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2. 투견 게임(4) 월급쟁이

fiction-google 2024. 2.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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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었다. 조중구에게 전화가 왔다. 신동우였다.

"퇴근하면 금동이 하고 신정으로 나와라. 신정 알지?"

"영동 우체국 뒤 말이지?"

", 일곱 시까지 그리로 와라. 같이 밥이나 먹게."

"그러지. , 밥도 술도 내가 사는 거다. 어제는 네 덕에 돈도 좀 땄고.... 사실 나도 그럴 때가 있어야 하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통화를 끝내자 조중구는 곧바로 도금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우가 퇴근 후에 신정으로 같이 나오라 더라."

"? 나 지금 회의 들어가는데?"

"회의? 일곱 시에 보자고 했으니 설마 그전엔 끝나겠지?"

"글쎄. 좌우간 넌 일단 먼저 가라. 나도 끝나는 즉시 뒤따라 갈 테니까. , 어디서 만나제?"

", 지난 달인가? 신정이란 곳에서 밥 먹은 적 있잖어? 영동 우체국 뒤 말이야. 거기서 만나자던데?"

"알았다. 내 상황 봐서 전화할 테니 퇴근하면 너 먼저 가라고.…"

"알았어."

조중구는 퇴근 시간이 되자 지체 없이 약속 장소인 신정으로 차를 몰았다. 러시아워라 길은 좀 막혔으나 다행히 약속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를 마친 조중구가 식당을 들어서니 신동우는 이미 와 있었다.

"빨리 왔군. 오래 기다렸냐?"

"아냐. 앉아. 헌데 금동이는?"

"회의래. 요즘 다른 제약사들 땜에 좀 고전을 하거든."

조중구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동시에 종업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래서 못 온대디?"

"모르지, 끝나는 대로 온다고 했으니까."

조중구의 부름을 받은 여종업원이 발걸음도 가볍게 다가와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물부터 한 잔 갖다 줘요. 밥은 천천히 먹을 테니까. 넌 뭐 마실래?"

", 난 여기 있잖아."

그러고 보니 신동우 앞에 술인지 물인지 모를 잔이 놓여 있었다.

"받아라. 어제 네가 딴 돈."

신동우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조중구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걸 본 조중구의 눈이 커졌다. 재빨리 봉투를 거머쥔 조중구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 고맙다. 공돈이란 항상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까... 하핫."

", 그러다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경마를 해봐서 알겠지만 말이야.…"

", 경마하고 다르다는 네 말이 맞더라. 모가 아니면 도더구만. 이것 아니면 저것이니 확률적으로 일단 오십 퍼센트는 맞혀 놓은 것과 같잖아?"

"확률 좋아하네. 일단 오십 퍼센트는 질 수도 있다는 확률은 왜 외면하냐?"

"글쎄, 그건 그날의 감이 선택할 문제고.... 헌데 말이야. 회원이 되려면 입회비는 얼마나 드냐?"

"입회비는 백만 원 밖에 들지 않아. 허나 공탁금이 좀 많이 필요하지."

"그래? 공탁금은 얼마나 필요한데?"

"매 경기 전에 삼천만 원 이상 입금이 돼 있어야지."

"? 삼천? 빌어먹을 놈의 부자들 같으니...."

"베팅 액수를 생각하면 많은 돈도 아니지. 어제 네가 베팅한 돈만 해도 두 게임에 육백 아니냐? 허니 돈 좀 가진 사람들이 베팅을 하면 일 이천은 기본이지."

"허긴 베팅 액이 커야 먹어도 많이 먹지."

어젯밤을 생각한 조중구는 입맛을 쩝 다시며 침까지 삼켰다.

"베팅 액이 크면 리스크도 크지."

", 세상에 리스크 없는 베팅도 있냐? 어차피 세상은 온통 리스크투성이야. 리스크만 생각하면 아무 일도 못해. 사고 날까 길을 갈 수도 없단 말이야, 안 그러냐?"

", 그만하자. 억지적 이론을 개발하는 데는 너 따를 사람 있었냐?"

"억지적이 아니라 당위적(當爲的) 이론이지."

"역시...... 네가 너 다울 때는 바로 이럴 때야. 승복을 모르거든."

"비꼬지 마. 나는 나대로의 생존법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그건 그래, 이제껏 네 방식대로 잘 해 왔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친구로 지내는 것 아니냐."

"그건 사실 너나 금동이가 날 한 수 접고 대해 줘서였지. 내가 그것도 모르는 인간인 줄 알았냐? 그런 점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끼리 고맙고말고가 어디 있어. 헌데 일곱시가 넘었는데 얘는 안 올 모양이지?"

"그러게... 우리끼리 먼저 먹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오긴 올 모양이니까."

신동우는 조중구와의 대화를 이쯤에서 끝내려고 했다. 경험상 얘기의 끝은 언제나 돈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때문인지 그는 항상 돈에 집착했다. 그렇다고 돈을 위해 나뿐 짓을 하거나 범죄에 연루될 만한 기질도 없었고 그럴 인격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격지심의 발로였다. 진작 그것을 안 도금동과 신동우는 그를 경원하지 않고 친구로 가까이 지내 온 것이다.

", 나도 그 투견 동호횐가 친목횐가 하는 델 입회하면 안 되겠냐?"

"네가 좋다면 가입을 시켜주기로 곽 사장이란 사람과 내가 보증을 선 댔잖어?"

"그래.... 그랬지. 그럼 가입비 백까지는 좋은데, 공탁금 삼천이 문제로군. , 좋다. 대출을 좀 받더라도 가입을 해야겠다. 다음 경기는 언제 있대냐?"

"아직 연락이 없어. 허지만 아마 이번 일요일쯤 또 한 게임할 거야. 여름엔 더 자주 한 댔으니까."

"그럼 그때까지 준비해둘 거니까 연락해. 알았지?"

"허지만 너 꼭 투견으로 돌아서야겠냐? 돈도 훨씬 많이 들 텐데.…"

"또 돈 얘기로 기를 죽일 셈이냐?"

", 그럼, 돈도 훨씬 많이 딸 텐데로 정정이다."

"들 텐데.... 딸 텐데.... 보라고...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잖아? 단 한 글자로 말이야."

"미친놈.…"

신동우는 마주 앉은 조중구가 돈봉투로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톡톡 치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젯밤, 조중구를 괜히 투견장에 데려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워낙 가난에 한이 맺힌 녀석이라 투견장을 드나들다 자칫 월급쟁이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영 도박에 빠질까 해서였다. 그동안 십수 년을 지켜본 결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의 동생이 곧 결혼을 할 것이란 얘기도 있었으니 어쩌면 녀석의 마음은 더 조급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동생의 결혼자금을 도박으로 해결할려고 할지도 몰랐다.

신동우는 그런 조중구를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명분이 없었다. 말리려 든다면 보나 마나 또 가진 자의 횡포로 몰아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사실 조중구에게 돈에 관해서는 최소한의 말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드라도 엄연히 서로의 사생활이 있고 감정이 다르니 사는 방식도 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거기다 대고 어린애에게 하듯 어쭙잖은 참견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해 봤자 이제껏처럼 들어먹힐 성질도 아니고 괜스레 서로의 기분만 상할 터였다.

그동안 차마 면전에서 진담을 못 해 농담처럼 진담의 말을 던져 본 것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녀석은 그때마다 진담을 농담으로 되돌리며 자신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에게 입회를 고려하라는 충고가 먹히겠는가?

사실 조중구로 말할 것 같으면 돈 얘기만 아니면 친구로써 더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좋은 녀석이었다. 환경에 비해 명랑 쾌활한 성격에 인정이 많은 반면 물질적 사욕은 없는 친구였다. 게다가 우정의 소중함을 아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껏 친구로 지내 온 것 아닌가 말이다.         

어디선가 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조중구의 주머니 속이었다.

"뭐야? 릴레이 회의? , 그 자식, 잔뜩 기다리고 있는데.... 알았어, 끊어."

"금동이냐?"

못마땅한 얼굴을 한 조중구에게 신동우가 물었다.

"못 온대. 밥 먹고 이어서 또 한댄다. 무슨 놈의 회사가 주야장천 회의만 하는지. ."

"이해 해야지. 요즘 다른 제약사 땜에 힘들다며?"

"그건 그래. 그럴듯한 신약이 아직 한 건도 없거든."

"뭐야? 몇 건 했었다며?"

"... 돈이 안 되는 것들뿐이야. 수요가 별로 없는 약들...."

"어쨌든 노벨상을 탈만한 신약을 만들어서 너나 금동이가 왕창 잘 되는 걸 봤으면 좋겠구만...."

"신약이 그렇게 쉽게 개발되면 세상에 죽을 놈이 없게?"

"그럼 말이야. 신약이 아니라도 지난번 멀티 비타 뭐라는 것처럼 미친 듯 팔려나갈 뭔가를 연구해 보라고."

"너야말로 미친 놈이다. 미치는 약이 아니고서야 미친 듯 팔릴 만 한 게 뭐가 있어?"

"글쎄... 그러고 보니 그렇군."

"에이 시시한 얘기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그럴까?"

도금동의 결석으로 조중구와 신동우는 그날 저녁 결국 밥만 먹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러 가자는 조중구의 말에 신동우가 다음으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였다. 신동우가 불러주는 계좌로 입회비와 공탁금을 이체한 조중구는 어서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번 경기에서 운이 좋았 듯 이번 주에도 틀림없이 운이 따라주기를 속으로 빌었다. 공탁금을 내려고 받은 대출금도 문제지만 곧 동생의 결혼이 닥쳐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중구 아래로 세 명의 동생이 있었다. 이번에 결혼할 동생은 세 살 아래의 첫째 동생이었다. 동생도 자신의 힘만으로 공부를 시작해 갖은 고생 끝에 간신히 학업을 마쳤다. 졸업과 동시에 중소기업에 취직한 후에는 월급의 대부분을 집안에 보탰다. 그러니 모아둔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것을 아는 조중구는 집안의 장남으로써 힘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파트 전세금 정도는 마련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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