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던 눈물바다 사연

fiction-google 2024. 1. 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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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나는 매일 괴롭힘을 당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때론 맞기도 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괴롭기만 했다.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아이들은 학급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선지 누구도 나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작문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은 무어라도 좋으니 아버지와 여행을 했던 일이든,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일이던 편한대로 써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한 참 동안을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모두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열심히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하얀 노트를 그저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은 운동장 같은 교실에서 나 혼자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결국에는 노트를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 주제인 아버지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이 일로 다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나의 어릴적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당시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작문은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책상의 끝에서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차곡차곡 걷어가 버렸다. 선생님은 다음 주에 발표를 시키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교실을 뚜벅 걸어 나가셨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나는 다시 아이들이 내리친 손바닥에 머리가 뜨끔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주일은 빨리 다가왔다. 오늘이 작문의 발표날인 것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작문이 뽑히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나는 선생님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앞의 급우의 등 뒤에 숨 듯 몸을 낮게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나를 부르지 말라고 빌고 또 빌었다.

소원대로 나는 아직까지 살아남고 있었다. 이제 10분이면 이 길고 긴 수업은 끝이 날 것이다. 차라리 매를 맞는 것이 이것보다 마음이 편할 것이었다. 10분은 차차 줄어들어 수업은 거의 끝나려하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조금 안정이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다음은 손민이가 발표 해 볼까?”

그것은 나의 이름이었다. 나는 강하게 돌을 맞은 개구리처럼 다리가 떨리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떨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선생님… 저는 아버지에 대해서 쓰지 못했습니다.”

반의 친구들은 키득거리며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병신세끼

웅성거리는 소리와 키득거리는 소리 중에 그 소리만은 확실하게 나의 귀에 박혔다.

모두는 어쩌면 이리도 단결이 잘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마저 일었다. 하지만 도망칠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다시 선생님이 큰소리로 소리치는 것에 정신이 들었다.

“다들 조용히 못해!”

교실은 어색한 정적이 느닷없이 찾아들었다. 선생님의 시선은 나를 향한 채였다.

“손민아, 선생님은 네 글을 모두에게 들려주었으면 한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음성으로 발표를 했다. 아이들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는… 없습니다. 내가 유치원 때에 달리는 차에 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놀아본 기억도 함께 여행을 가본 기억도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에 대해서만 적겠습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어디론가 나가셔서 아버지 대신으로 일을 하십니다. 매일 그렇게 일을 하시고 저녁 늦게야 돌아오십니다. 항상 어깨가 아프시고 힘이 들어 하시지만 집에 돌아올 때는 나를 위해 맛있는 과자를 사가지고 오십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좋습니다. 할머니는 건강하시고 나를 학교에 대려다 주십니다. 나와 함께 집에서부터 걸어오십니다. 맛있는 밥도 할머니가 해 주십니다. 할머니의 요리는 언제나 맛있습니다. 엄마가 바쁘셔서 수업 참관을 할 때에도 할머니가 나를 봐주십니다. 항상 친구들이 할머니가 온다고 놀리곤 하는 것이 창피하긴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정말 좋은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없어도 별로 슬프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우리 엄마와 할머니가 계시니까요. 엄마는 아빠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나도 빨리 커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서 우리 아빠를 대신해 엄마와 할머니께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는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내가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와 할머니가 왜인지 울고 계시곤 하는데, 좀 난처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 주십니다. 그런 엄마와 할머니가 나는 너무 좋습니다.”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나의 노트에 적힌 작문의 마지막 한 줄을 읽고 선생님에게 눈을 돌렸다. 나는 선생님이 생전의 아버지에 대해서 적었으면 되었을 것이라고 충고를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고, 이제부터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애비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이 심해질 것이라 각오했다. 아니면 더 심한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후 떨쳐 버렸다.

노트와 선생님을 번갈아 보며 쭈뼛거리고 있자니 선생님은 잠시 말씀이 없으시더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선생님뿐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의 몇 몇도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남몰래 좋아하던 아이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도 그 중에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사람들이 우는지 그것이 더 이상했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사실대로 아버지가 없으니까 엄마와 할머니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썼을 뿐인데…. 왜 다들 그러는 것일까? 그때 다시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손민아

“예?”

“선생님이 미안하다. 정말 생각이 짧았구나. 세상에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도 있다는 걸 정말 생각을 못했어. 정말 미안하구나.”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 사과를 하시고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불안했던 하루는 어떻게든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누구에게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놀림을 당하거나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때리는 행동은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나도 사회에 나오게 되었고 무사히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바라던 대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고, 모두가 그분들 덕에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건강한 우리 할머니가 자랑스럽고 우리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평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함께 살아갈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의 그 때의 기억은 생생하고 이따금 생각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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