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의 베팅을 끝냈을 때까지 두 마리의 개들은 서있던 위치만 조금 바뀌었을 뿐, 그 상태 그대로였다. 이삼 분의 시간이 정적 속에 흘렀다. 귀를 물고 있던 갈색 개가 다시 한번 좌우로 머리를 뿌리치듯 흔들기 시작했다. 검은 개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두발을 지탱하며 뒤로 몸을 빼려 했다. 그러나 그도 쉽지 않아 보였다.
갈색 개는 또다시 머리를 거칠게 마구 흔들었다. 개들의 입과 머리는 피투성이로 변했다. 정적 속에서 일초 일초가 지나는 초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갈색 개는 앞발을 버티며 검은 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그래그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치고 있었다. 갈색개가 갑자기 작전을 바꿔 거칠게 머리를 휘젖고 날뛰기 시작했다. 기습에 가까운 몸놀림에 검은 개는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몸은 중심을 잃지 않았다. 개들의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무념무상,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귀를 물린 채 꼼짝을 않던 검은 개가 갑자기 전등불을 향해 땅을 박차고 와락 뛰어올랐다. 그통에 귀를 물고 당기던 갈색 개는 그 반작용으로 저 혼자 땅바닥에 콱 처박혔다. 그 순간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다. 갈색 개가 왜 입을 풀었단 말인가?
사태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되었다. 헌데, 뛰어올랐던 검은 개를 보니 놀랍게도 한 쪽 귀가 잘려나가고 없었다. 검은 개의 잘려나간 귀는 나동그라졌던 개의 입안에 물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귀를 잘라주고 몸의 자유를 얻은 셈이었다. 검은 개의 귀에서 쉴새 없이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귀를 잃은 검은 개는 순간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넘어진 상대가 미쳐 일어나기도 전에 턱밑을 파고들어 목줄기를 덥썩 물어버린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놀라운 반전이었다.
검은 개는 그동안의 복수라도 하듯 광란에 가까운 몸짓으로 갈색 개의 목을 마구 휘저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찢겨나간 귀에서 뿜어진 피가 사방에 튀었다. 목을 물린 갈색 개는 네 발을 허우적거릴 뿐 도리가 없는 듯했다.
사람들은 탄성을 터뜨리며 입을 벌렸다. 대부분의 구경꾼은 그제야 베팅을 잘못한 것을 후회했다. 물론 조중구 처럼 쓸개에서 꿀물이 샘솟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야, 저, 저것 봤지?"
조중구는 팔꿈치로 도금동과 신동우의 옆구리를 마구 쥐어박으며 신이 났다.
"야, 조용해. 조용하라고.... 저 사람들을 봐."
신동우가 급히 조중구의 팔꿈치를 막으며 눈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 누구도 흥분해 소리를 지르거나 일어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얼굴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붉게 상기되었다. 다만 저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거나 혀를 차며 엉덩이를 들썩일 뿐이었다. 고성과 욕설이 가득한 다른 투견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던 것이다.
"삼 분 경과. 경기 끝."
심판인 황 총무의 갑작스런 판정이 내려졌다. 삼 분이 지나도록 목이 물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서 KO로 간주 된 것이다. 다른 부분과 달리 목을 물려 그 시간을 넘기면 자칫 죽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허탈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거, 훈련받지 않은 개들이 저 정도라니.... 거, 재미있구먼."
곽 사장이란 사람이 껄껄 웃으며 한 말이다.
"저, 저놈 보게. 아직 물고 있지 않나?"
경기 끝이라는 심판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링 안으로 들어온 견주들은 개들을 떼어 놓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목을 문 개는 주인의 명령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을 문 핏불은 결국 견주가 들이댄 횃불의 뜨거운 맛을 보고서야 뒤로 물러났다. 개들이 링 밖으로 끌려 나가자 곧이어 대걸레를 든 사람이 들어와 바닥의 피를 닦아냈다.
"이, 이렇게 되면 내가 이긴 거지?"
조중구가 들뜬 소리로 신동우에게 물었다.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확률적으로도 검은 개...."
"또 확률 어쩌고를 시작하려고?"
"아, 좋아. 그럼 확률은 빼고... 예상한 답이 맞았다고 하지."
"예상한 답? 얘가 점점...."
"아, 참아. 참으라고. 헌데, 다음 경기는 일대 삼의 경기랬지?"
조중구는 주먹을 든 신동우를 외면하고 재빨리 도금동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확률적으로 이번엔 어느 쪽이냐?"
도금동이 빙글거리며 조중구를 놀렸다. 그러자 조중구도 지지 않으려는 듯 역공을 취했다.
"생전 처음 본 개에게 확률이라니? 알고 보니 금동이 너야말로 확률이 십팔 번이군."
"적반하장이라더니.... 내가 졌다."
황 총무가 다시 사람들 앞에 나와 섰다.
"다음 경기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도사견과 진돗개의 삼대 일의 싸움이 되겠습니다. 우선 개들을 보시지요. 자 견주는 들어오세요."
황 총무의 말에 따라 먼저 도사견을 앞세운 견주가 들어섰다. 도사견은 투견장의 피 냄새를 맡는 듯 바닥에 코를 끌었다. 반대쪽에서는 세 마리의 목줄을 양손에 갈라 잡은 진도견의 견주가 들어왔다. 진돗개들은 잠시 낯선 환경이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탐색했다. 그러다 철망 건너에 있는 도사견을 발견하자 이빨을 드러내며 적의를 보였다.
"그놈들 확실히 싸워 본 놈들이구먼."
백발의 회장이 기분이 좋은 듯 너털웃음을 웃었다. 사람들은 도사와 진돗개의 우열을 점치려 눈들을 바삐 움직였다.
"이번엔 어디다 걸 생각이냐?"
도금동이 먼저 물었다. 그러자 이미 결정을 해 놓은 듯 조중구는 선뜻 입을 뗐다.
"도사지."
"뭐? 저 진돗개들도 보통이 넘어 보이는 데다 세 마리나 되는데?"
"몰라, 그냥 확률적으로... 아니 그냥 찍을 거야. 도사로 말이야."
도금동이나 신동우가 보기에는 세 마리의 진돗개가 훨씬 우세할 것으로 보았다. 아무리 도사라지만 세 마리가 사방에서 물고 늘어진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조중구는 조금 전 검은 개를 택해서 이겼듯 또 한번 운에 맡기려나 보았다.
"어차피 이것도 도박인데 운에 맡겨야지."
"이제야 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군."
신동우가 그런 조중구를 향해 싱긋 웃었다.
"에.... 편의상 아까와 마찬가지로 도사는 A, 진돗개는 B로 하겠습니다. 어느 개를 택하시든 얼마를 쓰시든 베팅은 자유입니다. 단, 이번 경기는 중간 베팅이 없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곧 시작할 예정이오니 지금 베팅들 하시지요."
중간 베팅이 없는 것은 삼대 일의 싸움이라 베팅이 끝나기도 전에 상황이 금세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총무의 멘트에 따라 사람들은 다시 한번 도사와 진돗개를 번갈아 돌아보며 어디로 결정할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선뜻 수첩에다 무엇을 휙휙 적어 나갔다.
"A라고 했지? 도사 말이야."
"당연하지."
"얼마나 써?"
"삼백...."
"삼백?.... 그러지."
신동우는 조중구의 말에 따라 삼백만 원이라 쓰고 사인을 했다.
"진도견이 먼저 링 안으로 입장하겠습니다. 견주께서는 보조자와 함께 신속히 목줄을 수건으로 대체하시기 바랍니다. 진도견 입장."
세 마리의 진돗개와 견주를 포함한 세 사람이 동시에 입장했다.
"도사 입장."
기다리고 있던 도사와 견주가 반대 쪽 문으로 들어섰다.
"시작이란 구령과 동시에 수건을 푸시기 바랍니다. 자아... 시작."
진돗개를 잡고 있던 세 사람이 일제히 수건을 푸는 것과 동시에 도사의 목도 풀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미쳐 문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진돗개들은 도사를 향해 덤벼들었다. 세 마리의 진돗개가 한꺼번에 덤비자 도사는 순간 누구를 상대할지 몰라 당황했다. 몸을 뒤로 낮추고 머리를 재빨리 돌려 이놈 저놈을 돌아보기 바빴다.
세 마리의 진돗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닥치는 대로 물어뜯을 것 처럼 덤벼들더니 막상 그 앞에 이르자 번개보다 빨리 삼각 대형으로 벌려서는 것이다. 이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동물을 상대할 때의 본능이요 싸움의 기술이었다.
훈련을 받았거나 사냥 경험이 있는 진돗개가 멧돼지를 상대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노련한 진돗개는 무모하게 멧돼지의 정면을 노리지 않는 법이다. 산돼지 덧니의 무서움을 알아서이다. 그러므로 항상 측 후방을 노려서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고 힘이 빠진 다음 급소를 공격하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빨을 드러낸 채 세 방향으로 갈라선 진돗개가 도사의 주위를 흩으려고 재빠르고 부지런한 동작으로 곧 물 것처럼 진퇴를 거듭했다. 소위 훼이크 모션을 쓰는 것이다. 도사는 그런 진돗견들을 경계의 눈길로 돌아 보더니 차츰 상황이 파악되는지 동작이 한결 침착해졌다. 경기가 시작된 후 겨우 일이 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틈새를 노리느라, 진돗개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는 싯점이었다. 게 중에 한 마리가 도사의 뒷다리를 재빨리 물었다. 깜짝 놀란 도사가 그 진돗개를 향해 머리를 휙 돌렸다. 그러자 진돗개는 물었던 곳을 재빨리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 있던 진돗개가 용감하게도 도사의 귀밑을 덥썩 물었다.
도사는 자신을 문 개에게로 몸을 돌렸지만 진돗개는 머리를 마구 흔들어 상대의 입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았다. 그 사이에 처음의 진돗개가 다시 도사의 뒷다리를 물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흔들며 당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또 한 마리의 진돗개 역시 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도사의 다른 쪽 귀를 물었다. 기선을 잡은 세 마리의 진돗개는 이빨을 더욱 깊이 박으려고 마구 머리를 흔들어댔다.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탄성을 토했다. 도사를 중심으로 삼각 대형을 이룬 진돗개의 공격이 볼만했던 것이다. 좌측 귀밑과 우측 귀를 물린 도사는 순간 난처한 지경에 이른 듯 좌우로 번갈아 방어와 공격을 하려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진돗개들은 조금도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늦추기는커녕 엉덩이를 뒤로 빼며 더욱 맹렬하게 물고 흔들었다.
상황이 차츰 도사에게 불리하게 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물린 채 꼼짝 못하던 도사가 귀를 문 진돗개 쪽으로 있는 힘을 다 해 머리를 홱 돌리자 귀밑을 물고 있던 개는 이빨을 박은 채 공중에 붕 떠 버렸다. 그통에 오른쪽에 있던 개는 도사에게 박치기를 당한 꼴이 되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크기와 힘의 차이였다.
20 키로가 약간 넘는 진돗개가 80 키로에 육박하는 도사의 힘을 어찌 당하겠는가? 그러나 귀밑을 문 진돗개는 공중으로 딸려 가면서도 문 것은 놓지 않았다. 그걸 의식한 도사는 진돗개의 발이 땅에 닿자말자 머리를 휙 쳐들었다. 그러자 도사의 물린 목 가죽이 주욱 늘어났다. 때는 이때라는 듯 도사는 단숨에 진돗개의 목을 덥썩 물었다. 서로가 서로의 목을 문 꼴이었다.
진돗개의 목을 문 도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앞발을 벌리고 딱 버티더니 물고 있는 진돗개를 미친 듯 좌우로 휘져었다. 헤비급과 핀급의 경기 같았다. 가벼운 진돗개의 몸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진돗개는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사지를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도사는 미련 없이 진돗개를 땅에 떨어뜨린 다음 뒷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진돗개를 돌아보았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 순간 무엇을 느꼈는지 진돗개가 물었던 다리에서 입을 떼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바닥에는 목이 물려 죽은 진돗개가 널부러져 있었다.
박치기를 당해 뒹굴었던 개도 도사의 눈치를 살피는 듯 이빨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태도였다. 핏불과 달리 진돗개는 재빨리 상황을 판단한 것이다. 좋게 보면 진돗개 특유의 보신을 위한 영리함이요 나쁘게 보면 진돗개의 한계였다. 그렇다고 도사견이 사정을 봐 줄리가 없었다. 도사견은 진돗개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진돗개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갈 곳을 찾았다.
"도사견 승. 도사견이 이겼습니다. 경기 종료합니다."
진돗개만큼이나 상황 판단이 빠른 황 총무였다. 도사견의 견주가 링 안으로 뛰어들었다. 견주는 목줄을 씌워 도사견을 끌어냈다. 그런 다음에야 진돗개 견주가 들어가 사태를 수습했다.
"야아, 너, 또 이겼잖아?"
상기된 얼굴로 애써 침착한 척하려는 조중구의 어깨를 신동우가 소리 나게 두드렸다. 도금동도 활짝 웃는 얼굴로 조중구의 베팅이 성공한 것을 축하했다.
"이거 생각 밖으로 재미있네... 이 재미있는 걸 동우 너, 이제까지 너만 재미 보고 있었단 얘기 아냐?"
"구경만 몇 번 했다니까 그러네. 난 아직 한 번도 베팅을 한 적이 없어."
"어쨌든..... 이제 경마는 졸업이다. 내 특기는 경마가 아니라 투견인 걸 몰랐었네....."
조중구의 말에 도금동과 신동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가만, 배당은 언제 하냐?"
경마와 다른 베팅 방법이 낯선 조중구가 신동우에게 물었다.
"계산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이제 곧 발표를 할 거야."
"현찰로 베팅을 하고 현찰로 배당을 하면 간단할 걸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냐?"
"그거야 현찰로 해도 마찬가지 아니겠냐? 견주에게 주어야 할 돈과 경비를 먼저 제해야 하니까. 그런 다음 패자의 돈에서 승자 몫을 나누려면 계산이 필요하지. 게다가 철저히 회원제의 신용 거래거든.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 재벌은 아니어도 최소한 중소기업 이상의 재력가들이란 말이다."
"나만 빼고 말이지?"
"넌 아직 회원이 아니잖아?"
"회원이 될래도 자격이 없다는 말이군."
"이거, 또 시작이군. 회원이 대수냐? 네가 원하면 곽 사장과 내가 보증을 서면 될 것 아니냐? 단, 입회비와 공탁금은 네가 내라."
"공탁금이라니?"
조중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려 하자 신동우는 급히 손가락을 입에 대며 좌우를 살폈다.
"오늘처럼 현찰이 오고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미리 낸 공탁금이 있기 때문이야."
그때 도금동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재산 정도를 살펴서 되는 회원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겠다. 신용이 먼저지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회원이 되는 조건으로 내 세운단 말이야?"
"쉿 이 일은 다음에 얘기하자. 저것 봐라. 발표를 하려나 보다."
신동우의 말대로 종이를 든 황 총무가 사람들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에, 첫 번째 경기를 맞히신 분이 세분입니다. 두 번째 경기를 맞힌 분 역시 세분입니다. 해서.... 첫 번 경기의 승자는 이백오십만 원, 두 번째는 베팅액이 좀 더 많았던 관계로 5번 회원님은 천팔백만 원, 8번 회원님은 이천백만 원, 그리고 25번 회원분은 천이백만 원의 배당금이 돌아갑니다. 승자 여러분 축하합니다. 다음 경기 일정을 추후 개별 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소리는 아니어도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조중구를 대신해 신동우가 다른 승자들과 함께 손을 높이 들어 답례를 했다.
"야, 중구, 내 번호가 25번이다. 그러니까.…"
"그래? 그럼 천이백만 원이란 소리네. 이거 진짜냐?"
조중구가 눈을 크게 뜨고 양손을 들어 놀라움을 표현했다.
"천이백에 이백오십이면 천사백오십이지...."
신동우가 정정했다.
"그렇구나. 이거 횡재 아니냐? 그동안 경마로 꼬라박은 걸 단숨에 보충했군."
"좋아할 것 없어. 내가 빌려 준 육백을 빼면 절반 정도지."
"야, 그래도 팔백오십만 원이 어디냐? 아반떼 한 대 값을 번 셈이잖아? 가만 오늘 밤에 집에 들어 가지 마라. 내가 술 한잔 살 테니까. 이거야말로 얻어만 마시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 아니냐?"
"그러든지.... 네가 기분이 좋다면 우리도 좋은 거니까."
신동우 대신 도금동이 조중구의 말을 받았다. 사람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근데 배당금은 언제 준다는 거냐? 다들 돌아가고 있는데?"
"내일 아침 내 통장에 입금이 될 거야. 내가 찾아서 주마."
"어? 그럼 내가 한턱을 못 내잖어?"
"오늘만 날이냐? 야, 우리도 나가자."
신동우가 도금동과 조중구의 등을 밀어 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곽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신사장, 친구분들과 재미있게 보셨소?"
곽사장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신동우는 얼른 그 손을 잡았다. 도금동과 조중구도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그래, 볼 만들 합디까?"
"예. 재미있게 봤습니다. 생각 밖으로 다이나믹 하던데요?"
조중구가 친구들을 대신했다.
"그랬을 겝니다. 다들 그런 걸 보려고 모이는 것이지요. 이곳은 사업상의 모든 골치 아픈 일과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곳...... 이를테면 활력 충전소라 할까요. 허헛."
"예, 저희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경기 때도 초대를 하지요. 그럼 다음에 보기로 합시다."
곽 사장은 한발 앞서 나가던 백발의 회장을 좇아 급히 문 밖으로 나갔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차들이 출발하느라 이리저리 라이트 빛이 허공으로 춤을 추어 눈이 부셨다. 어둠 속에서 보아도 고급스런 차들이었다.
"제기랄, 거의가 외제 차구나."
조중구가 중얼거렸다.
"돈 뒀다 썩히겠냐? 있는 사람은 써야지."
"오늘처럼 네다섯 번만 이기면 저런 차 한 대는 뽑을 텐데...."
"왜? 특별히 연구소 직원만 부장급으로 대우해서 지급한 소나타는 시시하단 얘기냐?"
도금동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았다.
"아, 그야 내겐 그나마 감지덕지지. 게다가 신형 소나타 투, 아니냐."
"그런데 또 무슨 욕심이야?"
"야, 내 돈으로 산 댔냐? 몇 번만 더 이기면 이랬지."
"좌우간 못 말리겠군. 야. 늦었다 어서 가자. 내일 또 출근해야지."
도금동은 자신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야, 잠깐만 기다려. 긴장을 했더니 소변이 더 마렵다야."
조중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지퍼를 내렸다. 그런데 뒤에 세워진 일 톤 트럭 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죽은 놈은 고기로 팔더라도 산 놈은 내게 팔어. 한번 진 놈은 계속 지잖아? 게다가 한 마리가 죽었으니 산 놈도 맥을 추긴 글렀어."
"진 개를 사다 뭘 하게?"
"응, 인천 구택이가 싸움에서 진 놈을 골라 몇 마리 구해달라더군."
"뭐야? 구택이 그 자식은 개에 대해선 우리보다 훨씬 빠꼼이 아니냐? 그런 녀석이 왜 네게 부탁을 해? 제 개만 하더라도 처치가 곤란일 텐데 말이야."
"지난번 무슨 산에서 아들이 미친개들에게 물려 죽자말자 개 농장을 그만뒀잖아? 아들을 그모양 만들었으니 개 농장을 계속할 맘이 있겠어?"
"그 일은 나도 아직 마음이 아파."
"그거야 다른 놈도 아니고 우리 사인데 나 역시 너랑 같지."
"그런데 말이야, 싸움에 진 개는 보신탕이 아니면 훈련용인데.... 보신탕에 쓸 거면 구택이도 얼마든지 구할 것 아니냐? 그렇다면 그 녀석도 투견을 조련하려는 것인가 보군."
"아, 맞다. 개 농장을 그만둬도 평생 개밖에 모르니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을 테지. 네 말대로 개 훈련을 시작하려는 거군. 이 도사도 사라고 할까? 아니 구택이니까 그냥 줘 버려야 겠군."
"그건 우리 개들에게 이겼잖아?"
"이젠 늙어서 도사끼리 붙으면 사실 금세 깨지는 놈이거든.…"
"이거 우리 동업자가 하나 늘 판이 군. 좋아. 그 자식, 개장수를 그만뒀다는데 무슨 돈이 있겠냐? 이 진돗개를 네게 주지. 구택이에게 갖다 주라고."
조중구는 나오든 오줌이 뚝 끊기려 하였다. 인천에서 미친개에 물려 자식을 잃었다는 소리를 들어서이다. 따지고 보면 그 미친개를 만드는 일에 자신이 일조한 것 아니겠는가? 돌아서는 조중구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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