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역에 기차가 닿은 것은 새벽 3시가 가까워서였다. 승객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플랫폼에 내리자 고산지대 특유의 서늘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이곳의 새벽 기온은 늦가을을 미리 끌어 온 듯 했다. 역사를 빠져나오던 진우가 양 팔을 문지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 앞에는 시동을 걸어 둔 택시가 대여섯 대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의 집을 가려면 택시를 타야했다. 그러나 새벽에 들어닥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길 건너의 몇몇 식당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새벽 손님과 기사들을 겨냥한 밥집이였다. 식당을 본 순간부터 허기가 느껴졌다. 진우는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으슬으슬한 느낌이 드는 이럴 때에는 역시나 해장국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진우는 시장통의 해장국집을 떠올렸다. 8년 전까지만 해도 자리가 없을 만큼 북적이던 소문난 집이었다. 진우는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었고 이곳을 떠난 후 처음 걸어보는 거리였다. 그동안 별 발전이 없었는지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드문드문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밤거리는 낮에 보던 것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좌우로 늘어선 불꺼진 상가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만큼 을씨년스러웠다. 윈도우 저편은 공포스러울 만큼 어두웠다. 이곳은 낮에는 산 자의 일터이나 밤에는 죽은 자의 놀이터 같았다. 어쩌다 지나는 자동차의 불빛이 윈도우를 스치자 유령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가 어둠에 숨었다. 눈도 코도 없는 하얀 얼굴이 진우를 향해 히죽 웃고 있었다. 옷가게의 여자 마네킹이었다. 차라리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보기 좋았다.
'아직 있구나.'
해장국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밝지 않은 가게 안은 너무 이른 시각 이어서인지 손님이 두엇 뿐이었다. 구석자리에 앉은 진우가 날라 온 해장국에 얼굴을 묻고 있을 때 쯤이었다. 문소리와 함께 네 명의 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말자 시끌벅적했다.
"한개를 잃어? 병신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디서 잃어버려?"
"내가 설마 너한테 거짓말 하겠냐? 정말로 하나를 어디서 흘렸다니까."
한 사내가 억양을 높이자 대답하는 사내 역시 목소리를 높혔다. 진우는 그들의 대화 내용과 대답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그 쪽을 바라보니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등을 보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가 젓가락으로 식탁을 콕콕 찍으며 다시 언성을 높혔다.
"병신 같은 소리 그만하고 내 놔. 안 그러면 쓰벌 너나 나나 둘다 골로 가는 거 몰라?"
"에이 씨발, 사람 말을 왜 그리 못 믿어? 기찻칸에서 잃어버렸다니까? 그 새끼가 틀림없었는데 말이야. 내 실수였지 뭐야."
"누군지 보면 알겠어?"
이번엔 덩치의 옆에 앉아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이건 누굴 해태로 보나? 그 새끼를 왜 몰라보겠냐? 단번에 알아보지."
"아, 조용들 해 봐. 그러니까 순태 너는 그걸 열차 화장실에서 잃었다는 얘기잖어, 지금?"
맞은편의 사내가 식탁을 찍던 젓가락으로 덩치를 가르키며 물었다. 사태를 냉정하게 분석하겠다는 것인지 처음보다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해명할 기회를 잡은 순태라 불린 덩치 큰 사내도 덩달아 소리를 낮추었다.
"그게 어찌된 일인가 하면 말이야, 내가 한개를 화장실로 가져가서.."
"잠깐, 처음부터 얘기를 해, 처음부터...."
"아, 그러니까 처음부터 얘기하잖아? 화장실에 가서 봤다고."
"지랄하네. 쓰벌 놈, 내 말은 처음에 네가 한개를 왜 꺼냈냔 말이야. 박스에 포장이 안되어 있었냐? 너, 아까 그 가방 다시 내놔 봐."
덩치가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 놓았던 작은 손가방을 맞은편 사내에게 밀어 놓았다. 맞은편 사내가 시선은 덩치의 얼굴에 꽂은 채 가방의 지퍼를 열고 얼른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뚜껑을 재껴 속을 들여다 본 후에 다시 닫더니 지퍼까지 잠궜다.
"25발 짜리가 네 통이군. 이걸 포장도 없이 달랑 손가방에 넣지는 않았을 테지? 야, 순태. 까놓고 말 해 봐. 왜 열어봤어?"
열차에서 봤을 때는 전혀 순해 보이지 않던 순태가 난처한 듯 식탁을 내려다 봤다. 마침 주인 영감이 다가와 툭배기에 담긴 해장국을 쟁반 째 내려놓았다. 사내들은 제각기 툭배기가 놓일 곳의 수저를 옆으로 밀었다.
"자, 자, 뜨거우니 조심들 하라고. 펄펄 끓어. 먹다가 뭐든 모자라면 말해. "
사람 좋은 주인 영감이 툭배기를 들어내며 싱글거렸다.
"좋아 먹고 따지자고. 어이, 순태. 너도 먹어 임마. 쳐먹고 얘기하자고."
"씨발, 먹기 전에 까놓고 말하지. 박스에 포장은 됐었지. 포장도 그냥 포장이 아니고 비니루 처럼 매끌매끌한 누런색 종이로 쌌더라구."
"그게 바로 습기 방지 포장이라는 거야. 쓰벌눔아."
숫가락으로 건데기를 휘졌던 맞은편의 사내가 빈정대 듯 이죽거렸다.
"씨발,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어? 다만, 상자는 작은데 무겁기는 된통 무거워서 속이 궁금했던 거지. 그래서 살짝 뜯어보고 다시 붙인다는 게 그만 찢어져버렸지 뭐야."
"그럼, 열어 봤으면 닫아야지. 한 개는 왜 꺼내고 지랄했냐?"
"차라리 금댕이였으면 쳐다도 안 봤겠지. 헌데, 총알인데? 너 같으면 안 꺼내봤겠냐?"
"쉿, 더 크게 떠들지 그러냐?"
네 명의 사내들이 동시에 식당 안을 둘러봤다. 진우는 그릇에 코를 박고 마지막 국물을 퍼먹고 있었다. 그러나 귀는 처음부터 사내들의 대화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갑자기 양말에 쑤셔넣은 탄환이 몹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얼른 먹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으나 나가려면 그들이 앉은 식탁을 지나야 했다. 순태라는 덩치가 자신을 못 알아볼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대화가 점점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까짓 엽총 탄환이 무엇이길래 사내들이 이토록 심각할까? 한 여름의 사냥용 총알과 그것에 관계된 모종의 사연이 궁금한 것이다. 어쨋든 그들의 대화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잠시동안 사내들은 먹는데 열중하는 듯했다. 툭배기 바닥을 긁는 소리와 후루룩 쩝쩝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일 먼저 순태라는 덩치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연이어 컵에 든 물을 단숨에 마신 후 거억 하는 트림까지 토해 냈다.
"씨발, 그것 찾느라고 밤새 기차에서 물 한모금 못 마셨더니 죽여주게 맛있네그려."
"찾으러 다니면 뭐해? 찾았어야지. 그리고 봤으면 도로 넣을 것이지 아, 뭣 빨려고 그걸 들고 화장실로 가냐 말이야. 쓰벌놈아."
"씨발, 모르는 소리하고 있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총알을 어떻게 보냐? 화장실 불빛에 자세히 보려고 그랬지. 이딴 거야 택배로 부치면 될 건데 왜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지 이유가 존나 궁금 했거던. 불빛에 비춰도 보고 흔들어도 봤지만 별거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주머니에 넣었는데 자리에 돌아가서 보니 없는 거라. 이곳 저곳 다 찾아봤지. 오죽하면 내 뒤에 화장실 간 놈을 찾아 몸수색까지 했다니까. 그놈한테도 없는 데야 어째? 까짓거, 도착하면 총포상 가서 한발 사다 채울 작정이었지. 이럴줄 알았나, 씨발."
"이런 쓰벌눔, 탄약에는 롯드 남바라는 게 있다는 걸 모르냐? 너는 대가리가 그러니까 여태 큰형님 직속으로 못 가는 거야. 싸움만 잘 해서는 이 바닥에서 오래 가질 못한단 말이야. 쓰벌, 어쨌든 이제 너 때메 나까지 좆 되부렀다."
"그럼 내가 서울로 다시가서 여기 있는 것과 똑같은 걸로 하나 맹글어 오면 되잖어? 청계천 총포상에서 그까짓 거 하나 못 맹글겠냐?"
도대체 그까짓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듯 순태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탁자를 탕탕 두들겼다. 그러자 여태까지 깨작대던 옆자리 사내의 얼굴에 국물이 튀었다.
"이거 또 지랄일세. 야, 그 손 좀 가만히 둬. 네 손이 닿아서 성한게 있냐?"
벌떡 일어선 사내가 황급히 냅킨을 뽑아 얼굴을 닦으며 덩치를 노려보았다.
"어, 아직 쳐먹고 있었냐? 미안하게 됐다 야."
물을 마시는 척 덩치의 등짝을 곁눈질하던 진우가 일어선 사내의 뒷모습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사내는 얼굴을 닦고도 미진한지 연이어 냅킨을 마구 뽑아 머리까지 문질렀다. 그리고는 자기의 행동에 스스로 멋적은 듯 실내를 한바퀴 돌아봤다. 순간적으로 진우는 사내를 알아보았다. 재빨리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실내를 둘러본 사내가 의자에 다시 앉으려다가 멈칫했다. 고개를 약간 갸웃하던 사내가 다시 일어서더니 진우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의자를 밀고 통로에 나섰다. 탁자 맞은편 눈길이 매섭게 생긴 사내도 진우를 보고 있었다.
"야, 너, 진우 아니냐? 어라 맞네? 야, 임마. 이진우."
사내는 반갑다는 듯 커다란 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진우의 어깨를 흔들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던 진우 역시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어? 용수구나. 오랜만이다."
"왠 일이냐? 네가? 고향엘 다 오고?"
"음, 그렇게 됐어. 너는 여전히 바쁘구나. 요즘 애들은 좀 만나냐?"
"그럼,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에 덕배를 만났더니 네 얘기를 하더라야. 네가 통 소식이 없다고."
"뭐? 덕배가 여기 있다구? 야, 정말이냐?"
덕배의 이름을 들은 진우는 깜짝 놀랐다. 덕배는 진우보다 훨씬 먼저 이곳을 떠났었다. 소문에는 아직 감옥에 있다고도 했고 출소해서 광주에 있다고도 했었다. 그런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말인가? 자신은 왜 여태 이곳으로 오면서 덕배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덕배가 보고 싶었다. 누구보다 덕배를 먼저 만나야했다.
"여긴 아니구 사북에 있지. 거기서 사업하거던. 그놈 요즘 잘나간다야. 가만 너, 오랫만인데 우리 자리에서 한잔하자야. 일루 와."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용수의 팔을 진우가 급히 잡았다. 그때였다.
"엇, 씨발, 저, 저놈이야. 기찻간에서 본 놈이 저놈이란 말이야."
용수에게 가려서 보지 못했던 진우를 그제서야 알아 본 덩치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진우가 염려하던 순간이었다. 용수는 덩치와 진우를 번갈아보다가 뒤돌아섰다.
"진우, 너도 조금 전에 내렸냐? 저 친구를 기차에서 본 적 있냐구?"
"음, 나보고 탄환을 내놓으라던 사람이구만."
"그래? 너, 정말 못 봤냐? 화장실에서?"
진우가 대답을 하기전에 덩치의 맞은편에 앉았던 눈매가 매서운 사내가 젓가락으로 탁자를 마구 찍었다. 요란한 소리에 모든 사람이 그 쪽을 돌아보았다.
"형씨, 용수 친구 같은데 이자리에 합석합시다. 와서 얘기를 나눠 보잔 말이요. 쓰벌, 어찌된 건지 들어보면 간단할 것을 시끄럽게 지랄들이야? 이리 오시요, 형씨."
우물쭈물 하면 도리어 의심을 키울 것이다. 망서릴 이유가 없다는 듯 진우가 선뜻 다가가 의자를 끌어다 식탁 옆에 앉았다. 식탁 좌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진우에게 모였다. 회의를 주제하는 보스처럼 진우도 당당한 자세로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인사 합시다. 나, 오정철이요."
눈을 가늘게 뜬 오정철이란 사내가 엉거주춤 일어나 팔을 길게 뻗었다. 진우 역시 반 쯤 일어나 오정철의 손을 잡았다.
"이진우라 합니다."
오정철은 진우의 손을 힘차게 한번 흔들었다.
"어이 순태, 너도 인사는 터. 싸울 때 싸우더라도. 사내새끼들이 말이야. 안 그래?"
"좋아, 인사는 하고 따지자 이거지. 그러자고. 나, 안순태요."
발음이 흡사 안순해로 들린 진우가 웃으며 덩치의 커다란 손을 잡았다. 엄청난 손힘이었다. 일부러 세게 잡고 흔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어서 용수를 마주한 사내가 자신을 유시종이라 소개를 했다. 진우는 사내들의 면면을 돌아봤다. 서로가 존댓말이 없는 걸로 보아 이들의 나이는 진우와 비슷할 것이었다. 다만 눈매가 매서운 오정철은 이마와 입가에 주름이 새겨져 나이가 좀 더 들어보였다. 오정철이 다시 젓가락으로 식탁을 똑똑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신호였다.
"자, 자. 순태 네가 먼저 얘기해 봐. 어째서 이 친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지 말이야."
오정철의 말이 떨어지자, 순태가 검지를 구부려 가득이나 휜 자신의 코를 좌우로 세게 문질렀다. 이어서 콧바람을 킁킁거렸다.
"의심이나마나, 나 다음에 화장실을 간 사람이라곤 당신 밖에 없잖어. 안 그래?"
막혔던 코가 덜 뚫렸는지 순태의 말에는 약간의 콧소리가 남아있었다.
"소변을 본 것 말고는 본 것이 없는 사람 올시다. 날 세워놓고 다 뒤져보지 않았소? 화장실에 그게 있었다 해도 내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숨기겠소? 게다가 내가 나온 다음에 들어간 사람이 또 있었소. 그때 형씨도 보지 않았소? 밖에서 담배 피던 청년 말이요. 그 사람이 내 뒤에 들어갔는데 그 쪽은 물어봤소? 그리고, 담뱃값에도 못 미치는 그게 뭐라고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그 젊은 놈도 화장실을 갔었다구? 그것보다 기차에서는 미쳐 생각을 못했는데, 가방 어디 있어? 가방 좀 보자구."
"가방? 허, 참, 가방은커녕 비닐봉투 한 장 없이 내려온 몸이 올시다. 그리고 형씨가 계속 반말을 할 거면 나도 말을 놓겠습니다."
"씨발, 뭐라는 거야? 같이 말을 까자는 거야?"
이때 오정철이 빠르게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만해. 들어보니 아니야. 순태 네가 다른 곳에서 흘린 게 틀림없어. 아니면 다른 놈이 물어간 거야. 어이 형씨, 용수 얼굴을 봐서라도 없던 일로 할 테니 형씨도 잊으쇼. 우리가 그따위 걸로 이러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소. 미안하게 되었소. 가 보시요. 가서 형씨 볼 일을 보란 말이요."
진우가 일어나 용수를 바라보았다. 계산대로 향하는 진우의 뒤를 용수가 따라왔다.
"어이, 형씨. 계산은 우리가 할 테니 그냥 가쇼."
주인 영감도 들으라는 듯 뒤에서 오정철이 큰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진우의 팔을 용수가 잡았다.
"그냥 가. 참, 너, 덕배한테 갈 거지?"
"그야 물론이지. 헌데 사북 어디로 가야 만나냐?"
"야. 사북에서 지나가는 개를 잡고 물어도 덕배 모르는 개는 없을 거다. 가 봐. 물을 것도 없어. 그럼 또 보자. 너 올라가기 전에 덕배하고 셋이 한잔해야지?"
식당문을 나서자 용수가 진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등을 밀었다.
"야, 용수야, 잠깐만. 하나만 물어보자. 엽총 탄환 한 발이 뭐라구 저 야단들이냐? 도대체 그 게 어찌 됐다는 거냐?"
"나도 자세히 몰라. 아니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사실 저기 저치들도 자세히는 아무도 몰라. 순태란 놈을 시켜 큰형님이 보냈다는데, 아 그만하자. 잠도 못 자고 밤새 기다렸더니 또 이런 일이 생겼지 뭐냐? 야, 너 어디가서 이 얘기 꺼내지 마라. 큰일 난다."
"오정철인가 하는 저 사람이 형님이냐?"
"형님은 아니고 행동대장이지. 곧 큰형님 밑으로 들어갈 거야. 저거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적은데 독종이거던."
"뭐?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던데?"
"저치는 마빡에 주름도 있는데다가 나이가 있어 보일려고 항상 인상을 구겨서 그래."
"헌데, 넌 언제 여기로 내려왔냐? 나보다 먼저 서울로 갔었다던데?"
"서울서 십여 년 있었지. 작년에 내려왔어. 여기도 우리가 관리하는 사업장이 몇 군데 있거던. 오정철이 올라가면 태백 사북 일대는 내가 맡을 거다. 그건 그렇고 진우 넌 옛날하고 달라진 게 없어보인다야. 언제 올라 가냐?"
"글쎄? 아마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야. 또 만나자. 나 갈게."
"어, 또 보자."
시계를 보니 4시 40분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아직은 작은 아버지의 집이나 덕배를 찾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두 시간여 후에나 동이 틀 것이다. 길건너 저편에 편의점 간판이 밝았다. 소주와 안주가 될만한 포와 종이컵을 샀다. 진우는 왔던 길을 되돌아 기차역으로 향하였다. 택시들은 그곳에 모여 있을 거였다.
'오늘의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투(破鬪) 3. 죽마고우(1) 덕배 (0) | 2024.03.08 |
---|---|
파투(破鬪) 2. 수상한 총알(2) 고향 (1) | 2024.03.08 |
파투(破鬪) 1.야간열차(5) 뒷통수 (0) | 2024.03.07 |
파투(破鬪) 1.야간열차(4) 해병대 (0) | 2024.03.07 |
파투(破鬪) 1.야간열차(3) 수미 (1) | 2024.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