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9. 끝의 시작(2) 꿩 사냥

fiction-google 2024. 3. 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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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직 쓸 만 하더냐?"

컨테이너를 살피러 갔다 돌아오는 진우에게 덕배 아버지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덕배 아버지는 마당에 나와 지게를 고치고 있었다.

", 청소만 하면 되겠던데요?"

"그래? 내 그걸 처음 봤을 때는 뒤집혀 있었니라. 놈들이 무엇을 찾는지 바닥도 다 파헤쳤더구나. 그걸 사람들을 사서 다시 제자리에 앉혔지. 꼬박 열 품이 들었느니라."

"찾다니요? 뭘 찾으려고 땅까지 팟을까요?"

"난들 자세히 알겠느냐마는 죽은 사람이 건달패였다니까 아마 돈되는 물건을 숨겼던 게지. 그런 패거리야 돈에 죽고 사는 놈들이니 그런 행패를 부렸을 게고. ."

"그래서 찾긴 찾았답니까?"

"허허, 거기까진 나도 모르지. ? 못 찾았으면 네가 보물찾기라도 할 테냐?"

"웬 걸이요. 제게 그럴 재주나 있나요."

진우는 돈이란 말에 쓸데없는 호기심이 또 발동하려는 자신을 발견하자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돈이란 말만으로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이 한심했던 것이다. 덕배 아버지는 그런 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이 사는데는 돈이 다는 아니다마는 꼭 필요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느니. 그렇다고 너무 돈돈 할 것 없니라. 돈이란 죽자고 쫓아 다닌다고 해서 꼭 얻는 것도 아니야. 너만 해도 그렇지. 애써 모은 돈이 네 마음대로 되더냐? 돈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그러니라. 재주만으로도 안 되고 노력만으로도 안 되느니. 재주와 노력이 자신의 운수와 맞아떨어져야만 뭐가 되어도 되느니라. 복권이 재주와 노력만으로 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봤느냐? 순 운수 아니냐? 그렇다고 사지도 않은 복권이 맞을 운수 역시 없지 않으냐? 그러니 노력과 운수가 서로 맞아 줘야하지 않겠느냐. 허나 사람이 살다보면 우연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어늘......까짓 거 멀리 보고 즐겁게 살거라."

"면목 없습니다. 아버님. 앞으로 그렇게 살겠습니다."

"그래,    , 거기 밥해 먹을 그릇이나 제대로 있더냐?"

"그릇은 봤습니다. 헌데 밥을 할 부스타나 곤로는 없던데요? , 뒷 쪽에 연탄난로와 연통은 있더군요".

"그럴게다, 일꾼들이 쓸 만한 것들은 죄 다 갖고 가버렸을 테니 말이다. 이따 덕배에게 전화 오면 몇 가지 사 오라고 해야겠다. ? 마침 전화가 왔구나. 덕밸 게다."

젊은 진우는 듣지 못한 방 안의 전화 벨소리를 백세 가까운 노인이 먼저 들은 모양이었다. 노인이 마루로 다가가자 방안에 있던 덕배 엄마가 먼저 방문을 열고 전화기를 내 밀었다.

"덕배예요, 당신 말고 진우를 바꾸래요."

"알았소. 진우야 받아 보거라."

성큼 다가간 진우가 두손으로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음 바꿨다."

"너 지난번 그 시간에 그리로 좀 나와야겠다."

거두절미한 덕배의 말이었다. 길게 묻고 답할 상황이 아님을 진우도 알아 챘다.

"알았다."

전화기를 귀에서 떼면서도 혹시 좋지 못한 일은 아닐까 싶어 긴장이 되었다. 허나 덕배 아버지의 말씀대로 미리부터 마음 졸일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달랬다.

"무슨 말들을 그리 싱겁게 끝내니?"

문턱에 팔을 고인 덕배 엄마가 궁금한 듯 진우를 향해 눈으로도 묻고 있었다.

", . 이따 저 아래로 좀 내려오라 하네요."

"사흘 전에 왔다 간 놈이 왜 또 올꼬?"

"글쎄요. 제게 할 말이 있나보지요."

"올 일이 있으니 오겠지. 보세요. 덕배 아버지, 나 좀 부축해 줘요. 오랜만에 마당을 좀 걸어봐야 되겠어요. 먹고 가만히 있으니 속이 더부룩 해요."

문틀을 집고 일어나는 덕배 엄마를 진우가 마루로 성큼 올라와 팔을 잡았다. 진우 엄마는 불안정한 걸음으로 마루로 나오자 덕배 아버지가 신발을 찾아 신겼다.

"아직은 혼자 걸을 수 있소?"

진우와 덕배 아버지가 양편 팔을 부축하려 하자 덕배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한발 한발 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느리고 불안정한 걸음이나마 부축할 정도는 아니었다.

"허허, 덕배가 갖다준 약이 효험이 있는 모양이요. 임자 걸음이 훨씬 좋아졌소그려."

"영감이 보기에도 정말 그래요? 내 생각에도 다리에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요 근래에 더욱 상태가 악화되던 덕배 엄마였다. 그러던 분이 덕배가 다녀가고 사흘만에 이렇게 호전되다니? 진우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래 덕배 엄마가 저 정도나마 잘 걷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약인지 신통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곧 쾌차 할 것 같습니다 덕배 어머니."

"말만 들어도 고맙다."

미소를 지으며 덕배 엄마는 계속 원을 그리며 마당을 돌고 있었다. 그러나 지게를 밀쳐 놓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는 덕배 아버지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걸으시요."

"염려 말아요. 그러고 있으니까."

","

덕배 아버지가 혀를 차며 외면을 했다. 그리곤 지게를 당겨 손질을 계속 했다. 진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만히 바라보았다. 덕배 아버지의 표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겉으로 표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쨋던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 아버님, 아침에 저 아래 옥수수 밭 자리에 떼 꿩이 앉았던데요."

진우가 화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나도 장끼들 우는 소리는 들었니라. 말난 김에 몇 마리 잡아다 저녁꺼리 반찬이나 해 볼까?"

사냥꾼으로서의 덕배 아버지 반응은 역시 빨랐다. 떼 꿩 얘기에 금방 진우를 돌아보며 빙긋 웃음을 지었다.

"탄환은 있으십니까?"

"십여 발 남았을 게다."

노인은 웃음 띈 얼굴로 손보던 지게와 연장을 들어 벽에다 세워놓았다. 그리고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낡은 총가방을 들고 나왔다.

"하하, 아버님, 이 가방을 이십여 년만에 다시 보게 되었군요."

보는 순간 단번에 당시의 오발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가방이었다. 아울러 덕배와 함께 철없이 뛰어놀던 그때가 왈칵 그리웠다.

"허허, 이제사 웃음이 나나 보구나 그때 아주 혼 줄이 났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귀가 먹먹합니다. 얼마나 소리가 크던지 원..."

", 좁은 방안에서 방포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있느냐? 귀청이 나가지 않은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느니라."

덕배 아버지와 진우가 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에 빠진 모습을 본 진우 엄마가 두 사람이 앉은 마루로 다가왔다.

"총은 뭐 하려고 꺼냈수? 얘가 또 놀라게?"

진우를 바라보는 덕배 엄마 역시 그때를 생각한 모양이었다.

"허허, 자라보고 놀랜 놈 솥뚜껑에도 놀랜다는 격인가? 아직 해가 많이 남았으니 꿩이나 몇 마리 잡아 올 테니 임자는 마루에 좀 앉아 있으소. 추우면 방으로 들어가고."

"오늘은 살만 해요. 내 걱정 말고 다녀 오시요. 진우도 따라가 구경 하거라."

"그러지 않아도 그럴 참이요. 진우 너는 이걸 들어라."

", ."

덕배 아버지는 벽에 걸린 망태기를 내려 진우에게 내 밀었다. 사냥한 꿩을 담을 망태였다. 칡껍질로 엮어 만들어 질기고 가벼워 메기에도 좋았다.

"이왕 가시는 김에 서너 마리 잡아 오시우. 무우 넣고 시원하게 꿩국을 끓일 테니까."

"허허, 잡을지 못 잡을지도 모르는데 미리 국을 끓이면 어떻하오?"   

"못 잡으면 할 수 없지 어쩌겠소...."

"멀지 않은 곳이니 금세 올 거요."

그 사이 총을 결합하고 탄약을 몇 발 챙긴 덕배 아버지는 삽짝으로 향했다. 망태를 걸머진 진우도 그 뒤를 따랐다. 덕배 아버지는 노인답지 않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서고 있었다. 진우도 그동안 산길에 익힌 걸음을 시험하 듯 뒤를 좇았다. 머리 위로 햇살이 따사로운 청명한 오후였다. 가까운 곳에서 가랑닢을 밟는 소리와 함께 겁없는 고라니 한 마리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님, 꿩 잡는 총알로 저런 고라니도 잡을 수 있습니까?”

진우가 덕배 아버지의 등을 보며 물었다. 그러나 덕배 아버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갑자기 보폭을 줄인 덕배 아버지가 되물었다.

"뭐라 했느냐? 꿩이 어쨋다고?"   

"꿩 총알로 고라니도 잡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글쎄 가까운 곳에서 쏘면 죽겠지. 허지만 오륙십 보를 넘기면 급소가 아니면 단번에 죽진 않을 게다. 그래서 총알을 짐승에 따라 달리 쓰니라. 보통 사냥꾼들은 고라니 사냥에는 비비탄을 쓰고 꿩은 5호탄을 많이들 쓰지."

"5호 탄이라면 5자가 탄환에 쓰여 있습니까?"

"그렇지. 겉에 찍혀 있니라."

"그럼 72분지 1 이라고 쓰인 탄약은 뭡니까?"

"뭐라? 그거는 사냥용 탄환이 아니지 않느냐?"

"? 사냥용이 아니라구요? 분명히 빨간색의 엽총 탄환이었는데요?"

진우는 열차에서 주운 탄약에 쓰여 있던 글씨가 71/2 이였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7호 반이다. 사격장에서 연습으로 쏘는 총알이니라. 보통 9호를 많이 쓰는데 작은 납 알갱이가 수백 개나 들어 있니라. 헌데 너는 어디서 그런 걸 보았느냐?"

덕배 아버지의 반문에 진우는 뭐라고 할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어쩔 것인가? 진우는 잠시 망서렸다. 탄약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상 믿고 의지하는 덕배 아버지에게만은 사실을 털어 놓고도 싶었다.

"그게 말입니다. 실은..."

진우는 처음 이곳을 내려오던 날 열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그리고 며칠 전 덕배에게 들은 총알의 정체를 설명하자 덕배 아버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참말이냐?"

"? 아 예. 사실입니다. 덕배가 엉터리없는 소리를 할 녀석이 아니잖습니까?"

"탄약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차에서 만난 그놈들이 널 좇았다는 것이 분명한가 말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놈들은 빚쟁이가 아니라 그 총알을 찾으려는 놈들 아니겠느냐? 네가 주웠다는 그 총알에 보석이 들었다는 말이 틀림없겠구나."

"게다가 대부업체에서 내려온 김 뭐라는 놈이 총알 찾는데 가세를 했나 봅니다. 그놈은 형사 출신인데 악질로 소문이 났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 듯 노인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진우도 걸음을 늦추었다.

"그래, 그 총알을 어쩔 생각이냐?"

"지긋지긋한 생각에 돌려주려 했더니 덕배는 그러지 말라더군요......아버님은 어찌 생각 하시는지요?"

"내 생각에도 좀 더 두고보는 것이 좋겠다. 지금와서 돌려 준데도 반가워 할 놈들이 아닌 것 같구나. 그럴 바에야 갚아야 한다는 네 빚을 해결한 뒤에 돌려줘도 늦지 않다."

"그러다 더 꼬이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하는 일마다 쉽게 풀리는 것을 못 봤거던요"

"허허, 그러게 내가 뭐라더냐. 노력도 운수와 맞아떨어져야 결과가 얻어진다지 않더냐? 살다보면 우연이란 것도 있다고 했지? 봐라 네게도 우연이 따르지 않느냐? 화가 될지 복이 될지 아직은 모르는 우연이긴 하다만..."

"복이야 바라겠습니까? 놈들에게 쫓기는 화만 없어도 살만 하겠습니다."

현재로선 쫓기지만 않는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돈만 해도 그렇다. 처음도 지금도 빈손인데 무엇에 더 연연할 것인가? 다시 시작하면 될 터였다. 처음 서울로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외롭고 막막하던 처지였고 그 생활을 8년이나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혈육 같은 친구와 든든한 노인네가 있지 않은가? 덕배 아버지가 어깨에 메었던 엽총을 내렸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왔던 옥수수 밭이 가까웠다.

"덕배도 몸을 조심해야겠다. 놈들이 널 찾다 못 찾으면 반드시 덕배를 연관시킬 게다. 이따가 밤에 덕배 만나거든 신변에 특별히 신경을 쓰라 이르거라. 알겠느냐?"

", 아버님. 허지만 누가 덕배를 어쩔려구요. 덕배 건드리다가 맞아죽게요?"

"호랑이라고 조심하지 않는 줄 아느냐? 힘이 셀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니라."

할 말을 잃은 진우는 떼 꿩이 앉았던 자리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꿩은 커녕 멧비둘기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허기야 아침나절에 내린 꿩이 아직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많던 꿩이 한마리도 없네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조용히 하거라. 햇살이 포근하니 분명 가까이 있지 그늘로 가지는 않았을 게다. 옳지, 그럴 줄 알았다. 너는 저기 보이는 낫가리들을 빙 돌아서 가거라. 소리를 내지 말고 조심해서 다가가서 내가 총구를 하늘로 처들거든 낫가리에 돌맹이를 던지거라."

진우는 덕배 아버지가 이르는 대로 두말 없이 낫가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 가기 시작했다. 매보다 밝은 눈과 누구보다 빠른 판단력을 가진 노인 아닌가? 아직 꿩들이 낫가리 주위에 모여 대궁에 붙은 작은 알갱이를 찾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백여 미터를 돌아서 목표로 했던 낫가리로 슬그머니 방향을 바꾸었다. 십여 보쯤 다가갔을까? 갑자기 진우의 발밑에서 와작 하는 큰소리가 났다. 바싹 마른 옥수숫대를 밟은 것이다. 순간 아차 할 사이도 없이 수십 마리의 떼 꿩이 놀라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요란한 날개 소리와 어지러운 광경은 마치 태풍에 함석지붕이 날아가는 것과 같았다. 덕배 아버지가 신호를 보낼 때 날려야 할 것을 그만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진우의 걱정도 순간이었다. 꿩들이 놀라 일제히 비상하는 순간에 맟추어 연속 두 방의 총소리가 난 것이다. 동시에 공중에서 깃털이 풀썩 날리는 것이 보였다.

'맞았다.'

진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어서 일이 초도 안 되는 사이에 다시 두 방의 총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숨어 있던 또 한사람의 엽사가 쏘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동 엽총이 아닌 한, 연속 네 발의 총성이 울릴 수 없지 않은가? 덕배 아버지의 총은 쌍대 엽총이라 두발의 탄약 밖에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낫가리로 뛰어간 진우는 이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덕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덕배 아버지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고개를 갸웃하고 일단 떨어진 꿩을 찾기로 했다. 추수를 끝낸 밭자리여서 포획물은 쉽게 발견되었다. 장끼로만 네 마리 였다. 총알 네 발로 네 마리의 꿩을 떨군 것이다. 그것도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가운데 장끼만 골라서 쏜 것이다. 진우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이해가 가지 않는 놀라운 결과였다. 진우는 덕배 아버지를 향해 양손에 든 꿩을 높이 쳐들어 보였다.

"근래 보기드문 떼 꿩이로구나. 그새 꿩 숫자가 많이 늘었나보다."

"그런데 어떻게 쏘신 겁니까? 그 총엔 탄환이 두 발 밖에 없는데 어떻게 네 마리를...."

"재 장전하는 시간을 줄이면 열 마린들 못 잡겠느냐?"

"재장전이 아무리 빨라도 그 사이 꿩이 사거리 밖으로 날아가 버릴 텐데요?"

"허허, 잘 봤다. 그래서 사거리를 약간 벗어나도 맞힐 수 있는 꾀가 몇 가지 필요하지."

노인이 느긋한 음성으로 진우를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진우는 어깨에 맨 망태를 내려 꿩을 담고 있었다. 장끼는 한결같이 살이 올라 있었다.

"재장전을 빨리하는 비법 말입니까?"

"그건 연습을 통해 익혀야지."

"또 다른 비법은 없습니까?"

"허허, 또 호기심이 발동하느냐? 나머지는 경험에서 오는 일종의 요령이겠지. 사거리를 늘리려고 쵸크도 쓰고 남들이 5호 엽탄을 쓸 때 나는 2호를 고집하니라."

"쵸크란 또 무엇입니까?"

"총이 발사 될 때 납알갱이들을 너무 퍼지지 않게 하는 장치니라."

노인은 손으로는 총구를 가르키며 동시에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진우도 꿩이든 망태를 어깨에 메었다.

"그럼 5호탄과 2호탄이 사거리와 연관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있지. 5호탄은 납알갱이 숫자는 많으나 크기가 작아 멀리 나가지 못하나 대신 사거리 안에서는 명중율 또한 높지. 반면에 2호탄은 구슬 수는 적어도 크기가 좀 더 커서 상대적으로 사거리가 약간이나마 늘어나지. 예를 들어 좁쌀 한줌과 콩 한줌을 힘껏 던진다면 어느 것이 멀리 가겠느냐?"

"그야 콩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와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네가 오발 사고를 낸 탄환이 바로 2호 였느니라."

오발 사고 얘기가 나오자 비록 지난날이긴 하나 진우로서는 새삼 계면쩍고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아울러 그때 천정에 뚫렸던 커다란 구멍과 매캐한 먼지 냄새가 떠올랐다.

"도대체 탄환 안에는 구슬이 몇 개나 들었기에 그렇게 큰 구멍이 났을까요?"

"2호니까 알갱이가 백여 개는 될게다."

"그럼 5호는 더 많이 들었겠군요?"

"두 배쯤 들었지. 허나 2호 밑으로는 쏴 본 적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겠구나."

", 그 후에 총기 소지 허가는 받으셨는지요?"

그 후라면 진우가 오발 사고를 냈을 때 엽총을 경찰에게 뺏긴 일을 말함이었다. 덕배 어버지는 그 말에 웃음 띈 얼굴로 슬며시 진우를 돌아보았다.

"허가? 일 년 내내 경찰서에 영치를 해라마라 해서 귀찮고 번거로워 하지 않는다. 범이란 놈이 내가 총을 찾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온다더냐? 총이란 내게 있어야 쏠때 쓸 수 있는 것인데 남에게 맡겨 놓은 총이 무슨 소용이냐?"

"그래도 법이..."

"? 너는 법이 없어 밤낮 쫓기느냐? 얼핏 생각에 법이란 약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못 하느니. 법은 오히려 강한 자에게 날개 구실을 하느니라. 너도 세상을 좀 더 살아보면 알게 될 게다"

어쩌면 노인의 말이 맞는 말씀일지도 모른다고 진우는 생각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거의 약자에 속한 사람이 아니던가? 지위가 높을수록 법을 등에 엎고 횡포를 부리게 마련인 세상인 것이다. 캐시콜뱅크라는 고리대금 업체만 보아도 그랬다. 법을 교묘히 이용한 고리의 이자 계산법으로 수많은 약자의 피를 빨고 있지 않은가? 법이 없어 약자가 당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나마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법은 가난한 자의 친구가 아닌 것이다.

"꿩 만두가 맛있다고 하더군요. 사실입니까?"

"뭐라?"

갑자기 바뀐 화제에 앞선 덕배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책에서 봤는데 옛날 사람들은 꿩으로 만두를 해 먹었다 하던데요?"

진우가 다시 화제를 이으려 했다. 골치 아픈 캐시콜뱅크를 잊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꿩 만두야 옛날 사람만 먹었겠느냐? 꿩고기가 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겠지."

"꿩 만두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 꿩 만두가 먹고 싶은 게냐?"

", 아닙니다. 책에서 꿩 만두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나서지 먹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옛 말에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지? 그건 닭이 귀하던 시절에 나온 얘기니라. 사실은 닭대신 꿩이라야 맞는 말일 게다. 꿩은 기름기가 적어 맛이 담박하다는 것을 빼면 맛은 닭보다 못하니라. 꿩뿐 아니라 무릇 야생 짐승은 사육한 가축에 비해 비린내와 누린내가 진하고 맛은 떨어지니라."

"멧돼지 구이는 집돼지보다 맛있다던데요? 값도 비싸구요."

"요즘 세상에는 가축은 흔하고 야생 짐승이 귀하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 귀하면 비싸기 마련이고 맛나보이는 법이니라. 허허."

노인은 올 때처럼 갈 때도 쉼없이 걷고 있었다. 걸음새도 가뿐가뿐하여 전혀 백세에 가까운 노인 같지 않았다. 진우 역시 산속을 몇 달간 쏘다닌 보람이 있어 그 뒤를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보았는지 앞섰던 노인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진우도 따라 우뚝 설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덤불 뒤로 슬며시 몸을 숨기며 낮게 일렀다.

"몸을 낮추거라."

"............?"

진우는 급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영문은 알 수 없으나 노인의 태도에서 이상한 긴장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덤불 사이로 어느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는 노인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냥으로 단련된 노인의 눈에 커다란 멧돼지라도 걸려들었으리라 짐작했다. 꿩이라면 잡을 이유가 없을 것이고 토끼나 고라니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

덤불 뒤에서 몸을 이르킨 노인의 눈은 조금 전의 사냥터 윗 쪽을 향하고 있었다. 진우도 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밭 끝자락 나무들 사이로 사람의 머리가 얼핏 보였다 사라졌다. 제법 먼 거리였으나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제가 온 뒤로 이 산에서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인데요? 총소리를 듣고 온 산림청 사람들일까요?"

"그럴리가 없다. 두 사람 중 한사람은 양복을 입었더라."

"? 두 사람이라구요? 저는 한 사람 밖에 못 봤는데요?"

"둘이다. 헌데 저들이 온 방향을 거슬러 간다면 어디 쯤이겠느냐?"

"?.....그러니까...., 아버님, 저 산기슭을 돌아가면 컨테이너가 있는 곳 아닙니까?"

은광을 드나드는 놈을 발견했을 때 처럼 진우의 가슴에서 또 한 번 쿵 소리가 났다.

"잘 봤다. 세상이 아무리 태평하고 치안이 잘되어 있어도 이런 산중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범을 만나는 것과 같으니라. 하물며 저런 복장으로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정신이 온전치 못 하거나 수상한 인물이기 십상이니 더 조심해야지."

노인의 말을 듣고보니 가득이나 피해 의식에 젖어있던 진우로서는 약간 찜찜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님, 설마 저를 찾아다니는 놈들은 아니겠지요?"

"그렇기야 하겠냐만 은광도 그렇고 어쨋던 근자에 없던 일이다."

진우는 땅에 내려놓았던 꿩 망태를 다시 어깨에 메고 먼저 앞장을 섰다. 노인도 엽총을 어께에 올리고 진우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득 다시 제자리에 섰다.

"가만, 좀 돌더라도 네 콘테나를 둘러보고 가자꾸나."

"? 청소는 내일쯤 시작하려는 참이라 지저분 할 텐데요?"

"아까 그 사람들이 영 께름칙하구나. 그리고 덕배 에미가 저 정도나 될 때 가봐야지 언제 가보겠느냐?"

노인이 방향을 연초 건조장 쪽으로 잡아 성큼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진우는 이미 아침에 갔다온 곳이었으나 할 수 없어 망태를 추스르며 부지런히 뒤를 좇았다. 십여 분쯤 후에 잡초 밭 가운데 지붕이 무너진 연초 건조장이 보였다. 노인은 곧바로 건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버님, 컨테이너는 저쪽 아닙니까?"

노인은 진우가 이르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마른 잡초를 헤치며 나아가더니 건조장 못 미처 걸음을 멈추었다.

"네가 본 개 무덤이 이 근처냐?"

다가서는 진우에게 노인이 물었다.

"개 무덤이요? , . 바로 저기쯤 있습니다."

진우는 손을 들어 방향을 가르켰다. 노인이 풀을 헤치며 그 쪽으로 향했다. 불과 십여 보 앞에 나무 십자가와 풀에 뒤덮힌 흙무더기가 있었다. 십자가의 글자와 무덤을 눈으로 대강 훑어 본 노인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듯 잡초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컨테이너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였다.

", 아버님. 컨테이는 안 보시고 그냥 가시게요?"

진우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컨테이너를 둘러본다던 노인이 얼토당토 않게 개를 묻은 곳만 보고 돌아서니 말이다.

"됐다 그냥 가자. 저건 나도 보지 못하던 무덤이 확실하구나. 풀밭 가운데에 있어 못 본 것이겠지."

"그걸 확인 하시려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 개무덤이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는지요? 사람과 달리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파 옮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여기 있을 테니 너만 얼른 콘테나로 가 보거라. 보나마나 자물쇠는 뜯겼을 것이다. 아까 그 사람들이 안팍을 죄다 뒤졌을 게다. 허나 까짓 가져갈 만한 것이 뭐 있겠느냐?"

망태를 내려놓은 진우가 단숨에 컨테이너를 향해 뛰어갔다. 노인의 말대로였다. 컨테이너에 미쳐 다가가기도 전에 주위의 마른 잡초들이 밟혀 어지럽더니 문의 손잡이 밑에 달렸던 자물쇠는 경첩 자체가 망가져 있었다. 진우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정을 누르고 문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침에 대강 모아 쌓아두었던 물건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지고 비닐장판도 뒤집어져 있었다. 진우는 얼른 문을 닫고 덕배 아버지가 기다리는 곳으로 다시 뛰었다.

"아버님 말씀 그대롭니다. 경첩을 뜯고 들어갔더군요. 물건도 흩어지고요. 양복을 입고 여기까지와서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요? 은광에 침입했던 놈들일까요"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없이 돌아섰다.

"아버님, 그놈들은 뭘 하는 놈들일까요?"

노인은 진우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진우도 머쓱한 기분이 들어 말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침묵이 계속 되었다. 땅만 바라보며 걷는 노인의 뒷모습이 분명 무언가에 골몰한 것 같았다. 이윽고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제야 노인이 뒤돌아서 진우에게 입을 뗏다.

"밤에 덕배를 만나거던 3년 전 이 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때 죽은 사람의 신원을 알아봐 달라고 해라. 그때는 덕배가 감옥에서 나오기 전이라 잘 모를 수도 있다만 알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허고 내가 그러더라는 말은 하지 말거라. 늙은이 노망으로 알라."

", 언젠가 아버님이 말씀하신 그 사건 말이군요. 손발이 묶여 타살 되었다던......"

노인은 집의 삽짝을 들어설 때까지 말이 없었다. 마당을 거닐던 덕배 엄마는 댓돌에 신발이 있는 걸로 보아 방으로 다시 들어간 듯했다. 인기척을 하자 방문이 열리고 덕배 엄마가 내다보았다.

"어머님 살찐 놈으로 네 마리나 됩니다. "

"아이고, 많이 잡았네. 그럴 줄 알고 솥에 물 끓여놨소. 영감은 털만 좀 뽑아주시요."

덕배 엄마가 반가운 얼굴로 마루로 다시 나와 앉았다. 진우는 망태에서 꿩을 꺼내 부엌 앞에 갖다 놓았다.

"? 털을 뽑아주면 국은 임자가 끓이겠단 거요? 그러지 말고 임자는 방에 들어가 있으시요. 국이던 밥이든 내가 할 터이니..."

"꿩 탕이야 평생을 끓여 댄 내가 전문가 아니겠소? 진우 너는 어찌 생각하니?"

", . 어릴 때 덕배랑 같이 몇 번 먹어 본 기억이 납니다. 엄청 시원한 맛이었지요. 그때 그 국이라면 어머님이 끓이신 걸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습니다만..."

진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덕배 엄마의 얼굴이 밝아지며 화색마저 도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덕배 아버지 역시 빙긋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것 보시우. 쟤도 내가 끓인 게 맛있었다 하지 않소?"

"허허, 누가 뭐래나? 그럼 그러시오. 나도 오랜만에 임자가 끓인 꿩 탕을 맛본다면 황감할 뿐이지 어찌 객쩍은 소리를 더 늘어놓겠소?"

"꿩 손질이 끝나거든 묻어둔 무우나 두어 개 꺼내 줘요. 그 다음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덕배 엄마는 실로 얼마만에 부엌으로 나와 칼질을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밥과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는 그날 저녁의 덕배 엄마는 마치 고지를 재 탈환한 연대장 처럼 의기가 양양 했다. 땔감을 날라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을 도우던 덕배 아버지는 그런 아내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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