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구는 올 때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상계 교차로를 통과할 무렵이었다. 주머니에 든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아까 투견장에서 방해가 될까 봐 진동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조중굽니다."
"오빠, 지금 어디야? 오빠, 어디냐구?......"
수화기를 통해 동생 문숙이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중구는 침착을 가장하며 급히 물었다.
"어, 문숙이냐? 왜 무슨 일 있냐?"
"오, 오빠. 빨리 와. 아빠가... 아빠가.…"
"뭣? 아버지가 왜? 어떻게 되셨는데? 아, 말해. 문, 문숙아."
"오빠,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나 봐. 방금 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어. 어떡해?"
"어느 병원이래? 내 그리로 곧장 갈 거니까... 어느 병원이냐고?"
"한강 종합 병원. 화양동. 한강 종합 병원이래..."
"알았다. 큰 사고는 아니실 게다. 걱정 하지 마라. 참, 현구는? 현구한테 연락했냐?"
"아직 안 했어. 연락할까?"
"그만둬. 내가 병원에 가 보고 연락할 테니까."
통화를 끝낸 조중구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를 얼마나 다치셨을까? 호사다마일까? 불과 몇 시간 만에 오천만 원의 돈이 생긴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시다니?
돈을 융통하러 나가셨으니 돌아오시는 길에 당하셨을 것이었다. 하지만 병구네 집으로 가셨어도 성격상, 돈 얘기를 꺼내시지 못하셨을 것이었다. 원래 그런 분이었으니까. 조중구는 생각나는 대로 추리에 상상을 보태며 조급한 마음을 억제하려 애썼다.
조중구는 과속 카메라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계속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래도 병원까지의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결국 조중구가 병원에 닿은 것은 사십여 분이 지나서였다. 조중구는 데스크로 달려가 아버지의 소재를 물었다. 응급처치가 끝나 방금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했다. 조중구는 데스크에서 가리키는 중환자실로 뛰었다.
"어, 형."
다짜고짜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조중구를 본 동생 현구의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저기.... 골절이 심하시데...."
조중구는 병상으로 다가가 혼수상태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시큰했다.
"뺑소니래. 병구네 집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시다가 당하신 모양이유."
"그 놈 못 잡았단 말이냐? 목격자도 없고?"
"아홉시쯤이었다니 목격자가 있은들 번호판을 제대로 봤겠수? 제 일도 아닌데...."
"치료비는?"
"일단 내 카드로 결제를 했수. 허지만 보험 하나 없으니 내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유."
"어쨌든 잘했다. 참, 넌 어떻게 알았냐?"
"향숙이가 울면서 내게 전화를 하더구만..."
그날 밤 조중구는 병원 대기실에서 밤을 보냈다. 중환자실에는 보호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구와 문숙이가 서로 있겠다고 했으나 다 물리쳤다. 그리고 길고 긴 밤을 많은 생각을 하며 보내야 했다.
자신이 중 삼일 때 돌아가신 어머니, 그 후 홀아비로 지금껏 자식을 먹여 살리는데 생애의 나머지를 보낸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가정의 모든 일을 떠맡고 나선 동생 문숙이.... 결국 문숙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안일을 떠 맡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스물여섯인 막내 향숙이는 그나마 언니 덕에 대학을 나와 직장도 다니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현구에게도 아버지의 사고는 큰 충격이리라. 얼마 모으지도 못한 통장에서 일차 치료비를 냈다면 결혼을 미룰 생각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잘못되면 최악의 경우 자신처럼, 결혼을 하지 않을 결심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는 안될 일이다.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동생들 만큼은 모두 정상적인 가정을 갖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버지 역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 동안 입원해 있을지, 사고 전처럼 회복은 하실지, 일은 계속하실 수 있는지. 생각하는 모든 앞날이 미지수였다. 간신히 일어설 듯하던 가정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였다.
조중구의 머리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생각한 모든 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론은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릴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만능 해답인 돈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조중구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아까 만난 진돗개 주인이었다. 조중구는 그제야 그 사내가 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쪽을 꺼냈다. 그리고 무심한 듯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자신의 휴대폰에 그 번호를 저장했다.
의사를 통해 알아 본 바로는 조중구의 아버지는 아직까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같이 달려온 동생 문숙이와 교대한 조중구는 집에 들러 와이셔츠만 갈아입고 출근했다. 회사에서는 누구에게도 집안일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인 도금동이 신동우의 전화를 받고 베팅에 성공한 것을 축하한다고 연구실로 왔을 때도 아버지의 불행은 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구차스럽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기 싫어서였다. 더구나 도금동이나 신동우의 도움은 학창시절에 이미 충분히 받았다는 생각이었다.
"야, 내가 요즘 집안 문제만 아니면 너 보고 한턱 쏘라고 할 텐데 말이야.... 이거 얻어먹는 것도 시간이 없어 못 먹다니 원.... 너 잊지 마라. 그 한 턱. 외상이다."
회사의 경영권 문제로 도금동이 골치를 썩이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조중구였다. 도금동은 동생과의 알력으로 며칠 사이에 얼굴마저 수척해 있었다.
"나도 현구놈 결혼 문제로 약간 정신이 없다. 네가 시간이 나는 대로 말만 해. 그럼 지체 없이 크게 한턱낼 테니까."
시간이 없다는 도금동이 어쩌면 조중구에겐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자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낮에 문숙이로부터 아버지가 깨어났다는 연락은 받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하루 두 번으로 오전 아홉 시와 오후 여섯 시였다. 조중구는 그 시간을 동생 문숙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
병상에 다가선 조중구의 첫마디였다. 그러나 의식은 돌아왔으나 입과 코에 연결된 호스로 인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는 허공을 바라보던 눈동자를 조중구에게 고정한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조중구는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자식들, 특히 장남인 자신에게 미안함을 들어내시는 것일 터였다.
"아버지 아무 걱정 마시고 그냥 쉬신다고 생각하세요. 돈 문제라면 상대방 차의 보험회사에서 이미 다 처리했으니까요. 앞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치료 비든 입원 비든 다 보험회사에서 해결할 겁니다. 그리고 어제 의사를 만나 봤는데요. 한두 차례 수술만 더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더군요."
조중구가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 말하는 사이 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조중구는 더 이상 희망이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입을 닫았다.
잠시 후, 중환자실을 나와 로비에 앉아 있던 조중구는 동생 현구가 오는 것을 보았다.
"형, 왜 나와 있수?"
현구가 조중구에게 다가오며 큰소리로 물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서 나왔다."
"아버지는 좀 어떻습디까?"
"어떻긴? 의식을 회복하셨으니 곧 나으실 테지."
"문숙이는 어디 갔수?"
"그러지 않아도 문숙이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이러고 있다. 어차피 보호자를 들이지 않는 중환자실인데 로비에서 고생할 필요가 있냐?"
"그래서 갠 어디 갔수?"
"그래도 병원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향숙이가 설득하려고 저기 저러고 있잖냐?"
그제야 현구는 형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끝 쪽 벤치에 앉은 두 동생이 보였다.
"쟤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내가 말해 볼까요?"
"아니 그보다 나와 얘기 좀 하자."
"무슨 할 말이 있수?"
"일단 여기 앉아. 내 오늘 낮에 네 계좌로 돈 좀 넣었다. 허니까 그 돈은 아버지 치료비로 써. 네 결혼 자금은 다시 만들어 볼 참이니까."
"아, 일단 내가 갖고 있는 걸로 해결한다니까 그러우?"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러냐? 뺑소니라 치료비 한 푼 못 받는 데다 보험 든 것도 없는 마당에 아마 모르긴 몰라도 병원비 폭탄이 떨어질 게다."
"그렇긴 하지만 형인들 무슨 돈이 생길 데가 있수? 잭팟이라도 터트리면 모를까... 허긴 형이나 내게 그런 운이 있을 리 없지만.…"
"아무튼 그 문젠 내게 맡기고 너는 너대로 결혼 준비는 해라.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곧장 하는 걸로 네 처 될 사람과도 의논을 하고...."
"미쳤수? 이 마당에 결혼이라니? 내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를 말하다 늦게 온 거유. 결혼을 내년으로 미루자고 했수. 그러니 형도 그렇게 알고 있으슈."
"뭐? 순순히 그러자고 하더냐?"
"헛, 결혼 자체를 아예 없던 일로 하자고 합디다."
"거 봐라. 될 소릴 해야지. 나부터라도 그런 제안을 받으면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겠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나도 그러자고 했지 별 수 있수?"
"잘 한다. 너도 나처럼 결혼을 포기하려는 거냐?"
"못할 것도 없지 않우? 형편이 형편인데...."
"시끄러워. 넌 어떻게든 결혼해야 돼. 혼자 늙어 오신 아버지의 희망이 오로지 그것 아니냐? 어서 전화해. 그래서 잡으라고. 작은방 전세금 정도는 마련해 줄 테니까."
"낮에도 돈 넣었다면서요. 얼마를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것 아니유?"
"일단 오천 넣었다. 그러니 일단 치료비는 될 거야."
"뭐요? 오천? 정말 오천만 원을 구했단 말이우?"
현구는 예상 밖의 액수에 놀라 형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버지만큼이나 고지식한 형이 어디서 그런 거금을 구했단 말인가?
"설마 퇴직했수? 그래서 퇴직금을 받았냔 말이요?"
"거 참, 나야 가난뱅이지만 친구들은 부자들 아니냐? 너 그걸 까먹었냐?"
"금동이 형에게 빌렸단 말이유?"
"왜 동우는 빼먹냐?"
"허, 부자 친구들이 다르구먼, 진작 나도 부자 친구나 사귀어 두는 건데...."
그때 얘기가 끝났는지 문숙이와 향숙이가 조중구 형제에게로 다가왔다.
"작은 오빠도 왔네?"
향숙이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현구를 슬쩍 째려보았다.
"넌 정시에 퇴근했나 보구나."
"나야 항상 정시지. 헌데 오빠, 아까 새언니 될 사람이 내게 전화를 했던데?"
"뭐? 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서?"
"그건 지난번 그 언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서로 전번을 교환했었지. 하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야. 오빠가 일방적으로 결혼을 미루자고 했다며? 그래서 그 언니가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를 묻더라고."
"그래서? 사실대로 얘기했냐?"
"그럼 안 해? 아버지 다치신 게 무슨 비밀인가?"
"비밀은 아니지만 바른대로 말하면 걔가 또 병원을 드나들 것 아니냐? 그러면 아버지만 불편하고 미안해하실 텐데... 아니, 그보다. 아버지가 저러신데 당장 무슨 결혼할 마음이 나냐?"
"그렇다고 여자에게 그렇게 딱 끊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오빠는 이제까지 내가 당한 걸 보구서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향숙이는 현구를 향해 눈총을 쏘아붙였다. 향숙이 역시 결혼을 앞둔 남자로부터 일방적이라 할 이별 통보를 받은 경험자였다. 삼 년을 사귄 남자와 결혼 말이 오갔을 때 집과 혼수를 반반으로 하자는 신랑 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향숙이는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사귀는 동안 서로의 집안 형편을 뻔히 알고 있던 신랑이 될 뻔한 이명수란 놈이 이별 통보를 하며 잠수를 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향숙이 때와 달리 현구는 부족한 결혼 자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허나 향숙이 생각은 이럴 땐 무조건 여자가 피해자라는 것이다.
"아, 시끄러. 그만해. 형, 그만 갑시다."
향숙의 말에 대답이 궁해진 현구가 제 형인 조중구의 팔을 끌며 앞장을 섰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조중구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튿날. 진돗개 주인인 사내에게 가부의 연락을 하기로 한 수요일이었다. 조중구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해 두었다. 지금의 싯점에서 조중구에게 제일 절실한 것은 돈이었다. 돈 때문에 파혼을 당한 향숙이에 이어 이젠 현구까지 돈이 없어 결혼을 포기할 판이었던 것이다.
조중구는 진돗개 주인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조중굽니다. 지난번 내게 제안하신 것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요? 결정은 하셨소?"
"예. 이번 주도 경기가 일요일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베팅할 개는 정해졌습니까?"
"아니요. 통상 일요일 경기 때는 토요일에 회장이 양견장을 찾아오지요. 와서 회장이 직접 투견을 골라요."
"그럼 이번에도 그쪽에선 진돗개를 출전 시킵니까?"
"나는 진돗개와 풍산개 전문입니다."
"풍산 개요? 풍산개라는 개도 있습니까?"
"그럼요. 싸움은 풍산개가 좀 더 낫지요. 힘이 진돗개보다 훨씬 나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회장이 정할 문제지요."
"그럼 토요일에 연락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회장이 내 개에게 양고기를 주는지 주시해야지요. 그런 다음 선생께 알리리다."
"그럼 연락 기다리지요."
"참, 확실하게 해 둡시다. 이대 일이오. 잊지 마시오."
"알았소. 참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고달수요. 친구들은 그냥 고단수라 하지요."
"고단수라....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조중구는 업무를 보면서도 고달수라는 사내와 손을 잡은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를 돌아보았다. 이건 분명히 부정한 방법이었다. 물론 며칠 전 우연히 들은 정보로 딴 돈은 운이었을 뿐 부정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에 모의해서 돈을 딴다면 그건 분명히 부정일 터였다.
만약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자신은 회사는 물론 사회에서 매장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만약의 경우 이 일을 빌미로 고달수란 자가 협박이라도 하려 든다면 그건 또 어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도 없고 달리 돈을 구할 뾰족한 해결책도 없었다. 대출을 받는다 해도 이미 받은 대출금을 합하면 그걸 갚기 위해 앞으로도 항상 허덕이며 살아야 할 것이었다.
'빌어먹을.... 오늘날까지 양심껏 살아온 댓가가 뭐야? 양심을 지키며 평생을 보낸 아버지의 말로는 어떻고? 결과는 자식들 결혼도 못 시키는 처지가 아닌가? 나 역시 평생을 월급쟁이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중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저것 생각을 해봐야 어차피 상황을 타개할 묘책이 없는 마당에 골치만 아플 뿐이던 것이다. 이번 일은 투견에 베팅을 해서 돈을 따느냐 잃느냐 하는 단순한 일일뿐, 거창한 음모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키로 했다. 경마든 투견이든 어차피 사전의 정보가 필요한 도박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정보를 사전에 좀 알아내는 것이 죽을 죄라도 된단 말인가?
조중구는 병원과 회사를 오가는 며칠 사이에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기회를 좇아 항상 허덕이기만 했지 기회란 놈이 자신을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토요일이었다. 조중구는 고달수의 연락을 기다렸다. 고달수보다 먼저 투견 동호회에서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일요일 오후 9시에 구로역 부근의 S 자동차 서비스 공장이었다. 저녁에는 고달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장이 양고기를 주지 않았소. 그러니, 이번에도 내 개들을 이기게 할 모양이요. 게다가 무슨 꿍꿍인진 몰라도 지난주에 출전했던 진돗개 두 마리를 다시 내 보내랍디다."
"한번 썼던 개들을 다음 시합에 다시 쓰는 일은 흔한 일입니까?"
"한번 진 개는 그걸로 끝입니다. 그래서 개값을 후하게 받지요. 허나 이긴 개는 다시 쓰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처럼 연속 시합에 내 보내는 일은 없었소."
"상대 개는 무슨 종이랍디까?"
"이번엔 그것도 알 수가 없어요. 아까 친구 놈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번 주에는 회장이 오지 않았답디다. 아마도 다른 양견장의 개를 쓰려는 모양이요. 그러니 견종은 둘째고 회장 영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요.".
"어쨌든, 고달수씨의 진돗개들이 출전하는 것이 틀림없고 회장이 고기를 먹이지 않은 것도 틀림없단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내가 회장 영감의 행동에 온 신경을 쏟았으니 그건 장담하리다."
"알았습니다. 참, 이번 장소는 구로역과 가까운 곳이더군요."
"아 내게도 알려줍디다. 아는 장솝디다. 지난봄에 거기서 한번 시합을 한 적이 있지요. 말을 들으니 같은 회원인 서 사장의 공장이랍디다. 공장이 커요. 공장이 커서 전쟁을 한데도 밖에선 모를 장소지요."
"알았습니다. 다른 일이 생기면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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