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승학산 사건을 모르는 배한열은 아침 일찍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가고 있었다. 무스 머리 일당이 지름길을 지키고 있을지 모르니 이제부터는 사뭇 큰길로만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시간이 더 걸리니 빨리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등교하는 학생의 수도 많아졌다. 그런데 교문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 했다. 그리고 한열이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모여들었다. 놀란 한열이 영문을 몰라 할 때 준석이가 앞으로 나왔다.
"야, 너 뉴스 들었지?"
"뉴스? 무슨?"
"너 몰랐냐? 어제 우리를 쫓던 형들이 승학산에서 미친개들에게 물려 죽었데. 지금 그 일 때문에 학교가 생난리 아니냐?"
"뭐? 어제 나를 잡으러 승학산에 올라갔던 그 양아치들 말이냐?"
"그렇다니까. 어제 있었던 일을 죄다 반 아이들에게 내가 얘기했다. 네가 그 형을 때려눕힌 것까지 말이다."
배한열은 그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어쩌면 그들의 죽음에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못 살게 굴던 양아치들이나 그들도 학생이 아닌가? 반 아이들이 한열을 둘러싸고 갖은 질문을 퍼부었다. 어제까지 한열에게 무관심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보다 한열이에겐 무관심을 넘어 어쩌면 약간은 왕따요 유령 대접을 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든 아이들이 오늘 갑자기 영웅 취급을 하는 것이다.
준석이와 달리 기동이는 제 자리에 앉아 말이 없었다. 한열이도 그 옆자리에 말없이 앉았다. 그리고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 후에 한열이와 기동이 그리고 준석이까지 교무실에 불려갔다. 이미 선생님 귀에까지 어제 일이 알려졌나 보았다.
그날 낮에 총을 든 엽사와 무장한 전경이 다시 승학산을 포위하여 샅샅이 수색을 하는 장면이 방송국 헬기에 의해 또다시 중계되었고 모든 등산로 입구는 폐쇄되었다.
뉴스 시간마다 죽은 학생들 가족이 영안실 복도에서 오열하는 모습이 방송에 비쳤다. 그리고 학교의 교장은 교장실에 앉아 침통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네 명 모두 착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 책임감 또한 강해서 모든 학교생활에 솔선수범하던 학생들이었다는 말이었다. 이어서 담임의 슬픈 표정과 급우들이 묵념을 하는 장면도 비쳤다. 죽은 학생들 자리에는 국화꽃도 한 송이씩 놓였다.
인천 시청사 앞에는 죽은 학생들의 아버지들이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격렬히 항의하고 있었다. 시청 직원들과 경비들의 제지를 뚫고 시장실로 돌진하려는 장면이 방송국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게 중에 무스 머리의 아버지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국에 퍼졌다.
"이게 어디 나라라고 할 수나 있소? 이게 시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요? 미친개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인천시장이 무슨 시민의 대표란 말이요? 그런 대표가 또 한번 시장을 해먹겠다고 선거운동에만 온 신경을 쓰니 이런 사건이 나는 것 아니요? 선거에 매달릴 시간은 있어도 미친개 하나 잡을 시간이 없었단 말입니까? 시장은 선거만 중요하고 시민의 목숨은 중하지 않다는 말이요? 지난번 사건 때 진작 미친개를 잡아들였다면 우리 아들이 이렇게 또 당했겠소? 뭐? 국제 허브? 신도시? 에라이 순.... 인천 시장은 우리 아들을 당장 살려 내라. 살려내지 못하겠으면 그 자리에서 당장 물러나라."
다른 학부형과 달리 무스 머리의 아버지 양구택의 말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양구택으로 말하면 인천 시장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본 인물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시장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국가의 개방정책 때문이지만 양구택은 인천항의 개방이 자신의 사업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 역시 그 빌어먹을 정책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 정책으로 쓸모가 없어 버려진 개들이 광견병에 걸려 자신의 금쪽같은 아들이 당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천 시장을 원망하는 마음은 다른 학부모에 비해 양구택이 가장 심했다. 그것은 양구택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중국과 수교 후에 인천 시장이 발 빠르게 펼친 정책 가운데 하나가 인천항의 개방이었다. 이어서 중국 천진시(天津市)와 자매결연을 맺고 자유무역을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중국 제품이 인천항을 통해 쏟아져 들어 오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모든 가짜를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딱 맞춰 가짜와 싸구려 엉터리 제품이 이 땅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건강과 관련된 제품이 한국 땅에 들어왔다. 녹용이나 웅담 오소리 쓸개, 아니면 듣지도 보지도 못하든 풀뿌리 한약제들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한약제들이었다. 엉터리 보따리 상인들이 길바닥과 육교 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하철 입구와 계단까지 점령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동안 재미를 보았다. 정력제라면 워낙 사족을 못쓰는 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물건들이 제법 잘 팔렸던 것이다.
장사가 된다는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정력제를 숨긴 보따리를 들고 세관을 통과했다. 호랑이 발톱이나 가짜 무소뿔이 등장하고 정력제의 상징인 물개 거시기, 소위 가짜 해구신까지 마구 들여온 것이다. 인천항의 세관으로서는 밀려드는 보따리 상에 비해 턱없이 인력과 예산이 모자랐을 때였다.
해가 바뀌자 이번엔 식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 다 중국에서는 싸고 한국에서는 비싼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참깨나 율무, 땅콩, 고춧가루나 마늘이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류의 식품은 끝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자 결국 냉동식품까지 들어오고야 말았다. 육류나 어류 등의 모든 식품이 냉동 상태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생선이나 꽃게 따위라면 양구택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양구택의 직업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물건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냉동 개고기였다. 대대로 보신탕용 식용개를 길러 밥을 먹든 양구택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물댓 근 짜리 똥개 한 마리를 십여 만 원에 팔던 것을 단둥의 냉동 개고기가 들어오고부터 단돈 이삼 만 원에도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값으로는 사룟값도 되지 않았다. 냉동 개고기가 시장을 점령하자 전국의 개 농장은 물론이려니와 양구택도 직격탄을 맞아 쓰러질 위기였다.
아는 것이라곤 오직 어릴 때부터 해 온 개와 관련된 일이 전부였다. 기르고 죽이고 파는 일이 양구택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양구택은 끙끙대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으나 밑지는 장사를 계속할 수도 없고 이젠 더 버틸 여력도 없었다.
결국 양구택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자신까지 4대에 이어져 온 가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지켜 보아야 했다. 구 한말을 거쳐 왜정에 이르기까지 증조부와 조부가 만주에서 올가미 하나 달랑 들고 개 장수를 시작한 이래 거의 백 년의 역사였다. 대대로 개고기로 밥을 먹던 역사적 집안이 양구택의 대에 이르러 단절된 것이다.
양구택은 개 농장이 망하자 본의 아니게 몇 달을 백수로 지냈다. 그러다 사업 아이디어라도 얻어 볼 겸 친구들을 따라 연변으로 향했다. 연변은 중국 속의 작은 한국 땅이었다.
한국에서 못 보던 술도 많고 못 보든 먹을거리도 많았다. 물가도 한국 돈으로 환산해 보면 엄청 싸서 열흘을 먹고 마시며 다녔는데도 삼십만 원 밖에 들지 않았다. 단고기라 불리던 보신탕은 한국의 짜장면 값이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양구택은 자신이 하던 개 농장이 견딜 수가 없었던 이유를 연변에 와서야 깨달았다.
양구택은 신천지를 만난 듯 중국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정말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것은 바로 투견이었다. 투견이 무슨 기발한 사업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투견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업이었다. 투견이라면 지구 곳곳에 없는 곳이 없고 없었던 시대가 없었으니까.
허나 양구택이 노린 것은 따로 있었다. 연변의 투견장에서 눈이 번쩍 떨어지는 광경을 본 것이다. 한국의 투견이라면 단연 일본의 도사견이 대세였고 간혹 롯드 와일러나 근래에 들여온 미국의 핏불 종이 다였다. 그러나 양구택이 본 개는 덩치와 모양부터가 달랐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견종이 있고 그중에 싸움만을 위해 개량된 견종도 많았다. 독일의 쉐파드도 투견용 개를 개량하다가 우연히 얻은 견종일 정도였다. 그러나 투견은 단순히 크기나 사나움 만으로는 참피언이 될 수 없었다.
크기로만 친다면 그레이트 댄도 최고 그룹에 속하지만 애초에 그 개는 투견으로서는 낙제였다. 몸이 유연하지 못 한데다 죽음을 불사할 투지도 부족한 견종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덩치는 작아도 악착스러운 성질은 차라리 아메리칸 핏불이 월등했다.
그러나 싸움이란 결국 투지나 악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핏불은 도사를 이길 만큼 체력이 강하지도 못했고 덩치에서도 밀렸다. 결론은 타고난 체형과 끈질긴 용맹성과 거기에 걸맞는 덩치와 힘이 관건이었다. 다시 말하면 투견이라면 이 모든 박자가 다 갖춰 줘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오늘날로 치면 덩치가 산 만한 최홍만이 표도르나 크로캅을 이길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이든 개든 크기와 투지도 문제지만 싸움에 알맞는 체형을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실전을 벌인 끝에 투견계의 왕좌로 이름을 올린 것은 도사견이었다. 도사견이야말로 투견인의 모든 요구 조건을 다 갖춘 개로 인정받았다. 일본이 개량한 도사가 결국 세계 최강의 투견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의 도사견을 수입해 투견에 더 알맞게 개량했다. 소위 한국형 도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한국형 도사가 일본산 도사를 물리치고 매년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자 한국형 도사가 일본으로 역수출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었다. 그 후로 투견이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도사를 떠 올렸다.
싸움 잘하고 용맹하기로 소문난 만주개를 이길 수 있는 개는 도사견이 유일했다. 그러나 양구택이 연변에서 본 투견 대회는 달랐다. 그런 도사견을 가볍게 발라버리는 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다. 결국, 연변의 투견 참피언은 도사견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개를 처음 본 양구택의 놀라움은 컸다. 개 사육에 일생을 바친 양구택도 처음 본 개였다. 한국에서는 아예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종류였다.
그 견종이 무슨 종인지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뒤, 연변을 오가던 양구택은 또 한 번 그 개가 투견장을 휩쓰는 것을 보았다.
양구택은 그 개가 사육되고 있다는 농장을 직접 찾았다. 그 개를 꼭 손에 넣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이후의 일이었다. 사육장의 주인은 역시 조선족이었다.
"저 개의 종자가 무어요?"
긴 말 빼고 양구택이 곧바로 물었다.
"나도 모르오."
"모르다니? 무슨 종잔지 종자가 있을 것 아니오?"
"나도 모른다이까 그러네."
"당신도 저런 개 종자가 있으니 키운 것 아니요?"
"아, 저런 종자가 있으면 저런 개만 키우지 어찌 이런 똥개를 키우겠소잉?"
"그럼, 저 개는 이 농장에서 낳아서 기른 것이 아니란 말이요?"
속이 답답해진 양구택이 철장에 갇힌 괴물 참피언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개 농장 주인이 오히려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언성을 높였다.
"하, 답답한 소리를 골라서 하오? 저 개는 분명히 우리 농장에서 낳은 개요. 허지만 수많은 개들 중에 어째서 저런 가이 새끼가 나왔는지를 나도 모른단 말이요."
"좋소, 그럼 저 개를 내게 파시요."
양구택은 속으로 개 주인이 보나 마나 엄청난 액수를 요구하리라 각오했다. 허나 주인은 인상을 구기며 시무룩했다.
"얼마면 팔겠소?"
"값이 문제가 아잉요. 저 개는 이젠 내 개가 아니란 말이요."
"어라?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저 개는 내가 투견장 사장에게 팔았소."
"아니? 팔다니? 언제 팔았소? 개는 지금 여기 있지 않소?"
"그건 내가 관리만 해주고 있는 것이오. 물론 따로 관리비는 받소."
"아, 아깝다. 저 개만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양구택이 한숨을 쉬며 괴물 같은 개를 향해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속이 쓰린 건 내가 더하오. 나도 처음에 똥개 백 마리 값을 주겠다는데 눈이 뒤집혀 홀랑 팔았소.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오. 투견 대회에서 한 번만 이겨도 그 돈을 뽑는다는 것을 몰랐지 뭐요. 하지만 저 개가 그렇게 싸움을 잘할 줄 누가 알았소. 그런 줄 알았으면 미쳤다고 팔았겠소? 에잇, 빌어먹을....?"
"새로운 개 주인은 왜 저 개를 데려가지 않는 거요?"
"저 개는 새끼 때부터 기른 사람이 아니면 말을 듣지 않소. 그러니 다음 투견 날까지 내가 데리고 있을 수밖에 더 있겠소?"
개를 전문으로 길러 본 양구택은 즉시 이해했다. 개에 따라서 철저히 주인과 타인을 가리는 개가 있는 것이다. 그런 개는 굶어 죽을지언정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았다.
"저 참피언 개를 다른 암캐와 접을 붙이면 비슷한 새끼를 낳을지 모르잖소?"
"힝, 난들 그 짓을 안 해 봤겟소? 벼라별 종자의 암캐와 접을 붙여 새끼를 낳았소만 단 한 마리도 비슷한 놈은 없었소 그려."
조선족 농장주는 양구택을 향해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날리려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금세 대감댁 청지기 흉내를 내며 공손했다. 양구택이 다시 물었다.
"하나만 더 묻겠소. 저 개를 낳은 개의 어미는 어떤 개요?"
"아. 그 개라면 아직 여기 살고 있소. 또 새끼를 가졌지요. 사십 일 후쯤에 낳을 거요."
양구택은 즉시 개 주인을 따라 그 개의 어미 개를 보았다. 그 개의 어미 역시 딱 부러지게 무슨 종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견종이었다.
"저 개도 잡종이구려."
"아, 저건 만주개와 코카시안 오브차카의 반종이요."
"만주 개는 봤소만 오부차카는 어떻게 생겼소?"
조선족 농장주는 양구택의 끝없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친절은 다 퍼부어서 코카시안 오부차카라는 개까지 보여 주었다. 한국 사람 돈을 먹어 볼 기회였기 때문이다. 오부차카는 대형 도사견 보다 더 커서 엄청난 덩치였다. 주인의 설명으로는 러시아 개라 했다. 한국에서는 전혀 못 보던 견종이었다.
"그럼, 아까 새끼를 가진 암캐는 어떤 개의 새끼를 가졌소?"
"도사견과 붙였소."
"저 참피언도 도사와 붙여 낳은 놈이란 말이요?"
"글쎄 기억에 없소. 허나 그랬을 수도 있소."
"저 참피언 개의 형제는 모두 몇 마리였소?"
"일곱 마리를 낳았는데 저렇게 생긴 놈은 저놈 한 마리 밖에 없었소."
"헛, 그것참 이상한 일이군."
양구택은 말과 달리 속으로 짚이는 바가 있었다. 같은 아비 어미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라도 전혀 동떨어진 모습의 강아지가 종종 태어나는 법인 것이다.
"저 챔피언 개를 샀으면 좋겠는데 팔렸다니 어쩔 수가 없구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새끼 밴 저 암캐나 삽시다. 어떻소?"
"저 개는 팔지 않소."
"개 장수가 값만 맞으면 얼른 팔아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글쎄 안 파오, 판다 해도 보통 개값으론 안 팔겠소."
"누가 보통 개 값을 쳐 준다고 했소? 서른 마리 값을 쳐 주겠소."
개농장 주인은 속으로 옳다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온 사람이 돈 잘 쓰고 허풍 심하다는 것을 모르는 조선족은 없었다. 개 농장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양구택이 참피언의 어미 개를 노리는 속셈을 진작 간파했던 것이다.
"헛, 그걸로는 어렵소. 다른데 가 보오."
"그럼 얼마를 내면 팔겠소?"
"그 배를 주어야겠소."
"원, 그 배라면 예순 마리 값을 내란 말이요?"
"그렇소. 그 아래론 안 되오."
"그 돈이면 차라리 짱아오(藏獒) 한 쌍을 사겠소. 잘 있으시오."
양구택은 깨끗하게 손을 턴다는 듯 두말 않고 뒤로 돌아섰다.
"아, 이보오. 흥정을 하다 말고 가긴 어딜 간단 말이요?"
조선족이 깜짝 놀라는 시늉으로 양구택의 팔을 잡았다.
"흥정이 깨졌는데 더 있어 무얼 하겠소?"
"좋소 그럼 쉰 마리 값만 내시오."
"나는 마흔 마리 값까지는 낼 용의가 있소만...."
"허, 참. 그럼 이렇게 합시다. 서로 양보해서 마흔다섯 마리 값으로 말이요."
"흥정에는 도가 트였구려. 에이, 좋소. 한 번 모험을 해 보겠소."
양구택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개값을 치루었다. 돈을 받은 농장주가 그제야 양구택의 아래위를 쓱 훑으며 히죽히죽 웃었다. 진작부터 비웃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사람을 처음 보오? 어째 웃소?"
"그 개가 혹시 저 참피언 같은 놈을 낳을까 해서 산 모양이오만 어림없는 일이요."
"엉? 그건 또 무슨 말이요? 분명히 저 개가 참피언을 낳은 개라 하지 않았소?"
"누가 아니랬소? 저 개가 참피언 개를 낳은 건 사실이요."
"그렇데 뭐가 잘못됐소?"
"저 암캐는 참피언 강아지를 낳은 후에도 이 년 동안 새끼를 일곱 마리씩 세 번을 더 낳았소. 나도 저 개가 새끼를 낳을 때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았소. 허지만 세 번 다 참피언 같은 개를 낳지 못했소. 이번이 네 번째요만 아마 이번도 마찬가지 일 것이요."
"아니 그걸 알면서 내게 비싼 값을 받았단 말이요?"
"당신이 사자고 덤볐지 내가 강매를 한 건 아니지 않소? 히힛."
양구택은 기왕 지불한 돈이니 깨끗이 잊기로 하는 대신 개를 한국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데려갈 준비를 했다. 먼저 연변 차오양촨(朝阳川) 공항에서 단둥까지 화물기로 개를 옮겼다. 비행기로 옮긴 것은 연변에서 단둥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하기엔 너무 먼 길이었기 때문이다.
단둥에서는 개의 반출 허가와 검역 등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과 뒷돈이 들었다. 어쨌든 인천항에서 다시 검역소를 거쳐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연변을 떠난 지 이십여 일이 지나서였다. 개가 새끼를 낳기 불과 보름 전이었다. 다행히 개는 그 먼 여정을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했다.
암캐 한 마리에 퍼부운 돈이 양구택으로서는 큰 돈이었다. 그 통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스레트집 한 채가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양구택은 일생일대의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연변에서 사 온 암캐에게 자신의 재산과 운수를 모두 건 것이다. 그리고는 연변의 투견장에서 본 그런 괴물 새끼가 나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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