그럽죠."

"안 남으면 잡아먹고 가겠다는 게냐?"

", 그런 수가 있었군입쇼. 관군은 내일이나 돼야 올 것이니 잡아먹고 낮에 뜨면 되겠습니다."

"미친 놈.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이곳을 뜨기나 하거라."

쉰여 명의 유랑민이 대여섯 명씩 짝을 지어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판덕이는 아이를 업은 마누라를 데리고 막돌이 부부와 함께 억수패에 들었다. 마누라 없는 억수는 부모 잃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 살 정도였다. 억수 아이와 막돌이 아들과 판덕이 마누라가 업고 있는 아이까지 애가 셋이요 어른이 다섯이라 전부 여덟이었다. 각 오장들이 칠팔 명 씩을 끌고 포천과 양주 또는 진접으로 갈 적에 억수는 무슨 작정을 하였는지 처음부터 이곡 골짜기 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남북으로 죽엽산과 용암산이 있는 골을 지나 광릉(光陵)으로 향하는 것이다. 억수가 앞장을 서서 나아가니 판덕이는 아이를 업은 마누라의 등을 밀어 총총걸음을 놓았다. 광릉으로 가는 좁은 길은 꼬불꼬불 끝이 없었다. 그런데다    숲이 우거지고 길도 험한 산길을 제대로 쉴 참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죽을 지경이었다. 쉬어가면 좋겠는데 말 한마디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억수의 뒤통수에 욕이라도 뱉고 싶었다. 그러나 욕은 고사하고 원망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억수의 주먹도 주먹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오래 사는 유랑민은 없었다. 동냥이 안되면 약탈이라도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그게 되질 않으니 굶어 죽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산속에 버려지면 호랑이 밥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행이 광릉을 지나 음현골에 닿기까지 한나절이 더 걸렸으나 사실 릿수로는 불과 오십여 리였다. 어린애와 여자들 때문이었다. 물이 졸졸 흐르는 곳을 찾아 모두들 자리를 잡았다. 판덕이 마누라의 등에 업힌 아이는 낮에 물에 불린 조밥을 조금 먹은 후에 먹은 것이 없었다. 아이는 어제 가마에서 놀라 잠시 울었을 뿐 너무나 다르게 바뀐 분위기에 기가 질렸음인지 배가 고파도 전혀 울지를 않았다. 판덕이 여편네가 아이를 끌러내려 다시 가슴에 꼭 안았다.

", 이 여편네야, 아이를 내렸으면 오줌도 뉘이고 물도 좀 멕여야지 안고만 있으면 어쩌겠다는 게여?"

판덕이가 마누라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마누라는 더욱 아이만 끌어 안을 뿐이었다.

"아이고, 저거 또 아이 하나 죽이네. 먹여야 살지 멕일 생각은 못하고 애새끼 뺏길 것만 생각하다니. 에이 빌어쳐먹을 년."

땅에다 침을 탁 뱉은 판덕이가 일곱 살 난 막돌이 아들의 손을 끌고 동냥을 나섰다. 십여 호의 초가집 밖에 없는 음현골의 집집을 돌아다니며 거둔 것은 조밥 반 바가지였다. 같이 동냥을 다닌 아이 몫으로 몇 술을 덜어주고 물을 말아 아기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는 배가 고팠던지 몇 번을 잘 받아먹었다. 마누라는 신통하게도 판덕이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 때는 조용히 있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굶은 판덕이가 남은 밥은 바가지 채 마누라에게 넘겼다. 그런 모습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던 억수가 중들이 매고 다니는 바랑을 뒤지더니 구운 고기 한점을 던져 주었다. 어제 길양식으로 챙겨 놓은 노새 고기였다.

"험한 산길을 걷노라 고생들 많았네. 하나 내 생각에는 다른 패들과는 멀어 질 수록 좋을 것이네. 아무래도 어제 양반 행렬이 도륙이 난 것이 영 찜찜한 일이거던. 큰길은 당분간 피할 요량이니 그리들 알게."

"아니할 말로 오늘 혼났습니다. 막돌이와 저는 괜찮지만 여자들과 애들이 문젭지요. 하지만 이 노정을 정하신 뜻이 있으실 터이니 오장님이 가잔대로 따릅지요."

"허허, 원망을 하지 않으니 다행이구먼. 사실 이제 와 하는 말이네만 향도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네. 토벌대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산을 타고 지세가 험한 가평이나 춘천 쪽을 택해야 토포를 면할 터인데 숨을 곳 없는 백사장이나 이천 여주라니 말이 되는가?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까발릴 수도 없고... 게다가 한 달 후에 만나자는 것은 속 보이는 말일세. 허지만 나도 이 게 잘하는 노릇인지 모르겠네."

억수와 판덕이 일행이 죽을 고생으로 음현골로 향할 무렵 이곡 골짜기에서는 나귀를 잡아 굽느라 정신이 나간 무리가 있었다. 아침에 뿔뿔이 흩어지는 척하다가 돌아선 개바우 패와 엉치 패였다. 두 패는 모두 합해 열다섯 명이었다. 노달구가 멀리 사라지자 즉시 돌아와 나귀를 때려잡은 것이다. 어차피 내일은 돼야 닥칠 관군을 미리 겁을 내어 도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먹고 남은 것을 챙겨 내일 일찍 떠나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판단은 잘못된 것이고 죽을 꾀를 낸 것이었다. 포천 현감의 장계로 축석고개에서의 살변을 알게 된 상감은 한밤중에 외척인 우의정 김석주를 불러 논의를 하였던 것이다. 김석주는 제가 시켜 벌어진 일이라 뜨끔하였으나 한편 장계를 보니 칼잡이뿐만 아니라 십여 명의 사내들과 수많은 유랑민이 덮쳤다고 쓰여 있었다. 거칠이가 증언한 것은 칼잡이요, 두일이가 본 것은 십여 명의 사당패였던 것이다. 게다가 가마를 내동댕이치고 도망한 일곱 명의 살아있던 가마꾼 중에 멀리 숨어서 낱낱이 구경을 한 놈들이 증언한 것이 유랑민인 것이었다. 김석주는 옳다구나 하여 칼잡이의 소행을 유랑민에게 돌려버렸다. 사람이란 죽어야 말이 없는 법이니 한시바삐 입을 막아야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임금의 선정에 방해가 되는 골치 아픈 유랑민을 없앨 구실이 생겼으니 마침 기회가 온 것이었다. 내일 날이 밝은 다음 조정 대신들이 모여 논의하고 어쩌고 해야 할 여유도 없을뿐더러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날 밤으로 병조판서를 불러 솔모루 가근방에 숨은 흉악한 적도를 토벌하라는 어명을 받아서 내렸다. 이튿날 날이 밝자 좌포청에서는 각 나루의 기찰을 맡고 경기우도를 관할하는 우포청에서는 기마 군사를 내어 벼락같이 적도를 치기로 합의하였다. 적도는 물론 힘없는 유랑민을 말함이다. 우포청의 기마 군사가 길을 인도할 관노를 앞세워 이곡 골짜기에 들어선 것은 마침 개바우와 엉치가 고기를 베어 막 먹으려 든 참이었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말자 후다닥 일어선 엉치가 숲 속으로 몸을 던져 까투리 흉내로 솔밭을 발발 기어 냅다 튀었다. 반면 개바우는 죄라고는 별로 무거운 죄를 지은 것도 없다 싶어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머지 열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착각이요 큰 오판이었다. 김석주의 명령에는 인명을 중하게 생각하여 자비를 베풀라거나 아니면 흔한 말로 백성을 어여삐 여기라는 말이 전혀 없었다. 군사들은 오라를 꺼내는 대신 육모방망이를 들어 모조리 머리를 때려죽이고 칼로 확인 절단까지 마쳤다. 그리고 움막마다 불을 질렀다. 적도치고는 너무 싸울 재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이날 우포청에서는 8명씩의 기마 군사를 거느린 패장(牌將) 둘이 나왔으나 적도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움막의 수로 보아도 쉰 명이 넘을 터였다. 취조를 한 이후에 죽일 것을 너무 성급했던 것이다. 패장들은 재빨리 패를 갈라 이웃 읍치로 통하는 길로 적도들을 추격하였다. 흩어져 길을 떠난 대부분의 유랑 거지들은 그날 오정을 넘기지 못하고 관군의 육모방망이에 박이 터져 죽었다. 그러나 노달구만은 예외였다. 노달구는 유랑민 가운데 가장 젊은 계집을 골라 마누라 삼아 데리고 다녔는데 이날도 걸음 잘 걷는 젊은 부부와 넷이 떠난 것이다. 남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역시 다락원 삼거리에서 중랑 내(中浪川)를 죽 따라 내려가는 길이었다. 중랑 내는 응봉산 밑에서 한강과 만나니 그전에 아차산으로 빠지면 뱃터의 기찰에 걸릴 일도 없는 것이다. 애초에 그럴 요량으로 빠른 걸음으로 길을 줄여 다락원 삼거리가 가까워 올 즈음이었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뽀얀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점점 요란해지는 말발굽 소리는 한두 마리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넷은 재빨리 언덕 아래로 내려서서 기마대가 지날 때까지 나무 밑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토포꾼이 분명하였다. 노달구의 예상대로 역시 양반이 당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닌 것이다. 노달구는 삼거리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일행을 재촉해 산길을 허겁지겁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십 리나 걸었을까? 넓은 밭과 함께 동리가 나타났다. 동리래야 집은 네댓 집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고 씨 뿌리기가 끝났는지 밭에 사람도 없었다. 노달구가 여자 둘을 나무 뒤에 남겨두고 젊은 놈을 데리고 기중 외딴 농가로 썩 들어섰다.

"주인 있소?"

노달구가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주인을 찾았다. 방문이 열리자 밖을 내다보는 눈알이 제법 많았다. 방안에는 어른 아이 모두 여섯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누구는 아침도 못 먹고 쫓기는 신세 건만 이것들은 흉년에 점심까지 챙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밥을 얻으러 왔다가 안 주면 뺏어라도 먹을 작정이던 노달구가 심통이 나서 짚신을 신은 채 성큼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만들 처먹어라. 그러다 흉년에 배때지 터져 뒈질라."

, 소리와 함께 노달구가 가장인 듯한 놈을 발을 들어 내 지르니 숟갈을 미쳐 놓을 사이도 없이 벽에 머리를 쿵 하고 부딪혀버렸다. 아이들 네놈은 아비의 그런 꼴에 놀라 울고 애미는 막내를 안고 죽은 듯 엎드렸다. 노달구는 나물이 담긴 바가지를 집어서 이놈 저놈이 먹던 밥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게다가 나무 숟가락까지 걷어서 방문을 나서는 것이다. 노달구가 하는 짓을 밖에서 바라 보던 젊은 놈이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소리 쳐 동리에 알리면 다시 와서 모조리 멱을 따고 말테여. 알았느냐?"

삽짝을 나서자 노달구는 여자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쑥대가 우거진 너른 묵정밭을 지나 얕은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는 내쳐 벌내에서 내곡으로 빠질 요량으로 앞에 보이는 낮은 산을 넘었다. 두 마장쯤을 내려가다 보니 마침 잔디가 곱게 깔린 무덤이 나타나는 것이다.

"됐다. 여기서 밥들 먹고 가자. 설마 이곳까지 따라오지야 않겠지."

달구가 밥이 담긴 바가지를 내려놓자 여자 둘은 치마 끝자락으로 대강 숟갈을 닦아 밥에다 꽂아 놓았다. 그 사이 무덤의 비석을 둘러보던 젊은 놈이 무엇을 보았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묘 앞에 손을 모으고 서더니 넙죽 엎드려 절을 두 번 하였다. 노달구가 괴이하여 물었다.

"처음 본 네 할애비냐? 절은 무슨 지랄로 하는겨?"

"문충공 보한재의 유택이 올습니다."

"문충공은 누구고 보한 뭐는 또 누구더냐?"

"세조 때의 영의정이던 신숙주 그분이지요."

"숙주 나물 숙주 나물 하는 그 숙주란 말이냐?"

", 그런 셈이지요."

"이놈 봐라? , 글을 안단 말이냐?"

아차 싶은 젊은 놈이 입을 급히 닫고 멀뚱히 서 있었다. 노달구가 새삼 아래위를 쓱 훑어보더니 한 걸음 다가섰다.

"다시 묻겠다. , 진서를 아느냐?"

", 천자문 정도는 압니다만... ."

"글은 어디서 배웠느냐?"

"주인집 도련님이 하늘 천 따지 하는 소리를 매일 들으니 자연 알게 되었지요."

"뭐라고? 너는 듣기만 해도 하늘 천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단 말이냐? 이놈, 이실직고하지 못하느냐? 네놈이 진작부터 수상했느니라. 손만 보아도 너는 쌍놈의 자식이 아닌 것을 내 알고 있었다. 자 이래도 바른 말을 않겠느냐?"

노달구가 주먹을 코앞에 불쑥 내밀며 눈알을 부풀리니 젊은 놈이 맥이 풀린 얼굴로 풀썩 잔디에 주저앉았다. 싹싹 빌며 사연을 털어놓을 줄 알았던 노달구가 어이없는 얼굴로 젊은 놈을 내려다보았다. 두어 달 전에 유랑민 무리에 낀 젊은 부부가 어쩐지 맘에 들어 가까이 두었더니 이제 보니 뻐꾸기 새끼 같은 것이다.    노달구도 젊은 놈 앞에 앉았다.

", 솔직하게 털어놓거라. 너 양반의 자식이지?"

"한때는 그랬소만 지금은 아니요."

"뭐라? 그랬소만 아니요? 이놈이 양반의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이놈아 나는 양반이라면 이가 갈리는 인간이니라. , 죽고 싶은 게냐?"

노달구가 단매에 쳐 죽일 듯 으르딱딱거렸지만 젊은 놈의 얼굴은 오히려 평온한 빛을 띄었다. 그러더니 신숙주와 그 부인의 쌍묘를 한 번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나는 신일규라는 사람이오. 저 묘의 주인과 같은 신가이나 저분은 고령(高靈)이 본이요 나는 평산(平山) 신씨지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도 없고 벼슬도 못해 가세가 기울어 먹고살기도 어려운 형편이었소이다. 범보다 무서운 게 굶는 것이란 걸 향도도 아실 거외다. 그런 내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소. 년 전에 혼처가 들어왔는데 부잣집 바보 아들이라 하였소이다. 그러자 선친께서 딸을 바보에게 주고 농토나 좀 얻어 볼 욕심으로 엉뚱한 혼사를 맺고 말았지요. 그런데 혼인 첫날밤에 신부인 내 동생이 목을 매어 죽었소이다. 알고 보니 바보도 그냥 바보가 아니고 똥오줌조차 못 가리는 천치였던 거지요. 그걸 그냥 좀 모자라는 인간으로 둔갑을 시켜 혼인을 시키려던 이가 바로 지금의 사헌부의 대사헌인 배호 올시다. 양반에 명문거족들의 하는 짓이 대게 그러하지만 우리 가문은 그로서 끝장이 났지요. 그 후에 선친께서도 목을 매시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으니 말입니다. 나는 양반을 버릴 작정으로 길을 나섰는데 우리 집 여종이 나를 따라와 어차피 버릴 양반이라 아예 부부가 되어버렸소이다. 허나 동냥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닙디다 그려. 몇 달을 저 내자가 동냥을 하여 나를 먹여 살린 꼴이지요. 그러다 향도 네 식구에 섞이게 된 것이외다. 욕된 삶이지요. 허나 나는 마음 먹은 것을 이룰 때를 기다린 거외다. 지난달 영상인 허적이 탄핵을 당했으니 남인인 배호도 곧 파직이나 귀양이 뒤따를 것이니 나는 그때만 기다리고 있소이다. 그리고 향도께서 양반을 미워하나 나 역시 양반은 좋게 보질 않게 되었소이다. 자 얘기 끝났소. 맘대로 하시오."

노달구가 생각 밖의 충격을 받았는지 말이 없다가 신일규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어쩐지 남다르다 하였소. 우리 이제라도 잘 사귀어 봅시다.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말이요."

노달구의 말씨가 당장 이놈 저놈에서 하오로 바뀌었다. 앞으로 해 먹으려는 화적질보다 좀 더 나은 돈벌이가 신일규로 인해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그러려면 꼭 신일규가 필요했다. 네 사람은 바가지에 둘러앉아 밥을 비웠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벌내를 향해 길을 나섰다. 며칠 후에 노달구 일행은 축령산을 넘어 청평으로 빠져 강을 무사히 건넜다. 기찰이 깔렸을 와부는 쳐다도 보지 않고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제부터는 양근에서 여주까지 천천히 걸어도 별 탈이 없을 터였다.



말발굽 소리에 번개같이 숲 속으로 몸을 날린 엉치가 솔밭을 살살 기어 도망가다가 아무래도 뒤가 궁금하여 멀리서 남은 일행을 훔쳐보았다. 좁은 오솔길에 줄줄이 기마 군졸이 골짜기에 들어오더니 개바우를 비롯한 이놈 저놈을 사정없이 치고 베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모골이 송연하여 눈을 돌린 엉치가 무릎이 다 까지도록 기기 시작하여 오솔길이 나타나자마자 발딱 일어나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도 혹시 이 오솔길로 기마 군사가 따라올까 겁이 났지만 달리 길이 없으니 멀리 튀려면 그래도 이 길이 빠를 것이었다. 만약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 또다시 숲 속으로 몸을 던질 작정을 하였다. 엉치는 유랑민 가운데서도 몸이 날래고 눈치가 빨라 오장도 되고 망꾼으로도 뽑혔었다. 유랑민으로 지낸 것만도 십 년이 넘으니 살아남는 법 또한 남들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산길을 한낮이 될 때까지 뭐가 빠지게 달려서 드디어 넓은 논밭이 펼쳐진 곳에 닿았다. 남으로 가면 진접읍치요 북은 내촌 길인 것이다. 진접은 사람이 많은 곳이라 기찰이 심할 것이었다. 엉치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하고 북쪽길로 걸음을 옮겼다. 개바우가 머리를 맞고 죽는 광경이 다시 눈앞에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엉치는 기마 군사가 곧 말발굽 소리를 내며 자신의 뒤를 쫓는 것 같았다. 얼마나 뛰었을까? 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 이르자 걸음을 바삐 하는 중에도 눈에 휙 들어오는 낯익은 사람들이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대장쟁이 오장 억수와 막돌이, 판덕이 일행이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부처님을 지옥에서 만난 듯하였다. 엉치가 물가로 달려가니 막돌이가 먼저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아니? 엉치 오장 아니요?"

엉치가 숨이 턱에 닿아 판덕이의 바가지에 물을 떠 컥컥대며 몇 모금을 마셨다.

"무슨 사달이 난 게로군. 관군이라도 들이닥쳤던가?"

억수가 팔짱을 끼고 엉치의 거동을 살피며 물었다. 막돌이와 판덕이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라 엉치의 입만 바라보았다.

", 말도 말게. 관군이.... 그것도 기마 관군이 골짜기를 덮쳤네. 개바우하고 열두 세 명이 박이 터지고 칼에 베는 것을 내가 보고 오는 길이네."

"아니? 뿔뿔이 흩어진 패거리가 어째서 골짜기에 있었다는 게여?"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억수가 엉치를 바라보니 엉치는 그제야 앞을 빼먹은 것을 알았다.

"흩어지긴 흩어졌었지. 개바우가 나보고 나귀를 잡아먹고 가자기에 되돌아갔을 뿐이지. 사실 고기는 맛도 못 봤네. 먹으려는데 놈들이 닥쳤거던... ."

"개바우란 놈이 아침에 나귀가 어쩌고 할 때 알아봤었지. 처먹는 것 밝히면 그리되는 것이여. 그래 나머지 패는 어찌 됐는가?"

"그야 모르지. 개바우 패와 내 패가 작살이 나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튄 거니까. 하나, 아마도 포천이나 양주로 가려고 큰길을 택한 패들은 무사치 못 했을 것이네. 상대는 기마병일세. 그걸 무슨 수로 따 돌리나?"

"허허, 다 죽어도 노달구는 살아남을 걸세. 그놈은 젊은 것들 셋만 데리고 가지 않았나. 하고 일삭 뒤에 보잘 때 알아봤지. , 이렇게 되면 아까도 말했지만 역시 주금산을 타고 수동 골짜기로 가야겠군. 그 후에는 양근(楊根)에 가서 또 생각하기로 하고. 엉치 너도 따라갈 텐가? 싫으면 노가를 찾아가던가 혼자 가던가 맘대로 하게."

"거 무슨 섭한 소리를 하는가? 혼자서 어찌 빌어먹으라고? 나도 가겠네. 하지만 산길을 타고 가면 포졸 걱정은 없겠지만 길양식이 문제 아닌가? 산에 동냥할 집도 없을 것인데?"

"좁쌀이 두 됫박 있네. 하루는 먹겠지."

"하루면 고생이 끝나는가? 다음 날은 어쩌는가? 사뭇 산길을 가야 할 터인데?"

"그러니 어쩌겠나? 화적질을 할 수도 없고... ."

"그래도 털어야지 이대론 못 가네. 안 먹고는 애고 어른이고 산길은 못 걷네."

"허어 그럼 엉치 자네는 이 동리를 털려는 건가?"

"멀리 갈 것 있나? 이제 나까지 넷이니 걱정할 것 없네. 오늘 밤에 외딴 집을 털어서 길양식을 장만하세."

"까짓 것 그러세. 살자면 무슨 짓을 못 하겠나?"

그날 밤 여자들과 어린애들을 산길에 숨겨 둔 일당이 몽둥이를 들고 외딴 집에 들어가 잠든 식구들을 위협하여 모조리 새끼줄로 묶었다. 그런 다음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버선으로 아갈잡이를 한 후에 집안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윗방에서 독에 든 곡식은 찾았으나 가져가려니 담을 자루가 없었다. 엉치가 급히 이불 홑청을 찢어 쌀과 좁쌀을 나누어 묶었다. 그리고는 안방에 묶인 집주인 가족에게 엄포를 놓은 다음 조용히 집을 빠져나온 것이다. 한데 막상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때문에 밤에 산길은 갈 수 없었다. 엉치가 의견을 내어 낮에 왔던 길을 되돌아 삼십여 리를 가기로 하였다. 길이 좋아서 걷기는 좋으나 온 동네의 장정들이 쫓아 올 것 같아 모두들 마음이 바빴다. 천마산 어름에 이르자 엉치가 옆길로 난 계곡으로 길을 인도하였다. 어차피 날이 밝은 다음 길을 갈 바엔 밥을 지어먹고 가자는 것이다. 얼마를 더 가다가 불을 피워도 마을에서 보이지 않을 물가의 아늑한 장소에 도착을 하였다. 막돌이가 지고 다니던 옹기솥을 끌러 쌀로 밥을 지었다. 솥이 작아 먼저 남정네들이 먹고 그사이 다시 밥을 지어 어린애들과 여자 둘이 먹었다. 판덕이는 미친 마누라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 밥을 떠 먹였다. 애도 배가 고팠던 데다 쌀밥이 먹기가 나았던지 낮보다는 많이 먹었다. 옹기솥에 끓인 숭늉까지 후후 불어 먹이는 판덕이를 보던 엉치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관군에 쫓기는 놈이 아이가 울면 어쩔려구 달고 다니는 게여?"

할 말이 없는 판덕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마누라를 돌아보았다.

"왜 아니겠습니까. 허나 어쩝니까요. 애와 마누라를 둘 다 버릴 수도 없고... ."

"인생이 불쌍해서 산길은 같이 넘겠지만 수동골 지나 마석에 닿으면 자네는 마누라와 새끼 데리고 따로 빌어먹게. 자네를 봐 주면 우리 모두가 위험하니까. 알아먹었는가?"

엉치가 남의 집을 털자고 의견을 낼 때부터 억수를 제치고 오장 같은 언행을 하더니 판덕이의 생사까지 결정을 지으려 했다. 억수가 비록 양식을 마련하는 꾀는 엉치에게 밀렸으나 힘까지 밀리는 것은 아니어서 판덕이 편을 들었다.

"괜찮네. 양근이나 여주까지만 가면 솔모루 고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자고 이렇게 멀리 내빼려는 것 아닌가. 하고, 애들이 있는 것이 동냥하기에도 수월할 것일세."

"아니, 억수 자네는 불가에 저런 섶을 끌고 다닐 셈인가?"

"엉치 자네는 가만있게. 결정은 내가 하네. 그게 싫으면 떠나던지."

"알았네. 자네 맘대로 하게. 하지만 곧 후회할 걸세."

날이 밝자 뒤가 켕기는 일행이 산세가 험한 철마산을 끼고 수동골로 향하였다. 여자 둘과 아이들이 걸음이 느려 잘 걷지 못하자 엉치가 짜증 섞인 욕을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판덕이는 마누라의 등을 밀며 억수의 눈치를 보았다. 드디어 산등에서 바라보니 수동 골짜기가 나타났다. 곧은 길로 친다면 삼십 리 밖에 되지 않을 길을 종일을 걸은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쉼 없이 떨어지는 눈물에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어금니를 사려 문 송윤호가 축석고개 마루턱에 서 있었다. 참사를 당한지 스무 날이 되는 날이었다. 이때는 이미 이곡 골짜기에 있던 유랑민들도 흩어져 거의 전멸을 하였다. 송윤호가 조카 원일이의 생사나 행방에 아무런 단서가 남아 있을 리가 없는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그날의 일을 다시 되새겨 원일이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거칠이의 말로는 칼잡이 둘이 춘보를 베는 것을 시작으로 어머니와 형수의 가마를 공격하더라 하였다. 그때까지는 원일이가 가마에 있었을 건 확실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산 밑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사당패들이 언년이를 잡고 있었다니 원일이도 같이 데려갔을지 몰랐다. 송윤호도 장남 두일이도 심지어 거칠이까지 유랑민의 그림자도 못 보았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는 길에 소문을 들어보니 이야기가 달랐다. 이곡 골짜기의 유랑민들이 덤벼들어 반가의 부녀 시체에서 저고리까지 벗겼더란 것이었다. 그렇다면 가마 속에 원일이도 어쩌면 유랑민이 발견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사당패는 돈이 되는 여자라면 모를까 어린애를 가져다 어쩌겠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사당패는 아니었다. 반대로 언년이가 유랑민을 따라갔을 리가 없으니까 언년이를 끌고 간 것은 사당패가 적실한 것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유랑민인데 소문으로는 삼삼오오 흩어졌던 그들이 거의 박살이 나서 포천 양주 다락원으로 가던 유랑민은 애고 어른이고 씨가 말랐을 거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원일이의 생사는 절망이었다. 송윤호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였다. 눈앞에 차례로 어머니와 형이 떠오르고 원일이를 안고 웃는 형수가 지나가는 것이다. 마지막과 처음은 다시 보일이가 나타나 나도 천자문을 다 외운다고 자랑을 하니 송윤호는 그만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냉정해야 했다. 어떻게든 원일이를 찾아 만 분지 일이라도 돌아가신 분들의 근심을 덜어야 하는 것이다. 송윤호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사죄의 말을 되뇌이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어금니를 다시 물었다. 솔모루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길로 송윤호가 접어들었다. 이곡 골짝으로 가는 길이었다. 노루나 다닐 길이 산골로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널찍한 공터에 불에 탄 움막 자리들이 있고 한 곳엔 소뼈인지 말뼈인지 굵은 뼈다귀가 흩어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아직도 붉은 흙무더기가 쌓였는데 보나 마나 죽은 유랑민들을 대강 끌어 묻은 것일 터였다. 송윤호는 혹시나 하여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원일이의 흔적을 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 아랫쪽으로 노루 길이 있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 길을 조금씩 따라 내려가다 보니 산을 끼고 길이 북동 쪽으로 다시 휘는 것이다. 혹여 그날 관군을 피해 이리로 도타한 유랑민이 있다면 아니, 누가 원일이를 데리고 이리로 갔다면 하는 희망 섞인 추측을 한 송윤호가 본격적으로 길을 따라갔다. 가면서도 마음속으로 누구던 제발 이 길로 원일이를 데리고 도망하였기를 빌었다. 어차피 포천 양주의 큰길로 간 유랑민은 몰살을 했다니 희망은 이 길밖에 없는 것이다. 오솔길의 좌우에는 잡목이 우거지고 연초록 잎들로 무성하였다. 신록의 계절인 것이다. 한참을 가도 나무들뿐이었다. 송윤호가 호랑이가 나올지도 모르는 길을 이십여 리를 따라가도 산길은 계속되었다. 어느 곳에 이르니 왼쪽으로 또 한 갈레 길이 곧게 나 있었다. 산속에서 길이 갈리니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는데 길가의 조그만 바위에 새겨진 희미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가 새겼는지 조잡한 각자(刻字)로 광릉(光陵)이라 쓰여 있었다. 광릉이라면 세조(世祖)의 능이니 왼쪽 길은 능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세조건 네 조건 그까짓 거엔 관심 없고 온통 원일이 생각과 이 길이 어디서 끝날까에만 정신이 집중된 송윤호가 더욱 빠른 걸음을 놓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툭 터진 넓은 논밭이 나타났다. 초가집이 드문드문 몇 채가 보였다. 송윤호는 가까운 집으로 향하였다. 집 앞의 밭에는 농부가 엎드려 무엇을 심고 있었다. 인기척에 엎드렸던 농부가 놀라 고개를 들더니 엉거주춤 일어섰다. 보아하니 환갑이 훨씬 지난 노인이었다.

"노인장 말 좀 묻겠습니다. 혹시 이 동리에 낯선 이들이 들어온 적이 있습니까?"

노인이 보기에 양반이라 일단 허리를 굽혔는데 말씨는 해라가 아니어서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노인이 침침한 눈을 몇 차례 깜박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송윤호를 올려다보았다.

"언제 적 말씀이신지요?"

"그게 꼭 스무날 전이 올시다."

"그러시다면 축석고개에 화적질하던 놈들을 말씀하시나 보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 그날의 일을 어찌 알고 계시오?"

"하마 우리께에도 소문이 짜 하였습죠. 광릉 윗쪽의 이곡이란 골짝에 모여 있던 난민들 짓이라 하여이다. 허지만 포도청 군사들 손에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하니 알 수 없습지요."

"토포가 된 것은 오다가 솔모루에서 들었지요. 다만 이곡에서 이곳으로 길이 나 있기에 혹시 이리로 온 무리가 있을까 해서 물어 본 것입니다."

노인이 다시 눈을 끔쩍거리다가 힘이 드는지 밭가에 걸터앉았다.

"쉰네는 그런 유랑하는 무리를 본 적이 없사온데, 우리 작은 며느리가 보았다 하옵디다. 여기서 시오 리 떨어진 음현골에 작은 아들 내외가 사는데 보름 전 제 애미 제사에 왔을 때 들었습죠."

"유랑민들이 아들이 사는 동리에 왔었단 말이지요? 그때가 언제랍디까?"

"그게 아마 양반님이 말씀하시는 그때쯤이 올습니다."

", 그럼 혹시 어린아이도 있었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습니까?"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습지요."

갑자기 송윤호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엇이 솟구치었다. 막연한 짐작으로 이 길을 따라왔는데 정말로 이리로 도망 온 유랑민이 있었다니 희망의 불씨는 남은 것이다. 작은 아들이 산다는 곳을 노인에게 길을 물어 당장 음현골이란 곳으로 향하였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으니 시오 릿 길은 문제가 아니었다. 음현골 노인의 작은 아들 집은 물어볼 것도 없이 찾기 쉬웠다. 외따로 떨어진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송윤호가 삽짝을 들어서자 예닐곱 살쯤 된 아이가 마당에 있다가 깜짝 놀라 방으로 도망을 하였다. 아비가 있느냐고 물으려던 송윤호가 댓돌을 보니 어른 짚신이 없는지라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저쪽 밭에서 남녀가 송윤호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들만 있는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밭에서 본 것이다. 먼저 뛰어온 남자가 양반이 서 있는 것을 보더니 열이 식은 얼굴이 되었다. 송윤호가 아들의 아비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하였더니 고분고분 본 대로 말하였다.

"꼭 스무날 전에 이 동리에 그들이 왔습죠. 게 중에 한 놈이 예닐곱 살난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동냥을 왔기에 조밥 한 덩이를 주었습죠. 한데 알고 보니 이놈이 동리를 염탐하려고 동냥질을 다닌 것입지요. 그날 밤에 저 끝에 있는 율매기네 집에 화적패가 들어서 식구들을 묶어놓고 곡식을 털어갔으니깝쇼. 모두 네 명이었다는데 사실은 여자와 아이들도 있었다더군요."

"여자와 아이까지? 아니? 그걸 어찌 알았소?"

"여기 우리 마누라가 봤다 하옵니다. 어이 양반님께 본 것을 말씀 올려."

남편의 재촉에도 양반에 기가 죽은 마누라가 종내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 돌아서자 할 수없이 남편이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날 낮에 냇가 둔덕에서 나물을 캐던 마누라가 물가에 둘러앉은 유랑민들을 보았는데 남자들과 여자뿐만 아니라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하옵니다."

"셋 중에 갓 돌 지난 정도의 아이도 있었소?"

"그것까지는 쉔네가 알 수없사오나... 어이 돌 지난 애기를 보았.."

"있었어요. 우리 깨동이 만한 어린애가 아장 거리고 있었어요."

돌아섰던 여편네가 남편의 말을 자르고 성급히 대답을 하였다. 순간 또 한 번의 우연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놀라워 송윤호의 눈이 빛났다. 그 아이가 제발 원일이기를 기원하였다.

"곡식을 털렸다는 집에서 관아에 적경을 알렸소?"

"그럼입쇼. 하지만 하루가 지나서야 포졸 하나가 나와 조사를 한답시고 으르딱딱거리는 통에 탁배기 값만 더 들었다고 하옵지요. 아마."

"허어, 그렇다면 도적이 도타한 방향도 찾지 못했겠구려?"

"포졸의 말로는 화적들이 산으로 뛰었다지요? 그러고 보면 참 맞는 말입지요. 화적이 산으로 가지 물로 가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요."

더 알아볼 것이 없어진 송윤호가 이곳의 지세와 길을 물었다. 동으로는 주금산 밑의 수동골이 있고 북으로는 내촌과 가산에 닿고 남으로는 퇴계원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친절히 대답해 준 부부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돌아섰다. 동리의 남북으로 이어진 길로 나선 송윤호가 한밤중에 화적들이 여자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도망갔을 방향을 짐작해 보았다. 북으로는 내촌이라 포천현과 너무 가까워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으로는 진접읍 치라 역시 기찰이 겁나서 가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갈 곳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와 아이를 끌고 저 험한 산길을 밤중에 갔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송윤호는 난처했다. 어디로 따라갈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송윤호가 편한 남쪽 길을 택했다. 아무리 화적질로 쫓긴다 하여도 아이들을 데리고 산길을 밤중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였다. 해가 저물 무렵까지 걸어서 진접에 닿은 송윤호는 과객질로 어느 농가의 토방을 빌려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송윤호는 계속 남 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러나 유랑민을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 할 수없이 한양의 반대 방향인 마석 쪽을 더듬어 볼 요량으로 발길을 동으로 돌렸다.

   

억수 일행이 수동골을 지나 한강의 상류인 대성골 백사장에 발을 디딘 것은 이틀이 지난 정오 무렵이었다. 인적이 드문 산길로만 온 데다 솔모루에서 완전히 멀어져서 더 이상의 추격은 없으리라 여긴 일행이 송암골에 이르자 길양식을 아끼려고 빌어먹으며 온 탓이었다. 강가에 이르자 억수가 건널만한 곳을 찾아 아래위를 왔다 갔다 하였다. 그러자 엉치가 판덕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눈알을 부라렸다.

"어이 자네가 먼저 들어가 보게. 낯살이나 처먹은 게 그렇게 눈치가 없단 말이여? 혹 달린 게 먼저 들어가서 물이 어디까지 차는지 재 봐야 할 것 아니여?"

"아이고 엉치 오장님, 소인은 헴질을 못 하는뎁쇼?"

"못해? 사람이 급하면 개헤엄이라도 치게 되어 있는 법이여. 들어가. 빨리."

고의를 벗으면 아무것도 없는지라 저고리만 벗은 판덕이가 강으로 한발 한발 걸어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열 걸음쯤 들어가자 물이 배꼽을 넘었다. 댓 걸음 더 들어가니 물이 가슴을 적시는 것이다. 겁이 더럭 난 판덕이가 돌아서 나오려 하였다. 그러자 물가의 엉치가 무서운 얼굴로 아랫입술에 윗니를 박으며 손으로는 계속 가라는 시늉을 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판덕이가 다시 강심을 향해 나아가니 갑자기 발 밑이 푹 꺼지며 몸이 물속으로 쑥 잠기었다. 아찔해진 판덕이가 물 위로 솟았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두어 번 하고 보니 물이 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었다. 판덕이는 숨을 참으려 애를 쓰는데 그럴수록 코로 물이 빨려 들어 머리까지 핑 도는 것이다. 이제 죽는구나 싶은 판덕이가 딴엔 헤엄을 쳐 보려고 손 발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더욱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강 윗 쪽으로 갔던 억수가 마침 이 광경을 보았다. 철벙대며 강으로 내닫던 억수가 몸을 던져 헤엄을 쳐서 판덕이의 상투를 잡았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으나 거의 초주검이 된 판덕이가 억수의 손길에 살아난 것이다. 막돌이가 등을 두드리자 몇 번 물을 토한 판덕이가 그만 기진을 하여 들어누웠다.

"그러게 개헤엄도 못 치는 위인이 물에 뛰어들긴 왜 뛰어들어?"

엉치가 고소하다는 듯 빈정대었다. 억수가 이미 사태를 파악한 듯 엉치를 한번 노려보았다. 그러나 엉치에게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 억수가 보아둔 상류의 얕은 곳으로 아이들을 어깨에 올리고 모두들 강을 건넜다. 강기슭에서 불을 지펴 옷을 말리는 한편 밥을 지어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판덕이가 마누라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 조밥을 떠서 먹였다. 한두 번을 받아먹던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이틀 동안 먹은 게 별로 없었다. 배가 고플 터인데도 보채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나 다르게 변한 분위기를 감지한 것처럼 놀란 눈으로 주위를 자꾸만 둘러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랫입술을 내밀고 비죽 비죽 거리며 울려다가도 그걸로 끝이었다. 큰소리로 울지를 않는 것이다.

"아이고 이게 또 안 먹네. 내리 사흘을 산길에 시달려 노독이 났나 보구나."

판덕이가 고개를 젓는 아이의 입을 따라 숟가락을 놀리나 역시 먹지를 않았다.

"그것도 양반 새끼라고 험한 밥은 싫고 쌀밥에 잣죽을 달라네. 엥이 쯧쯧… ."

불가에 널어놓았던 저고리를 툴툴 털어 입던 엉치가 도끼눈으로 빈정대었다.

"쯧쯧, 이제 갓 돌 지났을 애가 맨 조밥은 먹기 힘들지유. 쌀죽이라도 좀 멕여야 할 텐데 이러다 또 죽이고 말겠어유."

막돌이 마누라가 딱한 듯, 아이를 안고 있는 판돌이 마누라에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웬일로 판덕이 마누라가 쌀자루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였다. 일행이 다시 길을 떠나려고 짐을 챙겨 들었다. 짐이래야 별것 없었다. 막돌이의 옹기솥과 조금 남은 길양식 그리고 깨진 바가지 세 개가 전부였다.

"이보게 억수, 화야산 골짜기를 지나 미원 쪽으로 가세."

"그리로 가면 길은 절반으로 줄겠지. 하지만 산길 오십 리에 집 한 채 없는 길을 여자와 어린애들을 데리고 어찌 가나?"

"그렇다고 빠른 길 두고 한없이 돌아가잔 말인가? 싫으면 나 혼자라도 가겠네."

"자네 좋을 대로 하게. 우리는 천천히 뒤따르겠네."

신들메를 조이던 엉치가 일어서며 선 듯 쌀이든 보퉁이를 집어 들었다.

"그건 왜 들고가나?"

억수가 보퉁이를 뺏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재빨리 한 걸음 물러선 엉치가 눈을 치뜨며 대거리를 하였다.

"이거 왜 그러나.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 내가 아니었으면 쌀은커녕 조밥인들 목구멍에 넘겼겠나? 이건 내가 가져갈 테니 그리 알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발길을 돌려 제 갈 길을 가는 엉치를 바라보던 눈들 중에 판덕이 마누라의 눈에서 새파란 빛이 뻗어 나왔다. 죽어라 안고 있던 아이를 탁 내려놓더니 번개같이 엉치에게 달려들어 보퉁이를 가로채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일을 당한 엉치가 미친년을 잡으려 돌아섰다. 판덕이 마누라가 아이에게 재빨리 돌아오는데 엉치가 벌써 한 손으로 머리 채를 잡고 한 손은 목덜미를 후려쳤다. 그러자 판덕이 마누라는 쌀 보퉁이를 안고 꼬꾸라지더니 팔다리를 오므려 꼼짝을 하지 않았다. 열이 난 엉치가 미친년을 밟아대기 시작하였다. 판덕이 마누라는 밟혀도 차여도 이를 악물고 죽는소리 한마디 없이 쌀자루만 품고 엎드렸다. 판덕이는 아이가 다칠세라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모르는데 억수가 엉치의 뒷고대를 잡아당겨 떼어 놓았다.

"그만두게. 미친 사람도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거늘 자네가 쌀을 양보하게. 그래봤자 한 됫박이 안 될걸세."

"성한 것도 아니고 미친 것에게 당하니 더 기분 잡치네. 저 미친 것 때문에 자네도 언젠가는 큰 곡경을 치를 거니 조심하게."

침을 탁 뱉고 돌아서며 좁쌀이든 보퉁이를 잊지 않고 챙겨드는 엉치였다. 화야산 골짜기로 향하는 엉치를 바라보던 억수 일행이 강을 따라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옷을 말리고 밥을 지어먹느라 늦게 떠나서 해가 다 할 무렵까지 삼십여 리를 걸으니 저녁때가 되었다. 마침 강가에 마을이 있어 각기 흩어져 구걸을 하였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마을을 찾아다니며 길을 가니 장정이 이틀이면 닿을 백팔십 리 길을 닷새를 걸어 양근에 닿았다. 지름길인 화야산 골짜기로 떠난 엉치는 이틀도 채 걸리지 않았으리라. 양근은 논밭이 많고 집들도 많은 곳이었다. 억수는 판덕이와 막돌이에게 의견을 물어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하였다. 물가에 엉성하나마 세 채의 움막을 세웠다. 매일 노숙으로 밤을 새우는 것보다 한결 사람 사는 것 같았다. 엉치의 손에서 뺏은 쌀은 진작 일행의 한끼 아침밥으로 없어졌었다. 다음날부터 한 줌의 쌀을 얻기 위해 판덕이는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동냥을 다녔다. 그리고 깨진 옹기 조각을 돌 위에 걸어 따로 쌀죽을 끓여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가 설사를 하더니 며칠 사이에 목이 가늘어지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대로 미친 여편네에게 아이를 맡겨두었다가는 명줄이 끊길 판이었다. 판덕이가 본래 모질지 못한 성격에다 굶겨 죽인 자기의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이 아이만은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다. 게다가 말 못할 사연을 말하려는 듯한 아이의 말간 눈을 들여다보면 그만 가슴이 찡해오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판덕이는 제 입보다 먼저 아이의 입에 밥이든 죽이든 들어가야 자신도 먹었다. 다행히 여편네는 제 배도 고플 터인데도 아이의 밥은 뺏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입을 우물거리면 자기도 히죽 웃으며 먹는 모습을 자세히 보려는 시늉을 하였다. 갔던 집에 두 번을 구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보름을 돌아다니다 보니 양근에는 더 이상 얻어먹을 집이 없었다. 일행은 할 수없이 더 넓은 대처로 떠나기로 하였다. 날은 차차 더워져 노숙을 하기는 좋으나 장마가 들면 큰일이라 어서 가서 움막부터 세워야 하였다. 여주까지는 불과 백여 리여서 이틀 만에 닿았다. 먼저 물가의 높은 기슭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뼈대를 세우고 갈대를 꺾어다 칡으로 지붕을 얽었다. 다음날부터 구걸질을 다니면서 보니 여주는 양근에 비할 바가 아니게 큰 고을이었다. 눈에 보이는 들판이 모두 논이요 밭이었다. 이런 들판이 이천과도 이어져 일 년 열두 달을 동냥으로 먹고살아도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여주에 온 며칠 뒤의 일이다. 여주 장날이라 아침 일찍 어미와 같이 구걸을 나섰던 막돌이 아들놈이 사람들 틈에서 엉치를 보았다. 그 순간 엉치도 아이를 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아이놈이 판덕이 아지매를 발로 짓밟던 엉치가 무서워 어미의 소매를 끌며 움막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엉치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아이의 뒤를 따랐다. 얼마 후에 멀리 아이가 들어가는 움막이 보였다. 움막을 확인한 엉치가 다시 돌아서서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구걸을 하였다. 사실 엉치는 억수 일행과 헤어진 다음날 양근에 닿았는데 그보다 이틀 먼저 도착한 노달구패와 우연히 만난 것이다. 혼자서 먹고 살 일이 아득하여 걱정이던 엉치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노달구를 만나니 아이고 부처님 싶었다. 노달구도 눈치 빠른 엉치가 쓸모가 있는지라 흔쾌히 받아주었다. 노달구가 엉치를 끼워 준 것은 진작부터 생각해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부자의 무덤을 도굴해 돈과 바꾸는 일을 하려는 것이었다. 노달구가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엉치가 노달구의 말을 들어보니 힘들고 위험한 화적질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게다가 부자가 스스로 돈꿰미를 들고 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비벼댈 테니 신나는 노릇 아닌가? 엉치는 즉각 찬성을 하였으나 신일규는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하필 왜 조상의 무덤이냐 하는 것이다. 양반 출신이라는 젊은 놈이 같잖게 양반 티를 다시 내는 것 같아 노달구의 심사가 꼬였다. 그러나, 도굴을 한 후에 부잣집에 공갈칠 서찰을 쓸 인물은 신일규 밖에 없어서 화를 삭였다. 노달구가 신일규를 달래어 딱 한 번만 하여 노잣돈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 후에 여주를 거쳐 이천으로 들어가 부잣집을 염탐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 일은 주로 엉치가 맡았는데 어느 날 그럴듯한 집을 찾았다. 또 여러 날 염탐 끝에 그 집의 조상이 묻힌 선산을 알아내었다. 엉치는 농가에서 괭이를 훔치고 무덤 주변의 지리를 익히는 등의 준비를 하였다. 그날 저녁에 부잣집 선산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미리 봐둔 묘를 파헤쳐 오래된 해골을 꺼내었다. 한데 묘를 파헤칠 때부터 줄곳 안절부절못하던 신일규가 해골을 끊어드는 것을 보더니 풀썩 주저앉는 것이다. 아무리 양반을 버렸다고 하나 유교의 교리가 골수에 박힌 양반의 자식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노릇이던 것이다. 서찰을 써야 할 신일규가 이 모양이라 노달구가 다시 화가 치솟았다.

"니에미, 이제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게여? 이것이 네 할아비라도 된단 말인가? 양반을 버렸다는 말도 말짱 헛소리였구만. 이 빌어먹을 놈을... ."

속대로 했으면 당장 때려죽여 송장 판 구덩이에 밀어 넣었으면 딱 좋으련만 아직 서찰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 될 노릇이오. 내가 양반이었대서가 아니라 이건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이요."

"뭐라? 사람의 도리? 없는 놈이 굶어죽는 것도 사람의 도리더냐?"

뒤에 있던 엉치가 한 마디의 말과 함께 해골 싼 보자기를 들어 그대로 신일규의 머리를 내려쳐 버렸다. 노달구가 말리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이 두 번 세 번을 연달아 내려치더니 괭이로 바꿔 든 엉치가 다시 달려들었다. 양반 출신 신일규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엉치가 신일규를 죽인 것은 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얼마 전까지 아무것도 아니던 졸개가 양근에서 재회를 하고 보니 노달구 다음 자리에 있는 것이다. 노달구 다음 자리는 오장이던 자신이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구걸을 하여 갖다 바쳐야 하니 이가 갈리던 것이었다. 게다가 저도 없는 젊은 계집까지 거느린 꼴이 영 못마땅하였다. 어쨌든 노달구도 엉치도 진서는커녕 언문도 모르는데 신일규를 죽여버렸으니 이번 일은 다 틀린 것이었다. 신일규의 시신과 해골을 구덩이에 차 던지고 태연히 여자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갔다. 신일규가 보이지 않자 그의 아내가 왜 같이 오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따로 할 일이 있어 내일 온다고 둘러대었다. 다음날 아침 신일규의 아내가 엉치의 소매 끝에 묻은 피를 수상하게 생각하여 아무 내색없이 노달구와 엉치를 살펴보았다. 둘이서 한참을 수근대더니 용인으로 가자는 노달구와 여주로 되돌아가야 안전하다는 엉치의 말소리가 들렸다. 결국 길눈에 밝은 엉치의 뜻대로 여주로 향하였으나 신일규의 처는 아무런 군소리가 없이 그들을 따랐다. 이미 짐작이 가던 것이다. 이천에서 여주는 불과 육십 리라 그날로 닿아 구걸질로 저녁밥까지 때웠다. 다음날 아침은 마침 여주 장날이었다. 강을 건너기 전에 구걸로 아침 요기를 하려고 장바닥에서 서로 헤어졌다. 그 사이에 신일규의 마누라가 여주 관아로 내달렸다. 이천서 모의한 양반집 도굴과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것과 엉치의 소매에 묻은 피를 그대로 고한 것이다. 게다가 화적질한 것까지 낱낱이 불어버렸다. 여주목사가 동헌에 나오기 전에 병방부터 불러 지시를 내리니 단번에 군졸들이 장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신일규의 마누라가 앞장을 서서 노달구와 엉치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마침 엉치가 막돌이 아들놈이 들어간 움막을 확인하고 돌아서 다시 구걸을 하던 참이었다.

"저기 있소. 저놈이요."

신일규의 마누라가 쇳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뻗어 엉치를 가르키니 벌떼같이 군졸들이 내 달았다. 엉치 또한 놀란 가운데서도 날랜 다리가 있는지라 몸을 돌려 냅다 뛰었다. 그러나 포졸 중에도 날랜 사람은 있게 마련이라 엉치가 댓 걸음도 내닫기 전에 어깨죽지가 화끈하더니 육모 방망이가 내려앉았다. 단번에 앞으로 고꾸라진 엉치놈을 발로 밟고 오라를 지어 일으켜 세웠다.

"잠깐, 포졸 나으리 잠깐만 참으쇼. 나는 피래미요. 저기 양반 행차를 도륙 낸 화적들이 있소이다."

"뭐라고? 화적이라고? 이놈 어디냐 말을 하여라."

장교쯤 되는 자가 나서더니 엉치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물었다.

"대신 화적의 수괴를 잡으면 나를 풀어주시오. 그럼 알려주겠소."

"그건 화적을 잡고 볼 일이고 네놈의 죄상에서 참작은 될 게다."

오라를 진 엉치가 억수가 머무는 움막을 향해 앞장을 섰다. 얼마 후에 움막이 멀리 보이는데 엉치가 따라오나 망을 보던 막돌이 아들이 뭐라고 새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판덕이가 아이를 안은 마누라의 등을 밀며 갈대가 무성한 강가를 따라 도망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억수와 막돌이 부부도 튀어나오는 것이다.

"저놈들이요. 저놈들이 양반 행차를 덮친 놈들이요."

엉치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예닐곱의 포졸들이 우르르 달려가더니 뒤처진 막돌이 마누라를 후려쳐 쓰러뜨렸다. 이어서 막돌이 아들의 뒷덜미가 잡히고 억수가 데리고 다니던 아이도 발길에 차여 뒹굴었다. 아들이 걱정되어 자신도 모르게 돌아서던 막돌이는 육모방망이 한 방에 정수리가 깨져 죽고 말았다. 뒤에서 뛰던 억수가 판덕이를 앞질러 저만치 달리고 있었다. 판덕이는 마누라의 걸음이 느려 조바심이 났다. 뒤통수에 곧 방망이가 내려앉을 것 같았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갈대 사이로 벙거지가 보였다. 보나 마나 이러다 맞아죽을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진 판덕이가 무심결에 마누라보다 앞서서 뛰기시작하였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시킨 행동이었다. 간이 쫄아들던 판덕이가 달리기를 그만두고 물속 갈대밭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갈대 줄기 뒤에 납작 엎드려 물에 잠기었다. 그러자말자 하나 둘 셋도 세기 전에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철퍼덕하고 무엇이 물 위에 쓰러지는 것이다. 이어서 우르르 발자욱 소리와 함께 저놈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판덕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갈대밭에 처박힌 사람을 보니 아뿔싸 뒤따르던 마누라가 고꾸라져 있었다. 깨진 머리에서 쉼 없이 피가 흘러나와 강물에 붉게 번지고 있었다. 엎어진 마누라를 급히 돌려 눕히다 판덕이는 깜짝 놀랐다. 죽으면서도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마누라의 품에서 급히 아이를 빼 내었다. 아이는 죽었는지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개똥이 아부지... 우리 개똥이.... ."

순간, 죽은 줄 알았던 마누라가 허공에 손을 젓는 듯하더니 짧은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손을 떨구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이를 머리에 올리고 갈대를 헤치며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물이 깊은지 얕은지 알지도 못하고 자신이 헤엄을 치지 못한다는 것도 까맣게 잊었다. 이 순간만은 판덕이의 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오로지 입속으로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울면 너까지 죽는다 하는 말만 맴돌았다. 물이 가슴을 넘어 입과 코에 닿았으나 무섭지 않았다. 오로지 강 저편을 향해 휘적거리며 나아갈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기슭이 가까워졌다. 어떻게 무사히 그 넓은 여강(驪江)을 건넜는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재빨리 작은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겨 산 쪽으로 붙었다. 그리고는 동서남북도 모른 채 산을 타고 죽어라 도망을 하였다. 이날 살아서 도망을 한 사람은 판덕이와 노달구 뿐이었다. 억수는 십여 리를 쫓기다가 박이 터져 죽었고 엉치 또한 오라에 묶인 채 도망을 치다가 맞아 죽은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도굴과 솔모루 사건이 밝혀지면 참수를 못 면할 것이니 크게 억울한 죽음들은 아닐 것이었다. 노달구의 계집과 신일규의 아내 그리고 잡힌 두 아이는 보나 마나 관노로 박힐 것이다.       

방향도 길도 모른 채 죽자 살자 도망치기에 바쁜 판덕이가 가고 있는 곳은 신륵사(神勒寺) 윗 쪽의 봉미산(鳳尾山) 기슭이었다. 그러나 판덕이에겐 봉미산이건 용두산이건 알 바가 없었다. 오로지 여주와 멀어지기만을 바라서 앞만 보고 죽자고 달리는 것이다. 몸이 녹초가 되어 더 이상 걸음을 걸을 수없을 때에야 정신이 돌아온 판덕이가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숨을 쉬는지 아이의 코에 귀를 대어보니 다행히 숨은 제대로 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침부터 지금까지 물 한 방울 먹이지 못한 것이다. 쌀죽을 미쳐 끓이기도 전에 엉치놈이 사단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쌀도 없고 불도 없고 있다 해도 끓일 솥도 없으니 할 수없이 구걸을 해야 했다. 그러자면 산을 내려가 민가를 찾아야 하였다. 산기슭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논밭이 보였다. 길도 없는 산비탈을 무작정 내려가서 논밭이 있던 쪽을 바라보니 한 곳에 초가집이 보였다. 판덕이는 그 집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삽짝 안으로 들어서서 주인을 불렀다. 맨 상투의 부스스한 늙은이가 지겟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우리 애 좀 살려주오. 먹지 못해 곧 죽게 생겼습니다. 제발 밥 한술만 주시오."

심드렁한 얼굴로 판덕이가 안고 있는 아이를 보던 촌로가 방문을 탁 닫아버렸다.

"다른데 가 보게나. 우리는 죽은 아이에게 줄 밥이 없으니께."

"죽다니요? 배가 고파 기진한 것이오. 밥만 먹이면... ."

"글쎄, 다른데 가보래도 그러네. 엥이."

판덕이는 막막하였다. 다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영감 말대로 죽은 것도 같았다. 급히 아이의 가슴에 귀를 대보니 가슴은 뛰고 있었다. 빌어먹을 영감을 콱 때려죽였으면 싶었다. 그러나 다른 집을 찾는 것이 더 급했다. 판돌이는 삽짝을 나서 어디에 또 집이 있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등 뒤에서 누가 가만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기 밥."

판덕이가 돌아보니 젊은 여자가 밥이 담긴 바가지를 내미는 것이었다. 두 손으로 아이를 안고 있던 판덕이가 미쳐 바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이를 한 손으로 추슬러 안고 한손은 바가지를 받았다. 한데 아이를 본 젊은 여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이를 빼앗듯 안아 들었다. 그러더니 몇 걸음 떨어진 모퉁이로 종종거리고 가더니 쪼그려 앉는 것이다.

"잠시 다른 곳을 보고 계세요. 아이에게 젖을 멕일 거에유. 급한 것 같아요."

저고리 자락을 잡는 것을 본 판덕이가 급히 돌아서서 먼 산을 보았다.

"먹네요. 먹어요."

잠시 후에 젊은 여자가 조용히 혼잣말처럼 하였다. 돌아선 판덕이는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하였다. 그제서야 오늘 겪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물에 처박힌 마누라의 모습과 포졸들의 발소리도 들리는 듯하였다. 참으로 짧고도 긴 하루였다.

"됐어요. 애가 눈을 떴어요. 어마나 눈이 어쩌면.... ."

잠시 후 젓을 다 먹인 젊은 여자가 아이를 돌려주며 미쳐 하고픈 말을 잊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의 눈동자는 새벽 별 보다 맑고 깊어서 누구나 한 번만 보면 소스라칠 정도였다. 판덕이가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나타내었다.

"이것도 가져가세요."

돌아서는 판덕이에게 밥이든 바가지를 쥐여주었다.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 아이를 살려줘서... ."

"어서 가세요. 시아버지가 나오시기 전에요. 얼른이요."

판덕이와 아이는 농가의 젊은 여자로부터 생각 밖의 구원을 받아 밥까지 챙겨 먹었다. 게다가 바가지까지 생긴 것이다. 아이를 안은 판덕이는 바가지를 머리에 엎어 쓰고 길을 떠났다. 구걸을 하며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하루 이틀 가다가보니 길은 끝도 없었다. 날은 점점 더워져서 낮에는 그늘에서 아이를 쉬게 하였다. 그러니 하루 삼사십 리를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엿새를 걸어 도착한 곳은 알고 보니 처음 도착해 보름을 빌어먹던 양근이었다. 여주에서 사뭇 다른 길로 돌아서 걷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어쨌든 저녁을 먹어야겠기에 아이를 둘러업고 바가지를 들고 나섰다. 한데, 동리로 가는 길에 포졸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뜨거라 싶은 판덕이가 읍내의 반대 방향인 양근섬 쪽으로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죽자고 강기슭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도망을 하였다. 이십여 리를 걸으니 어두워 더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디고 불빛 한 점 없는 막막한 곳이었다. 아이도 판덕이도 곱다시 굶으며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잔풍한 곳을 골라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다시 길을 나서 이십여 리를 가니 조그만 논밭에 집이 한 채 있었다. 아이에게 먹일 밥만이라도 얻어보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길을 물어보니 용담 골이 여기서 사십 리라 하였다. 거기는 집도 논밭도 많다는 것이다. 빨리 걸으면 해가 중천일 때 닿을 듯하였다. 어제저녁부터 굶은 판덕이가 물로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정말로 몇 십 리를 걸어도 집 한 채 없었다. 용담 골의 마을이 보이는 굽이를 돌자 온몸의 기운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내려서 들여다보니 아이도 눈을 감고 쳐져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먹인 것이 없었기에 혹시나 하여 가슴이 뜨끔하였다. 여주의 여강에서 도망치던 때가 생각난 것이다. 그때 그 젊은 여자의 젖을 한 번만 더 먹일 수만 있다면 아이는 당장 기운을 차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요행이 아무 때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쩔 수없었다. 그때 판덕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강뚝에 송아지 딸린 암소가 매어져 있는 것이다. 소 젖도 젖일 거였다. 옳지. 저걸 조금만 갖다 먹이면 아이는 바로 눈을 뜨리라. 판덕이가 바가지를 챙겨 들었다. 헌데 아이가 문제였다. 강기슭에 그대로 두었다간 깨면 강으로 굴러떨어질 염려가 있었다. 어쩔까 잠시 망서리던 판덕이가 아이를 안고 물가로 향하였다. 물가 모래밭에 작은 배가 올려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판덕이는 아이를 안아 배 안의 이물 쪽에다 편히 뉘었다. 그리고는 바가지를 들고 암소가 있는 뚝으로 올라섰다. 슬금슬금 암소의 엉덩이 쪽으로 다가간 판덕이가 호기심에 다가오는 송아지의 콧등을 때려 쫓았다. 바가지를 받쳐 네 개의 젖꼭지 가운데 아무거나 잡고 당겨보았다. 애미소가 움찔하였다. 젖이 나오지를 않았다. 다시 손가락을 모아 짜니 몇 방울이 떨어지는지라 본격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에미소가 다시 움찔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이 바쁜 판덕이가 바가지를 무릎에 끼고 양손에 젖꼭지를 잡고 젖을 짜기 시작하였다. 크게 움찔하던 애미소가 고개를 돌려 배 밑을 보더니 제 새끼가 아닌 것을 알았다. 판덕이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도 젖이 잘 나오지 않자 다른 젖꼭지로 바꾸어 쥐었다. 그 순간 애미 소가 펄쩍 뛰더니 뒷발로 판덕이를 걷어차버렸다. 이어서 돌아 선 에미소가 뿔 달린 대가리로 판덕이를 짓이기기 시작하였다.

"아고고, 나 죽네. 아이고... ."

콧김을 뿜어대며 날뛰는 애미소를 피할 여력이 없는 판덕이가 소의 뒷굽에 맞아 한 쪽 눈알이 터지고 허벅지는 뿔에 꿰이고 말았다. 송아지가 이리저리 날뛰고 애미소가 미친 듯 울부짖으니 놀란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이때는 벌써 판덕이가 애미소에 짓밟혀 떡이 된 뒤였다.

판덕이는 가물가물한 정신과 흐릿한 시야 속에서 죽은 여편네가 아이를 가슴에 꼭 안고 강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누라도 아이도 한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판덕이가 무엇을 잡으려는 듯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개똥아... 개똥아.." 정신 줄 놓으면서 판덕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날 밤 무엇에 쫓기듯 강가의 작은 배를 밀어 물 위에 띄운 후 급히 강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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