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파투(破鬪) 6. 또 다른 음모(1) 신동규

fiction-google 2024. 3. 1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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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하시겠습니까?"

이제 막 셔플을 끝낸 딜러가 윤치우에게 물었다.

". 신사장, 자네가 하지? 오늘은 자네가 운이 따르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럼 그럴까요?"

윤치우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신동규는 딜러가 건네는 컷 나이프를 가운데에 찔러넣었다. 그들은 지금 5층에 있는 VIP룸 가운데서도 큰 테이블 하나와 작은 테이블 여러개가 놓인 방에서 미니 바카라를 하고 있었다. 큰 테이블은 비어 있었고 다섯 개의 테이블은 제각각 대여섯 명 씩 둘러싸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테이블 가운데 두 테이블은 배팅액이 미니멈 10만 원에 맥시멈 300만 원의 판이었고 윤치우와 신동규가 앉은 테이블과 나머지 둘은 미니멈 20에 맥시멈 500까지 배팅이 가능한 테이블이었다. 미니멈 20만 원이란 액수는 사실 외국의 카지노에 비해서는 터무니 없이 높은 액수였다. 미니멈과 맥시멈의 차이가 클수록 또 미니멈이 소액일수록 게이머들에게 확률적으로 유리한 법이다. 밑천이 짧은 사람이 미니멈 20만 원으로 배팅해서 몇번만 잃으면 본전을 회복할 기회는 엄청 줄어든다. 미니멈으로 본전을 만회하려면 진 횟수만큼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이기기가 그리 쉬운가? 따면 모르되 조금이라도 잃으면 사람들은 초조함을 못이겨 본전 생각에 맥시멈으로 대항하기 일쑤다. 그게 다행이 맞으면 좋은데 잘 맞지 않으니 그걸로 그 사람은 단시간에 끝장인 것이다. 하므로 미니멈 허용 액수가 적을수록 오랫동안 그리고 흐름을 읽을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잃어도 최소액이라 데미지가 적으니 그만큼 느긋한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진작 간파한 카지노 측에서 미니멈의 액수를 높혀 미니멈과 맥시멈의 차이 즉, 디퍼런스를 아예 적게 해 놓은 것이다. 빨리 잃고 가라는 거다. 딜러가 플레이어 앞에 놓인 카드를 뒤집었다.

"뱅커 윈"

말이 입술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딜러는 플레이어에 배팅한 신동규의 칩을 냉큼 걷어가 버렸다. 그리고 뱅커에 배팅한 윤치우 앞으로 200만 원짜리 칩을 밀어주었다. 신동규는 입이 썼다. 500을 잃은 것이다. 신동규와 달리 돈을 따고 있던 윤치우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렇다고 잃은 놈 앞에서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꾹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치우는 신동규와 반대로만 배팅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림이 좋질 않더니 제길.... 어이, 딜러 맥시멈을 좀 올리자구."

약이 오른 신동규가 애꿎은 딜러에게 세모꼴 눈을 치켰다.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규칙이라서..."

"규칙? 그럼 친구들과 같이 가는 건 괜찮겠지?"

", 그것은 허용됩니다."

"몇 사람까지 되지?"

"다섯 분까집니다."

", 그럼 나까지 여섯? 오륙이 삼십. 삼천만 원이군. 좋아. 불러오지."

자리에서 일어난 신동규가 다른 테이블로 눈길을 돌렸다. 저쪽 테이블에서 게임을 구경을 하던 부하를 손짓으로 불렀다.

"하일이 너, 가서 개평꾼 몇 명만 몰아와."

"몇명이나 말입니까? 사장님."

"이런 새끼라고는...너까지 다섯."

하일이 돌아서는 순간 출입구 쪽에서 김은애가 빠른 걸음으로 신동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불러 작은 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사고예요. 오과장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방금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요."

"? 오정철이? 어디서?"

"영월로 후송했대요."

"멍청한 새끼들, 알았어. 죽지 않았으면 됐어. 게임해야 되니까 너는 가 봐."

"둘은 죽었대요."

"? 죽어? 누가?"

"이름은 몰라요. 경찰이 사무실로 연락을 했었나 봐요."

"빌어먹을..알았어."

신동규는 테이블로 돌아와 자기 앞에 놓였던 칩을 윤치우에게 몰아주었다. 삼천만 원은 될 것이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윤치우는 무슨일이냐는 듯 신동규를 올려봤다.

"부장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 애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답니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처럼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뭐야? 낮에 그 친구들인가?"

", 그렇습니다. 큰 사고 아니니 걱정 마시고 즐기십시요. 그럼..."

윤치우에게 깍듯시 고개를 숙인 신동규가 문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김은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은애 넌 여기 남아 있다가 저 윤검사가 게임을 끝내거던 예쁜애 하나 딸려서 예약된 방으로 올려보내. 나는 갔다가 가능하면 빨리 올 테니까. 오늘은 기다리지말고 먼저 자구. , 윤부장 줄 돈은 준비 됐겠지?"

"그럼요. 일억 준비했어요."

"빌어먹을 쌩 돈 이억이 날아가는군."

"이억이라뇨? 일억이라니깐요."

"시끄러, 게임비는 생각 안 하냐?"

", 그렇네요. , 다이야는 찾을 수 있나요?"

"그걸 찾아오라고 놈들을 좀 조졌더니 저 꼴들이 났으니...제기랄 아버님에게 뭐라고 하지? 꼭 찾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 내 정신 봐. 아까 회장님 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내일 여기로 사람을 내려보낸다구요."

"사람을? 아까라는게 도대체 몇시를 말하는 거야?"

신동규가 신경질적인 눈으로 시계를 봤다. 자정이 넘어 한 시에 가까웠다. 게임도 안 풀리더니 이 시간에 영월을 가야하다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는 밤이었다.

"10시 쯤이요."

김은애가 신동규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까야? 한참이 지났구만. 아니지,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네. , 똑바로 못하니?"

겉으로만 사장의 비서요 애인이지 상위 대학까지 나온 은애는 사실, 침대 위의 파트너 취급 밖에 못 받고 있었다. 신동규의 눈에는 그녀 역시 부하 중에 한 명일 뿐이었다. 돈이 있는 한 학력 좋고 예쁜 여자들은 흔했다.

아랫 층으로 내려와 현관으로 나가려는데 하일이란 놈이 어디서 모아 왔는지 몇 명의 사내들을 데리고 급히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사장님, 어디 가십니까? 데려왔는데요?"

"임마, 오려면 빨리 와야지. 그냥 만 원씩 줘서 보내. , 너 운전 좀 해."

". 사장님."

잠시 후 신동규가 탄 에쿠스는 사북 교차로를 통해 38번 국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어서인지 도로 위에는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이나 걸리겠냐?"

"영월까지 말입니까 사장님?"

"그럼, 넌 서울까지 가려고했냐?"

"사십 키로가 조금 넘으니 밟으면 삼십 분이면 충분합니다. 사장님."

"그럼 차들도 없는데 밟아봐."

", 사장님."

평소에는 오정철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하일이 조직의 차기 후계자인 신동규를 직접 모시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이럴 때 자신의 운전 솜씨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한 하일이 힘껏 액셀을 밟았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에쿠스는 탄력을 받아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 하일이, 영월에서 제일 큰 병원이 어디냐?"

"영월에는 영월의료원 말고는 큰병원이 없습니다 사장님."

", 그래? 그럼 그리로 곧바로 가면 되겠네."

"아니? 어디가 편찮으십니가? 사장님?"

하일이 약간은 걱정스런 얼굴로 뒷자리를 힐끗 돌아보았다.

"야 이새끼야, 앞이나 똑바로 봐. 내가 아니라 오정철이 애들이 작살이 났댄다. 아 이거 어제부터 되는 일이 하나 없냐 그래?"

생각할수록 열불이 날 노릇이었다. 배달 사고인지 나발 사고인지는 몰라도 윤치우에게 줄 5억 원짜리 총알이 없어진 것은 고사하고 그것을 찾으러 보낸 놈들까지 뒈지다니?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없어진 다이아몬드를 윤치우가 웃는 얼굴로 이해해주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말이다. 어쨋던 목표했던 야쿠자 비자금 건은 윤치우로부터 기소를 유예하는 쪽으로 언질을 받았으니 자신의 임무는 완수했다. 그러나 임무는 임무고 조직은 조직이었다. 이것은 돈을 떠나서 조직내 기강의 문제였다. 이번 일로 조직의 어떤 놈이 죽든 알바 아니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탄약만은 꼭 찾아야 할 터였다. 윤검사의 말대로 진짜 배달 사고라면 조직에 구멍이 뚫린 것이 틀림없었다. 뒷좌석에 몸을 깊이 묻은 신동규가 내일 조직에서 내려 보낸다는 인물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는 동안, 운전석의 하일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정철이 교통사고가 났다니, 만약 그놈이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면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이곳 토박이 용수에게 돌아갈까? 아니 용수 그놈도 죽었다면? 그렇다면 서열로 봐서는 하일이 자신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새벽마다 카지노 입장권 확보에 신경 안 써도 되고 각종 시시한 심부름도 끝이다. 하루종일 신동규의 지시를 기다리며 멍 때리는 짓도, 곽덕배가 운영하는 호텔을 감시하는 일도 더 이상 안해도 된다. 뿐인가? 그 자리만 차지하면 맨 먼저 노래방 도우미로 나오는 혜수 그년을 잡아다 살림부터 차릴 생각을 하니, 입 안에 침이 고여 주먹을 불끈 쥐어 크락션을 쾅하고 두드렸다. 짧으나 엄청난 경적 소리에 좌석에 파묻혀 있던 신동규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놀라긴 하일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백이십 키로로 달리던 에쿠스가 약간의 핸들 움직임에 차체가 휘청하더니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소형 자동차였다면 진작 길 밖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뭐냐? 너 왜 그래 임마"

생각에 골몰했던 신동규는 하일이의 행동에 짜증이 왈칵 솟았다. 어제부터 이놈저놈 할 것없이 모조리 열불 나는 일만 저지르는 것이다.

"고 고라니 때문이었습니다 사장님."

하일이 급히 둘러대었다.

"고라니? 고라니가 중하냐 내가 중하냐? 야 이새끼야, 고라니 따위는 그냥 받아버려. 로드킬 당하는 고라니가 어디 한두 마리냐? 에이, 병신 같은 놈."

엉뚱한 생각에 빠져 하마터면 오정철 꼴이 날 뻔한 하일이, 전방을 주시하며 조심 운전에 들어갔다. 영월에 가까웠다. 이제 곧 동영월 교차로에서 읍내로 빠지는 길로 내려서야 했다. 하일은 차의 속력을 줄여 오른 쪽 길로 빠졌다. 이어서 왕복 이차선 도로를 시속 80Km정도로 달렸다.

", 아직 멀었냐?"

"오륙 분만 가면 됩니다. 사장님."

"너 운전 처음하냐? 너 서울서 구전무 운짱 몇년 했었잖아? 헌데도 그 모양이냐?"

하일은 입을 땔 수가 없었다. 구전무는 그가 칠팔 년 모시던 신회장의 오른 팔이었다. 구전무 밑에서 전속 운전수로 몇년 있었으나 지난해 그가 간암으로 죽자 끈이 떨어진 졸개들은 각자 흩어진 것이다. 하일은 신동규가 자신을 불러 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신동규 밑에서 자란 오정철의 견제에 줄곧 소외되어 왔었다.   

"너 순태나 용수보다 조직 선배냐?"

"비슷합니다만 제가 몇달 빠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

"그으래? 그럼, 걔네들이 잘못되었다면 여기는 네가 충분히 카바할 수 있겠네?"

하일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생각한 일이 어쩌면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제가 말입니까? 사장님?"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던 하일이, 감사하고 황공한 얼굴로 신동규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야야야야 야. , 아 앞에에. 아이쿠. 씨발"

, 와그작창.

신동규의 숨 넘어가는 다급한 소리와 함께 에쿠스는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아반떼를 받아버렸다. 영월 읍내로 들어가기 전에 덕포 2교 밑의 급한 커브 길에서였다. 편도 일차선의 좁은 길이어서 아반떼로서는 피할 곳도 없었다. 오른쪽은 동강에 합류되는 석항천이라 그곳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아반떼는 왼쪽 라이트로 부터 운전석까지 밀려 들어가 산 밑에 쳐박혀 버렸다. 하일이 몰던 에쿠스 역시 왼쪽 라이트와 범퍼가 부서지고 찌그러져 보닛이 활짝 열린 채 아반떼에 머리를 쳐박고 있었다. 두 차 모두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서 운전자들이 제각기 고개를 꺾고 있었다. 그러나 뒷자리에 타고 있던 신동규 만큼은 손톱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넋이 나갔던 신동규의 정신이 차츰 돌아오고 있었다. 운전석 문짝 아래로 고개를 꺾은 하일은 죽었는지 꼼짝도 없었다. 안전띠를 푼 신동규가 차에서 내려 하일이 있는 운전석으로 다가 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왕창!'

쿵인지 쾅인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아반떼가 온 방향에서 또 한대의 차가 사고 차량을 미쳐 보지 못하고 커브를 돌다가 에쿠스의 돌아선 오른 쪽 뒷부분을 들이 받은 것이다. 소나타 택시였다. 자기 자동차 뒤로 돌아가던 신동규는 자신을 치고 드는 에쿠스의 꽁무니에 왈칵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신동규의 다리 위로 에쿠스의 뒷바퀴가 구르다 멈추었다. 허벅지가 바퀴 밑에 그대로 깔린 것이다.

"!"

허벅지 쪽에서 투툭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으나 왠일인지 신동규는 별 아픔을 못 느꼈다. 게다가 정신도 멀쩡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도대체 이거 무슨 좆같은 일이..."

신동규는 112119에 스스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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