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1.미친 개들 (7) 기대와 불안

fiction-google 2024. 2. 24. 16:00
반응형

 

드디어 그날이 왔다. 개가 새끼를 낳기 시작하자 양구택은 숫제 기도하는 자세로 한 마리 한 마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마리가 나올 때까지도 비슷한 색에 비슷한 크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일곱 마리 씩을 낳았다 했으니 좀 더 지켜 보아야 했다. 여섯 마리째를 낳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마지막인 일곱 마리 째를 낳았을 때, 결국 양구택은 주저앉고 말았다. 만사휴의(萬事休矣)였던 것이다.

양구택은 이제껏 들인 돈이나 노력보다 그렇게 기대했던 강아지를 얻지 못한 실망감이 더 커서 눈물이 솟았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양구택은 그저 조용히 일어나 개장을 나오려 했다.

헌데 암캐가 다시 끙끙거리며 앞발로 자리를 긁는 것이었다. 아직 낳을 새끼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양구택은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암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제까지와 달리 진통만 계속할 뿐 쉽사리 새끼가 나오지 않는 눈치였다. 그제야 양구택이 와락 개장 앞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사태를 관망하며 온 신경을 암캐에게 쏟았다. 통상 오분에서 십 분 사이에 한 마리씩을 낳던 애미개가 이십 분이 지나도록 진통만 거듭했다. 양구택의 초조함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마침내 강아지의 머리인 듯한 덩어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양구택의 입안이 바싹 말랐다.

"!"

양구택은 순간 놀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막이 벗겨지며 나타난 강아지의 머리통은 크기부터 달랐다. 다른 강아지의 두배가 넘는 크기였던 것이다. 괴물이었다.

"아이고 하느님. 저놈이 숫놈이기를 또 한번 빕니다."

어미가 괴물 강아지를 계속 핥는 사이 양구택의 눈은 번개보다 빨리 고추를 발견함과 동시에 숫놈이란 판정을 내렸다.

"됐다. 저놈이 크기만 하면 대한민국 투견장은 내 것이나 다름없다."

양구택은 전율하는 몸을 주체치 못하고 개장 앞을 맴돌 뿐이었다. 그것이 불과 일 년 전인 지난해 봄이었다. 지금은 괴물 강아지가 다 자라서 괴물 개로 변신해 있었다.

양구택은 이제껏 누구에게도 괴물 개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물론 잠꼬대나마 누구에게 발설 한 바도 없었다. 아들인 날치까지도 모르게 키웠던 것이다.

이제 성견이 다 되었으니 투견으로서의 훈련을 할 차례였다. 그러나 개를 때려잡는 일이라면 모를까 투견 훈련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양구택은 그동안 국내의 수많은 투견장을 돌아다니며 투견에 대한 공부를 했다. 워낙 개에 대해 빠삭하던 양구택이라 투견의 훈련 방법을 배우기란 누워서 새우깡 먹기였다. 이제 괴물 개를 몰래 훈련할 장소를 찾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남일녀 중 맏이인 날치가 죽은 것이다. 비록 공부와는 담을 쌓아, 장래가 암담하던 자식이었지만 그래도 양구택에겐 사랑스러운 아들이었고 개 농장을 물려줄 소중한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런데 하필 자동차 사고도 아니고 비행기 추락사도 아닌 미친개에게 당했단 말인가? 평생을 개와 함께한 양구택 자신은 멀쩡한데 왜 하필 자식이 물려 죽는단 말인가? 보상금 한 푼 받아낼 곳도 없는 죽음이었다.

양구택은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을 당해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아들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양구택은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려 일에 매달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자신이 방송 기자 앞에서 인천시장을 매도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경험상, 이제 곧 시장으로서는 분명 무슨 조치를 할 것이었다. 인천의 모든 개 사육장을 점검하라는 공문이 각 구와 동으로 시달될 것이었다.

위생 점검이야 툭하면 당해 오든 일이지만 이번엔 약이 오른 시장이라 더 빡세게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먼저 손을 써야 위생이니 치안을 들먹이는 상대 후보의 공격을 미리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 후보는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강력한 라이벌인 야당의 전호남 후보가 시도 때도 없이 미친개 사건을 들먹이며 현 시장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미친개에게 당하다니 말이 됩니까? 인천 시민의 귀중한 생명을 이런 엉터리 치안 상태에 맡겨야 합니까? 아직까지 그 개들을 다 소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지만 현 인천 시장의 안일한 대응이 더 큰 문제입니다. 시민들이 불안해서 밖을 못 나가고 있어요. 현 인천 시장은 당장 시장 후보를 사퇴하고 남은 임기를 이 사건 해결에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어제 무슨 대담 프로에서 전호남이 또 그 사건을 들먹이며 한 말이었다. 그러나 미친개 사건은 전호남 후보의 말과 달리 사건이 나자 즉시 포수와 전경을 출동시켜 삼일 만에 일곱 마리를 사살해서 그 뒤에 물린 시민은 없었다.

시료를 분석한 대학 병원의 실험실의 발표에도 광견병은 아니라고 했다. 광견병과 유사한 병원체이긴 하나 사람이나 가축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병균이라 했던 것이다. 미친 개의 소행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리고 그 개에게 부상을 당한 사람 역시 광견병이 전염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맥 놓고 있을 현 시장이 아니었다. 차라리 미친개 소동은 재선을 위해 현 시장이 간접적 선거 운동을 할 좋은 찬스였다. 이 기회를 통해 확실히 시민의 안전과 위생에 책임을 다하는 시장의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우선 개고기의 유통과 보신탕집의 위생을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개 사육장의 실태와 위생 상태를 따질 참이었다.

그리되면 단속에 걸리지 않을 개 사육장은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다. 불법 아닌 개 사육장이 어디 있으며 비위생적이지 않은 개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 말썽 많은 개 사육장을 대폭 없애는 것이 해결 방법이었다. 그렇게 되면 혐오 시설도 정비할 겸 시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것이었다. 결국 양구택이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양구택은 위생 검열을 겁내는 것이 아니었다. 검열에 걸려서 그깟 과태료를 무는 것이야 대수가 아닌 것이다. 다만 불시에 검열을 당했을 때 괴물 개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괴물 개를 집으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아파트 주민이 본다면 대소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검열이 끝날 때까지 괴물 개를 아무도 모르게 숨겨둘 장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음날부터 양구택은 개 농장의 일 톤짜리 트럭을 몰고 인천의 외각 지역을 돌아보았다. 시내에는 괴물 개를 둘 만한 곳이 없으니 시 외각의 한적하고 외진 곳을 물색하자는 의도였다. 인천 시내와 너무 멀지 않은 곳이어야 하고 주위에 집들이 없는 곳이 양구택이 찾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다녀 보아도 조건에 딱 맞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시 외각을 돌다가 사람도 집도 보이지 않는 곳을 발견했다. 인천의 북쪽, 검단 부근의 바다를 메운 간척지였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그곳엔 커다란 창고 한 채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사방 몇 키로미터 안에는 강아지 새끼도 보이지 않았다. 저 휑한 공터에 컨테이너 하나만 갖다 놓으면 괴물 개도 감출 수 있고 잘하면 훈련까지 시킬 장소가 될 터였다.

양구택은 공터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부지의 크기로 봐서 절대 일반인은 아닐 것이었다. 아파트를 지어도 수천 채를 짓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넓이 때문이다. 양구택은 땅 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창고 건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도 비포장의 단선 도로였다.

가까이 다가가 본 창고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컸다. 창고 옆에 붙은 작은 경비실에서 경비복을 입은 사내가 나왔다.

"안녕 하시오?"

양구택이 차에서 내리자말자 웃는 얼굴로 경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허나 사십 대로 보이는 경비는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양구택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무적인 말투로 경비가 물었다.

"뭘 좀 알아보려고 왔시다."

양구택도 삐딱하게 받았다.

"무슨 용무 신지요?"

"이 공터의 주인이 누구인가 알고 싶어 그러오."

"여긴 해공 건설 소유로 신축 아파트 부지입니다."

"건설 장비가 없는 걸 보니 아직은 예정지인 것 같군요."

"회사 내부 문제로 건설이 잠시 중단 상태입니다."

"보이는 모든 땅이 회사 땅이오?"

"아니지요. 저기 붉은 깃발이 꽂힌 곳까지가 회사의 소유라 들었습니다."

"그럼 그 뒤의 땅임자는 모르시오?"

"인천 시에서 조성한 땅이라고 하더군요."

여기까지 듣던 양구택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개인이라면 몰라도 시 땅이라면 선거 때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시장 선거는 연말이니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허허벌판에서 창고를 지키시랴 고생이 많겠습니다."

컨테이너만 갖다 놓으면 곧바로 이웃이 될 경비와 사귀어 나쁠 것이 없는 양구택이 작전을 바꾸어 싹싹하개 나왔다.

"아니, 괜찮습니다 전기와 물이 있으니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그래도 종일 말동무 하나 없이 심심할 것 아닙니까?"

"그건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아들이 오니까요."

", 아들이오? 아들은 몇 살입니까?"

경비가 아들을 들먹이자 양구택은 갑자기 죽은 날치가 떠올라 콧등이 시큰했다.

"이제 중학교 3학년 이지요."

", 좋으시겠습니다. 내 큰 아들은 지난번 승학산에서 개에 물려 참변을 당했지요."

"예엣? 그럼 그때 희생된 학생이...."

"그렇소."

양구택의 말에 경비는 한동안 말을 잃고 바다 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경비는 배한열의 아버지 배철권이었다. 배철권이 검단 현장에 배속 받은 것이 벌써 한 달 째였다. 배철권은 이미 그날 아들이 관계된 승학산 사건을 자세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앞에 선 사내의 아들이 한열이를 쫓다가 참변을 당했다니 일이 공교롭다 못해 기가 막혔다. 어쩌면 사내의 아들은 그날 한열이만 만나지 않았어도 그런 참변을 당하지 않았으리라.

",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제 집도 승학산 부근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일을 잘 알고 있지요."

"... 안타깝고 분한 일이지만 다 지난 일이라 생각하고 삽니다. 말씀은 고맙소. ,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 나는 양구택이란 사람이요."

". 그렇습니까. 저는 배철권이라 합니다."

"철권이라... 이름이 세계 참피언 감이군요."

"헛 이름만 그렇지 국내 참피언 밖에 못해 봤습니다."

배철권의 말이 떨어지자 양구택이 깜짝 놀라 새삼 상대를 살펴보았다.

"맞아. 내 아까부터 어디선가 본 듯했소. 설마 했더니.... 십여 년 전 은퇴한 배철권 선수가 맞구만.... 하하, 나 역시 젊었을 적에 한때나마 권투를 했었소. 물론 무명 선수로 끝났지만요. 기수 체육관 소속이었지요. 그리고 옛날부터 배선수 팬이었소. 배선수가 52 KO 승을 거두지 않았소?"   

", 대단한 기억력이십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저의 팬이셨군요. 게다가 기수 체육관에 계셨다니 더 반갑습니다. 저도 김 관장님께 잠깐 배운 적이 있습니다."

", 그러시구먼, 이거 어떻게 보면 우리는 동문이나 마찬가지로군요."

"그렇군요. 요즘도 권투경기를 보십니까?"

"아니요. 요즘은 권투경기 자체가 시들해서 보지 않지만 배철권 선수가 활약할 때만 해도 권투는 국민 스포츠였지요. 하하. 참 세월이 빠릅니다그려."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어째서 배선수 같은 분이 이런 곳에서 경비 일을 하시오?"

"현역 시절에 모아 놓은 것이 없으니 어쩝니까? 가족을 먹여 살려야지요."

"실례지만 금년에 몇이요?"

"마흔 둘입니다."

". 아직 쌩쌩할 나이구려. 나는 마흔여덟이요."

"저보다 훨씬 위 시군요. 헌데 여긴 무슨 볼일이 있어 오신 겁니까?"

배철권이 처음으로 돌아가서 양구택의 숨은 방문의 목적을 물었다. 양구택은 순순히 털어놓기로 했다.

"... 얘기를 하자면 깁니다. 지난번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당하자...."

양구택은 자신이 하던 일과 아들의 죽음과 현재의 처지를 비교적 간단하게 털어놓았다. 물론 괴물 개는 빼고서였다. 그리고는 배철권의 심중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같은 스포츠맨으로써 우리들의 말로가 이래서야 되겠소? 말했다시피 나도 그동안 백수로 지내며 있는 돈 다 까먹고 당장의 생활이 걱정인 사람이오. 그래서 조용한 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보려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지요. 시청 소유의 저 공터에 잠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시작할 일이 있소. 그 다음엔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려고 하오. 배선수는 내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또 이렇게 만난 인연도 있으니 배 선수만 좋다면 내 사업에 참여시켜 줄 용의가 있소. 같은 스포츠맨으로써 어떻게 생각하시오?"

양구택은 특히 스포츠맨이란 단어에 힘을 주며 말을 끝냈다.

"? 그건... 생각지 않던 일이어서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감을 못 잡겠군요. 같은 권투 선배시라니 말씀입니다만 그 새로운 사업이란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투견이오. 투견을 보신 적이 있소?"

", 한두 번 본 적이 있지요."

"투견을 보니 어떻습디까?"

"어떻다니요?"

", 링 안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 권투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단 말이요? 이기지 않으면 내일을 기약할 수없는 권투선수 같지 않더냔 말이요."

양구택이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배철권 앞에 주먹을 불끈 내밀어 보였다.

", 그건.... 투견을 볼 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링 안에서 상대 선수와 싸울 때 그런 생각이 얼핏 들 때가 있었지요. 권투가.... 아니, 내가 어쩐지 투견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배철권은 잠시 옛날을 회상하는 듯 허공을 쳐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카아... 어쩌면 배선수의 철학이 나와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소? 그렇소. 권투선수는 링 안에서의 싸움이 곧 삶이 아니겠소? 투견 역시 권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룰에 따라 링 안에서 상대와 싸우는 것이 말이요. 더구나 권투선수는 대개 현역에서 은퇴하면 코치나 매니저를 하지 않소? 마찬가지로 나 역시 투견의 코치와 매니저를 하려고 계획 중이지요. 지금 하려는 사업이 바로 그런 것이오."

"글쎄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저로선 경비직도 힘들게 얻은 것이고.... 어쨌든 저는 이 직업에 만족합니다. 선배께서는 제 걱정은 마시고 하시려는 일을 계속하시지요."

"좋소, 일단 내일 저쪽 공터에 컨테이너부터 갖다 두고 봅시다. 그리되면 서로 자주 만날 것이니 천천히 얘기를 나눕시다."



양구택은 이튿날 당장 월세로 빌린 컨테이너를 바닷가 간척지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밤에는 천막으로 가린 트럭으로 괴물 개를 실어 날랐다. 양구택은 낮에는 괴물 개를 철장에 가둬두었다가 밤에만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산책과 가벼운 운동을 시켰다. 그리고는 매일 조금씩 훈련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우선 싸움에 알맞는 근육과 체형을 만들려는 것이다. 양구택과 괴물 개의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양구택은 자주 배철권의 경비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철권이 먼저 컨테이너를 방문하면 아직은 곤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배철권의 현재 사정도 알게 되고 집안 형편도 알게 되었다.

양구택은 배철권이 이제껏 집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일 이 주일에 한 번, 그것도 낮 시간에 집에 들른다는 거였다. 집을 가는 교통도 불편했지만 돈을 아끼려는 배철권의 속 사정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가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정신이 강한 사람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양구택은 배철권의 심성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사업에 끌어들이려 애를 썼다. 투견장이란 워낙 거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때로는 조폭의 방해도 심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양구택으로서는 배철권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든든하기 짝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구택 자신도 배철권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초복이 지나자 날이 본격적으로 더웠다. 양구택은 수십 년을 해오던 개 농장을 접기로 했다. 예상한 대로 현 시장이 밤낮으로 구청을 방문해서 관할 구역 내의 불법 개 사육장의 단속과 폐쇄를 독려 했기 때문이다. 양구택의 개 농장은 특히 더해서 보복을 하듯 매일 찾아와 경고장을 남발하고 고발로 위협을 했다. 어차피 접으려 든 농장이라 미련이 없었다. 양구택은 이제부터 괴물 개에 올인하기로 작정했다.

농장을 없애는 날이었다. 양구택은 아침 일찍 트럭을 타고 자신의 개 농장으로 가서 몇 마리 남은 개들을 팔아 괴물 개의 사료를 샀다. 그리고 괴물 개를 낳은 어미를 트럭에 실었다. 다른 개는 다 팔아도 이 어미 개만큼은 절대 팔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즈음 어미 개가 다시 새끼를 가진 것이다. 최고의 혈통을 자랑하는 도사견의 씨를 받았으니 어쩌면 괴물 강아지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양구택은 처음만큼 절박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이 동생 술 한잔 하세."

양구택이 소주와 치킨 봉지를 들고 배철권의 경비실을 찾았다.

"아이고 선배님두. 대낮부터 술이라뇨?"

밤과 낮이 거꾸로인 배철권이 잠에서 깨어나 손을 저었다.

"거 참, 자네는 항상 밤 근무 아닌가? 그러니 낮이 아니면 언제 마시나?"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만, 지금 마시면 밤 근무에 지장이 있을까 해서지요."

", 이 사람, 고지식하기는.... 창고에 무슨 금덩이가 있다고 도둑이 들겠나? 기껏해야 건설 자재가 아닌가 말이야. 게다가 허허벌판인데 그걸 훔쳐 가려면 트럭을 몰고 와야 할 텐데 그 정도로 값나가는 물건이 있을라고? 하하, 걱정 말고 딱 한 병씩만 까세."

", 좋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오랜만에 마셔 보는 술입니다."

두 사람은 치킨을 안주로 몇 잔씩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양구택이 사온 소주 다섯 병을 다 마셔버렸다.

"나야 워낙 술이 센 사람이지만 자네도 끄떡없는 걸 보니 술이 센 편이군."

"소주 두세 병은 마시지요. 허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위해서겠지. 사내가 그 정도의 결심은 있어야지."

"결심이기 전에 제 자신이 불안 해섭니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니 내 말대로 하란 말이네. 서로 도와 사업을 성공 시키면 한밑천 잡을 것 아닌가? 그러면 그걸로 가게라도 하나 차리면 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게야."

"또 투견 사업을 말씀하십니까?"

"그렇네. 자네만 도와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네."

"사람이든 짐승이든 이길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는 법인데 투견에 승부를 건다는 건 좀 무모하지 않을까요?"

"이 사람아.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투자한 줄 아나? 좋네. 내가 왜 투견에 목을 매는지 자네도 보고 나면 맘이 바뀔 걸세. 자 일어나게. 내 자네에게 보여 줄 것이 있으니까. 이제껏 누구에게도 비밀이었네. 자네는 보고 놀라지 말게."

"지금이요? 선배님 컨테이너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던데 설마 그 개를 보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좌우간 가 보면 아네. 일단 가 보기나 하자고.…"

양구택은 이제껏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괴물 개를 배철권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배철권에게 확신을 주려면 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양구택은 컨테이너의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헌데 문 앞에 가방을 멘 웬 학생이 서 있었다.

", , 누구냐?"

양구택이 묻는 사이 배철권이 아들을 먼저 알아보았다.

"아니? 한열이 아니냐? 네가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냐?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아니요. 오늘 방학을 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를 뵐려고요."

"음 그랬냐? 선배님 제 아들입니다. 너도 인사드려라. 아버지 권투 선배님이시다."

"안녕하세요. 배한열입니다."

한열은 양구택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아하, 이 학생이 중 3이라는 자네 아들이구만.... 거 참 부전자전 덩치가 좋구먼...."

양구택은 한열의 이모저모를 바라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히 기분이 좋아야 할 배철권은 그렇지 못했다. 양구택의 아들이 누구를 좇다가 참변을 당했는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 , 너 여기 잠깐 있거라. 내 이 분과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배철권은 경비실을 가리키며 한열을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양구택이 배철권의 팔을 잡았다.

"아닐세. 같이 가세. 자네 아들이라 내가 믿네."   

"? 비밀이라 시더니 괜찮겠습니까?"

"자네 아들이 비밀만 지켜 주면 되네. 학생 이름이 한열 이랬나? 어때? 본 것을 누구에게도 얘기 안 할 자신 있지?"   

"? 비밀이요? 아버지 무얼 보러 가세요?"

양구택이 갑자기 자신에게 약속을 다짐두자 한열은 영문을 몰랐다.

", 네가 보겠다면 데려가신 덴다. 허나, 본 것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시다. 어때? 너도 약속할 수 있겠니? 그런다고 하면 너도 구경 할 수 있다."

"그럼요. 약속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보지 않아도 될 거면 보지 않을래요."

한열이 한 발 물러섰다.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몰라도 무섭거나 징그러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하, 네게 너무 기대를 크게 갖게 한 모양이구나. 네 아버지에게 보여 주려 한 것은 개야. 개일뿐이라고.…"

양구택이 배철권 부자를 향해 크게 웃었다.

"개라구요? 개를 보는 것도 비밀이어야 해요?"

한열이 어이없는 얼굴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 . 일단 가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어이 자네도 어서 가세."

양구택은 자신의 컨테이너로 배철권 부자를 데려갔다. 그러자 컨테이너 바로 옆에 있는 개집에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불쑥 나왔다. 그런데 그 개의 크기가 엄청나서 보는 사람이 깜짝 놀라 한 발 물러날 정도였다. 배와 다리는 회색이고 등과 꼬리는 검은색의 개였다.

"아앗, 이게 무슨 개지요?"

놀란 배철권이 한열의 팔을 뒤로 당기며 양구택을 바라보았다.

"? 너무 커서 놀랐나? 이 개는 만주개와 오부차카라는 개의 반종일세."

양구택이 연변에서 들은 말을 써먹었다.

"아저씨, 이렇게 큰 개는 본 적이 없어요. 도사견의 두 배는 될 것 같은데요?"

"도사견도 아주 큰 놈은 팔십 키로쯤 나가지. 그러나 이 개는 현재 백십 키로쯤 되니 두 배는 아니더라도 엄청 큰 것은 사실이다."

"이 개가 투견 대회에 나갈 개입니까?"

배철권이 양구택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개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한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 개와 싸워서 이길 개가 있을까요?"

"글쎄다. 그건 여기 계신 분이 전문가시니 여쭤보려마."

배철권이 아들의 질문을 양구택에게 얼른 돌렸다. 양구택은 싱긋 웃었다.

"싸움을 덩치로 하나? 이 개는 참피언까지는 못 돼. 체형은 좋으나 사납지 못해서 안 된단 말이야. 더구나 이 개는 암캐고 지금 새끼를 가졌다."

"? 그럼 진짜 투견은 없습니까?"

배철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눈앞의 개집 외에는 어떤 개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개가 있을 리도 없을 터였다.

"투견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투견이 없겠나? 이 개는 그 투견의 어미 일세."

", . 그러면 그 투견은 어디 있습니까? "

"하하, 잠시만 기다리게."

양구택은 열쇠를 꽂아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열이 호기심에 가만히 문 안을 엿보았다. 햇볕이 쏟아진 컨테이너 안을 들여다보던 한열이 와락 뒤로 물러나 아버지 뒤로 숨었다.

", 왜 그러냐?"

아버지 배철권이 더 놀란 소리로 물었다.

", 저기 보세요."

"? 어엇."

배철권 역시 놀라서 아들을 끌고 급히 몇 걸음 물러났다. 양구택이 데리고 나온 개는 그냥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덩치는 중송아지 보다 컸고 머리통의 크기도 보통개의 두 배가 넘어서 입만 크게 벌리면 도사견의 머리라도 삼킬 것 같았다. 온몸은 긴 털로 덮였는데 목과 가슴 쪽이 더 길었다. 회색 머리에 등과 꼬리는 검은색이며 배와 다리는 누런색이었다. 한눈에 봐도 괴물에 가까운 개였다. 밖으로 나온 개는 제 어미 개와 서로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듯 빙빙 돌았다. 괴물 개는 어미 개 보다 훨씬 더 컸다.

"어때? 이제까지 비밀로 키워 온 개네. 이놈 하나면 대한민국 투견계를 석권하겠지?"

", 저는 이제껏 이런 개를 보기는커녕 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습니다. 이런 개면 대한민국뿐이겠습니까? 세계 참피언을 먹고도 남겠지요."

"역시 참피언을 먹어 본 사람이라 포부도 다르군. 그렇다면, 좋네. 아예 세계 투견 대회까지 가 보기로 하지. 그전에 먼저 전국의 투견장을 휩쓸어 돈부터 왕창 긁어 보자고...."

양구택의 의기양양한 목소리에 배철권도 마치 자신이 국내 참피언이 되었을 때로 돌아간 듯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 저 개가 투견이예요?"

한열이 놀라움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는구나. 어쨋든 저 개를 이길 개는 세상에 없을 것 같구나."

"크기에 비해 눈을 보면 사나울 것 같지 않은데요?"

"글쎄. 눈만 보구야 알겠니? 전문가에게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는다면 저 덩치면 천하무적일 것 같은데.... 허지만 나야 모르지."

배철권의 말을 들은 양구택이 웃음 띈 얼굴로 괴물 개의 목줄을 한열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나 양구택의 갑작스런 행동에 와락 겁이 난 한열이 재빨리 두 손을 등 뒤로 돌렸다.

"괜찮다. 잡아 봐. 네 말대로 개는 눈빛을 보면 온순한지 사나운지를 알 수 있단다. 이 개도 네 말처럼 덩치는 산 같아도 엄청 순한 개야.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면 얘기가 달라질 거다. 요즘은 집중적으로 순발력과 체력을 기르는 훈련을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개들과 싸우는 법을 가르칠 거다. 그러려면 B 급 투견 열댓 마리는 필요하겠지."   

말을 마친 양구택이 다시 목줄을 한열이에게 내밀었다. 엄청 순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아까보다는 덜 무서웠다. 허나 목줄을 건네받는 순간 공포가 손에서 팔로, 팔에서 머리로 찌르르 흘러서 한열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한열은 꼼짝을 못하고 개의 행동에 온 신경을 쏟았다. 그러나 개는 자신의 목줄이 누구의 손에 가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왜냐하면 개는 밖으로 나온 김에 대소변을 보려고 땅에 코를 끌며 마땅한 장소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열은 개가 하자는 대로 끈을 늦춰 슬금슬금 뒤를 따라다녔다. 한참을 헤매든 개는 가는 곳마다 오줌을 찔끔찔끔 싸더니 한 바가지가 넘게 대변을 싸고서야 돌아섰다. 괴물 개가 자신을 향하자 한열은 다시 뜨끔하게 생각했지만 개는 아랑곳 않고 제 주인이 있는 곳으로 껑충껑충 뛰어갔다. 한열도 덩달아 뛰는 사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개는 주인의 손에 코를 문지르더니 한열에게 다가와 잠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제 어미 개에게 다가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어미 개도 신이나서 같이 어울렸다.

"어때? 내 말대로 순하지?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란 데다 강아지 때 부터 워낙 순하더라. 사실 그게 좀 걱정이긴 하지만 너무 사나워서 통제를 못하면 그게 더 큰일일 테니 순한 것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겠지. 좌우간 앞으로 지켜봐야지."

"아저씨, 저 어미 개도 순해요?"

"그런 편이지. 처음부터 내게 이빨을 들어 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보통 개들은 주인이 바뀌면 몹시 불안해하며 슬슬 피하거나 반대로 물려고 덤비는 것이 일반적이거든."

"그럼 저 개도 어미 개를 닮았나 보군요."

", 그러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한열은 왠지 괴물 개와 그 어미 개도 좋았다. 위압적인 모습과 달리 선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고 커다란 덩치의 어린애 같은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또 개들을 보러 와도 될까요?"

"너만 좋다면 언제든지 오려무나. 개도 외로운 것은 스트레스니까."

"아저씨, 이 개는 이름이 없어요?"

"이름이 왜 없어? 태산이다. 태산이."

", 태산같이 크다고 태산이에요?"

"그래, 저 에미개는 동방불패다. 어떠냐? 괜찮은 이름이지?"

"하하, 무협지를 좋아하시나 보내요."

"책이 아니라 비디오였지. 아들과 함께 본 마지막 영화가 동방불패였거든."

"아들이요?"

"그래...."

갑자기 양구택이 슬며시 외면을 하며 태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옆에 있던 배철권이 한열의 소매를 당기며 눈짓을 했다. 한열은 영문은 몰랐으나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아버지인 배철권이 소매를 끌며 그만 가자고 눈짓을 하니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저 가요."

한열이 인사를 했으나 양구택은 말이 없었다.

 

"아버지, 저 아저씨가 갑자기 왜 저러시죠?"

돌아가는 길에 한열이 물었다.

", 그런 일이 있다."

"그런 일이라뇨?"

"거 참, 세상이 좁아서인지 그야말로 우연인지는 모르겠다만 방금 저 사람이 너를 쫓다 죽은 학생의 아버지라더라."

"? 그럼, 그날 승학산에서...."

"그래. 죽은 학생 중에 아들이 있었다더라. 허지만 너는 자책할 이유가 없다. 설사 너를 쫓아 산으로 갔다 하드라도 못 찾았으면 금세 내려올 것이지 밤중까지 있을 게 무어냔 말이다."

한열은 숨 가쁘게 쫓기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네 명의 양아치 중 누가 아저씨의 아들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두 부자는 천천히 경비실로 돌아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