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구가 서비스 공장의 간판을 찾은 것은 정확히 출발 후 이십오 분이 지나서였다. 공장 마당에는 회원들이 타고 온 차들이 그득했다. 조중구는 주차를 하자말자 공장 건물로 들어섰다. 조중구가 들어섰을 때는 이미 개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공장 가운데에 둥근 쇠창살의 울타리 안에서 두 마리의 커다란 도사견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중구는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오, 조 박사, 오늘은 늦었구려. 이번 판은 베팅이 끝났으니 말이오."
조중구가 돌아보니 몇 걸음 옆에 있던 곽 사장이 조중구를 향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예, 차가 좀 막혀서요."
조중구는 투견들과 곽 사장을 번갈아보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조중구는 두 마리의 도사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 가를 판단이라도 하려는 듯 판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우선 두 마리 모두 엄청난 덩치였다. 한 마리는 크림색에 가까운 옅은 갈색이고 다른 쪽은 반대로 붉다고 해야 할 만큼 짙은 갈색의 개였다.
그런데 시합이 언제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투견에 대해 잘 모르는 조중구가 봤을 때도 승부는 거의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붉은 갈색 개가 뒷발을 물렸는지 심하게 저는 데다 호흡이 가빠지며 눈에 보이게 턱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연한 갈색 개는 상대의 목덜미를 물고 자기의 앞발에 체중을 실어 연신 붉은 개를 눌러대고 있었다. 붉은 개가 뒷다리를 못 쓰는 이때를 틈타 어떻게든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것이다. 그러자 호흡이 가빠 숨을 헐떡이던 붉은 갈색의 개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를 내며 털썩 쓰러져 버렸다. 목덜미를 연한 갈색 개에게 물린 채였다.
"여포 승, 여포 호가 장비 호를 이겼습니다. A 쪽에 베팅하신 분의 승리입니다. 견주들은 어서 나와 장내를 정리해 주십시오."
황 총무의 선언이 있자. 철창을 둘러싸고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앞니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옆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얼핏 둘러보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여포라는 붉은색 개에 베팅을 했었나 보았다. 그러나 오늘도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회장은 몇 안돼는 웃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철창 안으로 견주가 들어가 승리한 개를 떼어내 끌고 나가자 연이어 쓰러진 붉은 개도 두 사람이 마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는 통로가 마침 조중구가 앉은 옆길이었다. 조중구는 무심히 도사견이 들려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도사견은 혀를 길게 빼 물고 죽어 있었다. 헌데 그 혀의 색깔이 그새 보랏빛을 넘어 검은색에 가까웠다.
순간 조중구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아까 두 마리가 싸울 때 연한 갈색 개가 붉은 개의 뒷덜미를 물고 있었던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죽은 개의 혀 색깔로 봐서는 기도가 막혀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호흡기가 지나는 턱밑의 목줄기를 물린 것도 아닌데 호흡기가 막혀서 죽는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하던 조중구에게 순간 무언가 확 와닿는 것이 있었다.
'저 개는 고달수가 말하든 그 톨페리아손을 먹었군.'
톨페리아손은 본래 근육 이완제로 나온 주사제였다. 성인의 뇌졸중 후 강직 증상을 치료할 목적으로 출시된 약이었으나 사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약이었다. 여러 부작용 중 호흡곤란, 심장박동 상승과 급작스런 저혈압까지 불러올 수 있는 약인 것이다. 약효는 극심한 운동으로 심장에 무리가 올 때 빨리 나타나는 약이었다.
조중구는 웃음 띤 얼굴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회장을 바라보았다. 저 영감은 오늘도 돈을 왕창 딸 것이었다. 조중구는 사태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자, 다음 시합이야말로 정말 기대가 되는 바입니다. 아까 제가 여러분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한 바로 그 시합입니다. 지난주에 승리를 거둔 바로 그 개들이 다시 출전합니다. 진도견과 견주는 나와 주세요."
황 총무의 힘찬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고달수와 보조자가 각자 진돗개를 끌고 링 안으로 들어섰다.
"다음은 롯드 와일러와 견주 분 입장하세요."
못 보던 사내가 롯드 와일러를 데리고 입장했다.
"풍산개는 안 나옵니까?"
조중구는 옆에 앉은 중늙은이에게 급히 물었다. 그러자 옆 사람은 조중구를 흘깃 돌아보더니 손자에게 말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총무가 말할 땐 어디 갔었소? 우리들에게 물었잖소? 풍산개 대 롯드 와일러의 시합을 볼 테냐? 진돗개 대 롯드 와일러의 시합을 볼 테냐고 말이오. 둘 중 보고 싶은 시합을 여러분들이 선택하라 하지 않았소?"
"다수의 사람들이 진돗개를 택했나 보군요."
"그랬지요. 지난주에 진돗개가 싸우는 걸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니.... 나부터 다시 한번 보기로 찬성을 했소."
중늙은이의 나긋나긋한 설명을 들은 조중구의 생각이 다시 복잡해졌다.
'어제 약을 먹은 것은 풍산개들이지 진돗개가 아니다. 황 총무가 풍산개에게 고기를 주었고 또 고달수는 그 약을 확인했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진돗개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다는 것은 상대 개인 롯드 와일러에게 먹였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면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진돗개가 승리할 것이다. 즉, 진돗개 쪽에 베팅을 하면 무조건 돈은 딴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점이 있었다. 롯드 와일러와 두 마리의 진돗개 싸움은 이미 진돗개들이 이기는 걸로 결말이 나지 않았는가? 그런대도 불구하고 지난주의 그 진돗개를 그대로 출전 시켜 재 시합을 하듯 하는 회장의 의도는 무엇일까? 회원들로 하여금 풍산개와 진돗개를 선택하게 한 이유는 또 뭘까?
"편의상 롯드 와일러는 A. 진돗개들은 B라 칭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롯드 와일러를 누르고 여기 있는 진돗개들이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새로 나온 롯드 와일러는 열 차례 이상의 투견 경험이 있는 개입니다. 이번 롯드 와일러가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번 경기만큼은 체구와 힘이 더 나은 풍산개와 대결을 시키려 했으나 여러분의 다수결로 진돗개로 결정된 것입니다. 지난주에 보셨다시피 힘보다 사냥술로 익힌 본능으로 상대를 제압한 진돗개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고로 이 경기는 정말 예측불허의 싸움이 될 듯합니다. 자. 베팅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롯드 와일러는 A. 진돗개는 B 올시다. 베팅 액수는 공탁금 안에서는 무제한입니다."
조중구는 황 총무의 말을 들으면서도 의문은 꼬리를 물어서 어디에 베팅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이럴 때 고달수가 정보라도 슬쩍 흘려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중구는 얼핏 링 안에서 개를 잡고 있는 고달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고달수는 제 개에게만 정신이 팔려서 이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쩔 것인가? 상황대로라면 진돗개에게 베팅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지난주에 진돗개가 이기는 것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택 또한 진돗개 쪽일 것이다. 그렇다면, 설혹 진돗개가 이기더라도 배당이 형편 없이 줄어든다. 그걸 모를 회장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돗개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단 말인가? 황 총무가 풍산개에게는 고기를 듬뿍 주었다지 않는가? 고달수 말에 의하면 풍산개에게 고기를 준 황 총무가 다른 개를 구경하는 사이를 틈타 그 고기를 훔쳤다고 했다.
다른 개를 구경하는 사이에 고기를 훔쳤다? 다른 개를 구경하는? ...... 다른 개라면? 옆칸의 진돗개는 아닐까? 조중구는 갑자기 고달수가 한 말이 다시 떠오름과 동시에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황 총무가 한 행동에서 회장의 의도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 베팅 시간이 일 분 남았습니다. 베팅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어서 베팅들 하세요."
황 총무가 베팅을 독려하는 소리를 들으며 조중구는 부리나케 자신의 수첩에다 A라고 쓰고 삼천만 원이라고 적은 후 사인을 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한 장을 뜯어 통에 넣었다. 공탁금 전부를 롯드 와일러에게 올인한 것이다.
'빌어먹을... 이 베팅이 잘못되면 투견도 끝장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현구도 문숙이, 향숙이도... 아니, 어쩌면 영영 월급쟁이를 면하지 못할 내 인생까지.... 아, 한 번만...."
조중구는 자신의 판단이 옳기를 기도하며 던져진 주사위를 쫓듯 황 총무가 들고 있는 프라스틱 통에 눈길을 꽂으며 꽉 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베팅 끝. 베팅 끝입니다. 이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견주는 준비하세요."
이어서 황 총무의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목이 풀린 개들이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역시 진돗개들의 전술은 지난번과 같아서 롯드 와일러의 코앞에 이르자 단번에 양쪽으로 싹 갈라서는 것이다. 그러자 무작정 앞으로 튀어나온 롯드 와일러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철창에 몸을 세게 부딧치고 말았다. 사람들은 진돗개의 작전에 감탄의 소리가 터졌다.
"저, 저놈들, 지난번 그 작전을 또 쓸 모양일세."
"산돼지 다루 듯하네요."
재빨리 돌아서 쇠창살을 등진 롯드 와일러는 화가 나서 입술을 말아 올리고 콧등에 주름을 잔뜩 지었다. 그리고 연방 드러난 이빨 사이로 위협적으로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돗개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좌우로 점점 간격을 좁히며 자세를 낮춰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다 한 마리가 얼른 달려들려다 번개같이 몸을 뒤로 뺐다. 지난번처럼 속임수 동작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자 롯드 와일러는 반사적으로 그 개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 순간 반대편에 있던 진돗개가 재빨리 롯드 와일러의 앞발을 물었다. 깜짝 놀란 롯드 와일러가 앞발을 문 개의 목을 노리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것을 미리 안 듯 진돗개는 물었던 앞발을 뱉고 얼른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일 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반대편에 있던 진돗개가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이는 마치 진돗개들이 사전에 약속을 한 듯 좌우에서 교대로 공격을 해서 롯드 와일러의 혼을 빼려는 것 같았다. 진돗개에 베팅한 사람들은 은근히 신이 났다.
"저, 저것 봐. 두 놈의 손발이 척척 맞는 군."
"손, 발이 아니라 입, 발이 척척 맞는 것이지요."
롯드 와일러는 한 마리가 들어오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반대편 진돗개가 덤비면 다시 그 개를 쫓기에 급급했다. 진돗개들은 현란한 몸놀림으로 롯드 와일러의 좌우를 위협하며 결정적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그러자 롯드 와일러는 어느 한 마리만을 상대할 형편이 아니어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한 상황이 오륙 분 더 계속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든 진돗개들 중 한 마리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시합이 시작하자말자 일 초도 쉬지 않고 날뛴 탓에 숨이 찬 듯했다.
그러자 무릎을 치며 속으로 응원을 하던 사람들은 빨리 그 진돗개가 다시 공격을 퍼붓기를 바랐다. 그러나 관중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진돗개는 오히려 혀를 더 길게 빼물었다. 그 순간 조중구의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목구멍에서 사이다 가스가 물씬 솟았다.
'스트라이크'
대어를 건 낚싯대 처럼 팽팽하게 전해지는 후들거림이 조중구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톨페리아손의 약효가 나타난 것이다. 톨페리아손은 근육 이완제지만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근육이 마비되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역효과를 가져오기 십상이었다. 지금 저 진돗개의 증상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진돗개가 멈칫하는 사이 롯드 와일러는 자신을 맹렬히 공격하는 다른 진돗개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조력자가 멈춰 선 지금이 역공을 취할 때인 것을 안 것이다. 역공을 당한 진돗개는 훌쩍 몸을 날려 피했다. 그러나 땅에 발이 닿는 순간 불행하게도 롯드 와일러에게 목줄기를 덥썩 물려버렸다.
롯드 와일러는 몸부림을 치듯 진돗개를 거칠게 몇 번 휘저었다. 그리고는 물었던 개를 놓더니 멈추어 선 다른 진돗개를 덮쳤다. 호흡이 가빠 헐떡대던 진돗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롯드 와일러는 또다시 목을 물고 광분했다. 결국 두 마리의 진돗개가 차례로 바닥에 널브러진 것은 일이 분이 채 안 되어서였다.
"경기 끝. 롯드 와일러의 승립니다. 롯드 와일러의 완전한 승리 올시다."
황 총무의 선언에 따라 롯드 와일러의 주인이 링 안으로 뛰어들어와 목줄을 채웠다. 그러자 고달수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개들을 내려다보았다. 고달수는 잠시 진돗개들을 들고나갈 생각을 잊은 채 관중석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중구와 눈이 마주친 고달수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눈길을 쓰러진 개들에게로 돌렸다.
조중구는 백발의 회장이 어떤 표정과 행동을 하는지 살폈다. 회장은 기분 좋은 얼굴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조중구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에 무릎을 치고 싶었다. 황 총무가 풍산개에게 고기를 주는 한 편 진돗개에게도 약이 든 고기를 몰래 던진 것이다. 그 고기를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받아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개를 구경하는 척 한 것 자체가 고달수의 눈을 속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에, 배당 발표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기인 도사대 도사의 시합에선 여포 호, 즉 A에 베팅하신 1번 9번 회원이 팔백만 원, 2번과 22번 회원이 천백오십만 원, 11번 12번 회원이 이천오백만 원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황 총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종이를 들여다 본 후 계속했다.
"두 번째 경기인 롯드 와일러 대 진돗개의 경기는 여러 사람의 예상을 깨고 롯드 와일러가 승리했습니다. 즉 A에 베팅하신 세 분들이 이겼습니다. 배당액은 1번 회원이신 회장님이 삼천만 원, 20번 회원님이 천이백만 원. 그리고 32번 회원이신 조중구 회원이 지난주에 이어 베팅에 성공하셨습니다. 게다가 배당액이 무려 9천만 원입니다. 여러분 박수로 축하해 주십시오."
조중구가 머쓱한 얼굴로 일어나 사방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회장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회장은 온 얼굴에 웃음을 덮어 손뼉을 치고 있었다.
"조 박사, 이거, 한 번도 아니고 연속해서 베팅을 성공시키는 걸 보면 투견 공부를 꽤나 하신 모양이요. 오늘 경기는 내가 이기는 줄 알았더니 원.... 허허."
곽 사장이 조중구에게 다가와 축하의 손을 내밀었다. 조중구는 얼른 그 손을 맞잡았다.
"소발에 쥐 잡기지요. 그냥 찍은 것이 그만...."
"그러니 하는 말 아니오? 소발에 쥐잡기란 어쩌다 한 번인데 조 박사는 내 디디는 발마다 쥐가 깔리니 말이요."
"별말씀을 .... 겨우 두 번인데요 뭐."
"두 번 베팅에 두 번 성공이면 적중률이 이백 퍼센트가 아니오? 게다가 초보자의 베팅이 삼천만 원이라니.... 과연 프로급 뱃짱이요. 허허."
곽 사장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조중구가 베팅에 성공한 것을 축하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지난주와 다르게 약간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조중구는 그런 생각을 털어내고 대강 인사를 주고받았다. 조중구는 투견장을 떠나는 회장의 백발 머리를 바라보았다.
'저 영감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중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거나 차를 출발시키고 있었다. 조중구는 차들이 거의 다 빠지자 그제야 자신도 출발했다. 이십여 분이 지나 올림픽 대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고달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고달숩니다. 아까 일은...."
"올림픽 대로라 차들이 많습니다. 도착하면 내가 전화를 하지요."
조중구는 일단 전화를 끊었다. 천호동 집까지는 이십여 분은 더 가야 했다. 조중구는 고달수가 전화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고달수는 분명히 진돗개가 진 것은 생각지 못한 이변이라고 변명을 하려 든 것일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 개가 지나치게 센 개였다고 할 것이다.
집 근처에 도착한 조중구는 길가에 주차된 다른 차들 사이에 임시로 차를 세운 다음 고달수에게 전화를 했다.
"조 선생 미안합니다. 하지만 진돗개에게 약을 먹이는 것은 정말로 못 봤소. 이번 건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소. 진돗개가 지자 잘못된 정보로 선생이 우리 개들에게 베팅을 한 줄 알고 기절할 뻔했지 뭐요."
"삼천만 원을 잃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그러게나 말이요. 하지만 양심상 잃은 돈의 삼 분지 일은 내가 물었겠지요."
"그럼, 육천만 원을 땄으니 이천만 원을 달라는 말입니까?"
"아이고, 그럴 리가 있소.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이번 건은 내 잘못이 크니 나누어 주지 않아도 되오. 다음엔 확실한 정보를 드리겠소. 그럼 다음에 봅시다."
"아, 잠깐만요. 사실 이번 베팅은 고달수씨의 정보가 약간은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니, 약간의 사례는 하겠습니다. 오백을 드리지요. 계좌를 문자로 찍어 주시지요."
"헛, 이거 염치가 없습니다. 조 선생이 마음을 쓰시는 것을 보니 나는 나이만 많았지 영 헛 살았구려. 어쨌든 조 선생께 앞으로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요."
통화를 마친 조중구는 운전석에 잠시 그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몇 번만 더 맞으면 아버지는 아예 은퇴를 하시라 하고... 동생들의 결혼은 무난히 치를 것이고 다시 몇 번만 더 맞으면 집을 강남 쪽으로 옮겨도 될 것이었다. 그리고... 몇 번만 더 맞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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