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어선 입원실엔 이미 두 사람의 환자가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핏 돌아보니 문가의 피부가 새카만 한 사람은 정신이 없는 듯했고 끝 쪽 침대에 걸쳐 앉은 사람은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뇌졸중 환자였다. 한눈에 봐도 한 쪽 다리와 팔을 전혀 쓰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창가 보다 화장실이 조금이라도 가까운 가운데 침대를 택했다. 곧이어 어떤 환자 영감이 들어와 창가 쪽 침대를 차지했다. 그때까지 나는 내 몸의 고통에만 신경이 쓰였을 뿐 사실 그들을 자세히 본 것도 아니었다. 입원실에 날이 새자 밤새 비몽사몽이던 나는 눈을 떴다. 줄줄이 달린 링거 덕인지 고통이 한결 덜해서 좋은 아침이었다. 일곱 시에 아침밥이 도착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환자들은 가벼운 동요와 함께 식판을 받아 들었다. 물론 옆 침대의 영감도 식판을 받은 것 같았다. 대강의 분위기로 보아 영감 내외는 한 그릇으로 나눠먹는 듯했다. 그런데 다 먹은 식판을 내 가던 할멈이 내가 누운 침대를 지나치려다 말고 한마디 하신다.
"밤새 정신없이 주무시대요. 코 고는 소리가 천둥 같았지 뭐유."
잠이 든 후의 일을 알지 못하는 나는 새삼 겸연 쩍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할멈뿐 아니라 다른 환자에게도 들리게끔 본의 아니게 환자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단 말을 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미안은 무슨.... 우리도 다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걱정을 마시란다.
지난 십여 년을 이런저런 크고 작은 병으로 장기 입원을 여러 번 경험한 나는 입원실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있던 차였다. 한데.... 당장 그날 낮부터 옆 병상 때문에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병문안을 빙자한 군대의 동원이었다.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와 영감의 형제인 듯한 일가족이 총동원되어 병실로 문병을 온 것이다. 그때 나는 마침 깜빡 잠이 들어있었는데 내 침대가 탕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려 깜짝 놀라 깨었다. 깨어나 상황을 살펴보니 옆 병상의 낮은 보조 침대가 내 침대의 다리를 때린 것이었다. 물론 그 보조 참대에 문병 온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바퀴를 마구 굴린 탓이다. 그러더니 시끌벅적한 소음이 커튼을 뚫고 그대로 중계가 되었다.
"아버지, 의사가 뭐래요? 참 검사는 해 보셨어요?"
"아직 혈액 검사 말곤 한 게 없어."
"그래 수치가 어느 정도래요?"
"수치보다도 신장이 다 망가진 게 틀림없어."
"에이 아버지도.... 모든 검사를 끝내 봐야 알지요."
"아니라니까. 신장이 잘못된 것이 틀림없데두."
그렁그렁 울리는 영감의 목소리와 톤이 날카로운 아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두 부자의 대화와 사이사이에 일가친척과 손녀의 수다가 끼어들자 영감은 그때부터 일 초도 입을 다물지 않고 대답을 겸한 개인의 의사를 피력하기 바빴다. 게다가 보호자 간이침대가 있는 내 침대 바로 밑에서 할멈의 끝없는 수다와 잔소리까지 겹치니 십여 분도 되기 전에 나는 그만 질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약과였다. 이튿날 아침, 두 영감 할멈의 대화가 커튼 한 장 사이로 중계되기 시작했다.
"원일이네는 얼마나 갖고 왔어?"
"오만 원하고 드링크지 뭐. 짠 여편네잖아."
"일수네는?"
"그 사람은 왠일로 백만 원을 갖고 왔데? 아마 우리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 했던 가봐."
"그래? 그 사람 형편이 어려울 텐데.... 반은 돌러주지 그랬어?"
"돌려주긴 뭘 돌려 줘? 이제까지 우리에게 빌려 간 돈이 얼만데..."
할멈의 짜증 섞인 한마디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영감이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점잖게 한 말씀하신다.
"그래도 그러는 게 아녀. 그 사람 아버지가 살았을 제 우리에게 해준 것도 많었잖아."
"해주긴 개뿔. 당신한테 술 사준 것 밖에 더 있어?"
"그래도 그러는 게 아녀. 오십만 원은 돌려줘."
"내가 미쳤어요? 돌려주게."
"그럼 그 돈으로 은영이 잠바를 하나 사줘. 큰 애 한테선 애라곤 그것 하난데, 걔도 금년에 대학 들어 갔잖여."
"지방 대학을 가서 제 애비 돈만 더 들게 한 년, 뭐가 고와서 잠바를 사줘요?"
"그래도 그러는 게 아녀. 하나 사 줘."
"사줘도 오십만 원짜리까지 사줄 필요가 있어요? 십만 원이면 너끈하지."
"그럼 그려."
이때 마침 손녀라는 학생의 카랑카랑하고 생기 발랄한 음성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은영이."
"아니? 넌 이렇게 일찍 웬일이냐?"
"친구들 만나 놀러 가려구요. 힝, 여기 오니 참 좋다."
"병원이 뭐가 좋단 말이냐?"
"먹을 게 많잖아요?"
그새 무엇을 먹는지 쩝쩝대는 소리가 커튼 넘어에서 들려온다.
"에계, 목멜라. 음료수라도 마시며 먹어라."
"마시고 있잖아요 키킥. 아 목매."
벌컥대는 소리가 심히 귀에 거슬린다.
"너 학교 새로 들어갔는데 잠바 하나 사 주랴?"
"응, 할아버지. 그런데 점퍼 보다 다른 것 사 주시면 안 돼요?"
"응? 다른 것? 뭔데?"
"응. 나 학교 다닐려면 노트북이 꼭 필요하거든."
"뭐? 너 쓰는 것 있더구먼 새로 사서 뭣하게?"
"에이, 그건 삼 년 전 고등학교 들어 갔을 때 아빠가 사준 고물인데?"
"뭐? 너희 아빠가 새 걸 안 사주고 고물을 사 줬었냐?"
"엥이, 할아버진 농담도 잘하셔.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 이번엔 정말 아껴 쓸 테니까 삼성 걸로 하나만 사 주세요? 네? 헤헤."
"을만데?"
"얼마 안 해요. 인터넷에서 사면 120만 원 정도면 충분히 사거든요."
"뭐야? 백이십만 원? 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것도 싸게 사는 거예요. 내 친구들은..."
그때 지방대, 그것도 먼 지방대에 붙으신 손녀의 말을 자르고 할멈이 나섰다.
"네 친구고 지럴이고 그럴 돈이 어디 있어? 그리고, 처녀가 옷차림이 그게 뭐냐? 이참에 잠바나 하나 사서 입으면 될 것을...."
"얼마 짜리?"
"시장에 가면 십만 원만 줘도 근사한 잠바들이 많더라."
"피.... 할머니나 사 입으셔."
손녀는 그 후 말이 없고 빵이며 과자를 작살내는 소리가 들리더니 휭하고 병실을 떠났다.
"또 올 게. 할아버지. 또 올 게요 할머니."
그날 밤이다. 누워 있는 내 바로 옆에서 푸우 푸우 하는 입바람 소리가 내 귀를 괴롭힌다. 가만히 보니 옆 병실 할멈이 커튼 한 장 사이를 두고 내 옆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나는 내 아내를 돌아보았다. 발 끝 아래에 잠든 아내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 얼굴과는 1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 병상 영감의 할멈은 내 얼굴과의 거리는 불과 40 센티가 될까 말까 하니 이게 무슨 꼴인가?
어쨌든, 내 귓가에 뿜어대는 그 할멈의 입바람 소리를 직통으로 들으니 대장간의 풀무 소리가 따로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막말로.... 속대로 한다면 그 입을 확, 쥐어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입바람 뿐이라면 말을 않겠다. 그 할멈의 취침 난폭운전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이다. 입바람 소리를 참고 참아서 수 백 마리의 양을 세다가 깜빡 잠이 들만하면 이번엔 할멈의 보조 침대가 내 침대를 사정없이 들이받는다. 할멈이 돌아누울 때마다 그놈의 침대 바퀴가 멋대로 구르는가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뜨게 마련이었다.
새벽이다. 옆집의 두 양주 분은 평소 기상 시간을 새벽 다섯 시로 딱, 정했는지 어김없이 그 시간이면 두런두런 대화가 시작되신다.
"어제 집에 가서 뭘 했어?"
"뭘 하긴? 수도가 얼까 봐 밤새 틀어놓고, 김칫독 들여다 보고 소 외양간에 연탄 갈아주고 왔지."
"참, 수도 고친다고 그 녀석들이 마당의 콘크리트를 깨 놨더니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그대로지. 내가 화가 나설랑 전화로 지랄 지랄 했더니 오늘 와서 해 주겠다고 하데..."
"해 줘도 다 해주진 않을걸? 우리가 깬 부분도 있잖여?"
"아? 그것도 못해 줘? 하는 김에 같이 하면 될 것을."
"그래도 일을 하려다 그렇게 된 걸 너무 야박한 것 아니야?"
"이 영감이 미쳤수? 그럼 우리가 해야 한단 말이요?"
"그게 아니라...."
"시끄러워요. 오늘 가봐서 다 안 해 놨으면 그 집을 찾아갈 거니까."
"그래도..."
영감의 판정패가 분명해 보였다. 잠시 후 할멈이 양치질을 가는지 소피를 보러 가는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러는 사이 옆 병상의 영감이 무언가를 부스럭대더니, 와삭 쩝쩝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이때, 돌아오던 할멈이 현장을 목격하셨나 보다.
"당을 재기 전에는 먹으면 안 되다는데 무얼 그렇게 또 먹어요?"
"내가 먹긴 무얼 먹어. 어제 은영이가 뜯어 놓은 과자 몇 개랑 요구르트 두 병 밖에 더 먹었나?"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내가 눈만 돌리면 저러니 원, 영감 병을 고치려면 그것부터 고쳐요."
"어차피 망가진 몸인데 뭘 그려."
"그럼 아까운 돈 버리려고 병원엘 왜 와?"
"저, 저런... 또 돈타령이군....."
영감의 또 한 번의 판정 패였다.
아침밥이 오자마자 병실이 분주해지더니 부지런한 면회객이 옆 병상으로 찾아왔다.
"아니? 병춘이 아녀? 이렇게 일찍 웬일인가?"
"어제 춘천에 볼일 보러 왔다가 늦어서 사촌 집에서 잤시요. 아자씨 입원 했단 소리도 걔한테서 들었구요."
"춘천 사는 명춘이? 엉, 어제 내게 왔다 갔었지."
"너무 이른 시간이라 빈손으로 왔어요. 가만, 편의점에서 박카스라도 사다 드려요?"
"아, 그만둬. 어제 명춘이가 비타 뭔가를 사 왔다더라고."
그래서 시작된 주객의 대화가 30분 남짓 이어지자 이번엔 작은 아들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들은 자신 보다 먼저 온 사람을 보았나 보다.
"엉? 병춘이 왔어?"
"어, 인두로구만. 오랜만이야?"
아들을 본 영감이 나섰다.
"너는 이 시간에 웬일이냐?"
"출근하기 전에 잠깐 들러 보려구요."
"출근 시간도 바쁠 텐데 어서 가 봐."
"그럼 이따 퇴근해서 다시 올게요. 그땐 집사람도 같이 올 거예요."
그때였다. 가만있던 할멈이 한마디 하신다.
"걔가 와서 뭘 하게? 됐으니 집에서 애나 보라구 해."
고부 간에 사이가 안 좋으신 게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이제껏 그들의 대화를 종합해 보니 옆 병상의 영감은 춘천에서 좀 떨어진 시외에 사는가 보았다. 버스로 오십 분 거리란다. 정오가 가까워 지자 어김없이 그 동네 사람인 듯한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좁은 병실이 흡사 옛날 버스 대합실 같아서 실소를 금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미쳐 인사도 다 나누기도 전에 다음 사람이 닥치는 꼴인 것이다. 그날은 아마 일개 중대가 다녀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입도 짭짤해서 귀로 들은 것만도 음료수가 열 박스가 넘었고 거기에 더해 도토리묵과 떡 보따리도 받아 놓은 눈치였다. 이에 내가 추측건대 아마도 이 영감은 그 동네의 밥술이나 먹는 유지로 인심은 잃지 않은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 다섯 시가 되자 옆 병상에서 어김없이 기상나팔이 울린다. 영감의 그렁그렁하고 할멈의 날카로운 음색이 대화로 시작된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앞으로 삼십 년은 살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되겠고 최소 이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몸이 이러니 원."
"걱정도 팔자슈. 이십 년이 아니라 삼십 년도 살 테니께 걱정 말아요."
"에이 삼십 년을 살면 좋기야 하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지. 까짓, 이십 년만 더 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새벽부터 수명 타령을 하기에 속으로 도대체 이 영감이 몇 살이나 먹었나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불편한 몸을 끌고 그쪽 창가에 있는 테레비젼 리모컨을 만지는 척, 그 영감의 병상 위에 붙은 신상을 슬쩍 훑어 보았다. 78 세. 그것도 만으로, 아차... 나보다 훨씬 위인 데다 생김새도 제법 틀이 잡히셨다. 그런데 78 세에 이십 년을 더 산다면 도대체 몇 살까지를 자기의 수명으로 하려는 걸까? 그러니까 만 98 살 까지는 살고 봐야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나는 70을 바라보며 죽을 판인데 저 영감은 아흔을 넘기려고 하는구나. 그러나 그것은 그 영감 나름대로의 계산법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한마디로 나의 착오였던 것이다.
그날 낮이었다. 새벽잠을 설친 내가 설핏 잠이 들었는데 옆 병상의 영감이 약간 놀란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버지..... 여긴 뭘 하러 오셨어요?"
그러자, 좀 더 작으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네가 입원했다는데 와 보지 않을 수 있냐?"
엉? 78세의 아버지? 나는 또 한 번의 호기심이 발동해서 테레비를 향해 리모컨을 찾아갔다. 그리고 옆 병상을 슬쩍 살펴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기엔, 영감의 아버지란 분 말고도 영감의 모친이 확실한, 백 살도 훨씬 넘어보이는 조그마한 할머니가 같이 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영감의 부모님 내외는 비록 늙긴 했으나 아직 정정해 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옆 병상의 영감이 왜 삼십 년 타령을 했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부모가 백 살이 다 되도록 살아 있으니 자신도 그 정도는 살 것이고 거기다 현대 의학을 보탠다면 그 이상도 문제 없으리란 계산을 했을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옆 병상의 그 영감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연) 새벽에 갑자기 음식 차리라는 시어머니 드디어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1) | 2024.02.01 |
---|---|
(사연)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이제 나를 부양하라고 하는 어버지와 연을 끊었습니다 (1) | 2024.01.31 |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던 눈물바다 사연 (0) | 2024.01.31 |
병상이야기 3. 방귀쟁이 (2) | 2024.01.26 |
병상이야기 1. 발병 (1) | 2024.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