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2. 투견 게임(8) 조마조마한 마음

fiction-google 2024. 2.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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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끝낸 조중구는 방금 고달수로부터 들은 몇 마디를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고달수가 말한 내용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 지난주에 출전했던 진돗개들이 이번 주에 다시 출전한다. 둘째, 회장 영감은 출전할 개들에게 양고기를 먹이지 않았다. 셋째, 회장은 이제까지 거래하든 롯드 와일러 견주를 배제하고 다른 양견장을 택했다.

조중구는 세 가지를 회장 영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번 대회에서 베팅된 돈의 전부를 먹을 수 있었던 회장이었다. 참가자 모두가 롯드 와일러가 우세할 것으로 보였던 경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롯드 와일러에게 베팅이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난데없이 조중구라는 복병이 진돗개에 베팅을 하는 통에 자신은 얼마 먹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투견에 대해 잘 모르는 조중구라는 신입 회원이 어쩌다 찍은 재수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그 상황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진돗개 두 마리와 롯드 와일러의 재 대결을 말이다. 그것도 지난주에 롯드 와일러를 상대로 이긴 진돗개를 그대로 출전 시킨다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엔 진돗개에 베팅할 것이다. 산돼지를 사냥하듯 롯드 와일러를 공격하던 진돗개를 보았기 때문이다. 조중구란 놈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지난주 롯드 와일러에게 양고기를 먹였는데 혹시라도 견주가 눈치를 챈 것은 아닌가? 그래서 견주가 그 정보를 누설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거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먹는 꼴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진돗개는 그대로 쓰기로 하고 이번엔 안전하게 롯드 와일러의 견주는 바꿀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조중구는 다음 대목에서 막혀버렸다. 회장의 생각이 정말 그러면 진돗개는 반드시 져야 하고 지게 만들려면 약을 먹여야 한다. 그러나 고달수가 지켜본 바로는 진돗개에게 양고기를 먹인 적이 없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진돗개를 지게 할 것인가? 하기야,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일이 없는 세상이긴 하다.

진돗개에게 약을 먹이는 대신 상대 개에게 흥분제나 마약 성분의 약을 주사할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하드라도 발각될 염려는 전혀 없지 않은가? 사람이 아닌 동물의 시합에 약물 검사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

추측과 추리를 섞어 시합의 판세를 점쳐보든 조중구가 더 이상은 예측을 할 수가 없어서 단념을 하려는데 신동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 내일도 갈거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신동우의 첫마디였다.

"그럼 가야지. 어디서 만날까?"

", 난 내일 못 가겠다. 오늘부터 당분간 공장에 있기로 했다."

"뭐라고? 공장에 무슨 일 생겼냐?"

조중구가 황급히 물었다. 주말에 공장이라니?

"그런 일 아니니 걱정 말어. 다음 주부터 공장의 판금 시설을 확장한단다. 그럴려니 도면을 검토해야지. 감독도 해야 하고... 그러니 너나 갔다 오라고 전화한 거야."

"주말도 없이 일한단 말이냐?"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면 별 수 있겠냐?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난 집보다 여기서 먹고 자는 게 더 마음이 편해서야."

"네 맘 이해한다만 그럴려니 고생이지 뭐냐. 알았다. 고생해라."

"또 왕창 따라. 그래야 왕창 얻어먹을 거 아니냐? 금동이도 기대가 크더라, 하하."

"걱정 마라, 확률적으로 따져도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니까."   

"짜식, 그놈의 확률 타령은...."

통화를 끝낸 조중구는 다시금 내일의 시합에 신경이 쓰였다. 회장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이번 시합은 분명히 지는 쪽에 베팅을 해야 돈을 딸 수 있는데 진돗개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여기서 막히니 조중구는 답답했다. 어느 쪽에 베팅을 해야 하는가?

그때였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삼십 분 전에 통화를 했던 고달수였다.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의아한 생각에 조중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게 말이요, 아까 선생에게 전화를 한 직후에 총무라는 사람이 또 왔습디다."

"? 총무라니요? 심판을 보던 그 사람 말인가요?"

", 그 사람이 총무지요."

"그런데요?"

"총무가 하는 말이 진돗개 대신 다른 개를 내 보내라고 합디다."

"뭐라고요? 회장이 선택한 것을 총무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까?"

"회장이 바꾸랬다니 지시를 따를 수밖에요."

"무슨 개로 바꾼답디까?"

"내가 팔려고 내놓은 풍산개로 바꿔 출전 시킨답디다."

"그거야 회장 마음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요. 하지만 총무가 회장의 심부름을 온 것이 처음이거든요."

"? 그럼 총무가 그 개들에게도 고기를 안 줍디까?"

"그래서 내가 전화를 한 거지요. 총무가 풍산개를 보여달라기에 견사로 데려갔더니 준비해 온 고기를 듬뿍 줍디다. 옆 칸에 있는 진돗개는 거들떠보지 않고요."

"약이 든 고기 말입니까?"

"확실 합니다. 왜냐하면 총무가 다른 개들을 구경하는 사이에 내가 한덩일 얼른 감추었소. 총무가 가고 난 다음에 살펴보니 전과 같은 약이 들었습디다. 그러니 확실한 것 아니겠소."

"그렇다면 회장과 총무가 같은 편이군요. 풍산개가 질 것도 확실하고...."

"선생만 이기면 되지 그깟 개는 아무래도 상관없소. 그럼, 잘 해 보슈."

조중구는 그제야 회장의 작전이 바뀐 것을 알았다. 회장과 총무가 무언가 작전을 짜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작전이 무엇인지 또 풍산개로 바뀐 이유도 알 수 없으나 이번 시합은 반드시 상대 개가 이길 것만은 확실했다. 조중구는 무조건 상대 개에게 베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날이었다. 조중구는 며칠간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하느라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동생 현구도 없었고 주말이라 언니 대신 병원에서 밤을 새웠을 향숙이도 아직 오지 않았다. 대신 문숙이가 차려두고 나간 밥상이 있었다. 조중구는 대충 씻고 밥을 먹은 다음 병원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하니 로비의 벤치에 앉아있던 현구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이제 오우?"

"아버진 좀 어떠시냐?"

"글쎄, 수술실로 들어가신지 꽤 됐는데 아직 안 끝났나 봐요."

"의사는 만나 봤냐?"

"철심만 박으면 앞으로도 보행엔 큰 무리가 없을 거라 합디다."

", 네 결혼 문제는 어떻게 하기로 했니?"

"일단 아버지가 퇴원하신 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수. 그럼 된 것 아니우?"

"수술비는 냈냐?"

"그럼요. 병원이 어떤 댄데 외상 장사를 하겠수? 수술비 뿐 아니라 입원비도 오늘 것까지 다 청구합디다."

"잘했다."



조중구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것은 정오가 넘어서였다. 그런데 수술 후에도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하루 이틀 더 경과를 본 후에 일반 병실로 옮긴다는 설명이었다.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조중구는 동생들과 함께 병원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혼자 차에 올랐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가 조금 못 되었다.

조중구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밤 아홉 시가 되려면 아직 일곱 시간이 남으니 그새 신동우나 찾아가 보려는 것이었다. 공장에서 지내야 하는 친구를 위로해 주자는 마음에서다. 신동우가 근무하는 그의 아버지 공장은 인천 연수동에 있었다. 그곳까지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올 때는 구로의 투견 시합장으로 곧바로 가면 빠를 터였다.

조중구는 강변북로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리고 양화대교를 건너 신월 인터체인지를 통해 경인고속도로에 올라섰다. 그리고 십여 분쯤 뒤 부평 인터체인지를 앞두고 있을 무렵에 휴대폰이 울렸다. 고달수였다.

"조금 전에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었소. 그런데 회장이 이상한 소리를 합디다."

"무슨......?"

"풍산개와 진돗개를 다 갖고 오라니 말이요. 이거 이상한 일이 아니고 뭐겠소?"

"이런 일은 처음입니까?"

"그럼요. 시합 전날 정해진 개가 다른 개로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요."

"그래서 어쩌시려구요?"

", 시키는 대로 일단 풍산개랑 진돗개를 다 싣고 가는 수밖에 없지 않소?"

"상대 개에 대한 정보는 없지요?"

"견주가 누군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소? 그것보다 이렇게 되면 어디다 돈을 걸어야 하는 거요?"

"생각을 좀 해봐야겠군요. 좌우간 상황을 봐가면서 대처를 하지요."

"다른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리다."

조중구는 신동우에게 가려 든 차의 핸들을 부평 시내 쪽으로 꺾어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왔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 때문이다. 그리고 신동우에게 가기 전에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조중구는 시내를 헤매다 적당한 주차 공간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앉은 채 풍산개와 진돗개를 다 싣고 오라고 한 회장의 심중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처음 진돗개를 선택했을 때는 분명히 롯드 와일러와 재 시합을 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야 또 한번 예상을 깨는 결과를 만들어서 돈을 딸 테니까. 그런 마당에 다시 풍산개로 바꾼 이유는 뭘까? 고달수의 말로 미루어 진돗개보다 풍산개가 싸움을 더 잘한다니 상대할 개가 롯드 와일러가 아닌 다른 개가 아닐까?’

조중구는 풍산개가 실제로 진돗개보다 싸움을 더 잘하는지는 고사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풍산개로 바꾼 이유가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풍산개에겐 약을 먹였고 진돗개는 약을 먹이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풍산개가 출전하는 시합에는 상대 쪽 개에게 베팅을 하고 진돗개가 출전할 경우 진돗개 쪽에 베팅을 하면 그만 아닌가?'

그러고 보면 생각하고 말고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조중구는 이제껏 없었다던 짓을 하는 회장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또한 고달수의 친구라던 견주를 교체한 이유도 궁금했다.

'설마, 회장이란 영감이 무슨 낌새를 눈치채서 복선을 깔려는 것은 아닐 테지.'

조중구는 가능한 단순히 생각하기로 했다. 롯드 와일러 대신 다른 견종으로 시합을 하려는 것일 뿐인데 자신이 괜스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였다. 조중구는 시계를 보았다. 네 시가 가까웠다. 서울을 떠난 지 벌써 두 시간이었다. 그러나 신동우를 방문할 시간은 충분했다. 조중구는 신동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우냐? 너 아직도 공장에 있냐?"

"? 내가 여기 있으면 위문 차 맥주라도 사 오겠다는 거냐?"

"그러지 않아도 지금 널 찾아가는 길이다. 언젠가 그 공장이지?"

", 아니야. 거긴 제 이 공장이고 지금 있는 곳은 제 일 공장이다."

"? 난 그 공장은 어딘지 모르는 데?"

"가만, 그럼 네가 아는 그 제 이 공장으로 와라. 내가 그곳엘 갈 테니까."

"그럴 것 없어. 말로 설명해, 내가 찾아갈 테니까."

"괜찮아,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그래? 그럼 이따 도착할 때쯤 다시 전화 하마. 여기가 부평이니 삼사십 분 걸리겠지?"

"그럴걸?"

사십여 분 뒤 공장이 가까워지자 조중구는 다시 전화를 했다.

"너희 공장에 다 와 간다."

"내가 와 있으니 그대로 오면 된다."

조중구가 제 이 공장 앞에 이르자 정말 신동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웬일이냐? 바쁘신 몸이 이곳까지 왕림을 다 하시고?"

"네가 고생한다는 데 이 형님이 안 와볼 수 있냐?"

"미친 놈."

"차 안 타고 왔냐?"

자신의 옆자리에 오르는 신동우를 보며 조중구가 물었다.

"오백 미터 밖에 안 떨어진 곳에 무슨 차를 타냐?"

신동우의 말대로 제 일 공장까지는 일 분도 채 안되는 거리였다.

"뭣하러 공장을 여기저기 벌려놓냐? 한 곳에 있으면 편할 텐데."

"없는 형편에 하나씩 늘려 나가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이젠 너희 회사도 커질 만큼 커졌잖아? 한 곳으로 옮기자고 그래."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냐? 한 곳으로 옮길 돈이 없어서 지."

", 은행돈 좀 쓰시라고 해."

"은행돈은 안 갚아도 되는 돈이냐?"

"기업하는 사람치고 은행돈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우리 아버지가 계시잖아?"

"이렇게 여러 군데 벌려 놓으면 경영상의 손실이 더 클 텐데.…"

"그러지 않아도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니기도 했어. 봐 둔 곳도 있고."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사무실로 향했다. 조중구는 공장을 대충 둘러보며 뒤를 따랐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조중구가 먼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동우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그 중 하나를 조중구에게 내밀었다. 조중구는 마개를 따자말자 한 모금을 찔끔 마시며 다시 물었다.

"봐 뒀다는 곳은 대강 어디쯤이냐?"

"검단 부근이야. 그쪽이 넓더라야. 같은 인천인데도 거긴 아직 허허벌판이야."

"인천에 그런 곳이 있었냐? 인천도 인구가 엄청날 텐데?"

"그러니까 시 외곽으로 계속 넓히는 모양이더라."

"국제공항인가 뭔가 때문일 거야. 테레비에서 보니 영종도는 천지가 개벽했던데?"

"맞아, 옛날, 우리가 캠핑 갔을 때를 생각하면 그렇지."

", 그때 그 섬에 있던 개들 생각나냐?"

조중구는 새삼 옛날에 보았던 영종도의 개들이 떠올랐다.

"그걸 잊었겠냐? 수백 마리가 우릴 보고 짖어대는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신동우도 그 개들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았다.

"맞아, 지금 생각하면 그곳이 아마 보신탕용 개 사육장이었든가 봐."

"섬이니까 개 기르기도 좋았겠지. 이웃의 민원도 없을 거고 말이야."

"그때 금동이는 겁이 나서 배 쪽으로 도망을 쳤었지.... 하하하."

그들이 고등학생일 때, 영종도로 캠핑을 간 적이 있었다. 헌데 그들이 배에서 막 내렸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저쪽 산 아래에서 수백 마리의 커다란 개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었다. 그러나 그것이 낯선 사람을 향해 마구 짖으며 달려 오는 수백 마리의 개떼인 것을 아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세 명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무서운 광경에 꼼짝을 못하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들의 속도는 워낙 빨랐다. 먼저 달려온 개들은 불과 십여 미터 앞까지 접근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친 것을 똑같이 느낄 때였다. 어디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리더니 양철통을 두들기는 소리가 합세했다.

그러자, 코앞까지 달려왔던 개들이 거짓말처럼 재빨리 방향을 돌려서 왔던 곳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세 친구는 서로를 돌아보며 안도의 숨을 토했다. 그런데 뒤늦게 겁이 도진 금동이가 조중구와 신동우를 팽개치고 방금 내린 배를 향해 도망을 친 것이다. 이후 금동이는 한동안 조중구와 신동우의 놀림을 당해야 했다.

"그때 휘파람 하나로 개를 부리던 그 사람에게 그 비법을 배워놓는 건데.…"

당시의 개 주인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조중구가 중얼거렸다.

"? 그 비법만 배워서 투견 대회에 써먹을 일이 있냐?"

"그렇잖아? 휘파람 하나로 공격과 방어를 마음대로 조종한다면 작전을 마음대로 할 것 아니냔 말야."

", 그런 것까지 연구하지 말고 그냥 네가 자랑하던 확률에 의지해. 그래도 잘만 따더구먼. 새삼 무슨 휘파람 타령이냐?"

"그건 그렇지만. 하하."

"오늘은 구로에서 한다며?"

"그렇다는군. 헌데, 너 회장이란 영감에 대해 뭐 좀 알고 있냐?"

"회장? 회장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혹시 뭐 하는 사람인지 아냐?"

"글쎄, 나도 곽 사장에게 들어서 아는 정도지. 해공 건설 회장이라더라. , 회장 아들은 여러군데 나이트클럽을 운영 한다지?"

"나이트 클럽? 그거 조폭들이 하는 것 아니냐?"

"영화에서 그렇지. 실제야 그렇겠냐?"

"아버지는 건설 회사 회장인데 아들은 엉뚱한 사업을 하는군."

", 그 나이트클럽도 전부 회장이 하던 거라더라."

"그러니까, 건설 회사를 하기 전에 나이트클럽으로 돈을 벌었나 보지?"

"그것까지야 알 수 있냐?"

"가만, 이 공장이 어때서 시설을 갈아야 돼?"

"판금 시설을 보강하려고 하는 거야. 이 시설로는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까."

"그래? 그럼 밤이 아니면 못하냐?"

"그건 아니지만 낮엔 공장에 매달려야 하니 밤에라도 도면을 검토해야지. 그래야 감독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니냐? , 일어서. 공장을 보여 줄 테니까."

이야기가 공장 건으로 이어지자 신동우는 갑자기 얼굴이 밝아지더니 조중구를 재촉해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조중구는 알지 못하는 용어와 기계 이름을 대며 새로 설치할 장소와 도면을 보여 주었다. 신이 나서 설명하는 신동우를 따라 조중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감탄도 했다. 친구의 일에 대한 열정이 눈에 보이기도 했지만 화공 약품을 다루며 연구에 몰두할 때의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신동우의 설명이 끝을 본 것은 갑작스리 공장을 방문한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혼자 있을 아들이 걱정된 아버지가 공장을 들른 것이다. 조중구는 신동우의 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 너 중구로구나.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래 직장엔 잘 다니고?"

",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별 소릴 다 하는군. 다들 바쁘게 살다 보면 격조하기 마련이지. 그래도 동우는 금동이와 널 자주 만난다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동우와 저녁이나 같이 하려고 왔는데 뜻밖에 너까지 있으니 더 잘 되었다. , 다들 가서 저녁이나 함께 하자구나."

"아닙니다. 동우만 데려가세요. 전 일이 좀 있어서 곧 가 봐야 하거든요."

"모처럼 왔는데 저녁이나 먹고 가거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게야. 식사가 끝나면 거기서 곧장 서울로 가려무나."

조중구는 오랜만에 뵙는 신동우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신동우의 아버지는 아들을 태운 뒤 손수 차를 몰아 시청 부근으로 향했다. 조중구는 그 차의 뒤를 따랐다. 신동우의 아버지가 안내한 곳은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내가 자주 오는 곳이야. 네가 바쁘다니 정식은 그만두고 이 집이 잘하는 곰탕과 수육을 먹어 봐라. 아마 입에 맞을 게다."

자리를 잡자말자 신동우의 아버지는 음식부터 주문을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에 신동우 아버지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시오. , 서형. 웬일이오?"

전화를 받는 신동우 아버지의 표정이 약간 이그러졌다.

",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공장 확장 문제로 눈코 뜰 틈도 없어 그래요. 그리고 사실 나는 그런 데는 취미가 없어요. . 그럼. "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다, 서 사장이라고 사업상 아는 사람인데 나보고 투견 시합을 보러 자기 공장으로 오라는구나. 허헛, 투견으로 도박을 하려는 게지?"

"? 투견이오?"

신동우가 놀란 눈으로 제 아버지와 조중구를 교대로 바라보았다. 투견이란 말에 신동우와 눈빛이 마주친 조중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구로에서 자동차 서비스 공장을 하는 사람인데 글쎄 언제부턴가 자꾸 내게 투견 시합을 보러 오라고 성화로구나."

"그 공장에서 투견 시합을 한데요?"

"그렇다는구나. 그 사람이 본래 재산가로 이름난 사람이었는데 소문을 들어보니 몇 년 사이, 경마와 투견에 빠져 숱하게 날렸나 보더라. 헌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선.... 쯧쯧."

혀를 차든 신동우의 아버지가 갑자기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신동우는 영문을 몰라 눈이 커졌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 요즘은 경마를 안 하냐?"

"? 경마라뇨?"

", 녀석.... 네가 경마에 빠진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아비가 그걸 모르고 있었겠냐?"

". 아버지. 그건... 그때 구요. 지금은 손을 땠어요. 여기 중구한테 물어보세요. 확실하게 손을 땠다구요."

"그러지 않아도 중구에게도 물어보려고 했다. 중구 너는 친구 편을 들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어떠냐? 동우와 너, 모두 다 경마에서 손을 땠냐?"

조중구는 숨이 멈출 만큼 깜짝 놀랐다. 당신의 아들이 손을 땠느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경마를 했다는 것까지 아실까?

"? .... , , 몇 번 하지 않았습니다만... 손을 씻은 건 동우나 저나 확실합니다."

"둘의 말이 한결같다면 나도 너희들을 믿으마. 내가 살아오면서 보니 고생고생해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종종 그런 길로 빠져서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사람들이 있더구나. 바보 같은 짓이지. 힘들고 어렵게 이룬 것을 그렇게 쉽게 잃어서야 쓰겠느냐?"

조중구는 분위기로 보나 자신의 지금 처지로 보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의 일도 알고 계시는가 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신동우도 자신이 한 짓이 있는지라 고개를 떨구고 듣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 수육과 함께 곰탕이 앞에 놓였다. 조중구는 눈치를 살피며 숟가락을 곰탕 그릇에 넣었다. 그러나 신동우의 아버지는 할 말이 남은 듯했다.

"동우 너, 이 아비가 중구가 듣는 데서 확실하게 말하마. 장차 기업을 맡을 사람은 너뿐이야. 네 동생 동현이가 아니란 말이다. 그 아이는 너처럼 엔지니어도 아니고 기업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어. 그 아인 기업을 경영할 재목이 못 된다. 너는 그동안 꾸준히 회사가 돌아가는 것을 봐 왔으니 당장 네가 나를 대신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걸 알면서도 단안을 내리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 네 엄마와 너의 입장 사이에서 내가 처신하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는 그걸 이해하고 회사 일에 더 깊이 파고들 거라."

"아… 아버지."

신동우는 고개를 번쩍 들어 제 아버지를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본 조중구도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솟으려 했다. 조중구는 신동우의 아버지가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숟가락을 뚝배기에 두고 식탁 아래로 손을 후퇴 시켰다.

"중구 너 왜 안 먹니?"

갑작스런 신동우 아버지의 말에 놀란 조중구는 다시 숟가락을 잡았다.

", 먹습니다."

"말이 난 김에 중구 너에게도 한마디 해야겠다. 중구 너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박사 학위까지 땄으니 너야말로 입지적인 케이스 아니냐? 게다가 네 동생들도 이젠 제 앞가림을 할 만큼 되었고..... 너희 집안 형편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너는 다른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 또다시 경마 따위에 현혹되지 말란 말이다. 알았느냐?"

숟가락질을 멈춘 조중구는 오늘따라 신동우 아버지의 독심술에 마음을 읽힌 것만 같아 속이 영 거북했다. 간신히 예라는 대답을 한 조중구는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도 모르고 식사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자 조중구는 얼른 볼일을 핑계로 신동우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동우와도 작별을 했다.

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 사십 분이었다. 46번 도로를 탄다면 약속 장소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조중구는 표지판을 따라 46번 도로를 차를 몰았다. 그런데 간석 오거리를 지나 경인로를 따라 삼사 킬로도 못 간 지점에서 도로포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조중구가 가려는 방향의 삼 개 차선 중 두 차선을 막고서였다.

당연히 병목 현상이 일어나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처음 몇 분간은 그러려니 했으나 좀처럼 앞차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조중구는 약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몇몇 앞차들은 신경질적인 크랙션을 울리기도 했다.

운전석에서 목을 빼서 내다보던 조중구가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가 보았다. 전방에는 도로포장 차와 승용차가 엉겨 있었다. 사고가 난 것이다. 좀 더 다가가자 경찰차가 도착하고 이어서 질서를 잡으려는지 호루라기와 메가폰 소리가 들렸다.

조중구는 시계를 보았다. 여덟 시 십분이었다. 여기서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은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이제 경찰이 왔으니 사고를 수습하고 곧 통행이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십여 분이 지나도록 앞차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조중구가 다시 차에서 내려보니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웅성이고 있었다.

"아니? 사고 차를 옆으로 치우거나 견인을 하면 될 텐데 왜 저러고들 있는 걸까요?"

답답해진 조중구가 누구에게 랄 것도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현장을 집적 보고 온 어떤 사람이 말을 받았다.

"싱크 홀이 생겼습디다. 차 사고가 아니라 도로포장 차가 지나가자말자 갑자기 길에 구멍이 생겼다구요."

"? 싱크홀이오? 우리나라에도 싱크홀이 생긴단 말입니까?"

"글쎄요. 난들 아나요. 길에 구멍이 뻥 뚫어졌으니 그게 싱크홀이 아니면 무엇이겠수?"

"이런, 시간 없는데 큰일이군. 뒷차들에 막혀 돌아가지도 못할 테고.…"

"그러게 말이요. 천상 골재 차가 와서 구멍을 메꿔야 통행이 가능할 텐데 그러려면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있나. 이거야 원."

조중구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와 조바심을 억제하려고 라디오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무슨 곡인지 현을 마구 긁어대는 바이올린 소리에 짜증이 왈칵 밀려왔다. 조중구는 얼른 라디오의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초조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홉 시까지는 십오 분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지금 출발한 데도 늦은 시간이었다. 오늘의 게임은 이미 틀린 것으로 봐야 했다. 조중구는 마음을 편히 갖기로 했다.

그런데 앞차에서 시동 거는 소리가 나더니 뒷꽁무니에서 배기가스가 뭉클 솟았다. 이어서 앞차가 슬금슬금 나아가기 시작하더니 점점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조중구가 허둥지둥 시동을 걸어 액셀을 왈칵 밟았다. 덩달아 놀란 차가 바퀴에서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사고 현장을 지나가면서 보니 싱크 홀 구멍은 그대로 두고 하행선의 차선을 나누어 차들을 그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조중구는 구로의 서비스 공장을 향해 부리나케 차를 몰았다. 어쩌면 늦는 회원을 기다려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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