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단편소설) 그 섬은 살아있다

fiction-google 2024. 3.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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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신한다. 그날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비록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이유이다. 그 후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인도에서의 많은 세월도 나에게서 그 사건을 잊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나와 리쳐드 랑그레는 켐브릿지의 동창생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에게 있어서 학창시절 동안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친구였지 않았을까 한다. 무엇보다 그는 일체의 ‘학교’라는 곳에 다닌 적이 없었다. 가정교사를 바꿔가며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없을 뿐 아니라 친척 한 명 없는 천애고아인데다가 소위 대법관부의 보호아래 있는 미성년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대부호의 유일한 상속인 이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리쳐드는 결코 왕따가 아니었다. 스스로 나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이 없을 뿐이었다. 어쩌다 사람들 앞에 서게되면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는 상대하기도 했지만,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이는 우정도 그에게는 어쩌면 반은 귀찮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는 지금껏 내가 만나왔던 어떤 사람과도 다른 면이 있었다. 고독과 당돌함이 잘 뒤섞여 있는… .

당시의 나는 극히 일반적인 학위를 목표로하는 학생이었다. 집안의 방침으로 졸업 후에는 차(茶)농장의 경영을 배우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쳐드 랑그레가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 집단인 고전 특별연구원 그룹에 속해, 오직 그런 치들과 만 교제를 하는데 반해, 나는 보통 친구들이라고 하면 항상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하며 농땡이를 피우는 혈기 발랄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했으니 호화 찬란한 트리니티 거리의 멋드러진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고전고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뛰고 신선한 체험이었는지 몰랐다. 그가 손을 대기만 해도 그 이야기 하나 하나가 모두 마치 살아있는 듯이 생생한 현실처럼 생각이 되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만약 ‘윤회’가 있다고 한다면 리쳐드 랑그레야 말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 다시 태어난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인이 다시 태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생전 보지도 못했던 알 수 없는 문장들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복창하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에도 고대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 반해 나는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 기분전환 상대쯤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리쳐드와 나는 같은 해에 학교를 나와, 나는 다지링의 숙부의 농장으로 가고, 리쳐드는(성년이 되었으므로) 대법관부로부터 상당액의 자산을 받아 아테네로 홀연 떠났다.

그 후로도 그와는 이따금씩 편지를 주고 받았고, 나는 작년, 비장(備藏)비대의 치료를 위해 본국으로 강제송환 되었을 때에도 빼먹지 않고 편지로 소식을 전해 두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몇 개월 동안이나 그에 상응하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러던 터라 어느날 아침에 돌연 인도로 돌아가기 전에 한 달 동안을 함께 보내자는 초대장이 날아들었을 때는 당황해서 나의 눈을 의심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카르디아라는 곳에 살고 있어.”라고 그 편지 속에 적혀있었다.

“농담같이 작은 섬이지만, 본국으로부터 단 40마일, 아테네에서도 50마일 정도 일꺼야. 그러니까 너는 짐을 몽땅 챙겨서 무거운 것은 아테네에 놔두면 되. 아테네까지는 마중을 나갈깨. 지금 딱 좋은 요트를 구해 뒀거든. 놀다가 내 얼굴이 지겨워지면 굳이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그대로 인도로 떠나면 되고.”

그때까지는 고국인 영국의 바람은 나에게는 차가웠다. 적어도 어느 젊은 여성은 내가 그린 ‘둘만의 미래도’에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작년 영국의 봄은 더욱 춥고 습한 기운이 살을 애였으므로 나는 ‘도항선’ 이라고 서둘러 전보를 날렸다.

당연한 듯 관광유람선에 올라탄 나는 4월 첫째 주에 아테네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약속대로 리쳐드가 나와 있었다. 그는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원래부터가 그리 젊어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기도 했다. 훤칠하게 키가 크고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하고 풍체는 날렵해 인텔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자.”

입을 열자 마자 그가 말했다.

“조수 때를 놓칠수야 없지. 짐은 다 챙긴거야? 그리고 무거운 짐은 선박회사 창고에 맡기면 되니까. 대리점 사람들은 잘 알거든. 점심은 배에 준비해 뒀어.”

“야. 야.”

나는 허둥대며 말했다.

“설마 아테네 구경을 안시켜줄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말이야.…”

“아테네에는 볼 가치가 있는게 이제 남아있지 않다구.”

그는 히죽 웃어 보였다.

“관광객을 위해서 조밀하게 구획 정리된 근대적인 민주도시 그것뿐이야. 저길 보라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자, 지금 같은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두 명의 가이드를 따라 시내구경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마치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온 것 같았다.

“너도 저기 저 줄에 끼여서 와! 아크로폴리스다, 다오니소스 극장이다, 제우스의 신전이다 하며 끌려 다니고 싶은거야?”

“음…. 듣고보니 비극적인걸…. ”

“비극이고 말고. 아테네의 영광은 이미 과거의 것이라고. 자, 가자.”

이렇게 되면 할 수 없어서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리쳐드가 부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샤른호(號)’가 저토록 훌륭한 요트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전함(戰艦)과 같이 가늘고 긴 선체는 확연히 스피드를 의식해서 설계되어 있었다. 리쳐드의 것이라고 하면 그만 고풍스러운 골동품과 같은 것을 연상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두말할 것 없는 억만장자의 요트였다.

“크기는 작지만 있을껀 다 있다구.”

리쳐드는 말했다.

“뭐 그럭저럭 된것 같네. 조금 사치스럽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이거 말고는 그렇게 돈을 쏟아부은 것도 없고 말이야, 무엇보다 나는 마음대로 편하게 돌아 다닐 수 있는 생활이 좋아서 말이지. 너도 분명히 좋아하게 될꺼야. 물론 크루들은 현지사람이 대부분이야. 항해사인 날 제외하면 말이지. 하지만 선장인 드리셰는 영어도 유창하고 집사인 비솝도 잘해. 술이든 뭐든 필요한 건 비솝에게 부탁하라고.”

리쳐드는 나를 떠밀 듯 배에 올라타게 하고, 사람좋은 얼굴을 한 땅딸막한 사내를 향해서 무슨 말인지 모를 그리스어를 짓껄였다. 땅딸보의 사내는 엄청나게 비만스런 몸뚱이를 멀쑥한 흰 제복으로 감싸고 있었다.

“이쪽이 선장인 드리셰야.” 하고 리쳐드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드리셰가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선장은 나를 크롬동과 두터운 녹색 유리로된 굉장히 모던한 실내의 작고 밝은 살롱으로 안내하고는 양손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비솝! 비솝!”

뽀글뽀글한 곱슬머리를 한 남자집사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비솝, 데미안님에게 칵테일을 드리도록. 그럼 저는 이만 실례 하겠습니다. 곧 출항할 테니까요.”

그는 인사를 하고 “천천히 쉬십시요.”라고 인사를 건네곤 선장실로 향했다.

나는 가져다 주는 칵테일을 마시고 비솝이 안내해주는 방으로 갔다. 그는 다시 기관사와 요리사 그리고 눈에 띄는 모든 승무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한참이 되서야 그런 인사들이 끝이 날 때 쯤에는 귓가에서 그리스어가 윙윙거리고 하나하나 영어로 적당한 인사말을 건내는 것에도 지쳐서 녹초가 되어있었다. 비솝은 건방지게도 나를 브릿지에 방치한 채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어때, 배는 마음에 들어?”

리쳐드는 다시 히죽 웃었다.

“그래 우리 충실한 승무원 일원들은 어땟나?”

그는 타륜(舵輪)을 잡고 있었다.

“좀 더 있으면 그들과 익숙해 질꺼야. 모두 하나같이 좋은 놈들이고 너한테 자신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어 주길 바라는 놈도 없으니까. 뭐든 필요한게 있으면 영어로 말하면 되고, 그 다음은 바라던게 올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면 될꺼야. 자, 여기가 피레우스 항이야. 눈 깜작할 세에 배는 해외로 나갈꺼야. 그러면 그 다음은 드리셰에게 맡기고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취미로 가끔씩 타륜을 쥘 뿐이니까 말이지.”

그때에 반쯤 썩어있는 듯한 신전과 같은 것이 눈에 뛰기에

“저건 뭐야?”

하고 물어 보았다.

“몰라. 게다가 니가 흥미를 가질 만한 것도 아니야.”

뜻밖에도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살롱에 가보면 니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역사, 지형학, 지리에 관한 책, 그리고 산더미 같은 철학책이 꽉차 있을거야. 아마도 별 흥미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 리쳐드 랑그레는 그런 남자였다. 타인의 의표를 찌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에 매력적인 힘이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그리스에 연관된 화제를 꺼내면 좋아서 달려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내가 ‘단촐한’ 점심을 예상한 것도 빗나가고 말았다. 실제로는 그 정반대의 것이었다. 호화로운 식탁에는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핑크색이 감도는 와인도 있어서 달고 강렬한 맛이 혀를 자극했지만 나는 그저 맛있다는 표현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스의 와인은 형편없어서 도저히 마실수가 없어라고 떠드는 놈들이 있지.”

리쳐드는 몸을 뒤로 젖히며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그 놈들’은 요식가라는 영국놈들이야. 하지만 이걸 한 상자 얻으려고 대금(大金)을 치루는 놈들도 적지 않을껄?”

그날은 그걸로 별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갑판 난간에 허리를 기대고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비추는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바다는 형형색색의 파랑과 녹색으로 변하고 공기조차도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듯 했다. 그렇게 매혹적인 광경은 그 후에도 이전에도 본 적이 없다. 때때로 바로 코앞으로 올록볼록한 작은 갈색의 섬들이 스쳐 지나갔다. 게중에는 푸릇푸릇한 나무에 뒤덮혀 듬성듬성 산양의 모습이 보이는 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바위산들이었다. 맹스피드로 지나가는 광경으로 보아 정말로 아테네에서 카르디아까지 50마일 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배는 목적지까지 직행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리쳐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꾸벅꾸벅 거리고 있자니 멀리서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한 두 번 언뜻 귓가를 스쳤다.

5시에 집사 비솝이 차(茶)를 가지고 오고, 그 후로 1시간 후에 배는 고렛시아 항에 닿았다. 육지에 내리자 마침 태양이 수평선 저쪽으로 잠기려 하고 있었다. 그런 황홀한 색체는 일찍이 접한 적이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색과 색들이 서로 녹아들어 일면에서 일렁이고 있어, 처음으로 그것을 접한 사람의 마음을 마약(痲藥)처럼 저리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위는 옅은 안개에 쌓여 있었다. 연안의 붉은 색을 띤 바위의 뒤편으로는 올리브가 무성한 완만한 경사의 사면이었다. 선착장 맞은 편에는 납작하게 지어진 푸른 페인트 칠을 한 어부용 오두막이 있었고, 선명한 원색의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한 타스 정도의 해적들이 커다란 귀걸이를 빛내며 우리들 일행을 맞아 주었다.

만(灣)의 수심은 샤른호가 직접 벽면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있었다. 마치 사우스햄프턴항에라도 닿을 것 같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연안에 정박을 했던 것이다. 해적들이 짐을 나르고 조랑말을 몇 마리 끌고와서, 금새 우리는 좁은 마을의 오솔길을 나즈막한 발굽소리를 내며 루리스로 향했다.

리쳐드의 집은 기탄(忌憚)없이 말한다면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섬마을 사람들이 이 집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훌륭하게 높이 뻗어있는 나무들 사이에 지어져 있다는 것이 그나마 좋은 점 이었다. 어차피 집만 본다면 런던 외곽에 팔려고 내놓은 허름한 집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낡은 것이었다.

“내 집이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지?”

여느때 처럼 이죽 웃으며 리쳐드가 말했다.

“이것도 다 너의 지긋지긋한 부르주아 정신 때문이겠지. 유서있는 아테네 시민은 회화(繪畵)를 사랑하는 노부인이 있었을 법한 고풍스런 낡은 저택에 사는게 어울릴거라고 말이야. 안그래? 왜? 내 말이 틀려?”

“뭐…. 나야.. 근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문명인들이 요구하는 전기, 수도가 들어오는 것 중에 이게 제일 싸게 먹혔거든. 게다가 이 마을 주민들은 이 집에 있고 싶어 안달인걸. 여기서는 욕조에도 들어 갈 수 있고, 맛있는 식사와 청결한 침대도 있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너도 내일이 되면 대망의 비문명적 위생상태를 수도 없이 보게 될 테니까. 유럽 문명사회의 모두가 주접을 떨면서 ‘풍류’라는 둥 말하는 물건들 말이야.”

하지만 리쳐드라는 놈은 결코 입이 더러운데 비해서 그리 나쁜놈은 아니었다. 그렇기는 커녕 나는 정말로 더할 나위 없는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이 집은 정말로 쾌적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이 집에 적응이 되었다. 보기에는 흉측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모두 잊고 말았다. 게다가 이곳의 요리사는 산양이던 닭이던 셀러드 든 간에 정말로 감탄할 정도로 맛있게 요리를 해 냈다. 얼마있어 나는 이곳의 고용인들이 모두 어떻게 해서든 주인을 기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를 들어 나의 구두는 예전에 보지 못했을 정도로 번쩍번쩍하게 광이 나도록 잘 닦여져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리쳐드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 외에도 이런 저런 작은 것에도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은 정말로 주위를 기울였다. 그것도 모두 리쳐드를 위해서였다.

물론 리쳐드는 그들을 부리는데에 있어 일종의 독특한 그리스 방언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그들을 이토록 완벽하게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도대체 리쳐드의 어떤 점이 이토록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어쩌면 내가 그에게 끌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리쳐드와 나는 사냥 비스무리한 놀이도 했다. 그것이 통상적인 수렵 시즌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혼자서 레몬 올리브 과수원, 포도 덩굴 사이를 한가로이 산보하기도 했다. 섬에서는 꿀벌을 기르고, 이상하게 생긴 밤나무과 나무의 재배도 왕성히 하고 있었다. 이것은 도토리를 따기 위함으로 리쳐드의 말로는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데 쓴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마디로 하자면 그것은 은연중에 그림과 같은 광경을 잘 짜맞춘 듯한 완벽한 ‘목가적 사회’ 였다. 원주민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적잖아 실망한 것은 자백해야겠다. 마음이 끌리는 여성은 모두 이미 결혼을 했고, 남편 이외의 남성에게는 웃음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유감이라고 할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쪽은 시간이 남아돌아 한가하기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리쳐드는 ‘그리스 신화와 그 기원’에 대한 ‘역사적 논문’을 쓰기에 바빠서 말라리아 따위 이미 고릿적에 낳았음에도 아직도 나를 병자 취급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적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에 대해서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그런다음 일람표를 만들어 보았더니 시모니데스, 프로디코스, 에라시스트라토스…. 솔직히 말해서 아주 살짝 지겨웠다.

그 후 나는 1800피트는 된다는 엘리아스산에 도전 했는데 개울에 빠져서 몸이 얼어 다시금 말라리아가 재발하는 처지에 노였다. 병세는 그다지 무겁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이 나는 지쳐있었다. 그제서야 리쳐드는 나의 존재를 떠올린 모양이다.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했어.”

리쳐드가 말했다.

“니가 나쁜 장난을 못치게 감시 했어야 했어. 우선은 그 열부터 내리게 하고 저기 잠깐 크루즈라도 즐기러 가도록 할까. 여행 가방을 챙겨두라고. 적어도 1주일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너의 휴가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여기엔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될지도 모를테니까. 가지고 온건 모두 챙기라고. 출발은 내일이야. 너에게 이 지구상 최고의 것을 보여주지.”

항해 중 지치도록 무더운 날은 없었고, 그렇다고 검게 흐린날도 없었다. 바다와 하늘은 시시각각 새로운 색체의 하모니를 연출했다. 단 하루도 어제와 같은 색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바람은 상당히 불어서 나흘째 밤에는 새벽녘까지 강풍에 날려 흘러다녔다.

그 다음 날 아침 1시경에 배는 어떤 섬에 당도했다. 왜 이런 조그마한 섬에 구태여 힘들게 온 것인지 괴이하게 생각했었던 듯 싶다. 그리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고 무릎이 쓸리게 풀들이 우거져 있고 뽀족한 바위 투성이로 곳곳에 자라다 만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섬의 한쪽은 모래사장이었다. 키를 잡고있던 리쳐드는 요트를 아슬아슬하게 해변에 닿게 하고 닻을 내렸다. 그 순간 승무원들이 왠일로 맹열한 기세로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가 소란스러운 민족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불이라도 난 줄 알았을 소동이었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말을 하는 모습이 참세때가 모여있는 것을 연상케 했다.

나는 살롱으로 후퇴해 벨을 울리고 비솝을 불렀다. 끈질기게 벨을 울려대자 이윽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스프가 필요하신지요, 잠시만 기다..”

“스프는 필요 없어.” 나는 서둘러 말했다.

“저건 무슨 소동이야?”

그는 망연히 서 있었다.

“도대체 저기 밖에 무슨 일이 난거냐구? 당신도 들릴꺼잖아.”

“아 예. 실례했습니다. 예, 누군가가 이 섬이 어디냐며 소란을 떨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고요. 그럼, 지금 스프를…”

“그러니까 스프는 됐다고!” 나는 소리쳤다.

“윽. 토나올라그래 오늘은 스프는 필요없어.” 리쳐드가 입을 가리며 모습을 나타냈다.

“오늘 아침은 기분이 꿀꿀한가보지? 스프를 거부한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잊은거야?”

“뭐야 넌 기분이 괜찮은가 보지?”

“여긴 어디야?”

그는 허리를 굽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금 막 말하려던 참이야. 이 섬은 만약 내가 맞다면 예전에 아르고스라고 불리던 곳일꺼야. 그 이름을 듣고 뭐 떠오르는거 없어?”

“그 아르고선(船) 일행(그리스의 전설로 황금 모피(羊毛)를 찾아 원정을 떠난 이야기)하고 뭔가 관계라도… .”

“아니 그것과는 완전히 무관계하지. 다른 거야. 아르고스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어디에나 붙여져 있었어. 하지만 내가 믿는 바에 따르면 여기야말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베었던 아르고스가 틀림없어.”

“그러면 머리카락이 뱀이고, 그것을 본 사람은 돌이 되어버린다는 그 여자를 말하는 거야?”

“그래 바로 그 부인이지.”

“하지만 너는 설마 진짜로 그런 괴물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그렇다고는 생각안해. 머리에 뱀이 우글거린다든가 석화된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나도 믿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메두사의 머리는 실재했어. 바로 의식용의 가면이었지. 그게 내가 주장하는 가설이야. 아마도 순금제로 대량의 보석과 조각으로 장식된 멋진 것이었을 꺼야. 그래 뱀이라는 것은 이 조각으로 된 뱀이었던 거야. 이 멋진 가면이 시인들의 공상을 부추겨서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거지.”

그는 여기서 한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 마스크는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비보 중의 비보였음이 틀림없어. 그런데 세리포스의 왕국이 망하면서 엉터리 ‘전설’이 퍼지고 사실을 덮어버리게 된거지!”

“근데 너는 사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건데?”

내가 묻자, 리쳐드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럴만한 사실을 알아냈거든. 게다가 만약 옛날 미신이라는 것에 일말의 근거라도 있다고 치면, 이 섬에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배가 여기에 도착한 이후에 저놈들이 극하게 흥분해 있는 건 봤겠지? 그들은 겁이 나는 거야. 이곳은 저주받은 섬이니까 말이야. 지금까지 이곳에 발을 디딘 사람은 없어.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았거든. 자,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 현 20세기 세상에서 키크라테스섬들 한가운데에 지도에도 없는 섬이 있고, 순진한 원주민 선원들은 이 섬을 본 것 만으로도 패닉이 되어버려….”

“그럼 너는 이제부터 어쩔 생각인데?” 나는 물었다.

“연안에 올라가 볼 생각이야. 니가 몸이 성한 상태라고 한다면 같이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바위가 험해서 힘들지도 몰라. 너는 배에 남아서 선원들이 너무 과민하게 굴지 않도록 지켜보고있어 줬으면 해. 다행히도 저들이 나를 잘 따라주니 망정이니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쯤 꽤나 소동이 벌어졌을 꺼야. 저 현대적인 남자인 그리셰 조차도 동요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더욱이 나를 밝은 얼굴로 배웅하라고. 곧 보트를 내릴꺼야. 사진을 찍던지 뭐든 해서 보통 때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보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샌드위치를 가져와야겠어.”

“공교롭게도 카메라를 챙기지 못했어, 리쳐드.”

“그럼 다른 걸로 뭐든 하도록 해봐.”

그는 금새 작은 아타셰케이스를 들고 돌아와 큰소리로 “비솝!”하고 불렀다.

“핑크 진을 두 잔 가져와.”

“예 지금 대령하겠습니다.”

리쳐드와 나는 그것을 마셨다.

“조심해.” 하고 나는 말했다.

“너는 메두사의 머리를 반사할 아테나의 방패도 없이 가는 거니까 말이야. 소문으로는 메두사라는건 엉청 무서운 여자라고 하니깐.”

그는 껄껄 웃었다.

“아테나의 방패라구! 도대체 어디서 그런 고전적 지식을 얻은 거야? 우리 고전 사서에서 본거야? 괜찮어 필요한건 이미 이 안에 다 있다구.” 하고 아타셰케이스를 두드려 보였다.

“샌드위치하고 물이 담긴 마법의 병 말이야.”

나는 갑판에서 몸을 내밀며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보기에도 떨고 있는 듯한 모양세로 노를 젓는 손이 서둘러 요트쪽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곧 드리셰가 다가왔다.

“용감한 분이세요.” 그가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섬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하고 내가 물었다.

드리셰는 떠는 듯 어깨를 웅크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단지 묘한 소문이 있어서요. 무지한 사람들이 지금도 믿고 있는 이야기지요. 절대로 이 섬에 발을 들여서는 안된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왜 온 거지?”

“이 섬을 찾아온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리쳐드가 돌무더기 산의 사면을 올라 풀이 우거진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깐 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아까도 말 했듯이 배는 연안의 바로 코앞까지 와 있었다.

“저 섬의 뭐가 그렇게 안 좋은 거야?”

리쳐드가 언덕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되물었다.

“왜일까?”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드리셰 선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식후에는 잠깐 졸고있었다. 5시경이 되자 리쳐드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신경이 쓰여 갑판에 올라가 보았다. 그러자 드리셰 선장이 여느때 보다도 더 위엄있는 태도로 커다란 배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술을 몇 잔 한 모양이었다.

“여어 선장.” 하고 내가 말을 걸었다.

“랑그레씨는 언제쯤 돌아 올려나?”

선장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3시간 정도로 돌아오실 예정이었는데요.”

“3시간이란 말이지. 벌써 3시간 반은 지났는걸. 마중할 보트는 보낸거야?”

선장은 한번 ‘힉’하고 딸국질을 하고 말했다.

“그게 랑그레씨의 모습이 힉 보이길 기다리는 중이올습지요.”

여기서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 빨리 보트를 내려.” 하고 큰소리로 확실하게 명했다.

“내가 해안으로 내려가 보지!”

드리셰가 의미불명의 명령을 선원들에게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여행가방에 들어있던 권총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방을 나서려 했을 때 비솝과 마주쳤다.

그는 뭔가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비솝, 랑그레씨의 귀환이 늦어지는 모양이니까 내가 찾으러 갈 생각이야. 저기 바위 산 쪽은 상당히 험한 모양이니까 발목을 삔 것일지도 몰라. 같이 가 보자고.”

비솝은 멀뚱한 눈으로 입술을 낼름거렸다. 그리고 조금 뜸을드려 대답을 했다.

“예… 준비를….”

나는 비솝을 따라서 갑판에 올랐다.

배는 육지에서 멀지 않았으므로 보트에 오르자 눈 깜작할 사이에 이미 뜨거운 모래사장 위에 서 있었다. 비솝은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나를 따라 나서 주었다. 내가 잠시 멈춰서게 하자 그는 잠시 밝은 얼굴을 해 보였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 하고 나는 말했다.

“작은 섬이니 30분 쯤이면 돌아 올 수 있겠지. 어쩌면 여기서도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는걸.” 하고 큰 소리로 리쳐드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울림은 허무하게 사라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 좋아, 만약 도움이 필요한 거라면 이 권총으로 신호를 할테니까.”

나는 권총을 꺼내 보란듯이 흔들었다. 보트의 선원들이 일제히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것을 보고 나는 어떻게든 용기를 내었다.

산등성이를 따라서 난 작은 길이 보이고 그 길로 리쳐드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조금 나아가자 굽은 길이 나와 뒤를 돌아보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느라 이쪽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잠시 나아가자 요트도 보트의 선원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좁은 길은 계속 되었다. 길은 확실히 보였는데 점점 지면이 단단한 암석이 되더니 리쳐드의 발자국이 뚝 끊겨 없어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듯한 형국이었는데, 얼마나 더 가야 해안 쪽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다보니 앞의 커브를 돌자 기역자로 구부러진 시든 나뭇가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순간 비틀거리다 발끝에 이상한 느낌의 것이 걸렸다. 처음에는 버려진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그리스 미술 초기의 조잡한 작품이다. 그러다 이것은 화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그것은 화석이었다. 회색의 거대한 돌 개구리 같았고 상당히 마모되어 있었다. 몸통과 손, 발을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감을 줄 정도로 너덜너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려 했을 때, 나는 문득 앞쪽에 사람의 키 만큼의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길은 거기서 끝이 나 있었다.

처음은 사방이 어두웠다.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그 구멍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차츰 어둠에 적응이 되었다. 좌우에 깎은 듯한 벽이 버티고 정면에는 희미한 빛이 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서 대 여섯 번 큰소리로 “리쳐드!”하고 외쳤다. 메아리가 울릴 뿐 대답은 없었다.

급히 신경이 쓰여 총을 확인하고 나는 조금 힘이 나는 듯 했다. 조금 더 나아가자 양쪽 벽이 한결 넓어지고 주위가 확 밝아졌다. 리쳐드는 그곳에 있었다.

위를 보고 쓰러져있는 그의 옆에는, 지금은 주인을 잃은 샌드위치가 들어있는 아타셰케이스가 그 입을 헤 벌린체 나뒹굴었다. 리쳐드는 한쪽 손은 옆으로 늘어뜨리고 다른 한쪽 손은 이마에 올려 마치 햇살이라도 가리듯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는 눈도 얼굴도 팔도 없었고 모든 것이 돌로 변해 있었다. 내가 거기서 본 것은 새하얀 천을 둘둘 말은 석고로 된 인체 모형과 같은, 그런 납작하게 눌린듯한 이미지 밖에 느끼지 못했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단지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머리가 텅빈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나는 문뜩 바로 옆에 여기 있을 물건이 아닌 것이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울이다. 리쳐드의 선실에 걸려있던 것이 틀림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 보자 동굴의 천정이 점점 갈수록 좁아지며 아주 깊숙한 곳에서 밝은 지상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데… 거기에는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죽은 자의 머리였다. 심하게 부식되어 양쪽 눈도 없으며 살도 녹아내리고 이도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살아 있었다. 흉측한 얼굴을 한데다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것에는 눈과 혀가 걸려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해 눈알을 돌리려는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거미줄인지 말라버린 뱀인지 모를 것들이 흔들리며 ‘식식’하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생명이 타들어 가는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정신없이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뒹굴고 넘어지며 비탈길을 뛰어 내달려 보트로 돌아가는 내내 비명이 멈추지 않는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이 들자 요트의 침대에서 비솝이 나를 도와 몸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었다.

“당신은 병이 들었어요. 항구로 데려다 드리도록 주인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나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내다 보았다. 어느 틈엔가 아테네로 돌아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기침을 하며 갑판에 오르자 비솝이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었다. 짐은 이미 바로 앞에 사다리 부근에 쌓여 있었다.

“그리셰 선장은?” 하고 내가 물었다.

“연료를 보충해야 해서요. 그리고 다시 출항할 겁니다. 그럼 안녕히.” 그것이 비솝의 대답이었다.

어디를 보더라도 그 당시의 나는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재정신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경찰서 안에 있었다. 술주정뱅이로 오해를 받은 것이다. 그 후에는 나는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영국 공사에 연락을 하고 경찰의 높은 분에게도 연락을 했다. 하지만 누구하나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계속 한다면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것이란 것을 알고 눈물을 머금고 포기를 했다.



무슨말로 하더라도 아테네에서 인도까지의 길은 멀었다. 그 몇 주 동안 실업을 당할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현지에 남아 조사에 돈을 쏟아 부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 요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무사히 일터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리쳐드 랑그레의 죽음은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으며, 그가 죽음으로서 슬퍼할 귀족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일이 있어도 된단 말인가? 내가 사랑했던 친구인 리쳐드는 정말로 그리스 신화속 고르곤의 자매들에게 살해된 것일까? 그 키쿠라테스의 어딘가에 존재해서는 안될 섬이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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