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송원일 서장(序章) 4.다짐

fiction-google 2024. 5. 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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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짐

"그래 뭐가 좀 나오던가?"

미리 와 기다리던 송수호에게 앉으라는 손짓과 함께 이헌조가 한 말이다. 낮에 관청에서 눈짓을 한 것은 바로 이헌조의 소실이 사는 이곳에서 만나자는 둘만의 신호였다. 기생을 소실로 들여 앉혀 종종 사헌부 관원들과 밀담을 나누는 장소로 쓰였는데 종루 뒤의 술집 골목에 있어 남의 눈을 피하기도 좋았다.

", 영감(令監) 거의 도달한 것 같습니다.

"돈의 출처를 알아냈단 말인가?"

"그 뿐 아니옵고 그 돈이 흘러든 곳도 알아냈습니다."

"뭐라고? 돈의 향방(向方)까지 알아냈단 말이지?"

생각 밖의 말에 이헌조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무릎을 탁 쳤다.

"됐네, 그동안 노고가 많았네. 이제 우상 대감을 만나는 일만 남았군."

"영감, 아니 되오이다."

"안되다니?    돈이 나온 곳과 그 돈이 흘러간 곳이 모두 파악되었다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 돈이 거사 자금으로 쓰이기 전에 우상께 알려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파악이야 되었습지요. 헌데, 그 흘러든 곳이 좀 이상한 곳입니다. 아니 수상한 곳이라 해야겠군요."

"수상하다니? 어떤 점이 말인가? , 잠깐."

바깥 마루에 술상이 놓이는 소리와 인기척에 말을 중단한 이헌조가 헛기침을 몇 차례 하더니 딴소리를 했다.

"그러니 수상하지 않겠나? 기생 년이 갑자기 속곳에 뭐라도 지린 듯 우물쭈물 엉덩이를 빼니 말일세. 하하핫, 그래서 내가 말일세...."

"나으리, 꽃을 옆에 두시고 어찌 다른 기생이란 말입니까? 쉰네 섭섭하옵니다."

방안을 들어서며 이헌조를 향해 가볍게 눈을 흘기는 홍화(紅花)였다.

"네가 꽃이라? 이름이 홍화니 꽃은 틀림없고나. 허고, 섭섭할 것 없다. 내 이제껏 송지평에게 네 얘기를 했느니라."

"호호호, 설마 쉰네의 흉을 보고 계셨던 건 아닐 테지요?"

"그럴 리가 있느냐? 꽃을 어찌 흉본단 말이냐?"

계집종 아이에게 술상을 받아 ㄷ 사람 사이에 놓은 뒤, 술잔에 술을 따른 홍화가 생글거리며 이헌조의 턱 밑을 파고들었다.

"나으리 송실주이옵니다. 드소서."

", 얘야, 송지평이 보고 있지 않으냐. 쯧쯧."

"에게게, 얘라니요? 아직도 얘이오이까? 그리고 송지평 나으리께서는 석불(石佛)로 이미 장안에 호가 나신 분인데 보신들 어떻겠사옵니까? 호호호."

그런 홍화가 귀여운 듯 어깨를 감싸 안는 이헌조를 송수호는 못 본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너는 잠깐 나가 있어야겠다. 네가 말한 저 석불에게 내가 소원을 좀 빌어야겠으니 말이다."

"어머머, 그렇다면 소첩도 같이 빌어얍지요. 그래야 영감께서 하루바삐 당상관이 될 것 아니 옵니까?"

"나 혼자 몰래 빌 것이니 너는 밖에서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다오. 혹 누가 들으면 부정을 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합지요. 그럼 석불 나으리께서도 많이 드세요. 호호."

홍화가 고운 얼굴에 웃음을 띠고 일어나 치마의 말기를 감싸 쥐고 문을 열자 촛불이 춤을 추었다.

"들게, 받아놓은 술상인데 우선 한 잔씩 들고 얘기하세."

", 영감께서도 드시지요."

"그럼세, 그런데, 아까 수상하다고 했지? 그 돈이 누구 손에 갔기에 수상하단 말인가?"

그게, 좀 엉뚱합니다. 동이 나온 곳은 영감께서도 짐작하시는 대로 역관의 수장인 장현(張炫)입니다. 거부에다 남인이니 큰돈이 나올 곳을 알아내기는 쉬웠지요. 한데 복창군이나 복선군, 아니면 훈련대장 유현혁으로 가리라던 돈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의 수중에 들어가더이다."

"그게 누구란 말인가?"

"역관 장진영이었습니다."

"역관? , 그건 천만뜻밖이군."

"그런데 또 한 곳은 더 당황스럽습니다. 장진영은 청국 역관인데 반해 이 인물은 왜 어(倭語)역관 신지남이란 자이 옵니다."

"허면 돈이 두 곳으로 나뉘었단 말인가?"

", 그러하옵니다. 지난번 제 수하가 죽은 골곡을 조사했사온데 지척에 신지남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그집 하인 놈을 통해 그날 허견이 다녀간 것을 알아냈었지요. 돈은 가마로 실어 날랐고요."

", 설마 꿰미 돈으로 움직인 건 아닐 테지?"

"꿰미야 무겁고 부피만 크니 그렇다 쳐도 어음도 아닌 은자(銀子)였습니다. 그러니 더 수상한 일 아닙니까? 조선에 무슨 물산이 있어 은자를 쓸 곳이 있겠습니까?"

"은자에다 청국과 왜국 역관이라.... , 무슨 일이 있긴 있나 본데, 알 수가 없구먼."

"소인 생각으로는..."

"? 그래 무언가?"

', 아니 옵니다. 하필 돈이 역관의 손에 들어간 이유를 확실히 알아보고 말씀드립 지요."

"방도는 있는가?"

"생각해 둔 바가 있사옵니다. 한데, 영감. 죽은 관원의 집에 처자가 있으니 쌀 섬을 보태야겠고 동래로 사람을 좀 보내야겠습니다. 돈을 좀 내려 주시지요."

"아랫 사람을 부리려면 돈이 소용될 터, 내일 중으로 사람을 시켜 이곳에다 갖다 둘 터이니 쓸 만큼 쓰게. 남인 떨거지들만 몰아낼 수 있다면 그까짓 돈이 문제겠나?"



며칠 후였다. 송수호는 박일주를 불러 가만히 일렀다.

"동래(東萊)로 사람을 보내야겠네. 걸음이 날래고 믿음직한 인물로 둘을 추리게. 한 명은 덕출이가 좋겠네만 또 누가 좋겠나?"

"그야 곽정일이 좋겠지요."

"? 정일이는 서사가 되려 했잖은가?"

", 아무래도 서사는 따분해서 못하겠답니다."

"그럴 게야. 칼을 쓰는 자가 답답하게 붓을 어찌 쓰겠나? 아무튼 아무도 모르게 오늘 밤 술시쯤에 집의 영감 소실댁 뒷방에 데리고 오게. 거기서 의논들 하세."

"혹시 정일이와 덕출이로 하여금 신지남의 뒤를 따르게 하려는 것입니까?"

"그러하네. 하지만, 뒤따르기보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게야."

"그렇군요. 신지남은 사흘 후에 떠난다 하여이다."

"조정에서도 간여치 않는 사사로운 행차이니 보나 마나 적은 인원으로 조용히 날 것일세. 만약 호위무사가 따른다면 값진 것을 지니고 간다고 봐도 좋을 게야."

"신지남의 종놈 말인즉 전동 장현의 집에서 노새 두 마리를 보내왔더랍니다. 제 생각에는 은덩이를 싣자는 것으로 보옵니다만...."

"글쎄? 왜관으로 가면서 은을 갖고 갈까? 허고, 그들이 언제 떠나든 상관없네. 닿는 곳이 동래라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날 밤, 이헌조의 소실, 홍롸의 집 뒷방에 네 사람이 모여 앉았다. 미리 이헌조의 전갈을 받은 홍화가 술상을 들여놓았다. 조촐하나 깔끔한 술상에는 정성이 베어 있었다. 술은 청주요. 안주는 서너 가지 나물과 노루 육포가 놓였다. 여름이라 생선이 없는 대신 굴비를 찢어 무친 것도 보였다.

"매번 번거롭게 하여 미안하고도 고맙네."

계집 종에게 술상을 들려 온 홍화에게 송수호는 치하를 건넸다. 기생 출신이긴 하나 상관의 소실 인고로 늘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홍와는 송수호 일행에게 언제나 다정하고 마음씀이 한결같았다.

",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나으리. 저는 같은 식구라 생각하오니 미안이니 고맙느니 하지 마세요. 술이 모자라면 더 청하시고 저는 없는 게 좋겠지요? 호호... 말씀들 나누세요."

홍화가 안채로 건너 간 후, 일행은 조용히 술잔을 주고받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박일주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나으리 이 두 사람이 동래로 가는 목적과 해야 할 일을 일러 주시지요."

곽정일과 박덕출은 자신들이 더 궁금했던지라 송수호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말없이 다시 술을 따라 마신 송수호가 잠시 허공을 노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일세, 집안이 몰락해 가고 조석 끼니조차 막연하던 시절에.... 어떻게라도 과거에 급제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 죽어라 공부에만 매달렸었네. 부모와 처자가 굶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말일세. 그 후엔 자네들도 알다시피 십 년 넘게 한눈팔지 않고 죽어라 공무에 매달려 또 여기까지 왔네그려."

갑작스런 송수호의 넋두리 같은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말을 먼저 꺼내나 싶어 모두들 눈을 껌벅이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무란 무엇인가? 나랏 일 아닌가? 나랏 일은 또 누구를 위한 일인가? 백성들을 위한 것이겠지? 나도 그렇게 알고 열심히 일했었네. 한데 말일세. 말이 좋아 백성이지 온갖 벼슬아치들이 하는 짓을 보니 백성을 위한 공무는 아무것도 없더란 말일세. 전조(前兆)의 예송논쟁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온 조정이 임금을 흔드는 데만 그들의 목적이 있는 듯하네. 나라 안의 모든 사대부가 서인이요 남인으로 패를 가르고 서인은 서인대로 노론이요 소론이라... 거기서 또 파가 갈려 청남이요 탁남이 되질 않나.... 이래서야 임금이 어진 정사를 펼칠 기회가 있겠나? 서로가 권세를 잡으려고 상대를 죽이자고 임금을 조르네. 사방 팔방에서 끝없이 상소 쌓이네. 이렇듯 임금의 정신을 혼미케 하니 이게 무슨 신하의 도리며 백성을 위한 벼슬이란 말인가? 제놈들의 가문만 빛내자는 수작이지. 특히.... 영상과 그 서자인 허견 같은 자 말일세. 심한 말인지 모르나, 이런 인간들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보네. , 한복만이 내 가슴에 못이 되어 있네. 윗 사람이 되어 허견이 같은 놈 하나 막아주지 못했으니.... 자네들 보기에도 면목이 없고...."

"딸꾹."

말술에도 끄떡없는 덕출이가 갑자가기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소매로 앞을 가렸다. 죽은 한복만과 자별했던 것이다. 이어 박일주의 가래를 게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곽정일이 코를 피잉 풀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허견 같은 인간은 없어야 해. 허니, 신지남이 무슨 밀약으로 동래로 가는지 꼭 알아오게. 내 짐작이 맞는다면 큰일이 터질 걸세. 그리되면 놈들을 몽땅 몰아낼 수 있을 터이지. 이건 파당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뿐 놈들을 몰아내려는 것일세."

"나으리 말씀 잘들 들었지? 이런 중대사에 특별히 너희들이 가는 것이니만큼 신지남이 은자로 무슨 물화를 사들이나를 눈여겨 보란 말씀이시네."

숙연해진 분위기를 느낀 박일주가 정일이와 덕출이에게 힘을 내라는 의미로 송수호가 한 말을 다시 새겨 주었다. 그러자 듣고 있던 송수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신지남이 은자를 싣고 가지는 않을 것 같네. 생각컨대 청국으로 간다면 은자를 지니는 것이 옳을 것이나 왜국에서는 은자보다는 청국에서 들여오는 백사(帛絲)를 더 원한 것이야."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지남이 백사로 이미 바꿔 놓았겠군요."

박일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렇겠지. 우리가 생각을 못한 사이에 손을 썼겠지."

"그렇다면 장현의 집에서 왜 은자를 풀었을까요? 말 한마디면 백사 따위는 몇 동이라도 쉽게 구할 장현 아닙니까?"

"글쎄, 꾀 많은 사람이라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신지남이나 백사 따위는 몰랐던 것으로 하려던 게지. 어쨌든 은자는 청국에서 소용될 터이니 일주 자네는 지난번 성절사(聖節使)를 따라갔던 역관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그 담엔 그 역관이 백사를 얼마를 들여왔는지도 알보고. 내 생각엔 은자가 그리로 간 것 같네."

"그럽지요. 저 사람들이 동래로 떠난 다음 곧 알아봅지요."

그런데, 이제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덕출이가 아무래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송수호를 바라보았다. 왜국에서 은덩이보다 백사를 원한다니? 백사라면 명주실 아닌가? 알다가 모를 일은 곽정일도 마찬가지였다. 엽전은 근래에 흔해졌으나 은자는 좀처럼 보기 드문 물건이라 귀하고 좋기로 한다면 당연히 은덩어리지 명주실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아니, 나으리. 왜놈들은 누에도 안 친답니까? 그깟 명주실을 원하다니요? 왜국에 쌀 귀하단 소린 들었어도 명주실 귀하단 소리는 들은 바가 없는 뎁쇼?"

"그건 그렇지 않네. ()은 그들의 소산이라 매년 그것으로 조선에서 쌀과 백사로 바꾸어가네. 백사는 왜국이나 조선에서도 나지만 청국에 비하면 질이 못하는지라 우리도 청국에다 은을 주고 백사를 들여오네. 백사는 왜국과 거래하기 위해서지. 그건 그렇고 어떤가? 동래에 가면 놈들의 동태를 잘 살필 수 있겠는가?"

". 신명을 바쳐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곽정일이 힘 있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덕출이도 지지 않으려는 듯 큰소리를 질렀다.

"죽기를 다짐하여 놈들을 살필 것입니다."

"죽기를 다짐 둘 것까지야 없네. 자네가 죽으면 한복만의 원수는 누가 갚나?"

    모두들 웃는 가운데 덕출이가 눈알을 굴리고 머리를 긁더니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소인은 살기를 다짐하며 놈들을 잘 감시합지요"

"허허허, 그래야지. 덕출이 자네뿐 아니라 정일이 일주 우리 모두 살아남아 놈들이 망하는 것을 꼭 봐야 하네".

인경(人定) 소리가 들려왔다. 멀지 않은 종루에서 치는 것으로 도성의 사대문이 닫힐 것이었다.

      송수호는 안국방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5품의 청환직(淸宦職)인 사헌부의 지평 벼슬을 살고 있는 송수호가, 한양에서도 내로라하는 양반이 모여사는 북촌(北村)에 사는 것이다. 북촌 중에서도 권문세가가 많은 안국방(安國坊)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집은 크지 않으나 마당엔 오래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어 멀리서도 잘 보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이 동네에서는 감나무집 하면 송수호네 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 집의 내력을 말하자면 송수호의 고조부인 송인규가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한창 벼슬이 승할 때 지은 것이다. 그때가 백 년도 전인 선조(宣祖) 때인데 그 뒤에 벼슬 다운 벼슬이 없던 후손들이 집을 손볼 여유가 없었다. 겨우 음서(蔭敍)로 건원릉 참봉을 하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이 몰락해 자신의 대()에 와서는 극도의 궁핍을 면치 못함을 장탄식했었다. 그러던 중에 송수호가 계묘년(癸卯年)에 진사가 되고 이어 병오년(丙午年) 식년시(式年試) 대과(大科)에 붙어 홍패(紅牌)가 들어온 날 아버지 송시백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송 씨 가문이 다시 일어난다는 사실 앞에 얼마나 기뻤으면 못 마시는 술을 마셨을까?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백주에 돝고기 안주를 먹고 탈이 나서 토사곽란으로 밤을 새우더니 새벽녘에 그만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호사다마였다. 결국 이 집은 송수호가 벼슬을 살기 시작해서 수 년이 지나 겨우 손을 본 집인 것이다.

    앞집에는 숙안 공주(淑安公主)가 살고있있다. 그녀는 효종과 인성왕후 사이의 둘 째 딸이니 금상(今上)의 고모였다. 부마였던 익평위(益平尉) 홍득기(洪得箕)는 비록 6년 전에 세상을 떴지만 그는 죽기 3년 전에 백여 명의 목수와 미쟁이 기와쟁이를 총동원해 집을 대대적으로 수선을 하였었다. 제 집 제가 수선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마는 모든 역인(役人)을 공조(工曹)의 선공감(繕工監)에서 불러다 썼던 것이다. 결국 와서(瓦署)의 별제(別提)를 위협해서 기와를 갖다 쓴 것이 조정에 알려져 말썽이 났었으나 왕이 고모 내외를 벌 줄 수는 없었다. 그 뒤로는 마음 놓고 목재건 석재건 갖다가 제 집을 늘렸다. 뿐만 아니었다. 먹는 것도 귀한 밀가루나 기름은 궁궐의 내방고(內房庫)에서 갖다 쓰고 지방 특산으로 진상된 갖가지 물목들을 사옹원(司饔院)에서 맘대로 가져다 썼다.

    지금은 홍록기의 아들인 홍치상(洪致祥)이 집주인 격이었다. 홍치상 역시 부모를 닮아 지방 수령을 호령하고 공갈하여 재물을 긁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 어미인 숙안 공주와 이모인 숙정 공주(淑靜公主)가 모두 왕가의 위세를 이용해 그동안 신천, 재령, 평산 등에 수많은 백성의 논밭을 빼앗아 궁궐 살림 못지않게 살았다. 재물에 대한 끝 모르는 탐욕이었다. 이런 세도 집안의 아들인 홍치상이 언제부터인가 허적의 서자 허견과 붙어 다녔다. 둘은 나이 차가 십여 년이 나지만 죽이 잘 맞았다, 같은 털을 가진 까마귀끼리 모인 것이다.   

옆집에는 시임 영의정이요 오도체찰사(五道體察使)인 허적이 살고 있었다.    허적의 집은 대단히 커서 말 그대로 고래 등 같았고 부리는 종과 하인의 수도 6십여 명이었다. 그가 입궐이라도 할라치면 초헌(軺軒)이나 평교자(平轎子)를 타는데 가마꾼과 호위꾼이 십여명이 넘었다. 가마 앞에는 벽제꾼이 있어 길에 사람은커녕 개새끼 한 마리 없어도 <, 물렀거라, 에라, 길 비켜라>하고 소리를 지르니 동네 아이들 보기에도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랑엔 항상 사람들이 넘쳐나고 헐숙청에도 청지기의 부름을 기다리는 무리가 줄을 섰다. 혹시 외관 직이나마 현감이나 찰방 자리라도 차례가 있을까 하여 엽전 꿰미를 나귀에 바리바리 싣고 시골서 올라와 기다리는 것이다. 조선 팔도에 흩어져 있는 장토(莊土)에서 쌀과 볏섬이 들어오고 그 밖에도 자질구레하게 철에 따라 감이며 곶감, 사과, 배 등의 과실과 굴비나 도미 따위의 생선들이 줄을 잇고 들어왔다. 아마 문전성시(門前成市)란 이런 것을 말 함이리라.

지난 5월에 장마가 끝난 뒤로 여우비만 한두 번 왔을 뿐 이삭이 패야 할 한여름에도 비는 오지 않았다. 가뭄이 계속되어 백성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일 때, 세도 있는 이들은 오직 호사(豪奢)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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