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시경, 순복의 아버지 정팔봉 씨와 해병전우회 중대장 강철만이 영월의 고속버스 정류장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요즘은 카페가 대세여서 다방을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북에서 만나면 서로 가까울 텐데 왜 하필 이곳인가?"
"사위 되시는 분이 카지노 주변에 있을 확률이 높아섭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사람을 풀어 자신을 찾는다는 낌새를 주면 곤란하잖습니까. 그러면 또다시 숨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네만.."
"대원 전원에게 이진우의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그리고 소집을 해서 한 곳에 모으는 것보다 삼삼오오 흩어져 찾는 것이 넓은 지역을 카바하는데 유리할 것 같습니다."
"이곳 지리야 자네가 훨씬 잘 알 것 아닌가? 작전은 전적으로 자네 소관이니 맘대로 하게. 헌데 어디어디 배치했나?"
정팔봉씨가 묻기를 기다린 듯 강철만이 말아쥐었던 작전 지도를 탁자에 펼쳤다. 그리고 볼펜을 지휘봉 삼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대원의 배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태백은 크게 철암, 장성, 황지로 나누어 철암에 5명, 장성에 5명, 황지는 인구가 많으니 10명을 배치했습니다. 다음 사북 읍에 5명 카지노 객장에 3명, 그리고 예미와 석항 고한의 주유소에 각각 한 명 해서, 도합 31명에다 이곳 영월에 10명을 배치해 총 인원 41명이 투입 되었습니다."
"음 그만하면 물 샐 틈이 없구먼."
"이제 나타났다는 제보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럼 그곳으로 전 대원이 몽땅 집결해서 샅샅이 수색해 나가면 제아무리 미꾸라기 같은 도망자라도 투항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미꾸라지? 허긴 그놈은 미꾸라지나 다름없지. 맨입으로 잡을 수가 있어야지."
정팔봉은 이 한 번의 체포 작전으로 예상한 것 이상의 군자금이 깨질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세상엔 맨입으로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까짓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이진우란 놈을 딸 앞에 갖다놓아야 했다. 산달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 온 무남독녀 외동딸이 아비 없는 아이를 낳자말자 그때부터 정팔봉은 엄청난 곤경에 처한 것이다. 우선 마누라가 남편인 정팔봉을 잡아먹을 듯 닥달했다. 왜 이진우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고 쫓아서,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느냐는 것이었다. 딸인 순복이는 순복이 대로 연방 눈물을 짜고, 백일도 안 됀 갖난애는 밤이나 낮이나 제 애비를 찾아내라고 악을 쓰며 울어 재껴서, 정팔봉은 머리가 돌 지경에 이르렀었다. 그러든 어느날 우연히 아이의 얼굴을 드려다 보던 정팔봉은 고압선이 심장에 닿은 듯 화들짝 놀랐다. 무언 진 몰라도 말 못 할 뭉클한 감동이 와락 가슴에 닿은 것이다.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망울이 어쩌면 이렇게 예쁘며 코와 입술은 어찌 이렇게 앙증 맞은가? 게다가 얼굴 생김은 딸의 어릴 때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그 순간 당장 아비요 남편이며 사위인 이진우를 잡아 오기로 결심을 했었다. 귀신 잡는 해병이 그 깐 산 놈 하나 못 잡겠는가 말이다.
"선배님, 선배님이 인솔해 오신 병력은 어디에 배치하실 겁니까?"
강철만의 물음에 정신이 돌아 온 정팔봉이 잠시 생각하더니 엉뚱한 질문을 했다.
"자네 노름 할 줄 아나?"
"노름이라뇨?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닐세. 딸 아이 말로는 그놈이 노름판에서 얼쩡댔다니 하는 말일세."
"아, 잠깐만요, 전화가 왔습니다. 브리핑에 방해가 될까봐 진동으로 해 놨거든요."
강철만이 전화를 받자말자 목소리를 높혔다.
"뭐라고? 이진우를 찾았다고? 이진우가 틀림없어? 뭐야? 이진운지 확인을 해야지."
그때였다. 카페로 들어와 창가의 자리로 다가오던 손님 세 사람이 동시에 멈칫했다. 강철만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어디서? 연합 전당사 앞에서? 그럼 전송해 준 사진이랑 대조해서 이진우가 맞나 다시 확인해. 그런 다음 이진우가 확실하면 다시 전화 하라고. 알아?"
"찾았대? 어디래나?"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사북이랍니다. 전당사 앞이라니까 돈을 빌리려나 보지요. 그 것 보세요, 제 말이 맞잖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지노를 못 벗어난다니까요."
강철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펼쳤던 작전 지도를 말아 사북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들어 온 세 사람 중 호리호리한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이진우라는 사람의 사진이 있으면 좀 봅시다."
강철만이 그 사내를 잠시 흘깃한 후 스마트 폰의 화면에 진우의 사진을 띄웠다.
"혹시 아는 사람입니까?"
강철만이 물었다.
"아니군요, 아는 사람인가 했더니...."
사내는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는 오정철이었다.
"자. 선배님, 전화를 기다릴 것도 없이 사북으로 그만 가시지요. 틀림없을 겁니다."
음향모드로 돌린 강철만의 전화벨이 다시 시끄럽게 울려댔다. 벨소리는 애국가였고 중간에 딱 한번 심벌즈가 서로 맞부딧침과 동시에 하아-나 니임이 하는 합창 대목이었다.
"어? 이진우가 맞아? 알았어 곧 그쪽으로 갈 거야."
"음, 이제야 이놈을 내 손으로 끌고 가게 생겼군."
정팔봉씨와 강철만 예비역 해병 대위는 힘차게 카페의 문을 나서고 있었다.
"이진우가 맞아?"
자리로 돌아 온 오정철에게 신동규가 물었다. 그의 옆에는 방금 서울서 고속버스 편으로 내려 온 김은애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오정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예, 이진우가 틀림없었습니다. 사장님."
"햐, 이것 봐라, 끝판이 되니까 이것들이 죄다 나타나네?"
"이진우 말고 또 누가 나타났다는 겁니까?"
"아, 넌 모르겠군. 나도 은애로부터 조금 전에 들었으니까."
"그게 누굽니까?"
"찐드기 유명우패가 내려왔단다. 이건 명백한 약속 위반 아니냐?"
"곽덕배는 그럴 인물이 아닌데요?"
"아니긴, 개뿔. 어이 은애 네가 정철이에게 설명 좀 해 줘."
화가 나려 한 신동규는 손에 든 스마트 폰의 모서리로 연방 탁자를 탁탁 내려쳤다. 은애가 신동규의 손을 감싸 스마트폰을 가만히 빼앗았다.
"그게 어찌됐느냐 하면 말이죠. 어제 회장님께서 사장님을 여기로 내려보내신 후에 수도권에 심어놓은 우리 측 정보원을 총동원 해 정보를 수집하셨어요. 혹시 하우스를 비호하는 세력이나 여기 사장님이 하시려는 일에 적이 될 만한 조직이 내려갔나 하구요. 조직 간의 충돌을 염려하신 거죠. 헌데 다른 곳은 조용한데 부평의 찐드기파의 보스가 십여 명을 데리고 내려갔다는 정보가 들어왔대요. 자기들 업소의 수익금 몇 억을 챙겨 갔다니 일단은 도박에 목적이 있는 걸로 보이지만 경계는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하셨어요. 오과장님도 그들을 주시하셔야 할 거예요."
은애는 종업원이 방금 가져다 준 커피 잔을 찻잔을 받쳐 한모금 쨀끔 마신 후 탁자에 다시 살그머니 놓았다. 그런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신동규가 마음이 풀어져 은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은애가 옆으로 살짝 옮겨 앉으며 신동규의 손길을 피했다.
"아이, 보스다운 행동을 하세요."
"뭐? 내가 네 어깨에 손 좀 올린다고 보스답지 못하단 말이야?"
"보스라면 낮과 밤의 구분은 있어야죠."
"뭐야? 이게, 아. 이걸 그냥... "
신동규는 주먹을 들었다가 얼른 내렸다. 그것도 은애에겐 탈이 잡힐 행동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신동규의 성격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배려요 자제력이었다.
"알만 합니다. 사장님. 마쓰다에게서 받은 사례비도 있으니 한판 크게 먹어보겠다는 수작입니다. 하지만 제 놈들이 덤벼 봐야 하우스의 타짜를 이기겠습니까? 결국 그 돈도 오늘 밤이면 다시 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될겁니다."
"맞아. 이 자식들이 사기 쳐서 내 돈을 먹었으니 다시 토하게 그냥 둬. 대신 그놈들 옆에 감시꾼을 붙여. 놈들의 동태도 살필 겸, 돈을 따는지 잃는지 수시로 보고 하게 말이야."
신동규가 오정철의 의견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 듯 자신의 의견을 보태 동의 했다.
"어머, 정말 그러면 되겠네요. 옆에 사람을 붙이면 회장님 지시대로 미리 대처를 하는 거잖아요. 장철균가 하는 사람도 왔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몽땅 잃었으면....호호."
"이건 ...천사 같다가도 이럴 땐 또 악어 같다니까."
"악마가 아니구요?"
"악마까진 아니어도 말하는 걸 보면 욕심 하난 악어 이빨 같거든."
"좋아요. 기왕 악어 소리 들을 바엔 더 욕심을 부려보죠. 이번에 이진우란 사람에게서 총알을 찾으면 그 속에 든 다이아 하나만 저 주세요. 어때요? 주실 거죠?"
"뭐야? 이게 정말 악얼세. 은애 네가 여태 그걸 노리고 있었던 거야?"
"저도 여자니까요. 다이아를 가져보는게 소원이었거든요."
"좋다. 찾으면 한 알이 아니라 절반은 네 거다."
"어머 정말이죠?"
은애의 표정이 이제 막 떡을 손에 쥔 어린애 같았다. 그러나 떡도 먹기 전에 김칫국을 마시면 안 된다는 교훈은 잊고 있었다.
덕배의 부모와 함께 아침밥을 먹은 진우는 덕배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산을 내려 왔다. 오늘은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떠올려 지름길인 산중턱까지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와 보기로 한 것이다. 이길은 낮에는 덕배도 잘 이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은신처인 집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가능한 밤에만 다니며 노출을 꺼렸던 것이다. 일단 큰 도로까지만 나오면 사북 쪽으로 가는 자동차를 얻어 탈 생각이었다. 승용차들은 잘 세워주지 않았다. 역시 트럭 기사들의 마음이 후해서인지 진우를 태워주었다. 진우가 덕배의 사무실로 도착한 것은 아홉시 반쯤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칠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연락 온 것 없니?"
"아직 입니다."
"신사장이 영월에 와 있다며?"
"예? 형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도 방금 술 차 따라다니는 영재한테서 연락을 받았는데요? 그놈이 어제 배달 갔다가 신사장이 술집에 있는 걸 봤답니다."
"신사장이 여길 내려 왔다는 건 틀림없이 너희 사장의 사업과 관련이 있을 거야. 너도 이 사무실을 지킬 방도를 세워야 하지 않겠냐?"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두어 명 더 불러다 놓지요."
"너의 본사라는 데서는 무슨 낌새가 없디?"
"조용합니다. 그러니 구본웅이 알아 온 정보만 믿고 이렇게 기다리는 거지요."
"유명우라는 사람의 부하가 했다는 곽사장이 멀쩡하다는 얘기 말이야?"
"예, 신사장도 유명우도 이렇게 가만있는 걸 보면 그 말이 그럴듯하거든요."
"그렇다면 곽사장을 태워 간 그 여자도 혹시 같이 내려 온 것은 아닐까?"
"아, 그러지 않아도 그걸 알아보려고 본웅일 다시 보냈더니 그새 찐드기파가 한 명도 카지노에 남아 있지 않더랍니다."
"아깝군, 헌데 아까부터 만기랑 구본웅이가 안 보이네?"
"주차장에 있을 텐데요. 손님 차를 살피러 나갔거든요. 들어오시면서 못 보셨습니까?"
"글쎄?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어서 원..."
진우는 영월로 가 신사장이란 사람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보고 싶었다. 그가 덕배를 납치한 인물이라면 목적이 있을 테고 목적은 흥정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덕배의 목숨을 노리기 위한 납치는 아닐 것이었다. 목숨만 노렸다면 차라리 암살을 택했을 것 아닌가? 그러나 그를 만나도 협상이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득이나 총알 건으로 자신을 노리던 신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총알을 협상에 끼워 보려 해도 얘기도 꺼내기 전에 단번에 자신까지 납치하려고 덤빌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상구 아니냐? 왠일이야?"
"형님 지금 덕배 형님네 사무실에 계시지요? "
"어, 그래. 그런데?"
"거기 꼼짝 말고 계십시요. 제가 곧 갈테니까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고 칠수를 건너다보니 칠수도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포즈를 취했다. 이삼 분쯤 후에 상구가 이층 계단을 우당탕 뛰어 올라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형님 이것 좀 보십시요. 전우회 전 대원은 사북 역전에 모이라는 문자가 왔거든요? 형님의 소재가 밝혀져 수색에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형님, 뭐 곤란한 문제가 있으면 자리를 피하시지요.? 제가 차를 뒷문에다 대 놨거든요?"
"아니 이거 정말 영문도 모르고 쫓기는군. 도대체 뭣 때문에 날 찾는다는 거야?"
"저도 아까 알아냈습니다. 형님 장인 되는 분이 찾는답니다."
"뭐야? 장가도 안 간 놈이 장인은 또 뭐야? 엇? 혹시 날 찾는 사람이 스포츠머리에 오륙십 된 사람이래?"
"그건 저도 모르지요. 전화로만 정보를 주고받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알아 볼 까요?"
"그러고 있을 시간 없어. 내가 그 사람들과 상대할 시간이 없단 말이다."
"그럼 지금 뒷문으로 피하시지요. 입구에 우리 대원 두놈이 있던데요. 곧 수십 명이 몰려 올 거란 말입니다."
"형님 이리 오세요. 뒷문은 저깁니다."
칠수가 뒷문을 열자 진우와 상구는 얼른 비상계단 아래에 세워 둔 택시에 올랐다.
진우가 상구의 택시를 타고 작은 개울의 다리를 건너 오거리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가다시피 할 그때 쯤이었다. 영월에서 30Km쯤 떨어진 스노우 리조트 호텔 라운지에 유명우와 장철규 남매가 늦은 아침을 마친 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지금이 몇 신데 이제서야 식사를 하셨단 말입니까?"
"어서 오게, 우리가 좀 늦게 일어나서 말이야."
덕배가 테이블로 다가오며 유명우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러자 장철규와 미자도 일어나 덕배에게 인사를 했다. 덕배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한 후 유명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몇 시까지 게임을 하셨는데요?"
"우리가 하우스에서 엉덩일 털고 일어났을 때가 아마 한 시쯤 됐었지?"
유명우가 장철규에게 확인하 듯 동의를 구했다.
"한 시가 뭐예요. 두시 반이 넘었었는데요."
장철규가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미자가 재빨리 되받았다.
"그래? 여하튼 조금이라도 땃을 때 일어나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밑천을 홀랑 다 날릴 뻔했잖아? 그러고보면 먹었을 때 일어서라는 공자님 말씀은 확실히 명언이야."
"에이 회장님도, 공자가 언제 그딴 말을 했어요?"
"미자 넌 날 아주 무식쟁이로 보는군. 잘 들어 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천하 제국을 떠돌 때 무지하게 굶주리며 다녔거든. 어떤 땐 배가 고파 다른 나라로 갈 힘도 없었을 정도 였으니까. 그래서 말이야. 어쩌다 먹을 게 생기면 제자들 보고 그랬대. 먹었을 때 얼른 일어나 떠나자고. 안 떠나고 우물쭈물하다간 또 배가고파 못 떠날 것 아닌가 말이야?"
"하하하, 그럼 제가 공자네요. 땃을 때 그만 가자고 한 사람이 저 잖아요?"
"하핫. 그건 그래. 네가 가자고 안 했으면 철규가 다시 다 꼴아박을 뻔 했거든."
유명우는 유쾌한 표정으로 라운지를 돌아보았다. 스키 시즌이라 호텔은 만원이었지만 아침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어서 손님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래, 얼마나 땃습니까."
덕배가 물었다.
"한 사억쯤 땃지. 그것도 미자 혼자서 말이야."
"오, 많이 따셨네요. 역시 미자씨가 그 방면엔 솜씨가 있나봅니다."
"그건 제가 솜씨가 있어서가 아니라 회장님과 오빠가 가는 반대쪽에만 걸면 이기기 때문이에요. 두 분은 꼭 지는 곳만 골라 배팅을 하거든요. 하하하."
미자가 크게 웃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미자 때문에 말할 기회가 전혀 없던 장철규가 동생에게 눈을 흘기며 나섰다.
"이건 여자답지 못하게 하하하가 뭐야? 하하하가? 징그럽게 스리. 허고 내가 언제 질 곳만 골라 배팅을 했다는 거야? 중간에 칠천인가 딴 거 못 봤냐?"
"따면 뭘 해? 십분도 못가서 홀랑 잃는 걸?"
"아, 그만, 그만들 하고 이제부터 오늘의 작전을 의논하기로 하지?"
장철규 남매의 말싸움이 오래가기 전에 유명우가 테이블을 손끝으로 몇 번 두드렸다.
"미자씨가 사억을 땃다면 밑천 이억까지 하면 육억이겠군요. 그럼 회장님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억 중에 팔천을 잃었지."
"그럼 일억이천에 미자씨 것까지 합하면 칠억이천에 철규 넌 얼마나 잃었기에 동생한테 놀림을 받는거야?"
"말 마세요. 형님, 난 노름엔 소질이 없나봅니다. 다 날리고 한 푼도 없습니다."
"그것 보세요. 덕배씨, 우리 오빤 저렇다니까요? 오빤 오늘은 제발 좀 빠져. 빠지라구."
미자가 다시 장철규를 몰아붙이자 유명우가 지레 장철규의 반격을 사전에 막겠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자신도 소질이 없긴 마찬가지인지라 미리 자수를 했다.
"오늘은 나도 빠지련다. 미자가 딴 걸 내가 다시 몽땅 털어넣으면 안 되니까...어제 철규랑 내가 잃지 않았다면 삼억은 더 번 꼴 아닌가 말이야."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대표로 미자씨가 혼자서 하되 미자씨를 보호하려면 좌우의 자리는 확보해야 하니까 두분은 배팅을 하지말고 앞에 돈만 쌓아두시지요."
"그럼 저는 있는 장비를 활용해서 현장을 형님께 실시간으로 보여드리지요. 그러면 돌아가는 판세를 형님이 보시고 유리한 쪽을 아르켜 주시면 거기다 배팅을 할 테니까요."
덕배의 말에 장철규가 의견을 덧붙였다. 장철규의 말을 들어본 유명우와 덕배가 그런 수도 있냐는 듯 눈이 커졌다.
"어? 그게 가능하다고? 그럼 여기 호텔에 앉아서도 하우스 안을 볼 수 있단 말이야?"
"에이 그건 아니구요. 제 장비의 주파수대여 폭과 출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가능한 한 서로 가까이 있어야 소리와 화면이 선명합니다."
"그래? 어려운 얘긴 모르겠고 얼마나 가까워야 돼?"
"4Km 이내가 이상적이지요. 최대는 6Km 정도구요."
"그럼 충분해. 난 산 아래 자동차 안에 있을 테니까."
"그럼 오늘 저녁 몇 시에 시작할까?"
유명우가 곽덕배의 의견을 물었다.
"아홉 시가 넘으면 판이 커질 겁니다. 허나 그 전에 일곱 시쯤 시작해서 게임의 흐름을 봐 둬야겠지요. 헌데 사람들이 많아 자리 차지하기도 만만찮을 겁니다."
"그럼 우리 애들을 보내 개장 시간부터 자리를 꿰 차고 앉아 있으래야겠구먼."
그런 건 염려말라는 듯 유명우가 한 쪽 다리를 다른 무릎에 척 꼬아 올렸다.
"그럼 얘기가 다 됐내요. 게임은 미자씨가 주도하고 형님은 옆에서 보조만 하시고. 철규는 몰래 카메라로 그림을 내게 보낸다. 이거 아닙니까? 참, 전송 된 화면을 녹화도 할 수 있는 거냐?"
"물론입니다, 장비가 실린 제 차는 하우스 가까이 가져가고 회장님 차에다 송수신 장치와 노트북을 연결해 드릴 테니까 형님은 그져 보시고 마이크로 지시만 하시면 됩니다. 녹화는 자동으로 되게 해 둘 테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그때를 위해 사우나에 가서 피로를 미리 풀어두자고. 자, 다들 일어서. 참, 우린 사우나로 갈 텐데 미자 넌 어쩔래?"
유명우가 미자를 넌지시 바라보자 미자가 발딱 일어나 덕배 옆에 딱 붙어섰다.
"두분만 가셔서 닭찜이나 오리찜이 될 때까지 찜질을 하세요. 덕배씨랑 저는 황토방에서 찐 계란이나 까먹고 있을 테니까요. 하하하."
"저게...또 저렇게 웃어. 아, 소름 돋아, 헌데 형님은 비위도 좋습니다. 미자의 저런 웃음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으니 말입니다."
장철규가 놀리 듯 덕배를 바라보았지만 당사자는 미자를 보며 싱긋이 웃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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