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4. 동업자들(1) 피스 오브 케익

fiction-google 2024. 2. 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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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여덟시경이었다. 조중구는 간신히 게임 시간에 맞춰 투견장에 도착했다. 투견장은 지난주와 같은 장소인 인천의 외곽 지대인 남촌이었다. 조중구가 서울에서 출발한 것은 여섯 시 반 경이었다. 이곳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었기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떠났으나 지난번에 왔던 길을 기억에서 더듬느라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조중구가 도착했을 때 검은 보온 덮개를 씌운 커다란 비닐하우스 앞에는 이미 차들이 꽉 들어차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였다. 구석에다 차를 세운 조중구가 서둘러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황백구 총무가 첫 번째 시합을 소개하고 있었다.

"....., .... 그렇게들 아시고 베팅을 하시되 일본에서 온 도사는 A, 한국의 도사는 B로 표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덩치가 더 큰 일본 도사는 A, 약간 작아 보이는 한국 도사는 B 올시다. 자 시간은 이 분 드리겠습니다. 베팅들 하십시오."

링 안에는 육중한 도사견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 중에 좌측의 도사가 좀 더 커 보였는데 그 개가 황 총무가 말하는 일본서 온 도사인가 보았다. 우측의 도사도 크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 근육이 잘 발달한 개였다.

얼핏 봐도 두 마리 모두 덩치도 크고 호전적으로 보여서 조중구로서는 어떤 놈이 우세할지 겉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기야 겉모습만 보고 이길 놈을 알 수 있다면 게임이 되겠냐마는 조중구로서는 이 순간은 그야말로 까마귀들 사이에서 암수를 골라내는 것과 같았다.

난감한 생각이 든 조중구는 이제까지 고달수의 정보가 얼마나 대단한 신통력을 발휘했었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조중구로서는 정답을 미리 빼돌린 시험을 치듯 그동안 쉽게 만점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에도 그가 준 정보로 오천만 원을 땄었지만 지금 도사끼리의 시합은 그야말로 장님 문고리 잡기였다.

조중구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베팅을 하는 대로 다 맞히면 그야말로 수상한 인물로 찍힐 것이다. 그러므로 첫판은 베팅이 실패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단 베팅의 액수는 적어야 했다. 그래야 잃어도 속이 쓰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중구는 아무렇게나 A라고 쓰고 천만 원을 베팅했다. 오백만 원을 쓸까 순간 망설였지만 너무 적게 쓰면 그 또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서였다. 다음 시합인 고달수의 진돗개에겐 4천만 원을 베팅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 베팅 시간 끝났습니다. 그럼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황 총무의 신호에 맞춰 도사견 견주들은 일제히 수건을 풀고 문 밖으로 빠졌다. 그러는 순간에 두 마리의 개들은 벌써 서로에게 달려들어 앞발로 상대를 마구 치면서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댔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일본 도사가 앞발을 내리며 동시에 한국 도사의 목을 물었다. 그러자 물린 한국 도사는 자신의 목이 찢어져라 가죽을 늘려서 억지로 주둥이를 돌리더니 일본 도사의 귀를 덥석 물었다.

목과 귀를 물었으니 그야말로 서로 물고 물린 상태였다. 두 마리의 도사는 그런 자세로 체중을 실어 서로 뒤로 몸을 당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일본에서 왔다는 도사는 자신의 귀 따위는 그냥 준다는 듯, 입을 재빨리 전진시켜 한국 도사의 목을 더 깊이 물었다. 그러자 한국 도사는 물고 있던 일본 도사의 귀를 아예 떼어내고 말겠다는 듯 머리를 마구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귀가 너무 아팠던지 아니면 침을 너무 흘려 미끄러졌는지 일본 도사가 물었던 한국 도사의 목을 놓아버렸다.

그 순간 구경꾼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작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보나 마나 자신이 베팅 한 한국 도사의 승리를 예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이 풀려난 한국 도사는 때는 이때라는 듯 더욱더 광란의 몸짓으로 일본 도사를 몰아붙였다. 일본 도사는 자신의 귀를 상대에게 맡긴 것처럼 계속해서 끌려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한국 도사가 머리를 흔들면 흔드는 대로 두면서도 물린 귀를 위 쪽에 두고 머리를 비튼 아래쪽의 입은 점점 더 상대 개의 목 밑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 도사는 진짜 급소를 물기 위해 처음 물었던 목을 놓은 것 같았다. 귀를 물고 미친 듯 흔들던 한국 도사가 아주 잠깐 동작을 멈춘 순간이었다.

이제까지 그 순간만을 기다린 일본 도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 도사의 목줄기를 깊이 물어버렸다. 그제야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한국 도사가 깜짝 놀라 물었던 일본 도사의 귀를 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한국 도사가 고개는 돌렸지만 턱밑을 바싹 물린 탓에 상대의 목에 입이 닿지 않는 것이다.

위기를 느낀 한국 도사는 눈자위가 허옇게 되도록 이리저리 마구 고개를 돌리고 몸통을 흔들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본 도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목줄기를 문 자세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미 목을 물고 흔들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입에선 다시 한 번 절망의 한숨과 함께 작은 탄성이 터졌다. 자신이 베팅 한 개가 이미 졌다는 뜻이 담긴 탄식이었다. 그 가운데 오히려 뜻밖의 승리에 어리둥절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중구였다.

"시합 끝. 일본 도사 승리. A가 이겼습니다. 견주들은 어서 장내를 정리해 주십시오."

황 총무의 멘트에 이어 견주들이 들어와 서로의 개들을 묶어서 나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일본 도사가 승리를 하자 조중구는 쓴웃음이 나왔다. 애써 지려고 해도 이기기만 하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되는 놈은 넘어져서도 동전을 줍는다는 격이었다.

"다음 시합은 예고한 바와 같이 아키타와 두 마리의 진돗개의 대결입니다. 우선 개들을 보시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견주들은 개들을 데리고 나오세요."

활발한 황 총무의 멘트에 이어 개들이 등장했다. 먼저 아키타견이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조중구는 그 개가 진돗개인 줄 알았다. 아키타란 개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조중구로서는 덩치가 좀 크기는 하나 모양이 흡사해서 진돗개로 본 것이다.

"나는 모처럼 만에 베팅이 성공을 했소만 조 박사 표정을 보니 베팅에 실패를 하신 것 같소이다. 하기야 조 박사라고 어찌 다 맞히겠소. 허허."

언제 왔는지 조중구 옆으로 다가온 곽 사장이 기분 좋게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아마도 곽 사장이 조중구의 쓴웃음을 보고 베팅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을 한 것 같았다. 곽 사장에게 인사를 할 타이밍을 놓친 조중구가 애매한 웃음을 입가에 담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 역시 성공을 했습니다."

"뭐라고요? 난 또... 조 박사의 표정만 보고 그렇게 말 했더니.... 역시 조박사요. 허허."

곽 사장이 약간은 무료해진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이 고달수가 양손에 한 마리씩 목을 수건으로 감은 진돗개들을 데리고 나왔다. 조중구는 아키타와 진도개를 번갈아 보며 비교해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아키타가 더 투견답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고달수의 정보를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아키타는 아시다시피 일본이 최초로 투견으로 개량한 견종입니다. 또한, 아키타견은 일본의 국견으로 그들이 자랑하는 개입니다. 이 개는 힘과 순발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천성이 타고난 파이터입니다. 여기 있는 이 개의 체중이 45킬로그램이니 22 킬로인 저 진돗개에 비해 거의 두 배입니다. 고로 거기에 대항하는 진돗개는 두 마리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키타와의 시합을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해 사족을 붙였습니다. 곧바로 시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키타는 A, 진돗개는 B 올시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키타는 A, 진돗개가 B 올시다. 그럼 먼저 베팅을 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삼 분입니다."

자신의 말처럼 사족을 붙인 긴 설명을 마친 황 총무가 베팅을 재촉하자 이미 고달수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조중구는 서슴없이 B라고 쓰고는 이제 막 베팅 액수를 적으려 든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중구가 고개를 들어 재빨리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곽 사장과 또 한 사람이 등 너머로 조중구가 쓴 글자를 힐긋힐긋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중구가 매번 베팅에 성공하자 따라서 베팅을 하려던 것이다.

", 거기 곽 사장님. 그리고 박 사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커닝은 규칙 위반입니다. 자제하시고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 감사합니다."

눈 밝은 황 총무가 먼저 커닝을 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큰 소리를 지르자 머쓱해진 두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그런 그들을 보고 와아 하고 웃었다. 조중구는 잠시 망설였다. 이번 베팅을 취소해 버릴까? 보나 마나 이번 베팅도 성공할 것이 틀림없는데 곽 사장과 박 사장이란 사람이 이미 정답을 베꼈을 테니 맞아도 배당률이 떨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미 전반 시합에서 원하지 않았던 베팅이 성공했으니 이번 게임은 아예 포기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차라리 지는 쪽에다 베팅을 해 버릴까? 그러나 그러자면 베팅액을 얼마로 해야 할 것인가? 이제껏 해온 베팅액 보다 적으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럴 바엔 역시 이번 게임은 포기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

그러나 한편 링 안에서 진돗개의 목줄을 잡고 자기 몫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고달수를 보니 게임을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잠시 고민하던 조중구가 단안을 내렸다. 그리고는 B 옆에다 2천만 원이라고 쓰고 사인을 해서 통에 넣었다. 고달수의 몫을 위해 예상액의 반을 베팅 한 것이다. 시합 시작을 알리는 황 총무의 외침과 함께 링 안은 세 마리의 개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아키타와 진돗개의 싸움은 한마디로 빠른 템포의 박진감 넘치는 러시안 춤을 보는 듯했다. 아키타견을 중심으로 좌우로 벌려 선 진돗개들이 마치 원무를 추 듯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진돗개들은 아예 아키타 견과의 정면 승부는 피하는 것 같았다. 대신 이빨을 앞세우고 전진과 후퇴를 피스톤처럼 빨리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급소를 노리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볼 때 진돗개들은 마치 시종일관 잽으로만 경기를 치르는 권투 선수로 보였다. 반면 아키타견은 자신의 주위를 빙빙 돌아가는 진돗개 중 하나만을 노리고 누구든 좀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진돗개들은 선뜻 다가오지 않고 계속 같은 동작으로 빠르게 돌아가므로 아키타견은 오히려 자신의 엉덩이를 물릴까 힐금힐금 뒤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륙 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아키타견이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비교적 가까이 온 진돗개에게 와락 덤벼들었다. 예상 밖의 공격에 깜짝 놀란 진돗개가 움찔 뒤로 물러날 태세를 취하며 주춤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키타견이 물러서는 진돗개의 목을 잽싸게 물었다.

아키타견에게 목을 물린 진돗개는 다행히 숨통을 물린 것은 아니어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아키타견은 이제껏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듯 이빨을 더욱 깊이 박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나머지 진돗개가 전우의 위기를 구하려는 듯 아키타견의 목 밑을 번개같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광분한 아키타가 목을 마구 휘두르는지라 급소를 물지 못하고 간신히 뒷 목을 물었다. 아키타견은 자신의 뒷 목을 문 진돗개를 매달고 엄청난 빠르기로 머리를 휘저으며 링 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진돗개도 만만치 않아서 악착같이 아키타견의 목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그때쯤엔 아키타에게 목을 물린 진돗개는 이미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아키타는 그것을 모르는지 자신의 목도 물린 채 진돗개를 물고 계속 광란의 몸짓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아키타견의 움직임이 뚝 끊겼다. 그렇게 날뛰던 아키타견이 동작을 멈춘 채 우뚝 서더니 물고 있던 진돗개를 바닥에 툭 내려놓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진돗개는 벌써 죽어 있었다. 그때, 진돗개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아키타견이 갑자기 헉하는 숨소리를 뿜더니 하반신이 휘청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조중구는 아키타견의 최후를 목격했다. 약효가 나타난 것이다. 뒷 목을 물고 있던 진돗개는 아키타가 무너지자 오히려 승부를 낼 때는 지금이라는 듯 세차게 머리를 휘저었다. 아키타는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사람들은 잘 나가던 아키타가 쓰러지자 환호와 탄식이 절로 나오며 발을 굴렀다. 결국 황 총무의 경기 중단 선언이 있은 후 견주들이 들어와 개들을 끌고 나갔다. 진돗개가 한 마리가 죽기는 했으나 아키타가 쓰러진 데다 승부가 날 때까지 물고 있던 진돗개 팀의 승리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서로 아쉬움의 한숨을 쉬거나 웃으며 대화를 하느라 작은 소란이 일었다. 개중에 두 게임의 베팅에 모두 성공한 곽 사장은 단연 활기가 넘쳤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조중구에게서 커닝한 효과를 본 것이다. 조중구는 얼른 백발의 서 회장의 동태를 살폈다. 앞자리에 앉은 서 회장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조중구는 이번에도 서 회장이 베팅에 성공했으리라 생각했다. 조중구는 이겼어도 이겼다는 기분이 나지 않았다.

게임이 끝나고 몇 분이 지난 후에 황 총무가 사람들 앞에 섰다.

"베팅에 성공하신 분과 배당액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도사들끼리의 시합에서 이긴 분들을 발표하겠습니다. 2번 회원님, 4, 8. 21, 32번 회원분들입니다. 배당금은 계산 결과 베팅액의 두 배 반입니다."

황 총무가 말을 잠깐 쉬자 2번 회원인 곽 사장이 옆자리의 서 회장과 악수를 나누며 환히 웃음을 터트렸다. 황 총무의 발표가 이어졌다.

"두 번째 경기의 승자는 역시 2번 회원님, 57. 92122번 마지막으로 32번 회원님이십니다. 두 번째 경기는 베팅에 성공하신 분들이 많았던 관계로 다른 때 보다 배당금이 적습니다. 삼천만 원을 베팅하신 2번 회원이신 곽 사장님의 경우, 다른 때 같았으면 거의 일억에 육박할 배당금이 이번 시합에선 육천만 원입니다. 이천만 원을 베팅하신 32번 회원이신 조중구 회원님도 마찬가집니다. 배당금이 사천만 원입니다. 즉 배당금은 베팅액의 두 배가 되겠습니다."

조중구는 두 게임에서 받은 배당금의 합을 얼핏 계산해 보았다. 첫 번째 경기에서의 이천오백만 원과 두 번째 경기에서 사천만 원이이니 합이 육천오백만 원이었다. 그중에 종잣돈을 빼고 나니 삼천오백만 원을 번 셈이었다. 조중구는 결국 고달수의 정보로 이천만 원을 딴 것이다. 조중구는 고달수에게 칠백만 원을 줘야 했다. 그러나 아예 천을 채워서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두 번째 경기는 기권을 할 참이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이천만 원은 공으로 생긴 돈과 같아서였다. 그때, 시합이 끝나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자 곽 사장이 재빨리 조중구에게 다가왔다.

"이래서 공부 잘 하는 학생 옆에 앉아야 한다니까. 하하. 조 박사 고맙소. 커닝한 효과가 있어 나도 성적이 조금은 올랐소. 하기야 이제껏 잃은 액수에 대면 조족지혈이지만... 여하튼 오랜만에 두 게임을 다 이기니 기분은 좋소이다."

"공부를 잘 해서가 아니라 연필을 잘 굴린 겁니다. 답을 모를 때는 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연필을 잘 굴리는 것 자체가 벌써 실력이 아니겠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야 연필을 다스로 굴린들 어디 한 문제나 맞추기나 하오?"

"하하, 다음 시합 때는 곽 사장님이 연필을 굴리시지요. 곽 사장님도 반드시 정답을 찍으실 겝니다. 다음엔 제가 커닝을 하겠습니다."

"하하, 과연 그럴까요?"

조중구는 가능한 한 누구와도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투견장을 몇 번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다른 사람의 부러움이나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이다. 마침, 황 총무의 폐장을 알리는 멘트가 있기에 조중구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그런 조중구에게 이번엔 서 회장이 말을 걸어왔다.

"어이, 조 박사. 오늘은 자네의 베팅 액수가 어째 약하지 않았는가?"

", 회장님. 오늘은 어째 확신이 안 서더군요. 두 게임 다 영 자신이 없더라구요."

"허허, 나 역시 그랬네. 다른 때와 달리 이거다 하는 마음이 전연 생기지 않더구만. 그래서 난 두 게임 다 포기를 했었네."

", .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회장님도 그러셨다니 어쩌다 그런 날이 있나 보군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날의 일진을 따지는 거겠지. 여하튼 구경은 재미있게 했으니 됐지."

조중구는 그제야 1 번인 서 회장이 승자의 명단에 끼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그러다가 그가 오늘 베팅을 하지 않은 속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생각하고말고 할 것도 없었다. 서 회장이 오늘 베팅을 하지 않은 것은 보나 마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져 주거나 쉬어가면서 먹자는 철저한 계산의 결과일 것이었다.

조중구는 자신이 몸을 사리 듯 서 회장도 베팅의 성공률이 너무 높지 않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목적은 같아도 방법은 서로 달라서 조중구는 지는 쪽에 베팅을 해서 실패를 나타내려는 것과 달리 서 회장은 아예 베팅을 하지 않는 것을 택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베팅을 하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으니 그것도 나뿐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서 회장이 약으로써 승부를 조작한다는 사실을 아는 회원은 조중구 말고는 없는 지금으로선 한 마디 말 조차도 항상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할 것이었다. 행여 실언이라도 해서 서 회장이 눈치를 챈다면 조중구 자신의 신변까지도 위험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가능한 한 서 회장과의 대화는 피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이제 겨우 시작한 게임이고 애초에 생각한 목표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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