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투견판 5. 추락의 길(2) 각성

fiction-google 2024. 3. 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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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떻게 됐나?"

오토바이에서 내리기도 전에 헬멧을 벗으며 양구택이 숨 가쁘게 물었다.

", 선배님. 그게...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양구택의 물음에 배철권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듯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다른 개도 아니고 태산이에게 물렸는데 죽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내가 묻는 건 태산이가 어째서 도사를 물어 죽였나 하는 걸세. 아직까지도 싸울 생각을 하지 않던 태산이가 아닌가? 그런 태산이가 한열이도 없는데 도사에게 덤벼들었단 말인가?"

"그게 말입니다. 한열이가 학교로 가고 없는 사이 저 우람이란 놈이 도사가 있는 철망 쪽으로 다가갔나 봐요. 그랬더니 도사가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어 우람이를 물었지 뭡니까. 저는 마침 태산일 데리고 동방불패의 집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우람이 비명 소리를 듣고 뛰어나갔지요."

"그래서? 우람이가 많이 다쳤는가?"

"다행이 철망의 구멍이 작아 살짝만 물렸습니다. 그런데 우람이 비명이 들리자 저보다 태산이가 먼저 달려가 철망을 훌쩍 뛰어넘더니 단숨에 도사를 물어버리더군요. 제가 미쳐 말릴 사이도 없었습니다. 번개처럼 빠르게 상황이 끝났으니까요."

말을 마친 배철권은 여전히 맥없이 서 있었다. 그러나 배철권과 반대로 양구택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태산이는 지난번 사건 때 아홉 마리의 개를 물어 죽인 후에도 여전히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태산이가 이번엔 한열이가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닌데 도사를 물어죽였다지 않는가?

양구택은 검단 훈련장에서 이곳 농장으로 이사를 한 후에도 태산이를 싸우게 하려고 수 없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태산이는 마치 노벨 평화상을 받고야 말겠다는 듯 도대체부터가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고수한 것이다. 양구택 자신의 팔 다리도 다 나았으니 태산이만 싸움에 응해주면 돈을 챙기는 순서만 남았는데 이런 낭패가 없었다.

어제는 보다 못한 박철구가 개만 보면 무조건 물고 늘어진다는 사나운 도사를 두 마리나 갖다 주었다. 오늘 아침 작살난 개가 바로 그 두 마리 중 한 마리였다. 배철권이 전화로 알려온 소식에 양구택은 일말의 기대를 걸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달려와 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일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호라, 태산이가 우람이를 보호하려 했었구나. 우람이는 한열이가 아끼는 강아지란 걸 태산이도 아는가 보구나. 아니지. 같은 식구라는 걸 아는 것이로군. 어쨌든 잘 됐네. 태산이가 도사를 물어 죽인 것은 극히 잘 된 일이란 말일세. 이제부터 일이 되려나 보군. 역시 자네 가족이 이리로 이사를 오길 잘 했네. 그러지 않았다면 태산이가 도사를 물어 죽일 생각을 했겠나?"

양구택은 연신 흡족한 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철권이 양구택의 농장으로 이사를 한 것은 보름 전이었다. 농장이 한열이가 다니는 학교와 가까웠고 개들만 두고 집으로 출퇴근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하고 말이 되질 않아서였다. 배철권의 아내도 시내가 더 가깝다는 이유로 찬성이었다. 농장엔 양구택이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살던 집이 있었고 주위에 인가가 없어 조용해서 좋았다.

양구택은 집에서 떨어진 대문 옆에 작은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고달수나 박철구가 왔을 때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양구택은 고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수야, 태산이를 싸우게 할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어떤 방법?"

"한열이 강아지인 우람이를 이용하면 될 것 같다. 아니, 되고도 남는다."

"어떻게? 또 시시한 방법으로 내 시간을 뺏을 생각이냐? , 오늘 밤, 투견장엘 가야 하니 시간이 없다. 간단하게 얘기해. 보나 마나 또 엉뚱한 소리겠지만...."

"인마, 넌 어째 내 말을 못 믿냐? 알고 보니 태산이란 놈이 한열이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기르는 괴물 강아지도 철저히 보호하려는 것을 알아냈단 말이다."

"어떻게?"

"여러 소리 빼고 말하마. 철구네 도사가 한열이 강아지를 물었어. 강아지 비명에 달려간 태산이가 철망을 뛰어넘어 그 도사를 단숨에 물어 죽였다. , 이제 내 간략한 설명이 귀에 쏙 들어가냐?"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면? 95만 원 씩이나 주고 산 삼성 애니콜로 네게 전화를 했겠냐?"

"내 휴대폰은 천 원 짜린 줄 아냐? 물어 죽이는 걸 네 눈으로 봤냐는 얘기지."

"현장에 있던 후배의 증언이다."

"그거 잘 됐군."

"자식이 어째 남의 말 하 듯하냐?"

"확실하게 하자고.... , 철구가 갖다 준 도사가 또 한 마리 있지?"

"있다."

"그럼, 똑같은 연출을 한 번 더 해 보란 말이야. 이번에도 태산이가 똑같이 반응하면 그야말로 내게도 방법이 있으니까. 알았냐? 끊는다."

", 임마, 어라? 또 끊어?"

고달수가 먼저 전화를 끊자 양구택은 이것들이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보다 먼저 배철권에게로 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양구택은 배철권이 일하는 태산이 철망 우리로 다가갔다.

"이보게, 내가 도사를 저 철망에 몰아넣을 테니까 자네는 우람이를 데리고 철망 앞을 왔다갔다 하게. 그러면 도사가 우람이를 물려고 할 테니 그때 태산이를 풀어줄 테니까. 그러면 태산이가 어떻게 행동하나 지켜보자고."

"그러다 강아지가 정말 물리면 어쩝니까."

"강아지에게 목줄을 묶어 조정을 하면 될 것일세."

", 그러면 되겠군요."

배철권은 개 목줄을 갖고와 강아지의 목에 걸었다. 말이 강아지이지 삼 개월이 채 못 된 강아지가 웬만한 큰 똥개만 해서 목줄이 작을 지경이었다. 목줄이 채워진 강아지를 데리고 배철권이 도사가 갇힌 우리 앞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 개에게나 덤벼들기 좋아한다는 도사가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마구 내밀며 강아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때를 맞추어 양구택은 태산이가 갇혀있는 문을 슬그머니 열어주었다. 그러자 이미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태산이가 벼락같이 튀어나가더니 이번에도 2미터가 넘는 철망을 훌쩍 넘어 다짜고짜 도사의 목을 덥석 물어서 패대기를 쳐버렸다. 태산이를 뒤따라 철망 우리 안으로 뛰어든 양구택은 깜짝 놀랐다.

태산이가 언제 도사를 물었는지 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어느새 시체 한 구가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양구택은 도사의 상태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태산이가 딱 한 번 물어서 뱉은 도사는 목뼈가 모조리 박살이 나서 걸레 꼴이었다. 몸무게 70킬로의 도사견을 말이다.

"됐다. 태산이를 싸우게 할 방법을 확실하게 알아냈어."

양구택이 배철권을 향해 감격 어린 소리를 뱉었다. 배철권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어이가 없는 듯 죽은 도사를 망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산이가 도사에게 덤벼든 동기가 저 우람이를 보호하려 던 거란 말입니까?"

"자네도 그걸 케치했군. 그렇네. 아무리 평화주의자인 태산이라 해도 자기편을 건드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나? 지난번 한열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

"그럴지도 모르지요. 명분이 없는 시합이 없듯이 싸움도 동기가 있어야 발생하지요."

"바로 그걸세. 그러니까.... 우리가 태산이에게 싸울 동기를 만들어만 주면 된다는 말 아닌가?"

"싸우기 싫어하는 태산이를 억지로 싸우게 하려니 어째 마음이... ."

"그렇겠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게. 투견으로서 쓰이지 못할 태산이라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나? 태산이는 어차피 사람이 아닌 짐승일세. 우리에게 쓰이지 못할 짐승이라면 애써 거둘 필요가 없잖나? 게다가 현재의 상황을 보게나. 태산이 하나를 믿고 있는 사람이 자네와 나 말고도 몇인가 말일세. 그러니 우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태산이에게 달렸단 말이지."

"듣고 보니 그렇군요."

"권투 선수는 주먹을 휘둘러야 하고 축구선수는 공을 차야 하고 투견은 상대를 물어야 투견일세. 입을 다물고 있는 투견이 투견인가? 솔직히 나라고 태산이를 싸우게 하고 싶겠나마는 태산이의 존재 이유가 그러니 어쩌겠나?"

"선배님 말씀이 옳습니다. 사실 저는 태산이를 투견으로 만드는 것이 달갑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선배님 말씀대로 어차피 태산이의 운명이 싸우는데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워야겠지요. ,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요."

"그렇다마다. 걱정 말게나. 조금 전에 보았듯이 일단 링 안에만 들어가면 왕년에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태산이는 단연 무적일 테니까."

"죽은 도사들은 어쩌지요?"

"팔수도 없고 묻으려면 힘이 들 테니... 가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공짜로 가져가라면 얼른 가져갈 사람이 있네. 지금 전화를 하지."

양구택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삼십 분이 채 못 되어 일 톤 트럭이 나타나 정문 밖에 내다 놓은 개들을 싣고 사라졌다. 양구택은 사무실로 쓰는 컨테이너에 들어가 박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개들이 드디어 사망했다."

"? 그래? 태산이가 드디어 싸우기 시작했단 말이지?"

"싸우긴 누가 싸워? 그깟 도사 한 마리와 싸움이 되냐? 그냥 물었다 놨더니 걸레가 되던데.... 어쨌든 성질 급한 네가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젠 진짜니까 달수와 의논해서 흥행이 될 장소를 물색하라고. 난 그 사이에 태산이를 슬슬 워밍 업을 시키고 있을 테니까. , 그러려면 네가 도사를 몇 마리 더 갖고 와야겠다."

"알았어. 태산이가 싸워만 준다면 그깟 도사 몇 마리가 문제겠냐? 내일 당장 갖다 주지. 아니지. 지금 당장 갖다 주마. 두 시간만 기다려. 그런데, 지난번 예로 봐서 열 마리를 갖다 주어도 채 오 분을 못 넘기고 다 물려 죽을 거 아니냐?"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태산이 입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자는 거지. 이를테면 싸움을 시킬 듯해서 태산이의 전투 의욕만 살린다는 계획이거든."

"거 잘 생각했다. 진작 그랬으면 아까운 도사를 죽이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잘해 봐. 흥행 문제는 달수와 의논해서 태산이가 데뷔할 기회를 만들어 볼 테니까."

", 그런데 말이다. 달수가 노는 동네가 A급이라 하더구만 그런곳에서 판을 벌려야 큰돈을 만지는 것 아니겠냐? 기왕이면 그런 판을 알아보라고."

"거 참, 무식하면 말이 많다더니.... , 진짜 돈이 되는 곳은 A급이 아니라 대중이 많이 모이는 B급 판이란 말이야. 각자의 베팅액이 적어도 대가리 숫자가 있잖아? 대가리. 너 생각해 봐라. 우리나라에 베토벤 좋아하는 놈이 많겠냐, 조용필이나 나훈아를 좋아하는 놈이 많겠냐?"

"너부터도 용필이라면 껌벅 죽잖아?"

"바로 그거라니까. 우리나라는 나 같은 B급과 너 같은 C급이 점령한 세상 아니냐? ,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 들어는 봤지? 태산이는 그런 티끌들을 다 쓸어 모아 산을 만들 이름 아니냐? 돈 산 말이야. 돈뭉치로 만든 산..... 그러니 시합 전에 태산이에 대한 광고만 제대로 하면 태산이를 보려고 몰려드는 놈들 때문에 데뷔전은 아마 잠실 운동장에서 해야 할 거다."

무식한 놈 답게 말이 많은 박철구의 연설을 듣고 있던 양구택은 언젠가 고달수로부터 들은 말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고달수는 분명 상류사회에서 벌이는 투견 판에서 놀아야 돈을 만질 수 있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철구 제 딴엔 태산이 소식에 기뻐서 하는 소리일 테니 당장 면박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투견 판 만큼은 네가 나보다 나을 테니 일단 네 말을 믿기로 하지."

"당연한 말씀이다. 내 곧 도사를 싣고 가마. 다섯 마리면 될까?"

"알아서 해. 이번엔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기왕이면 성질 사나운 놈으로 골라서 갖고 와라. 그래야 태산일 보고도 겁을 안 내지."

"알았어. 곧 갈 테니까 기다려."

휴대폰을 내려놓은 양구택은 박철구가 갖고 오는 도사를 어떻게 이용하면 태산이의 화를 돋울 것인가를 생각했다. , 도사는 죽이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예로 보아 도사를 죽이는 건 쉬워도 태산이의 전투 의지만 이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양구택은 컨테이너를 나와 배철권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배철권은 도사를 가두어 놓았던 철망을 손질하고 있었다. 마침 도사가 없으니 마당에는 태산이와 동방불패 그리고 우람이까지 세 마리의 괴물 개가 배철권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동방불패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자 양구택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철망이 망가졌나?"

"아니요. 기둥이 흔들거려서요. 태산이가 발을 한 번 올려놓으니 기둥이 넘어지려고 하더군요."

"조금 있으면 도사가 몇 마리 더 올 텐데 거기다 넣으면 안 되겠군. 태산이가 넘어가거나 밀어버리면 곤란하니까."

"도사가 또 온다고요? 태산이에게 싸울 동기를 만들어 주려구요? 또 죽일 텐데요?"

"이번엔 도사를 죽이지 않을 생각이네."

"그러면 도사들을 저쪽에 말뚝을 박아 묶어 놓지요. 태산이는 이쪽에 묶어 놓고요."

",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었네, 서로 거리를 약간 두고 묶어 놓으면 태산이가 도사들을 죽이지는 못 하겠지. 그 사이로 강아지가 지나간다. 그러면 도사는 강아지를 물려고 할 테고 태산이는 태산이 대로 화가 나서 도사에게 덤벼들겠지... ."

"그렇겠지요. 태산이가 강아지가 당하려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테니까요."

"됐네. 그렇게 해 보자고. 그렇게 몇 번만 하면 태산이는 자연히 도사가 적인 걸 깨닫고 무조건 도사만 보면 싸우려 들 것 아닌가?"

"몇 마리가 오지요?"

"글쎄, 아마 다섯 마리쯤 갖고 오겠지."

말이 난 김에 해치우려는 듯 배철권이 개장을 철거할 때 생긴 굵은 철근 토막을 땅에다 박기 시작했다. 도사를 묶을 철근 다섯 개를 박은 배철권이 양구택을 돌아보았다.

"태산이 것은 더 굵고 더 깊이 묻어야 할 것 같으니 그럴 바엔 아예 저 트럭에다 묶어두는 게 어떨까요?"

", 그거 좋은 생각일세. 태산이는 힘이 워낙 좋으니 말뚝이 뽑힐 수도 있으니까."   

배철권은 뒷 쪽에 주차된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건 다음 양구택의 신호에 맞추어 후진을 했다. 도사를 묶을 말뚝과 반대가 되는 곳이었다.

"스톱. 스톱 하라고. 오케이. 됐어. 줄은 견인 갈고리에 묶으면 되겠군."

양구택이 도사를 묶을 말뚝과 트럭의 거리를 가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을 생각해서 핸드 브레이크도 채웠습니다."

배철권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 그거 잘했군. 그럼 안심이 되지. , 이제 도사만 도착하면 되겠군."

양구택은 마당을 돌아다니는 태산이를 바라보았다. 사자 보다 더 큰 머리통에 엄청난 덩치에 어울리는 근육질 몸매. 참으로 늠름한 모습의 멋진 녀석이었다. 양구택은 저놈이 사람이었으면 천문학적 몸값을 지불하고라도 할리우드에서 초청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태산일 보고 있으면 꼭 영웅을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자넨 그런 생각이 안 드나?"

갑작스러운 양구택의 화제에 배철권은 미쳐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개들 중에 저런 개는 세상에 없지 않나? 인간 중에도 뛰어난 사람은 군계일학이라고 칭하고 영웅으로 대접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태산이도 어쩌면 개들 중에 영웅의 풍모가 아닌가 말이야. 그런 영웅의 앞날이 비적때 같은 잡견들의 도전을 받으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 이거야 원.... 비극적 요소는 햄릿보다 태산이에게 더 많은 것 같구먼."

"하긴 그렇군요. 한데, 전 그보다 선배님이 평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철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간혹 중요한 의미가 담긴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는 권투에 빠져 중학교밖에 못 나왔습니다만.... 선배님은 공부를 많이 하셨나 봅니다."

배철권이 머뭇거리며 뱉는 말을 듣던 양구택의 입가에 쓴웃음이 배어나왔다. 자신의 어떤 말을 듣고 철학적이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배철권의 표정으로 보아 아첨의 말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배철권이 하는 말 밑바닥에는 양구택이 개 장수라는 전제가 깔린 듯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양구택이 항상 갖는 콤플렉스였다.

"공부? 공부를 많이 해야 개똥철학이라도 논할 자격이 있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의 선입견 때문일세. 하긴, 자네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더군. 왜곡된 선입견은 연속극을 보면 알 수 있지. 식모, 아니 요즘은 파출부라지? 극 중에 파출부는 왜 항상 그랬구만유, 저랬구만유, 아니면 그랑께, 저랑께 해야 하나?"

"그건.…"

"그 게 바로 선입견 때문일세. 파출부는 무조건 무식한 시골 출신이라는 것 말일세. 유식한 서울 사람은 모두가 부자인가? 서울 사람 중에 파출부는 없단 말인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보편적으로 그렇다고들 하네. 보편적이라니? 웃기는 얘기지. 평생을 개 장수로 늙어가는 나 역시 왜곡된 시선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사실일세. 하지만 개 장수인 나도 이 사회의 지성이라는 인물들이 쓴 책들은 대강 훑으며 살아왔다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뭐냐? 알고 보니 제놈들이나 나나 오십 보 백 보더라고. 별것 아닌 것들이 이 사회를 흔들고 있더란 말일세."

양구택은 마치 준비한 원고를 읽듯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던 말을 단숨에 쏟았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배철권은 자신의 말에 양구택이 이렇듯 확실한 반론 겸 주장을 펼치자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말을 양구택이 왜곡한 것 같아서였다.

", 아닙니다. 선배님. 저는 선배님의 직업을 연관시켜 말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직업으로 말하면 제 직업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이 형편없이 살아왔지요. 전 단지.... 선배님 말씀에서 무언의 가르침이 있다고 느껴서...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내가 왜 그걸 모르겠나? 자네가 날 개장수라고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란 걸 아네. 나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자네도 아니고.... 지난 몇 달 동안 자네와 자네 아들의 심성은 내가 다 파악했었네. 그랬기에 내가 자네에게 생사를 같이 하자고 했지.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 사람들이 편견이나 선입감으로 사회의 계급을 갈라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네. 그걸 말 하려던 거였다고."

"선배님 말씀이 옳습니다. 지난번 서 회장의 아들이라는 서유석이 저에게 했던 짓을 보십시오. 최 하층의 경비직은 인격도 없다는 듯 오만한 그 태도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자가 돈과 직위는 저보다 높아도 주먹은 내가 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고말고. 나 역시 남이 볼 때는 더 내려갈 곳이 없는 개 장수에 불과하지만 개고기에 관해서는 나를 능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야. 개고기라면 어느 누구보다 전문적 식견이 있는 나니까 말일세. 그렇다면 내 직업도 특수 전문직이 아니겠나? 게다가 우리 집안은 개고기 역사에 백 년 이상 된 전통이 있는 가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네."

"그러고 보면 선배님이야말로 개들의 행동이나 심리에 관해서는 환하시겠군요."

"그렇다고 이제껏 믿어 왔었지. 한데 말이야. 태산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네. 저 녀석의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거든."

"아직도 태산이가 선배님에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게 말이야. 지금은 몰라도 투견 시합을 시작하면 내 말은 꼭 들어야 할 텐데 큰 걱정이로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요."

"글쎄.... 잘 돼야 할 텐데.... "

양구택과 배철권은 박철구가 올 때까지 철망 울타리의 기둥을 새로 고치기로 했다. 배철권이 삼 미터 길이의 굵은 쇠 파이프를 나르는 동안 양구택은 구부러진 파이프를 떼어내는 일을 맡았다. 양구택과 배철권이 두 개의 파이프를 새로 세우고 철망 다시 치기를 끝냈을 때였다. 대문 밖에서 크랙션 소리가 들렸다.

"어라, 저 친구 빨리도 왔군. 여보게 태산이와 동방불패를 얼른 개장에 가두게나. 도사를 싣고 온 모양일세."

"벌써요?"

배철권은 태산이와 동방불패를 불러 각자의 집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강아지는 목줄을 매어 따로 묶어 두었다. 그사이 양구택은 대문으로 다가가 빗장을 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운전석의 박철구가 히죽 웃으며 대문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왔다. 박철구가 차를 세우자마자 양구택이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엔진을 제트 터보로 갈았냐?"

"차들만 안 막히면 사실 거리야 얼마 되냐?"

"몇 마리나 갖고 왔냐?"

"보면 모르냐? 다섯 마리다. 그것도 네 말대로 눈앞에 얼쩡대는 개는 죄다 물려는 놈들만 골라서 왔다."

"거 잘했다. 그렇지 않은 놈은 태산이 앞에만 서면 오줌을 지리니까 말이다."

"여하튼 얼른 준비해서 시작해 보라고. 이번엔 나도 현장을 확실하게 목격해야겠어."

"그렇게 해. 그래야 되 놈 같은 네놈이 두 말을 못할 것 아니냐? , 그럼 도사들을 끌어내서 저 말뚝에 좀 묶어다오. 네 게에게 물려서 내가 병원을 또 갈 순 없잖아?"

"개 저승차사가 개를 무서워하다니? 베테랑 개 장사 체면은 어디다 팔아먹었냐?"

"무식한 놈이 기른 개는 상대를 안 해봐서 그런다."

"무식이라니? 유식한 공자네 집 개는 공자 왈 맹자 왈로 짖는다더냐?"

"최소한 너처럼은 안 짖겠지."

"뭐야? 이걸 확....    한데, 아침엔 도사가 먼저 덤볐냐, 태산이가 먼저 덤볐냐?"

"그게 말이다. 지난번 상황과 비슷했던가 보더라. 결국 한열이 강아지를 보호하려고 도사를 물어버린 것 같으니까."

"태산이는 어째 그냥은 싸우질 않냐? 개란 으래히 텃세나 서열 싸움이 있게 마련이고 투견쯤 되면 맹목적 싸움이 일상이 아니냔 말이야?"

"그래도 처음보단 한결 나아졌다고 봐야지. 이젠 상대에 대한 두려움은 없더라고. 처음엔 싸우는 것 자체가 겁이 나서 철망 넘어로 도망갈 궁리만 했었거든."

"그럼 네 생각대로 해 보자고. 도사는 내가 묶지."

박철구는 능숙한 솜씨로 철창에서 개들을 끌어내 한 마리씩 말뚝에다 묶어 나갔다. 쇠사슬로 된 목줄의 길이는 일 미터 반 정도로 짧게 묶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박철구가 일렬횡대로 된 말뚝에 개들을 다 묶자 배철권이 태산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태산이가 나타나자 도사견들이 일제히 목줄을 당기며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사견들을 본 태산이도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듯 우뚝 서서 사방을 쓱 훑어보았다. 배철권은 줄을 당겨 태산이를 트럭의 견인 고리에 묶었다. 굵기가 팔뚝 같은 특수 나이론 목줄이었다. 도사견과 태산이 사이의 거리는 이 미터 정도였다.

"됐어, 도사들도 겁이 없고 태산이도 도사들을 가소롭게 보는것 같군. , 시작해 볼까?"

한 발 뒤로 물러나 상황을 주시하던 양구택이 만족한 얼굴로 박철구와 배철권을 바라보았다. 박철구 역시 태산이가 도사를 향해 어떤 행동을 할지 몹시 궁금하던 차여서 침을 꼴깍 삼키며 눈에 힘을 주었다.

"어이, 후배. 시작하자고. 우람이를 데리고 도사와 태산이 사이를 지나가게. 끈을 짧게 잡는 걸 잊지 말고 말이야."

고달수의 지시에 배철권은 따로 묶어두었던 우람이를 데리고 왔다.

", 천천히 개들에게로 다가가 그 사이로 빠져나가게. 그럼 도사들이 물려고 덤빌 테니까."

양구택이 다시 한 번 배철권을 향해 코치를 했다. 배철권은 우람이의 목줄을 단단히 잡고 도사 쪽으로 슬금 슬금 다가갔다. 그런데 제일 가에 묶였던 도사가 먼저 앞으로 왈칵 튀어나오며 우람이를 물려고 입을 벌렸다.

바로 그 순간,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배철권이 우람이를 데리고 나타날 때부터 예의주시하던 태산이가 도사가 입을 벌리는 순간 동시에 앞으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그냥 돌진만 했다면 무슨 일이야 있었겠는가 마는 태산이가 앞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덜커덩하는 큰 소리와 함께 일 톤 트럭까지 왈칵 앞으로 끌려 간 것이다.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당겨두었으니 황소라 해도 끌 수는 없는 트럭이었다. 하지만 브레이크 따위는 태산이에게는 아무런 구속이 되지 못했다. 태산이는 트럭을 마치 천하장사 강호동이 리어카를 당기 듯 왈칵 끌어당긴 것이다. 그것도 단 번에 삼 미터나 말이다. 태산이는 튀어 나온 여세를 몰아 우람이에게 향하던 도사의 머리를 물어 바수어 버렸다.

그 서슬에 도사에게 다가가던 배철권이 놀라 뒤로 나가자빠졌고 양구택과 박철구도 워낙 뜻밖의 상황에 놀라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 나리라고는 세 사람은 전혀 예측을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첫 번 째 도사를 박살 낸 태산이는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다른 도사에게로 방향을 돌렸다. 태산이가 왈칵 다가오는 순간 질겁을 한 도사들은 펄쩍 뛰며 도망갈 구멍을 찾았지만 이미 늦었다. 태산이는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도사들을 바수어 나갔다. 산돼지가 도토리를 씹듯이 태산이는 도사들을 그렇게 차례로 으깨 버렸다.

도사들이 전멸하는데 걸린 시간은 길어야 삼십 초 정도여서 양구택이나 박철구가 벌린 입을 다물었을 때는 이미 마당은 아수라장으로 변한 뒤였다. 말뚝마다 널브러진 도사의 시체와 피가 낭자했고 사이드 브레이크가 파열된 트럭은 마당의 중앙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태산이는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장판교에 우뚝 선 장비처럼 죽은 도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빠졌던 배철권이 간신히 정신을 수습해서 먼저 우람이를 뒤곁으로 데려가 묶은 다음 태산이를 달래서 개장에 다시 가두었다. 그리고 나서 배철권은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채워진 트럭이 어째서 끌려왔는지 살펴보았다. 역시나 브레이크가 부러져 있었다.

", 구택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되어서 이런 꼴이 내 눈에 보이냐?"

박철구가 꿈을 꾼 듯 중얼거렸다. 도대체가 시작과 끝만 보았을 뿐 그 사이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과정을 못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태산이의 행동이 빨랐던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기는 양구택도 마찬가지여서 박철구의 말에 대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네게 물어보려던 말이 그 말이다. 강아지가 도사와 태산이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 애초의 시나리온데 이것들이 감독의 허락도 없이 마구 에드립을 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론이 잘 났으니 만족한다."

"무슨 결론이 잘 나? 개판이 났구만."

"태산이의 화를 돋구는 건 간단하다는 걸 알아냈잖아?"

"트럭에 묶어두면 태산이가 화를 낸다는 것 말이냐?"

"네 이름이 어째서 철구인지 알겠다. 돌대가리를 능가 하라는 뜻이지?"

"학생 때부터 천 번도 더 써먹는 그 소리가 넌 지겹지도 않냐? 아니면 이젠 치매가 와서 한 소리를 또 하는 거냐?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줄 아냐?"

"설마 내 말을 이해한 건 아니지?"

"결국 낯 선 개 앞에 우람인가 하는 강아지 그림자만 비쳐도 태산이가 반응을 한다는 얘기 아니냐? 내가 그것도 모를 만큼 돌인지 알았다면 너야말로 진정한 돌이다."

"얼랄라? 이럴 땐 제법 일세. 바로 그거야. 태산이는 제 식구를 지키려는 본능이 유달리 강하다는 얘기거든. 그러니 앞으로 투견장에서도 싸우게 하는 건 문젯거리도 아니란 말이지. 어떠냐? 태산이의 활약상을 네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이젠 속이 시원하지?"

"솔직히 속은 시원하다. 난 태산이가 영영 싸우지 않을까 걱정했었거든."

"내게 투자한 돈을 날릴까 그 게 걱정이 되어서였겠지."   

"사실 그깟 돈은 문제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차피 투견판에서 보낸 인생인데 기왕이면 태산이와 함께 전국의 투견장을 휩쓸고 화끈하게 끝냈으면 싶었을 뿐이다."

"결국 화끈하게 이겨서 화끈하게 벌고 화끈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다는 얘기 군. , 좋지.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만 잘 될까 그게 걱정이다."

"안 될 게 무어야? 달수도 큰 기대를 하더구먼. 넌 달수와 내 투견 경력을 너무 우습게 아나 보구나?"

"그러기야 하겠냐. 다만 기대한 만큼 돈이 들어오려나 해서지."

"안 될 것도 없다니까 그러네. 첫판부터 아예 우리가 베팅에 참가하면 된다니까. 흥행이 될 만큼만 조건을 만들어 시합을 벌린 다음, 우리는 태산이에게 베팅을 한단 말이다."

"그러다 사람들이 모두 태산이에게 베팅을 하면 우린 뭐가 되냐?"

"거 참, 그러니까 흥행이 될 만큼이라고 했잖아. 얼핏 보기에는 상대 개들이 유리하게 보이는 경기를 한단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베팅이 그쪽으로 쏠릴 것 아니냐?"

"그 게 잘 안되면?"

", 그 문제는 달수와 내게 맡기고 넌 좀 빠져다오. 네가 끼어드니 내 머리만 복잡해 진단 말이다. 달수와 내가 살벌한 투견 판에서 삼십 년을 그냥 보낸 줄 아냐? 우리는 다 하는 수가 있어. 그러니 넌 우선 이 죽은 개들을 처치할 생각이나 하라고."

"죽은 놈을 갖고 갈 사람이 있다. 아까도 가져갔으니까."

양구택은 또 한 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런 다음 배철권과 함께 죽은 개들을 박철구의 트럭에 실었다. 양구택의 트럭은 사이드 브레이크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박철구는 트럭을 몰아 대문 밖으로 몰고 갔고 양구택과 배철권이 개들을 한 켠에 내려놓았다. 죽은 개를 대문 밖에 갖다 둔 것은 가지러 오는 사람이 혹시 태산이를 볼까 해서였다.

"볼 것 다 봤으니 난 가 봐야겠다."

"점심 때 다 됐다. 밥이나 먹고 가라."

양구택은 자신의 트럭에 오르려는 박철구의 소매를 잡았다.

"밥이 아니라 또 짜장면이겠지?"

"짜장이 싫으면 짬뽕을 먹든지. 우리도 점심은 먹어야 할 것 아니냐?"

"탕수육도 하나 시켜라."

"그러지."

양구택이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가 벽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배철권이 농장으로 온 이후부터 이용하던 곳이었다.

"여기 개 농장인데...."

", . 짜장 둘이요?"

"? 당신 마음대로요?"

"짜장 아니에요? 항상 짜장 드셨잖아요?"

"오늘은 짬뽕인데?"

", 그렇군요. 짬뽕 둘이요? 곧 보내지요."

"잠깐, 짬뽕 셋에 탕수육 대 짜 하나요."

"아이고 그러세요. , . 총알같이 보내드리지요."

양구택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박철구와 배철권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무슨 주문을 그렇게 오래 하냐? 중국집에 벽에 매달린 메뉴를 다 시켰냐? "

", 짜장면을 몇 번 먹었더니 으레 짜장면인 줄 아나 봐."

"이미 짠돌이로 소문났구나."

"시끄러워, 짜장이 어때서 그러냐?"

"이젠 질릴 때도 지났잖아?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먹은 짜장면이 도대체 몇 그릇이냐? 그러니 낮이나 밤이나 흑변을 싸지."

", 그 자식 식사 시간에...."

세 사람이 둘러앉아 태산이를 훈련시킬 효과적인 방법을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대문 밖에서 자동차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보나 마나 자동차는 죽은 도사를 가져가려는 차 일 것이고 오토바이는 중국집 배달부일 것이었다.

배철권이 밖으로 나가보니 역시 생각대로였다. 어쩌다 동시에 도착한 것이다. 배달부는 사무실로 들어와 음식을 내려놓더니 오토바이 굉음만 남기고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트럭을 몰고 온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형님, 아침에도 두 마리나 주시더니 또 주십니까? 게다가 다섯 마리씩이나요?"

", 쌍태로구나. 이번 것들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쓸만 할 거다. 얼른 갖고 가서 작업을 해."

"공짜로 주신다니 형님께 미안해서 그러지요. 그래서 앞으로 한 달 간은 형님의 점심값은 제가 대신 내기로 하겠습니다. 드시고 싶으신 건 마음대로 드십시오. 조금 전 중국집 배달원과는 그렇게 얘기가 됐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서로 그럴 사이가 아니잖아."

"그래도 그래서야 인사가 아니지요. 제 말대로 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죽은 도사들이 무엇 때문에 죽었습니까? 저도 보신탕 장사가 십 년이 넘었걸랑요. 하지만 그런 상처가 난 개는 처음 봤어요. 틀림없이 누구에게 물린 것 같은데 같은 개에게 물린 것 같지 않아서 그럽니다."

쌍태란 녀석이 죽은 도사의 상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양구택은 물론 함께 있던 박철구와 배철권은 모두 속이 뜨끔했다. 쌍태는 호기심과 의심을 동시에 품은 눈으로 양구택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에 물리지 않다니?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냐?"

"그렇잖아요? 도사의 허리 굵기가 한 아름이나 되는데 세상에 그걸 한 입에 물 수 있는 개가 있을 턱이 없잖습니까? 그것도 단 한번 문 자국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상처가 난 허리 양쪽으로 송곳니 자국이 확실한 걸로 봐서 형님이 혹시 호랑이를 기르시나 해서...."

"역시 보신탕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개를 보는 눈이 있구나. 쌍태 네 말이 맞다. 한데 호랑이가 아니라 실은 사자다. 쇠창살에 적응이 안 된 놈이라 위험하거든. 그런 놈을 다른 우리로 옮기려다 작은 사고가 난 것뿐이다."

"역시, 제 눈은 못 속이지요. 형님, 그 사자 구경을 좀 시켜주세요."

"사고가 나서 극도로 흥분한 놈을 보겠다고? 아서라, 아서. 나도 보기 무섭다. 아까 동물원에 전화 해 두었다. 오후에 동물원 측에서 실어 갈 거야."

", 아깝다. 도사가 박살 나는 구경을 했어야 하는데."

"그 구경은 사자를 데려가는 용인에 가서 하면 될 거다. 어라? 짬뽕 다 불어터졌겠다. 어서들 먹자고. 상태 넌 어서 개들 싣고 가서 손이나 보라니까."

"그럼 전 갑니다. , 한 달 동안 식삿값은 신경 쓰지 마세요."

", 그 녀석.…"

쌍태가 사라지자 비로소 세 사람은 나무 젓가락을 찢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아는 사이냐?"

짬뽕 그릇의 랩을 벗기다 말고 뜬금없이 박철구가 양구택을 힐긋 바라보며 물었다.

"개고기를 팔다가 아는 사이지."

"그 놈 말하는 걸 보니 촉새 같던데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도 팔자다. 사자에게 물려죽은 고기로 보신탕을 만든다고 스스로 나서서 광고를 한 단 말이냐?"

"허기야... 그래도 태산이만큼은 아직 공개를 하지 말아야 해. 우리가 판을 벌릴 준비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그래야 첫판에서 돈을 좀 벌 것 아니냐?"

"알았다, 참 그러려면 철권이 자네도 태산이를 산책 시킬 때 조심하게. 절대로 대문 밖으로 나서지도 말고...."

양구택은 불어터지려는 짬뽕을 휘져으며 눈길은 배철권에게로 향했다.

"그러지요. 다행히 태산이가 있는 곳은 대문께에서 보이지 않으니까요."

", . 말들은 그만하고 어서 먹기나 하자고. 이 게 뭐야? 짬뽕이 팥 죽이 되다 말았잖아?"

말과 달리 한 젓가락 가득 국숫발을 입에 물며 박철구가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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