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3. 투견꾼들(4) 세 친구

fiction-google 2024. 2. 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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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 개들이 보통 개와 다르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보통 개들이야 우리 냄새만 맡아도 동작 그만 아니냔 말이야. 야 철구, 이 소리 들리지? 겁없는 소리 말이야."

"정말이다. 하지만 구택이 말로는 확실히 가두었다니까 일단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고."

"그러지. 우리가 온 목적도 그거니까. 하지만 조심은 해야 될 거다. 이놈들은 우리가 개장사라는걸 무시하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이런 경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구먼."

고달수와 박철구는 소리가 나는 컨테이너 쪽으로 다가가 가만히 작은 창문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이 어두워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를 잠시 기다려야 했다. 두 사람이 어둠을 가만히 주시하는 사이 갑자기 뒤집어질 듯 컨테이너가 왈칵 흔들리더니 창문에 웬 괴물의 주둥이가 불쑥 나타났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기절할 듯 놀라 후다닥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창문이 작다고 해도 도사견도 충분히 출입할 정도의 크기인데 얼굴은커녕 주둥이만 간신히 보였으니 저 개 전체의 크기는 얼마나 될 것인가? 개장사 삼십 년의 두 베테랑 개장수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가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서로 등을 밀며 컨테이너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뒤로 물러난 개가 보이긴 보였다.

한데 그걸 그냥 개라고 인정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결국 두 사람이 그 물체를 자세히 살핀 결과 의견의 일치를 본 말은 괴물이란 단어였다. 정말로 그 개는 괴물이란 말에 걸맞게 크기와 모양이 괴물의 자태였다. 그 괴물 개는 귀를 다쳤는지 붕대로 두 귀를 싸맸고 다리도 곳곳을 붕대로 감고 약을 바른 흔적이 있었다.

"저게 개라면 틀림없이 지옥문을 지키던 개가 이 세상으로 탈출한 것일 거야."

고달수가 문학적 소양이 담긴 의견을 조심스레 내놓았다.

"아이고, 그놈, 엄청난 대물이네. 한마디로 물건이다. 물건."

박철구는 극히 현실적인 동남쪽 지방 사람들의 논평을 했다.

지옥의 문지기 개를 본 직후에 고달수는 창자가 찌르르르 울리는 감동이 몰려와 잠시 눈을 감았다. 세상에 이런 개가 있으리라 상상도 못해 본 것이 못내 원통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개가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았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지옥 끝까지 찾아다녔을 것이다.

한데.... 이 빌어먹을 양구택이란 놈이 어디서 이런 개를 구했단 말인가? , 그러고 보니 짐작이 가는 일이 있긴 있었다. 재 작년 양구택과 중국을 몇 번 같이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때 고달수 자신은 풍산개를 구하려고 갔었지만 양구택은 그냥 사업 아이템을 찾는다는 핑계로 먹고 마시는 곳만 골라 다녔었다. 결국 풍산개를 구한 고달수 자신은 중국행을 멈추었지만 양구택은 그 후에도 혼자서 대련이나 연변으로 계속 쑤시고 다니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바로 그 시기에 이런 괴물 개를 구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고달수는 이런 개의 종자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풍문 자체를 들어 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 이놈이 결국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양구택 이놈이 이런 어마어마한 개를 구하다니.... 이거야 풍산개 백 마리가 있은들 비교가 되는 일인가? 아니 백 마리가 뭐냐? 천 마리 아니, 만 마리와도 비교할 수없는 개가 아닌가? 고달수는 자신도 모르게 호로록 한숨이 흘러나왔다.

", , 달수야. 여기 좀 와 봐라. 여기도 엄청난 놈이 있다."

고달수의 한숨소리에 맞춰 박철구가 긴박감 있는 새 소식을 알려왔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컨테이너 곁에 박철구가 쪼그리고 앉아 창살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간 고달수 역시 박철구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아이고, 이건 또 뭐냐? 이놈도 도사 두 배는 되잖아?"

"저길 봐라. 이놈이 새끼를 낳았다."

"그렇구나. 그럼, 이놈은 암캐라는 얘기구나. 암캐가 이렇게 크다니? 이거 구택이란 놈이 그동안 이런 핵시설을 지어놓고 우리도 모르게 세계를 정복할 야심을 키우고 있었구나."

"내 말이 그 말이다. 구택이란 놈이 학교 다닐 때부터 남다른 야망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난 그저 주먹으로 동남아 정도를 제패할 거라 생각했지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몰랐다."

"? 저기 저 강아지는 왜 다른 놈보다 더 크냐?"

괴물 강아지를 발견한 고달수가 박철구의 옆구리를 쥐어박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 정말이네? 저게 바로 돌연변이 현상이란 건가?"

"돌연변이든 자연변이든 이거 어쩌면 이 동네에 혁명적 사건이 일어날 조짐이다."

"그러게.... 이렇게 되면..... 개장사 삼십 년에 산전수전 다 겪고 또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 구택이 놈 꼬붕 노릇을 하게 생겼구나."

고달수와 마찬가지로 박철구 역시 괴물 개가 생생한 현실의 세계에 존재함을 확인하자 알 수 없는 패배감과 무언지 모를 희망이 마구 섞인 감정이 샘솟았다.

"구택이란 놈이 여태 우리를 속이고 이런 핵폭탄을 개발하고 있을 줄이야.... 이건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 , 달수야, 이제 이 실체를 안 우리의 다음 액션은 어떻게 취해야 하냐?"

"어쩌긴, 둘 중 하나지. 삼십 년 우정을 앞 세워 동업을 하게 하던지 아니면 만 천하에 까발려 신문과 방송기자들 등쌀에 갈 곳도 없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그러기 전에 투견 판은 우리가 구택이 보다 전문가 아니냐? 투견 판의 흥행은 우리가 더 잘 안단 말이다. 그러니 잘 구슬리면 항복할 거야."

"맞아, 그 자식이 우리에게 말은 막해도 사실 정은 있는 놈이잖아? 우리 어떻게든 구택이와 동업을 해보도록 하자. 저런 개가 있다 해도 구택이는 아직 진짜 돈이 되는 투견 판을 모르니까 어쩌면 우리들과 동업을 해야 할 거야. 그러면.... 저 개 한 마리면 우리들 셋이 부자 되기는 시간문제일 테지."

"가만, 이거 우리가 감동에 젖어 아까운 시간을 다 보냈구나. 우선 저 죽은 개들을 파묻고 보자."

고달수가 개들을 파묻을 연장을 찾느라 여기저기 눈길을 주다가 삽 한 자루를 발견했다.

"됐다. 구덩이를 멀리 가서 팔 것 있나. 저 죽은 개들 옆에 깊이 파고 쓸어 넣자."

"죽은 지 오래됐고 피도 안 뽑았으니 개고기로 팔긴 글렀구나."

박철구가 죽은 자신의 개들을 내려다보며 약간은 아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괴물 개가 있는 컨테이너 쪽을 바라보자 그까짓 좁쌀 같은 개들 쯤은 하등 아까울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 네 개니까 네가 파묻어."

고달수가 박철구의 발 앞에 삽을 팍 꽂더니 뒤돌아섰다.

"저런 의리 없는 놈. 이걸 파묻자면 한나절은 파야 할 텐데 나보고 파라고?"

"그럼, 파묻지 않으면 화장을 할래?"

"한두 마리도 아니고 저 큰 놈들을 다 묻자면 구덩일 얼마나 깊게 파야..... 아이고 나는 못해. 네가 도와준 데도 나는 못하겠다."

"그럼 어쩌겠다는 거야?"

"가만, 이것들은 저 바다에다 던져버릴까?"

"? 그거 좋은 수다. 하지만 썰물인지 밀물인지 알아야지? 허긴 밀물이건 썰물이건 버리면 결국 파도에 밀려가겠지."

박철구의 말에 고달수도 찬성을 했다. 바다에 던져버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기다려. 내가 트럭을 여기다 갖다 댈 테니까."

박철구가 재빨리 자신의 트럭으로 달려가 금세 개들의 시체 앞으로 후진을 해왔다. 고달수와 박철구는 개들을 앞발과 뒷발을 나누어 잡고 차례로 트럭의 짐칸에 던져 올렸다. 그런데 아무리 죽은 개라지만 죽은 개들의 꼴이 너무나 처참했다. 태반이 허리가 부러지거나 목이 씹혀 덜렁대고 어떤 놈은 머리통 자체가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 이게 바로 죽은 개꼴이로구나. 비참한 죽음이야."

마지막 시체를 던져올린 고달수가 손을 털며 한 말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홉 마리나 되는 투견이 단 한 놈에게 못 당하고 모조리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다니... 이건 싸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학살이야 학살."

"개값을 생각하면 조금 아까운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 개들이 당하지 않았으면 이번 일을 우리도 모르고 넘어갈 뻔했잖아? 그런 면에서는 이것들이 유공자 아니겠냐?"

"그러고 보니 그런 셈이군. 거기에 덧붙여 구택이란 놈이 다치지 않았으면 우리가 괴물 개의 정체도 몰랐을 테지."   

"내 어쩐지 그 자식이 퇴물 투견을 구해달라고 할 때부터 수상하더라니까."

"그러게 말이다. 여하튼 몰랐다면 모를까 저런 괴물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를 빼고는 혼자서 못 해 먹게 해야지. 그러자니 구택이란 놈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됐지 뭐냐?"

"싸울게 아니라 어떻게서든 좋게 손을 잡아야지?"

"그게 그 소리지.... 넌 어째 말귀를 못 알아먹냐?"

", 시끄러, 빨리 이거나 갖다 버리자."

박철구가 트럭을 바닷가 쪽으로 몰았다. 바닷가에 닿고 보니 마침 뻘밭이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박철구는 트럭의 꽁무니를 최대한 바닷물 가까이 들이댔다.

", 다행히 만조로구나. 지금 이것들을 버리면 곧 썰물을 따라 고기 밥이 될 게다."

"그럼 어서 던지자."

두 사람은 트럭 위로 올라가 죽은 개들을 하나씩 마주 잡고 그대로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바다에 던져진 개들은 파도를 따라 둥둥 떠돌았다. 개들을 다 버리고 난 두 사람이 다시 컨테이너로 돌아오니 낯익은 차와 웬 낯선 사람이 함께 서 있었다. 낯이 익은 차는 양구택의 차였고 낯선 사람은 배철권이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배철권에게 다가갔다.

"오라, 아까 아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러 갔다던 구택이의 후배라는 분이구려."

먼저 고달수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배철권도 얼른 손을 내밀었다. 박철구도 건성으로 손을 마주 잡았다.

"집으로 가는 중에 오신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보아하니 죽은 개들은 그새 다 처리하셨나 봅니다."

"하하, 그렇소."

"아들만 아니어도 저 혼자서 파묻을 수 있었을 텐데.... 애들 쓰셨습니다."

"천만에요. 듣기로는 저쪽 창고에 근무하신다고요?"

", 야간 경비를 맡고 있습니다."

"이곳엔 자주 와 보셨소?"

"몇 번 왔었지요. 이웃이라곤 여기 계신 양 선배님 밖에 없거든요."

"그럼, 혹시 아침에 개들이 싸우는 것을 보셨소?"

고달수는 혹시 이 사내가 개싸움을 목격했는지 궁금했다. 만약 보았다면 자신의 추리보다 좀 더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 보질 못했습니다. 본 것은 제 아들이지요."

", 그래요. 그럼 개들의 싸움에 대해 아들이 얘기합디까?"

"그건 아까 차를 타고 가면서 얘길 하더군요."

"그럼 혹시 도사견과 컨테이너 안에 있는 저 개 중에 어느 개가 먼저 덤볐는지도 말합디까?"

"글쎄요. 어느 개가 먼저 덤볐다기보다는 태산이가 도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물리기만 했다고 하던 데요?"

", 저 개의 이름이 태산인가 보군요. 한데 일방적이라 함은 저 개, 아니 태산이는 물리면서도 전연 반격을 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고달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양구택의 말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개가 도통 싸울 생각을 않는다는 말을 생각한 것이다.

"반격은커녕 계속 물리니까 우리를 뛰쳐 나가려고 난리였답니다."

"아하, 그래도 안 되니까 태산이가 마음을 바꿔 반격을 한 모양이구려."

"그것도 아닌 모양입디다. 태산이가 물려 죽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 아들이 갑자기 문을 열어버렸답니다. 태산이가 도망 가라고요."

", 흥분한 투견들이 있는데 문을 열어요?"

"철없는 아이 생각에 태산이가 죽을까 겁이 난 거지요."

"그래서요?"

"문이 열리자 도사들이 먼저 왈칵 쏟아져 나왔답니다."

"아하, 그래서 내 친구가 그 모양이 되었군요."

"개들이 먼저 덤벼든 것은 우리 아들이었어요. 양 선배는 우리 아들에게 덮치는 개들을 쫓으려다 되려 당했답니다."

"그래 아들은 다친대가 없소?"

'"어깨를 물렸으나 생각보다는 가벼운 상처여서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지요."

"그래도 도사견들에게 그 정도의 부상은 기적이지요."

"그 기적은 태산이가 만든 겁니다. "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고달수는 강한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세웠다. 박철구도 한발 다가들었다. 이제 곧 배철권의 입을 통해 중요한 정보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언 듯 든 때문이다.

"우리 아들의 다급한 소리를 들은 태산이가 벼락같이 달려와 도사들을 물어서 패대기를 치더랍니다. 아들 말로는 온순하던 태산이가 그 순간만은 사자처럼 변하더랍니다. 물면 무는 대로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양 선배의 팔을 물었던 개는 머리가 박살 나 죽었다더군요."

", 그래서 아까 개들을 들 때 그렇게 흐느적거렸구나. 척추가 모조리 부러진 거였어."

"맞아 대가리가 짓뭉개진 놈도 있었지."

고달수의 말을 이어 박철구도 끼어들었다. 이제야 확실히 자신이 준 개가 당한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배철권의 말인즉, 평화주의자인 태산이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라는 얘기였다.

"가만, 그런데 싸우지 않으려든 태산이가 댁의 아들의 다급한 외침에 갑자기 개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고 했지요?"

고달수도 정당방위에 무게를 두고 심증을 굳히려는 듯했다.

"그건 확실합니다만.... 왜 그러시는지요?"

".... 별일 아니오. 주인의 말은 듣지 않던 태산이가 댁이 아들을 구하려고 그렇게 갑자기 변했다는 게 신기해서 물어 본 거요."

", .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신지요. 개들의 사료와 물은 확인 했으니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근무 시간이 다가와서요.

", 고맙소. 우리도 지금 가려던 중이요."

배철권은 고달수와 박철구를 향해 고개를 꾸벅한 후 자신의 경비실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배철권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태산이와 동방불패의 경계하는 낮은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어라, 저놈들이 우릴 다시 겁주려고 하는구나."

"그러게.... 아무튼 약간 으스스한 게 생전 처음으로 긴장감이 도는군."

", 알아볼 것 다 알아봤고 덤으로 생생한 증언까지 들었으니 우리도 이만 가자."

고달수는 박철구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자신의 차를 향해 먼저 앞장을 섰다.

"가긴 가는데 저 괴물 같은 개를 생각하면 오늘 밤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구나."

"? 저 개를 보고 나니 머릿속에서 돈뭉치가 왔다 갔다 하냐?"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넌 안 그러냐?"

"철구 너처럼은 아니지만 탐이 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저건 어디까지나 구택이 개 아니냐. 허니까 침을 흘려야 소용이 없고 다만 투견판을 잘 아는 우리와 손잡도록 하는 수밖에 없어. 더 이상 말하지 마. 동업만 해도 우리로선 대성공이니까."

"그건 그렇지만.... 후유."   

올 때와는 반대로 고달수의 차가 앞장을 서고 박철구는 그 뒤를 따르기로 했다. 두 대의 트럭은 노을이 선명히 물든 서해를 뒤에 두고 부지런히 자신들의 집이 있는 시흥과 안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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