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11. 혼돈의 틈에서(3) 숨은 전쟁터

fiction-google 2024. 3. 16.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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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 말이 사실이라면 김기동의 계획은 이미 종친 거나 마찬가집니다. 사장님."

신동규를 향해 안순태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신동규는 손가락으로 턱을 문지르며 눈을 차창 밖에 꽂은 채 말이 없었다. 대신 오정철이 나섰다.

"순태 넌 김기동을 아직도 모르냐? 그놈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놈이 아니잖어?"

"기술자가 떠났다며? 그럼 끝이지 별 수 있냐? 기술자 없는 하우스로 뭘 할 수 있겠어? 끝났어. 끝장났다니까. 사장님은 그런 생각이 안 드십니까?"

신동규는 그 답지 않게 계속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인 신회장이 말한대로 침착하게 생각을 해 보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기술자야 또 불러오겠지. 뭐 그놈들 밖에 없겠냐?"

오정철은 김기동이란 놈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놈이란 걸 안순태에게 심어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이 단순한 안순태는 김기동의 하우스 사업이 끝났다고 계속 우기는 것이다. 김기동이 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희망 사항인 것이다. 오랜만에 고기로 포식을 한 후 차로 돌아와 막 시동을 걸었을 때 석호의 전화가 왔었다. 불과 한시간여 전에 통화를 끝낸 석호가 다시 돌발 상황을 알려온 것이다. 개장을 눈앞에 두고 김기동과의 다툼으로 갑자기 기술자들이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개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틀린 일 같긴 했다. 차는 출발을 멈추고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사장님,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안순태가 다시 한 번 사장의 의견을 물었다.

"이거 뭐가 좀 이상하다."

신동규가 몇 분의 침묵을 깨고 뚜벅 내 뱉었다.

"네 쪽에서 먼저 석호에게 전화 하지 않기로 했다구 그랬지?"

". 사장님."

"그럼, 은애 네가 전화를 걸어 봐. 모르는 번호니까 석호가 받을 거 아냐? 저쪽에서 받으면 얼른 정철일 줘. 그러면 정철이 넌 전화를 받는 사람이 석혼가 아닌가만 알면 돼. 목소리만 확인하고 얼른 은애에게 넘기란 말야. 그럼 은애는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하고. 알았지?"

오정철이 은애의 전화기를 건내받아 석호의 번호를 찍자 신호음이 울렸다. 잠시 후 상대와 연결이 되었다. 은애가 먼저 여보세요 라고 말한 다음 얼른 오정철의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댔다.

"여보세요. 누굴 찾으슈?"

목소리를 확인한 오정철이 재빨리 전화기를 은애에게 다시 돌려 주었다. 석호가 아니었다.

"어머머, 죄송해요. 전화를 잘못 걸었나 봐요."

은애는 얼른 전화를 꺼버렸다.

"석호가 아니라 오덕이 목소리 같던데요?"

"그래? 그럼 내 생각이 맞았군. 석호의 전화기가 오덕이에게 가 있다면?"

"오덕이에게 전화를 뺏겼겠군요."

"맞아."

오정철과 안순태가 동시에 외쳤다.

"거 봐. 아까 내가 이상하다고 했지? ? 오늘이 개장일인데 기술자들이 이제와서 배당문제로 다투었다고? 누굴 핫바지로 아나? 웃기고들 있어. 하우스 사업은 내가 원무현이랑 해봐서 잘 알아. 배당 문제는 하우스 설치 전에 먼저 정해지는 거야. 물주가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가 아닌 이상 관행이란 것이 있어 배당을 멋대로 올릴 수도 없단 말이야. 그러니 기술자들이 적어도 배당문제로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어. 이건 다른 문제가 생겼을 거야. 헌데 그걸 모르겠단 말이다. 가만, 너희들 잠깐 나가 있어. 회장님께 보고를 해야겠다. 은애 너도 잠깐만 나가 있어."

세 사람이 차에서 빠져 나가자 신동규는 신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 석호가 알려온 내용을 말하고 이상한 생각에 다시 전화로 확인하니 다른 사람이 받더라는 말을 했다. 이어서 감은 오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를 잘 모르겠단 말을 덧 부쳤다. 신동규가 할 말을 다해 입을 닫았건만 신회장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아버진 이상하단 생각이 안 드세요?"

참지 못한 신동규가 신회장의 대답을 제촉했다.

"그곳에 너하고 열 촌되는 일선가 하는 애를 두고 왔다고 했지? 지금 걔 한테 전화를 해봐라. 도박이란 아무리 몰래 해도 그 계통으로 약간씩 소문이 새게 마련이다. 어제 오늘 외지인이 늘었는지 관광버스가 왔었는지 알아보란 말이다. 알아보고 다시 전화 다오."

아버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낀 신동규가 신일서에게 전화를 했다. 몇 마디 주고 받는 사이 일서는 신동규에게 단서가 될 만한 말을 꺼내 놓았다.

"아까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버스로 내려온 외지 손님이 식당에 가득이라 저도 간신히먹었습니다. 눈치를 보니 우리 하우스 손님 같던데요? 사장님."

"우리 하우스?"

". 김과장과 천과장은 요즘 거기 매달려 정신이 없습니다. 애들도 거의 동원해 갔구요.    제가 오과장님에게 넘긴 유에스비 내용은 들어보셨지요? 오늘이 개장이라는데 김과장과 천과장은 언제까지 두실 겁니까? 아닙니다. 애들은 우리 조직에서 하는 사업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렇게들 열심이지요. ? 하우스는 며칠 내로 대박이 날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도 관광버스가 한대가 카지노를 들러 태백 쪽으로 갔습니다. ? 아닙니다. 카지노를 들르는 것은 눈속임일 뿐입니다. . 알고 있습니다. 비밀은 철저히 잘 지켜지고 있으니까 염려마십시요. 사장님."

며칠 후에 놈들을 응징하러 갈 것이라는 말에 신일서의 목소리에는 신이 묻어났으나 신동규는 갑자기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놈의 새끼들이 조직을 팔아 들어 내놓고 해 먹으려는 것이 아닌가? 신회장에게 그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말을 다 들은 신회장의 목소리가 차갑게 건너왔다.

"네게 정보를 제공하던 놈이 김기동에게 잡힌 것이다. 김기동은 이미 정보가 센 걸로 판단해서 복선을 깔려고 그놈을 시켜 정철이에게 다시 전화 한 것이고. 새로 기술자를 구한다 어쩐다 해서 자기들 시간을 벌려는 게야. 정말 하우스 개장이 취소되었다면 제일 먼저 고객인 게임 참가자에게 통보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점심시간 이후에도 고객이 그곳으로 향했다면 뻔한 것 아니냐? 개장은 예정대로 오늘이다. 잘 해먹게 그냥 둬라.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그놈을 시켜 새로 개장 한다는 날짜를 알려 줄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그 날짜로 믿고 계획을 세울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한 열흘쯤 뒤로 미루겠지. 그리고 안됐지만 네 정보원인 그놈은 죽은 목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해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그놈이 죽어야 너와 연관이 없어지고 또 김기동의 죄과가 하나 더 붙으니까. 넌 모른 척,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말거라. 이런 일은 이미 예견한 일이다. 그곳 경찰도 이미 냄새는 맡았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서 내가 미리 손을 쓴 것 아니냐. 내 조만간 네게 지시를 내리마.. , 밥은 맛있게 먹었냐?"

", 아버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이럴 때 온천이나 며칠 다녀오면 어떻겠냐? 너도 그렇고 정철이나 순태 모두 사고 이후에 제대로 쉬지를 못했잖냐? 이참에 걔들 데리고 갔다 오려무나. 가겠다면 삿보로에 연락을 하마"

"아 알았어요. 아버지. 허지만 제가 요즘 좀 바빠서 말이죠. 이만 끊을게요."

신동규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얼른 꺼버렸다. 전화기 넘어에서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신동규는 모두를 다시 불러들였다. 오정철이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 시켰다. 골목길을 빠져나온 차는 세종 사거리를 지나 시청으로 향했다.

"회장님 생각도 나와 같으시더라. 석호란 놈이 정철이 네게 전화를 하다 오덕이란 놈에게 들킨게 틀림없다구. 내게 따로 생각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신경쓰지 마."

"김기동이 하우스를 해처먹게 그냥 둔단 말입니까?"

만약 김기동이 옆에 있다면 물어뜯고 싶다는 듯 안순태는 목소리를 높혔다.

"깜짝이야. , 안순태. 내게 따로 생각이 있단 소리 못 들었어? 회장님 지시가 내릴 때까지 넌 좀 가만있어. 그 후엔 네가 신나게 화풀이를 할 기회를 줄 테니까. 알어?"

", 사장님."

"알았으면 됐어. 그리고, 정철이 너 잘 알려지지 않은 놈으로다 제대로 일할 놈 좀 못 구하냐? 시키는 일만 똑 부러지게 해 준다면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까 말이야."

"? 주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주먹? 한방이 있다면 좋긴 하겠지만 이번 일은 주먹보다 머리가 필요한 일이야. 주먹보다 대가리가 휙휙 돌아가는 놈이 어디 없을까?"

"그런 놈이라면 인천의 찐드기파 장철규가 있잖습니까? 사장님께서도 그놈을 본 적이 있을 텐데요? 맞아. 언젠가 인천 월미도에 갔을 때였습니다. 선착장 앞의 횟집에서 였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그놈을 제가 사장님께 인사를 시키지 않았습니까? 기억 안 나십니까?"

"?.......그 때가 언제야?"

신동규가 갑자기 짜증이 나려는 것을 참고 물었다. 신동규의 관심은 인천도 월미도도 횟집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놈이 인사를 하고 말고 따위는 신동규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다만 장철규란 그놈이 정말로 쓸만한 놈이냐 하는 것과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때 오정철이 막 대답하려는데 조수석의 안순태가 먼저 제 무릎을 탁 쳤다.

", 나도 생각났다. 그러니까 오 년 전이구나. 우리가 감빵 가기 직전에 월미도에 갔었지? 키가 작고 얼굴이 새카만 그놈. , 맞지?"

안순태는 자신의 기억력을 과시하려는 듯 신이났으나 신동규는 더욱 못마땅한 얼굴로 변했다. 안순태가 한마디만 더 하면 폭발할 기세였다. 백미러에 비친 신동규의 표정을 제빨리 간파한 오정철이 급히 나섰다.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사장님. 오늘 밤에 잠깐 만나자고 할까요?"

"정말 쓸만한 거야?"

"찐드기가 여태 부천과 부평을 쥐고 있는 것도 철규 그놈 대가리 덕분에 가능합니다. 게다가 철규는 의리도 있는 놈입니다. 실력으로 보면 찐드기를 뭉개고 그 자리를 꿰차고도 남을 놈이 이 인자 그대로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일을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느냐가 문제지 내가 지금 그깟 의리를 바라는 게 아니잖어? 이 일은 실패하면 큰일 난단 말이야. 아차하면 전쟁이 터진다구."

"전쟁이요? 누구랑 말입니까? 사장님."

안순태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긴 연합파지."

"아니 그렇다면 혹시 곽덕배를 어찌 하시려는 겁니까?"

"역시 정철이가 눈치가 빠르군. 맞어. 그놈을 잡아다 내 앞으로 끌고오는 일을 할 놈을 찾는 거야. 네가 말한 그놈이 그 일을 깨끗히 해치울 수 있을까?"

"그 방면에 역시 장철규가 최고인 건 확실하지만 아마 댓가도 많이 요구할 겁니다."

"어느 정도의 댓가는 생각을 하고있어."

그때 그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던 은애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댓가 이상의 것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사업 얘기에는 좀처럼 참견을 않던 은애가 자신의 말에 토를 달고 나서자 신동규는 화가 나기 이전에 어라, 이것봐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네가 뭘 안다고 우리말에 끼어들어?"

"그렇잖아요?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해줄 때는 일한 댓가만 바라겠어요? 그 일도 결국 자기들 조직을 위해서 하는 일일 거 아네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도 있는 일을 자신들에게 맡기는 이유를 캘 것이고 이유를 알게되면 그게 곧 우리들의 약점을 잡는 것이겠죠? 댓가를 받고 난 다음 다시 그 약점을 이용해 우리를 협박을 하면 어떻하실래요?"

"뭐야? 이거 무슨 소릴..."

신동규는 갑자기 반박할 말이 없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장철규가 자신을 전혀 모르고 있다면 몰라도 은애의 말대로 곽덕배의 납치를 지시한 사람이 신동규임을 아는 한 일한 댓가만 먹을려고 않을 것이었다. 연합파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며 엄청난 요구를 할지도 모를 노릇인 것이다. 조직끼리는 의리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는 세상이 된 이 마당에 믿을 놈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물질만이 만능이고 건달에게도 돈을 버는 사업성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은애가 이 세계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었다.

"어이 정철이, 넌 은애 말을 어떻게 생각 해?"

잠시 대답이 궁한 신동규가 오정철의 의견을 물으며 손은 턱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 사이 자신도 생각을 좀 하려는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신동규는 마음이 초조했다.

"... 글쎄요. 사장님. 저도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힘듭니다. 요즘의 건달들은 옛날과는 영 다르지 않습니까. 장철규가 의리가 있다고 소문은 났지만 그놈도 자기들 조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놈이거든요."

"그것 보세요. 오과장님도 그렇다잖아요?"

"그걸 누가 몰라? 그래서 첨부터 아예 모르는 놈으로 쓰려고 했었던 거잖아? 이봐 정철이, 우리 조직을 모르는 놈은 없을까? 아무래도 철규라는 그놈은 안 되겠어."

"글쎄요. 그런 놈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놈들은 모두 제가 누군지 아니까 말입니다. 사장님."

오정철이 난처한 듯 백 밀러를 연신 흘깃 거렸다. 그러자 은애가 또 입을 열었다.

"철규라는 사람이 일을 잘 한다니 그 사람을 쓰되 지금 본사에 나와 있는 야쿠자를 시키면 되잖아요? 그 사람들은 그런 일에 밝은데다 우리말도 잘하니까 철규라는 사람을 만나서 타협을 잘 할 거예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게 바로 그거야. 정철이나 내가 나서기보다는 마쓰다를 내 세울려고 애초부터 계획했던 거라고. 우리가 개입되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면 그 수가 최고 아니겠어? 일이 성사되면 마쓰다는 출국하고 없을 테니까."

해결 방법이 생긴데 대해 신동규는 비로서 침착성을 되찾았다.

"좌우간 오늘 내로 종철이 넌 몇 다리 건너는 형식으로다 그놈과의 연락 방법을 찾아 봐. 나는 마쓰다에게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 둘 테니까. 연락만 되면 마쓰다가 알아서 잘 할 거라구."

", 사장님."

오정철이 시원스럽게 대답을 하자 옆에 앉은 안순태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두시가 조금 지나자 큰길을 벗어난 비포장 도로로 한대의 버스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전 열 시 경부터 버스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하우스의 모든 맴버들의 눈이 버스에 쏠렸다. 폐광 이후부터 잡초가 무성했던 도로 위를, 기다리던 버스가 말라죽은 풀들을 뭉개며 느리게 다가오는 것이다. 김기동과 천태종 역시 흐뭇한 마음으로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이제야말로 진짜 시작이로군요."

천태종은 이미 부자라도 된 듯 감격한 목소리였다.

"그래, , 음료수랑 과일은 충분하게 준비했지?"

"그럼요, 오늘 하루는 술 빼곤 모두 공짜로 제공할 겁니다."

"저기 부엉이가 나서는군"

김기동이 턱으로 가르키는 곳엔 정말로 부엉이가 공터에 멈추어 선 버스를 향해 웃으며 다가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처음 내린 사람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부엉이가 김기동에게로 다가와 그 사람을 소개했다. 김기동은 서로 인사를 마치자말자 김칠용이라고 밝힌 그 사내에게 은근한 소리로 물었다.

"형씨가 보기엔 어떻습디까? 종잣돈들을 좀 지닌 눈칩디까?"

"? 왜요? 밑천이 모자라면 사장님이 빌려주실 겁니까?"

", 그게 아니라 큰돈들을 따려면 큰돈이 굴러야 하고 큰돈이 굴러야 형씨나 나나 고물이 좀 떨어질 것 아니요? 그래서 물은 거니 오해는 마시요."

"하핫 저도 농담을 한 겁니다. 걱정 마십시요 사장님. 제가 데려온 사람들은 밑천이 든든합니다. 밑천이 짧아서야 어디 남의 돈 구경이나 할 수 있습니까? 본래 밑천이 든든하고 진득하게 오래 끄는 사람이 따는 법 아닙니까?"

괜한 호기심에 무안을 당한 김기동이 천태종을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나 임시 사무실로 쓰려는 봉고차로 돌아갔다. 그사이 부엉이는 차에서 내린 꾼들과 일일히 악수를 하고 그들을 안내해 하우스로 향했다. 바깥 날씨는 약간 쌀쌀했으나 하우스 안은 훈훈하다못해 땀이 날 정도로 후끈했다. 사람들은 길게 깔아놓은 장판 위에 아무렇게나 올라 앉아 다른 참가자를 태운 버스가 올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부엉이는 창원 팀이 탄 버스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버스는 가까운 곳까지 온 것 같았다. 채 이삼 분 후에 버스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자 또 다시 덩치들과 부엉이가 몰려 나왔다. 봉고차의 김기동과 천태종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곧 개장을 선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창원에서 온 꾼들의 숫자는 대구꾼들 보다 몇 명이 더 많았다. 그들이 모두 실내로 들어서자 제법 넓은 하우스 안이 그득한 느낌이 들었다. 늦게 온 팀들에게도 약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다보니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오후 세시에야 개장을 선언했다. 부엉이가 마이크를 잡아 능숙하게 게임의 종류와 방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개장 첫날인 관계로 빅게임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가볍게 손이나 푸는 정도만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부담없이 즐긴다는 심정으로 게임에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차후에 이곳에서 행할 게임으로는........"

하우스에서 하는 게임은 몇가지 되지 않았지만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바카라 흡사한 하우스식 가보잡기였다. 판돈이 큰데다 단순하면서도 긴박감이 넘치는 가보잡기는 그야말로 하우스 대표 게임인 것이다. 바카라는 세 장의 카드로 합이 9에 가까운 숫자를 가진 사람이 이기는 단순한 게임이다. 하우스의 가보잡기 역시 바카라와 흡사했다. 세 장의 화투장으로 아홉 끗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다만 카지노의 바카라와 다른점은 섯다의 족보를 넣어 투기심을 더욱 높인 것이었다. 장땡과 삼팔 광 땡 두 개를 끼워 넣은 것이 그것이었는데 다른 땡들은 인정을 안 했다. 예를 들어 국화 두 장이면 구땡이지만 여기선 그냥 여덟 끗일 뿐인 것이다. 광땡도 일팔이나 일삼 광땡은 쳐주지 않고 오로지 삼팔광땡만 모든 패를 누르는 최고 족보였다. , 가보인 9위에 장땡이 있고 그 위가 삼팔 광땡인 것이다. 장땡과 삼팔 광땡을 끼워 넣은 것은 판돈을 키우는 배팅 찬스를 한번 더 갖기 위한 장치였다. 땡을 넣음으로써 아홉 끗을 가지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끗발을 확인 한 참가자들은 상대를 이길 패라는 생각이 들면 또 한 번의 배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자연 판돈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다 배팅액의 상한선도 없었다. 게다가 판돈은 칩이 아닌 현찰 배팅이었다. 플라스틱에 불과한 칩과 달리 눈앞에서 돈 뭉치가 왔다갔다하면 저마다 눈빛이 달라진다. 게다가 이어지는 배팅으로 판돈이 산처럼 쌓이는 걸 보면 누구든 그만 이성을 잃고 만다. 적어도 노름꾼 중에는 그런 돈더미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심심풀이 땅콩....짓고땡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 뒤에 계신 분은 속이 안 좋으십니까? 화장실은 하우스 오른 쪽 20미터 지점에 있읍니다. 갔다오실 동안 먼저 한판을 돌리겠습니다. 그림이 잘 보이지 않으신 분은 스크린을 주목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패를 돌리세요,"

부엉이의 마이크를 이어받은 게임 진행자가 게임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화투는 시계 방향으로 차례로 한 장씩 돌려서 다섯 장씩 모두 세 군대로 놓여지고 있었다.

"시작된 모양이군. 태종이 넌 가서 질서가 잘 유지되나 애들을 감시 해. 초장부터 사고 나면 신세 조지는 거 알지?"

김기동이 시트에 묻었던 몸을 이르켜 세우며 턱은 봉고차 밖을 가르켰다.

"염려 마십시요, 형님. 오덕이가 왔으니 애들 걱정 마십시요."

"석호는 단단히 지키고 있겠지? 그 쥐새끼 같은 놈이 튀면 큰일이니 네가 전화로 다시 한 번 공갈을 쳐. 잘 지키라고 말이야."

", 그러지요."

여하튼 개장을 했으니 탈없이 돈이 모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천태종이 차 밖으로 나가자 김기동은 다시 시트에 몸을 묻고 지금까지 일이 잘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곰곰히 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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