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사연)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이제 나를 부양하라고 하는 어버지와 연을 끊었습니다

fiction-google 2024. 1. 3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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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이 되고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나가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녹녹치 않더군요. 하지만 지금껏 늘 녹녹치 않던 세상이라 이제 더 나아지면 나아졌지 악화될 것은 없다는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처음 회사를 다니다 몇 년을 종자돈을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고 미친놈처럼 모았습니다. 그래서 은행 융자를 끼고 작으나마 개인 점포를 임대해 가게를 차렸지요. 이제부터 인생이 시작이라는 각오로 열심히 매달리다 보니 월급쟁이 시절보다 한결 숨이 트이더라구요. 그즈음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을 뵌 것은 결혼식을 올릴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네요. 제 아내는 시부모님을 거의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부모님을 별로 가까이 모시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결혼은 알려야겠기에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몇 번을 가고 결혼식에도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 후로 제 가게가 좀 된다고 생각했는지 슬금슬금 이 명목 저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가시더군요.

아침부터 전화가 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일방적으로 자신이 할 말만 늘어놓고, 결국 돈을 좀 부쳐야 한다는 협박이었습니다. 아내가 무섭다고까지 할 정도의 태도였네요. 결국 이천 정도를 뜯기고야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진작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물렀었다고, 내 인생이 항시 불안했던 건 부모님들 때문이라고, 이제부터라도 절연을 해야겠다고요. 그래서 그날로 전화부터 바꿨습니다. 이 때는 90년대라 아직 집 전화 말고 헨드폰 같은 건 없었습니다. 천만 다행이었지요. 그러니 직접 찾아오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3년을 연락을 뚝 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불쑥 집으로 들이닥치는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언제나와 같이 가게를 열고 한창 장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기 넘어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부모님이 오셨다는 소리에 속이 뜨끔하더군요. 그래서 장사고 뭐고 집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달렸습니다. 아내 혼자서는 감당이 안될 것이니까요. 집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아버지가 제 얼굴에 따귀를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 못된 놈이란 말을 몇 번을 하시더니 거실에 깔아둔 방석에 털썩 앉으십니다. 저는 속으로 젠장이란 말을 수십 번 소리치며 맞은 편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요번엔 어머니가 불효막심하다고 하시며 우리하고 연을 그렇게 끊고 싶었냐고 난리를 치시는데, 아내에게 삿대질을 하시며 인간이면 그러는 게 아니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창백해 지는 것을 보니 속이 뒤집어지더라구요. 이런 꼴을 보게 하지 않으려고 아내와 부모님을 되도록 안 만나도록 한 것이었는데… . 저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도대체 왜 그러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하는 말이 내가 너를 얼마나 어렵게 키웠냐며, 너를 키우느라 인생을 다 바쳤고 모든 돈을 다 들였는데 인제 다 늙어서 힘도 돈도 없으니 버리려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그러니 이제 네가 늙은 우리를 좀 돌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서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뭐요? 나를 키웠다고요?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녀야 할 나를 끌고 공사판에서 굴러먹게 한 아비가 무슨 아비요. 국민학교 때는 농사졌고 중학교 때는 땅만 팠소. 고등학교는 내가 중국집 일해가면서 다녔고. 평생 동안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게 뭐요? 술이나 마시고 걸핏하면 소리나 지르고, 다른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 공부 더 시킬려고 난리일 때 아버지는 돈 아깝다며 학원도 못다니게 하지 않았소. 그 돈 아껴서 혼자서 술집 다니고 자기 옷 사 입은 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시요. 어머니도 같소. 매일 내가 굶거나 말거나 학교를 가는지 공사판을 가는지 신경이나 썼소? 돈 같은 소리하고 있으시네. 돈이라면 네가 빌려드린 이천이나 빨리 갚으세요.

그러자 내 말이 심하게 들렸는지 아내가 자꾸 내 팔을 끌고 그만하라고 만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작 결심을 한 상태였습니다. 엉겁결에 아들에게 봉변을 당한 부모님들은 당황해 했으리란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연하게 나를 보며 되려 화를 내시는 겁니다. 이놈의 새끼가 사내자식이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거지 어려웠던 시절은 너만 살았냐며 그렇다고 부모에게 그게 무슨 못된 언사냡니다. 그리고 연 끊기 싫으면 지금 반성하고 사과 하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연사 어머머머 제가 변했어라고 하시는데, 그게 더 돌아버릴 것 같은 구토감이 들었네요. 곁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내에게 너무도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사과를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모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어머니는 아내를 닥달해 사과를 받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두 노인분들을 집에서 쫓아내다시피 아니 강제로 끌어다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이제 죽어도 보지 말자고, 인연이고 뭐고 처음부터 잘못된 거였다고 소리소리를 쳤습니다. 그날 한동안 빌라 앞에서 그런 실랑이며 고성이 오고 갔습니다. 당시는 부부싸움하는 소리가 이 집 저 집에서 간간히 많이 들리던 때 였습니다. 뭐가 깨지거나 와당탕하는 소리들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집처럼 패륜에 콩가루 집안임을 고성방가하는 사건은 아마도 예전에도 지금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래 묵혀둔 모든 앙금과 한을 욕설로 퍼붓고 나서도 그렇게 바라던 부모와의 연을 끊으면서도 돌아서며 드는 마음의 쾌적함이란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더 답답하고 울컥 슬픈 마음만이 치미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시간이 가면 이 감정은 좀 아물까하는 걱정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곁에 서있는 아내의 손을 미안한 마음으로 잡았습니다. 아내는 제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아무도 모르게 지역을 바꿔 되도록 멀리 이사를 해 버렸습니다. 장사도 접고 다른 지역에서 다시 시작할 참이었습니다. 이 참에 완전히 연을 끊지 않으면 또 어떤 참사가 있을지 모를 일인 것입니다. 어떤이는 비난과 손가락 질을 할 것이고, 어떤이는 잘 했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 애초에 그저 보통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내 자식들은 화목하고 다정하게 키울 것입니다. 두서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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