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장소가 어디든 별의별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있는 6인실 병실도 예외는 아니어서 환자마다 다른 개성이 존재했다. 그래서, 여섯 개의 병상에서 각기 다른 여섯 가지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병명이 다르고 아픈 정도도 다르니 신음 소리가 일률적이겠는가 마는 어쨌든,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밤새 가래 끓는 소리를 내거나 기침을 하는 환자도 있고 연신 자지러지는 비명소리를 토해내거나 계속 이리저리 뒤척이며 끙끙대는 환자도 있었다.
개중에도 목에 가래가 차서 곧 호흡이 끊어질 듯 헐떡대는 여든이 넘은 노인이 가장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 노인은 간호원이 수시로 달려와 목구멍을 막은 가래를 기구로 제거해야만 살수 있었다. 의식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고 보호자나 간병인도 없는지 간호사가 대소변을 받아내는 눈치였다.
이렇듯 모든 환자가 고통에 허덕일 때 새로 들어온 내 옆자리 환자는 다른 사람과 달라서 단 한 번도 입으로 신음 소리를 내는 법은 없었다. 그 영감은 얼핏 보아도 일흔은 넘어 보였는데 걸음도 가뿐하게 수시로 화장실도 들락거리고 복도를 서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겉만 보아서는 의사보다 건강한 환자였다. 그러니 다른 모든 환자의 신음 소리가 내 귀를 때려도 옆 병상만은 조용하였다. 그러나 그 환자는 나름대로의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엉덩이로 내는 신음 소리였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큰 대포 소리로 말이다.
저녁 배식 시간이 되어서인지 복도에서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자 영감이 있는 옆자리에서 덜컥하고 식탁을 펴는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환자의 호명과 함께 여기저기서 보호자들이 식판을 받아 나르고 있었다. 헌데, 다른 환자의 이름을 다 불렀지만 옆 병상 영감은 호명을 하지 않았나 보다. 갑자기 영감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봐... 어이, 이 보라고. 아니? 난 왜 밥을 안 주는 거야? 어이! 이봐."
막 가려던 배식 아주머니가 영감에게로 다가갔다.
"왜요? 밥이 안 왔어요?"
"줘야 먹지? 다른 사람은 다 주면서 나는 왜 안 주는 거야?"
"할아버지. 보호자분 안 계세요? 식사 신청은 하셨어요?"
"신청? 무슨 신청? 꼭 신청을 해야 밥을 주나?"
"그럼요. 신청을 하셔야 돼요. 그러면요.... 보호자분 대신 제가 신청을 해 드리고 우선 밥은 곧 갖다 드릴 테니까.... 잠시만요."
친절한 아주머니는 금세 영감의 밥을 식탁에 놓아주었다. 영감은 불만 섞인 소리를 중얼거리며 숟가락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전등이 다 꺼지고 흐린 불 하나만 남아서 실내가 희미해 지자 환자들 마다 예의 신음 소리가 낮보다 훨씬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밥을 거의 못 먹는 상태였고 거동마저 불편해 지던 시기라 신경이 날카로웠다. 게다가 밤잠마저 없어진 나로서는 그들의 신음 소리가 괴롭기 짝이 없었다. 정신 없이 아플 때는 몰랐던 신음 소리가 왜 이리 크게 들리는가 말이다. 참으로 긴 밤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자 우울해지기까지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뿌우웅! 뿌우우악!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쏘는 엄청난 대포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옆 병상의 영감이 나를 향해 발사한 것이다. 깜짝 놀란 내가 벌떡 일어나 커튼 쪽을 바라보았다. 옆 침대에는 앉아있는 영감의 실루엣이 커튼에 잠시 비치더니 이내 자리에 눕는 것이다. 나는 망연히 그 영감의 희미한 그림자를 바라 보였다. 그러자 지금 막, 아우슈비츠의 살인 가스가 커튼에 스며들어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입을 꼭 다물고 호흡의 양을 십분의 일로 줄였다. 빌어먹을 영감 같으니라고.... 가득이나 여러 환자의 호흡과 체취로 탁해진 실내의 공기에 독가스를 섞다니.....
이튿날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든 내가 기상나팔 소리보다 큰 방귀 소리에 또 한 번 놀라 깨었다. 영감이 있는 힘을 다해 아래로 밀어낸 에너지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두 침대 사이에 쳐진 커튼이 흔들릴 정도니 말이다.
아침 시간 전에 X-선을 찍고 채혈을 한 나는 밤새 못 잔 값을 하느라 낮에 잠이 들었다. 몇 시쯤이나 되었을까? 또다시 쏘아대는 영감의 다부진 방귀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몇 시야?"
마침 들어서는 아내에게 내가 물었다.
"회진 돌 시간 다 됐어요."
"이제 겨우 두시란 말이지?"
점심 식사가 끝난 후에 잠이 들었으니 한 시간 남짓 잤다는 얘기가 아닌가?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영감의 방귀 소리만 아니었어도 꿀 같은 잠을 10분이라도 더 잤을 것 아닌가?
"무슨 놈의 방귀 소리가 대포 소리 같은지 원....."
나는 옆 병상의 영감이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영감이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잠시 후, 담당의가 회진을 왔다. 혈액 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 피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맞으라면 맞아야지 별 수 있나?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 피 주사를 맞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았다. 눈을 뜨니 실내가 환하고 TV 소리가 시끄러웠다.
"몇 시야?"
나는 또 아내에게 물었다.
"여덟시 좀 안 됐어요. 죽 데워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잠시 후, 인스턴트 죽을 데워 온 아내가 식기 전에 얼른 먹으란다. 죽을 퍼서 숟가락을 막 입에 넣으려는 찰나였다.
뿌우우웅! ..... 뿌우욱!.....
아, 저놈의 방귀 소리..... 가득이나 입맛이 없는 나를 아예 굶겨 죽이려고 하는구나. 그러나, 방귀를 상대로 고소할 수도 없고 영감을 잡고 따지기도 애매한 노릇이었다.
방귀가 나오려고 할 때 밖으로 나가서 해결하던가 아니면 소리를 조금만 줄일 마음이 영감에겐 아예 없단 말인가?
식사를 제대로 못해 급격히 체중이 줄자 의사가 처방을 내려 영양제를 비롯한 링거 줄이 여러 가닥으로 늘었다. 좌우 팔뚝에 번갈아가며 주삿바늘을 꽂으려니 거추장스럽고 저려서 견디기 힘이 들었다. 그러자 의사는 가슴에 포트를 심는 것이 좋다고 한다. 포트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수술실로 실려갔다. 의식도 멀쩡하고 아픈 것도 없는데 의사가 내 목과 가슴에 관을 삽입하느라 마구 힘을 주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가슴 위에 바둑알 같은 것이 생겨 있었는데 모든 주사액은 이곳을 통해 들어가나 보았다. 그런 후엔 팔뚝의 혈관에 꽂든 바늘이 포트를 통해 들어가니 거추장스럽지 않은데다 아프지 않아서 좋았다. 생각컨데, 포트란 아마도 진지(陣地)나 요새(要塞)라는 뜻의 Fort, 아니면 항구나 단자를 말하는 port가 아닌가 싶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문제가 있었다. 화장실을 한번 가려면 대단히 번거로운 것이다. 병과 비닐 백이 주렁주렁 매달린 이동식 걸이를 밀고 가기도 불편하고 또 그것을 좁은 화장실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은 늘 사용중 일 때가 많았다. 화장실은 하난데 환자와 보호자를 합쳐 열이 넘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요의를 느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신발을 꿰고 침대 머리맡에 매달린 링거 주머니를 이동식 거치대로 힘겹게 옮겼다. 용변은 급한데 누가 또 사용 중이었다. 꾹 참고 몇 분을 기다릴 수밖에. 그러나 나올 기미가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나올 때를 기다리다 못해 복도 중간쯤에 있는 먼 화장실로 종종걸음을 해야 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갈 때마다 화장실을 먼저 선점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삼일 후였다. 소변을 누고 싶어 눈이 떠진 나는 아내가 대신 옮겨준 거치대를 밀고 급히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허나, 역시 누군가가 또 들어있었다. 몇 분을 기다리다 더 참을 수 없던 나는 복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뿌우우웅.....뿌우악!
변기가 깨질 것 같은 저 엄청나게 크고 익숙한 소리.... 옆 병상의 영감이었다. 변을 보는지 방귀를 뀌려고 그냥 변기에 걸터앉았는지는 몰라도 도대체 무슨 병이기에 저런 방귀를 생산하며 입원까지 했을까 싶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영감의 방귀 뀌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하루에 대여섯 번이던 대포 소리가 열 번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새벽을 알리는 방귀를 시작으로 식사 시간에도, 화장실 갈 때도, 낮잠을 잘 시간에도, 회진 돌 시간에도 저녁밥 먹을 때도, 도무지 영감의 방귀 소리는 언제 울릴지 예측 불허였다. 헌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귀를 뀔 때면 반드시 뿌우웅,.... 뿌우우욱. 하고 두 방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수년 전 나는 장폐색으로 소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입원했던 방에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암 환자였는데 두 명의 위암 환자와 세 명의 대장암 환자들로 기억된다. 당시의 그들은 모두들 수술을 끝내고 항암 주사를 맞고 있었다. 그런데 암 환자인 그들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멀쩡해서 도무지 환자 같지를 않았다. 어떤 암 환자의 경우, 수술 후 병실로 돌아온 날과 다음 날만 신음 소리가 낭자했을 뿐, 삼 일째부터는 실실 웃고 농담도 잘 했었다. 그 환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네 명의 환자들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서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모두들 영양을 잘 섭취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처럼 바싹 말라서 거동도 하기 힘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헌데.... 위암이건 대장 암이건 림프종 암이건 다 같은 암이건만 어째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체중이 줄고 아픈 데가 많을까. 평소에 68 Kg이던 체중이 10 Kg이나 떨어지니 힘까지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입맛도 정상이 아니었다. 도무지 맛을 느끼지 못해서 짠맛과 매운맛만 느낄 뿐, 단지 쓴 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신마저 트릿하고 오락가락하여서 책은 물론이요 TV도 노트북도 전연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몸은 교통사고를 당한 것 처럼 쑤시고 아팠다. 그러니..... 하루 종일 비몽사몽으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잠이라도 들라치면 옆 병상의 영감이 내 지르는 방귀 소리에 눈이 번쩍 떠 지던 것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뿌우우웅.... 뿌우악!
화들짝 놀란 내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눈이 떠졌다. 정신을 집중해 실내를 살펴보니 전등이 모두 꺼졌고 현관 쪽 희미한 불 하나만 남은 것으로 보아 밤중이 틀림없었다. 아.... 이 빌어먹을 영감이 또 나를 깨웠구나.
순간 약이 오른 나는 커튼 너머의 영감을 향해 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이거 보시오. 방귀를 뀌려면 나가서 뀌던가 소리라도 줄여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오?"
내 말에도 저쪽 영감은 별말씀이 없으시다. 나는 내 말을 무시하는 영감이 더 미웠다. 그래서 좀 더 심한 말을 하려고 생각 중인데 문득 영감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오는 방귀를 어쩌란 말이오?"
뭐? 나오는 방귀? 방귀도 방귀 나름이지 그게 방귀냐? 대포지.
"아니.... 보통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선.... 방귀가 마려우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뀌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소리라도 줄이려고 할 텐데.... 당신은 일부러 쥐어짜서 뀌지를 않소?"
"방귀 소리를 잡고 시비하는 사람은 처음 보겠네. 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즉각 들려온 대답이었다.
"소리만 문제가 아니니 하는 얘기요. 가득이나 좁은 실내에, 공기가 탁해 죽겠구먼 거기다 방귀 가스까지 섞이면 좋을 게 뭐가 있겠소?"
"그렇다고 나오는 방귀를 어쩌란 말이요?"
"헛, 참.... 그러니까, 내 말은.... 참거나 소리를 줄이란 말이요."
"뭐라고?"
영감님이 어이가 없는지 말을 끊고 잠잠 했다. 그러자 저 쪽 병상에서 누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소. 그동안 여기 있는 나도 듣기가 뭣해서 한마디 할까 했었는데 코앞에 있는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한 방에 있는 환자끼리 서로 조심을 해야지."
나는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고참인 끝 병상의 그 환자는 신장에 탈이 난 환자였고 옆 침상의 영감과 비슷한 연배였다. 생각 밖의 응원군까지 생긴 나는 이참에 영감을 궁지로 몰아 버릇을 고쳐 주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고 있자니 무언가 미진하고 속이 불편했다. 이번 기회에 저 영감의 방귀를 확실히 틀어막아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날, 그 영감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잘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6시가 되자 밥 수레가 와서 환자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보호자들이 부지런히 밥을 받아 식탁에 놓는 소리로 부산했다. 비스듬히 누워서 복도를 보니, 보호자가 없는 옆 침대의 영감이 쌩쌩한 걸음으로 식판을 받아 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그러고 보니.... 마누라가 없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
식사 시간이 끝난 뒤, 복도 밖의 화장실을 간신히 다녀왔을 뿐인데 나는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있다가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나 보다.
"뭐라고? 이 자식이..."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분명 옆 침상 영감이 내 지르는 소리였다. 그러자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왜 유? 내 말이 틀렸어요?"
"이 자식이 맞고 싶어서.... 이걸 그냥...."
"또 때릴려고 그러네. 쳐 봐유. 걸핏하면 때린데. 이제 제 나이 서른이 넘었어요. 때리긴 어딜 때려요? 아버지가 맨날 이러니 형들이 아무도 면회를 안 오는 거예요. 알았어요?"
"뭐야? 그래도 애비는 애빈데 내 이 새끼들을...."
"흥,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한 게 뭐가 있어요? 형들이 오죽하면 아버지를 모른다고 해요?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어떻게 했어요? 우리를 때리는 것도 모자라 엄마는 매일 왜 그렇게 때렸어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아버지 때문이잖아요? 왜요? 내 말이 틀렸어요?"
아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감의 반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몇 초의 침묵이 흐른 뒤였다. 착 가라앉은 영감의 비통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여. 죽을 날 받아놓은 내게 그럴 수는 없는 거여."
"아버지는 그런 대접을 받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우리는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요."
"이 자식아, 넌 그럼 뭣하러 왔냐?"
"마지막 인사라 생각하세요."
부자 사이가 틀림없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아하, 그래서 그동안 마누라도 보호자도 없이 혼자 있었구나 싶은 것이다. 아들의 말이 끝나자 영감의 부들 부들 떨리는 음성이 내 감정까지 흔들리게 한다.
"뭐야? 내 이 자식을 그냥....."
"나, 가요. 이제 다신 안 와요."
아비의 떨리는 음성과 달리 의외로 덤덤한 아들이 최후통첩을 남기고 복도로 나왔다. 나는 재빨리 영감의 아들이란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저 그런 보통 얼굴이었다.
아들이 떠난 후, 영감이 있는 침상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이 지나도 그 흔한 방귀소리도 없는 것이다. 슬며시 측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들들을 상습 폭행을 했단 말이지? 혹시, 영감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성격이 포악한가? 술만 마시면 나오는 주사(酒邪) 때문인가?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다니......아들이 한 말로 미루어 백 번 영감이 잘못한 일이지 싶었다. 아버지를 향해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난 아들놈도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비를 원수를 대하 듯 하다니.....
하지만 아들이 오죽했으면 아비에게 패륜의 말을 퍼부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패륜을 먼저 저지른 건 저 영감이 아니었던가? 폭력 휘두르 듯 방귀를 쏘아대는 것만 봐도 알쪼가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저 영감의 심사는 지금 어떨 것인가? 지난 날을 생각하니 물밀듯 후회가 몰려와서 속으로 울고 있을까? 아니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아들의 귓쌈을 못 때린 걸 분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추측건대..... 둘 다 아닐 것이었다. 저 영감은 지금도 아예 자신의 잘못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영감의 마음을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인간은 잘 했든 잘못했든 끝까지 자신이 한 행동을 변명하고 방어 하게 마련이다. 사람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뉘우친다고 해도 일순간일 뿐이고 후회의 눈물들은 흘리지만 뒤돌아서면 그 뿐인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악마가 천사가 되 듯 백팔십 도로 변한 사람이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영화나 소설일 뿐이다. 장발장 같은.....
다음날이다. 새벽이 되었건만 웬일인지 영감의 그 크고 우람한 방귀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저 영감이 죽을 때가 되었단 말인가? 그날이 다 가도록 신호가 없자 오히려 내 쪽에서 영감의 대포 소리를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딱한 영감님, 나나 당신이나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은 같지 않소?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그건 일순간 뿐이오. 그러니.... 산 자식들과 죽은 마누라를 마음 속에서 잠시 내려놓고 이제껏 하던 대로 다시 방귀를 뿌우욱, 뿌우우악, 뀌면서 사는 날까지 사시오. 이제부터는 당신의 방귀를 잡고 시비를 걸지 않을 테니......
나는 아직도 그 영감의 병명을 모른다. 겉은 멀쩡한 그 영감이 무슨 죽을 병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란 역시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음 앞에서 새삼 뉘우치고 후회한들 무어가 달라지고 누가 알아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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