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병상이야기 1. 발병

fiction-google 2024. 1. 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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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셋째 주 토요일 저녁...... 까마득히 먼 옛날, 내가 아이 적에 읽은 어느 단편소설의 첫 구절이다. 11월이면 그 해의 막바지에 접어든 달이요, 셋째 주 역시 그 달의 며칠 남지 않은 날이며 토요일은 그 주의, 저녁은 그날이 끝나기 직전의 시각이 아닌가?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그 소설의 문장과 비슷한 시기에 병을 얻었다.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든 나이에 말기 암이 나를 방문 한 것이다. 그것도 11월 셋째 주였다.    

언젠가부터 허리가 몹시 아프고 어깨가 결렸었다. 처음엔 그저 하루에 몇 시간씩 빌어먹을 컴퓨터를 잡고 있어서 그렇거니 했었다. 그러다가, 좀 더 심해지자 자리에 눕는 횟수가 늘었고 안마기로 사방을 두들겨도 보았다. 어느날부터 통증이 더욱 심해져 급기야 눕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밤새 안절부절하며 뜬눈으로 보낸 나는 날이 밝자 서둘러 동네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진료를 받기까지는 한 시간도 더 기다려야 했다. 대기자가 엄청난 데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의 그 막심한 통증을 참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어깨의 근육이 뭉쳐있고 허리 끝 뼈 쪽에 협착이 있군요. 일단 물리 치료를 해 보시죠. 그다음엔 제가 척추 주사를 한 방 놔 드릴 테니까요."
X 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의 명쾌한 진단과 처방이었다. 의사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성격이라, 물리 치료를 받고 척추 주사를 맞은 나는 한 시간쯤 회복실이란 곳에서 누웠다가 치료비를 내려고 창구로 다가갔다. 그런데 계산서를 받아보니 치료비 외에 주사 한 방 값만 오만 팔천 원이란다. 억 소리가 나왔지만 별 수없이 지갑을 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데..... 비싼 주사 값에도 불구하고 효험은 별로여서 몇 시간 동안 통증이 약간 완화된 것 말고는 그대로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허리뿐만 아니라 겹치기로 배까지 뒤틀렸던 것이다. 이 아픔을 견딜 장사는 없을 것이었다. 자, 이젠 배가 아프니 내과로 가 봐야겠구나.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마누라를 따라 택시를 타고 좀 더 큰 병원에 접수를 했다. 여기서도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 상태를 살피던 내과 의사는 배에 청진기를 대는 게 아니라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귀 뒤에 멍울이 크게 생겼네요. 언제부터 이런 겁니까?"
나는 아픈 쪽은 배지, 목이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 전쯤입니다. 아니 열흘쯤 전인가 싶은데요?"
"전에도 이런 멍울이 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 있었습니다 오 년 전에 장 폐색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타구니에 이런 증상이 있어 조직 검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양성이었습니까?"
"글쎄요, 당시의 의사 선생께선 별것 아니라고 하던데요?"
"제가 보기엔 이건 림프절이 의심됩니다만 X레이와 CT 검사를 한 다음 결과를 봐야 할 것 같으니 일단 입원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림프절이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그것 때문에 허리와 배가 아프다면 당연히 입원을 해야겠지. 나는 당시만 해도 림프질이란 듣도보도 못한 시시한 병명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승복을 하고 입원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주사를 두어 방 맞으니 고통은 확실히 줄어들어서 좋았다. 입원 후, 피를 뽑고 각종 촬영을 마친 나는 오랜만에 병원에서 깊이 잠들었다. 다음날이었다. 마누라의 등쌀에 병원에서 주는 아침밥을 억지로 몇 술 퍼 넣고 있는데 의사가 오더니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다.
"CT 촬영 결과를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환자분은 조직 검사를 했었다는 대학 병원을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소견서와 촬영된 영상을 CD로 구워드릴 테니 그쪽으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이 하필 금요일이라 일단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월요일이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노트북을 끼고 림프절이란 생소한 단어의 검색에 매달렸다. 그랬더니 림프절뿐 아니라 림프종이란 병명과 함께 호지킨과 비호지킨이란 단어가 줄줄이 뜨는 것이다. 나는 림프절의 정체를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비로서 내 몸 상태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나와 똑같은  병의 진행 상황이 고스란히 나와 있었던 것이다. 별로 희망적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더라니..... 내 몸은 그동안 나에게 이런 작은 예후 하나하나를 주었지만 여태 그것을 무시해 왔던 것이다. 만약 목에 난 멍울에 통증이 있었다면 좀 더 빨리 병원에 가 볼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귀 뒤가 아니라 등짝과 배, 그리고 옆구리가 아플 뿐이니 어찌 림프종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다 그것이 쌓여 발열, 체중 저하, 오한, 가려움증. 따위가 슬슬 부록으로 따라붙었던 것이다. 이제 그것들이 한계에 달한 듯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동안 내가 몰랐거나 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날들이 오늘의 결과가 아니던가?
월요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이틀의 고통은 사뭇 지옥이었다. 나는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소견서와 CD를 들이밀자 접수대에서는 곧바로 협진실로 가라고 했다. 협진실에서는 다시 혈액종양내과로 보내주었다.
의사와 마주 앉은 나는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을 했다. 의사는 이미 인터넷에서 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질문을 했고 내 대답 역시 인터넷에서 본 증상을 그대로 옮길 뿐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오늘 혈액검사와 CT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셨다가 수일에 걸쳐 검사를 하셔야겠지만 환자분의 상태로 봐서 오고 가는 것도 괴로우실 테니 아예 입원을 하심과 동시에 집중적으로 검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싶군요."
하늘님 말씀에 귀를 막을지언정 의사의 말을 어찌 거역하랴. 일단 입원 수속을 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약간의 진통제 처방을 받고 그날부터 X-레이는 물론 CT 촬영과 피검사와 가래 검사까지 했고 이튿날도 했던 검사를 반복했다. 그러다 삼일 째 되던 날, 다른 때는 몇 분 걸리지 않던 CT 촬영을 그날따라 만세를 부른 자세에서 몸을 묶더니 삼십 분이 넘게 촬영을 하는 것이다. 그날따라 오소리 굴 속 같은 곳에서 듣는 그놈의 윙윙대는 기계음이 딱 질색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묶인 팔은 저리고 아픈데 지루함까지 더해지니 울화가 치밀어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아직은 더 살고 싶으니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다음날이었다. 아침 회진을 돌던 담당의가 아내와 나를 불러 복도 밖에 있는 간호원실로 데려가더니 컴퓨터 앞에 세웠다.
"검사 결과 림프종이 확실하구요. 중증입니다. 여길 보세요. 배와 가슴뿐 아니라 목과 모든 장기에도 다 퍼져 있습니다. 화면에서 붉은색이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붉은색? 교통 신호와 반대로 붉은색이 내겐 곧 청신호란 말이지? 하지만 사진 속의 몸통 안은 붉은색은 별로 보이지 않고 온통 노란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확대하자 장기마다 크기가 다른 무수한 혹들이 가득 했다. 콩알만 한 것에서부터 메추리알, 그리고 계란만 한 것까지 말이다. 느닷없이 마누라가 풀 죽은 음성으로 의사에게 물었다.
"그래도 삼사 년은 괜찮겠지요?"
"에이, 그건 아니구요."
"그럼, 일이 년은?"
"중증이라도 몸 관리만 잘 하면 그 정도 사는 환자는 많아요.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몸 관리를 잘해서 체중과 근력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옆에서 의사와 마누라의 대화를 듣던 나는 꼭 남의 얘기를 듣고 있듯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미 CT 사진이 말해주 듯 대세가 생의 반대편으로 기울어진 이 마당에 삼 년과 일 년을 흥정하는 것을 본 탓이다. 그러다 금세 그것이 남의 말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란 것을 깨닫고 비로소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감에 전율했다. 
"환자분은 지금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안 아픈 데가 없지만 배와 등이 가장 아픕니다."
"아직도요? 진통제를 드렸는데도 통증이 심하다구요? 그동안 몇 알을 드셨습니까?"
"처음엔 선생님 말씀대로 한 알을 먹었는데 그걸로는 기별도 없어서 두 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요? 두 알을 먹으면 통증이 완화가 되던가요?"
"그것도 잘 듣지 않는 것 같아요."
"통증을 참지 마세요. 환자분에게 진통제는 계속 처방해 드릴 테니까 아픈 걸 참지 말고 드세요. 그 진통제가 듣지 않으면 주사로 된 것도 있고 열두 시간 이상 진통 효과가 있는 것도 있으니 아픔을 참지 마세요."
의사의 말에 나는 또다시 엇 뜨거라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간호사가 단 네 알을 놓고 가면서도 그나마 수시로 와서 숫자를 확인하던 진통제가 아니던가? 그런 진통제를 이제부터는 무제한 방출을 하시겠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즉, 너는 이미 글렀으니 고통이나 줄이다 가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대신 죽음의 공포를 다시 느꼈다. 
"몇 가지 검사가 남았지만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검사가 끝나면 항암치료를 시작할 겁니다. 이 병은 의외로 항암치료가 잘 들어요. 귀 뒤의 멍울은 이삼일 이면 사라질 정도지요. 어쨌든 좀 더 지켜보지요."
의사는 그 뒤에도 무슨 검사를 하라는 지시만 내릴 뿐 속 시원한 처방이나 위로의 말씀은 전연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1차 항암 주사를 맞았다. 다음날 또 다른 무슨 주사를 맞은 후에는 식사가 끝날 때마다 한 움큼의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귀밑에 만져지던 멍울이 단 이틀 사이에 어디로 갔는지 전연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현대 의학에 감탄하며 그동안 몸속 곳곳에 창궐하던 놈들이 모조리 녹아서 소변으로 배출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12월 8일 일단 퇴원을 해도 괜찮다는 허락이 있었다. 2차 항암 주사는 2주 후에 맞을 것이란다. 그리고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진통제만 먹으면 어떻게든 일시적인 통증은 멈출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 터였다.
"약은 넉넉하게 드릴 테니 두 알로 듣지 않으면 세 알을 드세요. 네 알까지 드실 수 있으나 그건 좀 곤란하구요. 하루에 네 번 까지는 세 알을 드세요."
다음날 일단 퇴원을 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작은 평화를 느꼈다. 입원실에서 들리던 온갖 신음 소리도 없고 밤새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그나마 집이 낙원인 것이다. 배와 등에 통증이 밀려오면 재빨리 진통제를 먹으면 해결이 되었다. 한데 문제는 식후에 먹는 한 주먹씩이나 되는 다른 약이었다. 처방된 약 성분 중에 무슨 작용인지는 몰라도 약만 먹으면 두어 시간은 저세상으로 갔다가 깨어나곤 하니 도대체 일상생활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퇴원 후 이틀 후인 일요일, 일주일이나 변을 보지 못한 상태로 변기에 쭈구리고 앉아 있자니 죽을 지경이었다. 변은 아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속대로 하면 막대기로 후벼 파내고 싶은 심정에 이른 나는 우연히 변기 속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변기 안이 온통 검붉은 피가 가득 고여 있는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대강 수습을 하고 마누라를 불렀다. 
"택시 불러요. 병원으로 가야겠어."
"오늘이 일요일인데..... "
"응급실로 곧바로 가면 되겠지."
이십여 분 후에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역시 생각대로 대기자가 많았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 X-레이를 찍고 관장을 했다. 십 분 이상을 기다렸다가 화장실로 가라는 남자 간호사의 말대로 이를 악물고 십이 분을 기다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굳어서 쌓였던 대변이 나왔으나 그 양이 그리 많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쾌변의 상쾌함과는 거리가 먼 느낌뿐이었다. 자리에 돌아가자 남자 간호사가 변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보긴 봤는데 시원치 않고 탈홍이 된 듯 아픕니다."
"그래요?"
남자 간호사는 커튼을 죽 당긴 후 나의 항문을 살피더니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제가 어째 볼 문제가 아닙니다. 예약을 해드릴 테니 내일 외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 보시지요."
헛, 이번엔 외과 의사란다. 그러나 별 수 있는가? 그날은 응급실에서 보내고 월요일, 간호원이 가라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외과적 수술이나 시술을 받으려면 혈액 종양내과의 내 담당 의사와 먼저 상의를 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래서 새삼 또 한 번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어째서 오셨나요?"
나는 담당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럼 외과로 가 보세요. 치료가 먼저니까요."
외과로 찾아가니 문 앞에 내 이름이 대기자 명단에 일등으로 올라 있었다.
"이러 이러해서 왔습니다."
"벗고 돌아누워 보세요."
의사의 한마디에 즉각 포즈를 취했다. 한데, 이 의사라는 사람은 문 밖으로 나가는 마누라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다.
"또 이럴 때는 잘 보세요. 잘 보셨다가 그대로 하세요. 이렇게 손으로 콱 밀어 넣어 주세요. 그러면 환자분은 항문에 힘을 꽉 조이세요. 따뜻한 물에 좌욕을 한 후에 이렇게 하란 말입니다. 그럼 끝입니다. 처방해 드리는 약으로 향문의 안 팍을 잘 발라 주시고요."
본의 아니게 마누라 앞에서 별 꼴을 다 보인 나는 약간의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쩌랴. 이미 다 보인 것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진통제와 싸우며 며칠을 보내는 사이, 멀리 사는 큰아들이 왔다. 그것도 손주와 며느리를 함께 데리고서였다. 어린 손주를 보니 약간은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다. 한데 며칠 있는 사이에 내 몸 상태는 영 엉망으로 변해서 진통제가 도통 듣지 않는 것이다. 생각타 못해 진통제를 네 알로 올려 먹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고통은 그대로인데 정신이 혼미해지고 내 몸을 스스로 가눌 수조차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몇 시간 후에 다시 네 알을 먹었더니 이번엔 눈앞에 환각 증세마져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과 물체가 구분이 잘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 병원으로 가시지요. 일단 입원을 하시면 병원에선 무슨 방법이 있지 않겠어요?"
아들의 말에 두말없이 따르기로 한 나는 다시 입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죽음을 향한 나의 무기력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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