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10. 사느냐 죽느냐(2) 하우스 준비

fiction-google 2024. 3. 1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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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택시 한대가 사북의 외곽에 자리 잡은 모텔 앞에 멈추었다. 택시에서 내린 사람은 수미였다. 수미는 모텔의 계단으로 올라가 2층 자신이 묵고 있는 방문을 가만히 열었다. 자고 있을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문을 여는 순간 수미의 눈이 동그레졌다. 방안이 전등불로 환했던 것이다. 지금 쯤이면 꿈속을 헤매야 마땅할 남편은 팬티만 걸친 채 전화기를 귀에대고 있었다.

"뭐야? 여태 안 자고 있었던 거야?"

수미가 다가가자 부엉이는 검지를 입술에 세우며 인상을 썼다. 조용하란 뜻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 줄은 알지만 ...하필 이때...알았어. 일단 끊어. 생각 좀 하게."

전화기를 귀에서 땐 부엉이의 표정이 심각해보여 수미는 잠시 눈치를 살폈다. 부엉이는 탁자의 담배를 집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프리며 생각을 하다말고 새삼 수미의 존재를 인식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넌 뭐하는 여편네가....지금이 몇 신데 이제야 나타나냐? ?"

"에그 깜짝이야. 남이 들으면 이집 여편네 바람난 줄 알겠네."

수미가 즉시 부엉이의 말을 맞 받았다. 남편의 성격을 아는지라 그대로 두면 무슨 소리로 발전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수미는 부엉이의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 넌 어떻게 된 여편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카지노 행이냐? 너 오늘은 얼마나 꼴아박았냐? 안 되겠어. 내가 준 카드 그거 다시 내 놔. 아 어서."

"기껏 생색을 내면서 준 카드에 딸랑 백만 원 들었더구만. , 받어. 자기가 좋아하는 카드 여기 있어. ."

'"? 딸랑? 넌 백만 원이 적은 돈이냐? 가만 너 그돈 벌써 다 잃었냐?"

"천만 원 먹자고 덤비는 사람이 사흘에 겨우 백만 원 쓴 게 쓴거야?"   

"말은 바로 해. 그게 쓴 거냐? 잃은 거지. 그저께 20만 원 잃었으면 나머진 오늘 다 잃었단 말이야?"

"어제 30만 원은 계산 안 해? 나머지 50은 이틀 동안 잃은 걸 보충하려다 그렇게 된 거지만 사실 돈 백 정도는 써볼 것도 없더라 뭐. 몇 시간 당기지도 않았는데 다 날아가던 걸?"

"? 그럼 일억 정도는 써야 쓴 것 같겠냐? 이게 가만보니 순....같이 있고 싶다느니 도와주겠다 어쩌니 하더니...? 너 여기 내려온 목적이 그거였지?"

"그깟 돈 좀 쓴걸로 길게도 끄시는군. 남자가 쪼잔하게...."

"뭐야? 쪼잔? 이걸 확. 벌기도 전에 쓸줄만 아는 주제에. ? 쪼잔?"

", 말은 또 잘해요. 벌지도 못하는 처지에, 쓸 줄만 아는 마누라가 넣어준 영치금을 앉아서 까먹은 건 누구야?"

"?"

부엉이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수미와의 말다툼은 늘 이런 식이었다. 기선을 잡고 잘 나간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 그만 역전되고 마는 것이다. 계속하면 더 불리한 증언이 나올 줄 아는 부엉이는 얼른 말꼬리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지. 그동안 네가 고생한 걸 잘 아니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이번엔 틀림없이 돈 좀 만지게 되어 있단 말이야. 그러니 너도 협조는 못할망정 신경을 긁지 말란 말이야. 이게 다 누구를 위해 이러겠어?"

"어머, 자기 신경 건드렸다는 게 겨우 내가 돈 좀 쓴거야?"

"누가 그렇테냐? 가득이나 골치 아픈 전화를 받고 있던 차에 네가 돈 타령을 하니 그랬지."

"어머머, 이 이 좀 봐. 내가 언제 돈타령을 해? 자기가 먼저 해 놓구선?"

"아 시끄러. 평소에 그깟 돈 백에 내가 그러는 걸 본 적 있냐? 엉뚱한 곳에서 빵꾸가 나니 화가나서 그랬지. 당장 삼일 후면 개장인데 당장 어디서 대타를 구하냐고?"

"어머, 자기, 무슨 일이 있구나. 아까 그 전화 때문이야? 무슨 일인데? 말을 해야 도울 것 있으면 도울 것 아니야?"

", 도울게 따로 있지. 밥차 팀이 빠진 걸 네가 무슨 수로 도운다는 거야?"

"밥 차가 뭐야?"

"밥 차가 밥 차지 뭐야. 하우스에 오는 꾼들이 밥은 안 쳐 먹고 노름만 하냐?"

"그런데 왜 못 온다는 거야?"

부엉이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수미와의 말싸움에 잠시 잊었던 걱정거리가 새삼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우스를 운영하려면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첫째, 능력있고 믿을 수 있는 물주가 있어야 했다. 이 물주를 중심으로 일 할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이 바닥에서 알려진 바도 없고 능력이나 믿음 따위는 더구나 알 수 없는 김기동이 물주가 된 것은 순전히 부엉이의 공이었다. 부엉이가 물주를 보증하고 나선 것이다. 물주는 실제적으로 하우스를 운영할 팀을 짜야하는데 우선 고수급의 기술자가 모셔야 한다. 솜씨가 하우스의 승패를 정하는 만큼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도 이 바닥에서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기술자로 말이다. 그런 특급 기술자 외에 일급 정도의 솜씨 좋은 기술자도 두어 명 있어야 했다. 고수가 판이 커졌을 때 내 놓을 히든카드라면 이들은 돈을 긁기도 하고 때로는 하우스의 흥행을 위해서 잃어 주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타짜들이 하는 일은 사실 따로 있었다. 전국의 타짜들과 연락을 취해 돈 있는 참가자를 몰고 오게 하는 일이었다. 타짜로서의 실력은 별로지만 워낙 그 방면에 발이 넓은 부엉이가 바로 그런 경우로 그는 흥행의 보증수표로 전국에 소문나 있었다. 이번 판도 김기동이 진작부터 그의 존재를 믿고 한탕을 결심한 것이다.. 다음은 하우스를 설치하고 냉 난방을 책임질 팀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설치와 이동은 물론 화장실과 식수까지 책임진다. 이 일은 천태종이 설치 기술자 몇 명을 고용해 부하들과 해결하도록 했다. 다음은 안전을 책임질 팀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노름판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곽의 경비까지 책임지는 팀이다. 이것은 주로 주먹으로 먹고사는 소위 조폭들의 역할이었다. 이것은 당연히 천태종이 이끄는 오덕이 패의 주된 임무였다. 그 다음으로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 밥차였다. 먹어야 노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 끼를 시내로 가서 먹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밥차 이상 요긴한 것이 없었다. 백여 명의 꾼들과 삼사십 명에 달하는 하우스 멤버들을 상대로 음식을 제공하려면 밥 차에 다섯 명은 매달려야 했다. 이번에 오기로 한 밥차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부엉이의 오랜 감방 동기 발발이었다. 그들은 형제 부부와 여동생으로 팀을 이루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헌데 조금 전 오지 못한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발발이와 그의 동생이 각각 밥 차를 몰고 덕평 인터체인지까지 왔을 때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이다. 할 수없이 가족들과 함께 호법에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엉이는 갑자기 계획이 어그러지자 난감했다. 당장 삼일 후면 개장이니 그 전날인 모레까지는 밥 차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서 갑자기 대타를 구하며 구한다 하더라도 사업의 특성상 믿지 못할 사람을 아무나 붙여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밥 차가 왜 못 온다는 거냐고?"

수미가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묻건만 부엉이는 수미에게 관심도 없는 듯 생각에 잠겼다. 대타를 구할 수 있다 해도 시간이 문제인 것이다. 제각기 스케줄 따라 움직이는 밥차를 무슨 수로 모레까지 여기에 데려 놓는단 말인가? 김기동이 이 사실을 알면 지랄을 할 생각을 하니 맥이 빠질 노릇이었다.

"내 말 안 들려? 밥 찬지 술 찬지가 왜 못 온다는 거냐고?"

"너 같으면 애비가 죽었는데도 밥장사 할 정신이 있겠냐?"

"어머, 그럼 어서 다른 사람을 구해 봐. 장사를 시켜준다면 서로 오려 할 꺼 아냐?"

"모르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게 아무나 끼워주는 사업인 줄 알어? 배신을 때리면 팀 전체가 줄줄이 엮일 텐데?"

"그럼 어떻케?"

"그러니까 조용 좀 하라고. 생각 좀 하게."

부엉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수미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수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부엉이에게 한걸음 다가앉았다.

"자기야. 밥 차 그거 하면 하루에 얼마나 벌어?"

"? 많이 벌면 네가 할래? 꿈 깨셔. 그 장사도 밑천이 많이 들어."

"밑천이라면 밥 차에 실린 물건들 아냐? 그건 밥 차에 다 있는데 무슨 밑천 타령이야?"

"밥 차에 다 있으면 그 차가 네꺼냐? 그리고 음식을 만들 줄이나 알고?"

",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하루에 얼마 정도를 버냐고?"

"네가 그걸 알아 뭐하게?"

"글쎄 대답이나 해 봐. 하루에 순수익이 백만 원쯤 될까? 그 정도까지는 안되겠지?"

"? ? 백이 뭐야? 최소 이삼백만 원도 더 벌지."

"? 이삼백? 정말이야? 헌데 무슨 밥을 팔길래 이삼백이나 남는다는 거야?"

", 아직 깡통이군, 하우스에선 김밥이건 우동이건 어묵이건 순대건 무조건 일인분에 만 원이야. 소주도 만 원    맥주도 만 원 담배도 마찬가지지. 그러니 팔면 파는대로 다 남는 것 아니겠어?"

"그래도 그렇지 순익 이삼백이라니 그게 가능 할까?"

"하루 매출이 오륙백이 넘는데 이삼백이 안 남으면 그 게 무슨 하우스 장사야? 하우스는 말이야. 시시한 돈은 돈 같게 여기지 않는 곳이란 말이야."

"어머머, 정말? 그럼 그거 우리가 하자. ?"

수미의 호들갑에 이제까지 심란하던 마음을 깜박 잊은 부엉이가 킹 하고 콧소리를 내며 비웃었다. 이어서 이 한심한 인간아 하는 눈으로 수미의 얼굴을 뻔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수미는 눈을 더욱 빛내어 부엉이에게 바짝 다가앉아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그동안 나 없는 사이 네가 돈에 쪼달려 온 건 내가 잘 알아. 그러니까 이제부터 버는 돈은 다 너 줄려고 마음먹고 있어. 그러니 그 실성한 소리 하지말고 잠이나 자 둬. 그래야 꿈에서라도 돈 안 드는 슬롯머신을 실컷 당겨보지."

",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아? 나도 생각이 있다구요."

"무슨 생각? 돈 쓸 생각만 아니라면 그 생각이란 걸 어디 한번 들어보자고."

"고향에 분식집을 하는 동창이 있걸랑? 식당하던 요리사 부부도 있고....이 사람들을 불러오면 되잖아? 내가 어떻게든 불러올 테니까."

"사람만 있으면 뭐하냐? 밥 차가 없는데?"

"밥 차가 왜 없어? 이리로 다시 보내라고 하면 되지."

"뭐라고? 너 돌았냐?"

"자기도 생각 좀 해 봐. 초상난 사람이 밥 차를 쓰겠어? 안 쓰겠지? 그리고 어차피 이리 오던 밥 차 잖어? 그 사람들 때문에 사업을 몽땅 망칠 판인데 밥 차 좀 안 빌려 줄라고? 그러니 자기가 공갈을 치란 말야.    빨리 밥 차를 이리 내려 보내라고 말야"

"? 가만....그 수가 있었구나. 어차피 다른 대타를 못 구할바엔 그 수를 쓸 밖에, 역시 우리 여우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군. 가만 일단 전화부터..."

재빨리 전화기를 집어 부엉이에게 건내는 수미의 눈이 사르르 웃고 있었다. 발발이에게 전화를 건 부엉이의 기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 쪽에서 두말없이 대리 운전자를 시켜 밥 차들을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제 수미의 동창이라는 사람의 섭외만 남았다.

"전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간 아니냐?"

부엉이가 벽시계를 힐끔 처다보며 수미에게 일렀다. 그러나 수미는 어느새 저장 번호를 찾아 버튼을 재빨리 눌러대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울리고서야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덕숙이니? 나야 수미."

수미가 대뜸 본론으로 얘기를 끌고 가기 시작하더니 잠시 뒤엔 깔깔대는 두 여자의 수다가 끝날 줄을 몰랐다. 거의 삼사십 분이나 이어진 통화를 끝낸 수미가 어떠냐 하는 표정으로 부엉이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수미의 길어지는 통화에 지루해진 부엉이는 진작에 잠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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