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4. 동업자들(3) 찜찜한 관계

fiction-google 2024. 2. 29. 11:13
반응형

 

삼 일 후인 금요일 저녁이었다. 고달수는 조중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총무인 황백구가 고달수의 농장으로 와 풍산개 한 마리를 골랐는데 고기는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풍산개 한 마리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는 개는 무슨 개라고 보십니까?"

고달수의 말을 듣고 난 조중구의 물음이었다.

"글쎄요, 풍산개가 진돗개 보다 낫다고 하나 핏불에게는 상대가 안 될 거요. 그러니 내 생각엔 삼대 잡종견이나 아니면 아키타 정도가 아닐까 싶소만.... 그냥 내 추측일 뿐이요."

"알았습니다. 일단 고달수 씨의 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만 참고하겠습니다."

", 그리고.... 이걸 얘기해야 하나 모르겠소만, 내일 도사견의 시합도 있을 모양인데 그중 한 마리가 고기를 먹었다는 정보가 있었소. 도사 주인은 내가 옛날부터 알던 사람인데 황 총무가 와서 고기를 주더랍니다. , 물론 그 견주는 영문을 모르지요."

"? 그럼 그 도사와 싸울 견종은 무어라고 하던가요?"

"바로 그 게 문제요. 상대 개가 무슨 종인지는 고사하고 견주도 모른답니다. 회장과 총무만 알겠지요."

"헛 그러면 같은 도사일 때는 고기를 먹은 개를 구별할 수 없지 않습니까?"

"다행히 다른 견종이길 바라야지요. 아니, 잠깐, 이러면 어떻겠소? 내일 내가 투견장엘 가 봐서 같은 도사 대 도사면 개들이 입장할 때 고기를 먹은 개와 견주를 먼저 들어가게 해 보겠소. 그러면 선생께서 판단하면 될 것 아니요?"

"좋은 방법이긴 한데, 웬만하면 그만 두시지요. 서 회장 측에서 고달수 씨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지 누가 압니까? 지금은 가능한 한 몸을 사리는 것이 서로에게 좋아요."

고달수의 정보로 이제껏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금의 조중구로서는 더 이상의 모험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매주 매 시합마다 다 이긴다는 것 자체가 벌써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부러라도 저 줘야 할 게임에 무엇 하러 새로운 욕심을 부리겠는가?"

"한 경기라도 더 이기면 좋지 않겠소? 그래서 하는 소리지요."

고달수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조중구가 베팅에 성공함으로써 고달수가 받은 돈은 합이 일억여 원에 달했다. 개장사로 죽도록 고생해서 벌어봐야 일 년에 삼사천만 원이 고작인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이 년을 벌어야 할 돈을 두 달도 안 돼 벌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고달수였다. 이런 기회가 흔한가? 기회가 생겼을 때 벌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요, 그럴수록 신중해야 됩니다. 만약 발각이 날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모든 걸 잃어요. 시작을 안 한 것보다 못 하게 된단 말입니다."

정작 돈에 안달했던 조중구가 이젠 오히려 고달수의 조급함을 달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조중구의 말을 들은 고달수는 그제야 문득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조중구의 말에 수긍하기로 했다. 이제 곧 양구택의 개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한 것이다.

", 젊은 사람의 생각이 훨씬 치밀하구려. 옳은 말이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선생의 말이 옳소. 서 회장 측을 생각하면 내 정보를 다 써먹기 보다 오히려 역으로 베팅을 해서 잃어 줄 때도 있어야 하겠소. 그렇지 않소?"

"그렇지요. 지나친 욕심이 항상 화를 부르지요. 그러니까, 내가 일부러 지는 쪽에 베팅을 하더라도 고달수 씨는 나를 믿고 배당금에 대한 불만은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연한 말씀이오. 나는 선생의 판단을 믿어요, 그러니, 내일 시합 때부터 내 정보는 선생이 알아서 활용하시오."

"이해 해 주니 고맙습니다. 그 대신 나도 가능한 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요."

"하하, 그렇게 하셔야 내 수익도 덩달아 오르는 것 아니겠소? 그럼, 이만 끊겠소이다."

전화를 끊은 고달수가 이번엔 박철구를 불러냈다. 양구택에게 돈을 송금했는지 알아볼 겸 요즘 B급 투견판의 상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얼마 보냈냐?"

고달수가 앞뒤를 자르고 박철구에게 물었다.

"천만 원씩 하자며? 그대로 보냈지. ? 넌 나보다 더 보냈다는 얘기냐?"

"넉넉하게 보내라는 말이 생각나서 나중에 그만큼 더 부쳤다."

"뭐라고? 이런 죽일 놈, 나만 역적을 만들려는 거잖아? 구택이 그놈 꽁하는 성질을 모르냐? 아이고 아까운 내 돈 천만 원이 또 깨지게 생겼구나."

"죽는 소리 그만해라. 그깟 돈 천만 원은 태산이 꼬리털 한 줌도 안 되는 돈이야. 그리고 너도 뇌가 있으면 생각을 해 봐라. 그깟 돈, 몇 천으로 태산이 같은 개의 매니저 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기냐?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개를 처음 보는 순간 내 재산 모두를 주고서라도 바꾸고 싶더라. 넌 안 그렇더란 말은 하지 마라. 네놈 심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나니까."

"말이 그렇단 말이지. 친구 사이에 동업을 하지 않았어도 그 정도의 돈은 주고받을 수 있는 건데 넌 어째 낫살을 먹으니까 구택이 보다 한 술 더 뜨는 말만 하냐?"

"얼씨구, 서 회장에게 짤리고 B급 투견 판에서 신나게 번다더니 정말인가 보구나. 구택이에게 몇 천을 보낼 여유가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그래, 요즘 그쪽 동네는 판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

"말 마라. 이것도 사업이 된다는 소문이 나니까 요 근래엔 사방에서 조폭 비슷한 것들이 설쳐댄다. 그래서 판이 점점 더 커지는 대신 경찰의 감시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지 뭐냐? 도박판으로 판정이 나면 아차 하면 모조리 깜방행 아니냐? 하기야 나는 개 값만 후하게 받고 얼른 그 자릴 피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개 값을 아무리 후하게 받은들 그걸로 언제 목돈을 만지냐? 직접 베팅도 겸해야 한밑천 챙기는 거지."

"히힛, 그래서 사실 요즘 들어 나도 장난을 좀 치고 있지. 그래서 두어 달만에 칠 팔천을 챙겼단 말이다. 이게 다 서 회장에게서 배운 수법 아니겠냐?"

"뭐라고? 서 회장 수법? 이 자식, , 약은 어디서 구했냐?"

"그야 서 회장이 쓰는 약이 무언지 알 수 없으니 내 마음대로 막 쓰는 거지."

"마음대로라니? 무슨 약을 네 마음대로 써?"

"그야....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신경 안정제나 각성제를 마구 섞어 주던가 아니면.... 때론 소량의 쥐약도 고기에 섞어서 먹이니까."

", 쥐약을? 그럼 그 개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을 거 아니냐?"

"그러니까 시합 직전에 극 소량을 고기에 섞어 준단 말이다. 그러면 싸우는 동안 약효가 돌거든. 그러면 보는 사람들은 상대 개에게 당하는 줄 알 것 아니냐? 게다가 내 개에게 내가 약을 먹이는데 누가 의심인 들 하겠냐?"

"아 아, 이 빌어먹을 놈이 결국 일을 크게 만드는구나. 너 내 말 잘 들어. 너 그 짓 당장 그만둬. 발각 즉시 넌 조폭들 손에 사망이다. 네 아랫배로 들어오는 사시미 칼날을 생각해 봐라. 써늘 하지 않냐? , 내 말 들어. 이제 그 짓 하지 않아도 우리에겐 태산이가 있잖냐? 태산이만 흥행에 성공시켜도 떼돈을 벌 수 있단 말이다. 알아먹었냐? 대답해."

투견판에서 서 회장 같은 짓을 한다는 박철구의 말에 놀란 고달수가 연이어 수화기 너머로 그 짓을 그만 두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쩐지 양구택의 생활비를 내겠다고 나설 때부터 약간은 이상하긴 했었지만 설마 그런 짓으로 돈을 벌고 있었을 줄이야. 투견장에 개를 공급한다고 해야 기껏 몇 백만 원일 테니 목돈이 굴러들어올 데가 없는 박철구라 여윳돈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서 회장이 운영하는 동호회에 투견 공급이 끊긴 뒤로는 더욱 형편이 빠듯한 것도 고달수는 알고 있었다.     

"네가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어. 그러지 않아도 몇 번만 더 해 먹고 그만두려 했지. 하지만 사람들이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때 먹어 둬야 해. 지금이 바로 그럴 때란 말이다. 이 좋은 기회를 왜 놓치냐? 그러니 당분간 날 가만히 둬다오. 알았냐?"

전화기 넘어의 박철구는 오히려 고달수를 설득하려 했다. 고달수는 그런 박철구가 영 못마땅했다. 그래서 좀 더 세게 나가기로 했다.

"좋아, 네가 그렇다면 구택이와 의논해서 동업자에서 널 빼야겠다. 너는 우리와 동업을 하지 않아도 잘 벌어먹고 있는 모양이니까. 계속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라고. 네가 구택이 생활비로 보낸 돈은 내가 대신 물어 주마. 됐지? 이제 네 마음대로 해. 끊는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후에도 고달수는 박철구가 하는 짓이 못내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서 회장 같은 능구렁이가 하는 짓도 결국은 고달수 자신 같은 사람이 눈치를 채는 마당에 어설픈 박철구가 하는 짓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어떻게라도 말리고 볼 일이었다. 그러나 이놈이 공돈 맛을 알았으니 미친 짓 또한 쉽게 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양구택을 들먹이며 동업을 파기하겠다고 일단은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러면 성격이 좀 단순한 박철구인지라 돈보다 세 사람의 우정을 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만약일 뿐 박철구가 그 짓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녀석의 목숨이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고달수는 박철구의 언행이 몹씨 불안했다.

고달수는 양구택과 의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폴더를 여는 것과 동시에 벨 소리가 먼저 요란하게 울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울린 벨 소리에 고달수는 깜짝 놀랐다. 전화를 건 사람은 조금 전의 박철구였다. 고달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까운 시간에 전화는 왜 했냐? 내게 전화할 시간 있으면 네 개들에게 쥐약이나 먹이지 그러냐? 네 말대로 이때 아니면 언제 버냐?"

", 그 사이에 구택이한테 전화를 한 건 아니겠지?"

"전화를 했으면 어쩔 건데?"

", 그 자식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북 치고 장고치고 저 혼자 지랄일세."

", 임마 네가 한 말은 한마디로 동업이 아니어도 너 혼자 얼마든지 돈을 긁을 수 있다는 얘기 아니었냐?"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내가 장난을 좀 한 건 B급 판에서도 그 수법이 통하나 시험을 해 본 거에 불과하단 말이다. , 생각해 봐라. 내가 하는 짓이 B급 투견판에서 통한다면 모든 판을 휩쓸어야 할 태산이라고 안 당하겠냐? 이제부터 태산이 하나 믿고 내 인생도 올인 할 판인데 다른 나쁜 놈들이 태산이를 가지고 장난을 한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럼 우린 쪽박을 차고 남은 인생 거덜 나지 않냐?"

"네 변명은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미안하게도 내용에서 시간 차가 맞지 않는 이론이다. 우리가 구택이네 집에서 동업을 하기로 한 건 그저껜데 네가 그 짓을 한 건 몇 주 전이잖아? 그런데도 넌 마치 그때 이미 동업을 하게 된 것처럼 방금 말했잖아? 네가 어떻게 미리 동업이 이루어질 줄 알고 그런 시험을 했단 말이냐? 게다가 태산이 걱정까지 곁들이면서 말이야. , 임마 거짓말을 멋있게 하려면 기승전결을 짜 맞춰서 해."

고달수의 앞뒤가 맞는 말이 귓속을 파고들자 박철구는 할 말이 없는지 아무 말없이 조용했다. 고달수는 다시 한번 박철구를 설득하기로 했다.

"네가 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 건 네가 더 잘 알 테니 말을 않겠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너나 내가 서 회장의 장난을 눈치채 듯 조폭들이 네 수법을 배운다고 생각해 봐라. 그때는 이미 그놈들 손에 죽고 없을 너는 걱정이 없겠지만 그야말로 태산이 하나 믿고 있는 구택이나 나는 어찌 되겠냐? , 네가 그놈들 손에 죽지 않더라도 놈들이 투견 판마다 그런 장난을 하면 평생을 투견으로 살아온 우리가 설자리는 어디겠냐?"

고달수가 말하는 동안 박철구는 끽 소리도 없이 듣고 있었다. 고달수의 말 중에 버릴 것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고달수는 좀 더 박철구를 구석으로 몰기로 했다.

"그러니 구택이와 날 더 이상 괴롭힐 것 없이 이참에 너 스스로 동업자에서 탈퇴를 해서 조용히 사라져다오. 그리고 우리 서로 삼십 년 우정을 접고 남남으로 돌아서자. 아들 잃고 개 농장 잃은 구택이가 네놈 때문에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잃어서야 되겠냐?"

"뭐야? 구택이가 어째서 나 때문에 희망을 잃는단 말이냐. 내가 구택이가 일어서지 못하게 발목이라도 물어뜯었단 말이냐?"

고달수가 박철구의 조금은 단순한 감성을 자극하려고 비명횡사한 양구택의 아들 일까지 거론했건만 예상외로 발끈 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되자 고달수는 무슨 말을 해야 박철구가 자신의 말에 따를지 알 수 없었다.

", 생각해 봐라. 아들과 농장, 그리고 이젠 건강까지 잃은 구택이에게 남은 게 뭐겠냐? 세상에 구택이에게 남은 건 태산이와 평생 친구인 너와 나밖에 더 남았냐? 더구나 구택이와 우리 둘은 옛날부터 삼총사로 유명했잖냐? 그래서 퇴학도 같이 당했고... ."

"그 일로 구택이가 오늘날까지 날 원망하는 것 못 봤냐?"

"그건 구택이가 장난으로 하는 소리였지. 네가 먼저 준표를 때리지 않았어도 분명히 구택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가 퇴학을 당한 뒤에 구택이가 나보고 그러더라. 자기 때문에 죄 없는 철구까지 동반 퇴학을 당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이야. 사실 구택이는 원래는 그런 놈 아니냐. 네가 이해해야지."

".....너 그 말 사실이냐?"

"내가 네게 거짓말하는 것 봤냐? 어쨌든 그런 구택이가 어떻게서든 재기를 해 보려는 마당에 삼총사 중에 한 명인 네가 조폭들 손에 저세상으로 가면 남은 우리는 무슨 총사냐? 삼총사란 말은 있어도 이총사란 말은 없잖아? 넌 지금 구택이와 나만 남겨두고 저세상으로 가려고 조폭들 사시미 칼날을 조금씩 네 아랫배로 유도하고 있잖아?"

"그 자식. 끔찍하게 왜 자꾸만 사시미 칼날을 강조하는 거야? , 임마. 남은 쥐약을 변기에 쓸어 넣고 이제부터 그 짓을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 그냥 그만두라고 하면 될 걸 사내자식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 그래? 거 잘 생각했다. 삼총사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 너 때문에 괜히 일만 밀렸잖아. 모레 구택이 데리러 갈 때 다시 전화하마. 끊는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고달수는 그제야 약간 안심이 되는 듯했다. 동시에 서 회장이 음모를 역 이용하고 있는 자신 역시 위험천만한 사태에 직면할 날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꼬리가 길면 반드시 잡히는 법이다. 고달수는 조중구와의 관계를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