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4. 동업자들(4) 놓을 수 없는 불안

fiction-google 2024. 2. 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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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토요일의 투견 시합은 구로동에 있는 서 사장의 자동차 서비스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근로자들이 모두 퇴근한 후라 주위의 공장들은 이미 어둠에 묻혔고 서 사장의 공장도 밖에서만 봤을 때는 사뭇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공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딴 세상처럼 밝은 조명이 투견장인 링 안팎을 비추고 있었다.

투견장엔 이미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회원만도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출석률이 지난여름보다 배에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판돈 역시 몇 주 사이에 엄청 늘어났다. 신규 회원도 오륙 명 불어나고 분위기도 고조되어 하루 두 게임의 총 베팅액이 십억 원에 달했던 것이다.

고달수는 이미 삼십 분 전에 투견장인 서비스 공장 옆에다 트럭을 세워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시합에 나갈 진돗개를 넣은 개장은 천막으로 덮어씌워 밖에서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다른 견주들의 차들 역시 천막을 씌운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 황 총무가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의 시합에 개를 데리고 나갈 견주는 고달수까지 모두 네 명이었다. 고달수는 저쪽에 세워진 도사 전문인 동칠이의 트럭을 보았으나 차에서 내려 다가가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시합 전에는 견주끼리의 모든 대화는 계약할 때 이미 금지 사항으로 못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까 봐서였다.         

고달수가 자신의 트럭에 앉아 시합을 기다리는 동안 실내에서는 만장한 구경꾼들 앞으로 황 총무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금년 들어 가장 많은 회원님들이 참석을 해 주신 오늘의 시합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합은 도사 대 아메리칸 핏불의 대결입니다. 여러 회원분들은 도사는 매주 보셨을 것이나 아메리카 핏불은 처음 보실 겁니다. 이 개로 말씀드리... ."

"잠깐."

황 총무가 아메리칸 핏불에 대한 설명을 막 시작하려는데 서 회장과 나란히 앉아 있던 곽 사장이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 곽 사장님께서 할 말씀이 있으신지요?"

", 별것 아니오만 이제껏 핏불을 본 적이 없다는 총무의 말이 무슨 말이요? 이 주 전에도 핏불 대 핏불의 경기를 하지 않았냔 말이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말을 마친 곽 사장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라는 듯 앉은 채 뒤를 슬그머니 돌아보았다.

", 그건 곽 사장님께서 아메리칸 핏불과 그냥 핏불을 혼동하신 겁니다. 이제껏 여러분이 보신 핏불은 핏불의 원종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메리카 핏불은 그냥 핏불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핏불과는 생김새는 비슷해도 전연 다른 품종으로 개량이 된 개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핏불을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투견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빨리 좀 봅시다."

곽 사장의 재촉이 있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황 총무는 처음에 하려던 설명을 멈출 뜻이 없는 듯 설명을 계속했다.

"이제 곧 보시게 되겠습니다만 아메리카 핏불은 그냥 핏불 보다 몸 무게가 십 킬로나 더 나가서 삼십오 킬로 정도이며 핏불로서는 대형에 속합니다. 거기에 대항하는 도사견은 아메리카 핏불의 두 배가 넘는 팔십오 킬로그램입니다. 게다가 워낙 크고 투견 경력도 화려한 녀석인지라 보통 핏불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시합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올 개는 근성과 투지가 타고난 아메리칸 핏불이니 만큼, 기대를 해 볼만한 시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설이 길었었던 점 죄송합니다. 그럼 시합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선수 견들을 보시겠습니다. 자아, 도사와 아메리칸 핏불의 견주들은 입장하세요."

황 총무의 지시를 기다리던 견주들이 반대쪽에서 각각 도사와 아메리칸 핏불을 끌고 입장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좌우에서 들어오는 두 마리의 개들에게 쏠렸다. 그 눈들 중에는 조중구의 눈도 있었다. 도사를 살피던 조중구는 그 개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도사보다 엄청나게 크고 살이 쩠다는 것에 주목했다. 투견에 대해서 아직은 무지한 조중구의 눈으로도 너무 크고 무거워 순발력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도사에 맞서 싸울 아메리칸 핏불은 일생을 헬스클럽에서 근육 단련만 한 난쟁이 보디 빌더 마냥 어깨가 짝 벌어지고 온몸이 모두 근육 덩어리였다. 게다가 자기보다 훨씬 큰 도사를 노려보며 버티고 선 자세는 흡사 트레버 버빅을 상대하는 마이크 타이슨을 보는 듯했다.

", 개들을 다 보셨으리라 생각하고 이제부터 베팅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편의상 도사는 A, 아메리칸 핏불은 B라 칭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도사는 A 아메리칸 핏불은 B입니다. 자 베팅들 하세요. 시간은 삼 분입니다."

황 총무의 장황한 멘트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수첩을 펼쳐놓고 연신 두 마리의 개를 바라보며 어느 쪽이 우세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어제 고달수로부터 고기를 먹은 도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같은 도사끼리의 시합이었다면 결코 고기를 먹은 개를 분간하지 못했을 정보였다.

조중구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B라고 쓰고 삼천만 원을 베팅했다. 어차피 회원이 늘어나 베팅에 성공을 했다 해도 B에다 승부를 건 사람도 많을 것이어서 배당금 역시 많지 않을 것이었다. 황 총무가 내미는 플라스틱 통에 사인한 종이를 넣은 조중구는 앞 줄에 앉은 서 회장의 백발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의 전례로 보아 핏불이 도사를 이기는 것은 보지도 못했고 들은 바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사의 상대로 핏불을 내 세워 시합을 기획한 서 회장의 속셈이 이상했던 것이다. 하기야 지금의 아메리칸 핏불은 보통 핏불보다 훨씬 크고 탱크 같은 전투력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엄청난 체격 차이를 극복할 만한 특별한 무기가 없는 한 아메리카 핏불이 도사를 이기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누가 보더라도 도사의 승리가 예측되었다. 조중구 자신만 하더라도 고달수의 정보가 없었더라면 두말없이 도사 쪽에 베팅을 했을 것이었다.

', 그렇구나. 서 회장이 바로 내 생각 같은 사람들의 심리를 노리고 도사에게 약을..... 그래, 맞아. 지난여름에도 롯드 와일러와 진돗개의 싸움에 써먹든 그 수법을 다시 한 번 써먹겠다는 심사로군. 하긴 그때 서 회장과 내가 재미를 좀 보긴 했었지."

조중구는 그제야 서 회장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누가 보아도 유리한 도사 쪽에 더 많은 베팅이 몰리기를 꾀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도사에게 약을 먹였으면 그걸로 뻔한 결과를 얻을 텐데 무엇 때문에 더 크고 살찐 도사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맞다. 너무 완벽한 도사가 지게 되면 사람들이 의심을 살 염려가 있으니 외관상 하자가 있는 도사를 골랐구나. 그렇다면 저 큰 덩치는 왜일까? , 그것 역시 무언의 유도책이겠군. 덩치가 클수록 힘에서 우위로 보이니까. 어쨌든 결과를 보면 알겠지.'

"베팅을 다 하신 것 같으니 곧바로 경기를 시작합니다. , 견주분들은 링 안으로 들어오세요."

삼 분의 짧은 시간에 생각이 많았던 조중구가 황 총무의 우렁찬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링 안에 들어선 두 마리의 개들은 시합 개시의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서로 상대에게 달려들려고 앞발로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

", 준비들 되셨으면..... 수건을.... 푸세요."

황 총무의 말이 떨어지자 견주들은 동시에 수건을 풀었다. 그런데 먼저 튀어나온 개는 아메리칸 핏불이었다. 체구가 도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진 탱탱 공과 같아서 순발력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핏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링의 절반을 넘어 출발선에서 이제 막 발을 떼려는 도사의 턱밑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번개같이 도사의 목 밑을 물어버렸다. 덩치 큰 도사가 미쳐 싸워 볼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작은 체구로 턱밑을 파고든 것이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번개같이 도사의 목 밑을 물어버렸다.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기로 유명한 핏불이 목줄기를 제대로 물었으니 더욱 놓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아메리칸 핏불은 대궐을 받친 주춧돌처럼 딱 버티고 서서 도사 밑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메리칸 핏불은 입을 자물쇠로 채운 것처럼 도사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경기가 시작된 지 채 사오 분이 지나지 않을 때였다. 드디어 도사의 입에서 검푸른 혀가 늘어지며 하체가 무너져 내렸다. 황 총무가 황급히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견주들이 급히 뛰어들어 불이 붙은 횃불을 아메리칸 핏불의 얼굴에 갖다 댔다. 개 털이 그을리는 냄새가 장내에 퍼지자 그때에서야 아메리칸 핏불이 물러났다. 집요한 성격을 지닌 개였다.

이번 경기는 순발력이 워낙 좋은 아메리칸 핏불과 워낙 덩치가 크고 살이 쪄 순발력이 제로에 가까운 도사가 만난 것이 승패를 쉽게 가른 원인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싱거운 결과였고 어쩌면 참으로 멋진 경기였는지도 몰랐다.

조중구는 첫 번째 경기가 워낙 빨리 끝나자 도대체 이 게 무슨 조환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바엔 도사에게 약은 무엇 하러 먹인단 말인가? 이런 결과가 나리라고는 아마 서 회장 측에서도 전연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조중구는 얼른 서 회장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옆자리의 곽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만으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승패를 떠나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시합이었습니다. 도사 대 아메리칸 핏불의 대결이라면 용호상박의 볼만한 시합이 될 줄 알고 기획했던 시합입니다만, 도사가 미쳐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급소를 물려버려서 패했습니다. 그럼 다음 경기를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회원이 늘어나 한결 신이 난 황 총무가 힘찬 소리로 경기에 임할 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조중구는 고달수의 풍산개와 싸울 견종이 궁금했다. 그런데 황 총무의 입에서 나온 견종은 전연 의외의 개였다.

"이번 시합에서 멧돼지 사냥이 전문인 풍산개와 맞설 개는 도사와 불독 사이의 믹스견입니다. 본래. 불독과 마스티프를 교잡해 만든 불 마스티프라는 투견이 이미 있습니다만 지금 나올 개는 부산의 어떤 투견인이 만든 한국식 불도사 올시다. 불도사란 물론 불독과 도사의 합성어지요. 이 개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불독의 끈질김과 도사의 전투력을 배가시키려고 만든 견종입니다. 하지만 아직 혈통 고정이 되지 않았으니 견종이라고 하기도 뭣 하군요. 어쨌든 이 개를 일단 소개를 하겠습니다. 양쪽 견주는 입장하세요."

황 총무의 설명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좌우의 출입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좌측에서는 고달수가 풍산개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오른쪽으로 쏠렸다. 풍산개는 이미 여러 번 보았으니 보나 마나 오른쪽 개가 황 총무가 말하는 불도사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도사란 개의 모양과 털 빛깔이 국적 불명의 낯선 모습이었다. 우선 생김새만 해도 그랬다. 키는 불독보다는 훨씬 크지만 도사보다는 작아서 풍산개 정도이고 가슴과 근육도 불독만큼은 아니어도 도사보다는 우람해 보였다. 또한 머리와 입이 커서 도사의 장점을 물려받았고 다리도 불독 보다는 훨씬 길었다. 그리고 색깔도 반씩 닮아서 도사의 붉은빛 털에 흰 얼룩무늬가 섞여 있었다.

이런 모습의 개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개의 전투력을 가늠하느라 풍산개와 비교하기에 바빴다. 겉모습만 본다면 확실히 기괴하게 생긴 불도사가 사람들 눈에는 훨씬 용맹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이제껏 전력으로 봐온 풍산개의 승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옆 사람과 소곤거리며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황 총무는 보고도 모른 채 하고 있었다. 본래의 규정상으로는 제지 대상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미 해답을 입수한 조중구에겐 어려운 시험이 아니었다. 그래서 베팅하라는 황 총무의 멘트를 듣기도 전에 수첩을 꺼내들었다.

"충분히 살펴보셨으리라 사료됩니다. 고로 이제 베팅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풍산개가 A. 불도사를 B라 하겠습니다. 풍산개가 A. 불도사가 B입니다. 확실히 인지하시고 베팅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삼 분. 베팅액은 적립금 범위에서 무제한입니다."

조중구는 이번에도 역시 삼천만 원을 베팅했다. 사실은 해답을 아는 게임에서는 더 많은 액수를 베팅해 왔으나 첫 번째 게임에서 이미 성공을 했으므로 의심을 받을 짓을 최대한 삼가한 행동이었다.

모든 사람의 베팅이 끝나고 황 총무의 구령에 맞춰 두 마리의 개들이 링 안에서 맞붙었다. 이 한 판 싸움을 위해 힘을 길러왔던 두 마리의 개들은 시작부터 비축된 모든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으며 맹렬한 기세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불도사는 불도사 대로 커다란 머리에 달린 입을 열어 풍산개를 위협했고 풍산개는 코브라의 이빨을 피하는 몽구스처럼 재빠른 순발력으로 대항했다.

그러나 처음엔 팽팽하던 싸움이 시간이 갈수록 풍산개에게 불리한 듯 보였다. 풍산개는 치명적 부위를 물리지는 않았으나 불도사의 입이 스치는 곳마다 마구 찢겨 나간 것이다. 물론 풍산개도 불도사에게 밀리지 않아서 그만큼 주고받았지만 워낙 가죽이 불도사에 비해 약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풍산개의 흰 털 곳곳에 피가 묻어서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도사와 풍산개의 시합은 누가 보아도 백중세여서 풍산개의 피만 아니라면 두 마리의 개들은 그야말로 막상막하의 싸움이었다.

첫 번째 시합인 도사대 아메리칸 핏불의 대결이 너무 빨리 끝나서 일까? 그 시간을 보충하려는 듯 불도사와 풍산개의 싸움은 지칠 줄 모르고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두 마리 모두 체력과 순발력을 앞세워 급소를 상대에게 노출시키지 않고 싸우기 때문이었다. 불도사가 만약 불독을 더 많이 닮아 다리가 짧았다면 이런 순발력은 어림없는 일일 터이고 도사를 더 닮았다면 제 몸을 내 주고서라도 이미 풍산개의 급소를 물고 있으리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던 두 마리의 개들 사이에 갑자기 이변이 일어난 쪽은 불도사였다. 풍산개를 향해 입을 힘껏 벌리고 돌진하던 불도사가 철창을 들이받은 것이다. 그런데 철창을 너무 세게 받아서 인가 일어서는 불도사의 행동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였다. 이것은 그제서야 약효가 나타난 것이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불도사가 공격을 하는 것에 맞춰 몸을 스프링처럼 튕긴 풍산개가 땅에 바닥을 딛자말자 상대의 허점을 눈치챈 듯 단번에 달려들었다. 풍산개는 본능적으로 불도사의 급소인 턱 밑을 물더니 엉덩이를 낮추어 세게 당긴 다음 좌우로 머리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흔든다기보다는 어쩌면 미친 듯 휘졌는다는 표현이 좀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본래 흰빛 몸통인 풍산개가 온통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광란하 듯 몸부림을 치니 불도사 쪽에 베팅 한 사람들 눈에는 그 광경이 사뭇 끔찍하고 섬찟했다. 그러나 풍산개 쪽에 베팅 한 사람들의 눈에는 람보가 베트콩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영화를 감상하듯 통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중에 몇몇 사람은 주먹으로 허벅지를 치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조중구 역시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불도사가 철창을 들이받는 순간에 이미 속으로 스트라이크를 외쳤던 것이다.   

"시합 끝. 풍산개 승리. A의 승립니다. 견주들은 빨리 장내를 수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원분들은 계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황 총무가 자리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비로소 화장실을 가거나 아는 사람들과 웃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조중구는 덤덤하게 풍산개를 수습해 가는 고달수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베팅액은 예상컨대 맞힌 사람을 반으로 치더라도 최소한 두 경기에서 오륙천만 원은 또 땄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집안 문제는 다 해결이 날 터였다.

", 조 박사. 오늘 성적은 어떻소?"

막 생각에 잠기려는 조중구 앞에 곽 사장이 서 있었다.

", 그 게... 죄송합니다."

"하핫, 척 보니 또 맞혔구려. 한데, 베팅에 성공한 사람이 죄송할 게 뭐 있소?"

"사장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 나는 본전이오. 첫 시합에 이기고 다음 시합엔 졌으니까 말이요. 하핫."

"그럼, 저기 회장님께선?"

"저 양반은 조 박사의 시험지를 훔쳐본 듯 항상 딱딱 때려 맞히는 양반이라 당연히 오늘도 두 게임 다 이겼지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 아무리 용한 점쟁이가 덤벼도 회장과 조 박사를 당할 수는 없을 거요. , 점쟁이가 그리 용하면 놀고먹지 무엇 하러 점쟁이를 하겠소만..... 허헛."

곽 사장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황 총무가 사람들 앞으로 나왔다.

"베팅에 성공하신 회원분과 배당금을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첫 경기의 승자인 아메리칸 핏불에 베팅하신 분은 많은 회원분들 가운데 불과 다섯 분만 맞추셨습니다. 바로 1, 291332번으로 다섯 분이십니다. 고로 배당률도 높습니다. 배당금은 삼천만 원을 베팅하신 1, 32번 회원님이 일억 팔천만 원씩이고 2, 13번 회원님이 육천만 원씩입니다. 9번 회원님은 삼천만 원입니다.

", 총무 말처럼 생각 보다 핏불에게 베팅 한 사람이 너무 적었나 보구먼. 천만 원을 베팅 한 내가 육천만 원을 땄으니 말이야. 이리 되면 두 번째 시합에 베팅 한 천만 원을 잃더라도 결국 사천만 원을 딴 꼴일세. 허헛 이 맛에 내가 투견장을 찾는다니까. 허헛."

황 총무가 들고 있던 종이의 뒷장을 찾느라 잠시 말을 끊는 사이에 곽 사장이 한 말이었다. 곽 사장의 반쪽 베팅의 성공을 축하하듯 사람들이 와아 웃었고 몇 사람은 박수까지 쳤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풍산개에 베팅하신 분이 배당금의 수혜자가 되겠습니다. 배당금을 받으실 분은 1, 3, 78151822232532번으로 모두 열 분의 회원이십니다. 베팅에 성공하신 분들이 약간 많으나 베팅 액수가 높았던 관계로 그래도 고 배당금에 속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 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1번 회원이신 회장님이 일억 오천만 원 32번 조중구 회원님이 구천만 원, 3번과 25번 회원님이 각각 육천만 원이며 7, 15, 18번 회원 님이 각각 삼천만 원입니다. 그리고 82223번 회원님이 각각 천오백만 원씩 배당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서 회장의 배당금이 일억 오천만 원이라는 소리에 조중구는 가슴이 뜨끔했다. 이제까지 삼천만 원 이상의 베팅을 삼가던 서 회장이 드디어 조중구 자신을 의식해 베팅액을 올린 것 같아서였다. 조중구 자신이 베팅 한 금액이 삼천만 원이고 그래서 돌아온 배당액이 구천만 원이었다. 그렇다면 서 회장은 오천만 원을 베팅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조중구는 얼핏 오늘의 수입을 대강 계산해 보았다. 첫 경기에서 일억 팔천만 원, 두 번째 경기에서 구천만 원이니 합이 이억 칠천만 원이었다 그중에 종잣돈을 빼고 나면 이억 천만 원이 남았다. 조중구는 고달수에게 정보비로 얼마를 줘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첫 번째 경기도 사실 고달수의 정보에 의존해 베팅 한 결과이나 그렇다고 조중구가 원한 정보도 아니었고 만약 도사 대 도사의 경기였다면 베팅할 개를 알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약 도사 대 도사였으면 피아를 구별 못했을 테니 삼천만 원이나 베팅할 이유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 천만 원을 더 주지. 그러면 고달수도 별 불만이 없을 테지.'

조중구가 생각에 빠져 잠깐 주저한 사이에 사람들은 이미 투견장을 떠나고 있었다. 조중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출입구로 향했다.

"여보게, 조 박사."

조중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우뚝 섰다. 서 회장의 목소리였다. 몇 사람 건너에서 서 회장이 조중구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재미 있게 보았나?"

", 회장님."

"허허. 재미가 있었다니 다행이군. 그런데 요즘 도 군과 신군은 도통 보이지가 않더군. 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그 두 사람도 좀 보라고 권하게나."

", 회장님. 그러지 않아도 같이 오려고 했습니다만 두 친구 모두 회사 일에 너무 바빠서요. 다음번엔 가능한 한 같이 오도록 하지요."

"그런데 말일세. 세상이 참 좁더구먼."

"?"

"도금동 군이 동의당 도신우 사장의 아들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신동우 군 역시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의 아들이더란 말일세."

"? 그건 어찌 아셨습니까?"

", 도금동 군도 그렇지만 신동우 군도 우연히 알게 된 거라네. 지난번 내가 공장 부지로 내놓은 땅을 보려고 신 사장과 함께 왔더구만.... 그래서 알게 된 거지."

", 그렇군요. 저도 공장을 옮길 거란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면 회장님의 땅이 검단에 있겠군요."

"어찌 알았나? 자네 말이 맞네. 검단에 새로 조성된 땅이 몇 만 평 있네. 이번에 그걸 분할해서 매각하려 한다네."

조중구는 신 회장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공장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어느새 서 회장의 차가 시동을 건 채 운전수가 뒷좌석의 문을 잡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로 다가가던 서 회장이 문득 조중구를 돌아보았다.

", 그리고 자네의 연전연승의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더군.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고.... 허허."

", . 저 역시 회장님의 베팅 성공률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언젠가는 그 비결을 서로 알게 되겠지. 하긴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좋은 일은 없겠지만.... 허허."

"그럴까요? 말씀 감사합니다. 회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뒷좌석에 몸을 싣는 서 회장을 향해 조중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차로 돌아섰다. 그런데 서 회장의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 듯 황백구 총무의 차가 슬그머니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차들이 거의 다 빠질 무렵 조중구도 서둘러 공장 문을 나섰다. 공장 문을 나선지 일 분이 채 안 되었을 때, 조중구의 휴대폰이 울렸다. 차의 속력을 낮춘 조중구가 폴더를 열어보니 조금 전의 고달수였다.

"웬일이십니까?"

조중구는 고달수가 전화를 건 까닭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다.

", 내일쯤 전화를 하려다 아예 지금 합니다."

"................"

"시합이 끝나고 곧바로 개를 수습해 집으로 가는 사이 첫 번째 경기를 마친 동칠이란 놈이 전화를 했습디다. , 고기를 먹었다는 도사의 주인 말이오."

"그래서요?"

"오늘 아침에 웬 낯선 두 사람이 자신의 개농장엘 와설랑 나와의 관계를 꼬치꼬치 캐묻더랍니다."

"고달수 씨와 그 사람 사이를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그래서요?"

"그래서 십여 년 전부터 투견 거래 관계로 아는 사이일 뿐이라고 했다고 합디다. 그랬더니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느냐? 서로 통화한 적이 있느냐? 그것이 언제냐 하고 꼬치꼬치 캐묻더랍니다. 그래서 아는 범위 안에서는 다 말했답니다. 묻는 사람들이 워낙 험하게 생긴 통에 대답을 안 할 도리가 없더랍니다."

"먼저 번에도 도사 전문이라던 고달수씨의 친구분이 거래를 끊기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서 회장 쪽에서 고달수씨와 그 사람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나 조사하려던 것일 겝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소만 어쨌든 그 사람이 오늘 경기에 개를 공급한 걸 보면 나 사이와의 의심은 하지 않은 것 아니겠소?"

"그래도 앞으로 고달수씨의 행동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조금 전 서 회장이 내게 슬쩍 무슨 암시를 합디다. 하지만, 서 회장이 아직은 우리들이 하는 일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은 틀림없어요. 그러나 앞으로 우리의 전화부터 조심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할 것 같소, 아예 생각난 김에 이 전화기를 버리겠소. 그래야 만약 내가 걸려들더라도 선생과 나와의 관계를 모를 것 아니오?"

"좋습니다. 그것도 한 방법이지요. 저도 고달수씨와의 통화 기록을 모두 삭제하지요. 그리고 꼭 연락이 필요한 경우 서로 공중전화로 연락을 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지요. 선생을 믿고 있소. 앞으로 정보 이외의 연락은 하지 않겠소."

"월요일에 삼천을 보내지요."

"? 삼천씩이나 말이요?"

"괜찮습니다. 받아 두세요."

전화기를 내려놓은 조중구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심란했다. 그래서 아까 서 회장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곰곰이 분석해 보았다. 서 회장이 한 말의 요점은 두 가지였다. <연전 연승의 비결>이 궁금하다, <그 비결을 서로 알게 되면> 서로에게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속에서 서 회장이 막연한 의심은 하되 비밀의 실마리를 눈곱만큼이라도 캐냈다는 뉘앙스는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언젠가는 밝혀내고 말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현구와 향숙이 문제는 해결되었고.... 아버지도 은퇴를 하시라고 해야겠군. , 이제야 집안 일이 좀 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판에 이런 조짐이 나타나다니.... 앞으론 좀 더 신중하게 베팅을 해야겠구나. 그런데, 오늘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생겼군. 고달수에게 줄 돈을 빼고도 단 한 시간 만에 일억 팔천만 원이라니? 이제 한두 번만 더 하면 강남의 대형 아파트로 갈 수 있겠는데..... 그런데 왜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든단 말인가?'

조중구는 차를 출발시켜 공장 지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영등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차창으로 초가을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도림천쯤에 이르자 앞 창을 때리는 빗방울의 숫자가 점점 더 늘었다. 조중구는 와이퍼를 돌렸다. 비는 와이퍼에 밀려 거리의 요란한 네온 불빛과 섞여서 혼란스러운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중구는 문득 그 혼란한 세상 속에 자신도 섞여 마구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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