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들이 재빨리 수건을 거두어 철망 밖으로 나섰다. 먼저 돌진 한 것은 롯드 와일러였다. 허나 지름이 4 미터에 불과한 철망 안에서의 돌진은 오히려 진돗개에게 기회를 주었다. 돌진해 오는 롯드 와일러가 흡사 멧돼지와 같아서 진돗개들은 본능적으로 훌쩍 갈라선 것이다.
그 통에 브레이크가 늦은 롯드 와일러는 철망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순간을 노린 듯 진돗개들은 롯드 와일러의 뒷다리를 물려 들었다. 뒷다리에 진돗개의 입이 닿자 깜짝 놀란 롯드 와일러가 재빨리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는 좌우의 진돗개를 향해 눈길은 바삐 움직였다. 롯드 와일러는 두 마리 진돗개 중에 한 놈을 택해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약해 보이는 놈을 먼저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롯드 와일러는 단숨에 정해 놓은 상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자 공격을 당한 진돗개는 급한 나머지 철망을 박차며 옆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공격에 실패한 롯드 와일러가 다시 방향을 돌려 머리를 낮추며 다가갔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다른 진돗개가 번개같이 롯드 와일러의 후면을 공격했다. 약해 보이는 개를 공격하려 든 롯드 와일러는 또 한번 깜짝 놀라 몸을 틀었다. 그러자 후면을 공격하던 개도 재빨리 물러나는 것이었다. 두 마리의 진돗개는 다시 좌우로 벌려 서며 이빨을 드러냈다.
"아니? 저건.... 멧돼지 사냥할 때의 숫법이군."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의 말이 나왔다.
롯드 와일러가 작전을 바꿔 닥치는 대로 공격을 감행했다. 무조건 가까이 있는 개를 향해 마구 물려고 덤비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진돗개는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롯드 와일러의 입을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다. 롯드 와일러도 도망치는 개의 뒤를 따라 뛰었다.
그러나 뛰어 봤자 철망 안이었다. 뒤따르던 롯드 와일러가 앞선 진돗개의 엉덩이를 무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눈치를 챈 다른 진돗개가 롯드 와일러의 뒷다리를 물려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롯드 와일러는 물었던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같은 작전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다른 진돗개의 공조로 롯드 와일러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완전히 산돼지 사냥을 하는 듯한 진돗개들이었다.
몇 분이 지나자 롯드 와일러는 체력이 딸리는 듯 헐떡였다. 동작 역시 확연히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돗개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기회를 엿보았다. 롯드 와일러는 다시 한번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자세만 취할 뿐 공격을 망설이고 있었다. 급격히 떨어진 체력 탓이었다. 사냥을 경험한 진돗개가 그것을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수천 마리의 얼룩말 떼 속에서 병들거나 가장 약한 얼룩말을 찾아내는 사자처럼, 롯드 와일러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진돗개는 약속이나 한 듯 좌우에서 동시에 번개처럼 지친 롯드 와일러의 귀를 물었다. 그리고 온 체중을 엉덩이에 실어 뒤로 버팅기며 잡아당겼다. 한 쪽 귀만 물렸다면 문 개를 향해 공격을 하면 단번에 풀릴 것이다. 허나, 양쪽 귀를 다 물린 데다 진돗개들이 죽을힘을 다해 서로 잡아당기니 이쪽도 저쪽도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좌우의 진돗개들은 확실한 승리를 위해 물고 있는 쪽의 힘을 약간 뺐다가 갑자기 확 당기는 숫법을 구사했다. 이것은 오로지 멧돼지 사냥에서 터득한 테크닉에다 본능이 더해진 행동이었다. 롯드 와일러는 입을 반쯤 벌리고 머리를 돌리려 애를 써 보지만 애초에 틀린 일이었다.
드디어 검은 롯드 와일러의 귀에서 검은 피가 흐르다가 누런 턱 선을 따라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롯드 와일러는 점점 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길게 빼물었다. 그리고 일초 일초가 지날수록 혀끝으로 모인 침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경꾼들은 초조하고 답답해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신음 소리를 내는가 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눈썹을 찌푸리거나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도 있고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롯드 와일러에게 베팅을 한 것이다.
그것은 지난번 도사와의 싸움에서 한 마리가 물리자 나머지 진돗개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꼬리를 내리는 것을 목격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시합은 도사와 맞먹는 롯드 와일러임에도 진돗개는 단 두 마리에 불과했기에 진돗개들이 이기리라곤 상상을 못한 것이다.
"팔 분 경과. 경기 끝. 진돗개가 승리했습니다."
황 총무의 멘트가 없었다 해도 자신이 베팅한 개가 진 것을 선언 전에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베팅들을 크게 했는지 정숙하고 고요하던 막사 안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인해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이야 죽든 말든 조중구의 기분은 이성을 잃을 만큼 황홀했다. 꼭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야, 중구. 네가 이겼고 난 또 졌다. 내가 이백 날렸더니 네가 결국 이백 찾았구나."
"이백? 이긴 사람이 몇 명인진 몰라도 더 될걸?"
조중구는 황 총무가 어서 승자가 누구누구인지 발표를 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대강이나마 배당액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조중구의 그러한 마음을 꿰뚫었는지 계산을 끝낸 황 총무가 종이쪽을 들고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첫 번째 경기의 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5번 6번 11번, 19번 21번 회원님이십니다. 배당금은 9번 21번은 6백5십만 원, 11번은 8백만 원, 19번 5번 회원님은 9백5십만 원 씩입니다. 두 번째 경기는 금년 들어 최고의 베팅액을 기록했습니다. 일억이 훌쩍 넘었으니까요. 헌데 승자는 단 두 분 밖에 없습니다. 게중에 놀랍게도 신입 회원이신 32번, 조중구 회원께서 두 명에 포함되었습니다. 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울리는 조중구가 구름에 올라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참, 승자이신 나머지 한 분은 회장님이십니다. 배당액은 1번이신 회장님에겐 2천7백만 원이 돌아가고 32번 조중구 회원에겐 8천2백만 원이 배당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내일 통장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경기 일정은 추후에 개별 통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끝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황 총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깜짝 놀란 사람이 둘 있었다. 백발의 회장과 신동우였다. 먼저 그들이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조중구에게 배당된 금액이었다. 으례히 신입 회원들은 처음 몇 번은 일 이백으로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초짜인 조중구는 친구인 신동우의 예상을 훌쩍 넘는 액수를 베팅한 것이다.
배당 액이 8천2백이면 얼마를 베팅 했단 말인가? 서 회장은 속이 쓰렸다. 자신이 천만 원을 베팅 했으니 그렇다면 조중구는 삼천만 원을 던졌다는 것 아닌가? 조중구만 아니었으면 몽땅 먹을 수 있는 찬스였다. 이번 일은 회장 자신의 사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일대 사건이었다.
베팅액이 적어도 혼자만 맞힌다면 다 먹을 수 있는 것을 조중구가 자신보다 세 배나 많은 액수를 베팅함으로써 역전을 당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먹는다는 꼴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입도 뻥끗 못할 비밀이고 게다가 초짜 배기 회원에게 시비를 따질 수도 없었다.
신동우는 조중구가 공탁금 3천만 원을 전부 베팅했었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비교적 돈에 여유가 있는 자신도 일 이백의 베팅이 전부인데 항상 돈에 절절 매는 조중구가 이런 베팅을 했다는 대목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낚시 처음 따라간 사람이 월척을 낚는다더니 신입 회원인 조 박사가 큰일을 해내셨소. 통도 보통으로 큰 분이 아니시구려. 처음부터 몇 천의 베팅을 하시니 말이요. 덕분에 다른 회원들은 천씩을 잃었소. 허허허...."
곽 사장이 조중구와 악수를 나누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는 천여만 원을 잃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우리도 가자."
신동우가 한마디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문 조중구의 어깨를 툭 쳤다. 조중구는 앞서 나가는 신동우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걸거나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중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조중구는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한 별들이 검은 하늘에 흩뿌려져 있었다.
"야, 안 가냐? 내 차 뒤를 바짝 따라오라고...."
신동우의 재촉에도 조중구는 말이 없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두고 아버지는 일생을 좁은 사무실에 앉아 손가락이 휘도록 펜대를 놓지 못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자신도 아버지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서른이 넘도록 공부에 매달리고 학위에 목을 맸지만 지금 월급을 얼마나 받고 있는가? 기껏 사백여만 원의 돈을 받자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물론 사백이면 보통 월급쟁이의 배는 되는 액수다. 허나, 월급쟁이 이년 동안 모은 돈은 한푼 없었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다 쓴 것이다. 동생 현구는 또 어떤가? 그놈도 죽도록 고생해서 학업을 마치고 취직을 했지만 결혼을 앞둔 현재 모아 놓은 돈이라야 천여만 원이 다 일 터였다.
"야, 안 들려? 자식... 갑자기 돈이 생기니까 얼이 나갔군. 야, 나 먼저 가랴?"
운전석의 창문을 내린 신동우가 조중구를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신동우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음, 너 먼저 가라. 난 잠시 후에 따라갈 테니까."
"너 괜찮겠냐?"
"물론이지. 며칠 내로 금동이랑 같이 만나자. 내 진하게 한잔 쏠 테니까."
"알았다. 담에 보자."
조중구는 신동우의 차가 다른 차들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좁은 농로를 따라 불빛이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는 길을 두고 그 고생을 그렇게 오래도록 하다니.... 내일 당장 현구에게 오천만 원을 줘야지. 열다섯 평짜리 전세금은 될 테지. 삼천은 공탁금으로 둬야 하니까. 그걸로 다시 불리면.... 음, 문숙이 향숙이 결혼 자금도 있어야지. 돈을 마련하러 나가신 아버지는 보나 마나 빈손으로 돌아오셨겠지.... 아, 얼른 돈을 좀 더 따야 할 텐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조중구가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 시켰다. 아마도 자신의 차가 마지막인 듯했다. 앞서 출발한 차들의 불빛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조중구는 라이트에 비치는 길을 따라 큰길로 이어지는 곳까지 천천히 차를 몰았다. 농로가 끝나고 의정부 시내로 가는 큰길로 올라섰다. 도로에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조중구는 속력을 약간 높였다.
속력을 높인지 불과 일 이분 후였다. 언제 뒤에 붙었는지 웬 차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클랙션까지 빵빵 울렸다. 조중구는 차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한 뒷차가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알고 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차 후면으로 돌아가 보았다. 겉으로 보아 별 이상이 없었다. 헌데 뒤따라오던 차도 조중구의 차 뒤에 붙여 서는 것이었다. 일 톤 봉고차였다. 봉고차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렸으나 강렬한 라이트의 역광에 눈이 부셔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조중구가 서 있는 곳으로 성큼 다가왔다.
"선생, 잠깐 얘기를 나눕시다…."
"예? 무슨 일입니까?"
조중구가 경계의 눈빛으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불빛을 등진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제 차를 따라오시지요. 해로운 일이 아닐 겁니다. 투견과 관계된 일이니까요."
투견이라는 말을 듣자 조중구는 즉시 일 톤 봉고가 연결되고 거기에 더해 윤곽만 본 사내의 정체까지 파악이 되었다. 부대찌개 집에서도 보았고 조금 전 투견장에서도 본 진돗개의 견주였던 것이다.
"제게 볼 일이 있습니까?"
"보는 눈이 있을지 모르니 다른 곳에서 말씀드리지요. 일단 따라오세요. 오래 안 걸립니다."
진돗개 견주는 자신의 트럭으로 돌아가더니 조중구보다 먼저 차를 출발 시켰다. 조중구는 일단 그 사내의 말을 들어 보기로 작정하고 뒤를 따랐다. 앞선 차는 오분도 되지 않아 옆길로 빠졌다. 조중구도 금세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앞차가 밭가에 멈추었다. 조중구도 따라서 멈추었다.
"아까 선생이 베팅에 성공한 것을 봤습니다. 일단 축하합니다."
사내의 첫 마디였다. 조중구는 말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헌데 말이요, 선생. 듣자 하니 신입 회원이라던데 어떻게 진돗개가 이길 것을 알고 베팅을 했소?"
사내가 삐딱한 어투로 조중구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아, 말하지 않아도 되오. 그 이유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요."
"............"
"열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 가운데 진돗개가 이길 것을 예상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밖에 없었소. 회장 영감과 당신이요."
"......."
"회장 영감이 맞힌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소만 선생은 좀 이상하지 않소?"
"뭐가 이상하단 말이요? 그냥 찍었을 뿐이요. 승패란 항상 둘 중 하나 아니요?"
"찍었다? 오호라. 그럼, 부대찌개를 먹을 때 찍었겠군."
"뭐요?"
"당신이 일어서서 답례 인사를 할 때 봐서 알았소. 부대찌개가 끓어넘치는 것도 모르고 우리 얘기를 엿들은 사람의 얼굴을 말이요."
"엿듣다니?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엿듣겠소?"
"아. 이거 왜 이러시나. 그것이 바로 우연이란 거요. 그야말로 운이지요."
"난 무슨 얘긴지 모르겠소. 날 보자는 게 이런 일이오?"
보나 마나 사내는 자신이 탄 배당금을 나눠달라는 얘기를 꺼낼 것이 분명했다. 조중구는 얘기가 끝났다는 듯 자신의 차로 가려 했다.
"헛, 내가 혹시 선생에게 공갈을 쳐서 돈이라도 요구할 것이라고 짐작 하나 본데..... 허나. 틀렸소. 선생이 딴 돈을 무작정 요구하면 그건 강도 아니요? 난 강도가 아니요. 부대찌개 집에서 들어 알겠지만 회장의 장난은 이번 만이 아니요. 그래서 선생과 의논을 해서 베팅의 성공률을 높여 보자는 제안을 할 참이었소."
"베팅의 성공률은 또 뭐요?"
"솔직히 말하리다. 투견 동호회에 아무나 회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잘 아오. 그러니 별 볼일 없는 우리 가족은 회원이 될 수 없잖소? 그렇다고 그럴만한 친구도 없고... 그러니, 동업을 하자는 거요. 다시 말해 정보는 내가 제공할 테니 선생이 베팅을 하란 말이오. 반반도 원하지 않소. 선생이 둘 내가 하나, 즉 이대 일이면 되오."
사내는 이미 계산해 둔 바가 있는지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아까 선생이 정보를 이용해 베팅을 성공시켰으니 다음도 정보가 있다면 문제없이 또 이길 것 아니요? 그렇게 몇 번만 하면 큰 돈이 될 것이란 말이요. 회장 영감은 저 혼자 해 먹으려고 나를 속였소. 양고기에 약을 넣은 걸 내가 알아냈단 말이오."
"예? 양고기라니? 양고기는 또 뭐요?"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지, 개에겐 양고기가 최고랍디다. 왜 하필 양 고긴가 해서 영감이 딴청을 피는 사이에 내가 그 고깃덩이 하나를 숨겼소. 그런데 고기 속에 알약이 들었습디다. 처음엔 영양제 거니 했지요. 하지만 그 약은 알고 보니 근육을 이완 시키는 약이더란 말이요."
"근육 이완제? 그건 어떻게 알았소?"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보여주었소. 톨.... 뭐라는 약이랍디다."
"경구용 톨페리아손이군."
"어? 선생도 그 약을 아시오?"
"그게 문제가 아니요. 약을 먹여 경기를 조작하다 걸리면 당장 영창이요."
"몇 번만 하고 손을 뗄 거니 괜찮소. 회장도 해 먹는데 우리라고 못해 먹겠소? 땅 짚고 헤엄치기를 왜 마다하는 거요?"
"그래도 그건.... 여하튼 나는 아니요.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게 빠를 겁니다."
"지금의 비밀까지 알게 된 당신을 내가 보고만 있을 줄 아오?"
"뭐라고? 공갈을 치시겠다?"
"공갈이 아니요. 내가 오늘 일을 흘리기만 해도 선생은 제명을 당할 것이오. 물론 먹은 돈도 다 뱉어야겠지."
순간, 조중구는 가슴이 뜨끔했다. 내일 당장 동생에게 주려고 마음먹은 돈인데 그걸 돌려줘야 한다고? 아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동생들을 결혼 시키려면 앞으로도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 사내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쨋든 잘 생각해서 결정할 문제였다.
"자, 선생. 어쩌시겠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좋소. 여기 내 전화번호요. 이번 주말에 또 한 번 한다니 늦어도 수요일까지는 연락을 하시오. 만약 연락이 없으면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알았소. 수요일까지 가부를 알리겠소."
조중구는 사내보다 먼저 차를 돌려 대로로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의정부 시내로 들어섰다. 조중구는 운전을 하는 사이에도 쉼 없이 생각을 했다. 아까 그 견주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에 발생할 이익과 손해를 따져 본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키로 했다. 만약 제안을 거부할 경우 어떻게 될까? 조중구는 가슴이 뜨끔함을 느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터였다. 자칫하다가는 돈을 반환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매장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견주 사내의 입이 그런 사태를 불러올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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