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5. 덕배 아버지(2) 옛날 이야기

fiction-google 2024. 3. 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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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배 아버지 곽순도씨의 고향은 동해안 울진이었다. 1919년 삼일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죽자 큰형의 집에서 자랐다. 큰형은 동생이 열 살이 되자 새경 없는 머슴으로 남의 집에다 주어버렸다. 밥만 간신히 얻어먹으며 죽도록 부려먹히던 곽순도는 열여섯 살이 되는 해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갈곳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덩치가 컷던 그는 공사판을 찾아갔다. 그 때부터 몇 년간을 전국의 공사판을 전전했다. 공사판 인부가 묵는 합숙소에는 날마다 노름판이 벌어졌다. 인부들은 일당을 받으면 일단 노름판부터 벌렸다. 곽순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날마다 노름으로 품삯을 날리기 예사였다. 가족도 없는데다 술도 담배도 가까이 하지 않는 그로서는 돈에 큰 애착이 없었다. 그렇게 노름판에서 몇 년을 굴러먹다보니 투전과 화투를 다루는 솜씨는 해마다 늘었다. 손과 눈이 빠른데다 뱃짱도 있었던 것이다. 다시 몇 년이 지나자 돈은 더 이상 잃지 않을 만큼 되었다. 곽순도는 더 큰 노름판을 찾아 공사판을 그만두었다. 큰 노름판은 바로 우시장에 있었다. 이때부터 전국의 소시장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더욱 솜씨가 늘고 속임수가 정교해질 무렵이었다. 소장수들과 거금이 걸린 판을 겨루고 있을 때 속임수를 알아챈 곽순도가 즉시 상대의 손등에 칼을 박았다. 그리고는 칼을 꽂은 채 상대의 손을 뒤집었다. 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칼을 맞은 사람은 곽순도 처럼 큰판을 찾아 떠도는 늙은이었다. 그동안 몇 번을 같은 판에서 마주쳤지만 그 늙은이가 오늘 같은 속임수를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판이 컷던 것이다. 그 일로 곽순도는 죽지 않을 만큼 맞고 돈도 뺏긴 채 우시장 쇠똥밭에 버려지고 말았다. 때는 한 겨울이라 얼어죽을 지경이었으나 새벽녘에 웬 사람이 곽순도를 업고가서 치료를 해주었다. 그는 곽순도의 칼에 손등이 박힌 바로 그 늙은이었다. 전문 노름꾼인 그가 곽순도를 살린데는 이유가 있었다. 늙은 그는 젊은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그동안 노름판을 따라다니며 곽순도의 손재간과 인간됨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다.

"쯧쯧...속임수를 쓰는 척 너를 끌어들인 걸 모르다니? 너는 아직 멀었느니라. 그동안 널 쭉 지켜 봐 왔다만 너는 손과 눈은 빠르나 이기려는 욕심 탓에 생각이 한끗 느리더구나. 노름에 욕심은 금물이니라. 마음으로 패를 잡아야 끝판까지 갈 수 있거던."

정신이 든 곽순도에게 그 노름꾼이 한 말이었다. 그냥 속임수가 아니라 속임수처럼 보이게하는 속임수라는 말이었다.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재간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 천지에 첫 째가는 기술자였다. 그는 전국의 노름판으로 곽순도를 데리고 다니며 실전기술을 가르쳤다. 삼 년 만에 모든 기술을 넘겨받았다. 곽순도는 그런 스승을 위해 자식의 예로 봉양했다. 그러나 스승은 죽기 전에 곽순도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너는 늙어 죽을 때까지 절대로 노름판을 기웃거리지 말거라. 나를 보아라.. 노름을 아무리 잘해도 노름꾼은 노름꾼일 뿐이니라. 노름으로 돈을 따서는 부자가 못 되는 법이다. 사실 기술을 넘겨주었지만 네게 기술을 가르쳐 준 것을 후회한다. 너도 나 처럼 될까 해서다. 손을 씻거라. 네 인생을 노름에 걸지말란 말이다. 그동안 배운 기술은 꼭꼭 숨겨서 써먹지 말거라. 만약 노름을 꼭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일생에 딱 세 번만 해라. 기술을 계속 써먹으면 네 신상에 이로움이 없느니."



"아니 아버님, 세 번 만이라니요? 힘들게 배운 기술을 세번만 쓰시다니요?"

얘기에 빠져 과거와 현실을 혼동한 진우가 덕배 아버지에게 강력하게 항의 했다.

"그거야...스승님께서 애써 배운 것을 전혀 못쓰게 할 수는 없으니까 노름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말씀으로 하신 걸 그 자리에서 달리 토를 달수가 있었겠느냐?"

", . 그건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번의 기술은 다 쓰신 겁니까?"

"살아오면서 두번은 썼지."

"그럼 엄청난 돈을 따셨겠군요?"

"?"

노인은 돈에 쫓기는 진우의 심정을 들여다 본 듯 싱긋 한번 웃었다.

"? 궁금하냐? 첫 번째는 진우 엄마를 얻을 때 썼고..."

"? 돈이 아니고요?"

"도박을 꼭 돈만 놓고 한다더냐? 때로는 사람의 목숨이나 인생을 걸고 하는 노름도 있는 게지. 쯧쯧."

"..............."

진우의 상식으로서는 알 수 없는 말이었으나 꼬치꼬치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또 한 번은 2001년인가 2년인데 사북에 카지노가 생긴 다음 해에 써 먹었으니라. 허허 처음부터 겁쟁이 숫법을 썼었지. 백으로 하나를 이기는 백당 일승 숫법이지. 많은 돈을 쌓아 두고도 배팅은 적게 하는 나를 모든 사람들이 비웃더구만. 허지만 적게 꾸준히 따는 내 작전을 우습게보고 있다가 카지노 측이 결국 당했었지. 그때만 해도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카지노 측에서 경험이 없었던 거라. 대여섯 달을 쫓아다녀서 10억 쯤 땄니라. 그랬더니만 그때서야 카지노에서 알구서 출입금지를 시키더구먼. 허허."

"? 십억이요? 정말 십억이나 따셨단 말입니까? 카지노는 투전이나 화투가 아니고 트럼프로 하는 게임 뿐이잖습니까?"

"내가 언제 평생을 투전이나 화투짝만 갖고 놀았다고 하더냐? 사실 따지고보면 화투나 카드나 원리는 똑 같느니라. 손재간을 부릴려면 포커판이 좋지마는 몇 번만 따면 금새 타짜로 소문이나서 절대로 큰돈은 못 만지느니라. 판에 붙여 주지를 않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바카라는 딜러와의 게임이니 은근과 끈기로 싸워 볼만하지 않으냐? 손재간도 필요 없고 말이다. 사람들이 바카라에서 돈을 잃는 것은 앞뒤 가리지 않고 맥시멈으로 마구 질러대기 때문이니라. 노름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느니라. 그 흐름이 돌아왔을 때가 곧 기회인 거라. 보통 사람이 카지노에 들락거려서 돈을 딸 확률은 일 푼은 커녕 일 리도 안 되느니라. , 천 명 중에 999명이 결국에는 다 털리게 만들어 놓은 것이 카지노란 말이다. 어쩌다 한두 번 따는 사람은 있지. 한두 번 이겼다고 부자 되겠느냐? 배팅에 한계가 있는데? 강원랜드가 생기고 제대로 돈을 딴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스승님으로 부터 배운 기술이란 다른 게 아니다. 충동심과 욕심을 누르는 마음의 수양, 그리고 흐름을 보는 눈을 훈련했을 뿐이니라. 기술은 아무나 배울 수 있으나 욕심을 누르는 수양은 쉽지 않느니라. 인간이 욕심을 버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느냐? 그러니 바카라 게임은 한번에 큰돈 먹으려고 덤비지 말고 작게 여러번 이기는 것이 중요한 거라. 땄다 싶으면 미련없이 일어나서 다음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니 아버님, 흐름이란 게 기회라면서요? 딸 기회가 왔을 때 왕창 따야 될 것 아닙니까?"

진우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만일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왔다면 한번에 왕창 따고 말았을 것이다. 그 기회를 마다하고 내일 다시 시작하다니 말이 되는가?

"허허, 너는 이제껏 무얼 들었느냐? 노름에는 욕심이 적이니라. 욕심만 앞세워 올인을 하면 대사를 그르치니라. 바카라는 적게 꾸준이 이기는 것이 낫다고 몇 번을 말했건만... 목표로 했던 액수만 되면 미련을 떨치고 벌썩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단 말이다."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허허 녀석. 돌고 도는 기회가 내일이라고 왜 안 오겠느냐? 걱정 말거라. 네게도 기회란 놈이 반드시 돌아 올 게다. 하여튼 그때 딴 돈으로 이곳에 땅을 사고 은광(銀鑛)도 두 구덩이 사 놨으니 남은 한 번의 기회는 죽을 때까지 쓸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 진우 너도 부러우면 기술을 배워 볼 테냐?"

", 아니요. 저는 싫습니다. 제겐 첫째, 끈기가 없고 배짱이 없어 질러야 할 때 못 지릅니다. 재미로 고스톱을 쳐도 저만 항상 잃거던요."

"잘 생각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노름꾼은 죽을 때까지 노름꾼일 뿐이라고 스승께서도 말씀하셨지."

덕배 아버지는 스승을 생각해서인지 잠깐 침묵했다가 다시 자신의 젊은 날의 얘기를 계속해 나갔다. 진우는 젊은이 뺨치는 97세 노인의 얼굴을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스승을 떠나보낸 후에 곽순도는 곰곰히 생각을 했다. 스승의 말 대로였다. 그 동안 아까운 세월만 흘렀을 뿐 땃던 잃었던 언제나 빈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가까운 곳에서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 머슴살이로 이미 몸에 밴 농사였다. 내 땅이 없으니 깊은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과 어울렸다. 때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이었다. 깊은 산속 생활이 오히려 징병을 피하는 길이 되었다. 초겨울 어느 날 엽총을 멘 사냥꾼 둘이 산으로 들어왔다. 둘 다 쉰 가까운 나이의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서투른 조선말로 짐승을 튀기는 몰이꾼을 구한다고 했다. 어차피 겨울이라 할 일이 없던 곽순도가 자원했다. 화전민 둘과 셋이서 짐승들을 몰면 길몫에 매복해 있던 엽사들이 총을 쏘았다. 노루도 잡고 고라니도 잡았다. 그 해 겨울 동안 그 일본인 사냥꾼들은 다섯 번도 더 왔다갔다. 그 다음 해 겨울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인데도 그 일본인들이 다시 순도를 찾아왔다. 그 때는 화전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었다. 화전이란 3년마다 자리를 옮겨야 그나마 농사가 되었던 까닭이다. 곽순도는 짐승이 있을 곳을 안내하기도 하고 짐승도 튀기면서 그들과 같이 어울려 다녔다. 일본인들이 노루와 늑대의 가죽을 챙겨 떠난 이틀 후였다. 그동안 봐둔 짐승의 길 몫에 올무를 놓기위해 산길을 돌던 곽순도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석벽 아래에 두 사람이 죽어 있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갈가리 찟긴 형태로 널부러 진 것이다. 눈 위에는 사방에 피가 물들었고 베낭과 털가죽이 흩어져 있었다. 한 쪽엔 부러진 엽총과 흩어진 탄환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엎어진 사람의 옆모습을 보니 며칠 전의 그 일본인 엽사들이었다. 곽순도는 정신을 모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세히보니 짐승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발굽 달린 짐승이 아니었다.    발자국에 손을 펴 덮어보았다. 발 하나가 손바닥보다 컸다. 무슨 짐승인지 놀랍도록 큰 놈이었다. 불현듯 호랑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으나 조선에 호랑이는 씨가 마른지 오래였다. 십몇 년 전에 이미 경주에서 잡힌 호랑이가 마지막 호랑이였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발자국과 처참하게 죽은 사냥꾼들을 볼 때 호랑이가 아닌 다른 짐승일 수는 없었다. 곽순도는 어찌할 것인가 망서렸다. 신고를 하려면 지서까지 백 리는 가야 했고 게다가 징병을 피해야 하는 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놈 순사를 만나는 것이 싫었다. 곽순도의 눈이 부러진 엽총에 머물자 나머지 한자루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갖고싶던 엽총이었다. 한자루는 시체 밑에 깔려 있었다. 시체를 뒤집어 총을 꺼내보니 겉이 멀쩡했다. 그동안 봐둔 눈썰미로 엽총의 레버를 재껴 꺾었다. 약실은 비어 있었다.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당한 듯 했다. 방아쇠를 당겨 상태를 확인한 후 탄띠와 탄환을 모조리 주웠다. 곽순도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총과 탄약을 숨기고 시체는 땅속에 묻기로 한 것이다. 총과 탄약을 가지고 움막으로 뛰었다. 괭이를 가지고 다시 그 자리로 간 곽순도는 땅을 깊이 판 다음 시체와 부러진 총과 짐승의 껍질까지 모조리 쓸어넣었다. 그리고 흙을 덮었다. 나무를 꺾어 눈을 쓸고 묻은 곳을 다졌다. 몇 시간이 걸린 일이었다. 움막으로 돌아온 곽순도는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났다. 이산 저산의 화전민촌으로 다니며 그들과 함께 사냥으로 겨울을 난 것이다. 봄이되자 화전민들의 농사를 거들어주며 계속 산속에 머물렀다. 그 해 가을이었다. 곽순도에게는 탄환이 필요했고 화전민들에겐 소금이 필요했다. 곽순도는 잘 손질된 노루피 몇 장을 가지고 가까운 울진으로 갔다. 가깝다고 해도 걸어서 이틀 거리였다. 울진 읍내를 들어서자말자 조선이 해방된 것을 알았다. 워낙 산속에 살다보니 그새 해방이 된 것도 몰랐던 것이다. 곽순도는 소금을 지고 나는 듯이 화전민촌으로 돌아와 남겨둔 피물들을 짊어졌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꼬박 하루를 걸어 석포로 나왔다. 당시는 영암선 철길이 놓이기 훨씬 전이라 기차가 없었다. 대신 일본인들이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신작로가 있었다. 이 지방에는 춘양목이라 불리우는 적송이 많았는데 최상의 품질로 조선은 물론 일본까지 소문난 나무였다. 그 적송을 탐을 낸 일인들이 도로를 닦은 것이다. 곽순도는 석포에서 다시 목탄차를 얻어 타고 열두 시간 만에 대구에 닿았다. 언젠가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북성동에 총포사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가게로 들어서니 조선인 영감이 반갑게 맞았다. 곽순도는 지고 온 피물을 풀어놓았다.

"이걸 드릴 테니 엽총 총알을 주십시요."

주인 영감이 피물을 들고 이리저리 보더니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이거보소, 젊은이. 이 아까운 늑대 가죽을 여기다 총질을 해서 망치면 우야노? 머리나 주딩이를 쏴야제, 에잉, 쯧쯔."

주인 영감은 늑대 가죽의 옆구리와 등짝에 난 구멍으로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구멍으로 나온 손가락은 모두 네 개였다. 다른 가죽도 마찬가지였다. 올무로 잡은 여우 가죽 외에는 모두 총알구멍이 숭숭했다.

"젊은 혈기에 마구 총질을 해서 귀한 짐승들만 저승으로 보냈구만. 이런 가죽은 가치가 없는 거라. 젊은이, 포수질이 처음인가?"

짐승을 보면 맞히는 것만 급급하던 곽순도였다. 정상적으로 사냥꾼을 따라다니면서 배운 솜씨가 아닌 것이다. 곽순도의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익힌 솜씨라 형편없습니다. 영감님이 많이 가르쳐 주십시요."

"? 영감님이라니? 내 나이 이제 쉰셋일세. 영감이라니? 허엇 참."

",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요."

곽순도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이 밉지 않았는지 주인 영감이 손짓으로 곽순도를 의자에 앉혔다.

"그래, 젊은이는 어디 사는 누군가?"

"울진이 고향이고 지금도 그 지방에서 화전민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 그래? 그럼 용봉산을 중심으로 사냥질을 했겠구만."

용봉산은 태백산과 울진 사이에 있는 산이다. 곽순도는 용봉산을 알고 있는 총포상 주인이 반가웠다.

"용봉산을 어찌 아십니까?"

곽순도가 반가운 얼굴로 묻자 주인은 비로써 얘기의 상대를 만났다는 듯 의자를 끌어 다가앉았다.

"내가 그 산을 어찌 잊겠는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범을 잡은 곳인데..."

"? 범을 말입니까? 그게 언제입니까?"

범을 잡았다는 말에 곽순도는 깜짝 놀랐다. 이어서 손바닥 넓이보다 크던 짐승의 발자국이 떠올랐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은 일본인 포수가 떠올랐다. 불과 일 년 전 사건이었다.

"대정 말년이었으니 꼭 20년 전이었네. 내 나이 서른셋의 한창 때였지."

", ..."

20년 전이면 1925년이 아닌가? 20년 전이란 말에 곽순도는 약간 실망 했다. 그러나 주인은 그 때를 회상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일세. 젊어서 부터 이제껏 조선 팔도의 산이란 산은 다 밟아봤네. 위로는 백두산에서 아래로는 지리산까지 안 가본 데가 없지."

"젊어서부터 사냥을 하셨습니까?"

"소학교 나와서 곧장 들어간 곳이 일본인이 하던 총포사였네. 처음 몇 년은 청소나 하고 심부름꾼 노릇이나 했지. 그러다 머리가 굵어지니 총도 닦고 기름도 치고....그러다 고장난 총도 고치고 허허."

"그럼 사냥은 언제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 그게 궁금한가?"

"아니요. 부러워서 그러지요. 엉터리로 배운 저에 비해 주인 어른은 총 선생님이 되셨을 것 아닙니까?"

총선생이란 말에 주인이 크게 웃었다.

"허허, 그러고보니 그렇구먼. 내가 총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났었으니까. 일본인 주인도 그때부터 월급을 제대로 쳐 주더구만. 내 나이 스물 정도였네. 아무튼 그 무렵부터 일본인 포수나 지방 유지들의 사냥에 따라다니기 시작했지. 그렇게 십여 년을 사냥꾼의 뒤를 따라다니다 보니 짐승들의 습성은 자연히 알게 되더군.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는 우리 조선에 짐승들이 많았어. 표범은 물론이고 호랑이도 흔했고..."

"언젠가 듣기로는 조선범은 왜인들이 씨를 말려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던데요?"

"그래, 그런 말이 있었지. 조선의 마지막 범이 경주 어디선가 잡혔다는 소릴 들었네. 신문에 난 것도 봤고. 하지만 그 범이 조선의 마지막 범은 아니었네. 왜냐하면 그러고도 몇 달 뒤에 내가 또 한 마리를 잡았거든. 그게 바로 아까 말한 용봉산에서 잡은 놈일세. 경상도와 강원도의 접경지대인 석포라는 곳에 반야골이라는 깊은 골이 있는 것은 자네도 알겠지?    바로 거기서 처음 그 범을 만났네.    며칠을 쫓고 쫓아서 용봉산 기슭에서 다시 만났었지. 당시에 나는 맹수용 탄을 갖고 있었지만 같이 간 일본인 포수는 갖고 있지 않았어. 노루나 사슴을 잡으러 갔었거던. 그래서 산 아래에서 남고 나만 그 범의 뒤를 쫓았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행동이었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내가 그 짝이었던 거라. 하여간 젊은 혈기에 범을 잡겠다고 덤빈 것은 좋으나 막상 덜컥 눈앞에 나타나니 얼이 쑥 빠지더구먼. 어떻게 총을 들어 겨냥했고 어떻게 쐈는지 지금도 모르겠네. 그야말로 엉겁결에 쏜 것이었지. 정신이 들고보니 눈 앞에 범이 자빠져 있었지. 아래가 축축해 내려다보니 바지 앞이 온통 젖어 있었네.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줌을 지렸던 거라. 좌우간 그 범을 산 아래 촌부들을 시켜 석포역까지 옮겨가는 데에는 꼬박 사흘이 걸렸네. 대구로 와서 그 범을 박제용으로 일본인에게 250원에 팔았지. 당시에 쌀 한 가마 값이 5원이 못되었으니 250원이면 쌀이 쉰 가마 아닌가? 그 돈으로 이 집을 사서 총 수리점을 시작했지. 그 범을 잡은 이 후로 다시는 누가 범을 잡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네. 그렇다고 범의씨가 말랐겠나?    숲이 울창한 백두산 쪽으로 모두 쫓겨난 것일 테지. 어쨋든 알 수가 없어."

총포사 주인의 말을 들은 곽순도는 지난 해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일본인 사냥꾼이 죽은 모습이며 발자국 생김새와 크기를 본대로 말했다. 어차피 일본은 망해 쫓겨 갔으니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일본인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정체모를 짐승의 짓인 것이다.

"범일세! 범이야. 범 말고는 그런 발자국은 없네."

얼굴이 붉어진 총포사 주인이 곽순도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소리쳤다.

"어디엔가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했더니 역시나 조선범의 맥이 끊기지 않았구먼. 하기야 노서아(露西亞) 우수리스크에서 백두산 사이에 조선범이 득실거리는데 게중에 두만강을 넘어오는 놈이 왜 없겠나? 이보게 자네는 여기 있다가 준비가 되는대로 나와 함께 그곳으로 가보는 게 어떻겠나?"



덕배 아버지가 하던 얘기를 문득 그쳤다. 그리고 평상을 내려서 안방으로 건너 갔다. 안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뒤에 전등불이 꺼지고 덕배 아버지가 다시 나왔다. 노인은 그동안 진우에게 얘기를 하면서도 줄곧 안방에 신경을 모으고 있었슴에 틀림없었다.

"저 사람은 연속극이 끝나면 곧바로 자는 습관이 붙었으니 자야지. 몸이 저런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진우 너는 안 졸리느냐? "

"? 이제 아홉 시 반인데요? 저는 괜찮습니다. 피곤하시면 아버님은 그만 주무시지요?"

"나야 하는 일도 없는데 뭐가 피곤하겠느냐? 그리고 십여 년을 말 상대 없이 살다가 네가 와서 오히려 덜 심심해서 좋다. 그럼 하던 얘기나 마저 할까?"

", . 그러시지요. 헌데 해방 후에도 호랑이가 있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나를 순 거짓말쟁이로 아는구나. 범은 그때 뿐 아니라 지금도 깊은 산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반드시 있을 것이다."

"아버님 말씀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하도 놀라운 사실이라... , 제가 어릴 때 본 총이 그때부터 갖고 계시던 엽총입니까?"

"그렇지. 참 오랜 세월을 함께한 총이지. 지금도 손질은 가끔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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