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죽은 것들의 도시
서울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도시가 아니라,
자기들이 살아 있다고 믿는 것들의 도시였다.
한시우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장례지도사가 손님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으니까.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종로의 골목은 아직 젖은 신문 냄새를 품고 있었고,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엔 밤을 버티다 남겨진 소주병 두 개가 뒤집혀 있었다. 납작해진 종이컵 옆에 담배꽁초가 눌어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어젯밤 거기서 울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웃었을 것이다. 대개 둘은 같이 온다. 사람들은 술집에서는 웃다가 집에 가는 골목에서 울고, 장례식장에서는 울다가 식당에 내려가 육개장을 먹으며 웃는다. 시우는 그게 인간이 가진 가장 기묘하고도 정직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슬픔조차 한 가지 표정으로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는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 거울을 한 번 봤다.
검은 정장, 검은 넥타이, 깔끔하게 넘긴 머리, 거의 예의처럼 붙어 있는 무표정. 누가 봐도 죽음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시우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무서워할 기회가 없었다.
열아홉 살 때 아버지가 먼저 죽었고, 스물여섯에 어머니가 뒤따랐다. 남들이 삶을 설계할 시기에 그는 장례 절차와 보험 서류와 사망진단서의 문장을 배웠다. 상주는 울다가도 인감도장을 챙겨야 한다는 것,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것은 유언보다 서류가 많다는 것, 그리고 죽음은 생각보다 훨씬 행정적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삶은 늘 뒤늦게 도착하는 손님 같았다.
“한 팀장님, 오늘 첫 빈소는 여섯 시 반 전에 정리 들어가셔야 해요.”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막내 직원 준범이 말했다.
준범은 스물다섯이었고, 아직 장례식장 냄새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사람처럼 항상 민트 사탕을 씹고 있었다.
“어르신?”
“네. 일흔넷. 자택에서.”
“유족 분위기?”
“아들이 둘인데, 벌써 좀... 그...”
“싸워?”
“네.”
“재산 때문?”
“팀장님, 진짜 귀신같아요.”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예측 가능해.”
준범은 그 말을 듣고 웃다가도 어쩐지 찝찝한 얼굴이 됐다.
시우는 익숙했다. 사람들은 늘 죽음에 대한 농담을 좋아하면서도, 너무 정확한 농담은 싫어했다. 웃음은 현실을 비껴가야 편하다.
빈소 3호실은 이미 싸움의 냄새로 가득했다.
소독약 냄새, 국화 냄새, 방금 끓인 커피 냄새 사이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전기 같은 것이 떠 있었다. 가족이 싸우기 직전의 공기였다.
고인의 큰아들은 넥타이를 삐뚤게 맨 채 통화를 하고 있었고, 작은아들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며 조문객 명단을 뒤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닮았는데, 서로를 보는 눈빛은 오래전부터 남이 된 사람들 같았다.
“안녕하세요. 장례 진행 맡은 한시우 팀장입니다.”
시우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큰아들이 급히 전화를 끊었다.
“아, 네. 그... 저희가 아직 상복이랑 순서 같은 걸 잘 몰라서.”
“괜찮습니다. 하나씩 안내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부드럽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상대가 매달릴 수는 있지만 기대지는 못하는 정도의 온도. 그는 그 온도를 직업적으로 잘 유지했다.
“먼저 고인분 마지막 정리부터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상복은 곧 준비 들어오고요. 조문은 오전부터 받으셔도 됩니다.”
작은아들이 갑자기 물었다.
“아버지 얼굴... 지금 봐도 되나요?”
그 질문에는 늘 약간의 공포가 묻어 있었다.
어제까지 말을 하던 얼굴이 오늘은 말이 없다는 사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얼굴이라는 사실.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가장 많이 흔들렸다.
“네. 다만 마음 준비는 조금 하시고 들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작은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대신 큰아들이 먼저 문 쪽으로 갔다. 그러다 돌아서서 물었다.
“팀장님은 이런 거 많이 보셨잖아요.”
“네.”
“죽으면... 진짜 끝입니까?”
준범 같으면 당황했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놀라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사람은 별의별 고백을 다 한다. 용서, 원망, 사랑, 후회, 그리고 늦은 질문들. 대부분은 살아 있을 때 했어야 할 말들이 죽은 사람 앞에서야 겨우 나온다.
시우는 잠시 그 남자를 바라봤다.
밤새 안 잔 눈, 입술 가장자리에 말라붙은 각질, 억지로 버티고 있는 사람 특유의 목선. 이 남자는 지금 철학을 묻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화해할 시간이 정말 끝났는지를 묻는 거였다.
“모르겠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답했다.
큰아들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 대개 위로를 원한다. 좋은 곳 가셨을 겁니다, 편안해지셨을 겁니다,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그런 문장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능이 있다. 넘어지려는 사람 겨드랑이를 잠깐 받쳐주는 기능. 하지만 시우는 함부로 믿음을 팔지 않았다.
“대신,” 그가 말을 이었다. “끝이라고 믿고 계시면 지금 하실 말은 지금 하시는 게 낫습니다. 나중은 없으니까요.”
큰아들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준범이 작게 속삭였다.
“팀장님, 가끔 너무 솔직하신 거 아니에요?”
“죽은 사람 앞에서까지 거짓말하면 피곤하잖아.”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사람은 진실로도 위로받아. 단지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준범은 아직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나이엔 모르는 게 정상이다. 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물다섯이면 아직 인생이 자기를 배신하리라고 본격적으로 믿지 않을 나이다.
오전이 지나고, 조문객이 몰려오고, 육개장 냄새가 복도를 타고 올라왔다. 어느 빈소에서는 통곡이 터졌고, 어느 빈소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주식 이야기로 웃고 있었다. 장례식장은 늘 이랬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검은 천막 아래, 인간의 사소하고 끈질긴 일상들이 우스꽝스럽게 살아 움직인다.
시우는 그 우스꽝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인간은 위대해서 사는 게 아니라,
이렇게 민망하고 부끄럽고 어설픈데도 계속 살아내기 때문에 애틋한 것이다.
점심 무렵, 그는 식당 한쪽에서 대충 밥을 뜨고 있을 때 전화를 받았다.
“한시우 씨 맞으시죠?”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단정하고, 조금 빠르고, 피곤하지만 무너지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
“네. 맞습니다.”
“저는 혜원대병원 완화의료병동 간호사 서나래라고 합니다.”
“네.”
“윤태식 교수님 아시죠?”
시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
윤태식.
대학 시절 교양 철학 수업에서 단 한 학기 만난 교수였다. 학생들 사이에선 괴짜로 통했다. 강의 첫날 칠판에 커다랗게 이렇게 적었던 사람.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보다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학생들은 웃었고, 누군가는 중도에 수강을 포기했고, 시우는 끝까지 들었다.
그때 그는 스물두 살이었다. 죽음을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나이였다. 윤태식은 그를 알아봤다. 수업 후 남아 질문을 하던 학생.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삶은 대기실입니까?”라고 물었던 학생.
“네. 기억합니다.”
“교수님이 한시우 씨 연락처를 남겨두셨어요.”
“왜요?”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지금요?”
“네. 가능하면 오늘.”
시우는 식판 위 육개장을 내려다봤다.
빨간 기름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가며 탁자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세상은 대체로 그런 식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조금씩 흔들린다.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까?”
“신체 상태보다…” 나래가 잠깐 말을 골랐다. “요즘 자꾸 이상한 말씀을 하세요.”
“이상한 말씀?”
“죽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죽은 사람이라고.”
시우는 웃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 그녀가 덧붙였다. “곧 깨어나는 거라고 하십니다.”
복도 어딘가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식당 아주머니는 국자를 부딪히며 다음 상차림을 준비하고 있었고, TV에선 날씨 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오후부터 초미세먼지가 나쁨이라고 했다. 죽음이 오가고, 사람들이 울고, 누군가는 깨어난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기상캐스터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봄바람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우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된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어떤 문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 결말이 자기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느낌.
“언제쯤 가면 됩니까?”
“면회는 저녁 여섯 시 전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준범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옛날 교수님 병문안.”
“많이 편찮으세요?”
“모르지.”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시우는 자신이 어떤 표정인지 몰랐다.
장례식장 거울에는 늘 검은 옷과 예의만 비쳤지, 자기 얼굴의 속뜻까지 나오는 법은 없었다.
“준범아.”
“네?”
“사람이 죽기 전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사랑한다?”
“아니.”
“미안하다?”
“그것도 아니고.”
“그럼요?”
“‘이게 다인가요’야.”
준범은 눈을 깜빡였다.
“진짜요?”
“말 그대로 하진 않아. 표정으로 하고, 숨으로 하고, 손끝으로 하지. 근데 뜻은 거의 비슷해. 이게 다인가요. 여기서 끝인가요. 내가 이렇게 살아낸 게 결국 여기까지인가요.”
준범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팀장님은요?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글쎄.”
시우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난 가끔 반대로 생각해.”
“뭘요?”
“이게 시작 전이면 어떡하지.”
준범은 기어이 웃어버렸다.
“아, 팀장님 진짜. 사람 무섭게.”
“무섭냐?”
“조금요.”
“다행이네. 아직 정상이라는 뜻이야.”
오후 내내 일은 끊기지 않았다.
상복 정리, 조문 동선 안내, 화장장 시간 확인, 분향 순서 설명, 서류 전달, 조용한 위로, 필요한 침묵. 사람들은 장례지도사를 단지 절차를 돕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급류에 잠깐 다리를 놓아주는 일에 가깝다. 너무 깊게 공감하면 같이 떠내려가고, 너무 무심하면 다리가 아니라 벽이 된다. 시우는 그 사이의 좁은 줄을 잘 걸었다.
하지만 이날은 이상하게 몇 번이고 마음이 흐트러졌다.
‘죽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죽은 사람이다.’
윤태식이라면 충분히 할 법한 말이었다.
문제는 시우가 그 말을 그냥 헛소리로 치워버릴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비슷한 느낌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이 가까워질 무렵, 장례식장 일을 정리한 그는 혜원대병원으로 향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번졌다. 아파트 창문마다 노란 사각형들이 켜져 있었다. 저 안에서 사람들은 라면을 먹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부부가 싸우고, 드라마를 보고,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누군가는 유서를 쓰고, 누군가는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는 거대한 전자회로처럼 반짝이고 있었지만, 시우는 그 빛이 생명이라기보다 신호처럼 느껴졌다.
어딘가로 보내고 있는, 혹은 어딘가에서 받아내고 있는.
병원은 늘 장례식장과 닮았다.
둘 다 하얗고, 둘 다 조용하고, 둘 다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곳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붙잡는 장소고, 다른 한쪽은 놓아주는 장소라는 점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종 그 둘을 같은 건물 안에서 오가며 배운다. 삶은 붙드는 법보다 놓는 법을 늦게 가르친다.
완화의료병동 복도에서 서나래를 처음 봤을 때, 시우는 그녀가 예상보다 훨씬 젊어서 놀랐다.
흰 간호사복 위에 옅은 회색 카디건을 걸쳤고, 머리는 낮게 묶여 있었다. 눈 밑엔 피곤이 엷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눈빛 자체는 묘하게 밝았다. 지친 사람이 아니라 많이 본 사람의 얼굴이었다. 많이 봐서 오히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한시우 씨?”
“네.”
“저 서나래입니다.”
그녀는 꾸밈없이 손을 내밀었다.
시우도 악수했다. 손이 따뜻했다.
“멀리서 오셨네요.”
“서울에서 서울까지 온 거라.”
“그래도 병원은 멀죠. 특히 오고 싶어서 오는 데가 아니라서.”
그 말이 조금 웃겨서 시우는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나래가 그걸 보고 말했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웃으실 줄은 아시는 분 같아서.”
“제가 그렇게 안 웃게 생겼습니까?”
“아니요. 아주 잘 참게 생기셨어요.”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 심장 가까운 데에 닿았다. 사람은 가끔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너무 정확한 진단을 받는다.
나래는 병실로 안내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오늘도 좀 특이한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원래도 특이하신 분이었습니다.”
“아, 원래 그러셨어요?”
“철학자들은 대체로 원래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안심해도 되는 건가요?”
“아뇨. 원래 이상한 사람은 병들면 더 정교하게 이상해지기도 합니다.”
나래가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이 짧고 맑았다. 병동 복도에 그런 웃음이 있다는 게 잠깐 낯설 정도였다.
“좋네요.”
“뭐가요?”
“장례식장 쪽에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라서요.”
“그건 오해입니다. 전 재미없는 편입니다.”
“재미없는 사람은 자기 입으로 그런 말 안 해요.”
병실 문 앞에서 그녀는 노크를 두 번 하고 문을 열었다.
윤태식은 창가 쪽 침대에 반쯤 기대 앉아 있었다.
몸은 눈에 띄게 말라 있었고, 얼굴은 누렇게 빛이 빠져 있었지만, 눈만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병든 몸 안에 너무 또렷한 정신이 남아 있으면 사람은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마치 육체가 이미 떠날 준비를 하는데 의식만 끝까지 남아 버티는 것처럼.
“교수님, 손님 오셨어요.”
윤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우를 보자마자 웃었다.
“왔구나.”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자네는 여전히 장례식장에서 일하나?”
“네.”
“잘됐어. 자네는 문지기 같은 얼굴이었거든.”
나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문지기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문 말이야.”
“교수님,” 나래가 익숙한 말투로 타일렀다. “처음 보는 분 놀라시겠어요.”
“이 친구는 안 놀라.”
윤태식은 단호하게 말했다. “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들이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죽은 것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병실 안 공기가 잠깐 멈춘 듯했다.
나래는 난처하게 웃었고,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태식이 손짓했다.
“가까이 와 봐.”
시우가 침대 옆 의자에 앉자, 노교수는 그를 한참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병든 노인의 흐릿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확인하는 사람의 긴장감이 있었다.
“한시우.”
“네.”
“자네는 아직도 그 질문을 갖고 있나?”
“어떤 질문 말입니까?”
“삶이 대기실이라면, 본방은 언제 시작되느냐는 질문.”
시우는 목이 마른 것을 느꼈다.
열두 해 전, 봄 학기 강의실 뒤편.
낡은 나무 의자, 분필 가루, 창문 밖 벚꽃, 수업 끝나고 남아 던졌던 질문. 그는 그 질문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잊은 게 아니라 그냥 안쪽 깊은 데 눌러둔 것이었나 보다. 묻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질문.
“기억하십니까?”
“중요한 질문은 잊히지 않아.”
윤태식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을 찾았다.”
나래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봤다. 아마 이쯤 되면 정말 헛소리가 시작되는 건지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우는 이상하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여기까지 오기 전부터 이미 듣기로 되어 있던 문장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뭡니까?”
“여기가 대기실이 아니야.”
교수는 숨을 골랐다.
호흡은 얕았지만 말은 또렷했다.
“여긴 회복실이다.”
시우는 말없이 교수의 얼굴을 봤다.
“죽은 다음에 오는 곳이지. 다만 다들 기억을 잃어서 출생이라고 부를 뿐이야.”
“……”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네. 도착하는 거야.”
“교수님.”
이번엔 나래가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너무 오래 말씀하시면 힘드세요.”
“힘든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네.”
윤태식은 다시 시우를 봤다.
“우주는 시험장이 아니라 치료실이야. 인간은 생명이 아니라, 한 번 소진된 의식이 다시 가능성을 부여받은 형태지. 그래서 다들 처음부터 결핍되어 있어. 배고프고, 외롭고, 두렵고, 사랑을 원하고, 설명되지 않는 죄책감에 시달려. 왜 그런 줄 아나?”
“왜입니까?”
“이미 한 번 끝난 존재들이기 때문이야.”
나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교수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서 간호사.”
“네.”
“자네는 사람을 너무 정성껏 살려.”
“그게 제 일입니다.”
“아니. 자네는 살리는 척하며 작별을 도와주고 있지. 그것도 꽤 훌륭하게.”
나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칭찬인지 저주인지 알기 어려웠다.
윤태식은 다시 시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와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
“뭡니까.”
“문이 열릴 테니까.”
“무슨 문 말씀입니까.”
“자네가 지금까지 매일 서 있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
시우는 본능적으로 웃어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웃기엔 노인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병이 사람을 헛것으로 끌고 간다면 대개 시선부터 흐려진다. 그런데 윤태식의 눈은 오히려 어딘가를 너무 분명히 보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것이 시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교수님,” 그가 낮게 말했다. “제가 뭘 해야 합니까?”
“보기만 하면 돼.”
“뭘요?”
“사람들이 왜 태어나면서 우는지.”
병실 창밖으로 저녁빛이 기울었다.
멀리 구급차 사이렌이 한 번 울리고 지나갔다. 삶과 죽음은 늘 서로를 부르며 도시를 왕복한다.
나래가 혈압계를 정리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요즘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셔서.”
“아닙니다.”
“가족분들은 종교도 아니고, 평소에 무신론자셨다고 하시던데 갑자기 이러시니까 더 당황하시고요.”
“사람은 죽을 때 원래 믿지 않던 것도 생각하게 되죠.”
“전 그게 꼭 믿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요?”
“끝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설명이 필요해서요.”
시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나래는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병동에 있으면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어떤 분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가세요. 어떤 분들은 끝까지 사랑받고, 어떤 분들은 아무도 안 와요. 그냥 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하고, 뜻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잖아요.”
“그래서 설명을 찾는 겁니까?”
“네. 근데 대개 설명은 위로보다 늦게 오더라고요.”
시우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잠시 후 면회 시간이 끝나고 그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서울의 밤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나래는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교수님이 원래 한시우 씨를 많이 아끼셨나 봐요.”
“한 학기 수업 들은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연락처를 남기셨네요.”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나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진짜로요? 조금도 짐작이 안 가세요?”
“뭘요?”
“왜 하필 한시우 씨였는지.”
시우는 대답 대신 웃었다.
“장례지도사라서요.”
“그것만은 아닐 텐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둘이 함께 탔다.
거울에 두 사람이 나란히 비쳤다. 검은 정장 남자와 흰 간호사복 여자. 누가 봐도 서로 다른 세계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한 장면 안에서 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한 사람은 보내는 일을 하고, 한 사람은 붙드는 일을 한다. 둘 다 결국 인간의 가장 약한 순간을 매일 본다.
1층에 도착하자 나래가 말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왜요?”
“오랜만에 누가 이상한 말을 너무 진지하게 해서.”
“그게 감사한 일인가요?”
“가끔은 그렇습니다. 다들 너무 멀쩡한 말만 하니까.”
나래가 웃었다.
“그럼 다음에도 오실 건가요?”
“교수님이 원하시면.”
“아마 원하실 거예요.”
“간호사님은요?”
“저요?”
“저를 또 보셔도 괜찮습니까?”
“그 질문, 장례식장 쪽 분치고는 꽤 수줍네요.”
시우는 드물게 당황했다.
나래는 그 표정을 보고 조금 더 크게 웃었다.
“괜찮아요. 저도 궁금하거든요.”
“뭐가요?”
“죽음 가까이 사는 사람은 왜 그렇게 덜 죽은 표정으로 버티는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이 없다는 건 때로 가장 정확한 인정이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차가웠다.
봄이 오기 전 서울은 늘 잠깐 얼어붙은 얼굴을 한다. 꽃은 아직 멀고, 바람은 다 끝난 계절처럼 불고, 사람들은 괜히 어깨를 움츠린다.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이미 싹이 준비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준비가 언제나 보이는 계절보다 먼저 시작된다.
시우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멈췄다.
응급실 쪽 출입문 앞에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앉아 있었다.
노란 오리 그림이 있는 병원복 바지를 입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불어 만든 풍선을 들고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였는데, 표정이 이상하게 차분했다. 지나가는 보호자들이 한 번씩 쳐다봤지만 아이는 누구도 찾지 않았다.
시우가 무심코 다가가 물었다.
“혼자 있니?”
아이는 그를 올려다봤다.
눈동자가 맑고, 너무 맑아서 오히려 오래된 우물 같았다.
“아저씨, 장례식장에서 왔죠?”
“어떻게 알았니?”
“냄새가 그래요.”
“무슨 냄새?”
“끝난 사람들 냄새.”
시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이는 비닐장갑 풍선을 한 번 흔들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요?”
“뭘.”
“끝난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못 알아봐요.”
“……”
“자기가 아직 안 끝났다고 믿어서.”
그때 멀리서 간호사 한 명이 달려왔다.
“민하야! 여기 있으면 안 된다니까.”
아이는 시우를 보며 아주 작게 웃었다.
아이의 웃음은 장난 같기도 하고, 비밀을 아는 사람 같기도 했다.
“곧 보게 될 거예요.”
아이가 말했다.
“뭘?”
“사람들이 왜 태어나면서 우는지.”
간호사가 아이의 손을 잡아 데려갔다.
민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이미 할 말을 다 한 사람처럼.
시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밤하늘엔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하늘은 늘 너무 밝아서, 정작 있어야 할 것들을 지워버린다. 사람의 머릿속도 비슷하다. 너무 많은 생각과 소음과 생계와 두려움으로 환해져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오히려 안 보인다.
차에 올라탄 그는 시동을 걸지 않고 앉아 있었다.
윤태식의 말, 서나래의 웃음, 민하의 눈빛이 차례로 떠올랐다.
여긴 대기실이 아니야. 회복실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도착하는 거야.
끝난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못 알아봐요.
그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허무를 견디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세련된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종교와 시뮬레이션과 윤회와 임사체험이 뒤섞인, 검증할 수 없는 언어의 미로. 그렇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정리해야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말들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처럼 들렸다.
설명.
그가 평생 기다린 적은 없지만, 어쩌면 늘 원하고 있었던 것.
왜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우는가.
왜 사랑은 늘 늦게 자라나는가.
왜 삶은 축복이라기보다 형벌처럼 시작되는가.
왜 누구나 어렴풋이 이 세계가 낯설다고 느끼는 순간을 갖는가.
왜 가장 행복한 날에도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품는가.
왜 인간은 자기 몸을 입고 살면서도 어딘가 빌린 곳에 와 있는 사람처럼 구는가.
차 앞유리 너머로 병원 건물 불빛이 흔들렸다.
그 순간 시우는 알 수 없는 확신에 가까운 감각을 느꼈다.
자신의 인생이 오늘을 기점으로 아주 느리지만 완전히 다른 문장으로 접어들 것 같은 감각. 마치 책장을 넘겼는데, 전혀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때처럼.
그는 마침내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낮게 울렸다.
살아 있는 기계의 소리 같기도 하고, 죽은 금속이 명령에 따라 잠깐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서울의 밤도로로 차를 몰아 나가며, 한시우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혹시 우리는 정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고 믿는 어떤 잔여물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리고 이 고단하고 아름답고 우스운 삶이
시작이 아니라
이미 끝난 존재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유예라면.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형벌일까.
구원일까.
아니면 깨어나기 전, 우리가 잠시 기억해내는 본래의 감각일까.
서울의 신호등이 붉게 바뀌었다.
차들이 일제히 멈췄다.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고, 다들 정해진 불빛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간다. 시우는 그 질서가 갑자기 우스워졌다.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면서도 대부분 신호에 따라 움직인다. 사회의 신호, 가족의 신호, 욕망의 신호, 공포의 신호. 그렇게 평생 멈추고 가기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관 속에 눕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묻는다.
이게 다인가요.
시우는 붉은 불빛 아래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면… 이제부터인가.”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아직 모르는 사이,
어떤 문도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2장. 태어나는 아이들은 왜 우는가
며칠 동안 한시우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살았다.
정확히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으려 애썼다.
아침이면 검은 정장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빈소를 정리하고, 상주를 맞고, 조문객의 동선을 점검하고, 화장장 예약 시간을 확인했다. 누군가는 통곡했고, 누군가는 침착했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침착해서 오히려 무너져 보였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적정한 말과 적정한 침묵을 골라 건넸다.
그런데 그 며칠 동안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사람들의 얼굴이 전보다 더 낯설게 보였다.
낯설다는 것은 못 알아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 비슷해 보이는 것이었다. 슬픔의 종류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고, 나이도 성격도 다르지만, 죽은 사람 앞에 선 얼굴들에는 공통된 그림자가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피로. 오래 걷다 겨우 의자에 앉은 사람 같은 표정. 아직 할 말은 남았는데 이미 많은 것이 끝나버린 사람들의 표정.
시우는 전보다 자주 그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끝난 존재들이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문장은 이상하게 인간의 표정을 잘 설명했다.
사흘 뒤, 그는 다시 혜원대병원에 갔다.
윤태식의 병문안을 간다는 핑계는 충분했다.
하지만 시우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가 병원에 가는 이유는 교수 때문만이 아니었다. 서나래의 말투가 궁금했고, 민하라는 아이의 눈빛이 걸렸고, 무엇보다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사람은 불편한 진실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틀린 것 같아서 불편한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맞는 것 같아서 불편한 진실이다.
윤태식의 말은 후자에 가까웠다.
병원 로비는 오후 햇빛으로 희게 번져 있었다. 1층 카페 앞에는 보호자들이 종이컵 커피를 들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면회 시간에 맞춰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조용히 줄을 섰다. 누군가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를 들고 오지만, 대체로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일보다 통증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고, 꽃보다 용서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져오는 쪽을 더 잘한다.
완화의료병동 앞에서 서나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약봉지를 정리하다 말고 시우를 올려다봤다.
“오셨네요.”
“네.”
“생각보다 빨리 오셨어요.”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까?”
“아니요. 제가 반가우면 너무 티 나나 싶어서요.”
시우는 아주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나래는 그런 반응이 익숙한 사람처럼 태연하게 웃었다.
“농담이에요. 반가운 건 맞고.”
“간호사님은 자주 사람을 곤란하게 하십니까?”
“아뇨. 괜찮은 사람한테만요.”
“그 기준은 뭡니까?”
“죽음을 가까이서 보는데도 오만해지지 않은 사람.”
그녀는 약봉지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덧붙였다.
“그런 사람 드물어요.”
“저는 안 오만한 줄 어떻게 압니까?”
“장례식장 일하는 분들 중에 가끔 있거든요. 자기가 인간 본성을 다 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틀렸습니까?”
“틀렸죠. 인간 본성은 한 사람 죽는다고 다 안 보이니까.”
시우는 낮게 웃었다.
“간호사님도 만만치 않네요.”
“전 원래 좀 까다로워요.”
“좋은 의미로요?”
“아뇨. 그냥 까다롭습니다.”
둘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유리창 밖으로 봄비가 아주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봄비라기보다는 계절이 목을 가다듬는 정도의 비였다. 회색 하늘 아래 병원 화단의 나무들이 어딘가 마른 손처럼 서 있었다.
“교수님은 어떠세요?” 시우가 물었다.
“오늘은 정신이 더 맑으세요.”
“좋은 거 아닙니까?”
“꼭 그렇진 않아요.”
“왜요?”
“몸이 약해질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는 분들이 있어요. 이상하게 마지막에 가까울수록요.”
“마지막 정리라도 하듯이?”
“그럴 수도 있고요.”
나래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면… 몸이 정신을 붙잡는 힘이 약해져서일 수도 있죠.”
그 말은 별뜻 없이 한 것 같았지만 시우는 걸음을 약간 늦췄다.
“몸이 정신을 붙잡는다.”
“네. 반대로 말하면 정신이 몸에 묶여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시우가 그녀를 보자 나래는 어깨를 으쓱했다.
“죄송해요. 병동에 있으면 저도 별생각을 다 하게 돼서.”
“아닙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좀 했습니다.”
“교수님 때문이죠?”
“그럴 겁니다.”
“그럴 ‘겁니다’?”
“확신은 없어서요.”
“확신 없는데 두 번째로 오셨어요?”
“사람은 확신보다 불길함 때문에 더 자주 움직입니다.”
나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사랑도 그렇고.”
“사랑이 불길합니까?”
“아뇨. 사랑은 대체로 확신인 척하는 불길함이죠.”
시우는 웃었다.
“간호사님, 연애를 오래 하셨습니까?”
“아뇨.”
“그럼 왜 이렇게 잘 압니까?”
“환자들 보호자들 많이 보잖아요. 임종 앞에 서면 누가 사랑했고, 누가 소유했고, 누가 미뤘는지 다 보여요.”
“임종이 사랑의 진위를 가립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근데 마지막 순간에 사람은 가장 자주 찾은 이름을 부르더라고요.”
“누구 이름을요?”
“자기가 진짜 기다렸던 사람 이름.”
그 말이 지나가고, 복도에 잠깐 조용함이 내려앉았다.
시우는 문득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는지 생각했다.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혹은 아직 없었다.
윤태식의 병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래가 노크하려는 순간, 안에서 윤태식의 음성이 먼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자네는 아직도 출생을 축하라고 생각하나?”
잠시 뒤, 남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보통은 그렇죠.”
“보통이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네.”
“교수님, 지금 그 얘기를 또 하시면…”
“또가 아니라 아직이야.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출생은 당연하게 여겨. 이상하지 않나? 진짜 낯선 건 출생 쪽인데.”
나래가 시우를 한번 보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병실 안에는 윤태식 말고도 한 남자가 더 있었다. 사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잘 다린 셔츠에 값비싸 보이는 코트를 입고 있었고, 표정엔 피곤과 신경질이 엷게 겹쳐 있었다. 얼굴은 교수와 닮았다. 아들인 게 분명했다.
“아버지, 손님 오셨어요.” 나래가 말했다.
남자는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제 아들 윤정훈이네.” 윤태식이 마른 손을 들었다. “성공은 했는데 아직 철학은 실패 중이지.”
“아버지.”
“왜. 사실인데.”
정훈은 민망한 표정으로 시우에게 말했다.
“요즘 아버지가 좀… 예전보다 말씀이 심하세요.”
“원래 심하셨습니다.”
“아, 아시는 분이군요.”
“예전에 수업 들었습니다.”
정훈은 그제야 약간 안도한 얼굴이 됐다.
가족들은 대개 자기 부모가 이상한 말을 할 때,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제삼자가 나타나면 이상하게 고마워한다. 진짜 이해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혼자 감당하는 느낌이 덜하니까.
“저는 이제 회사에 좀 들어가봐야 해서.” 정훈이 시계를 보며 일어났다. “아버지, 너무 무리해서 말하지 마시고요.”
“무리해서 산 게 네 쪽이지, 내 쪽이 아니야.”
“아버지.”
“돈은 얼마나 더 벌어야 충분하냐?”
“그 얘기 지금 하자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은 늘 그 얘기를 지금 말했어야 한다네. 특히 나중이 짧을 때는.”
정훈은 한숨을 삼키고 시우와 나래에게 짧게 목례한 뒤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윤태식이 코웃음을 쳤다.
“저놈은 아직도 자기가 삶의 가운데 있다고 믿고 있어.”
“아버님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 나래가 말했다.
“걱정하지. 하지만 걱정과 이해는 전혀 다른 일일세.”
“자식이 부모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원래 어렵잖아요.”
“부모도 자식을 잘 모른다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거의 끝까지 오해하지.”
윤태식은 시우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사랑이 가치 있는 거야. 제대로 모르면서도 끝끝내 옆에 있거든.”
시우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좀 괜찮으십니까?”
“몸은 엉망이지.”
“정신은요?”
“선명해. 이상할 정도로.”
교수는 창문 쪽을 한번 보고 낮게 말했다.
“가끔은 너무 선명해서 곤란할 정도야. 잊고 있어야 살 수 있는 것들이 보이거든.”
“예를 들면요?”
“인간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그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아는 척만 하지.”
윤태식은 손가락으로 침대 난간을 천천히 두드렸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인간관계의 결핍으로 설명하지만, 진짜 외로움은 그보다 깊네. 왜인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본래 있던 곳을 잊어버린 채 낯선 곳에서 깨어났기 때문이야.”
나래가 침상 기록을 정리하며 말했다.
“교수님, 손님 오셨다고 또 너무 멀리 가신다.”
“멀리 가는 게 아니라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지.”
“그 표현은 좀 무서워요.”
“죽음을 무서워하는 건 이해하네.”
“전 죽음을 무서워한다기보다,” 나래가 웃었다. “죽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바빠요.”
“그게 자네 장점일세.”
“뭐가요?”
“살아 있는 척을 제일 성실하게 한다는 거.”
나래가 피식 웃었다.
“그건 칭찬 아닌 것 같은데요.”
“인간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나. 다들 대충 연기하다 끝나는데.”
시우는 그 말을 들으며 교수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말은 여전히 기괴했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슬픔이 섞여 있었다. 단순한 괴담이나 신비주의자의 취향이 아니라, 오래 생각한 끝에 남은 결론 같은 슬픔.
“교수님,” 시우가 물었다. “정말 그렇게 믿으십니까? 우리가 이미 끝난 존재들이고, 여기 삶은 그 이후의 장소라고.”
“믿는다기보다 보인다.”
“뭘 보셨다는 겁니까.”
“일관성.”
“어떤 일관성입니까?”
윤태식은 마치 오래 기다린 질문이라는 듯 천천히 답했다.
“첫째, 인간은 태어나면서 운다. 산다는 가능성을 부여받았는데 왜 울지? 빛과 공기와 시작이 있는데 왜 공포부터 반응하지?”
“단순한 생리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이지. 하지만 생리 반응은 설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왜 시작의 순간에 공포가 배치되었는지를 묻는 게 철학이지.”
그는 손을 들어 공중에 작은 원을 그렸다.
“둘째, 인간은 누구나 설명할 수 없는 결핍을 갖고 태어나. 돈이 없어도 결핍, 돈이 많아도 결핍, 사랑받아도 결핍, 혼자여도 결핍. 이 결핍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야. 기억이 지워진 상실에 가깝지.”
“모든 존재가 미완성이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바로 그 점일세. 왜 미완성인가? 왜 처음부터 충만하게 태어나지 못하는가?”
시우는 잠자코 들었다.
나래도 기록지를 들고 있으면서 손을 멈춘 채 듣고 있었다.
“셋째,” 윤태식이 말했다. “인간은 유독 죄책감을 품는 존재야.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날에도 미안하고, 사랑받을 때도 불안하고, 누군가 먼저 떠나면 어째서인지 자기가 남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왜인가? 단지 사회화 때문인가? 아니네. 인간은 존재 자체에 이미 후유증을 안고 있어.”
“후유증.”
“그래. 마치 큰 사건 이후의 사람들처럼.”
“그리고 그 사건이 죽음이었다?”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소진.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인간이 처음부터 생명으로 가득 찬 존재가 아니라, 한 번 무너진 뒤 다시 기회를 받은 존재처럼 보인다는 점이지.”
나래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위로가 되는 사람도 있겠네요.”
“어떤 점에서?”
“지금 이렇게 힘든 게 내가 잘못 태어나서가 아니라… 모두가 어떤 상처를 안고 시작한 거라면.”
“맞아.” 윤태식이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끔찍한 말이기도 하지. 우리는 축복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회복으로 시작한 셈이니까.”
“전 그게 꼭 끔찍하진 않은데요.”
“왜?”
“회복이란 말엔 아직 가능성이 있잖아요.”
병실 안이 조용해졌다.
윤태식이 천천히 나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아주 작게, 그러나 진심으로 웃었다.
“서 간호사, 자네는 이상하게 절망을 잘못 다뤄.”
“칭찬이죠?”
“훌륭한 칭찬일세.”
시우는 그 순간 처음으로 알았다. 나래는 단순히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두운 것을 너무 오래 본 나머지, 밝음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웃음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무겁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힘이 있어서 가볍게 보일 뿐이다.
그날 병실에서 나온 뒤, 나래는 잠깐 쉬는 시간이 있다며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시우도 따라갔다. 병원 카페의 커피는 대개 이상하게 썼다. 원두 탓인지,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마시는 사람들 마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은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창밖의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고, 유리창에는 빗물 자국이 가늘게 남아 있었다.
“교수님 말, 어떻게 들으셨어요?” 나래가 먼저 물었다.
“이상하고도 정교합니다.”
“믿기세요?”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근데 얼굴은 조금 믿는 사람 같은데.”
“간호사님은 사람 얼굴을 너무 쉽게 읽습니다.”
“직업병이에요.”
“그럼 제 얼굴은 뭐라고 씌어 있습니까?”
“겁난다.”
“그렇게 적나라합니까?”
“네. 그리고 조금… 기대된다.”
시우는 종이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더 커요?”
“뭐가요?”
“겁이요, 기대요.”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겁이 기대보다 클 텐데.”
“대개 그렇죠.”
“근데 한시우 씨는 좀 달라 보여요.”
“왜 그렇게 봅니까?”
“원래 설명을 기다리던 사람 같아서요.”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시우는 한동안 침묵했다.
카페 한쪽에서는 보호자 둘이 입원 절차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멀리서 아이 울음소리가 잠깐 들렸다가 멎었다. 병원은 늘 생의 양끝이 겹쳐 있다. 어떤 층에서는 첫 울음이 나고, 어떤 층에서는 마지막 숨이 끊어진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엘리베이터 하나로 오르내린다.
“간호사님은요.” 시우가 되물었다. “교수님 말 믿습니까?”
“반쯤요.”
“반쯤?”
“사실 여부는 모르겠어요. 근데 정서적으로는 맞는 말 같아요.”
“정서적으로 맞다.”
“네. 사람들은 너무 익숙하게 사니까 잘 못 느끼는데, 가끔 정말 이상하잖아요. 우리가 몸을 입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몸을 입고 있다.”
“네. 제 몸인데도 완전히 제 것은 아닌 느낌. 아프면 뜻대로 안 되고, 늙고, 언젠가 고장 나고. 너무 가까워서 잊고 사는데, 사실 굉장히 낯선 구조죠.”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병동에 있으면 더 그래요. 사람 몸은 너무 성실하게 망가져요. 거짓말을 안 해요.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붙잡아도, 자기가 끝나는 방향으로 정확히 가요.”
“잔인하군요.”
“네. 근데 또 이상하게 아름다울 때도 있어요.”
“어떤 때요?”
“누군가 끝나가는데도 다른 누군가를 걱정할 때.”
“그런 사람이 많습니까?”
“생각보다요. 죽어가는 사람들한테서 제일 자주 듣는 말이 뭔지 아세요?”
“‘이게 다인가요’ 아닙니까.”
나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비슷하네요.”
“비슷합니까?”
“네. 근데 표현은 좀 달라요.”
“뭡니까?”
“‘저 사람은 괜찮을까요.’”
시우는 눈을 내리깔았다.
“죽는 사람들은 자주 묻거든요. 남편 혼자 밥은 해 먹을지, 딸이 울진 않을지, 오래 원망하던 형을 이제는 용서해도 되는지. 자기보다 남은 사람을 더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사랑이군요.”
“네.”
“그럼 사랑은 뭡니까?”
“왜 저한테 물으세요?”
“간호사님이 더 잘 아는 것 같아서.”
나래는 잠시 창밖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사랑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다가도, 내가 나 하나로는 안 된다는 증거 같아요.”
“모순 아닙니까?”
“인간이 원래 좀 모순이죠.”
“더 설명해보시죠.”
“혼자서는 그냥 견디는 정도인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갑자기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잖아요. 근데 동시에 약점도 생겨요. 잃을 게 생기니까.”
“그러니까 사랑은 구원과 협박을 동시에 한다.”
“맞아요.” 나래가 웃었다. “장례식장 팀장님치고는 문장 잘 만드시네요.”
“간호사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 원래 말 많아요. 일할 때만 참지.”
둘은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이 지나간 뒤, 시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민하라는 아이가 있죠.”
나래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봤어요?”
“지난번에 1층에서 잠깐.”
“무슨 말 하던가요?”
“끝난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못 알아본다고 하던데요.”
“역시.”
“역시라니요.”
“민하가 좀 그래요.”
“어떤 아이입니까?”
“열두 살. 골육종.”
“……”
“처음엔 한쪽 다리만 아프다고 왔는데, 이미 꽤 진행됐었어요.”
시우는 종이컵을 내려놨다.
나래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품고 있었다.
“근데 아이가 이상하게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물론 아프면 울고 짜증도 내고, 먹기 싫다고 떼도 쓰고, 게임 지면 분해하고 그래요. 그냥 애예요. 그런데 어떤 순간엔 너무 이상할 만큼 차분해져요.”
“무슨 말을 합니까?”
“가끔은 자기가 여기 처음 오는 게 아니라고 해요.”
“병원에?”
“아니요. 세상에.”
시우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 오는 게 아니라고요?”
“네. 그리고 여긴 다들 너무 바빠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잊고 산다고요.”
“누가 가르친 겁니까?”
“아무도요.”
“부모는요?”
“엄마는 평범한 분이에요. 종교도 없고요. 오히려 그런 말 하면 너무 속상해하세요. 애가 왜 그런 소릴 하냐고.”
나래는 손으로 컵을 감싸쥐었다.
“민하가 특히 이상한 건, 아픈 사람들 표정을 보고 자주 맞혀요.”
“뭘요?”
“이 사람이 아직 포기 안 했는지, 아니면 사실은 이미 작별하고 있는지.”
“그게 가능합니까.”
“말도 안 되죠.”
나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몇 번 너무 정확해서 소름 돋았어요.”
“예를 들면요?”
“보호자가 ‘엄마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민하가 저한테 와서 그랬어요. ‘저 아줌마는 마음속으로 이미 엄마를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웃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어요.”
“그건 우연일 수도 있죠.”
“그렇죠. 그래서 저도 우연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하려고?”
“네. 근데 민하는 우연이 좀 많아요.”
시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람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을 생각보다 많이 안고 산다. 다만 대부분은 일상에 묻어버린다. 너무 진지하게 붙잡고 있으면 삶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실보다 생활을 우선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신비를 만나도 장을 보고, 사랑에 빠져도 출근하고, 죽음을 앞두고도 택배를 받는다.
“민하를 만나볼 수 있습니까?” 시우가 물었다.
나래는 시우를 가만히 봤다.
“왜요?”
“궁금해서요.”
“아이한테요, 아니면 아이가 말하는 세계에 대해서요?”
“둘 다.”
“그건 좀 위험한데요.”
“뭐가요?”
“궁금한 건 늘 사람을 깊이 데려가거든요.”
“간호사님은 말리실 겁니까?”
“아뇨.”
나래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
“저도 궁금하니까.”
민하는 7층 소아병동 쪽 작은 놀이방에 있었다.
놀이방이라고 해도 병원 놀이방은 대개 애매했다. 알록달록 벽지가 붙어 있고, 작은 책상과 블록, 그림책이 놓여 있지만, 창밖 풍경이 병원 옥상일 때는 그곳이 완전한 놀이의 장소가 되기 어렵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런 곳에서도 금세 웃을 구실을 찾아낸다. 인간의 회복력은 때로 잔인할 만큼 대단하다.
민하는 바닥에 앉아 블록으로 무언가를 쌓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집 같기도 하고 문 같기도 한 구조였다. 네모난 벽 두 개 사이에 좁은 통로가 있었다.
“민하야.” 나래가 불렀다.
“응.”
“저번에 봤던 아저씨 기억나?”
“응. 끝난 사람 냄새 나는 아저씨.”
시우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렇게 기억하니?”
“응. 근데 조금 달라졌어.”
“뭐가?”
“냄새가.”
민하는 블록 하나를 더 얹으며 말했다.
“처음엔 진짜 딱 멈춰 있는 냄새였는데, 지금은 약간 금 간 냄새야.”
“금 간 냄새?”
“응. 껍질이 깨질 때 나는 느낌.”
시우는 나래를 봤다.
나래는 마치 ‘내가 뭐랬어요’ 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민하야,” 시우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건 어디서 배웠어?”
“뭘?”
“사람 냄새로 그런 걸 아는 거.”
“몰라. 그냥 알아.”
“원래부터?”
“응. 어릴 때부터.”
민하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 눈에는 아이 특유의 산만함이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집중된 시선이었다.
“아저씨는 왜 여기 왔어?”
“사람들이 왜 태어나면서 우는지 알고 싶어서.”
“아.”
민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슬픈 질문이네.”
“왜 슬프지?”
“다들 그걸 잊고 사는 게 편하니까.”
“넌 안 잊었니?”
“조금은 잊었어. 근데 아직 남아 있어.”
“뭐가?”
“오기 전 느낌.”
시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느낌인데?”
민하는 손에 쥔 파란 블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어린애답지 않은 방식으로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되게 멀고, 되게 가까운 느낌.”
“그게 무슨 뜻이니?”
“이상하지? 나도 설명 잘 못해.”
민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근데 꿈에서는 알아.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있었는지.”
“어디였어?”
“하얗고 조용한 데.”
“병원 같은 데?”
“아니. 병원은 안 조용해. 여긴 다 아프잖아.”
“그럼?”
“되게 조용한데,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고… 기다리는 느낌도 아닌데…”
민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음, 고치는 느낌?”
시우와 나래는 동시에 서로를 봤다.
“고치는?”
“응. 다친 데를 고치는 거. 근데 몸 말고.”
민하는 자기 가슴을 툭 쳤다.
“여기랑 여기랑 여기.”
이번에는 이마와 배를 차례로 가리켰다.
시우는 등 뒤로 차가운 기운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누가 고쳐줘?”
“잘 모르겠어. 사람 같지는 않았어.”
“그럼 뭐였어?”
“빛 같기도 하고… 목소리 같기도 하고…”
민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아주 태연하게 덧붙였다.
“근데 다 낫지는 않은 채로 여기 오는 것 같아.”
“왜?”
“모르지. 아직 해볼 게 남아서 그런가.”
놀이방 한쪽에서 다른 아이가 장난감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간호조무사가 가서 주워주자 아이는 금세 웃었다. 웃음은 병원에서도 난다. 오히려 병원이라서 더 간절하게 난다.
시우는 다시 물었다.
“민하야, 태어날 때 왜 우는 것 같아?”
“무서워서.”
“처음이라서?”
“아니.”
민하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나서.”
그 말은 작은 블록보다 가벼운 목소리로 나왔지만, 시우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뭐가 기억나?”
“아주 잠깐, 오기 전이.”
“그런데 왜 다 잊어?”
“여기 너무 시끄러워서.”
“시끄럽다?”
“응. 빛도 많고, 소리도 많고, 배고프고, 춥고, 아프고, 만져지고, 울고…”
민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너무 많잖아. 그러니까 잊어버리지.”
“그건 네 생각이야?”
“응. 근데 거의 맞을걸.”
시우는 뜻밖에도 웃음이 났다.
“거의 맞을걸?”
“응. 나 틀릴 때도 있어.”
민하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어른들은 맨날 맞는 척해서 좀 웃겨.”
나래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민하야, 그건 나도 반박 못 하겠다.”
민하는 블록으로 만든 구조물을 가리켰다.
“이거 뭔지 알아?”
“집?”
“아니.”
“그럼?”
“문.”
“어디로 가는 문?”
“여기로 오는 문.”
시우는 조용히 물었다.
“그리고 나가는 문도 있니?”
“있지.”
“어디에?”
“사람들 안에.”
시우는 미간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뜻이니?”
민하는 그 질문이 쉬운 것이라는 듯 대답했다.
“사람은 밖으로 죽는 게 아니라 안으로 열리면서 가는 거야.”
나래가 숨을 들이켰다.
시우도 아무 말 못 했다.
민하는 다시 블록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너무 아픈 사람들은 가끔 멀리 보는 눈을 해.”
“멀리 보는 눈?”
“응. 여기 아닌 데를 조금 보는 눈.”
“누가?”
“죽을 사람들.”
“넌 그걸 알아봐?”
“가끔.”
“무섭지 않니?”
“왜?”
민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다시 오는 건데.”
“다시 와?”
“응.”
“여기로?”
“꼭 여기 말고.”
“그럼 어디로?”
“모르지. 근데 다시 해.”
시우는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더 묻는 것이 아이에게서 진실을 캐내는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갈증을 채우려는 일인지 잠깐 헷갈렸다. 어른들은 질문을 고상하게 포장하지만, 상당수는 사실 자기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나래가 눈짓했다.
이쯤에서 멈추자는 뜻이었다.
“민하야,”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약 먹을 시간 다 됐어.”
“나 약 싫어.”
“알아. 그래도 먹어야지.”
“나래 쌤은 맨날 먹으라 그래.”
“그게 내 직업이거든.”
“직업 바꾸면 안 돼?”
“뭘로?”
“웃기는 사람.”
“나 이미 꽤 웃긴데?”
“아니. 직업적으로.”
세 사람 모두 웃었다.
민하는 웃다가도 갑자기 시우를 다시 바라봤다.
“아저씨.”
“응.”
“아저씨는 이제 곧 누가 많이 좋아질 거야.”
시우는 멈칫했다.
“누가?”
“몰라. 근데 그 사람이 아저씨를 깨울 거야.”
나래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하야, 남의 연애 운세 보면 안 돼.”
“연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민하가 입을 삐죽였다.
“사람들은 맨날 사랑을 너무 작게 생각해.”
그 말은 우스워야 했는데, 이상하게 조금 아팠다.
놀이방에서 나와 복도로 걸어가며 나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아시겠죠.”
“뭘 말입니까.”
“왜 제가 ‘역시’라고 했는지.”
“네.”
시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는… 이상하군요.”
“그렇죠?”
“그런데 거짓말하는 아이 같진 않습니다.”
“맞아요. 상상력이 풍부한 것과는 또 달라요.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요. 자기가 본 날씨 얘기하듯이.”
“부모는 알고 있습니까?”
“대충은요. 근데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세요. 당연하죠.”
그들은 창가 앞에 잠깐 멈춰 섰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유리창 너머 하늘은 조금 맑아지고 있었다. 흐린 날 뒤에 잠깐 밝아지는 오후의 색은 늘 묘했다.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잠깐 유예된 표정 같았다.
“민하가 곧 누군가 많이 좋아질 거라고 하던데요.” 나래가 말했다.
“간호사님, 환자 말 너무 신뢰하시면 곤란합니다.”
“아, 저는 꽤 신뢰하는 편인데.”
“그래도 그건 좀…”
“왜요.”
나래는 장난기 섞인 눈으로 그를 봤다.
“벌써 떠오르는 사람 있으세요?”
“없습니다.”
“너무 빨리 대답하시는데.”
“사실이니까요.”
“사람은 원래 사실 말할 때 그렇게 급하게 대답 안 해요.”
시우는 반박하려다 말았다.
나래는 이상하게 그를 자주 말문 막히게 했다. 그런데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잠겨 있던 방 안에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에 가까웠다.
“간호사님.”
“네.”
“사람을 자주 잃으면, 사랑이 두려워집니까?”
나래는 예상 못 한 질문을 받은 듯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답했다.
“네.”
“그렇군요.”
“근데 더 두려운 건요.”
“뭡니까.”
“사랑하지 않은 채 익숙하게 사는 거예요.”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래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엔 오래된 실감이 있었다. 남의 통증을 오래 본 사람은 가끔 자기 삶의 핵심을 의외로 짧게 말한다. 군더더기가 없어서 더 오래 남는다.
“저는요,” 그녀가 말했다. “병동에서 제일 무서운 게 죽음 자체는 아니에요.”
“그럼요?”
“살아 있었는데 못 산 사람들.”
시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죠?”
“숨은 쉬고, 밥은 먹고, 일도 하고, 웃기도 했는데… 정작 자기 마음의 진짜 질문은 한 번도 안 만나본 사람들요.”
“그런 사람이 많습니까?”
“아주 많죠.”
나래는 싱겁게 웃었다.
“대부분은 그렇게 살잖아요. 너무 바빠서.”
시우는 문득, 자신도 거기 포함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무너지지 않았고, 직업적으로 유능했다. 하지만 살아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엔 자신이 없었다. 죽음 가까이 살면서도 정작 삶은 미뤄둔 사람. 누군가의 마지막을 정리해주며 자기 시작은 계속 유예해온 사람.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누군가 다급히 불렀다.
“서 간호사!”
나래가 돌아섰다.
젊은 간호사가 숨을 고르며 달려왔다.
“7-12호 보호자분이 또 난리세요. 의사 선생님 찾으시고…”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나래는 시우를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잠깐만요.”
“아닙니다. 일 보세요.”
“혹시 그냥 가실 거예요?”
“그건…”
“한 삼십 분 정도면 끝날 텐데.”
“기다리라는 겁니까?”
“네.”
“명령입니까?”
“부탁인데, 꽤 강한 부탁.”
시우는 웃었다.
“알겠습니다.”
“카페에 계셔도 되고, 옥상 정원 가셔도 돼요. 오늘 비 와서 사람 별로 없을 거예요.”
“네.”
“진짜 가시면 안 됩니다.”
“왜요?”
“저도 궁금한 게 남아서요.”
“뭘요?”
“한시우 씨가 얼마나 오래 자기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있는지.”
그 말을 남기고 나래는 빠르게 걸어갔다.
흰 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은 이상하게 단단해 보였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본래 체력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많이 쓴다. 그 근육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래 보면 보인다.
시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병원 옥상 정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나무 데크와 긴 벤치 몇 개, 계절 따라 바뀌는 작은 화단, 그리고 도시를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낮은 난간. 비가 막 그친 뒤라 바닥은 조금 젖어 있었고, 흙냄새가 올라왔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비 뒤의 흙냄새는 어쩔 수 없이 정직했다. 문명은 콘크리트를 올려도, 냄새까지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시우는 벤치에 앉았다.
멀리 도로 위로 차들이 천천히 흘렀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지금도 바쁘게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것이다. 회의, 학원, 마감, 술자리, 데이트, 배달, 야근, 장례식. 각자의 급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급함들이 모여 서울을 움직인다. 그런데 그 모든 급함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너무 늦기 전에는.
그는 민하의 말을 떠올렸다.
태어날 때 우는 건 기억나서.
여긴 다들 너무 바빠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잊고 살아.
사람은 밖으로 죽는 게 아니라 안으로 열리면서 가는 거야.
정상적인 이성이 보기엔 모두 이상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이상한 문장만이 가끔 삶을 설명한다고 느꼈다. 정상적인 문장들은 대체로 사회를 굴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인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진 못한다. “열심히 살아라”, “시간이 약이다”, “다 잘될 거다” 같은 말들은 생활에는 도움이 돼도 존재에는 닿지 않는다.
존재는 늘 더 불편한 언어를 요구한다.
그때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윤정훈이 서 있었다.
윤태식의 아들. 그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시우를 보고 잠시 멈췄다. 통화를 마무리한 뒤 다가와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또 뵙네요.”
“네.”
“아버지 병문안 오셨다가 여기 계신 겁니까?”
“잠깐 바람 쐬러.”
“저도 좀 그럴까 해서요.”
정훈은 벤치 한쪽에 앉았다.
코트 단추를 풀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병실에 오래 못 있겠더라고요.”
“그럴 수 있죠.”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그 말도 참 얄밉습니다.”
“왜요?”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위로가 되면서도 면죄부 같아서요.”
시우는 그를 봤다.
정훈은 자기 구두 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아버지랑 원래 그렇게 가깝지 않았습니다. 존경은 했어요. 대단한 분인 것도 알고. 근데…”
“근데?”
“같이 있으면 늘 시험 보는 기분이었어요.”
“철학자 아버지라서요?”
“아니요.”
정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너무 잘 보셔서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보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먼저 아셨어요. 숨을 데가 없었죠.”
“그래서 멀어졌군요.”
“네. 전 돈 벌고 회사 키우고, 실적 내고, 그런 걸로 제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에게?”
“아마도요.”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근데 정작 아버지는 그런 걸 전혀 중요하게 안 보셨죠. 늘 물으셨어요. ‘그래서 넌 요즘 누구를 사랑하나’, ‘무얼 두려워하나’, ‘언제 마지막으로 혼자 울었나’. 미치겠더라고요.”
시우는 낮게 웃었다.
“그건 좀 피곤하군요.”
“그렇죠? 사람이 아침부터 그런 질문 받으면 회사 가기 싫어집니다.”
둘 다 잠시 웃었다.
웃음 뒤에 정훈은 금세 조용해졌다.
“근데 이제 와서 보니,” 그가 말했다. “아버지가 묻던 것들만 남네요.”
“돈은 안 남습니까?”
“남죠. 아주 성실하게 남습니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근데 병실 앞에 서니까 돈은 너무 구체적이라 오히려 무력해요. 수치와 보고와 계약서는 다 멀쩡한데, 내가 아버지를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하나도 정리 안 돼 있더라고요.”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훈은 아마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요즘 하는 말들,” 정훈이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들으세요?”
“어떤 말들 말씀입니까.”
“우리가 사실은 죽은 다음의 장소에 와 있다느니, 삶이 시작이 아니라 회복이라느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 처음엔 헛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아닙니까?”
“지금도 솔직히 모르죠. 근데…”
정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상하게 그 말이 아버지 인생 전체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요?”
“아버지는 늘 삶을 ‘획득’보다 ‘복원’에 가깝게 보셨어요. 성공하라고보다 망가진 걸 보라고, 남보다 앞서기보다 자기 안에서 부서진 걸 인정하라고. 저는 그게 패배주의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요?”
“어쩌면 그게 더 근본적인 용기였나 싶어요.”
바람이 불어와 옥상 화분의 어린 잎을 흔들었다.
막 돋기 시작한 잎은 연하고 약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이미 자기 방향을 알고 있었다. 봄의 식물들은 늘 조용한 확신으로 자란다.
“선생님은 가족 있습니까?” 정훈이 물었다.
“없습니다.”
“부럽네요.”
“대개 그 말은 가족 있는 분들이 합니다.”
“맞아요.”
정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부럽다는 건 꼭 행복해서가 아니라, 아직 후회할 사람이 적어서일 수도 있어요.”
그 문장이 시우에게 오래 남았다.
나래를 다시 만난 건 저녁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녀는 예상보다 더 지친 얼굴로 옥상 문을 열고 나왔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풀려 있었고, 카디건 소매에 작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거짓말.”
“왜요?”
“기다린 사람 얼굴은 좀 알아요.”
그녀는 벤치에 털썩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보호자분이요?” 시우가 물었다.
“네. 화 많이 나셨었는데, 사실은 무서워서 그러시는 거였어요.”
“대개 그렇죠.”
“맞아요. 사람은 무서울 때 자주 화를 내죠. 특히 어른들은.”
“아이들은요?”
“아이들은 그냥 울거나 잠듭니다.”
“그럼 더 낫군요.”
“훨씬요.”
잠시 바람만 오갔다.
나래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아까 제가 너무 아는 척했죠.”
“뭘요?”
“한시우 씨가 자기 마음 모른 척한다고.”
“아닙니다.”
“아닌가요?”
“맞는 말이니까요.”
나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시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오래 보낸 사람은 거짓말하는 데 익숙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끝을 많이 볼수록 남은 시간에 거짓말할 이유가 줄어든다.
“저는,” 시우가 천천히 말했다. “삶을 잘 모릅니다.”
“죽음은요?”
“그쪽은 좀 압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거예요.”
“뭐가요?”
“삶은 죽음처럼 정리되지 않으니까.”
나래는 손바닥으로 젖은 벤치를 툭툭 털며 말을 이었다.
“죽음은 슬프고 잔인해도 명확하잖아요. 끝났다는 사실은 분명해요. 근데 삶은 애매하죠. 사랑인지 습관인지, 용기인지 포기인지, 희망인지 체념인지 늘 헷갈려요.”
“간호사님은 안 헷갈리십니까?”
“엄청 헷갈리죠.”
그녀는 웃었다.
“근데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하나는 분명해져요.”
“뭡니까.”
“미루는 건 대체로 손해라는 것.”
시우는 그 말을 가만히 받았다.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비 뒤의 저녁빛이 도시에 엷게 내려앉았다. 멀리 아파트 창문들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퇴근했고, 누군가는 야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막 이별했고, 누군가는 저녁밥을 차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한시우 씨.”
“네.”
“제가 좀 이상한 질문 하나 해도 돼요?”
“하십시오.”
“살면서 제일 후회한 게 뭐예요?”
시우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후회는 많았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하나로 고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모에게 더 다정하지 못했던 것, 너무 빨리 무감해진 것, 좋아했던 사람을 붙잡지 않았던 것, 삶을 이해하기 전에 기능부터 익혀버린 것. 그런데 그 많은 후회 밑바닥에는 하나의 질감이 있었다.
“아마,” 그가 말했다. “슬픔을 너무 빨리 정리하려고 한 겁니다.”
나래는 조용히 들었다.
“무너지면 끝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슬픔을 느끼기보다 처리했습니다. 행정처럼.”
“그래서 안 끝났군요.”
“네.”
“슬픔은 처리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쌓이거든요.”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놀라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도 좀 외로우시죠.”
시우는 천천히 그녀를 봤다.
“네.”
“저도 그래요.”
“간호사님도요?”
“네.”
“의외입니다.”
“왜요?”
“잘 살아내는 사람 같아서.”
“잘 살아내는 사람도 외로워요.”
나래는 피식 웃었다.
“오히려 잘 살아내서 더 외로운 경우도 많고.”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놓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쯤 서로의 내면을 살짝 본 사람들 사이의 침묵이었다.
그때 나래가 말했다.
“우리 이상하네요.”
“뭐가요?”
“두 번째 본 사이에 옥상에서 이런 얘기 하고 있는 거.”
“병원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맞아요. 병원과 장례식장은 사람 사이 시간을 좀 이상하게 줄여요.”
“왜 그렇죠?”
“가짜 얘기할 시간이 없어서.”
시우는 웃었다.
“그건 좋은 단축이군요.”
“네. 대신 위험하죠.”
“무슨 위험.”
“괜히 빨리 깊어지는 위험.”
“간호사님은 그게 두렵습니까?”
“조금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말하고 계시네요.”
“그러게요.”
나래는 한숨 비슷한 웃음을 내고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근데 저는요. 두려운 것 중에 해볼 만한 건 해보는 편이에요.”
시우는 순간 대답을 찾지 못했다.
바람이 불었고, 젖은 흙냄새가 다시 올라왔다.
도시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옥상 위 이 작은 공간만은 잠깐 다른 시간처럼 느껴졌다. 삶 전체가 아니라 삶의 속살이 드러나는 시간.
그때 시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장례식장에서 온 전화였다.
그는 화면을 보고 바로 받았다.
“네, 한시우입니다.”
“팀장님, 지금 응급으로 한 건 들어왔어요.” 준범 목소리가 급했다. “교통사고인데, 유족이 좀… 상황이 심상치 않아요.”
“알겠다. 바로 간다.”
“네. 그리고…”
“왜.”
“죽은 분이요. 신분 확인이 좀 애매한데, 소지품에 이상한 메모가 하나 있었어요.”
“무슨 메모.”
“그게…”
준범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태어난 날부터 나는 이곳이 기억나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어요.”
시우는 말을 잃었다.
나래가 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는 전화를 천천히 내렸다.
서울의 저녁빛이 완전히 식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응급차 소리가 다시 울렸다. 삶이든 죽음이든, 신호는 늘 갑작스럽게 도착한다.
시우는 낮게 말했다.
“장례식장에 가봐야겠습니다.”
“많이 심각해요?”
“모르겠습니다.”
그는 나래를 바라봤다.
“그런데 우연치고는 조금… 정교하네요.”
나래의 눈빛이 조용히 굳었다.
“무슨 메모였는데요?”
시우는 그대로 옮겨 말했다.
“‘태어난 날부터 나는 이곳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래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누군가 먼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윤태식보다 먼저, 민하보다 먼저,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리고 그 문장은 이제
한시우의 삶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제3장. 기억나지 않는 곳의 메모
비가 그친 서울의 밤은 이상하게 깨끗했다.
낮 동안 젖었던 도로는 가로등 불빛을 길게 늘여 비추고 있었고, 차들은 그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병원에서 장례식장까지 가는 동안 한시우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운전대 위에 놓인 두 손은 차분했지만, 머릿속은 고요하지 않았다.
태어난 날부터 나는 이곳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문장은 유서 같기도 했고, 고백 같기도 했고, 아주 오래된 일기의 마지막 줄 같기도 했다. 문제는 문장의 내용보다 타이밍이었다. 윤태식의 말, 민하의 말, 그리고 그 메모. 세 개가 우연히 한 줄로 놓이기에는 묘하게 결이 맞았다.
사람은 설명되지 않는 일 앞에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미신을 경계하며 더 차갑게 굴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배신한 사람처럼 서둘러 믿는다. 시우는 둘 다 싫어했다. 함부로 믿는 것도, 함부로 비웃는 것도 게으른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늘 그 중간에 섰다.
판단을 유예한 채, 오래 보는 쪽.
하지만 오늘은 그 오래 보는 습관조차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 멈춘 차 안에서 그는 문득 옥상의 나래를 떠올렸다.
“두려운 것 중에 해볼 만한 건 해보는 편이에요.”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꼭 사랑에 관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진실에 관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둘은 비슷한 종류인지도 모른다. 둘 다 사람을 안전한 바깥에서 안으로 끌어당기니까.
장례식장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자, 준범은 이미 로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 상기돼 있었다. 원래도 눈이 큰 편이었는데 놀라면 더 커졌다.
“오셨어요.”
“유족은?”
“빈소 5호실에 있는데… 좀 복잡해요.”
“뭐가.”
“사망자 신원은 확인됐는데, 가족 말이 좀 엇갈려요.”
“교통사고랬지.”
“네. 택시랑 부딪혔어요. 현장에서 거의 즉사.”
“나이?”
“서른여덟. 이름은 김준서.”
“직업은?”
“출판사 편집자요.”
시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메모는.”
“여기 있어요.”
준범은 투명 비닐에 넣어 둔 작은 수첩 조각을 건넸다. 종이는 눅눅하게 구겨져 있었다. 아마 빗물과 피가 함께 묻은 모양이었다. 볼펜 글씨는 급하게 쓴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또박또박했다. 평소에도 글씨를 많이 쓰는 사람의 필체였다.
그 위엔 짧은 문장이 세 줄 적혀 있었다.
태어난 날부터 나는 이곳이 기억나지 않았다.
모두가 익숙한 척 살아서 나도 따라 했다.
혹시 죽으면 다시 알게 될까.
시우는 종이를 한동안 들여다봤다.
준범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지.”
“유서는 아닌 것 같죠?”
“유서면 보통 남기는 대상이 있어. 미안하다든가, 사랑한다든가, 부탁한다든가.”
“그렇죠?”
“이건 대상이 없네.”
“그럼요?”
“질문이지.”
준범은 침을 삼켰다.
“팀장님, 설마 진짜 그런 쪽은 아니죠?”
“그런 쪽이 뭔데.”
“그러니까… 막… 죽고 나서 또 어디가 있고 그런.”
“네가 무서워하는 건 그게 사실일 가능성이 아니라,” 시우가 비닐을 접으며 말했다. “그런 말이 너무 그럴듯하게 들리는 순간이 오는 거겠지.”
준범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팀장님 진짜 사람 겁주는데 재능 있으세요.”
“넌 그 재능을 왜 나쁜 데만 쓰냐.”
“좋은 데도 써요?”
“가끔은 진실 앞에서 도망 못 가게 해주지.”
“그게 좋은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준범은 영 못 미덥다는 표정을 했지만, 그 표정 덕분에 시우는 잠깐 마음이 느슨해졌다. 죽음을 다루는 공간에선 이런 소소한 우스움이 꽤 중요하다. 인간은 진지함만으로 오래 못 버틴다. 엄숙함은 짧게는 견뎌도 길게는 질식시킨다.
5호실 앞에 이르자, 복도 분위기부터 달랐다.
대개 교통사고 빈소에는 충격이 먼저 오고 슬픔이 늦게 따라온다.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현실 감각이 한동안 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방 안엔 울음보다 멍한 침묵이 더 많았다.
상주석 근처에는 중년 여자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엔 삼십대 남자가 서 있었다. 아마 고인의 동생이거나 처남쯤 될 것이다. 방 안 공기는 비명 대신 억눌린 질문으로 가득했다.
시우가 조용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장례 진행 맡은 한시우 팀장입니다.”
중년 여자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눈은 이미 붓고 붉어져 있었다.
“네… 저희가 이런 걸 처음 겪어서…”
“괜찮습니다. 하나씩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면서도, 그 무력함에 기대기도 한다. 하나씩. 정말 비극적인 일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종종 그것뿐이다.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나씩 처리하는 것.
상복과 분향 순서, 조문 시간, 필요한 서류를 설명한 뒤 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소지품 중 메모를 보셨습니까?”
중년 여자의 손이 움찔했다.
옆의 여학생도 고개를 들었다.
“봤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게… 원래 그런 글을 좀 쓰던 사람이긴 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모르겠어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사람은 원래 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시우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떤 소리였습니까.”
여자는 잠시 주변을 의식했다. 누가 들을까 봐가 아니라, 자기 입으로 꺼내면 더 이상한 일이 될까 봐 두려운 사람의 표정이었다.
“가끔 그러더라고요. 여기가 처음이 아닌 것 같다고.”
시우는 침묵했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편집일 하느라 밤샘도 많고, 워낙 예민한 사람이기도 했고. 근데 몇 달 전부터는 자꾸 꿈 얘기를 했어요.”
“어떤 꿈이요?”
“하얀 방 꿈.”
시우의 눈빛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여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이어 말했다.
“그 방엔 아무도 없는데, 꼭 누가 있는 것 같대요. 그리고 자기는 거기서 뭔가를 기다린 게 아니라…”
“고치고 있었다?” 시우가 낮게 말했다.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
“준서가 딱 그렇게 말했어요.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고쳐지는 느낌’이라고.”
방 안이 갑자기 더 조용해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여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그 얘기 알아.”
“수민아.”
“아빠가 나한테도 말했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급히 아이를 보았다.
“왜 이제야 말해.”
“말하면 엄마가 싫어할까 봐.”
수민은 고인의 딸인 듯했다. 나이보다 더 말라 보였고, 얼굴에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벌써 며칠은 갑자기 어른이 된 사람 같았다.
“아빠가 뭐라고 했니?” 시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민은 잠깐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릴 때 밤에 울면, 아빠가 가끔 이상한 말을 했어요. ‘괜찮아, 다시 온 거라서 놀라는 거야’라고.”
여자는 눈을 크게 떴다.
“당신한텐 그런 말까지 했다고?”
“응. 그리고 태어날 때 우는 건 세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잠깐 기억나서 그런 거래.”
시우는 손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하의 말과 거의 같았다.
사람은 같은 말을 우연히 두 번 들으면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세 번 들으면 불안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패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패턴을 발견하는 동물이고, 패턴은 의미를 불러온다. 의미는 때로 위로지만, 때로 덫이다.
“아버님이 종교가 있었습니까?” 시우가 물었다.
“아니요.” 여자가 즉답했다. “오히려 그런 거 다 싫어했어요. 교회도 절도 안 다니고, 점집은 더 싫어하고. 미신이라고.”
“최근에 특별히 만나던 사람이 있었나요? 상담사라든지, 모임이라든지.”
“없었어요. 회사 다니고, 집 오고, 책 보고… 그냥 그런 사람이었어요.”
잠시 후 삼십대 남자가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이 원래 좀 이상한 글을 쓰긴 했어요.”
그는 고인의 남동생이었다. “근데 그게 정신적으로 문제 있다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형은 늘 여길 낯설어했죠.”
“여길?” 시우가 되물었다.
“세상요.”
남동생은 허탈하게 웃었다.
“형이 입버릇처럼 그랬거든요. ‘다들 너무 익숙하게 사는 게 신기하다’고. 회사에서 회의하고, 밥 먹고, 이자 내고, 휴가 계획 세우고… 그런 걸 다들 진짜 자기 자리처럼 한다고. 자긴 늘 잠깐 맡아 사는 느낌이라 했어요.”
“그 말을 자주 했습니까?”
“네. 술 마시면 더 그랬고.”
“그리고요?”
“가끔은 농담처럼 이랬어요.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죽어서도 여기면 너무 실망할 것 같다.’”
준범이 옆에서 작게 헛기침했다.
그 애는 겁이 나면 이상하게 자세를 자주 고쳐 앉는다. 지금도 그랬다.
시우는 유족들의 얼굴을 한번 천천히 둘러봤다.
이 가족은 지금 사고의 충격 외에도 다른 충격에 둘러싸여 있었다. 죽은 사람을 전부 알지 못했다는 충격.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빙산 끝만 안다. 죽음은 종종 그 사실까지 드러낸다.
“고인분 서재를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이 나오자 방 안이 잠시 멈췄다.
중년 여자가 놀란 듯 시우를 봤다.
“지금요?”
“죄송합니다. 무리한 부탁일 수 있다는 건 압니다.”
“왜 그런 걸 보시려고…”
“메모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으면, 남은 분들이 덜 불안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건 반쯤만 사실이었다.
나머지 반은 자신 때문이었다. 시우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직업적 범위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넘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남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수, 내가 다녀올게.”
“지금?”
“어차피 집 비워둘 수도 없고. 필요한 서류도 더 챙겨와야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팀장님도 같이 오시죠.”
남동생은 시우를 보며 말했다. “형 책상 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김준서의 집은 마포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새것 같지는 않지만 정돈된 단지였다. 봄비에 젖은 놀이터는 비어 있었고, 가로수 아래엔 축축한 낙엽이 붙어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죽고 나서 그의 집에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기묘하다. 문을 열면 삶이 중단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동생 김정서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집 안엔 사람이 방금 나간 것 같은 공기가 남아 있었다. 현관에 놓인 운동화, 식탁 위 우편물, 소파에 반쯤 벗어둔 카디건, 싱크대에 말라가는 컵 두 개. 죽음은 늘 이렇게 생존의 흔적 한가운데서 사람을 데려간다.
“형은 원래 정리 잘했어요.” 정서가 말했다.
“지저분한 거 질색해서.”
실제로 집은 깔끔했다. 책이 많았고, 식물 몇 개가 창가에 놓여 있었다. 거실 벽에는 여행 사진이 몇 장 걸려 있었는데, 대부분 바다나 산보다 도시의 골목이나 건물 사진이었다. 관광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장소를 찍은 사람의 시선이었다.
서재는 거실 안쪽 작은 방이었다.
책장이 세 면을 둘러싸고 있었고, 창문 아래에 긴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엔 노트북, 원고 뭉치, 샤프, 머그컵, 그리고 여러 권의 수첩이 놓여 있었다. 종이 냄새가 났다. 오래된 책과 새 책이 섞인 냄새. 활자에 오래 기대 살아온 사람의 방 냄새였다.
“형이 여기서 밤새 일 많이 했어요.” 정서가 문턱에 선 채 말했다. “전 솔직히 책상 뒤지는 거 좀 미안하네요.”
“필요한 만큼만 보겠습니다.”
“네.”
시우는 책상에 앉아 수첩들을 차례로 펼쳤다.
대부분은 편집 일정, 교정 메모, 읽을 책 목록, 짧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권, 검은 표지의 얇은 수첩 중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날짜가 드문드문 적혀 있고, 내용은 일기라기보다 생각의 파편에 가까웠다.
그는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3월 17일
어릴 때부터 느꼈다. 모두가 너무 자연스럽다. 나는 왜 이렇게 계속 낯선가.
4월 2일
또 그 꿈. 하얀 방. 아무도 없는데 누가 있다. 기다림이 아니라 복구에 가깝다.
4월 23일
태어나는 것은 진입이 아니라 귀환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첫 울음은 공포가 아니라 기억의 잔광이다.
5월 11일
딸이 잠들며 내 손을 잡았다. 이상하게 미안했다. 내가 이 아이를 세상에 데려온 건지, 세상이 나를 통해 이 아이를 다시 들여보낸 건지 모르겠다.
시우는 손을 멈췄다.
그 문장에는 사랑과 죄책감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 품는 감정은 종종 그렇게 섞여 있다. 축복했지만 미안하고, 사랑하지만 대신 아파주고 싶고, 데려왔지만 이 세계의 고통을 함께 떠안게 한 것 같아 죄스럽다.
그는 다음 장을 넘겼다.
6월 1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들 잊어야 버틴다. 월세와 치과 예약과 냉장고 속 반찬과 회의 자료가 없다면, 인간은 아마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생활은 망각의 기술이다.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웃었다.
좋은 문장이었다. 뼈아프게 정확한 문장.
다음 장에선 필체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7월 29일
하얀 방에서 누군가 물었다. “다시 가겠는가.”
나는 물었다. “왜 또?”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깨어나면 늘 눈물이 난다.
시우의 목 안쪽이 조금 말랐다.
“뭔가 있습니까?” 정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우는 대답 대신 수첩을 건넸다. 정서는 몇 줄 읽다가 표정이 굳었다.
“이거… 형수는 모르겠죠.”
“모를 가능성이 크겠죠.”
“형이 힘들었나.”
“그럴 수도 있고요.”
“아니면 진짜 뭔가 봤거나.”
정서는 자기 말에 스스로 놀란 듯 헛웃음을 쳤다.
“아, 미친 소리 같네요.”
“이상한 말과 틀린 말은 같은 게 아닙니다.”
“팀장님은 이런 거 믿어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진지하게 보세요?”
“모르기 때문에요.”
책상 서랍을 열자 더 많은 메모가 나왔다. 인쇄한 원고 사이에 접힌 A4 용지 한 장이 끼어 있었다. 그 위엔 제목이 없고, 짧은 산문 같은 글이 있었다.
우리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투입된 것처럼 산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엔 울고, 자라면서 잊고, 사랑할 때 잠깐 기억한다.
사랑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병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이 세계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감각이 돌아온다.
그래서 사랑은 달콤하면서도 늘 조금 슬프다.
시우는 그 문장을 읽고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사랑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병이다.
그 말은 지나치게 문학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정확했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못 살게 된다.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지고, 사소하던 것이 결정적이 되고, 하루가 단지 하루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된 시간이 된다. 사랑은 적응을 망친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래서만 진짜로 살아나는지도 모른다.
“형이 쓴 글 중에 이런 거 좀 있었어요.” 정서가 말했다. “근데 출판하진 않았어요.”
“왜요?”
“사람들이 너무 이상하다고 할 것 같다고.”
“본인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죠.”
“그랬겠죠.”
정서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이상하다는 게 틀렸다는 뜻은 아닌가 보네요.”
방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시우의 눈에 책장 한 칸이 들어왔다. 철학, 종교학, 뇌과학, 심리학, 소설이 뒤섞여 꽂혀 있었다. 유독 닳은 책 몇 권이 눈에 띄었다. 제목을 훑던 그는 손을 멈췄다.
《탄생의 상처》
《기억과 소실의 형이상학》
《사후의식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
그리고 그 옆, 얇은 복사 제본 파일 하나. 등표지에 볼펜으로 적힌 글씨.
혜원대병원 윤태식 강연 자료
시우는 제본 파일을 뽑았다.
정서가 다가왔다.
“그거 아버지 책이에요?”
“제 스승이었습니다.”
“형이 왜 그분 강연 자료를…”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제본 파일 속엔 오래된 공개 강연 원고가 들어 있었다. 아마 십수 년 전 자료였다. 첫 장 제목이 시우의 시선을 붙잡았다.
출생은 시작인가, 망각인가
그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강연 원고의 몇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삶이 너무 익숙해서가 아니라 너무 급박해서다.
출생 직후의 울음은 생존 반응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비명일 수 있다.
우리는 생을 선물로만 부르지만, 선물은 때로 과제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이 어떤 상실 이후 다시 세계로 들어온 존재라면, 삶의 모든 결핍은 처벌이 아니라 재구성의 흔적일지 모른다.
시우는 문장을 읽다가 숨을 고르게 됐다.
김준서가 윤태식의 강연 자료를 읽고 있었다.
그것도 우연히 얻어 걸린 정도가 아니라, 깊이 파고든 흔적이 있었다. 수십 장 중 여러 페이지에 밑줄과 메모가 빼곡했다.
정서가 말했다.
“형, 그 교수님 만난 적 있나?”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혹시 형분 서류나 이메일에서 이분 관련 기록 찾을 수 있을까요?”
“아마 노트북 보면 될 텐데.”
노트북은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정서는 몇 가지 숫자를 눌러보다가 열지 못했다.
“형수나 조카는 알 수도 있는데 지금은 물어보기 좀 그렇고…”
“나중에 해도 됩니다.”
그때 거실 쪽에서 휴대폰 진동 소리가 났다. 정서가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시우는 혼자 남아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검은 수첩의 마지막 부분을 펼쳤다.
거기엔 짧은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데 너무 큰 확신을 갖고 있다.
그 아래 날짜는 사고 전날이었다.
집에서 나와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는 길, 정서는 거의 말이 없었다. 운전은 그가 했다. 시우는 조수석에서 창밖만 봤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바빴다. 술집은 붐볐고, 편의점은 환했고, 버스 정류장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누군가는 막 사랑을 시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늘 이별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퇴근 중이었을 것이다. 그 일상의 겹겹을 생각하면 윤태식의 말은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일상이 너무 성실하게 망각 위에 서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은 망각의 기술이다.
김준서의 문장은 자꾸 마음을 두드렸다.
맞는 말이었다. 인간은 살기 위해 자주 잊는다. 부모는 아이를 낳은 고통을 잊고, 직장인은 월요일의 괴로움을 금요일쯤 희미하게 만들고, 사랑에 실패한 사람도 몇 년 뒤엔 웃으며 얘기한다. 기억이 너무 선명하면 사람이 못 산다. 망각은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단지 트라우마가 아니라 존재의 전사(前史)라면?
시우는 그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믿음이 생기는 순간, 세계가 너무 달라질 것 같아서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정서를 다시 빈소로 들여보내고, 시우는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준범이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건넸다.
“팀장님, 얼굴이 왜 그러세요.”
“어떻게.”
“좀… 더 안 자게 생겼어요.”
시우는 웃었다.
“안 좋은 소식이군.”
“좋은 소식은 아니죠.”
“넌 솔직해서 문제다.”
“팀장님이 맨날 솔직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 솔직함은 남한테만 적용하려고 했지.”
“아, 역시 어른들.”
준범은 그렇게 말하고도 곧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집에 뭐 있었어요?”
“수첩이 있었지.”
“내용은요?”
“누군가 같은 질문을 오래 하고 있었더군.”
“누구랑 같은 질문이요?”
“나랑. 그리고 아마 몇몇 다른 사람들하고도.”
준범은 의자를 끌어 가까이 앉았다.
“팀장님.”
“왜.”
“진짜로 물어볼게요. 요즘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세상은 원래 이상해.”
“아니, 그 말 말고요. 뭔가 자꾸 맞물리는 느낌 같은 거요.”
“있지.”
“저도 좀 그래요.”
“네가?”
“네. 전 그냥 겁먹은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요. 태어날 때 왜 우는지.”
시우는 그를 조용히 봤다.
준범은 민트 사탕을 꺼내 입에 넣으려다 다시 집어넣었다.
“저 어릴 때,” 준범이 말했다. “엄마가 그랬거든요. 제가 아기 때 진짜 엄청 울었다고. 병원에서 의사도 놀랄 정도로.”
“원래 애들은 운다.”
“알아요. 근데 엄마가 맨날 농담처럼 그랬어요. ‘너는 태어나자마자 너무 서럽게 울어서, 뭐 억울한 애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그냥… 요즘은 그 말이 자꾸 이상하게 들려요.”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아, 진짜 별거 아니죠?”
“아니.”
“아니에요?”
“인간은 다 별거 아닌 걸로 시작해서 큰 데까지 간다.”
“그게 위로인가요 겁주는 건가요.”
“반반.”
준범은 결국 민트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그 특유의 냄새가 사무실에 퍼졌다. 시우는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왜 웃으세요?”
“죽음 냄새 속에서 꼭 민트로 버티는 네가 좀 우스워서.”
“우습죠? 근데 없으면 못 버텨요.”
“왜.”
“살 냄새가 너무 진하면, 내가 사는 건지 일하는 건지 헷갈려서.”
시우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준범은 자기가 무슨 중요한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인간은 가끔 핵심을 무심코 말한다.
살 냄새가 너무 진하면, 내가 사는 건지 일하는 건지 헷갈린다.
시우 역시 비슷했다. 죽음 가까이 있으면서 삶을 점점 기능으로만 대했다. 먹고, 자고, 출근하고, 정리하고, 위로하고, 퇴근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가 사람인지 역할인지 흐려진다. 역할은 살아남지만, 사람은 점점 뒤로 물러난다.
새벽 가까이 일이 조금 잠잠해졌을 때, 시우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서나래였다.
끝났어요?
단 세 글자였지만,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누군가 자신이 아직 오늘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건 의외로 중요하다.
시우는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아직요. 메모보다 더 이상한 게 나왔습니다.
곧 답이 왔다.
전화 가능해요?
그는 밖으로 나가 복도 끝 비상계단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밤의 장례식장은 낮보다 더 정직하다. 조문객이 뜸해지면 남는 것은 조용한 조명, 종이컵 쌓인 탁자, 멀리서 들리는 울음, 그리고 정리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여보세요.” 나래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깨어 있었다.
“안 주무십니까?”
“병동 끝나고 집 왔는데, 왠지 잠이 안 와서요.”
“저도 비슷합니다.”
“뭐가 나왔어요?”
시우는 김준서의 수첩 이야기와 집에서 본 글들, 그리고 윤태식 강연 자료까지 차례로 설명했다. 나래는 중간에 거의 끼어들지 않았다. 듣는 사람의 침묵에도 종류가 있는데, 그녀의 침묵은 흥미와 집중이 섞인 침묵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나래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이건 좀… 무섭네요.”
“어느 쪽 의미로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이 비슷한 환상을 가졌다는 쪽이면 슬퍼서 무섭고.”
“그리고.”
“정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걸 조금씩 본 거라면… 그건 더 무서워요.”
“왜죠?”
“세상이 생각보다 덜 닫혀 있다는 뜻이니까.”
시우는 비상계단 유리창 너머 어두운 주차장을 바라봤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완전 싫진 않죠?”
“네.”
“그게 더 이상해요.”
둘은 잠시 웃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서로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었다.
“사랑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병이다.” 시우가 말했다.
“네?”
“김준서 수첩에 있던 문장입니다.”
“……”
“좋은 문장 아닙니까.”
“너무 좋네요.”
나래가 숨처럼 말했다.
“근데 너무 아프다.”
“왜 아프죠?”
“맞는 말 같아서요.”
시우는 난간에 기대 섰다.
전화기 너머 작은 숨소리까지 들리는 시간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사람의 목소리는 조금 더 솔직해진다. 어둠은 정직하지 않던 것들도 약간 느슨하게 만든다.
“간호사님.”
“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 있습니까?”
그 질문이 나가자 잠깐 적막이 흘렀다.
다행히 통화가 끊긴 건 아니었다. 아주 작은 호흡 소리가 들렸다.
“있어요.” 나래가 말했다.
“많이요?”
“충분히요.”
“결말은요?”
“안 좋았죠.”
“죽었습니까?”
“아니요.”
나래가 짧게 웃었다.
“살았어요. 아주 멀쩡하게.”
“그게 더 나쁜가요?”
“가끔은요. 죽음은 끝이라도 있잖아요.”
“살아 있는데 끝난 사랑은.”
“끝이라고 하기 어려워요. 어디엔가 계속 남으니까.”
시우는 눈을 감았다 뜨며 물었다.
“그래도 다시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요?”
“네.”
“모르겠어요.”
“왜요.”
“사랑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잖아요.”
“그게 좋은 거 아닙니까.”
“좋죠. 근데 다시 태어난다는 건… 다시 울 일도 생긴다는 뜻이라서.”
그 말은 조용했지만 오래 남았다.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간호사님은 정말 자꾸 핵심만 말하는군요.”
“그건 한시우 씨도 그래요.”
“전 아닙니다.”
“맞아요. 그리고 약간 늦게 인정하는 타입이고.”
“오늘 따라 간호사님이 유난히 정확합니다.”
“오늘 따라 한시우 씨가 유난히 잘 들으니까요.”
그 말 뒤에 잠시 공백이 생겼다.
어떤 말은 듣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다. 특별한 고백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오간 뒤였다. 사람 사이를 깊게 만드는 건 꼭 사랑한다는 문장만이 아니다. 때로는 “당신이 오늘 유난히 잘 들린다”는 감각이 더 결정적이다.
“내일 병원 오실 건가요?” 나래가 물었다.
“아마도요.”
“교수님도 찾으실 거예요.”
“민하도 있습니까?”
“있죠.”
“그 아이에게 김준서 얘길 해도 될까요?”
“잘 모르겠어요. 근데 민하는 아마 우리가 말 안 해도 이상하게 알 것 같아요.”
“그건 더 무섭군요.”
“네. 근데 조금 위로되기도 하고.”
“왜죠?”
“정말 우리가 혼자만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시우는 통화를 마친 뒤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장례식장 복도엔 정수기 물 떨어지는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가 미세하게 겹쳐 있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인간은 왜 슬픈 곳에서조차 누군가에게 끌리는가.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삶이 무엇인지 더 아프게 보이기 때문이다. 끝이 선명할수록 시작도 다시 보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 경계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다음 날 오후, 혜원대병원은 맑았다.
비가 씻고 간 하늘은 옅은 파랑이었고, 병원 앞 목련은 거의 다 피어 있었다. 흰 꽃잎은 멀리서 보면 깨끗하고 고요했지만, 가까이 보면 이미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마르고 있었다. 꽃도 피는 순간부터 조금씩 끝난다.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그 사실을 감춘 채 환하다.
시우는 로비에서 나래를 기다리다 자동문 밖으로 잠깐 나갔다.
봄 냄새가 났다. 따뜻하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고, 차갑다고 하기엔 부드러운 공기. 계절이 넘어가는 냄새였다.
“밖까지 나오셨어요?”
뒤돌아보니 나래가 서 있었다. 오늘은 흰 유니폼 위에 연한 남색 가디건을 걸쳤다. 피곤한 기색은 있었지만, 어쩐지 어제보다 더 선명해 보였다.
“기다리다가.”
“누굴요?”
“간호사님을요.”
“아, 이젠 그렇게 바로 말하네요.”
“미루는 건 손해라 하셨잖습니까.”
나래는 잠깐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교육 효과가 빨라서.”
둘은 나란히 병원 안으로 걸었다.
“교수님은요?”
“오늘 오전에 잠깐 혼미했는데,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민하는.”
“놀랍게도 기분이 좋아요. 이유는 모르겠고.”
“그 아이는 기분 좋을 때도 무섭습니까?”
“가끔 더 무서워요.”
“왜죠?”
“기분 좋을 때 더 잘 맞히거든요.”
시우는 낮게 웃었다.
“그럼 오늘은 조심해야겠군요.”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데, 로비 의자 쪽에서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윤정훈이었다. 윤태식의 아들. 그는 휴대폰을 손에 든 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바쁘고 날카로워 보이던 기색이 없었다. 넥타이도 느슨했고, 수염도 약간 자라 있었다.
“아버님 아드님이네요.” 나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그래 보이네요.”
그때 정훈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오셨군요.”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시우가 물었다.
정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휴대폰 화면을 켠 채 시우에게 내밀었다. 이메일 화면이었다. 발신인은 김준서. 수신인은 윤태식.
메일 제목은 단순했다.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시우와 나래는 동시에 화면을 올려다봤다.
정훈이 말했다.
“아버지 메일함 정리하다 찾았어요. 보낸 날짜가… 한 달 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우는 알았다.
이 이야기는 아직 우연의 범주 안에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제4장.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이메일 제목은 이상할 만큼 평범했다.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세상이 뒤집히는 순간은 대개 더 거창한 문장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고, 너무 사람 냄새 나는 말투로 온다. 그게 더 무섭다. 초현실은 현실의 문법을 빌려 나타날 때 가장 설득력이 생긴다.
윤정훈은 휴대폰을 든 채 마른침을 삼켰다.
“아버지 메일함 비밀번호를 제가 알아요. 회사 일 때문에 가끔 대신 확인할 때가 있었거든요. 아까 로비에서 잠깐 보다가… 이걸 찾았습니다.”
“읽어보셨습니까?” 시우가 물었다.
“앞부분만요. 다 못 읽었어요.”
“왜요?”
정훈은 웃으려다 실패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원래 이런 쪽을 안 좋아합니다. 무서운 얘기, 비합리적인 얘기, 설명 안 되는 얘기. 근데 이상하게 이건… 그냥 덮기가 싫더라고요.”
나래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읽어도 괜찮을까요?”
“네.”
로비 한쪽, 자동문에서 조금 떨어진 대기석은 비교적 한산했다. 보호자 몇 명이 멀리 앉아 있었고, 카페 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밀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접수 창구 앞에서 보험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범한 장소에서 이상한 진실은 더 또렷해진다. 인간은 늘 익숙한 배경 속에서 낯선 것을 마주한다.
정훈이 메일을 열었다.
보낸 사람: 김준서
받는 사람: 윤태식
제목: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교수님께.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오래전에 공개 강연 자료를 읽고 연락드립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종교는 없고, 영적인 체험에 관심이 큰 편도 아닙니다. 다만 몇 달 전부터 반복되는 꿈 때문에 이 메일을 씁니다.
꿈속에는 늘 흰 공간이 나옵니다. 방이라고 부르기엔 경계가 흐리고, 안개라고 부르기엔 너무 또렷합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누군가 있는 것 같고, 기다리는 느낌은 아닌데 멈춘 것도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그곳에 있으면 내가 처음 가는 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더 이상한 것은, 거기서 깨어나면 현실 쪽이 오히려 낯설어진다는 점입니다. 출근길 지하철, 회의, 식탁, 가족의 얼굴, 심지어 제 손까지도 잠깐씩 빌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 건지 두렵습니다.
교수님 강연 자료 중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출생은 시작이라기보다 망각의 개시일 수 있다.’
처음엔 과장된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 문장을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혹시 인간이 태어나면서 어떤 것을 잊는다고, 정말로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잊힌 것이 너무 깊으면, 어떤 사람은 평생 이곳을 완전히 자기 자리로 느끼지 못한 채 살 수도 있는 걸까요?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김준서 드림.
정훈은 메일을 다 읽고 화면을 내렸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래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답장은요?”
“있습니다.” 정훈이 화면을 넘겼다. “아버지가 보낸 답장도.”
그는 다시 읽었다.
보낸 사람: 윤태식
받는 사람: 김준서
제목: Re: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김준서 씨께.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저는 의사가 아니므로 그 판단을 함부로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인간이 오직 정상성과 비정상성으로만 나뉜다고 믿는 태도는 종종 사유를 가난하게 만듭니다.
당신의 꿈이 단지 피로와 스트레스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가능성 역시 성급히 지워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이 말한 흰 공간의 정체를 제가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이 아니라 ‘도착하기 이전’의 상태를 어렴풋하게 품고 온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대부분은 출생의 충격과 생활의 소음 속에 곧 잊어버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잔향이 오래 남는 듯합니다.
당신이 평생 이곳을 완전히 자기 자리로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신호일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적응하는 것이 꼭 건강의 증거는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조심하십시오. 이런 감각은 사람을 진실로도 데려가지만, 자기기만으로도 데려갑니다. 그러니 혼자 결론 내리지 말고, 생활을 버리지도 마십시오. 밥을 먹고, 가족을 돌보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일은 형이상학보다 덜 고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있어야 질문이 미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한번 뵙지요.
살아 있는 동안 하는 대화가 늘 더 낫습니다.
윤태식 드림.
정훈은 메일을 닫지 못한 채 화면을 내려다봤다.
“만나기로 했던 걸까요?” 나래가 물었다.
“그 뒤에 몇 번 더 메일이 오갔습니다.” 정훈이 답했다. “짧게요.”
“내용은.”
“예약 비슷한 얘기였어요. 아버지 병원 오시기 전에 한번 연구실에서 보기로 했던 것 같은데… 아마 못 만난 것 같습니다.”
“왜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으니까요.”
시우는 아주 천천히 물었다.
“혹시 김준서 씨가 교수님 병원에 온 적은 없습니까?”
정훈은 고개를 저었다.
“기록상으로는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알기론 없었을 겁니다.”
나래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럼 결국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한 거네요.”
“아마도요.”
“이상하네요.”
“뭐가요?”
“꼭 막 무슨 이야기가 시작되려다 끊긴 것 같아서요.”
그 표현은 정확했다.
시우도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가 문 앞까지 왔고, 손을 뻗었고, 이제 막 열리려던 참에 사고가 끼어든 느낌. 세상에는 그런 끊김이 많다. 말하려다 못 한 말, 만나려다 못 만난 사람, 사랑하려다 멈춘 마음. 삶이 허무한 이유 중 하나는, 완결보다 중단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휠체어가 지나갔다. 늙은 남자가 산소줄을 단 채 지나가고, 보호자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밀었다. 로비의 모든 장면은 여전히 병원의 것이었다. 아프고, 바쁘고, 지치고, 또 묵묵한. 그런데 이 평범한 배경 위에 김준서의 메일은 얇고 날카로운 금처럼 들어앉았다.
“메일 더 있습니까?” 시우가 물었다.
“네. 마지막 메일 하나가 더 있어요.” 정훈이 말했다. “이건 아버지가 병원 오시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화면을 넘겼다.
보낸 사람: 김준서
받는 사람: 윤태식
제목: Re: Re: 교수님, 혹시 저만 이런 꿈을 꾸는 겁니까
교수님, 답장 감사합니다.
생활을 버리지 말라는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저도 가끔은 질문이 너무 커져서 생활이 유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사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네요. 밥을 먹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마감 날짜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사람을 부서지지 않게 붙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꿈보다도 이상한 순간이 깨어 있을 때 옵니다. 아주 잠깐씩,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다가 ‘이 사람도 나처럼 어딘가를 잊은 채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슬프다기보다 기이하게 익숙한 감정입니다. 모두가 살아 있다고 믿으며 분주한데, 실은 다들 무엇인가 끝난 뒤의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을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는 순간 미친 사람이나 유난한 사람 취급을 받을 테니까요.
교수님은 왜 이런 질문을 오랫동안 붙들게 되셨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혹시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잊고 있던 것이 조금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보십니까.
이건 저 자신에게 생긴 일은 아닙니다.
아니, 아직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준서 드림.
“끝입니까?” 시우가 물었다.
“네.” 정훈이 말했다. “아버지 답장은 없어요. 그 즈음에 쓰러지셨으니까.”
나래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질문이 제일 아프네요.”
“사랑 얘기요?” 정훈이 물었다.
“네.”
“저도 그게 좀 걸렸어요.”
그는 난처하게 웃었다. “이상하죠. 저는 솔직히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더 실감 나더라고요.”
“왜요?”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진짜 뭐가 달라지긴 하니까.”
시우는 정훈을 바라봤다.
정훈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예전에 누구를 많이 좋아했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말했다.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안 됐죠.”
“왜요?” 나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전 늘 바빴거든요. 돈 벌고, 자리 잡고, 증명하고. 그 사람은 자꾸 저한테 물었어요. ‘너는 왜 꼭 이겨야 하냐’고. 저는 그 질문이 너무 귀찮았습니다.”
그는 잠깐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찮았던 게 아니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사랑하면 원래 자기 방식이 흔들리잖아요.”
“맞아요.” 나래가 말했다.
“그래서 도망쳤죠.”
정훈은 창밖을 한번 보고 덧붙였다.
“근데 그 뒤로는 제가 아무리 잘 살아도, 예전만큼 익숙하게는 안 살렸어요. 계속 뭔가 어긋난 느낌이 남더라고요.”
시우는 김준서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사랑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병이다.
그 문장이 세 사람 사이를 잠깐 지나갔다.
“메일은 저한테 좀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시우가 물었다.
정훈은 잠깐 망설였다.
“왜요?”
“아직 이유를 다 설명할 순 없습니다. 다만 이게 단순한 호기심은 아닙니다.”
“……”
“그리고 지금은, 믿든 안 믿든 간에 연결 고리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정훈은 시우를 가만히 보았다.
병든 아버지와 사고사한 낯선 남자, 그리고 장례지도사.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조합이 전혀 믿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믿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진실과 맞붙고 있다는 인상이 들 때.
“알겠습니다.” 정훈이 말했다. “보내드릴게요.”
윤태식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잠들어 있었다.
평소보다 호흡이 불규칙했고, 얼굴은 조금 더 수척해 보였다. 나래는 차트를 확인한 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전보다 좀 떨어지셨어요.”
“회복은 어렵습니까?”
“이 단계에선… 솔직히 어렵죠.”
시우는 침대 곁에 섰다.
잠든 사람의 얼굴은 이상하다. 평소보다 어린 것 같기도 하고, 훨씬 먼 곳에 간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죽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어떤 준비처럼 보일 때가 있다.
“교수님께 김준서 씨 얘길 해야 할까요?” 나래가 물었다.
“깨어나시면요.”
“만약 오늘 못 깨어나시면.”
“……”
“그럼 끝일까요?”
시우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단순히 정보 전달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어떤 진실은 들을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닿아야 한다. 죽은 뒤엔 너무 늦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알아들었다는 말, 당신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장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무용해진다. 그래서 지금 말해야 한다.
“깨어나시면 말씀드리죠.” 시우가 말했다.
“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작은 얼굴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민하였다.
“나래 쌤.”
“민하야, 여기 왜 왔어?”
“엄마 주무셔서.”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니까.”
“알아. 근데 나 교수 할아버지 보러 왔어.”
민하는 병실 안으로 성큼 들어와 윤태식을 올려다봤다. 아이는 죽음 가까운 사람을 볼 때 어른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아주 아픈 날씨를 보는 것 같았다.
“오늘은 많이 멀리 갔네.” 민하가 중얼거렸다.
나래가 눈썹을 찌푸렸다.
“민하야.”
“진짜인데.”
시우가 무릎을 굽혀 민하 눈높이에 맞췄다.
“멀리 갔다는 게 무슨 뜻이니?”
“지금 여기보다 안쪽이 더 큰 거.”
“안쪽?”
“응. 사람이 끝날 때쯤 되면 그래.”
“넌 그게 보여?”
“가끔.”
“무섭지 않아?”
“아저씨는 맨날 그 질문만 하네.” 민하는 약간 핀잔 주듯 말했다.
“무서운 게 다 나쁜 건 아니잖아.”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건 맞다.”
민하는 침대 난간에 손을 올려두고 잠든 윤태식을 한참 보았다. 그러다 아주 느리게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많이 기억났어.”
“뭐가?” 나래가 물었다.
“오기 전.”
“그걸 어떻게 알아?”
“얼굴이 그래.”
시우는 민하에게 김준서 이야기를 해도 되나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때 민하가 먼저 말했다.
“그 사람 죽었지?”
“누구.”
“메일 보낸 아저씨.”
병실 안 공기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정훈에게서 전달받은 메일은 아직 시우 휴대폰에만 있었고, 병실에 오기 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래도 막 함께 읽었을 뿐이다. 민하가 알 리가 없었다.
“민하야.” 나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누가 말해줬어?”
“아무도.”
“그럼 어떻게 알아?”
“아까부터 자꾸 여기저기서 생각이 울려.”
“생각이 울린다?”
“응. 슬픈 생각은 좀 크게 울려.”
시우는 자기 손등의 털이 아주 조금 서는 걸 느꼈다.
“그 사람도 하얀 데 꿈꿨어?” 민하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니.”
“많이들 꿈꾸니까.”
“많이?”
“응. 근데 다 까먹어.”
“누가?”
“사람들.”
민하는 당연한 말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가끔은 너무 빨리 적응해서 아예 잊어버리고, 가끔은 아픈 데가 많아서 좀 오래 남고.”
“아픈 데?”
“마음이랑 머리랑, 여기.”
민하는 다시 자기 가슴을 툭 쳤다.
“부서졌던 데.”
나래는 무릎을 굽혀 아이 눈을 맞추고 물었다.
“민하야, 그건 누가 부쉈는데?”
“살다가.”
“살다가?”
“응. 저번에도 살았잖아.”
시우는 마른 숨을 삼켰다.
“저번에도 살았다는 게… 다시 왔다는 뜻이니?”
“응.”
“모두가?”
“거의.”
“왜 ‘거의’야?”
“가끔은 처음인 사람도 있어.”
“처음인 사람?”
“응. 그런 사람은 눈이 좀 달라.”
“어떻게 다른데.”
“덜 슬퍼.”
그 말은 병실을 이상하게 차갑게 만들었다.
덜 슬픈 눈. 시우는 살아오며 그런 눈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조차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조금 슬퍼졌다. 자라면서, 잊으면서, 배우면서, 사랑하고 다치면서. 그렇다면 정말로 인간은 다들 어떤 이전의 피로를 안고 오는 걸까.
민하는 다시 윤태식을 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근데 교수 할아버지는 이제 거의 다 왔어.”
“어디에?” 시우가 물었다.
“기억나는 데.”
나래가 눈을 감았다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업적으로 무너질 수 없는 사람이 간신히 균형을 잡는 얼굴이었다.
“민하야, 이제 진짜 병실로 돌아가자.”
“응.”
“손 잡아.”
“나래 쌤 손 차갑다.”
“네가 따뜻한 거야.”
“나 곧 더 따뜻해질지도 몰라.”
“민하.”
나래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떨렸다.
민하는 그런 나래를 보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어른을 위로하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래 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뭘 걱정해.”
“자꾸 보내는 사람 되는 거.”
“……”
“쌤은 붙잡는 사람 아니야. 같이 가는 사람이야.”
“그런 건 누가 가르쳤어.”
“몰라. 그냥 알아.”
민하는 손을 내밀었다.
나래가 그 손을 잡았다. 아이 손은 작고 말랐지만 묘하게 뜨거워 보였다.
문 앞까지 가다 민하는 다시 돌아봤다.
“아저씨.”
“왜.”
“좋아하는 거 있으면 빨리 좋아해.”
시우는 웃지도 못했다.
“왜.”
“여긴 자꾸 늦어.”
그 말만 남기고 민하는 나래와 함께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병실엔 시우와 윤태식만 남았다.
시우는 의자를 끌어와 침대 옆에 앉았다.
잠든 노인의 손등엔 혈관이 푸르게 도드라져 있었다. 피부는 얇고, 체온은 약하고, 호흡은 가볍게 흔들렸다. 육체는 너무 명백하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시우는 이 노인이 단지 꺼져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딘가를 기억해내는 중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교수님, 김준서 씨를 찾았습니다.”
윤태식은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
“만나지 못하셨더군요.”
“……”
“그 사람도 같은 꿈을 꿨습니다. 같은 질문을 했고요.”
병실 창밖으로 바람이 스쳤다. 커튼 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교수님 말이 맞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소한 혼자만의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이게 다 맞다면…” 시우는 잠시 말을 골랐다.
“삶은 대체 뭡니까. 처벌입니까, 기회입니까, 회복입니까, 아니면 그냥 긴 착각입니까.”
여전히 답은 없었다.
그 침묵 앞에서 시우는 문득 자기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젊을 때는 세상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 척했고, 죽음을 오래 보면서는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 척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거의 아이처럼 묻고 있었다. 왜 우리는 여기 왔습니까. 왜 태어나면서 웁니까. 왜 사랑하면 아픕니까. 왜 이렇게 낯섭니까.
인간은 결국 큰일 앞에서 다 아이가 된다.
질문하는 존재로 돌아간다.
어쩌면 그게 본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때, 아주 희미하게 윤태식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시우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교수님?”
노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지만, 무언가를 따라가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그리고 거의 숨에 섞인 음성으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늦지 마라.”
시우는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었다.
“교수님, 뭐가요?”
이번에는 한참 뒤에야 목소리가 나왔다.
“사랑은… 늦으면… 기억이 된다…”
그리고 다시 침묵.
시우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말은 너무 시적이어서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었고, 너무 정확해서 유언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사랑은 늦으면 기억이 된다. 살아 있는 현재로 붙잡지 못하면, 결국 과거의 빛으로만 남는다는 뜻일까. 혹은 사랑이야말로 잃고 나서야 우리가 본래 잊고 있던 곳을 더 아프게 떠올리게 한다는 뜻일까.
문이 열리고 나래가 돌아왔다.
“민하 보내고 왔어요.” 그녀는 시우의 얼굴을 보고 멈췄다.
“무슨 일 있었어요?”
“교수님이 잠깐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요?”
시우는 조용히 전했다.
나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소리도 못 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피로, 슬픔, 놀람,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체념 비슷한 것이 한꺼번에 비쳤다.
“참 이상하네요.” 나래가 말했다.
“뭐가요.”
“이런 상황인데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문장이 얕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실 안 공기는 고요했다. 장비 소음과 호흡 소리만 아주 작게 섞여 있었다. 도시 전체가 바깥에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을 텐데, 이 병실만은 마치 시간의 다른 골에 놓인 것 같았다.
“한시우 씨.”
“네.”
“오늘 저녁 근무 끝나면 잠깐 걸을래요?”
시우는 그녀를 봤다.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답을 찾자는 건 아니고요.”
“네.”
“그냥… 너무 많은 얘기를 했는데 계속 병원에서만 보는 것도 이상해서요.”
“이상한 건 싫으십니까?”
“아뇨.”
나래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근데 좋은 이상함이랑 나쁜 이상함은 구분하고 싶어서요.”
시우도 웃었다.
“몇 시쯤입니까?”
“아홉 시 반?”
“늦군요.”
“늦죠.”
“그래도 갑니까?”
“네.”
나래는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민하 말대로, 여긴 자꾸 늦으니까.”
그 문장은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했지만, 끝엔 그렇지 않았다.
삶에서 늦는다는 건 단순히 시간이 지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나는 일, 사랑을 알아보기 전에 사람이 멀어지는 일, 진실을 인정하기 전에 문이 닫히는 일. 인간의 슬픔 상당수는 늦음에서 온다.
시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래는 차트를 들고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가 아주 잠깐 돌아봤다. 그 시선은 특별한 약속보다 더 오래 남는 종류의 것이었다. 말보다 조금 먼저 닿는 마음의 움직임.
시우는 다시 윤태식 곁에 앉았다.
창밖으로 저녁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햇빛이 건물 벽에 마지막으로 닿았다가 사라지고, 병실 유리엔 실내 풍경이 옅게 비치기 시작했다. 자기 얼굴이 유리에 겹쳐 보일 때 사람은 가끔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여기 있는지, 저기 비친 것이 나인지, 혹은 둘 다 잠깐 빌린 형상인지.
그는 휴대폰을 꺼내 정훈이 보내온 메일 파일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오래 시선을 두었다.
혹시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잊고 있던 것이 조금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보십니까.
시우는 이제 그 질문이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질문은 이미 자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떤 질문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사람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제5장. 늦기 전에 좋아하는 법
밤 아홉 시 반의 병원 앞은 낮과 전혀 다른 장소 같았다.
낮 동안 사람과 소음과 서류와 발걸음으로 가득하던 출입구는 한결 비어 있었고, 유리문에 비친 실내 불빛만 도드라져 보였다. 응급실 쪽으로는 여전히 구급차가 오갔지만, 정문 앞 화단과 벤치에는 잠깐 숨을 돌리는 사람 몇 명만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어두워지면 병원은 더 병원다워진다. 인간의 무력함이 형광등 빛 아래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한시우는 병원 맞은편 작은 편의점 앞에 서서 캔커피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아홉 시 이십오 분. 그는 이미 다섯 분 전에 도착해 있었다.
스스로도 좀 우스웠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수많은 이별과 후회를 봐온 사람이, 정작 누군가와 걷기로 한 약속 앞에서는 십 분 일찍 도착해 괜히 냉장고 문 앞을 서성이고 있다니.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식으로 일관성이 없다. 남의 인생에선 현명하고 자기 인생에선 서툴다. 시우는 그 점이 부끄럽기보다는 조금 다행스러웠다. 아직 완전히 굳어버린 건 아니라는 뜻 같아서.
유리문이 열리고 서나래가 나왔다.
머리는 여전히 묶여 있었지만, 흰 유니폼 위에 걸치던 가디건 대신 짙은 베이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손엔 가방 하나만 들려 있었다. 병원 안에서 보던 사람과 같은 사람인데도, 밖으로 나오는 순간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직업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얼굴.
“오래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거짓말.”
“이번엔 왜요.”
“캔커피 두 개가 이미 준비돼 있잖아요.”
시우는 하나를 건넸다.
“그럼 적발된 김에 드리죠.”
“고맙습니다.”
나래는 캔을 받아 들고 웃었다.
“병원 앞에서 캔커피 들고 있는 남자, 생각보다 괜찮네요.”
“생각보다라는 말이 좀 걸립니다.”
“원래 기대치 관리는 중요하니까요.”
“간호사님은 사람을 칭찬하면서 꼭 한 군데씩 찌르십니다.”
“그래야 덜 민망하잖아요.”
둘은 천천히 병원 옆길로 걸었다.
혜원대병원 뒤편으로는 작은 공원과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오래된 벚나무 몇 그루와 운동기구, 벤치, 드물게 담배 피우는 보호자들. 서울 어디에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특별하지 않은 길일수록 사람은 마음을 더 쉽게 내려놓기도 한다. 대단한 풍경 앞에서는 오히려 말이 꾸며지기 쉽다.
밤공기는 아직 서늘했다.
캔커피는 따뜻했고, 둘의 걸음은 느렸다.
“교수님은 어떠셨어요, 나오기 전에?” 시우가 물었다.
“조금 안정되셨어요. 근데…” 나래는 말을 고르다 이어갔다. “많이 남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군요.”
“이상하게 요 며칠은 다들 빨라요.”
“다들이요?”
“네. 윤 교수님도 그렇고, 민하도 그렇고… 병동 다른 환자분들까지요. 꼭 무슨 계절이 한꺼번에 기우는 느낌이에요.”
“봄인데도요.”
“그러니까 더 이상하죠.”
시우는 그 말을 들으며 길가에 떨어진 목련 꽃잎을 봤다.
희고 커서 멀리선 단단해 보이지만, 땅에 떨어지면 금세 갈색 얼룩이 번진다. 꽃도 사람과 비슷했다. 가장 환한 때가 가장 연약한 때인 경우가 많다.
“민하는 오늘 어떻게 지냈습니까?”
“밥은 반밖에 안 먹었고, 주사 맞을 때는 씩씩한 척했는데 사실 많이 아파했어요.”
“어른 같다가도 애군요.”
“애죠. 아주 애예요.”
나래는 미소를 지었다.
“근데 또 가끔은 너무 먼 데서 말하는 것 같아요. 그게 힘들어요.”
“무슨 뜻인지 압니다.”
“아시겠어요?”
“네. 아이가 아이 같아야 안심이 되는데,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오히려 어른이 겁이 나죠.”
“맞아요.”
잠시 둘 다 말이 없었다.
멀리서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가 났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천천히 일어나 걸어갔다. 남편은 아내보다 느렸고, 아내는 그 속도에 맞춰 같이 느려졌다. 사랑은 가끔 그런 데서 보인다. 거창한 고백보다 걸음 속도에서.
“한시우 씨.”
“네.”
“오늘은 장례식장 얘기 안 해도 돼요?”
“싫으십니까?”
“아뇨. 근데 계속 죽음 얘기만 하면 너무 직업윤리적인 데이트 같아서요.”
시우는 캔커피를 마시다 잠깐 기침했다.
“지금 이걸 데이트라 부르십니까.”
“아닌가요?”
“그건…”
“또 늦게 인정하려고 하시네요.”
나래는 웃으며 앞을 봤다.
그 웃음은 가볍지만, 가벼워서 더 진심 같았다. 너무 무게를 주면 오히려 사람이 도망갈 때가 있다. 중요한 말일수록 살짝 비켜서 해야 제대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간호사님은 참 성급하군요.”
“성급한 게 아니라, 늦는 게 싫은 거예요.”
“그 둘은 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나래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급한 건 준비 안 됐는데 먼저 달려가는 거고, 늦는 건 이미 알고 있는데도 안 가는 거예요.”
그 문장은 시우의 가슴 어디쯤을 조용히 건드렸다.
이미 알고 있는데도 안 가는 것.
그는 많은 순간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 외로워하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자기가 슬프다는 걸 알면서도 기능적으로 정리했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생기면 그 가능성 자체를 늦췄다. 늦추면 덜 다칠 줄 알았다. 하지만 대개 늦춤은 상처를 피하게 해주지 않는다. 그저 장면을 놓치게 만들 뿐이다.
“그럼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시우가 말했다.
“네.”
“간호사님은 지금 준비됐습니까?”
“뭐에요?”
“달려가는 데.”
나래는 조금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그럼 저를 성급하다고 할 수는 없겠군요.”
“아니요. 저는 제가 준비됐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가보는 편이에요.”
“그건 꽤 위험한 태도 아닙니까.”
“맞아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근데 저, 안전한 태도로 별로 행복했던 적이 없어서요.”
시우는 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했다.
나래와 있으면 이상한 말을 자꾸 진실처럼 하게 됐다. 원래는 장례 절차, 유족 위로, 사무적인 질문과 대답에 익숙한 사람인데, 그녀 앞에서는 자기 안의 다른 층이 자꾸 올라왔다. 묻지 않던 걸 묻게 되고, 인정하지 않던 걸 인정하게 됐다.
“그럼 저도 하나 말하죠.”
“해보세요.”
“전 지금 간호사님이 꽤 좋습니다.”
나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아주 잠깐 숨이 끊긴 것처럼 보였다.
곧 그녀는 앞을 본 채로 물었다.
“꽤요?”
“너무 빠르면 놀라실까 봐.”
“배려가 묘하게 소심하네요.”
“장례식장 쪽 사람은 신중합니다.”
“아, 이럴 때도 직업정신을.”
“의외로 유용합니다.”
“그럼 저도 말할게요.”
“말해보시죠.”
“전 한시우 씨가 꽤보다 좀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엔 시우가 걸음을 아주 조금 늦췄다.
나래는 그를 보지 않았다. 대신 목련나무 가지 위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사람은 중요한 말을 할 때 정면보다 옆을 보는 경우가 있다. 상대가 부담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도 있고, 자기 마음이 자기 얼굴에 다 드러날까 봐 그런 것도 있다.
“그렇군요.”
“그 반응은 좀 별론데요.”
“어떤 반응을 원하십니까.”
“최소한 조금은 놀라거나.”
“놀랐습니다.”
“티가 안 나요.”
“장례식장 쪽 사람은…”
“아, 또 직업 핑계.”
둘은 동시에 웃었다.
한참 웃고 난 뒤, 나래가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무섭기도 해요.”
“왜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좀 더 살아 있는 것 같아지잖아요.”
“네.”
“그게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병원에서 너무 자주 끝을 보니까.”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이해가 됐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동시에 잃을 가능성을 떠안는 일이기도 하다. 끝을 많이 본 사람일수록 시작 앞에서 더 망설인다. 시작은 아름답지만 취약하다. 막 피어난 꽃이 제일 쉽게 상하듯이.
“전 오히려 반대입니다.”
“뭐가요?”
“전 시작보다, 시작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더 무섭습니다.”
나래는 그를 봤다.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원래는 안 그랬죠.”
“그럼 왜 바뀌었어요?”
“요즘 자꾸 죽는 사람들보다, 못 산 사람들 얼굴이 더 오래 남아서요.”
“……”
“그리고 간호사님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래는 말없이 웃었다.
그 웃음엔 부끄러움과 기쁨이 같이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드러나는 사람의 행복은 보기 좋다. 세상엔 과장된 감정보다 절제된 기쁨이 더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둘은 공원 끝 벤치에 앉았다.
멀리 도로 불빛이 지나가고, 나무 사이로 병원 건물 일부가 보였다. 높은 창문들엔 불이 켜져 있었고, 그 안 어딘가에 윤태식과 민하가 있었다. 살아 있음과 죽어감, 좋아함과 두려움, 질문과 생활이 모두 한밤중의 서울 안에 함께 있었다.
“김준서 씨 얘기, 자꾸 생각나요.” 나래가 말했다.
“저도요.”
“왜 그 사람은 그 질문을 그렇게 오래 붙들었을까요.”
“적응이 안 됐겠죠.”
“세상에?”
“아마도.”
“사랑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요.”
시우는 그녀를 봤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마지막 메일 문장 때문에요.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잊고 있던 것이 돌아오냐’고 했잖아요. 그런 질문은 대개 실제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와요.”
“본인에게는 아직 아니라고 했죠.”
“그 문장, 왠지 거짓말 같았어요.”
“왜요?”
“사람은 자기 마음이 너무 커지면 꼭 그런 식으로 말해요. ‘아직은 아니다’, ‘별건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간호사님도 그렇습니까?”
“네.”
나래는 캔커피를 내려다봤다.
“저도 예전에 그랬어요.”
시우는 기다렸다.
나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말했다.
“스물여섯 때요. 같은 병원은 아니고 다른 데서 일할 때였는데, 응급실에서 자주 마주치던 레지던트가 있었어요. 엄청 무뚝뚝하고, 체력은 늘 바닥이고, 말은 퉁명스럽고. 별로 안 친했는데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왜요?”
“이상하게 슬퍼 보여서.”
“슬퍼 보여서 좋아졌습니까?”
“처음엔 걱정이었죠. 근데 걱정이 오래 가면 좀 위험하잖아요.”
“대개 그렇죠.”
“어느 날 그 사람이 보호자한테 엄청 욕을 먹었어요. 살리려고 끝까지 했는데도 못 살린 환자 때문에. 그 사람은 그냥 서서 다 듣고 있더라고요. 변명도 안 하고.”
“억울했겠군요.”
“네. 그래서 제가 끝나고 커피를 줬어요.”
“그랬더니?”
“받으면서 이랬어요. ‘간호사 선생님은 왜 남 일처럼 안 봐요’라고.”
“좋은 질문이군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나래는 웃지 않았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의 촉감이 남아 있었다.
“몇 달쯤 지나서 그 사람도 저 좋아하는 것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근데 둘 다 바빴고, 피곤했고, 조심스러웠고… 무엇보다 병원 사람들은 이상하게 마음을 늦게 말해요. 매일 끝을 보니까 오히려 시작엔 겁을 내요.”
“그래서요.”
“그러다 그 사람이 지방 수련으로 옮기게 됐어요. 마지막 날에 밥 한번 먹자고 했는데, 제가 당직이었거든요. 다음에 보자고 했죠.”
“못 봤습니까.”
“네. 다음이 없었어요.”
시우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사고가 났어요?”
“아니요. 그냥… 거기서 다른 사람을 만났대요.”
나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사람은 살아 있었고, 잘 살았고, 저는 가끔 생각만 했죠. 웃기죠? 죽은 것도 아닌데 상실처럼 남는 사랑이 있다는 게.”
“웃기진 않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늦는 것도 관계를 죽일 수 있구나.”
“그래서 지금은 늦는 게 싫군요.”
“네.”
시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의 과거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질투보다 슬픔을 먼저 느꼈다. 나래가 혼자 견뎠을 그 뒤늦음, 그 미묘한 허무,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조차 완결 없는 상실을 겪는 감각. 그것은 죽음과 다른 종류의 이별이었다. 더 애매해서 오히려 오래 간다.
“한시우 씨는요?” 나래가 물었다.
“저도 있었습니다.”
“아.”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도 해줘요.”
“별로 안 재밌습니다.”
“상관없어요.”
시우는 잠시 하늘을 봤다.
도시 하늘은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비행기 불빛 하나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은 별을 못 봐도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믿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마음은 종종 더 오래된 빛을 필요로 한다.
“스물아홉쯤이었습니다. 장례식장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네.”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이름은 이현서였고요. 미술 학원에서 애들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예전엔 별생각 없었는데, 다시 보니까 좋더군요.”
“왜요?”
“밝아서요.”
“또 슬픈 사람은 아니었네요.”
“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너무 멀쩡하고, 잘 웃고, 밥도 잘 먹고, 계절 바뀌면 꽃 보러 가자 하고.”
나래가 피식 웃었다.
“좋은 사람이었네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과거형이 아픈데요.”
“그렇군요.”
시우는 손에 쥔 빈 캔을 천천히 굴렸다.
“그 사람이 저한테 한 번 그랬습니다. ‘너는 다정한데 계속 반 발짝 뒤에 있다’고.”
“맞는 말이네요.”
“네. 저도 알았습니다.”
“근데 안 바뀌었고.”
“네.”
“왜요?”
“무서워서요.”
“잃을까 봐?”
“아뇨. 진짜로 시작될까 봐.”
나래가 조용히 그를 봤다.
“전 그때까지 상실을 너무 많이 겪은 뒤였어요. 부모님도 먼저 가셨고, 일은 맨날 죽음 근처였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을수록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까지 내 삶 깊숙이 들어오면, 또 끝날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거리 둔 거군요.”
“네. 그 사람은 처음엔 기다려줬습니다. 근데 사람이 계속 반 발짝 뒤에 있으면, 옆 사람은 결국 자기 혼자 걷는 기분이 들죠.”
나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시작을 못 했습니다.”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은 마지막에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좋은 사람이지만, 같이 살아갈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프네요.”
“맞는 말이라 더 아팠죠.”
“그 뒤로는요?”
“일에 더 들어갔습니다. 기능적으로 살기엔 그게 제일 편하니까.”
나래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한시우 씨는 원래 삶보다 애도를 먼저 배운 사람이네요.”
그 말은 부드러웠지만, 너무 정확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 좀 힘들겠어요.”
“뭐가요.”
“좋아지는 거.”
시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네. 조금.”
“그래도 가볼래요?”
“네.”
“왜요?”
“간호사님 말대로, 이미 알고 있는데 안 가는 건 늦는 거니까.”
나래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네요.”
잠시 후 그녀가 아주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벤치 위에 올려놓았다.
의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거리였다. 하지만 애매함은 때로 부탁이 된다. 먼저 다가와도 좋다는.
시우는 몇 초쯤 그 손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정말 천천히 자기 손을 그 위에 올렸다.
따뜻했다.
손을 잡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한다. 좋아한다는 말, 무섭다는 말, 그래도 해보겠다는 말, 오늘은 늦지 않겠다는 말. 말로 하면 오히려 과장될 것들이 손바닥에서는 조용히 전달된다. 인간이 왜 끝까지 체온을 필요로 하는지, 시우는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몸은 가끔 영혼보다 먼저 이해한다.
나래는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둘은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멀리 응급실 쪽에서 구급차 소리가 났고, 공원 가로등 아래 나방 한 마리가 맴돌았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복잡하고 설명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마치 수많은 질문이 잠깐 한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것처럼.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잊고 있던 게 돌아오냐고 했죠.” 나래가 말했다.
“네.”
“전 조금 알 것 같아요.”
“뭘요.”
“완전히 적응하면서 살던 삶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거.”
“낯설어진다는 게.”
“아무렇게나 못 살겠는 거예요. 말도 함부로 못 하고, 시간을 대충 못 쓰고, 내일이 무한한 것처럼 행동하기 어려워지고.”
“그건 좋은 변화 아닙니까.”
“좋죠. 근데 피곤하죠.”
나래가 웃었다.
“사랑은 사람을 성실하게 만들잖아요. 그래서 힘들어요.”
“간호사님은 사랑을 이상하게 설명합니다.”
“장례식장 팀장님도 만만치 않아요.”
“그럼 전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해보세요.”
“사랑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병이다.”
나래는 그 문장을 조용히 따라 삼킨 듯했다.
“그리고?”
“그리고 아마, 그 병이 있어야 사람이 진짜로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나래의 손끝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한시우 씨.”
“네.”
“우리 지금 너무 빨리 깊어지는 거 아닐까요?”
“병원과 장례식장은 원래 시간을 단축시킨다 하셨잖습니까.”
“그랬죠.”
“게다가 요즘은 다들 늦는 중이라면서요.”
“맞아요.”
“그럼 지금은 깊어질 수 있을 때 조금 깊어지는 쪽이 맞겠습니다.”
나래는 웃음을 참듯 고개를 숙였다.
“진짜 문장 잘 만드네요.”
“직업병입니다.”
“그 직업병, 계속 유지해주세요.”
“노력해보죠.”
그때 나래의 휴대폰이 울렸다.
둘은 동시에 현실로 돌아왔다.
나래가 화면을 보자 표정이 곧바로 달라졌다. 직업의 얼굴이 돌아오는 건 빠르다. 특히 의료진은 더 그렇다.
“병동이에요.”
“받으시죠.”
나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서나래입니다… 네… 지금요?”
그녀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졌다.
“알겠어요. 바로 들어갈게요.”
전화를 끊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일입니까?”
“민하가… 갑자기 호흡이 떨어졌대요.”
시우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래도 벌떡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다른 종류의 긴장으로 바뀌었다.
둘은 거의 뛰다시피 병원 쪽으로 향했다.
밤 공기가 차갑게 얼굴을 스쳤고, 자동문이 열리며 형광등 빛이 쏟아졌다. 평범했던 로비는 다시 다급한 장소가 됐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끝, 올라가는 짧은 시간, 나래의 굳은 옆얼굴, 시우의 가빠지는 심장.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밥을 먹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한 아이의 숨은 얇아지고 있다. 세상은 늘 이렇게 여러 층으로 동시에 움직인다. 그래서 잔인하고,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설명하기 어렵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둘은 소아병동으로 뛰었다.
복도 끝, 민하의 병실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문턱에서,
한시우는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어떤 문은 천천히 열리고,
어떤 문은 너무 빨리 열린다.
제6장. 어떤 문은 너무 빨리 열린다
민하의 병실 앞에는 이미 몇 사람이 서 있었다.
당직 의사, 간호사 둘, 보호자로 보이는 중년 여자, 그리고 침대 끝에 매달리듯 서 있는 작은 인형 하나. 정확히는 인형이 아니라, 민하가 늘 안고 다니던 낡은 토끼 가방이었다. 병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낮고 빠른 지시가 오갔다.
“산소 올리고.”
“네.”
“민하야, 들리니?”
“맥박 체크.”
“보호자분은 잠깐 밖에서…”
서나래는 거의 뛰듯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까지 벤치에서 손을 잡고 웃던 여자는 사라지고, 대신 온몸이 한 사람의 숨을 붙드는 방향으로 정렬된 간호사가 있었다. 직업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어떤 사람의 본질을 숨기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래는 후자였다. 다정함이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기술이자 결심이라는 것이 그 순간 또렷이 보였다.
한시우는 문 앞에서 더 들어가지 않고 멈췄다.
그는 의료인이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을 자주 보긴 했지만, 붙드는 쪽은 아니었다. 장례지도사는 문이 닫힌 뒤의 일을 맡는다. 그러니 이런 순간엔 늘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뒤 처음 보는 그녀의 절박한 뒷모습 때문이었는지, 민하의 숨이 너무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민하 엄마는 병실 밖 벽에 기대 선 채 손등을 입에 대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지만 소리는 거의 없었다. 아이가 아주 아프면 부모는 크게 울지 못한다. 자기 울음소리가 아이의 숨을 더 힘들게 할까 봐, 혹은 지금은 울 시간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 대신 얼굴이 무너진다. 어른의 얼굴이 자기 통제를 잃는 걸 보면, 그게 더 슬프다.
시우가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그 말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는 알았다.
그래도 인간은 무력하다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다. 말은 종종 해결보다 동행을 위해 존재한다.
민하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결국 저었다.
“아니요.”
그 한마디는 너무 정직해서, 오히려 이상하게 단단했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괜찮았거든요.”
그녀는 끊기는 숨으로 말했다.
“밥은 별로 안 먹었지만, 장난도 치고… 나래 선생님한테 자꾸 이상한 소리도 하고… 그런데 갑자기… 갑자기…”
사람은 비극 앞에서 자꾸 “갑자기”를 반복한다.
실은 갑자기가 아닐 때도 많다. 병은 오래 진행됐고, 징후는 있었고, 끝은 서서히 오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은 늘 늦는다. 그래서 끝은 언제나 갑자기다.
“의사 선생님이 지켜보겠다고 하셨어요.” 시우가 말했다.
“지켜보면… 나아질 수 있나요?”
그 질문에는 희망이 아니라 거의 예의가 남아 있었다.
이제 곧 안 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아직은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묻는 식의 질문.
시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아주 낮게 말했다.
“지금은 곁에 계시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건 진실이었다.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놀랄 만큼 단순해진다. 기술, 명예, 계좌, 체면, 말다툼, 자존심이 뒤로 밀리고, 결국은 누가 옆에 있었는지가 남는다. 삶의 모든 복잡함은 끝에 가면 대개 관계의 형태로 환원된다.
병실 안에선 산소 마스크 소리와 기계음이 이어졌다.
시우는 문틈으로 민하를 잠깐 봤다.
아이는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낮에 놀이방에서 블록으로 문을 만들던 아이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인간은 아프면 갑자기 나이가 지워진다. 아이도 노인도, 몸이 너무 약해지는 순간엔 그냥 연약한 존재 하나로 남는다.
그런데도 민하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우를 보고 있었다.
문 앞에 선 그를.
아이의 눈빛은 흐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또렷해서, 시우는 순간 자기가 잘못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민하가 지금 보고 있는 건 그의 얼굴이 아니라, 그 안쪽 어딘가인 것처럼.
민하가 산소 마스크 너머로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오라는 뜻 같았다.
시우는 잠깐 망설였다.
당직 의사와 나래가 동시에 아이 상태를 보고 있었지만, 민하의 시선이 계속 자기에게 머물자 나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짧게, 들어와도 된다는 눈짓을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민하 침대 곁에 섰을 때, 아이는 힘겹게 마스크를 조금 들썩였다. 나래가 손을 얹어 말렸다.
“민하야, 무리해서 말하지 마.”
민하는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그리고 시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너무 가벼워 보여서, 시우는 조심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뜨거웠다.
아픈 아이의 열은 이상하다. 생명이 활발해서 뜨거운 게 아니라, 몸이 마지막 힘으로 타오르는 쪽의 열기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손을 잡는 사람이 더 겁난다.
민하가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시우는 몸을 낮췄다.
“응.”
“문…”
“문?”
“열리면… 무서워도… 가지 마…”
말이 끊겼다. 산소 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래가 아이 어깨를 받치며 말했다.
“민하야, 숨부터 쉬자. 지금은 말하지 말고.”
민하는 억지로 다시 말했다.
“아니… 가야 해…”
시우는 더 가까이 귀를 댔다.
“어디를?”
“좋아하는 쪽으로…”
그 말은 거의 입김처럼 빠져나왔다.
나래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의사는 계속 맥박과 포화도를 확인하고 있었지만, 병실 안 공기는 이미 다른 차원의 긴장으로 넘어가 있었다. 붙드는 일이 진행되는 동시에, 누군가는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마 끝이 멀지 않다는 것을.
민하 엄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민하야, 엄마 여기 있어. 엄마 봐.”
민하는 아주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믿기 어려울 만큼 또렷한 눈으로 엄마를 봤다.
“엄마.”
“응, 엄마 여기 있어.”
“미안해 하지 마.”
“무슨 소리야, 아가. 엄마가 왜.”
“엄마… 나 데려온 거… 잘한 거야.”
민하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너질 듯 얼굴을 감쌌다.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말… 엄마 싫어…”
아이는 다시 힘겹게 숨을 들이켰다.
“여기… 아픈 것도 있었는데… 좋은 것도 많았어…”
눈물이 마스크 안쪽에 차올랐다.
“딸기우유… 여름 냄새… 나래 쌤 손… 엄마 웃긴 얼굴…”
민하 엄마는 울면서 웃었다. 정확히는 울음과 웃음이 한 얼굴에서 동시에 났다. 인간이 감정의 경계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은 늘 진심이다.
“그리고…”
민하가 숨을 골랐다.
“아저씨도.”
시우는 말하지 못했다.
자신은 이 아이를 몇 번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그 말이 이상하게 너무 크게 들어왔다. 사랑이나 애착은 꼭 시간의 양으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어떤 만남은 짧아도 사람 안에 깊게 들어온다. 특히 경계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 그렇다.
민하는 다시 마스크를 꼭 붙들고 숨을 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웃었다.
아픈 와중에도 웃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정말 웃고 있었다. 아주 작고, 그러나 분명한 웃음.
“나래 쌤.”
나래가 눈물을 참고 대답했다.
“응, 민하야.”
“쌤… 자꾸 보내는 사람 아니야…”
“……”
“같이 가는 사람이야… 알았지?”
나래는 더는 대답을 못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환자 앞에서 울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노력의 가장자리까지 와 있었다.
민하의 시선이 다시 윤곽을 잃기 시작했다.
의사가 짧고 조용한 지시를 했고, 간호사가 움직였다. 숫자와 의학적 판단이 오갔지만, 시우는 그 모든 것이 멀리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 손에 쥔 아이 손의 체온만 또렷했다.
민하는 마지막으로 아주 힘겹게 속삭였다.
“태어날 때… 왜 우는지… 알지?”
시우가 가까이 대답했다.
“기억나서.”
민하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나갈 땐… 안 울어도 돼…”
그 말이 끝나고, 방 안의 시간이 한 번 꺾였다.
기계음이 달라졌고, 의사가 더 낮고 빠르게 말했다.
나래가 이름을 불렀고, 엄마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매달리듯 앞으로 나왔다. 몇 분인지 몇 초인지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붙들었고, 불렀고, 확인했다. 삶은 끝나는 순간까지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인간은 마지막 한 점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어떤 문은 너무 빨리 열린다.
그리고 결국,
의사는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병실 안엔 소리가 많았는데, 동시에 모든 소리가 멎은 것 같았다.
민하 엄마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었고, 나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벽에 손을 짚었다. 시우는 여전히 민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 열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던 작은 체온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이쪽의 것이 아니게 되어갔다.
그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선명한 슬픔을 느꼈다.
이 아이는 정말 무언가를 알고 있었을까.
정말 다시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 모든 말이 단지 아픈 아이의 상상에 불과했다 해도, 어째서 그토록 많은 어른들의 가슴을 정확히 찌를 수 있었을까.
정답은 여전히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위로했다.
엄마를, 나래를, 그리고 이상하게도 자신을.
그것만은 분명했다.
민하의 몸을 정리하고 보호자에게 시간을 드린 뒤, 병동 복도는 더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큰일이 지나간 직후에 오히려 작은 소리로 움직인다. 문 여는 소리, 발걸음, 서류 넘기는 소리까지 낮아진다. 마치 현실이 너무 크게 깨졌기 때문에, 그 다음엔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나래는 보호자실에서 한참 있다가 나왔다.
눈가가 붉었지만, 울음은 이미 안쪽으로 접어 넣은 상태였다. 그런 얼굴을 시우는 잘 알았다. 아직 무너지지 말아야 하는 사람의 얼굴.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무너질 사람의 얼굴.
“괜찮습니까.” 시우가 물었다.
나래는 대답 대신 짧게 웃었다.
“오늘 그 질문, 아무한테나 하지 마세요.”
“왜요.”
“하나도 안 괜찮은데 자꾸 괜찮다고 하게 되거든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복도 끝 창문 앞에 나란히 섰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이 병동에서 한 아이가 방금 숨을 멈췄는데도, 도시는 끄떡없이 불을 켜고 있었다. 누군가는 야식을 먹고,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드라마를 보고, 누군가는 키스하고,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출산 중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누군가의 끝과 무관하게 계속된다. 그것이 잔인하고, 또 때로는 구원이다. 나 한 사람의 비극 때문에 세계까지 멈춘다면 인간은 더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민하 엄마가 계속 그랬어요.” 나래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내가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부모들은 자꾸 자기가 아이를 고통으로 밀어 넣은 것 같아 하거든요.”
“민하가 마지막에 그 말 했죠.”
“네. ‘잘한 거야’라고.”
나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열두 살짜리가.”
“어쩌면 열두 살이 아니라서일 수도 있죠.”
나래는 그를 돌아봤다.
“그 말, 오늘은 반박 못 하겠네요.”
“저도 오늘은 확신까진 못 갑니다. 다만…”
“다만?”
“그 아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보다 덜 헷갈려 보였습니다.”
나래의 눈이 다시 젖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전 붙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근데 민하 말대로라면, 저는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가는 사람일 뿐이잖아요.”
“그게 왜 덜한 겁니까.”
“덜한 것 같아서요. 지키지 못한 것 같고.”
“아닙니다.”
시우는 그녀를 똑바로 봤다.
“사람은 누구도 끝까지 붙들 수 없습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가족도. 할 수 있는 건 같이 있어주는 거죠. 끝까지 혼자 아니게 해주는 것.”
나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충분할까요.”
“인간에게는 그게 거의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그는 자기 말이 위로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둘 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종종 위로가 되지 못하지만, 아주 드물게는 된다. 특히 이미 끝난 일을 두고 자신을 벌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더 그렇다.
나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시우 씨.”
“네.”
“저 오늘은 집에 혼자 가기 싫어요.”
시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 혼자 안 가면 됩니다.”
“너무 쉽게 말하네요.”
“쉬운 일은 쉽게 말해야죠.”
“그럼… 조금만 같이 있어줄래요?”
“네.”
둘은 병원 근처 24시간 국밥집에 들어갔다.
밤이 깊을수록 국밥집은 묘하게 정직해진다. 술 취한 손님, 야근 끝난 사람, 보호자, 기사, 학생, 혼자 온 중년 남자, 서로 말없이 밥만 뜨는 커플. 인간은 힘들 때 뜨거운 국물을 찾는다. 그건 문화이기 전에 거의 본능 같다. 몸을 달래면 마음도 조금 늦게 무너지니까.
나래는 뚝배기에서 오르는 김을 한참 보았다.
시우도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둘 다 배가 고프다기보다,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먹는 쪽에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큰 슬픔 뒤엔 배가 고플 때가 있다. 몸은 끝까지 살아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민하가 딸기우유 얘기했잖아요.” 나래가 말했다.
“네.”
“걔 맨날 딸기우유 먹고 싶다 했어요. 근데 항암할 땐 잘 못 먹었거든요.”
“좋아했군요.”
“엄청요. 빨대로 조금씩 먹으면서도 행복해했어요.”
나래는 웃다가 금세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럴 때마다 너무 이상해요. 사람이 이렇게 쉽게 없어질 수 있는데, 딸기우유 같은 건 왜 이렇게 선명하게 남는지.”
“삶이 원래 그렇죠.”
“뭐가요.”
“거대한 의미보다 사소한 감각들이 더 오래 남습니다. 냄새, 손, 컵 모양, 웃는 소리.”
“그건 좀 다행이네요.”
“왜죠.”
“우주가 너무 거창하기만 하면 견디기 힘들잖아요.”
나래는 국물을 조금 떠먹고 덧붙였다.
“그래도 딸기우유는 이해할 수 있으니까.”
시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이 여자는 슬픔 한가운데서도 늘 삶 쪽의 사소함을 놓지 않았다. 그게 그녀의 품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철학보다 식은 국밥, 딸기우유, 손의 온기 같은 것들이 사람을 다시 이쪽에 묶어 둔다.
“윤 교수님이 말한 것도 그거였던 것 같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뭐가요.”
“생활을 버리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밥 먹고, 일하고, 잠 자는 일을 형이상학보다 덜 고귀하게 보지 말라고.”
“맞아요.”
“오늘 더 이해됐습니다.”
“왜요.”
“질문이 너무 커도 사람은 망가지니까요. 민하 같은 아이가 죽은 날에도 누군가는 국밥을 먹고,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살아야 하니까.”
그 말 뒤에 둘은 잠시 국밥만 먹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물을 따라주고 갔고, 옆 테이블에선 기사 둘이 조용히 축구 얘길 했다. 세상은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비극 옆을 지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오늘은 덜 얄미웠다. 오히려 필요해 보였다. 모든 것이 의미와 상실로만 차 있다면 사람은 숨을 못 쉰다. 사소함은 인간의 구조물이다.
“민하가 마지막에 그랬죠.” 나래가 말했다.
“나갈 땐 안 울어도 된다고.”
“네.”
“그 말이 자꾸 생각나요.”
나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태어날 때 운다고 했잖아요. 기억나서. 그럼 죽을 때는 왜 안 울어도 되는 걸까요.”
시우는 잠시 생각했다.
“다시 알게 되니까 아닐까요.”
“뭘요.”
“어디서 왔는지.”
나래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 말, 너무 아름다워서 더 무서워요.”
“맞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렇죠.”
그녀는 한참 손가락으로 물컵 표면의 물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한시우 씨는 죽음이 덜 무서워졌어요, 아니면 더 무서워졌어요?”
시우는 정직하게 답했다.
“더 복잡해졌습니다.”
“복잡해졌다는 건.”
“끝이라고만 생각할 때는 차라리 단순했습니다. 슬프고 두렵지만 명확하니까. 그런데 만약 정말로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는 거라면…”
“그럼?”
“삶이 훨씬 더 중요해집니다.”
나래는 그를 가만히 봤다.
“왜요?”
“여기가 그냥 잠깐의 착각이 아니라 회복의 장소라면, 우리가 여기서 한 선택들이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게 되니까요.”
“사랑도요?”
“특히 사랑이요.”
나래는 웃지 않았다.
대신 눈빛이 아주 천천히 부드러워졌다.
“그럼 더 늦으면 안 되겠네요.”
“네.”
“우리요?”
시우는 대답 대신 그녀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국밥집 형광등 아래에서 그 동작은 지나치게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대단한 장소가 아니라서. 인간의 중요한 일들이 꼭 아름다운 배경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나래가 손을 뒤집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근데 무서울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압니다.”
“좋아하는데도요.”
“좋아하니까 더.”
“그럼 어떡하죠.”
“민하 말대로 해야죠.”
“좋아하는 쪽으로 가요?”
“네.”
나래는 아주 작게 웃었다.
웃다가, 이번엔 정말 울었다.
눈물이 조용히 떨어졌다. 요란하지 않고, 숨을 참고 있다가 결국 넘쳐난 사람의 울음이었다. 민하를 보낸 슬픔, 붙들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좋아하게 된 사람 앞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는 안도감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했다.
시우는 말없이 그녀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어깨가 닿았다.
인간은 가끔 설명보다 기대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국밥집에서 나온 뒤, 시우는 나래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그녀가 사는 곳은 병원에서 버스로 열다섯 분쯤 떨어진 오래된 주택가였다. 골목은 조용했고, 1층 빵집은 이미 문을 닫았고, 가로등 아래엔 작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서울의 이런 골목은 늘 조금 외롭고, 그래서 좋다. 누군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지는 풍경이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나래가 말했다.
“저도요.”
“뭐가요?”
“같이 있게 해줘서.”
나래는 잠깐 그를 올려다봤다.
“한시우 씨는 가끔 너무 정직해서 좀 위험해요.”
“좋은 의미입니까.”
“네. 아주.”
그녀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멈췄다.
“내일도 오죠?”
“병원에요?”
“네. 그리고… 저한테도.”
시우는 낮게 웃었다.
“갑니다.”
“이번엔 늦지 말고요.”
“노력하겠습니다.”
“노력 말고.”
“알겠습니다. 안 늦겠습니다.”
나래는 문을 열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별다른 망설임 없이, 아주 짧게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시우는 숨이 멎는 듯 가만히 섰다.
나래는 자기 행동에 스스로도 조금 놀란 듯 웃었다.
“이건 성급한 건가요, 늦지 않은 건가요?”
시우는 잠시 후에야 답했다.
“정확한 타이밍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아주 작게 손을 흔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시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민하가 죽었고, 나래는 울었고, 자신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인정했고, 국밥집에서 손을 잡았고, 집 앞에서 입맞춤을 받았다. 기쁨과 슬픔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날은 드물다. 그런데 어쩌면 인간의 진짜 날들은 원래 그런지도 모른다. 웃음과 상실, 체온과 부재, 삶과 죽음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문장 안에 같이 들어오는 날.
그는 밤길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민하는 마지막에 말했다.
나갈 땐 안 울어도 된다고.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마 이것일 것이다.
울어야 할 때 울고, 좋아해야 할 때 좋아하고, 늦지 않게 손을 잡는 것.
그리고 아무리 이 세계가 낯설어도, 그 낯섦 속에서 딸기우유와 국밥과 손의 온기 같은 것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
어쩌면 회복이라는 건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그런 사소한 것들을 다시 진심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가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소파에 앉았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윤정훈이었다.
시간은 밤 12시 18분.
시우는 바로 받았다.
“네.”
정훈의 목소리는 낮고 급했다.
“죄송합니다, 밤늦게.”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가 깨어나셨어요.”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요?”
“네. 그리고…”
정훈은 숨을 골랐다.
“김준서 씨 이름을 부르셨어요.”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정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사람은 아직 다 못 썼다’고.”
방 안 공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아직 다 못 썼다.
무엇을?
인생을?
질문을?
원고를?
혹은, 누군가에게 건네야 할 문장을?
시우는 이미 코트를 집어 들고 있었다.
밤은 깊었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날 생각이 없었다.
제7장. 아직 다 못 쓴 사람
밤 12시를 넘긴 서울은 두 얼굴을 한다.
하나는 이미 불을 끄고 잠든 사람들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사람들의 얼굴이다. 야근하는 사람, 응급실에 실려 오는 사람, 대리운전 기사, 편의점 알바, 새벽 배송 기사, 술에 취해 귀가하는 사람, 헤어진 뒤 혼자 걷는 사람.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의 이름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사람.
한시우는 후자였다.
차를 몰아 혜원대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밤의 도로는 낮보다 덜 막혔지만, 생각은 더 막혔다. 윤태식이 깨어나 김준서의 이름을 불렀다. 만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직 다 못 썼다”는 말은 더 이상했다.
‘다 못 썼다.’
문장을 쓰는 사람에게는 여러 의미가 있다.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기 삶의 어떤 장면을 끝내 적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혹은 인간이 자기 몫의 문장을 아직 다 살아내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윤태식이라면 셋 중 하나만 말했을 리 없었다. 늘 여러 층이 겹친 말을 하던 사람이니까.
병원 정문 앞에 차를 세웠을 때, 시우는 자기도 모르게 나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이 깨어나셔서 김준서 씨 이름을 불렀답니다. 병원에 갑니다.
곧 답이 왔다.
저도 갈게요. 아직 안 잤어요.
그 메시지를 보고 그는 아주 짧게 웃었다.
누군가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상황이 좋든 나쁘든 사람을 이상하게 덜 혼자이게 만든다.
윤정훈은 병동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넥타이는 풀어져 있었고, 셔츠 단추도 맨 위 두 개가 풀려 있었다. 머리카락은 손으로 몇 번 쓸어 넘긴 사람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낮의 그 단정하고 방어적인 얼굴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급함은 사람의 사회적 얼굴을 빨리 벗긴다.
“오셨군요.”
“상태는 어떻습니까?”
“다시 조금 가라앉긴 했는데… 잠깐 또렷했어요. 정말 잠깐.”
“김준서 씨 이름을 정확히 불렀습니까?”
“네. ‘준서는 아직 다 못 썼다’고. 그리고…”
정훈은 숨을 한번 고르고 이어 말했다.
“‘서랍 두 번째 칸’이라고도 했어요.”
시우의 눈빛이 변했다.
“무슨 서랍입니까.”
“저도 몰라요. 연구실인지, 집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 서랍인지.”
“더 말씀은 안 하셨고요?”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제가 몇 번 여쭤봤는데도 딴소리만 하시다가 다시 잠드셨고요.”
나래는 그때 도착했다. 밤에 급히 나온 차림이었다. 후드티 위에 롱코트를 걸쳤고, 머리는 풀어져 있었다. 병원에서 보던 단정한 간호사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오히려 더 사람 같았다. 눈 밑엔 피곤이 있었고, 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하는 눈빛엔 직업적 긴장도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정훈이 짧게 설명했다.
나래는 설명을 다 듣고 병실 쪽을 한번 본 뒤 조용히 말했다.
“지금 들어가도 돼요. 다만 오래는 안 됩니다.”
“교수님이 또 말씀하실까요?” 시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이런 순간은 예측이 잘 안 돼요. 갑자기 또렷해졌다가 금방 멀어지기도 하고.”
셋은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윤태식은 낮보다 더 작아 보였다.
사람은 몸이 무너지면 점점 ‘인물’에서 ‘존재’ 쪽으로 가까워진다. 교수, 아버지, 환자 같은 사회적 이름이 흐려지고, 숨 쉬는 한 생명체의 윤곽만 남는다. 그런데 그 약해진 얼굴 안에서도 어떤 정신은 마지막까지 기묘하게 살아 있다. 윤태식이 그랬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셋이 들어오자 아주 천천히 떴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시우를 알아봤다.
“왔구나.”
“네, 교수님.”
“늦지 않았네.”
시우는 심장이 묘하게 조여오는 걸 느꼈다.
“정훈 씨에게 김준서 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들었겠지.”
“그분을 아셨습니까?”
“거의.”
“거의?”
윤태식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사람은 늘 거의만 안다.”
나래가 침상 곁으로 다가가 상태를 살피며 낮게 말했다.
“교수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서 간호사.”
“네.”
“오늘 아이 갔지.”
나래의 손이 잠깐 멈췄다.
“네.”
“잘 배웅했네.”
나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입술을 다물고 고개만 숙였다.
윤태식은 다시 시우를 봤다.
“준서는 결국 못 왔군.”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알고 있어.”
“어떻게 아십니까?”
“보였으니까.”
정훈이 낮게 한숨을 삼켰다.
“아버지…”
윤태식은 아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훈아.”
“네.”
“넌 아직도 보이는 것만 사실이라 믿나?”
정훈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전… 모르겠습니다.”
“그게 시작이다.”
병실 안이 조용해졌다.
윤태식은 손가락을 아주 약하게 움직였다. 시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준서가 쓴 건 아직 끝나지 않았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문장.”
“원고입니까?”
“문장, 원고, 인생. 다 비슷하지.”
“어디에 있습니까?”
“서랍 두 번째 칸.”
“어디의 서랍입니까?”
“그 사람 집.”
시우는 숨을 멈추듯 가만히 있었다.
“준서 서재 책상입니까?”
윤태식이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쪽. 잠긴 칸.”
“비밀번호는요?”
윤태식은 눈을 감았다 떴다.
“아이 생일.”
“딸 수민이요?”
“응.”
“왜 그걸 교수님이 아십니까?”
“그 사람이 편지에 썼으니까.”
시우는 즉시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잠깐 막막했다. 정훈이 먼저 끼어들었다.
“아버지, 대체 김준서 씨랑 무슨 얘길 하신 거예요? 도대체 왜 그 사람 이름을…”
윤태식은 아들을 오래 바라봤다.
“정훈아.”
“네.”
“사람은 다 못 쓴 채로 죽는 경우가 많다.”
“……”
“그래서 남은 사람이 읽어줘야 할 때가 있어.”
“읽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죽은 사람은 덜 외로워지고, 산 사람은 덜 늦지.”
정훈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윤태식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지만, 이상하게 문장은 더 선명해졌다. 죽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불필요한 것을 다 잃고 핵심만 남기는 것 같았다. 남은 숨이 적으니 말도 정리되는 걸까. 인간이 원래는 다 그렇게 본질만 말할 수 있었는데, 살아가는 동안 군더더기를 너무 많이 붙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수님.” 시우가 물었다. “준서 씨도 정말 같은 걸 봤습니까?”
“조금.”
“하얀 공간을요?”
“응.”
“그게 뭡니까.”
윤태식은 눈꺼풀을 떨듯 움직였다.
“완전히 기억나진 않아.”
그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아직 이쪽에 있으니까.”
“그래도요.”
“기다리는 곳은 아니야.”
“그럼요.”
“풀어지는 곳도 아니고.”
“회복실입니까.”
“비슷해.”
“사람은 거기서 왔다가 다시 옵니까?”
“모두가 같진 않아.”
“그건 민하도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거의’라고.”
윤태식의 눈빛이 아주 잠깐 맑아졌다.
“그 아이는 멀리 봤어.”
“처음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맞아.”
“무슨 차이입니까.”
“처음인 자는 가볍고, 돌아온 자는 깊지.”
“깊다는 건요.”
“슬픔이 빨라.”
“……”
“사랑도 빨라.”
그 말은 너무 간단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돌아온 자는 슬픔이 빠르고, 사랑도 빠르다. 설명되지 않는 깊이와 설명되지 않는 상처를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웃다가도 더 빨리 무너지고, 오래 버티다가도 어떤 순간엔 이상할 만큼 쉽게 마음을 연다. 시우는 그 말이 자기 이야기처럼 들려서 불편했다.
“그럼 삶은 뭡니까.” 그가 다시 물었다.
윤태식은 오래 숨을 들이켰다.
“확인.”
“무엇을 확인하는 겁니까.”
“자기가 끝났을 때도 끝까지 잃지 않은 것.”
“사랑입니까?”
“주로는.”
“주로는?”
“가끔은 용기. 가끔은 용서. 드물게는 기쁨.”
나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고통은요.”
윤태식은 그녀 쪽을 봤다.
“고통은 벌이 아닐 수 있어.”
“그럼요.”
“남아 있는 금 간 데를 알려주는 거지.”
“왜 그렇게 아프게 알려줘야 하죠.”
“안 그러면 인간은 못 알아차리니까.”
나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 말이 위로인지 더 큰 절망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병동에서 매일 고통을 보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의미 없는 고장’만은 아니라는 말이 아주 조금의 버팀이 될 수도 있었다.
윤태식은 다시 시우를 향해 손가락을 아주 조금 들었다.
“서랍을 열어.”
“네.”
“그리고 읽어.”
“무엇을 읽습니까.”
“그 사람이 끝까지 못 쓴 이유.”
“왜 제가 읽어야 합니까?”
“자네도 비슷하니까.”
“무엇이.”
“아직 다 못 살았어.”
그 문장은 병실 공기를 천천히 가르며 시우에게 들어왔다.
아직 다 못 살았다.
그건 위로 같기도 하고, 판결 같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꽤 성실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성실함이 꼭 삶 자체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기능, 책임, 상실의 정리, 타인의 마지막을 위한 노동. 그런데 자신은? 그는 자기 몫의 문장을 실제로 살고 있었을까, 아니면 남의 문장 옆에서 교정만 하고 있었을까.
그때 윤태식의 시선이 느리게 아들 정훈에게로 옮겨갔다.
“정훈아.”
“네, 아버지.”
“돈 버는 거 나쁘지 않다.”
정훈은 뜻밖의 말에 잠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근데 그걸로 다 쓰려고 하진 마라.”
“……”
“인간은 돈으로 문장을 끝내지 못해.”
정훈의 눈가가 금방 젖었다.
“아버지, 저는…”
“알아.”
“정말요?”
“부족한 아들이 아니라, 겁 많은 아들이었지.”
정훈은 끝내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말은 너무 늦은 화해였고, 또 그래서 누구보다 정확한 화해였다.
윤태식은 마지막으로 나래를 봤다.
“서 간호사.”
“네.”
“보내는 일, 너무 혼자 짊어지지 마.”
나래의 입술이 떨렸다.
“네.”
“자네는 사람을 살리지 못해도, 사람답게 끝나게 해.”
그녀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잠시 뒤 윤태식의 눈은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까의 맑은 순간이 조금씩 물러가는 것이 보였다. 어떤 의식은 마지막에 문틈처럼 잠깐 열렸다가 금방 닫힌다. 아까보다 더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시우는 그것이 자기 욕심이라는 것도 알았다. 살아 있는 사람은 늘 더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의 시간은 점점 자기 쪽으로 접힌다.
“교수님.” 시우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
“죽으면 정말 기억납니까?”
윤태식은 거의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전부는 아니야.”
“그럼요.”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그는 잠들었다.
병실 밖으로 나온 셋은 한동안 말을 못 했다.
밤 두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고, 복도는 거의 비어 있었다. 자판기 불빛만 조용히 켜져 있었고, 멀리 어느 병실에선 보호자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의 새벽은 늘 세계의 가장 얇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잠든 자와 깨어 있는 자, 떠날 자와 남을 자, 믿는 자와 아직 믿지 못한 자가 모두 섞여 있는 시간.
정훈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저렇게 또렷하게 말씀하시는 거,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준서 씨 집, 다시 가야겠네요.”
“네.”
“지금 갈까요?”
나래가 그를 봤다.
“지금요?”
“전 지금 아니면 못 견딜 것 같아요.” 정훈은 솔직하게 말했다. “아침까지 기다리자니 이 밤이 너무 길어요.”
시우는 잠시 생각했다.
사실 그도 같았다. 어떤 문장은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커진다. 상상은 정보가 없을수록 과장된다. 무엇보다 윤태식이 아직 맑을 때 남긴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갑시다.” 그가 말했다.
나래는 둘을 번갈아 봤다.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당연하죠.” 정훈이 말했다. “사실… 혼자 보기 좀 무섭습니다.”
“저도요.” 나래가 담담하게 답했다.
셋은 병원을 나섰다.
새벽 공기는 더 차가웠다.
주차장 바닥엔 습기가 남아 있었고, 하늘은 아직 까맸지만 아주 먼 데서 새벽빛의 예고가 엷게 번지는 것 같았다. 밤이 가장 어두울 때도, 어딘가는 이미 다음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은 그걸 잘 모른 채 괴로워하곤 한다.
차는 시우가 몰았다.
정훈은 조수석, 나래는 뒷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각자 자기 생각에 잠긴 채 도로 불빛만 지나갔다. 라디오도, 음악도 없었다. 이런 밤엔 배경음이 오히려 거슬릴 때가 있다. 너무 많은 것이 이미 안에서 울리고 있어서.
한강을 건너는 동안 나래가 조용히 물었다.
“처음인 사람과 돌아온 사람, 정말 다를까요?”
정훈이 먼저 답했다.
“전 모르겠어요. 근데 아버지 말 듣고 나니까… 설명되는 부분이 있긴 하네요.”
“어떤 부분이요?” 나래가 물었다.
정훈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누구는 왜 그렇게 일찍부터 슬픈지.”
시우는 운전대를 잡은 채 가만히 들었다.
“전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무거운 애들이 싫었어요. 맨날 뭔가 다 아는 표정 짓는 애들 있잖아요. 세상 재미없다는 식으로 굴고.”
정훈은 피식 웃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허세가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애들은 그냥 너무 빨리 닳아 있는 걸지도.”
“민하처럼요.” 나래가 말했다.
“네.”
“한시우 씨는요?”
나래가 백미러 너머로 물었다.
“처음인 사람과 돌아온 사람, 어느 쪽 같아요?”
시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한강 다리 위 불빛이 차 안을 잠깐씩 스쳐 지나갔다.
“돌아온 쪽 같진 않습니다.”
“왜요?”
“너무 낯선 게 익숙해서.”
정훈이 작게 말했다.
“그거 꽤 답 같은데요.”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답은 아닙니다.”
“좋은 답은 아니어도 정확할 수는 있죠.” 나래가 말했다.
그 말 뒤로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김준서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 40분쯤이었다.
정훈은 유족에게 미리 연락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먼저 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깨어 있었다. 시우와 함께 서재에서 수첩을 봤던 일을 기억했고, 윤태식의 이야기를 들은 뒤 잠시 망설이다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말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도 남편이 끝까지 품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두려우면서도 알고 싶었는지 몰랐다.
문을 열어준 그녀는 눈이 많이 부어 있었다.
상복 대신 집에서 급히 걸친 가디건 차림이었고, 머리는 묶지도 못한 채 어깨에 흩어져 있었다. 평범한 새벽의 얼굴인데, 그 평범함 속에 상실이 깊게 들어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어차피 잠도 안 와서요.”
서재에 들어서자 밤의 방 냄새가 났다.
낮에 왔을 때와 같은 공간인데도 느낌이 달랐다. 새벽의 빈 집은 사람이 부재 중이라는 사실을 더 크게 드러낸다. 책상, 컵, 의자, 펜, 메모지 하나하나가 갑자기 ‘남겨진 것’이 된다.
시우는 책상 아래 두 번째 칸을 확인했다.
정말로 작은 잠금장치가 달린 서랍이었다. 낮엔 그냥 지나쳤던 부분이었다.
“수민이 생일이 몇 월 며칠입니까?” 시우가 물었다.
형수가 날짜를 말했다.
정훈이 그 숫자를 눌렀다.
찰칵.
서랍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열렸다.
안에는 두꺼운 노트 한 권, 흰 봉투 하나, 그리고 USB 메모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세 가지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가장 중요한 걸 오히려 놀랄 만큼 단순하게 숨긴다.
봉투 겉면에는 또박또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내가 먼저 죽으면, 이건 너무 늦지 않은 사람이 읽어주길.
네 사람 모두 한동안 그 글자를 보았다.
정훈이 먼저 중얼거렸다.
“너무 늦지 않은 사람…”
나래도 거의 속삭이듯 따라 말했다.
“이건 누구한테 쓴 걸까요.”
형수는 봉투를 보며 눈을 감았다 뜨더니, 아주 낮게 말했다.
“저 사람, 원래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꼭 한 사람한테 하는 말 같으면서도 누구한테나 해당되는 식으로.”
시우는 봉투를 열지 않고 먼저 노트를 펼쳤다.
첫 장에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곳의 기록》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소설이어야만 견딜 수 있다.
시우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모두가 어렴풋이 알았다.
김준서는 단순히 메모를 남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기록을 끝까지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아마, 이제 막 그들을 더 깊은 데로 끌고 들어갈 것이었다.
제8장. 기억나지 않는 곳의 기록
서재 안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실제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장은 그대로였고, 창문은 닫혀 있었고, 책상 위 머그컵엔 여전히 어제의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어떤 글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방은 전과 같은 방이 아니게 된다. 인간은 종이 한 장으로도 공간의 의미를 바꾼다. 살아 있을 때는 말을 숨기고 살다가도, 글로 남겨진 문장 앞에서는 도망칠 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시우는 노트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검은 잉크, 정갈한 필체, 중간중간 밑줄과 수정 흔적. 원고라기보다는 유서와 초고와 고백이 섞인 형식이었다. 제목 아래 첫 문장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기가 낯설었다.
그 사실을 가장 오래 숨긴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형수는 문가에 기대 서 있었고, 윤정훈은 책상 옆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서나래는 책장 가까이에 조용히 서서 시우 손에 들린 노트를 보고 있었다. 네 사람의 숨소리만 느리게 겹쳤다. 새벽은 늘 사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든다. 밤새 버티느라 방어가 얇아져서일 수도 있고,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거짓말을 미뤄도 된다는 안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읽어주세요.”
형수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저 혼자 읽으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트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기억나지 않는 곳의 기록》
1. 처음부터 약간 어긋나 있던 사람의 진술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했다.
사람들이 다들 어떤 연극의 대본을 한 부씩 받아 들고 태어났는데, 유독 나만 빈 종이를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상상.
남들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귀고, 유행가를 외우고, 대학을 가고, 직장을 구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고민하고, 대출을 계산하고, 아이를 낳고, 늙는 일까지도. 물론 그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힘든 것과 낯선 것은 다르다. 나는 힘들기 전에 낯설었다.
처음엔 내가 예민한 줄 알았다.
그다음엔 내가 유별난 줄 알았다.
그다음엔 내가 어딘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다.
이 세계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아주 미세한 방식으로 아름다웠다.
김이 오른 밥 냄새, 샤워하고 나온 아이 머리 냄새, 출근길 겨울 공기, 버스 안에서 졸다 깬 사람 얼굴, 누군가 진심으로 미안해할 때 나오는 표정. 나는 그런 것들 때문에 계속 버텼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움조차 늘 어디선가 ‘기억난다’는 감각과 함께 왔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래가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시우는 읽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나는 오랫동안 이 감각을 문학적 허영쯤으로 취급했다.
작가 흉내, 편집자로 일하며 문장에 과몰입한 후유증, 혹은 성인이 되지 못한 사람의 내적 유치함. 다행히 인간은 자기 이상함을 현실적인 이름들로 덮는 데 재능이 있다. 피곤해서, 예민해서, 우울해서, 바빠서, 나이 들어서. 그런 이름들은 편리하다. 진실이 아닐 수 있어도 생활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생활은 망각의 기술이다.
나는 그 기술을 성실히 배웠다.
마감 날짜를 챙기고, 회의록을 정리하고, 아이 숙제 봐주고, 장모님 생신 선물을 고르고, 분리수거를 하고, 야근 후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아내와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잠들었다. 생활은 의외로 사람을 잘 붙든다. 질문이 너무 커지지 못하게, 적당히 작아지게, 견딜 만한 크기로 접어준다.
그런데도 한밤중 꿈은 자꾸 반칙처럼 찾아왔다.
흰 공간.
방이라고 부르기엔 벽이 없고, 안개라고 부르기엔 의식이 너무 맑고, 병원이라고 하기엔 아픔이 없고, 천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실용적인 곳. 누가 있는 것 같은데 형체는 없고,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고, 기다리는 것 같은데 지루하진 않은 곳.
그곳에선 이상하게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는 늘 조금씩 나를 설명해야 했는데, 거기서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거기서 ‘이해되는 상태’였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부끄럽다.
너무 종교적이고, 너무 몽상적이고, 너무 정신이상자 같은 표현이니까.
하지만 다른 말이 없다.
거기서는 내가 이해되고 있었다.
정훈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시우는 그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이해됨이 무엇인지, 누가 이해하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그곳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비슷한 감각이 밀려왔다.
아, 또 여기구나.
이 ‘또’가 문제였다.
처음이 아닌 느낌.
다시 돌아온 느낌.
그런데 어딘가 다쳐서, 혹은 다 고쳐지지 못한 채로, 다시 입장한 느낌.
나는 오랫동안 출생을 축복이라고만 배웠다.
그 생각을 비웃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출생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축복은 대개 울음으로 시작되는가.
아기들은 왜 우는가.
배가 고파서? 빛이 낯설어서? 폐가 열려서?
물론 그렇겠지. 생리학적으로는.
그러나 인간은 생리학적 설명이 끝났다고 해서 질문까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폐가 열릴 때 왜 고통의 문법을 쓰는가.
새로운 시작이라면 왜 몸은 먼저 공포를 배우는가.
나는 그것이 기억의 잔광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자마자 아주 잠깐,
오기 전을 떠올리기 때문에.
그리고 곧 잊는다.
너무 밝고, 너무 춥고, 너무 배고프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많은 손이 닿기 때문에.
삶은 망각이 시작되기에 충분히 분주하다.
여기서 형수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울음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무너짐 같은 것이었다.
“저 사람이…”
그녀는 겨우 한마디를 했다.
“이걸 혼자 다 갖고 있었네.”
나래가 아주 조용히 그녀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주었다.
형수는 그 손을 잠깐 붙잡았다. 말 대신 온기가 먼저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시우는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읽었다.
나는 이 감각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아내에게는 더더욱. 그녀는 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건 장점이다. 인간은 그런 사람 덕분에 집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계절을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보, 나는 가끔 당신도 어딘가를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이런 말을 어떻게 평범한 저녁 식탁에서 할 수 있겠는가.
고등어를 굽고, 아이가 수학 문제를 틀렸다고 칭얼대고,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 있는데.
그런데 그게 바로 내가 계속 놓치던 점인지도 모른다.
이 세계가 임시적인 장소라 해도,
그 임시는 결코 가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진짜여서 아픈 것이다.
너무 진짜여서 사랑하게 되고, 너무 진짜여서 잃고, 너무 진짜여서 매번 몸이 먼저 반응한다. 뜨거운 국을 먹으면 데이고, 아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누군가 떠나면 식욕이 떨어진다.
가짜 세계였다면 왜 몸은 이렇게 정직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는 환상이 아니라 회복의 현장일지도 모른다.
꿈속의 흰 공간이 ‘본래의 장소’라면,
삶은 그 본래의 장소에 다시 닿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감각의 수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아프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잃고, 다시 선택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죽을 때도 잃지 않을 어떤 것을 골라낸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는 걸 안다.
나도 이 문장을 쓸 때마다 민망하다.
하지만 조금 덜 민망해진 이유는, 사람을 사랑할수록 이 생각이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우는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정훈도, 나래도, 형수도 그 문장을 알아챘다.
형수는 얼굴을 덮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녀는 이미 울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눈빛에는 질투나 분노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이 비쳤다. 아마 상실이 너무 큰 밤에는 인간도 사소한 자존심을 잠깐 놓게 되는 모양이었다.
시우는 계속 읽었다.
사랑은 이상하다.
사람을 사랑하면 더 현실적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밥을 더 잘 챙기고, 늦지 않게 귀가하고, 생일을 기억하고, 약속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도 어딘가에서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세상을 못 보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시간의 질감을 바꾸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하루는 대충 지나간다.
그런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루가 그냥 하루가 아니게 된다. 그 사람이 아프진 않은지, 오늘 뭘 먹었는지, 무슨 표정이었는지, 내 말에 다치진 않았는지, 내일도 볼 수 있는지. 하루가 갑자기 밀도와 책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나는 사랑이 사람을 ‘지상에 묶는 힘’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본다.
사랑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병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이 돌아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마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오기 전에도 잃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성질이라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은 늘 조금 슬프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기억나서.
정훈이 아주 천천히 중얼거렸다.
“미친…”
그건 욕이 아니라 감탄에 가까웠다.
사람은 너무 정확한 문장을 들으면 가끔 가장 거친 단어로밖에 반응하지 못한다.
나래는 시우를 보지 않았고, 시우도 나래를 보지 않았다.
그 문장이 둘 사이를 지나간 것을 둘 다 알았지만, 지금 그것을 확인하면 오히려 얕아질 것 같았다.
시우는 다음 장을 넘겼다.
2.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나는 지금 이것을 소설처럼 쓰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간에게 아주 유용한 변명이다.
사실일지도 모르는 것을 사실이라고 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게 해준다.
“이건 이야기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위험한 고백도 조금 더 멀리 밀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소설이 아니기를 점점 포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의 표정들이 자꾸 여기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들 얼굴이 이상하게 비슷하다.
모두 다 다르게 울고, 다르게 무너지고, 다르게 침묵하는데도, 어느 순간엔 같은 표정을 한다.
‘아, 여기까지였구나.’
그 표정.
나는 그 얼굴이 단지 죽은 사람을 잃은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두가 아주 깊은 데서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가 본래의 집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그 사실을 아주 잠깐 읽고, 곧바로 다시 생활로 돌아갈 뿐이다.
인간은 그 잠깐의 알아봄을 오래 못 버틴다.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잊지 않는 사람이 정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읽었을 때, 형수가 아주 낮게 말했다.
“장례식장…”
그녀의 눈이 시우에게 향했다.
“당신, 장례식장 얘기 저한테도 했었어요. 한 번. 사람들 얼굴이 다 비슷하다고.”
그녀는 스스로 놀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때 전 당신이 그냥 피곤한 줄 알았어.”
시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김준서가 자기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문장까지 닮아 있을 줄은 몰랐다. 삶의 어딘가에서는 서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끼리도 같은 문장을 오래 쓰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덜 독창적이고, 훨씬 더 함께 헤맨다.
“계속 읽어주세요.” 나래가 조용히 말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말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순간은, 꿈보다도 깨어 있는 시간에 더 많아졌다.
어떤 사람을 보면 그냥 알겠다.
이 사람도 어딘가를 잊은 채 살고 있구나.
물론 내가 맞는지는 모른다.
아마 대부분 틀릴 것이다.
그러나 정말 가끔, 아주 드물게, 설명할 수 없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눈은 늘 약간 늦게 도착한 것 같고,
늘 약간 먼저 슬퍼하고,
늘 약간 더 오래 사랑할 것 같은 눈이다.
나는 그런 눈을 볼 때마다 반가우면서도 겁이 났다.
반갑다는 것은 같은 감옥의 사람을 알아보는 기쁨일까.
겁이 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숨기고 있던 질문이 다시 살아날까 봐서였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느 강연 원고를 읽었다.
출생은 시작이 아니라 망각의 개시일 수 있다는 문장.
그 문장을 쓴 노철학자에게 처음 메일을 보낼 때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미친 사람은 대개 자기가 미쳤는지 그렇게 오래 점검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너무 오래 점검하는 쪽이었다.
그는 내게 생활을 버리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구했다.
밥을 먹는 일, 아내와 드라마를 보는 일,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했니?”라고 묻는 일. 그런 일들이 형이상학보다 덜 고귀하지 않다는 말.
그 문장을 읽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그렇다면 이 삶은 시험이라기보다 치료일 수도 있겠구나.
치료는 늘 멋있지 않다.
약을 먹고, 쉬고, 자주 아프고, 예전만큼 빨리 달리지 못하고, 반복해서 실수하고, 때로는 퇴보처럼 보이는 날도 있다.
삶이 그런 식으로 누덕누덕한 이유가 설명됐다.
처음부터 완전한 상태로 온 게 아니라면.
시우는 읽다가 잠시 고개를 들었다.
정훈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서 있었고, 나래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형수는 이제 울지 않았다. 대신 듣고 있었다. 죽은 남편을 처음 이해하려는 사람처럼.
그는 다시 노트를 넘겼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철학 때문만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철학보다 더 구체적인 이유가 생겼다.
나는 최근 누군가를 보며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거의 알고 있다.
다만 내 생활 전체가 흔들릴 만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 사람을 보면, 이 세계가 갑자기 너무 대충 살 수 없는 장소가 된다.
말을 고르게 되고,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되고, 내가 지금 살아 있는 방식이 제대로 된 것인지 다시 보게 된다.
이 감각은 분명 예전에도 있었는데, 오래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 늙은 철학자에게 묻고 싶다.
혹시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오기 전의 감각이 조금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지.
사랑은 왜 이토록 사람을 본래의 질문 앞으로 데려다 놓는지.
만약 그렇다면,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기억의 통로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썼다가 지웠고, 지웠다가 다시 쓴다.
너무 유치해서.
너무 낭만적이라서.
너무 사실일 것 같아서.
여기서 정훈이 물었다.
“그 사람, 누구였을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형수도, 나래도, 시우도.
형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아주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근데…”
그녀는 말끝을 삼켰다가 겨우 이었다.
“이상하게 화는 안 나네요.”
정훈이 놀란 듯 그녀를 봤다.
나래도 조용히 시선을 들었다.
“왜요?” 시우가 물었다.
형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 사람 얼굴이,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좀 멀어져 있었거든요. 저랑 싸운 것도 아니고, 가정을 싫어한 것도 아닌데… 꼭 어디 다른 데를 같이 보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그녀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그게 바람 같은 거라면 차라리 쉬웠을 거예요. 근데 지금 보니까… 그건 사람이라기보다 질문이었나 봐요. 저 사람은 질문이랑 살고 있었네.”
그 말은 묘하게 쓸쓸했다.
질문과 함께 사는 사람은 종종 옆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늘 조금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사랑이 꼭 불성실했던 것은 아니더라도, 완전히 현재에 있지 못한 사람의 곁은 춥다.
나래가 아주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도 미운가요?”
형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냥… 불쌍해요.”
“왜요.”
“이걸 누구한테도 제대로 말 못 했을 테니까.”
시우는 다시 노트로 시선을 내렸다.
만약 내가 먼저 죽는다면,
이 글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디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말아달라.
내가 정신적으로 병들었다고 단정하지도, 반대로 특별한 진실을 본 사람이라고 신격화하지도 말아달라.
나는 둘 다 아닐 수 있다.
혹은 둘 다 조금씩일 수도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자주 부서지고, 생각보다 드물게 진실을 스친다.
그 둘은 때때로 같은 얼굴을 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이 질문이 사람을 어떤 쪽으로 데려갔는가일 것이다.
내 경우엔 두 방향이 동시에 있었다.
한쪽에선 이 질문 때문에 현실이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
회의 시간에 집중이 안 되고, 지하철 안 사람들 얼굴이 너무 슬퍼 보이고, 가족을 보다가도 갑자기 미안해졌다. 내가 이들을 본래의 집이 아닌 곳에 함께 묶어둔 공범 같아서.
다른 한쪽에선 이 질문 때문에 현실이 오히려 더 소중해졌다.
딸이 씻고 나온 뒤 축축한 머리카락 냄새, 아내가 식탁 위 반찬 통 정리하는 손, 퇴근길 버스 창문에 비친 내 피곤한 얼굴까지. 이 모든 것이 아주 잠깐 빌린 것이고, 그래서 더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이곳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하다면 이렇게까지 애틋할 이유가 없다.
끝이 있기 때문에 다정해지고,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껴안고,
늦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말한다.
나는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늦을까 봐 두렵다.
이 문장이 내가 이 글을 계속 쓰는 진짜 이유다.
시우는 그 문장 앞에서 한동안 멈췄다.
나는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늦을까 봐 두렵다.
그건 김준서의 문장이면서, 동시에 거의 자기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나래의 문장이기도 했다. 이미 알고 있는데 안 가는 것, 그게 늦는 것이라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래는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주 조용히 시우를 봤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더 있어요?”
“네.” 시우가 답했다.
“계속 읽어주세요.”
그는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
3. 끝내 적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이 글이 끝나기 전에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정말로 우리는 죽은 다음의 장소에서 다시 기회를 받고 있는 것인가.
둘째, 그렇다면 왜 기억은 이렇게 철저히 지워지는가.
셋째, 사랑은 왜 유독 그 지워진 기억의 가장자리를 건드리는가.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하지만 짐작은 간다.
아마 완전한 기억을 가진 채로는 삶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 알면 연기할 수 없고,
다 알면 아프지도 않을 테고,
다 알면 선택이 아니라 확인만 남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잊은 상태에서 다시 고르는 일인지 모른다.
누구를 사랑할지.
무엇을 두려워할지.
언제 용서할지.
어디까지 견디고, 어디서 멈추고, 어떤 순간에 손을 내밀지.
이 세계의 가치가 있다면 거기 있을 것이다.
모르는 채로도 다시 고른다는 것.
그러니 어쩌면 우주는 시험장이 아니라,
망각 속에서도 사랑을 다시 고를 수 있는지 보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결론이 마음에 든다.
잔인하지만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인간에게 필요한 태도는 비슷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늦지 말 것.
아픈 사람 옆에서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 것.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함부로 대하지 말 것.
누구나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잊은 채 분투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놓치지 말 것.
우리는 모두 죽은 물질들이 아니라,
한 번 끝난 뒤에도 아직 끝까지 포기되지 않은 존재들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삶은 형벌이 아니다.
적어도 형벌만은 아니다.
삶은 아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만들기 위한 가장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방식이다.
이 문장을 끝으로 나는 잠시 멈춘다.
왜냐하면 이제는 글보다 생활이 조금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딸이 내일 소풍 가서 김밥을 싸줘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오늘 피곤해 보였고, 나는 아직 설거지를 안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이 다음 장을 끝내 쓰지 못한다면,
그건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답을 찾기 전에 먼저 살아보려 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끝내 적지 못한 다음 장이 있다면,
그건 살아 있는 쪽에 맡긴다.
노트가 끝났다.
서재 안이 오래, 아주 오래 조용했다.
누구도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각자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재배치되는 침묵이었다. 어떤 글은 읽고 나면 사람이 잠시 전과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다. 지금이 그랬다.
가장 먼저 흐느낀 건 형수였다.
크게 우는 소리가 아니라, 숨이 꺾이는 소리였다. 나래가 그녀 옆에 가 조용히 등을 쓸어내렸다. 형수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 사람이… 마지막엔 생활 쪽으로 가고 싶어 했구나.”
나래가 대답했다.
“네.”
“근데 못 갔네.”
그 말은 너무 짧아서 오히려 더 아팠다.
정훈이 낮게 욕처럼 말했다.
“이 사람은 진짜…”
그는 말끝을 삼켰다.
“다 써놓고도 안심이 안 됐던 거네요.”
시우가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네. 그래서 남겨둔 겁니다.”
“누구 보고 읽으라고.”
“너무 늦지 않은 사람.”
정훈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게 누구죠?”
“정해진 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시우가 말했다. “아마 듣고도 아직 삶 쪽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
나래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
“아직 안 늦은 사람들.”
그 말이 떨어지자 셋의 시선이 잠깐 서로를 스쳤다.
그 순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알았다.
이 글은 단순한 망자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넘어온 질문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늦지 말 것.
생활을 버리지 말 것.
망각 속에서도 사랑을 다시 고를 것.
그런데 바로 그때, 시우의 손에 들린 노트 사이에서 무언가 한 장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사각.
네 사람 모두 동시에 아래를 봤다.
노트 맨 뒷장 사이에 얇은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접힌 종이였다. 바깥면에 짧게 적혀 있었다.
추신. 만약 윤태식 교수가 아직 살아 있다면, 이건 꼭 그에게 보여주십시오.
정훈이 숨을 삼켰다.
나래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살아 계세요.”
시우는 천천히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가 알았다.
김준서는 노트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윤태식에게만 전하는 어떤 문장을 남겨두고 있었다.
제9장. 추신, 아직 살아 있다면
종이는 두 번 접혀 있었다.
한시우는 그것을 펼치기 전에 아주 잠깐 멈췄다.
이상하게도 손끝이 조심스러워졌다. 이미 노트 전체를 다 읽었으면서도, 이 한 장은 결이 달랐다. 제목도 없고, 장도 없고, 독자도 분명했다. ‘만약 윤태식 교수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 문장엔 막연한 공개보다 더 사적인 긴장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은 늘 무겁다.
거기엔 대개 다 말하지 못한 시간 전체가 눌려 있다.
“읽어도 될까요.”
시우가 형수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다 읽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윤정훈은 팔짱을 푼 채 책상에 손을 짚고 있었고, 서나래는 형수 곁에 여전히 가까이 서 있었다. 새벽 세 시를 향하는 집 안은 조용했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아주 멀리서 들렸다. 이런 시간엔 종이 넘기는 소리도 크게 느껴진다. 인간이 깨어 있기엔 너무 늦고, 진실이 숨어 있기엔 너무 얇은 시간.
시우는 종이를 펼쳤다.
글씨는 노트 본문과 같았지만, 더 빠르게 써 내려간 흔적이 있었다. 정갈한 사람도 진짜 급한 문장을 쓸 때는 호흡이 달라진다.
그는 읽기 시작했다.
추신. 만약 윤태식 교수가 아직 살아 있다면
교수님께.
이 글을 교수님이 직접 읽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제가 괜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요. 그래도 씁니다. 교수님이라면 적어도 이 문장을 끝까지 비웃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며칠 전, 저는 꿈이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이었습니다.
합정에서 2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평소처럼 사람은 많았고, 다들 피곤해 보였고, 저는 휴대폰 메모장에 원고 생각을 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대입구쯤 지나서였을까요. 갑자기 아주 짧게, 정말로 2초나 3초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순간이 왔습니다.
기차가 멈춘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쓰러진 것도 아닙니다.
정전이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겐 분명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소리가 멀어지고, 사람들 얼굴이 투명해지고, 제 몸이 잠깐 ‘여기 맞지 않다’는 식으로 느껴졌습니다. 공황발작과 비슷하다고 하면 제일 현실적인 설명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포는 이상하게 없었습니다.
대신 이런 감각이 왔습니다.
아, 우리가 다들 너무 오래 여길 진짜라고 믿고 있었구나.
그 순간 제 앞에 서 있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 아이도 놀란 얼굴이었는데, 묘하게도 저와 같은 것을 본 사람 같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주 작게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억났어요?”
교수님, 저는 제가 미친 줄 알았습니다.
열차 문이 열리고 닫히고, 사람들은 내리고 타고, 소리는 다시 돌아왔고,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몇 정거장을 더 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고, 저도 그렇게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처음으로, 꿈속의 흰 공간에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아직은 아니다.”
무엇이 아직 아니라는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죽을 때가 아니라는 뜻인지, 제가 알 때가 아니라는 뜻인지, 아니면 제가 써야 할 것이 아직 남았다는 뜻인지.
교수님, 혹시 이런 종류의 ‘틈’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삶이 완전히 닫힌 구조가 아니라, 가끔 무엇인가 새어 들어오는 순간 말입니다.
저는 제 정신 상태를 의심하고 있고, 동시에 제 의심을 조금 의심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리고 아직 대화가 가능하시다면, 저는 꼭 한번 묻고 싶습니다.
인간은 정말로 무엇인가를 잊은 채 태어나며,
어떤 순간에는 그 망각에 금이 가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금은
왜 대개 사랑과 죽음 가까이에서만 오는 걸까요.
김준서 드림.
종이를 다 읽고 나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훈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낮고 메말라 있었다.
“중학생이요?”
시우는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답했다.
“네.”
형수가 소파 가장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런 얘긴…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나래가 옆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왜 나한텐 말을 안 했을까…”
그 질문은 원망이 아니라 순수한 상실이었다.
사람은 누군가를 잃은 뒤 꼭 묻는다. 왜 나한텐 말 안 했을까. 왜 혼자 견뎠을까. 왜 나는 몰랐을까. 사랑은 종종 모든 걸 공유했다는 착각 위에 서 있는데, 죽음은 그 착각을 아주 쉽게 부순다.
시우는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서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수가 그를 올려다봤다.
“사랑해서요?”
“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혹은, 말하는 순간 진짜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정훈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형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자기가 힘들면 더 멀쩡한 척하는.”
형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는데도, 다는 몰랐네요.”
그 말 뒤로 짧은 침묵이 놓였다.
나래가 시우 쪽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병원 가야겠어요.”
“네.”
“교수님이 지금 이걸 볼 수 있을 때 보여드려야 해요.”
정훈이 즉시 고개를 들었다.
“저도 같이 갑니다.”
형수도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나래가 아주 부드럽게 말렸다.
“지금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요, 저도…”
형수는 말끝을 흐렸다.
자기도 무리라는 걸 아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정신은 따라가고 싶지만 몸이 더는 버티지 못하는 상태.
시우가 말했다.
“저희가 먼저 가겠습니다. 무슨 말씀 있으시면 바로 연락드리죠.”
형수는 한참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알려주세요.”
“네.”
그녀는 노트 표지를 손끝으로 한번 쓸었다.
죽은 남편의 마지막 기록을 만지는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미워할 틈도 없이 남겨진 사람의 손길이었다.
다시 차에 오른 건 새벽 세 시 반쯤이었다.
이번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울의 도로는 거의 비어 있었고, 신호등은 바뀌어도 건너는 차가 드물었다. 깊은 밤엔 도시가 마치 사람보다 신호를 더 많이 가진 구조물처럼 보일 때가 있다. 불빛, 선, 규칙, 반복. 그런데 그 안을 지나는 인간 하나하나는 그보다 훨씬 불완전하고, 훨씬 복잡하고, 훨씬 연약하다.
한남대교를 지나며 나래가 조용히 말했다.
“기억났어요.”
시우가 백미러로 그녀를 봤다.
“뭐가요.”
“그 중학생 아이 입모양요.”
“네.”
“저도 비슷한 걸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정훈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이에요?”
나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정확히는 본 건지, 나중에 그렇게 기억하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근데 예전에 한 번… 응급실 야간 근무 때였어요. 아주 어린 남자애가 심정지로 왔는데, 다행히 다시 돌아왔거든요.”
“네.”
“의식이 돌아온 뒤에 저를 계속 보더니 그러더라고요. ‘왜 또 여기예요?’라고.”
정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병원이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근데 애가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 여기.’라고.”
“……”
“그리고 좀 있다가 울기 시작했어요. 진짜 서럽게. 엄마 찾으면서. 그래서 그냥 혼란스러워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나래는 창밖을 봤다.
한강 물빛이 아주 어둡게 스쳤다.
“그때 제가 무슨 말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시우가 물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했어요. 간호사니까 늘 하던 말처럼.”
“네.”
“그런데 그 애가 울면서 그러더라고요. ‘괜찮은 게 아니라 기억나서 그래요’라고.”
차 안이 아주 조용해졌다.
정훈이 낮게 말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해요?”
나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잊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잊고 있었어요?”
“네. 아니, 잊었다기보다… 병원에선 이상한 말을 너무 많이 듣거든요. 섬망, 약물 반응, 혼란, 통증. 그러니까 다 묻어두게 돼요.”
시우가 천천히 말했다.
“생활은 망각의 기술이니까요.”
나래가 백미러 너머로 그를 봤다.
“네. 그런가 봐요.”
정훈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 좀 무섭네요.”
“이제야요?” 나래가 물었다.
“아까까지는 그냥 아버지랑 죽은 형 같은 사람이 이상한 문장 남긴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이렇게 여기저기서 겹치니까.”
“믿기 시작한 겁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정훈은 정직하게 답했다.
“다만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워졌어요.”
시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완전한 믿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믿음이 아니라고 밀어내기에도 너무 많은 얼굴과 문장과 죽음이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태식의 말, 민하의 말, 김준서의 기록, 나래의 응급실 기억. 각각 하나만 떼어놓으면 이상하고 애매하다. 하지만 인간은 패턴 앞에서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의미는 여러 조각이 서로를 알아볼 때 생긴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네 시를 조금 넘겼다.
혜원대병원의 새벽은 거의 수면 중인 괴물 같았다. 거대한 건물은 조용했지만, 완전히 잠든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깨어 있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 도착한다. 도시가 밤새도록 돌아가는 이유는 결국 이런 장소들 때문이다. 인간은 잠들어도 생로병사는 교대 없이 근무한다.
윤태식의 병실로 올라가는 복도는 더 고요했다.
당직 간호사가 나래를 알아보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나래는 짧게 상황을 설명했고, 가능하면 몇 분만 들어가겠다고 했다.
병실 안은 어두운 스탠드 불빛만 켜져 있었다.
윤태식은 깨어 있었다.
낮에 비해 훨씬 멀어진 얼굴이었지만, 눈은 떠 있었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은 죽음 가까이 갈수록 시간이 이상해지는지 모른다. 기다림도, 잠도, 말도 다 다른 구조가 되는 것 같다.
“교수님.”
시우가 아주 낮게 부르자, 윤태식은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눈길이 시우 손에 들린 종이를 향했다.
“왔구나.”
“네. 김준서 씨가 교수님께 남긴 추신을 찾았습니다.”
윤태식의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읽어.”
정훈이 의자를 가까이 끌어왔고, 나래는 침대 반대편에 섰다.
시우는 종이를 펼쳐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엔 네 사람 모두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듣는 분위기는 달랐다. 종이의 목적지가 분명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가 다 읽고 나자, 윤태식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봤군.”
“무엇을 말입니까.”
“틈.”
“그게 정말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겁니까.”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
시우는 바로 물었다.
“삶이요?”
“응.”
“세계가요?”
“둘 다.”
윤태식은 눈을 감았다 뜨며 말을 이었다.
“인간은 완벽한 망각 속에서 살지 않아. 가끔 새어 나와. 사랑할 때, 너무 아플 때, 죽음 가까이 갔을 때… 그리고”
그는 아주 미세하게 웃었다.
“가끔은 지하철에서도.”
정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이런 일이 실제로 생긴다는 걸?”
“안다고 말하면 오만하지.”
“그럼요.”
“나는 오래 의심했을 뿐이야.”
나래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런 틈이 생길까요.”
윤태식은 그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잊지 말라고.”
“무엇을요.”
“여기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그걸 기억하면 오히려 삶을 망치지 않나요?”
“그래서 완전히는 안 열리지.”
“……”
“인간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알게 돼.”
시우는 종이를 쥔 손에 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그럼 김준서 씨는 왜 그렇게 불안해했습니까.”
“열린 틈을 혼자 감당했으니까.”
“교수님이 만나줬다면 달라졌을까요.”
윤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부정도 긍정도 아니었다. 인생에는 그런 질문이 있다. 답해도 위로가 안 되고, 안 해도 위로가 안 되는 질문.
잠시 뒤 그가 말했다.
“그래도 도움이 됐을 거야.”
“……”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훈이 고개를 떨궜다.
나래는 병실 창문 쪽을 봤다. 바깥은 아직 밤과 새벽 사이였다. 검은색이 아주 서서히 엷어지고 있었다.
“교수님.” 시우가 물었다. “그 중학생은요?”
“누구.”
“김준서 씨가 지하철에서 봤다는 아이요. ‘기억났어요?’라고 한 것 같던.”
윤태식의 눈빛이 잠깐 달라졌다.
“아이였나.”
“네?”
“그 사람은 아이로 봤군.”
“무슨 뜻입니까.”
“모두가 같은 형상으로 보진 않아.”
정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버지, 지금 그게 무슨…”
“틈이 열릴 때 건너오는 건 기억이지, 존재 자체는 아니야.”
윤태식은 힘겹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인간은 자기 두려움과 그리움으로 그걸 번역해.”
“그럼 그 아이는 실존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까?”
“실존보다 번역이 더 중요할 때가 있어.”
시우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이해되는 듯하면서도 더 어려웠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각자의 언어와 상처와 사랑으로 번역된 진실의 조각일 수 있다는 뜻. 그것은 종교에도, 철학에도, 예술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인간은 원형을 직접 보기보다 각자의 형태로 해석하며 산다.
“그럼 민하는요.” 나래가 물었다. “민하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어요.”
“아이는 번역이 적어.”
“그래서 더 직접 본다는 뜻인가요?”
“응.”
윤태식은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은 생활이 두껍고, 아이는 막 도착했거나 막 떠날 때가 많아.”
병실 안 공기가 서늘해졌다.
막 도착했거나, 막 떠날 때.
민하의 얼굴이 셋의 머릿속을 동시에 스쳤다.
블록으로 문을 만들던 손, “끝난 사람 냄새”라고 말하던 표정, 마지막에 “나갈 땐 안 울어도 돼”라고 속삭이던 목소리.
시우는 다시 물었다.
“교수님, 그러면 결국 삶의 목적은 뭡니까.”
윤태식은 그 질문을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답했다.
“다시 고르는 거야.”
“무엇을.”
“망각 속에서도.”
“사랑을요?”
“주로는.”
“주로는?”
“누구를 사람으로 대할지.”
그 문장은 작았지만 이상하게 병실 전체를 울렸다.
누구를 사람으로 대할지.
삶의 의미가 거대한 사명이나 구원보다, 그런 선택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 바쁜 날에도, 화난 순간에도, 자기 고통이 큰 때에도, 앞의 사람을 하나의 존재로 볼 수 있는지. 장례식장에서도, 병동에서도, 집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어쩌면 회복이란 그 시선을 되찾는 일인지도 몰랐다.
정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돈, 성공, 일 같은 건 다 쓸모없다는 건가요.”
“아니.”
윤태식은 아들을 보았다.
“그것들도 생활을 만든다.”
“그런데요.”
“그걸 위해 사람을 잃으면 다 못 쓴 인생이 되지.”
정훈은 고개를 숙였다.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나래가 물었다.
“교수님, 죽으면 정말… 안 울어도 되나요.”
윤태식은 그녀를 한참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피곤과 애정과 아주 오래된 슬픔이 함께 있었다.
“잘 살았으면.”
“잘 산다는 건 뭘까요.”
“끝까지 사랑을 버리지 않는 거.”
그 말 뒤로 병실엔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장비 소음은 있었지만, 그것마저 아주 멀리서 나는 것 같았다. 바깥 하늘이 더 희어지고 있었다. 밤은 거의 끝났고, 아직 아무도 하루라고 부르지 않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윤태식은 갑자기 시우를 보며 말했다.
“한시우.”
“네.”
“자네는 이제 알겠나.”
“무엇을요.”
“왜 장례식장에 오래 있었는지.”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윤태식이 말했다.
“문턱을 오래 본 사람은, 언젠가 자기 문도 알아보게 돼.”
“제 문은 뭡니까.”
“이미 열리고 있지.”
“어디로 가는 문입니까.”
윤태식은 아주 미세하게 웃었다.
“살아 있는 쪽으로.”
그 순간 시우는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살아 있는 쪽. 그는 지금까지 충분히 살아 있다고 여겨왔는데, 정작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반쯤 멈춘 상태였는지 알 것 같았다. 장례식장, 검은 정장, 정리, 위로, 절차. 그는 타인의 끝 곁에 서 있으면서 자기 시작은 계속 유예해 왔다.
나래가 조용히 시우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 윤태식의 호흡이 한 번 깊게 꺾였다.
나래가 즉시 몸을 움직였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윤태식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뜨고, 아주 힘겹게 마지막 말을 밀어냈다.
“준서 글… 남겨…”
“네.”
“사람들한테 읽혀…”
“어떻게요?”
“소설로…”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
“사실은… 소설이 제일 멀리 가니까…”
그 문장이 끝난 뒤, 그의 몸에서 힘이 조금 더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래는 차트를 확인하고 벨을 눌렀다. 당직 의료진이 들어왔고, 셋은 한 걸음씩 물러났다. 이번엔 민하 때와는 달랐다. 급박한 악화라기보다, 아주 천천히 더 안쪽으로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윤태식은 다시 눈을 뜨지 않았지만, 얼굴은 이상하게 평온했다. 마치 자기 몫의 문장을 거의 다 정리한 사람처럼.
병실 밖으로 나온 뒤, 정훈은 복도 벽에 기대 한참 서 있었다.
“아버지가… 소설로 남기라고 했죠.”
“네.” 시우가 답했다.
“그럼 그건 그냥 철학 강의나 논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야기 형태로 가야 한다는 뜻이겠죠.”
나래가 아주 낮게 말했다.
“사실은 소설이 제일 멀리 가니까.”
정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다운 말이네요.”
시우는 손에 든 노트와 종이를 내려다봤다.
김준서는 소설이어야만 견딜 수 있다고 썼고, 윤태식은 소설이 제일 멀리 간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지만, 문장으로는 이미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손길이 이쪽으로 넘어온 셈이었다.
“한시우 씨.”
나래가 그를 불렀다.
“네.”
“이제 어떻게 해요?”
그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병원 복도 끝 창문으로 아침빛이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서울의 하루가 곧 또 시작될 것이다. 출근, 학교, 회의, 배달, 장보기, 장례, 퇴원, 입원, 고백, 이별. 세계는 여전히 자기 일을 할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지금 그의 손엔 다른 방향으로 사람을 데려갈 수 있는 노트가 들려 있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정훈이 물었다.
“읽히게 할 겁니까?”
시우는 노트 표지를 한번 쓸었다.
《기억나지 않는 곳의 기록》
“네.”
“정말요?”
“교수님 말대로, 이건 남겨야 합니다.”
“누가 쓰죠?”
나래가 아주 조용히 시우를 봤다.
정훈도 그를 봤다.
그리고 시우는 그제야 알았다.
윤태식이 왜 하필 자기를 불렀는지.
왜 장례식장 사람인 자기를 문지기 같다고 했는지.
왜 김준서의 미완성 원고가 결국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정리해온 사람.
삶의 문턱을 오래 바라본 사람.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는 쪽으로 가기 시작한 사람.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완전히 멀쩡한 사람이 쓰면 거짓말이 되고,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 쓰면 끝까지 못 갈지도 몰랐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제가 쓰겠습니다.”
나래의 눈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정훈은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숨을 내뱉었다.
“형 편집자였는데,” 그가 말했다. “결국 장례지도사가 마감을 하게 생겼네요.”
시우는 드물게 웃었다.
“죽은 사람 글 마감은 제가 좀 압니다.”
나래도 웃었다.
그 웃음엔 밤새 쌓인 피로와 슬픔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웃음이었다. 인간은 이런 순간에도 웃는다. 아니, 이런 순간이라서 더 웃는다. 안 그러면 견디기 어려워서.
창밖 하늘이 더 밝아졌다.
새벽과 아침 사이,
망각과 기억 사이,
죽은 자의 문장과 산 자의 결심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는 비로소 쓰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10장. 산 자의 마감
아침은 늘 무심하게 온다.
누군가 밤새 죽음과 이야기를 오가고, 누군가 유언 같은 문장을 남기고, 누군가 사랑을 인정하고, 누군가 아이를 보내도 아침은 제 시간에 도착한다. 혜원대병원 로비의 자동문은 평소처럼 열리고 닫혔고, 출근한 직원들은 목에 사원증을 건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1층 카페에선 첫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서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를 열고 있었다.
그 무심함이 시우는 이제 전처럼 얄밉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느꼈다.
죽음과 사랑과 형이상학이 아무리 사람을 흔들어도, 인간은 결국 아침에 양치하고, 커피를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일하러 가야 한다. 삶이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세계는 우리의 깨달음에 맞춰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음조차 생활 속에서 다뤄야 한다.
윤태식은 새벽 이후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의사는 이제 시간이 길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훈은 병실에 남겠다고 했고, 나래도 오전 근무에 들어가야 했다. 결국 시우만 병원을 나왔다. 나오면서도 손엔 김준서의 노트 사본과 추신 복사본이 들려 있었다. 원본은 정훈과 상의해 안전하게 맡기기로 했지만, 윤태식이 남겨야 한다고 한 이상, 당장 읽고 정리하고 써 내려가기 시작해야 했다.
병원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나래였다.
“네.”
“지금 가요?”
“네. 집에 잠깐 들렀다가 장례식장으로 가야죠.”
“잠은요?”
“못 잘 것 같습니다.”
“저도요.”
그녀가 작게 웃었다.
“근데 이상하게 완전히 피곤하지만은 않네요.”
“뭐가 더 큽니까. 피곤함이요, 긴장감이요.”
“책임감이요.”
시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시우 씨.”
“네.”
“진짜 쓸 거예요?”
“네.”
“겁나죠?”
“많이요.”
“좋아요.”
“뭐가요.”
“겁나는 걸 한다는 거.”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했다.
시우도 함께 걸었다.
“간호사님.”
“네.”
“오늘 밤에 볼 수 있습니까?”
“네.”
“잠깐이어도.”
“네.”
“좋습니다.”
나래는 전화기 너머로 아주 조용히 말했다.
“우리 이제 자꾸 확인하네요.”
“늦지 않으려면요.”
“네. 그건 좋네요.”
통화를 끊고 나자 시우는 조금 웃었다.
누군가와의 짧은 약속 하나가 하루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할 때가 있다. 사랑이 단지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의 결을 바꾸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식탁에 노트 사본을 펼쳤다.
아파트 창밖으론 맞은편 동 주민들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튼을 걷는 사람, 화분에 물 주는 사람, 아이 가방을 메워주는 사람, 분리수거 봉투 들고 내려가는 사람. 평범한 아침 풍경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든 장면이 조금 더 낯설고, 동시에 조금 더 귀하게 보였다.
생활을 버리지 말 것.
김준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윤태식의 답장도 떠올랐다. 밥 먹고, 가족을 돌보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일은 형이상학보다 덜 고귀하지 않다고. 이제 그 말은 단지 근사한 문장이 아니라, 거의 규율처럼 느껴졌다. 너무 큰 질문을 다루려면 오히려 생활이 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허공으로 뜬다.
시우는 노트 첫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기가 낯설었다.
그 사실을 가장 오래 숨긴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는 그 문장 아래 메모를 적기 시작했다.
- 장례식장 인물 시점으로 여는 것이 좋다
- “낯섦”을 주장보다 생활 장면으로 보여줄 것
- 철학을 설교하지 말고, 표정과 선택으로 밀어붙일 것
- 민하, 윤태식, 김준서의 축이 겹치되 과잉 설명은 금물
- 핵심은 세계관 자체보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갈 것
적다 보니, 오랫동안 쓰지 않던 근육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원래 글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문장을 다루는 쪽이라기보다, 문장 끝에 도착한 사람들을 다루는 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손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 글을 쓴다는 건, 꼭 작가에게만 허락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살다가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넘겨받으면, 원래 하던 일이 아니어도 쓰게 되는 것 같다.
노트 중간쯤 다시 펼쳤을 때, 한 문장이 유독 눈에 걸렸다.
삶이란 결국, 잊은 상태에서 다시 고르는 일인지 모른다.
그 밑에 시우는 이렇게 적었다.
그렇다면 소설은 무엇인가.
망각 속에서 잠깐 기억하도록 만드는 장치.
그는 그 문장을 보고 잠시 펜을 멈췄다.
마치 누군가 옆에서 “그래, 그쪽이야”라고 말해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장례식장에서 준범에게 전화가 왔다.
“팀장님, 오늘 나오시는 거 맞죠?”
“조금 늦는다.”
“괜찮으세요?”
“왜.”
“목소리가… 약간 철학자 같아졌어요.”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건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군.”
“전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왜.”
“팀장님이 웃으시니까요.”
“원래도 웃는다.”
“아뇨, 요즘은 좀 달라요.”
“뭐가.”
“살아 있는 사람 같아요.”
시우는 순간 말을 잃었다.
준범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듯 이어 말했다.
“아무튼 오전 빈소 정리 제가 먼저 해놓을게요. 오시면 2호실부터 보셔야 해요.”
“알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살아 있는 사람 같아요.
죽은 사람들 곁에서 오래 일하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능숙함과 실제로 살아 있는 상태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안다. 시우는 이제야 그 둘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장례식장 2호실은 오전부터 조문객이 많았다.
사망자는 쉰셋의 중학교 교사였고,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상주는 남편과 대학생 아들 둘. 빈소엔 조용한 슬픔이 깔려 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보다 예고된 죽음은 다르게 아프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준비가 아니라 예습에 가깝다. 끝을 미리 조금씩 겪어보는 일. 그런데도 진짜 순간이 오면 사람은 늘 처음처럼 흔들린다.
시우는 조문 동선을 정리하고, 식당과 연락하고, 상주들에게 필요한 안내를 했다. 손은 익숙하게 움직였지만, 오늘은 유족들의 얼굴이 전보다 더 천천히 보였다. 김준서가 쓴 문장 때문인지, 윤태식의 말 때문인지, 혹은 민하의 죽음 때문인지 몰랐다.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마치 ‘생활 위에 놓인 존재의 얇은 막’처럼 느껴졌다.
점심 무렵, 고인의 남편이 혼자 분향대 앞에 오래 서 있는 모습을 시우가 봤다.
아직 조문객이 뜸한 틈이었다. 남편은 고인의 사진을 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 침묵엔 통곡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시우가 가까이 가자 남편이 먼저 말했다.
“이 사람은 죽기 전날까지 저녁 반찬 걱정을 하더군요.”
“……”
“자기가 없어도 애들 밥은 챙겨 먹을지, 냉동실에 뭘 넣어놨는지, 김치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런 얘길 계속 했어요.”
남편은 웃으려다 목이 메는 얼굴을 했다.
“전 그때 속으로 좀 화가 났습니다. 아니, 이제 와서 반찬이 뭐가 중요하냐고.”
그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근데 지금 보니까, 그게 이 사람이 끝까지 붙잡은 삶이었네요.”
시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편은 눈가를 눌렀다.
“사람이 죽기 전에도 생활을 놓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하면서도… 고맙습니다.”
“그럴 겁니다.”
“왜 그렇게 끝까지 생활을 챙길까요?”
시우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 사랑이 구체적이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남편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섰다.
“구체적이라.”
“네. 사랑은 대개 반찬통, 약 먹는 시간, 빨래 냄새, 전기장판 온도 같은 데 남습니다.”
남편은 결국 울었다. 소리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라는 건 때로 말이 아니라, 상대가 울 수 있게 곁에 서 있는 일이다.
그 장면을 멀리서 보던 준범이 나중에 사무실로 따라와 말했다.
“팀장님.”
“왜.”
“요즘 진짜 좀 바뀌셨어요.”
“또 무슨 소리냐.”
“예전엔 위로를 잘했는데, 지금은… 같이 있는 걸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시우는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 차이를 네가 아냐.”
“조금은요.”
준범은 민트 사탕을 까며 말했다.
“그리고 전 요즘 팀장님이 뭔가 쓰고 있을 것 같아요.”
시우가 그를 봤다.
“어떻게 알았지.”
“헐, 진짜요?”
“말해봐. 어떻게 알았냐.”
“아니, 그냥… 눈이요.”
“눈?”
“네. 원래 장례식장 사람들 눈은 자꾸 닫히거든요. 너무 많은 걸 봐서.”
준범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팀장님은 요즘 반대로 열려 있는 느낌이에요. 약간 위험해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좋은 쪽으로.”
시우는 웃었다.
“너는 가끔 이상하게 정확하다.”
“민하 정도는 아니어도요?”
그 이름이 나오자 둘 다 잠깐 조용해졌다.
준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아이, 많이 아팠죠.”
“그래.”
“팀장님, 애들은 죽으면 어디 가요?”
시우는 대충 넘기지 않았다.
“모르겠다.”
“교수님은 뭐래요?”
“기억나는 데로 간다더군.”
준범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나쁘지 않네요.”
“뭐가.”
“기억나는 데로 간다는 말.”
그는 민트 사탕을 천천히 굴리며 덧붙였다.
“사람은 원래 기억 안 나면 진짜 서럽잖아요.”
시우는 그 말을 메모해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후 세 시쯤, 윤정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버지 지금은 거의 말씀 못 하십니다. 하지만 의식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준서 형수님이 USB도 확인해보자고 합니다. 오늘 저녁 가능합니까?
시우는 바로 답했다.
가능합니다. 병원 먼저 들렀다가 같이 갑시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창밖을 봤다. 장례식장 복도 끝 유리창으로 봄 햇빛이 조금 기울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계절은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련은 지고, 벚꽃은 올라오고, 바람은 아직 조금 찼다. 사람의 마음은 늘 계절보다 늦다.
그리고 그는 문득, 오늘 저녁 나래를 볼 생각에 조금 더 빨리 시간이 가길 바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런 감각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기다려지는 것. 단지 의무나 위로나 정보 공유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싶은 마음. 사랑이란 결국 ‘시간을 미리 당겨보고 싶어지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병원에 간 건 퇴근 무렵이었다.
혜원대병원의 오후는 새벽과 또 달랐다. 햇빛은 기울고, 면회 시간은 겹치고, 로비는 피곤한 활기로 차 있었다. 아이 손을 잡은 보호자, 서류를 들고 뛰는 인턴, 약국 앞 번호표를 들여다보는 노인, 벤치에서 잠든 간병인. 삶이 연약한 만큼 정교하게 유지되고 있는 장소.
나래는 7층 간호 스테이션 앞에서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우를 보자 피곤한 얼굴로도 바로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는 잠깐 숨을 고르게 됐다.
“오셨네요.”
“네.”
“오늘은 몇 명 보내셨어요?”
“보낸다기보다, 같이 있었습니다.”
나래가 고개를 기울였다.
“오. 표현 좋아졌는데요.”
“교육 효과입니다.”
“제가 좋은 강사였죠?”
“꽤.”
“아직도 꽤네요.”
둘은 동시에 웃었다.
웃음이 끝난 뒤, 나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은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정훈 씨 연락 받았습니다.”
“네. 낮에 잠깐 눈 뜨셨는데, 거의 말씀을 못 하셨어요. 근데 한시우 씨 오면 좋겠다고 입모양 비슷하게 하셨어요.”
시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래가 덧붙였다.
“민하 엄마는 오늘 퇴원 준비 들어갔어요. 병원 측에서 장례 절차 안내도 했고요.”
“그렇군요.”
“민하 침대는 아직 비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누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간호사님.”
“네.”
“그건 꼭 나쁜 뜻만은 아닐 겁니다.”
“알아요.”
나래는 아주 조용히 웃었다.
“근데 좋아도 슬픈 건 슬프네요.”
그 둘의 대화는 어딘가 늘 두 겹이었다. 생활과 존재, 농담과 진심, 슬픔과 안도.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시우는 신기했다. 아마 그래서 더 끌리는지도 몰랐다.
“오늘 저녁에 정훈 씨랑 다시 김준서 씨 집 갑니다.”
“USB요?”
“네.”
“저도 가도 되죠?”
“당연하죠.”
“좋아요. 근데 그 전에…”
나래는 주변을 한번 보고, 스테이션 옆 복도 끝으로 그를 데려갔다.
거긴 창문 하나와 소화기, 작은 의자밖에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잠깐 숨 돌리는 데 쓰는 곳처럼 보였다.
“왜요?”
나래는 대답 대신 아주 잠깐 그의 손을 잡았다.
“오늘 너무 보고 싶었어요.”
시우는 그 한마디에 이상할 만큼 무력해졌다.
“저도요.”
“이 말, 자주 해도 안 촌스럽겠죠?”
“생활 쪽으로 좋습니다.”
나래가 웃었다.
“이젠 생활을 그런 식으로 써먹네요.”
“윤태식 교수님이 좋아하실 겁니다.”
잠깐의 침묵 뒤에, 나래가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한시우 씨, 진짜 끝까지 쓸 수 있겠어요?”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한다고 했어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건 알겠어요.”
“그리고…”
시우는 그녀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나래는 그 말을 듣고 눈빛이 바뀌었다.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약간의 아픔이 같이 있었다. 사랑이 사람을 기쁘게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문장들이 늘 책임까지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그 말, 너무 좋네요.” 그녀가 아주 작게 말했다.
“좋아서 무섭습니까.”
“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럼 잘하고 있는 거예요.”
“왜죠.”
“무서운 걸 알면서도 말했으니까.”
그들은 아주 잠깐, 아무도 없는 복도 끝에서 서로를 안았다.
짧았지만 충분했다. 병원이라는 장소가 그런 장면을 이상하게 더 절실하게 만든다. 인간은 끝을 많이 보는 곳에서 오히려 체온을 더 분명히 원한다.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셋은 다시 김준서의 집에 모였다.
이번엔 형수와 딸 수민도 함께 있었다. 수민은 어제보다 더 말이 없었지만, 눈빛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어린애가 상실을 겪으면 순식간에 나이가 애매해진다. 아직 아이인데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어버리고, 어떤 부분은 더 어려진다.
USB에는 폴더가 세 개 들어 있었다.
- 초고
- 음성
- 미발송
정훈이 노트북에 연결하자 네 사람 모두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봤다.
가장 먼저 연 것은 ‘미발송’ 폴더였다. 그 안엔 이메일 초안 몇 개와 저장되지 않은 편지들이 있었다. 제목 없는 문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파일명은 단순했다.
나중에
시우가 클릭했다.
화면에 짧은 글이 떴다.
나중에 말하려고 미뤄둔 것들 대부분은,
사실 그 순간 말했어야만 했던 것들이다.
사랑도 그렇고, 용서도 그렇고, 두려움도 그렇다.
나중에는 대개 상황이 바뀌고, 사람은 늙고, 몸은 먼저 지치고,
문장은 점점 더 자기를 숨기는 쪽으로 자란다.
그걸 읽자 수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가 저한테도 그랬어요.”
모두가 아이를 봤다.
“뭐라고 했는데?”
“‘나중에 하자’는 말 너무 많이 믿지 말라고. 나중에는 맨날 다른 일이 생긴다고.”
수민은 화면을 본 채 말했다.
“그때는 잔소리인 줄 알았는데.”
형수가 수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장면이 너무 조용하고 또렷해서, 시우는 잠시 노트북 화면보다 그쪽을 더 오래 보게 됐다. 사랑은 역시 구체적이었다. 어깨를 감싸는 팔, 눌러 참는 숨, 아이 머리카락 냄새를 맡듯 가까워지는 얼굴.
정훈이 다음 폴더를 열었다.
음성
그 안엔 짧은 녹음 파일이 여러 개 있었다. 날짜가 불규칙했고, 제목도 거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2026-02-17_지하철
모두의 시선이 거기로 모였다.
정훈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지하철 소음만 들렸다. 안내 방송, 문 닫히는 소리, 사람들 웅성거림, 금속이 흔들리는 낮은 진동. 그리고 잠시 후 김준서의 숨소리가 가까이 잡혔다. 아마 휴대폰 음성 메모를 켜둔 채 주머니나 손에 든 상태였던 것 같았다.
몇 초 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상해. 지금… 이상하게 조용해졌어.”
숨소리.
“다들 그대로 있는데, 뭔가…”
긴 침묵.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소음 너머로 정말 어린 목소리 같은 것이 잡혔다.
너무 작아서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정훈이 볼륨을 키웠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한국어였고,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기억났어요?”
형수의 손이 입으로 올라갔다.
나래는 무의식적으로 시우 팔을 잡았다. 수민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녹음 속 김준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그 뒤엔 다시 소음만 들렸다.
지하철 방송, 발걸음, 문 열리는 소리, 멀어지는 사람들. 파일은 거기서 끝났다.
아무도 곧바로 말하지 못했다.
정훈이 먼저 중얼거렸다.
“편집된 건 아니겠죠.”
시우가 답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김준서 씨가 이걸 혼자 듣고 있었다는 거죠.”
나래가 아주 낮게 말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형수가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 말에 방 안 공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시우는 노트북 옆 메모장에 짧게 적었다.
중요: 공포보다 외로움.
설명할 수 없는 걸 겪는 사람은 사실보다도 고립 때문에 무너진다.
그는 이제 점점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이 소설의 핵심은 세계관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질문과 틈과 기억의 잔광을 겪는 인간이 어떻게 덜 혼자일 수 있는가였다.
그때 마지막 폴더인 초고 안에서 문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파일명은 이랬다.
사후의 봄_초안
시우는 손을 멈췄다.
정훈이 그를 봤다.
“왜요?”
시우는 화면을 가리켰다.
“제목이 있습니다.”
나래가 아주 천천히 읽었다.
“사후의 봄…”
그 제목이 방 안에 퍼지는 순간, 네 사람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너무 직접적이라 촌스러워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이상하게 정확한 제목. 끝난 뒤에 오는 봄. 죽음 이후의 계절. 혹은 죽은 줄 알았던 존재가 다시 기회를 얻는 시간.
시우는 파일을 열지 않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알 것 같았다.
김준서는 이미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윤태식은 그것을 남기라 했고, 자신은 그것을 이어받기로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였다.
이것을 어떻게 쓰느냐.
증명하듯 쓸 것인가.
고백하듯 쓸 것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늦지 않게 닿는 이야기로 쓸 것인가.
시우는 천천히 말했다.
“이건 그대로 베끼면 안 됩니다.”
정훈이 물었다.
“왜요?”
“이건 김준서 씨의 틈이고, 경험이고, 문장입니다. 그대로 옮기면 기록이지 소설이 아닙니다.”
나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살아 있는 쪽에서 다시 써야 합니다.”
“누구 시점으로요?”
시우는 잠시 생각했다.
장례식장.
민하.
윤태식.
김준서.
서나래.
그리고 자신.
이 모든 축을 떠올린 끝에 그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문턱에 서 있는 사람 시점으로요.”
나래가 그를 봤다.
“한시우 씨군요.”
“아마도요.”
“본인이 쓰는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아뇨.”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를 통과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형수가 처음으로 아주 약하게 웃었다.
“준서가 그 말 좋아했을 것 같아요.”
“왜요?”
“자기 얘기를 자기 것처럼만 다루는 걸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늘 말했어요. 사람 이야기는 결국 다른 사람 몸을 한 번 통과해야 제대로 사람 얘기가 된다고.”
시우는 그 문장을 마음에 적어두었다.
사람 이야기는 결국 다른 사람 몸을 한 번 통과해야 제대로 사람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조금 분명해졌다.
기록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통과시키는 것. 죽은 사람의 질문과 살아 있는 사람의 사랑과 끝나지 않은 문장을 자기 안에 통과시켜, 다른 누군가가 읽고 자기 삶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
창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시우는 오늘이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11장. 문턱에 서 있는 사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시우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탁자 위에는 김준서의 노트 사본, 추신 복사본, USB에서 옮긴 파일 정리 메모, 그리고 자신이 급히 적어둔 문장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창밖의 아파트 단지엔 아직 몇 개의 불이 남아 있었다. 늘 그렇듯 누군가는 야근 중일 것이고, 누군가는 아이 열을 재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술에서 깨지 못한 채 뒤척일 것이고, 누군가는 이제 막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도시는 매일 밤 수많은 사적인 문장으로 버틴다.
시우는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그 문장들보다 그 문장들이 끝난 뒤를 더 많이 봤다. 유언, 사망진단서, 제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조문객 방명록. 삶은 그렇게 서류로도 남지만, 진짜 삶은 결국 서류 바깥에 남는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매운 걸 못 먹었다는 것, 잠들기 전에 발을 꼭 씻었다는 것, 자식 이름을 부를 때 첫 음절에서 늘 살짝 웃었다는 것. 그런 게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그는 사람의 끝이 아니라, 사람의 질문을 정리해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 일이 장례보다 더 두려웠다.
죽음은 이미 일어난 일을 다루는 것이지만, 이야기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마음을 흔들지, 누구에게 너무 늦지 않게 닿을지, 혹은 너무 늦게 닿아 더 아프게 만들지는 알 수 없다. 문장은 칼보다 약하지만, 때로 더 깊이 들어간다.
시우는 노트를 펼치고 빈 문서 파일을 열었다.
파일명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적었다.
사후의 봄_한시우 초고
커서가 깜빡였다.
그 작은 깜빡임은 늘 사람을 압박한다.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성실하게 알려주니까. 그는 한참 동안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건네는 첫 문장은 쉬운데, 자기 몫의 첫 문장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래였다.
안 자요?
시우는 곧바로 답했다.
네. 쓰려고 앉았는데 아직 한 줄도 못 썼습니다.
금세 답이 왔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좀 재수 없어요.
한 줄 못 쓴 채 오래 앉아 있는 사람 쪽이 더 믿음 가요.
그 문장을 읽고 시우는 웃었다.
웃고 나니 조금 숨이 풀렸다.
간호사님은요.
저도 아직 안 자요.
교수님 병실 다녀왔고, 집 왔는데 잠이 안 오네요.
어떠셨습니까.
조금 시간이 걸려 답이 왔다.
거의 말씀 못 하셨어요.
근데 손을 잡았더니 아주 잠깐 눈을 뜨셨어요.
이상하게… 무섭기보다 고맙더라고요.
시우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무섭기보다 고맙다.
죽음 가까이 있는 사람 앞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끝이 단지 소멸이 아니라 어떤 전달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혹은 아무리 끝이 와도 마지막까지 곁에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운 것일 수도 있고.
그는 문득 물었다.
간호사님.
소설 첫 문장, 뭐가 좋을 것 같습니까.
이번엔 답이 조금 늦었다.
거창한 진실 말고,
사람 하나가 자기 마음을 아직도 잘못 부르고 있다는 장면이면 좋겠어요.
시우는 그 문장을 보고 손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그는 다시 문서 창을 보고 첫 줄을 썼다.
한시우는 자신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쓰고 나서 그는 한 번 지웠다.
너무 설명적이었다.
다시 썼다.
한시우는 사람들의 마지막 얼굴을 정리하는 데 익숙했지만, 자기 얼굴이 어떤 생을 살고 있는지는 오래 모르고 있었다.
이번엔 지우지 않았다.
첫 문장은 대개 선언이 아니라 방향이다.
어디로 가겠다는 약속. 시우는 그 문장을 읽고 조금 안심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서.
나래에게 다시 보냈다.
첫 줄 썼습니다.
곧 답이 왔다.
오.
이제 두 번째 줄 쓰세요.
인생도 원래 두 번째부터 좀 어려워지잖아요.
시우는 문득,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란 꼭 심오한 문장으로만 깊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오히려 이런 가벼운 말들이 더 멀리 따라온다. 두 번째 줄. 실제 삶도 대개 그 지점에서 꼬인다. 처음은 누구나 어떻게든 시작하지만, 이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는 결국 새벽 세 시 가까이 되어서야 노트북을 덮었다.
겨우 세 페이지 남짓 썼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몸은 오래 걸은 것처럼 피곤했다. 하지만 그 피곤함엔 오랜만에 목적이 있었다. 지친 게 아니라 닿고 있다는 느낌.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그는 창밖을 봤다.
맞은편 아파트의 마지막 불 하나가 꺼졌다.
도시는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둠이 곧바로 공허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이제는 어둠도 어떤 준비처럼 보였다. 아직 보이지 않을 뿐, 그 안에서 무언가 자라고 있을 것만 같은.
다음 날 아침, 윤태식은 세상을 떠났다.
전화는 오전 아홉 시 십이 분에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윤정훈이었다. 목소리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밤새 많이 울었거나, 혹은 아직 실감이 안 나는 사람의 차분함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습니다.”
시우는 그 짧은 문장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병실에 있었고, 문장을 남겼고, 소설이 가장 멀리 간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 문장 바깥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제요.”
“조금 전이요.”
“……”
“오시겠어요?”
질문 같았지만 사실은 부탁이었다.
아들이지만 아직 완전히 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부탁. 사랑했지만 늦은 사람의 부탁. 시우는 그 결을 알아들었다.
“갑니다.”
장례식장으로 출근하던 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하면서, 그는 문득 이상한 생각을 했다.
이제 윤태식의 장례도 결국 자신이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스승이자 질문의 문을 열어준 사람의 마지막 절차를 자기가 맡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장례지도사의 삶이란 원래 조금씩 그런 식이다. 삶 깊숙이 들어왔던 사람이 마지막엔 업무의 형식을 빌려 다시 돌아온다. 직업은 감정을 완전히 분리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감정은 직업 속으로 더 깊게 스며든다.
병원 장례실 앞에서 정훈을 만났을 때, 그는 어제보다 더 늙어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 얼굴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잠을 못 자서가 아니라, 관계 하나가 실제로 끝났을 때. 더는 미뤄둘 수 없는 상실이 도착하면 얼굴은 금방 그걸 배운다.
“오셨어요.”
“네.”
“아버지 장례…”
정훈은 말을 고르다 결국 포기한 듯 말했다.
“선생님이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짧은 동작엔 안도와 죄책감이 같이 있었다. 아버지 장례를 남에게 맡긴다는 감정과, 그래도 이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안도. 인간의 감정은 늘 그렇게 섞여 있다. 완전히 하나인 경우가 거의 없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버지가 왜 선생님을 불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순간 오히려 가벼워질 것 같아서.
윤태식의 마지막 얼굴은 평온했다.
민하 때와 비슷하게도, 시우는 그 평온함 앞에서 공포보다 설명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물론 슬펐다. 아주 슬펐다. 그런데도 윤태식이라는 사람에겐 ‘끝났다’는 말보다 ‘건너갔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사람에게는 종종 사실보다 어울리는 말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남은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하니까.
나래도 잠시 내려왔다.
의료진이라 장례 절차에 길게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병실복 위에 흰 가운을 걸친 채 조용히 분향했다. 향을 꽂고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엔 피곤과 슬픔이 얇게 겹쳐 있었다.
“가셨어요.” 그녀가 아주 작게 말했다.
“네.”
“이상하네요.”
“뭐가요.”
“이제 정말 질문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 것 같아서요.”
시우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윤태식이 살아 있을 때는 아직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없다. 김준서도 없고, 민하도 없고, 윤태식도 없다. 남은 건 기록과 기억,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선택뿐이다. 결국 모든 진실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증명이 아니라 계승의 문제가 되는지도 모른다.
정훈과 상의해 윤태식의 빈소는 시우가 일하는 장례식장으로 정해졌다.
이동 준비와 절차 확인, 가족 연락, 상복, 영정사진, 빈소 배치. 시우는 평소처럼 움직였지만, 몸 안쪽 어딘가가 계속 묵직했다. 슬픔이라는 것이 늘 울음으로만 오는 건 아니다. 어떤 슬픔은 오히려 지나치게 정확해져서 사람을 더 조용하게 만든다.
준범은 상황을 듣고 이례적으로 농담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필요한 준비를 챙겼다. 상복 수량, 접객실 확인, 향과 국화 세팅, 조문객 동선. 그러다 빈소 준비가 거의 끝났을 때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시우는 잠시 그를 봤다.
“이번 질문은 괜찮다.”
“왜요.”
“네가 진짜 걱정해서 하는 거니까.”
준범은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도 걱정은 합니다.”
“알아.”
“근데 이번엔 좀… 달라 보여서요.”
“뭐가.”
“슬픈데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잖아요.”
“그래야 일하지.”
“그것도 그런데.”
준범은 민트 사탕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약간… 잘 보내드리고 싶어 하는 얼굴이에요.”
시우는 대답 대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윤태식에게는 슬픔 못지않게 정확함이 필요했다. 이 사람의 마지막은 그 사람답게 정리돼야 했다. 그는 늘 문지기 같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빈소가 너무 흔하고 관성적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고 시우는 느꼈다.
영정사진은 정훈이 가져온 것 중 비교적 최근 것을 골랐다.
윤태식이 아주 작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학회 자리인지 강연장인지 분명치 않았지만, 눈빛이 살아 있었다. 지나치게 엄숙한 사진보다 나았다. 죽은 사람은 종종 살아 있던 쪽의 표정으로 남는 게 맞다.
빈소가 차려지고 첫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했을 때, 시우는 잠깐 복도 끝 창문 앞에 섰다.
햇빛은 아직 밝았고, 장례식장 마당의 작은 화단엔 봄꽃이 몇 송이 올라와 있었다. 죽음은 늘 계절과 무관하게 오지만, 계절은 또 늘 죽음과 무관하게 온다. 그 두 무관심 사이에서 인간만 분투한다.
그때 나래가 옆으로 와 섰다.
근무 중이라 오래 있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바쁘죠.”
“네.”
“그래도 얼굴은 어제보다 좀 나아요.”
“왜죠.”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서.”
시우는 미소를 지었다.
“간호사님도 만만치 않게 잘 읽습니다.”
“직업병이니까요.”
잠시 둘은 창밖을 봤다.
나래가 먼저 말했다.
“교수님 장례까지 한시우 씨가 맡는 게, 이상하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근데 너무 많이 지치진 마요.”
“노력하겠습니다.”
“또 노력.”
“그럼?”
“밥 먹고, 물 마시고, 틈날 때 눈 붙이고, 저한테 답장하기.”
시우는 웃었다.
“생활을 버리지 말라는 쪽이군요.”
“네.”
나래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우리한텐 그게 이제 철학이니까.”
그 말이 시우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삶의 거대한 비밀을 다루는 와중에도, 결국 밥과 물과 답장이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진짜 철학은 원래 그렇게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끝까지 내려오지 못한 철학은 아직 다 써지지 않은 것일지도.
“오늘 밤엔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네?”
“생각은 계속 할 겁니다.”
나래는 피식 웃었다.
“그건 꽤 좋은 보고네요.”
“간호사님은요.”
“저도요.”
그녀는 아주 잠깐, 정말 잠깐 시우 손등을 건드렸다가 돌아섰다.
사람들 눈이 있으니 더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둘 다 알았다. 그러나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은 때때로 크게 표현될 수 없어서 더 선명해진다.
윤태식의 빈소는 예상보다 조문객이 많았다.
예전 제자들, 동료 교수들, 학회 사람들, 오래전 강연을 들었다는 낯선 이들까지 찾아왔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교수의 말을 흉내 내며 웃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이상한 분이셨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도 각자 다르게 도착한다. 장례식장은 기억들의 시장 같기도 하다. 다들 자기 몫의 기억을 들고 와 빈소에 잠깐 올려놓고 간다.
그 틈에서 시우는 몇 번이고 같은 생각을 했다.
인간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영혼인지, 기억인지, 문장인지, 습관인지, 사랑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남는다. 우리는 남는 것으로 서로를 다시 배운다.
밤이 깊어갈수록 조문객은 줄었고, 가족들만 남는 시간이 왔다.
정훈은 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다가 갑자기 시우를 불렀다.
“선생님.”
“네.”
“아버지 책상 정리하다 나온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정훈은 품 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뭡니까.”
“아버지 메모장인데, 마지막 쪽에 짧게 적어두신 문장이 있어요.”
시우가 수첩을 받아 펼쳤다.
거기엔 삐뚤고 힘없는 글씨로 두 줄만 적혀 있었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보다
왜 다시 사랑하게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시우는 그 문장을 한참 내려다봤다.
처음 강의실 칠판에서 보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인간은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던 사람. 그리고 이제 마지막엔 왜 다시 사랑하게 되는가를 묻고 있다.
질문의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끝나지 않았는가에서, 다시 사랑하게 되는가로.
그것은 거의 답에 가까운 이동처럼 느껴졌다.
정훈이 물었다.
“무슨 뜻 같아요?”
시우는 천천히 수첩을 덮었다.
“아마…”
“네.”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는 뜻 아닐까요.”
정훈은 그 말을 듣고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버지는 마지막엔 덜 외로우셨을까요.”
그 질문엔 자식으로서의 오래된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시우는 정직하게 답했다.
“완전히 안 외롭진 않았을 겁니다.”
“……”
“그래도 혼자는 아니셨을 겁니다.”
정훈은 눈을 감고 한숨처럼 숨을 내쉬었다.
“그 말, 믿겠습니다.”
“네.”
그날 밤, 빈소 정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시우는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장례식장 사무실의 작은 책상 위였다. 바깥에선 정수기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멀리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죽은 스승의 빈소가 바로 밖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웃는다. 슬픔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끝까지 인간이어서.
그는 새로 한 줄을 썼다.
죽음 가까이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사랑을 시작하는 데는 자주 늦는다.
끝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또 썼다.
하지만 끝을 많이 본 사람만이 아는 것도 있다.
늦는 것 역시 하나의 상실이라는 사실이다.
시우는 커서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이번 소설이 단지 세계의 비밀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더 분명히 알았다. 이건 결국, 너무 늦기 전에 사람답게 사랑하고 살라는 이야기였다. 우주와 사후와 기억과 망각은 그걸 더 깊이 흔들기 위한 구조일 뿐, 핵심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누구를 사람으로 대할지.
누구 곁에 남을지.
언제 손을 내밀지.
그리고 언제 늦지 않기로 결심할지.
그는 문서를 저장했다.
파일 저장 아이콘이 잠깐 반짝이고 사라졌다.
별것 아닌 동작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줄, 한 장, 한 파일이 사람의 생을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래도 쓰는 이유는, 어떤 진실은 완전히 담기지 않아도 건네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나래였다.
밥 먹었어요?
시우는 곧바로 답했다.
아직입니다.
지금 바로 뭐라도 드세요.
사랑도 철학도 공복엔 대체로 성격이 나빠져요.
시우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상하게 확신했다.
이 이야기는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왜냐하면 이제 그는
죽은 사람의 기록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과의 생활 쪽으로도 동시에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설이 끝까지 써지는 힘은 거기서 오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진실을 알아서가 아니라, 오늘 밥을 먹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답장을 보내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는 쪽에서.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례식장 식당으로 내려갔다.
국은 조금 식어 있었고, 밥은 평범했다.
그런데 그는 그 평범함이 갑자기 아주 고맙게 느껴졌다.
살아 있는 사람은
결국 이렇게 한 숟갈씩
자기 몫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
제12장.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
윤태식의 발인은 비가 오는 아침에 치러졌다.
봄비였다. 겨울의 비처럼 매섭지 않고, 여름의 비처럼 무겁지도 않은, 세상을 조금 흐리게 만들면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비. 장례식장 바깥 마당의 돌바닥은 젖어 있었고, 조문객들이 들고 온 검은 우산 끝에서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졌다. 시우는 그런 날의 발인이 늘 조금 덜 외롭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너무 맑으면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만 유난히 슬퍼 보일 때가 있다.
발인차 앞에서 정훈은 상복 소매로 젖은 눈가를 몇 번 눌렀다.
수십 번 절차를 봐온 시우는 알았다. 사람이 가장 흔들리는 순간은 꼭 통곡할 때만이 아니다. 관이 움직이기 직전, ‘정말 이제 가는구나’라는 사실이 몸으로 들어오는 몇 초. 그때 사람 얼굴은 자기 나이를 잊는다. 정훈도 그랬다. 사십대 중반의 남자라기보다, 아버지를 늦게 이해한 아들 하나의 얼굴이었다.
“가시죠.”
시우가 낮게 말하자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인차 문이 닫히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가족들이 뒤를 따랐다. 비가 우산 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한 군악처럼 이어졌다. 삶이란 이상하게도 이런 형식들 덕분에 마지막까지 버틴다.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세상이 함께 무너지면 남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한다. 그래서 인간은 절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순서를 만들고, 그 위를 따라 슬픔을 조금씩 운반한다.
화장장까지 동행한 뒤 장례 절차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정훈은 시우에게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버지 책에서 나온 건데요.”
“뭡니까.”
“예전 강의 원고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시우는 봉투를 바로 열지 않았다.
정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아버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어요. ‘한시우가 아직 이 질문을 버리지 않았다면.’”
시우는 그 문장을 듣고 봉투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이상하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제일 어렵네요.”
“왜죠.”
“너무 늦게 하는 말이 많아서요.”
시우는 그 말이 정훈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람은 늘 조금 늦는다. 문제는 늦는 것이 인간의 구조라는 데 있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늦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뒤로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장례를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는 길, 시우는 차 안에서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메모지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윤태식의 필체였다. 힘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또렷한 글씨.
첫 장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문턱에 오래 선 사람은 결국 어느 쪽에도 책임이 생긴다.
둘째 장엔 조금 더 길게 적혀 있었다.
죽은 자를 정리하는 일에만 머물지 말 것.
산 자를 시작시키는 일까지 가면 그제야 문지기 노릇을 다하는 셈이다.
시우는 메모를 무릎 위에 올려둔 채 한동안 운전을 늦췄다.
빗물이 앞유리를 타고 흘렀다. 와이퍼가 움직일 때마다 잠시 시야가 맑아졌다가 다시 흐려졌다. 삶이 꼭 그런 식 같았다. 완전히 다 보이는 시간은 짧고, 대부분은 흐릿하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 짧은 맑음을 믿고 계속 앞으로 간다.
산 자를 시작시키는 일.
그 문장이 시우의 마음을 오래 두드렸다.
자기가 지금 쓰기 시작한 소설이 바로 그런 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의 질문을 남기는 것을 넘어,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삶을 다시 고르도록 만드는 일. 그건 장례지도사가 하던 일과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깊은 데서 연결돼 있었다. 둘 다 문턱의 일이다. 한쪽은 떠나는 문턱, 한쪽은 다시 살아보기로 하는 문턱.
장례가 끝난 뒤 며칠 동안 시우는 이상할 만큼 바빴다.
원래도 장례식장은 바빴지만, 이번엔 일과 글이 동시에 그를 붙잡았다. 낮엔 빈소를 오가고, 저녁엔 윤태식 관련 정리나 유족 대응을 하고, 밤이 되면 집이나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사후의 봄 초고는 하루하루 조금씩 늘어났다. 3장, 5장, 8장. 처음엔 어디로 갈지 막막하던 문장들이, 한 번 방향을 잡고 나니 오히려 너무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쓸수록 더 분명히 느꼈다.
이 소설은 ‘정답’을 말하는 방식으로 쓰면 실패한다.
독자가 정말 붙잡아야 하는 건 세계관 자체가 아니라, 그 세계관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였다. 만약 여기가 죽은 뒤의 회복실이라면,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가. 사랑이 왜 더 중요해지는가. 왜 밥 먹는 일과 손 잡는 일이 오히려 더 성스러워지는가. 왜 늦는 것이 죄는 아니어도 비극이 될 수 있는가.
그는 그런 문장을 점점 더 생활 장면 속에 묻어 넣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육개장, 병원 자판기 커피, 딸기우유, 국밥, 장례식장 식당의 식은 국, 새벽 택시 안의 체온, 병원 복도 소화기 옆 좁은 공간. 우주의 비밀이 정말 있다면, 아마 그런 사소한 데까지 스며 있어야 맞다고 그는 생각했다. 인간은 밥 먹고 사랑하고 울면서 진실을 견디는 존재니까.
준범은 그를 보며 몇 번이나 혀를 찼다.
“팀장님, 요즘 진짜 집에 안 가죠?”
“간다.”
“가서도 쓰죠?”
“쓴다.”
“얼굴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난리예요.”
“그건 무슨 뜻이냐.”
“살아 있는 것 같다가 금방 시체처럼 보여요.”
시우는 피식 웃었다.
“표현 한번 기막히구나.”
“좋은 뜻이에요.”
“그게?”
“네. 예전엔 맨날 죽음 쪽에서만 지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삶 쪽으로도 지친 얼굴이거든요.”
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준범은 괜히 쑥스러운 듯 민트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네가 생각보다 좋은 말을 할 때가 가끔 있어서.”
“가끔이 뭐예요, 꽤 자주예요.”
시우는 그 말을 메모해두었다.
삶 쪽으로도 지친 얼굴.
그건 중요한 표현이었다. 인간은 무엇에 지쳤는가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죽음 가까이서만 지치면 점점 굳고, 삶 쪽으로도 지치기 시작하면 표정이 다시 움직인다. 기뻐서가 아니라 진짜로 살고 있어서.
서나래와는 자주 보았지만, 길게 보진 못했다.
그녀 역시 민하 이후 병동에서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 상담, 새 환자 입원, 보호자 응대, 죽음 뒤 남겨진 침대 정리. 병원은 누군가 떠나도 바로 다음 사람을 맞이해야 한다. 그 사실은 잔인하면서도 정직하다. 한 사람의 삶이 우주였더라도, 제도는 멈출 수 없다.
그럼에도 둘은 틈틈이 만났다.
병원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나눠 먹기도 했고, 장례식장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포장해 차 안에서 먹기도 했고, 밤늦게 통화하며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건네기도 했다. 특별한 데이트라 부르기엔 소박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삶을 바깥에서 꾸며낸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 안에 서로를 들이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어느 비 갠 저녁, 병원 옥상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나래가 말했다.
“한시우 씨.”
“네.”
“사람 좋아하는 게 이렇게 생활이 되는 거, 저는 오랜만이에요.”
시우는 그녀를 봤다.
“생활이 되는 거.”
“네. 예전엔 사랑하면 막 드라마처럼 커져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밤새고, 울고, 불안하고, 엄청 설레고.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까.”
“지금은… 같이 밥 먹었는지 궁금하고, 너무 늦게 퇴근하면 짜증나고, 감기 걸릴까 신경 쓰이고, 대충 살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런 쪽이 더 커요.”
시우는 조용히 웃었다.
“좋은 거 아닌가요.”
“좋죠. 근데 그래서 더 무서워요.”
“왜요.”
“이건 진짜 오래 갈 것 같아서.”
그 말은 단순한 고백보다 더 깊었다.
오래 갈 것 같다는 감각. 사람은 그 감각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잠깐의 불꽃이면 오히려 쉽게 덤빌 수 있지만, 오래 갈 것 같으면 삶 전체를 다시 배치해야 하니까.
시우는 잠시 후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뭐가요.”
“오래 갈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나래는 작게 웃었다.
“근데도 해볼 거죠?”
“네.”
“왜요.”
“이건 늦고 싶지 않아서요.”
나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병원 옥상, 도시의 불빛, 멀리 구급차 소리, 젖은 흙냄새. 그 모든 배경이 과하지 않게 둘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랑은 정말로 거창한 음악보다 이런 배경과 더 잘 어울릴 때가 있다.
“저 하나만 약속해요.” 나래가 말했다.
“뭘요.”
“너무 바빠도, 너무 힘들어도, 모르겠는 건 모르겠다고 말하기.”
시우는 그 말을 잠깐 음미했다.
“그게 왜 중요하죠.”
“사람은 무너질 때보다 멀쩡한 척할 때 더 멀어지거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간호사님도요.”
“저도요.”
“그리고 하나 더.”
“네?”
“늦지 않기.”
나래가 웃었다.
“그건 이제 우리 종교 같네요.”
“종교까진 아니고.”
“생활 철학?”
“그쯤.”
“좋네요.”
둘은 그렇게 웃었다.
시우는 그 순간 문득, 윤태식이 말한 “누구를 사람으로 대할지”라는 문장이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을 자기 외로움의 수단으로 쓰지 않고, 정말 하나의 존재로 대하려는 노력이다. 밥 먹었는지 묻고, 아프면 걱정하고, 모른 척하지 않고, 늦지 않으려 하고. 사랑은 감정보다 태도일 수도 있다.
그즈음 수민에게서 메시지가 한 번 왔다.
김준서의 딸. 번호는 형수를 통해 전달받았다.
아저씨.
아빠 노트 읽다가 이상한 문장 하나 찾았어요.
사진 보내드려도 돼요?
곧바로 사진이 왔다.
김준서의 수첩 한 귀퉁이에 연필로 아주 작게 적힌 문장이었다.
아이들은 떠나는 법을 덜 잊고,
어른들은 돌아온 사실을 더 빨리 잊는다.
시우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민하가 떠올랐고, 응급실 아이 이야기를 하던 나래가 떠올랐고, 어린 수민이 상실을 견디며 이 문장을 발견해낸 사실도 마음에 남았다. 아이들은 정말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지나는 걸까. 덜 잊고 더 빨리 알아보는 걸까.
그는 수민에게 답했다.
좋은 문장이네.
고맙다.
조금 뒤 수민이 다시 보냈다.
아저씨.
아빠가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을까요?
시우는 한참 동안 답을 쓰지 못했다.
이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다.
죽은 아버지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지, 어린 딸이 지금부터 골라야 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이렇게 적었다.
조금 이상했고, 많이 진심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자기가 본 걸 끝까지 혼자 갖고 있지 못한 사람.
그래서 남긴 거겠지.
수민의 답은 짧았다.
그럼 다행이네.
이상한데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시우는 거의 바로 답했다.
응.
전혀.
그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그는 문득, 소설이란 결국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긴 형식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이 이상했는지, 사랑이 왜 늦는지, 아이들은 무엇을 더 아는지,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직접 증명할 수는 없어도,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질문을 곁에 두게 만드는 것.
며칠 뒤, 시우는 나래와 함께 민하 엄마를 잠깐 만났다.
병원 근처 카페였다. 민하 엄마는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지만, 말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 중엔 어떤 순간부터 오히려 목소리가 낮아지는 이들이 있다. 많이 울고 나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울어서 더는 소리로 다 못 내는 단계.
“민하가요.”
그녀가 따뜻한 차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말했다.
“어릴 때부터 가끔 이상한 말을 했어요.”
나래가 조용히 들었다.
“그땐 애가 상상력이 풍부한가 보다 했죠. 근데 병이 깊어지고 나서는… 오히려 더 차분하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어떤 말이요?” 시우가 물었다.
“자긴 여기 처음 오는 게 아닌 것 같다고. 그리고 자꾸… 제가 자기를 데려온 걸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녀는 그 대목에서 잠깐 말을 멈췄다.
눈물이 나는 대신, 아주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엄마 입장에선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세요?”
시우와 나래는 가만히 있었다.
“근데 동시에 얼마나 고마운지도 몰라요.”
그녀는 눈가를 눌렀다.
“애가 마지막까지 저를 먼저 위로한 거잖아요.”
나래가 작게 대답했다.
“네.”
민하 엄마는 한참 후에야 시우를 봤다.
“나래 선생님이 얘기해줬어요. 민하가 마지막에 선생님한테도 말을 많이 했다고.”
“조금요.”
“그럼… 이상한 부탁 하나 해도 돼요?”
“말씀하세요.”
“그 아이를 이상한 아이로만 쓰진 말아주세요.”
시우는 순간 숨을 멈춘 듯했다.
“……”
“민하는 웃긴 애였어요. 딸기우유 좋아했고, 엄청 고집 세고, 주사 맞기 싫다고 도망도 가고, 게임 지면 삐지고, 엄마 화장 못한다고 놀리고.”
그녀는 웃다가 울음이 묻은 얼굴로 덧붙였다.
“그런 애였는데, 자꾸 사람들이 마지막 말만 기억할까 봐 겁나요.”
시우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쓰지 않겠습니다.”
“네.”
“민하는… 살아 있는 아이로 쓰겠습니다.”
민하 엄마는 그 말에 결국 눈을 감고 울었다.
나래가 손수건을 건넸고, 그녀는 받으면서 작게 말했다.
“그럼 됐어요.”
카페에서 나오는 길, 나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병원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
“잘했어요.”
“뭐가요.”
“민하를 살아 있는 아이로 쓰겠다고 한 거.”
시우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연한데, 사람들이 가끔 제일 못 지키는 거예요.”
나래는 그를 봤다.
“죽은 사람을 죽음으로만 기억하는 거.”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장례식장에 있으면 특히 더 그렇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잃고 나면 마지막 병상, 마지막 전화, 마지막 표정에 기억이 꽂힌다. 하지만 인간은 마지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딸기우유를 좋아하고, 우스운 농담을 하고, 반찬통 뚜껑을 잘 못 열고, 봄이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재채기를 하고, 뜨거운 국을 식혀 먹고, 사랑 때문에 늦잠을 자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날 밤 시우는 초고에 이렇게 적었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일은
그 사람의 마지막을 웅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한때 아주 사소한 기쁨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잊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
쓰고 나서 그는 한참 그 문장을 보았다.
문장이 자기 경험보다 조금 더 나아갈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은 기쁘면서도 무섭다. 문장이 자기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즈음, 초고는 스무 장을 넘어섰다.
이야기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장례지도사 한시우, 완화의료병동 간호사 서나래, 죽어가는 철학자 윤태식, 이상한 아이 민하, 미완성 원고를 남긴 김준서. 이 다섯 축이 서로를 비추며 한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시우는 어느 밤 나래에게 일부를 읽어주었다.
장례식장 사무실 문을 닫고, 영상통화를 켜고, 모니터 옆 작은 스탠드만 켠 채. 나래는 병원 당직실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시우가 한 대목을 읽고 나자 나래가 말했다.
“좋아요.”
“진짜요.”
“네.”
“어디가.”
“정답처럼 안 써서.”
시우는 안도한 듯 웃었다.
“그게 제일 신경 쓰입니다.”
“알아요. 그게 잘 되고 있어요.”
“더 고칠 데는요.”
“있죠.”
“어딥니까.”
나래는 아주 정확하게 말했다.
“여기요. 한시우가 자기 슬픔을 너무 빨리 이해해버려요. 아직은 조금 더 우왕좌왕해야 진짜 같아요.”
시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간호사님, 독자보다 편집자 쪽 아닙니까.”
“어쩌다 보니.”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사랑 장면 하나는 더 넣어도 될 것 같아요.”
“왜죠.”
“이 소설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렇군요.”
“네. 우주의 의미를 묻는 소설이지만, 독자는 결국 누가 누구한테 늦지 않는지를 더 기억할 거예요.”
시우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맞았다.
독자는 지하철의 틈이나 흰 공간의 존재 여부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주론은 문을 열 수 있지만, 끝까지 사람을 붙잡는 건 체온과 선택이다.
“그럼 하나 물어도 됩니까.” 시우가 말했다.
“물어보세요.”
“간호사님은 소설 속 서나래가, 한시우를 언제부터 좋아했을 것 같습니까.”
나래는 웃음을 참는 표정을 했다.
“이건 현실 질문인가요 소설 질문인가요.”
“둘 다요.”
“음…”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첫 만남 때부터.”
시우가 눈썹을 올렸다.
“그건 너무 빠른데요.”
“아뇨. ‘웃으실 줄은 아는 분 같아서’라고 했잖아요.”
“그 문장은 아직 초고에 없는데요.”
“넣으세요.”
나래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좋은 문장이니까.”
시우는 결국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며 나래도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둘 다 알았다. 이 관계는 이제 설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단계로 가고 있었다. 서로의 문장을 도와주고, 서로의 생활을 챙기고, 서로의 슬픔을 조금씩 같이 들고 가는 단계.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감정보다 공동 작업 같아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깊다.
어느 금요일 저녁, 시우는 처음으로 나래의 집에 갔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나래가 야간근무 전까지 잠깐 시간이 났고, 시우도 장례식장 일정이 비교적 일찍 정리됐을 뿐이었다. 집 앞 빵집에서 식빵을 사고,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 들고, 너무 자연스럽게 좁은 골목을 함께 걸었다. 이런 장면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특별했다.
나래의 집은 작고 단정했다.
작은 원목 식탁, 책 몇 권, 병원에서 받은 듯한 머그컵, 베란다에 놓인 허브 화분, 냉장고 문에 붙은 메모지. 아주 생활의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다. 시우는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왜 그렇게 둘러봐요?”
“좋아서.”
“뭐가요.”
“살아 있는 집 같아서.”
나래는 잠깐 그를 보다가 웃었다.
“그 말, 칭찬 맞죠?”
“아주.”
“다행이네요. 전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는데.”
“그것도 포함해서요.”
그날 둘은 별것 아닌 저녁을 먹었다. 계란말이, 된장국, 김치, 남은 반찬. 대단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시우는 오히려 그래서 더 감동했다. 누군가의 집에서 평범한 저녁을 함께 먹는 일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다. 미래를 선언하는 것도 아니고, 약속을 확정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삶 안쪽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니까.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같이 하다가 나래가 말했다.
“한시우 씨.”
“네.”
“우리 되게 평범하네요.”
“그게 불만입니까.”
“아뇨.”
그녀는 젖은 접시를 닦으며 미소 지었다.
“좋아서요.”
시우는 그 말에 잠깐 손을 멈췄다.
좋아서요.
사랑이란 결국 이런 평범함을 기쁘게 느끼는 능력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사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먹은 밥이 맛있었는지 궁금하고, 식탁 옆 작은 전등 색까지 좋아지는 것. 거대한 서사 없이도 충분히 소중해지는 것.
그날 밤 집을 나서기 전, 나래는 현관 앞에서 말했다.
“예전에 전 사랑이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줄 알았어요.”
“아닙니까.”
“지금은 반대인 것 같아요.”
“뭐가요.”
“사랑이 오히려 사람을 평범하게 만들기도 해요.”
“어떻게.”
“잘 자라고 말하게 하고, 밥 먹었냐고 묻게 하고, 다음 주 스케줄 맞춰보게 하고, 감기 걸릴까 걱정하게 하고.”
시우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게 더 어렵죠.”
“네. 훨씬요.”
“왜죠.”
“평범한 건 자꾸 반복해야 하잖아요.”
“간호사님은 반복이 싫습니까.”
“아뇨.”
나래는 그의 코트 깃을 한번 정리해주며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반복은… 생각보다 아름답더라고요.”
그 순간 시우는 정말로 알 것 같았다.
만약 여기가 죽은 뒤의 회복실이라 해도,
인간을 다시 낫게 하는 건 결국 이런 반복일지도 모른다.
잘 자, 밥 먹었어, 늦지 마, 조심히 가, 오늘도 수고했어, 보고 싶었어.
거창한 계시보다 그런 문장들이 훨씬 더 사람을 다시 사람 쪽으로 돌려놓는다.
그는 나래의 이마에 아주 조용히 입을 맞췄다.
“이번엔 정확한 타이밍입니까.”
나래가 웃었다.
“네. 아주.”
제13장. 반복되는 것들의 구원
봄은 어느 날 갑자기 깊어진다.
전날까지는 코트를 여며야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엔 셔츠만으로도 괜찮고, 마른 가지뿐이던 나무에 어느새 연두색이 번져 있고, 출근길 사람들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슨해진다. 서울의 봄은 늘 그렇게 온다. 거창한 선언 없이, 반복되는 일상 사이사이에 조용히 스며든다.
한시우는 그 변화가 이번 봄엔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이유는 계절만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두 가지 반복 속에 있었다. 낮에는 장례식장의 반복. 검은 정장, 절차, 위로, 육개장 냄새, 유족의 얼굴, 서류, 화장장 시간 확인. 밤에는 소설의 반복. 노트북, 미완성 문장, 김준서의 기록, 윤태식의 문장, 민하의 목소리, 그리고 계속해서 되묻게 되는 질문들.
그런데 그 두 반복 사이에, 어느새 또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서나래.
아침에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점심쯤 답장을 받고, 밤에는 잠깐이라도 통화하거나 얼굴을 보고, 바쁘면 바쁜 대로 서로의 피곤을 확인하는 반복. 대단한 사건은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강했다. 사랑이 삶을 바꾸는 방식은 종종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꾸 습관처럼 스며들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 어려워지게 만든다.
시우는 그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이상하게 평온했다.
아마 평온은 확신 때문이 아니라, 더는 도망치지 않기로 한 상태에서 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날 아침 장례식장 1호실에선 아주 어린 사망자의 빈소가 차려지고 있었다.
열일곱 살. 오토바이 사고.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몇 명 와 있었고, 부모는 아직 현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얼굴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울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또 울기를 반복했다. 너무 큰 슬픔은 오히려 일정한 형태를 갖지 못한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갑자기 멀쩡한 질문을 하고, 물 한 잔을 마시다가도 다시 무너진다.
“팀장님.”
준범이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어머니가 계속 사진 얘기하세요.”
“무슨 사진.”
“영정 말고요. 핸드폰 사진 보여주시면서… 애가 이런 표정으로 웃던 애인데, 왜 저기 걸린 건 너무 어른 같냐고.”
시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1호실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고인의 영정과 휴대폰 사진을 번갈아 보며 울고 있었다. 휴대폰 속 아이는 운동장인지 골목인지 모를 곳에서 친구 어깨를 끌어안고 웃고 있었다. 잇몸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는 얼굴. 반면 영정으로 고른 사진은 학생증용인지 증명사진 비슷한 것이어서 지나치게 단정하고 무표정했다.
“이건 우리 애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말했다.
“이런 얼굴로 산 적 없어요. 얘는 맨날 웃겼단 말이에요.”
그 말은 이상하게 시우의 심장을 찔렀다.
민하 엄마가 했던 부탁이 떠올랐다.
민하를 이상한 아이로만 쓰지 말아달라고.
죽은 사람을 죽음으로만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시우는 휴대폰 사진을 다시 봤다.
아이의 웃음은 사진 밖으로도 번질 것 같았다. 어설프고, 젊고, 조금 우스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사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어머니는 눈물 범벅인 얼굴로 그를 봤다.
“바꿔도 돼요?”
“네. 당연히요.”
“장례식장은 원래 이런 걸로 해야 하는 줄…”
“원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그 아이답게 보이는 것.”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꼭 쥐었다.
그리고 거의 울음과 웃음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정을 교체하자 빈소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슬픔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의 눈에, 비로소 ‘죽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걸린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사진을 보자마자 울면서도 “맞다, 이 표정이지”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우는 알았다. 누군가를 잃은 뒤에도, 그 사람이 여전히 자기다운 얼굴로 남아 있다는 확인. 그것만으로도 남은 사람은 조금 덜 무너진다.
준범이 나중에 복도에서 말했다.
“팀장님, 진짜 많이 달라지셨어요.”
“또 뭘.”
“예전 팀장님이면 절차대로 했을 텐데.”
“나도 사람이다.”
“그건 알죠. 근데 요즘은… 사람을 더 오래 보세요.”
시우는 대답 대신 창문 너머를 봤다.
봄빛이 유리 위에 번지고 있었다.
준범은 민트 사탕을 까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도 이제 알 것 같아요.”
“뭘.”
“죽은 사람 정리하는 일이, 꼭 죽음만 다루는 건 아니라는 거.”
“왜 그렇게 생각하냐.”
“오늘 사진 바꾸는 거 보니까요. 그건 죽은 사람 정리보다… 살아 있던 사람 복원하는 느낌이었어요.”
시우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임을 바로 알았다.
살아 있던 사람 복원.
어쩌면 장례는 끝의 절차이기 이전에 복원의 작업인지도 몰랐다.
죽음이 한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남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웃음과 습관과 구체적인 체온을 다시 꺼내 놓는 작업.
그날 밤 그는 소설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죽음은 사람을 한 줄로 줄이려 하고,
사랑은 끝까지 그 사람을 다시 여러 장면으로 펼쳐놓는다.
오후엔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잠깐 시간이 났다.
시우는 노트북을 열어 초고를 고치기 시작했다. 나래가 지적했던 부분, 한시우가 자기 슬픔을 너무 빨리 이해해버리는 장면들을 조금 더 흔들리게 바꿨다. 멀쩡한 척하고, 늦게 알아차리고, 말할 타이밍을 몇 번 놓치는 쪽으로. 인간은 깨달음보다 망설임을 더 많이 통과한다. 소설도 그래야 진짜 같았다.
그는 민하 장면도 다시 손봤다.
민하를 신비한 존재로만 쓰면 안 됐다. 그 아이가 주사 맞기 싫다고 삐지고, 딸기우유에 집착하고, 나래를 직업적으로 웃긴 사람 하라고 놀리던 순간들을 더 살려 넣었다. 인간은 마지막 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말이 깊어지는 이유는 그전에 너무 평범하고 구체적으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수정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나래였다.
오늘 저녁 일찍 끝날 수도 있어요.
시간 되면 밥 먹을래요?
시우는 바로 답했다.
갑니다.
조금 뒤 다시 왔다.
이 답장 너무 좋네요.
군더더기가 없어서.
시우는 웃었다.
늦지 않기 운동 중입니다.
생활 철학, 잘 실천 중이네요.
이 짧은 대화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반복은 사람을 무디게 만들기도 하지만, 잘 반복된 것은 오히려 사람을 구한다. 같은 시간에 오는 메시지, ‘갑니다’ 같은 짧은 답, 저녁을 같이 먹는 약속. 그런 것들이 세계의 거대한 낯섦에 작은 고정점을 만든다.
인간이 왜 습관을 사랑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본래의 집을 잊은 채 사는 존재들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더욱 작은 귀환의 형식을 필요로 한다. 제시간에 오는 목소리, 같은 컵, 익숙한 손, 늘 앉던 자리. 반복은 망각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회복의 기술이기도 하다.
저녁엔 병원 근처 칼국수집에서 나래를 만났다.
유리창엔 김이 서려 있었고, 안에서는 김치 냄새와 멸치 육수 냄새가 났다. 퇴근한 병원 직원 둘이 한쪽에서 말없이 국수를 먹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엔 보호자로 보이는 부부가 조용히 만두를 나눠 먹고 있었다. 슬픔과 허기와 일상이 함께 앉아 있는 식당이었다.
나래는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
“오늘 진짜 힘들었어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새로 들어온 환자 보호자분이요. 계속 화를 내시는데, 사실은 무서워서 그러시는 거거든요.”
“대개 그렇죠.”
“알아요. 근데 알면서도 힘들어요.”
그녀는 물컵을 들었다 놓으며 덧붙였다.
“사람이 무서울 때 제일 닮기 싫은 모습이 나올 때가 있잖아요.”
“간호사님도 그렇습니까.”
“네. 저도 무서우면 자꾸 정리하려 들어요.”
“정리?”
“감정 말고 기능으로 가는 거요. 환자 상태, 약 용량, 설명 순서, 보호자 대응. 그러면 덜 아플 것 같아서.”
시우는 낮게 웃었다.
“그건 나랑 비슷하군요.”
“맞아요.”
나래도 웃었다.
“우리 둘 다 좀 위험한 종류예요. 슬플수록 유능해지는 쪽.”
“좋은 거 아닙니까.”
“겉으론 좋죠. 근데 나중에 몰아서 아프잖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상실을 기능으로 처리하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대신 오래 간다. 느리게 쌓이고, 다른 형태로 새어 나온다. 시우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칼국수가 나오고, 둘은 잠시 뜨거운 국물에 집중했다.
나래가 후후 불며 말했다.
“이상하게 요즘은 뭘 먹어도 더 맛있어요.”
“왜죠.”
“잘 모르겠어요. 근데… 슬픈 일이 많을수록 오히려 그런가?”
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민하 때문일 수도 있죠.”
“왜요.”
“그 아이가 마지막에 좋은 것도 많았다고 했잖습니까. 딸기우유, 여름 냄새, 손…”
나래는 젓가락질을 멈췄다.
“……”
“그 말 듣고 나면, 평범한 걸 함부로 못 넘기게 되지 않습니까.”
나래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녀는 국수를 한 젓가락 들어 올리며 아주 작게 말했다.
“민하가 죽은 뒤로, 저는 이상하게 뜨거운 것들이 더 좋아졌어요.”
“왜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너무 직접적이라서.”
시우는 그 문장이 좋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너무 직접적이라서. 뜨거운 국물, 따뜻한 손, 막 삶은 달걀, 샤워 뒤의 김, 햇볕 든 이불. 죽음 가까이 있을수록 사람은 그런 것들을 더 정확히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한시우 씨.”
“네.”
“요즘 소설 쓰면서 제일 자주 드는 생각이 뭐예요?”
시우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밖엔 퇴근길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고, 누군가는 우산을 접고, 누군가는 빨리 걸었다. 특별한 날 같지 않은 저녁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은 늘 저녁에 더 잘 나온다. 하루가 끝나가고, 사람도 조금 자기 쪽으로 돌아오기 때문일까.
“아마…” 그가 말했다.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산다는 겁니다.”
“그건 원래 알고 있던 거 아닌가요.”
“머리로는요. 근데 요즘은 몸으로 더 느낍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들 기록을 읽을수록, 결국 남는 건 관계 쪽이더군요. 누굴 사랑했는지, 누굴 놓쳤는지, 누가 곁에 있었는지.”
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또 하나.”
“뭔데요.”
“인간은 혼자 이상한 질문을 오래 품으면 쉽게 무너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김준서 씨가 그렇게 외로웠겠죠.”
“네. 그리고 아마 윤태식 교수님이 자꾸 사람을 불렀던 이유도 그거겠죠.”
“질문을 혼자 갖고 있지 말라고.”
“네.”
나래는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도 약속해요.”
“뭘요.”
“이상한 질문 생기면 혼자 오래 갖고 있지 않기.”
시우는 웃었다.
“이젠 연애가 아니라 공동 연구 같군요.”
“좋죠.”
나래가 웃었다.
“연애만 하면 오래 못 가요. 공동 연구도 좀 해야지.”
“그건 동의합니다.”
“그리고 밥도 먹고.”
“그건 필수죠.”
“좋아요. 그럼 우리 관계의 본질은 대충 정리됐네요.”
“뭡니까.”
나래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듯 말했다.
“사랑, 생활, 공동 연구, 늦지 않기.”
시우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칼국수.”
“네. 아주 중요해요.”
둘은 웃다가, 한참 뒤에야 다시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은 어색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건너본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침묵이었다. 말이 없어도 관계가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닌 상태. 그런 침묵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신뢰였다.
식당에서 나온 뒤, 둘은 병원 뒤편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비는 낮에 잠깐 왔다가 그친 뒤였다. 공기엔 젖은 나무 냄새가 남아 있었고, 가로등 아래 바닥이 군데군데 반짝였다. 멀리 응급실 쪽 불빛은 여전히 밝았다. 삶과 죽음은 밤에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저 불빛은 너무 성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우는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이젠 손을 잡는 일이 더는 특별한 선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중요했다. 특별한 순간에만 가능한 접촉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반복 가능한 다정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시우 씨.”
“네.”
“우리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그 질문은 뜬금없지만 이상하게 당연했다. 사람은 좋아하게 되면 결국 그다음을 묻는다. 그게 결혼이든 동거든, 아니면 단순히 오래 함께 가는 것이든. 사랑은 현재를 깊게 만들지만, 동시에 미래를 가만히 요구하기도 한다.
시우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정직하네요.”
“네. 대신 하나는 압니다.”
“뭔데요.”
“예전 같으면 이런 질문에 대답을 미뤘을 겁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나래는 그를 봤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 눈동자에 얇게 걸렸다. 피곤한 얼굴인데도 그 순간엔 아주 또렷해 보였다.
“그럼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시우는 잠시 숨을 골랐다.
“간호사님이 너무 바빠도, 나도 너무 바빠도, 우리가 서로의 생활 안에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래는 말없이 들었다.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반짝이다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이 늙어가고, 반복하고, 아프면 챙기고, 싸우면 다시 얘기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래의 눈가가 아주 조금 젖었다.
“그리고?”
“그리고… 내가 더는 반 발짝 뒤에 서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아주 작게 웃었다.
“좋네요.”
“간호사님은요.”
나래는 손에 힘을 조금 주며 말했다.
“저는 한시우 씨가 나중에도 계속 저를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연한데, 제일 어려워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랑 오래하면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역할처럼 대할 때가 오거든요. 내 위로, 내 안전, 내 익숙함, 내 편. 그렇게.”
시우는 그 말을 곱씹었다.
“맞습니다.”
“전 그게 싫어요.”
“저도요.”
“그러니까… 오래 가도 계속 물어봐줘요. 밥 먹었는지 말고도, 요즘 뭐가 무서운지, 어디가 아픈지, 뭘 놓치고 있는지.”
“좋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럴게요.”
그 약속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래서 오래갈 종류였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태도로 약속하는 사람들. 그건 쉽게 뜨겁진 않아도 쉽게 식지도 않는 방식일 수 있었다.
그때 멀리서 병원 시계가 아홉 시를 알렸다.
나래가 한숨처럼 웃었다.
“들어가야겠네요.”
“네.”
“오늘도 늦지 않았죠?”
“네. 오늘도.”
“좋아요.”
병원 입구 앞에서 헤어지기 전, 나래는 시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한시우 씨.”
“네.”
“요즘 가끔 이런 생각해요.”
“뭔데요.”
“정말 여기가 죽은 다음의 회복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꽤 잘 회복 중인 것 같다고.”
시우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웃었다.
“네.”
“왜 웃어요.”
“처음으로 그 말이 전혀 무섭지 않아서요.”
나래도 웃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짧게 그를 안았다가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닫히고, 그녀의 뒷모습이 형광등 아래 멀어졌다.
시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회복.
그 말은 이제 더는 추상적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밥을 같이 먹고, 죽은 사람을 그 사람답게 기억하려 하고, 미루지 않으려 애쓰고, 평범한 반복을 귀하게 느끼는 것. 그런 것들이 전부 회복의 구체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새 장의 첫 줄에 이렇게 썼다.
회복은 거창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것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속도일지도 몰랐다.
그 문장을 쓴 뒤, 시우는 처음으로 이 소설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조금 더 강하게 느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죽은 사람들의 질문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으로도 이 이야기를 밀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14장. 너무 늦은 고백과 아직 늦지 않은 사람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때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 크게 무너질 때가 있다.
한시우는 그걸 장례식장에서 오래 봐왔다.
상주는 대체로 처음엔 자기 슬픔에 갇혀 있다. 그런데 조문객 하나가 와서 “그 사람이 예전에 제게 이런 말을 해줬어요”라고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울음의 결이 바뀐다. 죽은 사람이 가족에게만 속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도 조용히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건 이상하게도 슬픔을 더 넓히면서도 동시에 덜 외롭게 만든다.
윤태식이 떠나고 일주일쯤 지난 오후, 바로 그런 조문객 하나가 장례식장으로 찾아왔다.
그날은 장례 일정이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비가 그치고 난 뒤라 공기는 맑았고, 복도 끝 창문으론 햇빛이 얇게 들어와 바닥에 긴 직사각형을 만들고 있었다. 준범은 빈소 식당 쪽 정리를 보러 내려갔고, 시우는 사무실에서 소설 초고를 조금 다듬고 있었다. 김준서의 문장과 자신의 문장이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 그 경계를 조심스럽게 조정하던 참이었다.
그때 접수 쪽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한 팀장님, 손님 한 분이 윤태식 교수님 빈소가 어디였냐고 물으시는데요.”
“지금은 발인 끝났죠.”
“네. 그걸 알면서도… 잠깐 뵐 수 있냐고 하세요.”
“유족인가?”
“아닌 것 같아요. 젊은 여자분인데.”
“올라오라 하세요.”
잠시 뒤, 사무실 문 앞에 여자가 섰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검은 원피스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걸쳤고, 손엔 작은 종이 봉투를 들고 있었다. 얼굴은 단정했지만, 표정엔 오래 망설이다 온 사람 특유의 흔들림이 있었다. 너무 늦은 자리에 도착한 사람의 얼굴.
“한시우 팀장님 맞으시죠?”
“네.”
“실례가 아니라면…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앉으시죠.”
여자는 의자에 앉았지만 자세가 편해지지 않았다. 손에 든 봉투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저는 이서경이라고 합니다.”
“네.”
“윤태식 교수님 장례를 여기서 치렀다고 들어서…”
“그러셨습니다.”
“그럼 혹시, 김준서 씨라는 분도 아세요?”
시우는 손끝이 아주 조금 굳는 걸 느꼈다.
“네. 압니다.”
여자는 그 반응을 보고 숨을 아주 작게 들이켰다.
“역시…”
그 한마디엔 놀람보다 체념이 더 많았다.
이미 어느 정도 연결을 짐작하고 온 사람 같았다.
“두 분을 어떻게 아십니까.”
서경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김준서 씨가 메일에서 쓴 ‘누군가’가… 아마 저인 것 같아서요.”
사무실 공기가 아주 조용해졌다.
시우는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상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순한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 김준서가 끝내 밝히지 못한 그 사람이 맞는지 판단하려면 급히 반응하면 안 됐다. 그는 장례지도사였고, 동시에 이제 이 이야기의 문지기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출판사에서 프리랜서 번역 일을 합니다. 준서 씨랑은 같은 업계 행사에서 몇 번 마주쳤고요.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작년 겨울쯤이었어요.”
“어떻게요.”
“원고 때문에요. 제가 번역한 철학 에세이를 준서 씨가 편집하게 됐거든요.”
그녀는 봉투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그냥 일하는 사이였죠. 근데 그 사람이 이상하게… 문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어요. 빨리 끝내려는 사람이 아니라, 왜 이 문장이 여기 있어야 하는지 끝까지 물어보는 쪽.”
“준서 씨답군요.”
서경은 아주 조금 웃었다.
“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가까워지셨고요.”
“네. 원고 끝나고도 가끔 차 마시고, 책 얘기하고, 메일 주고받고…”
그녀는 잠시 멈췄다.
“아주 조심스럽게 가까워졌어요.”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조심스럽게라는 말은 많은 걸 설명했다. 이미 각자 생활이 있는 어른들의 감정은 대개 그렇게 온다. 십대처럼 바로 불타오르지 못하고, 반가움과 죄책감과 자기검열을 같이 데리고 온다.
“준서 씨는 결혼한 분이었으니까요.” 시우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서경은 고개를 숙였다.
“네.”
“그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시죠.”
“처음부터 알았어요.”
“그럼에도.”
“네.”
서경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럼에도요.”
그 말 뒤에 짧은 침묵이 놓였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애매한 고백 앞에서 종종 급히 판단하려 든다. 하지만 시우는 그러지 않았다. 이건 이제 더 이상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미 한 사람은 죽었고, 남은 사람은 너무 늦게 도착한 고백을 들고 와 있었다.
“준서 씨도 같은 마음이었습니까.”
서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 아마.”
“아마.”
“직접 말은 거의 안 했어요. 대신…”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꾸 미뤘죠. 둘 다.”
시우는 그 웃음의 결을 알 것 같았다.
살아 있으나 끝난 사랑들이 갖는 질감. 정확히는 사랑이라고 명명하기 전에 서로를 너무 많이 의식하게 되어버린 관계들. 거기엔 늘 미룸이 섞인다. 지금 말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고, 말하지 않으면 조금 덜 죄책감이 들 것 같아서.
“어느 정도였습니까.”
“같이 밥 먹고, 메일하고, 가끔 산책하고… 손도 안 잡았어요.”
그녀는 자기 말이 우스운 듯 헛웃음을 냈다.
“근데 그래서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왜요.”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요. 오히려 계속 상상할 수 있었거든요. 이 사람이랑 진짜로 시작하면 어떨까, 그럼 나는 어디까지 망가질까, 아니면 오히려 살까.”
시우는 그 말이 아프게 정확하다고 느꼈다.
완성되지 않은 관계는 자주 현실보다 더 오래 남는다. 실제로 같이 살고 부딪히며 깨지는 대신, 가능성의 상태로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아름답고 잔인하다.
“그러다 끊겼습니까.”
“네.”
서경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준서 씨가 어느 날 갑자기 메일 답장을 줄였어요. 만나자는 말도 안 했고요. 대신 되게 이상한 문장만 보냈어요.”
“어떤 문장들입니까.”
서경은 봉투를 열어 접힌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출력해왔어요. 버리질 못해서.”
시우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이메일 일부를 프린트한 것이었다. 날짜는 사고 두 달 전부터 한 달 전까지 드문드문 찍혀 있었다.
첫 번째 메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요즘은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 사람 자체보다 어떤 오래된 감각을 같이 데려오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두 번째엔 더 짧았다.
우리는 아마 너무 늦기 전에 멈추는 쪽을 택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옳은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엔 한 줄만 있었다.
서경 씨를 보면 이 세계가 너무 대충 살아선 안 되는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시우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손을 내리지 못했다.
너무 대충 살아선 안 되는 장소.
김준서가 노트에서 썼던 말과 결이 같았다. 사랑이 삶 전체의 밀도를 바꾸는 경험이라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보게 되면, 생활마저 다르게 보인다는 것.
“그 뒤로는요.”
“제가 한 번 더 만나자고 했어요.”
“만났습니까.”
“아니요.”
서경은 고개를 저었다.
“준서 씨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지금 자기가 뭘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 상태로는 저를 사람으로 대하는 건지, 자기 질문의 일부로 삼는 건지 자신이 없다고.”
시우는 거의 본능적으로 윤태식의 문장을 떠올렸다.
누구를 사람으로 대할지.
그 문장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서경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화가 났어요.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좋아하면서도 자꾸 철학 뒤에 숨는 것 같아서.”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답했어요. ‘그럼 다 알게 될 때까지는 누구도 사랑하지 말아야 하냐’고.”
“준서 씨는 뭐라고 했습니까.”
“답이 없었어요.”
그녀는 종이 봉투를 꼭 쥐었다.
“그리고 한 달쯤 뒤에 사고 소식을 들었어요.”
사무실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장례엔 안 가셨습니까.”
“못 갔어요.”
그녀는 숨을 떨며 말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가겠어요. 가족도 아닌데. 친구라고 하기에도 너무 애매했고.”
그건 너무 흔한 비극이었다.
관계의 이름이 없어서 슬퍼할 자리도 없는 사람들.
연인이라 부르기엔 시작이 없었고, 남이라 부르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죽어도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만 슬퍼해야 한다. 장례식장에도 못 가고, 크게 울 수도 없고, 상실을 공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시우는 그 슬픔의 종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히려 공식적인 가족보다 더 오래 남는 경우도 있다는 걸.
“왜 지금 오셨습니까.”
서경은 그 질문 앞에서 잠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꿈을 꿨어요.”
시우는 말없이 기다렸다.
“준서 씨가 아니라… 이상한 꿈이었어요. 제가 모르는 흰 공간 같은 데였는데, 누가 계속 뒤에서 그러더라고요. ‘너무 늦지 않았으면 가라’고.”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웃기죠. 이런 얘기 제가 제일 싫어하거든요.”
“싫어하는 사람도 꿈은 꿉니다.”
“네. 그래서 더 싫었어요.”
서경은 마침내 시우를 똑바로 봤다.
“그래서 왔어요. 혹시 준서 씨가… 저에 대해 뭔가 남긴 게 있는지, 아니면 정말 제가 혼자 과장하고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 질문은 쉽지 않았다.
시우는 지금 김준서의 노트와 USB 내용, 윤태식의 추신, 그리고 소설 초고까지 품고 있었다. 그는 다 말할 수도 있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무엇이 사실이냐보다, 지금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이 삶 쪽으로 더 가깝냐였다.
그는 잠시 생각한 끝에 정직하게 말했다.
“직접 이름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서경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흐려졌다.
“그렇군요.”
“하지만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삶 전체가 달라지는 감각을 겪고 있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
“다만 준서 씨는 그 감각을 사랑으로만 보기엔 두려워했고, 동시에 사랑이 아니라고 부르기엔 너무 깊게 들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경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시우는 종이를 돌려주며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뭔가요.”
“그분은 당신을 자기 질문의 재료로만 보진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그랬다면 오히려 더 쉽게 갔을 겁니다.”
“……”
“사람으로 대하고 싶었기 때문에 멈춘 겁니다. 서툴고 비겁한 방식이었을 수는 있어도.”
서경은 그 말에 결국 울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늦은 사람의 울음이었다. 장례식장에선 이름 없는 상실도 종종 이런 식으로 도착한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겨우 말했다.
“별말씀을.”
“이 말… 아무도 못 해줬어요.”
“네.”
“다들 차라리 없던 일로 하라고 했거든요. 애매한 감정이었다고, 괜히 붙잡지 말라고.”
“그럴 수 있죠.”
“근데 애매했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잖아요.”
시우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히려 더 오래 아플 수 있습니다.”
서경은 한참을 울다가, 눈가를 닦고 나서 물었다.
“그럼 전 이제 뭘 해야 할까요.”
그 질문은 마치 소설 속 한 장면 같았다.
상실한 사람이 항상 묻는 질문. 이제 뭘 해야 하죠.
시우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윤태식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김준서라면. 민하라면.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라면.
“살아야죠.” 그가 말했다.
서경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얼굴이 됐다.
“너무 뻔한 말이네요.”
“맞습니다.”
“근데 왜 아프죠.”
“뻔한 말 중에 제일 어려운 말이어서요.”
그녀는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시우는 말을 이었다.
“없던 일로 만들지 않는 쪽이 좋겠습니다.”
“어떻게요.”
“준서 씨를 미완성의 사람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당신도 당신 몫의 생활로 가십시오.”
“그게 배신은 아닐까요.”
“아닙니다.”
“정말요?”
“그분이 가장 두려워했을 건, 늦는 것이었을 겁니다. 당신까지 멈추는 건 원치 않았을 겁니다.”
서경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그 말… 믿어볼게요.”
서경이 돌아간 뒤, 시우는 한동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햇빛은 이미 기울기 시작했고, 복도에선 식당 아주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냄비 뚜껑 부딪히는 소리, 카트 밀리는 소리, 누군가 멀리서 웃는 소리. 세상은 여전히 생활의 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노트북을 열어 새로 한 줄을 적었다.
너무 늦은 고백은 가끔 사랑보다 애도의 형식으로 도착한다.
그러나 그 애도 역시, 살아 있는 쪽으로 잘 건너가면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 문장을 적고 나서 그는 나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김준서 씨가 좋아했던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괜찮아요?
그 짧은 질문이 시우는 좋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기보다, 먼저 그가 괜찮은지를 묻는 방식.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말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네.
조금 슬펐고, 조금 설명됐습니다.
조금 뒤 통화가 왔다.
“퇴근했어요?” 나래가 물었다.
“아직요.”
“목소리가 좀 지쳤네요.”
“오늘은 애매한 슬픔을 만났습니다.”
“그게 제일 힘들죠.”
“네.”
“말해줄래요?”
시우는 서경 이야기를 천천히 설명했다. 나래는 중간에 거의 끼어들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야 한마디 했다.
“그 여자분도 장례를 치르러 온 거네요.”
시우는 잠시 멈췄다.
“그렇군요.”
“공식적인 자리는 없었지만, 자기 방식으로는 장례를 치르러 온 거예요.”
“맞습니다.”
나래가 조용히 덧붙였다.
“이상해요. 사람은 관계의 이름이 없어도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데, 세상은 자꾸 이름이 없으면 없는 일처럼 취급하잖아요.”
“네.”
“근데 슬픔은 되게 정직해서, 이름 없어도 오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더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무엇을요.”
“누군가에겐 아주 큰 일이었을 가능성을.”
시우는 그 말에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으로 핵심을 짚었다. 특별한 언어가 아닌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 말.
“간호사님.”
“네.”
“보고 싶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아주 짧은 웃음이 흘렀다.
“이 타이밍에요?”
“네.”
“좋네요.”
“왜죠.”
“슬픈 얘기 끝에 바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
“문제 있습니까.”
“아뇨. 오히려 맞는 것 같아서.”
“뭐가요.”
“사람이 진짜로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요.”
그 말은 시우에게 오래 남았다.
슬픔 뒤에 누군가를 보고 싶어지는 것.
그건 단순한 의존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이쪽으로 붙드는 힘일 수도 있었다. 죽음을 많이 본 사람일수록 그런 감각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끝을 본 뒤에도 다시 시작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증거니까.
“오늘 밤에 잠깐 볼 수 있습니까?”
“네. 병원 끝나고요.”
“늦겠군요.”
“그래도 보죠.”
“좋습니다.”
“한시우 씨.”
“네.”
“우리 요즘 자꾸 살아 있는 쪽으로 가고 있죠?”
시우는 작게 웃었다.
“네.”
“다행이네요.”
“왜죠.”
“전 그게 사랑의 제일 좋은 기능 같거든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시우는 한동안 그 말을 생각했다.
사랑의 제일 좋은 기능.
살아 있는 쪽으로 가게 하는 것.
그날 밤, 병원 근처 편의점 앞에서 나래를 잠깐 만났을 때 그녀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머리는 헐겁게 묶여 있었고, 눈 밑엔 그늘이 있었고, 어깨도 조금 축 처져 있었다. 그런데도 시우를 보자 웃었다. 피곤한 사람이 웃을 때는 그 웃음이 더 진짜 같다. 여유가 아니라 의지로 짓는 웃음이니까.
둘은 말없이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씩 들고 골목을 조금 걸었다.
“오늘 많이 힘들었습니까.”
“네.”
“많이 보고 싶었습니까.”
나래가 웃었다.
“네.”
“좋습니다.”
“왜요.”
“둘 다 정직해서.”
나래는 피식 웃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 오늘은 그냥 이러고 조금만 걸을래요.”
“네.”
“아무 얘기 안 해도 돼요.”
“좋습니다.”
둘은 한동안 정말 말없이 걸었다.
차 소리, 멀리서 나는 구급차 소리, 빗물 마른 아스팔트 냄새, 편의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도시의 밤은 여전히 바빴지만, 둘 사이엔 조용한 체온이 있었다. 가끔은 설명도 철학도 문장도 없이, 그 체온만으로 충분한 밤이 있다.
그리고 시우는 그 조용한 반복 속에서 다시 알았다.
구원은 어쩌면
아주 거창한 깨달음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옆에 있고,
피곤하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고,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웃어주는 사람 하나가 있고,
그 사람과 잠깐이라도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
그 정도면 인간은
망각 속에서도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다.
아마 그것으로
이번 생은, 혹은 이번 기회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제15장. 사랑은 왜 다시 시작되는가
어떤 질문은 오래 품을수록 더 커지고,
어떤 질문은 오래 품을수록 모양이 달라진다.
한시우는 요즘 후자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처음 이 이야기가 시작됐을 때 그를 붙잡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죽은 다음의 장소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것인가.
여기가 회복실인가, 망각의 방인가, 새로운 기회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질문의 중심이 아주 조금 옮겨갔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인간은 다시 사랑하게 되는가.
윤태식의 마지막 메모가 자꾸 떠올랐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보다 왜 다시 사랑하게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말. 그 문장은 갈수록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거의 열쇠처럼 느껴졌다. 만약 삶이 정말 회복의 장소라면, 단지 살아남는 일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사랑이야말로 잊은 존재가 다시 자기 본래에 가까워지는 통로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시우는 그 생각이 두렵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곧,
지금 자신이 나래를 좋아하는 일이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사랑은 늘 요구한다.
대충 살지 말 것.
말을 미루지 말 것.
상대를 자기 외로움의 해결책으로만 보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 앞에서 멀쩡한 척만 하지 말 것.
그건 설렘보다 어렵고, 고백보다 오래 가는 일이다.
그날 오후, 장례식장에 아주 기묘한 의뢰가 하나 들어왔다.
사망자는 예순셋의 남자였고,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문제는 유족이 장례 자체보다 ‘고인이 남긴 편지’를 더 먼저 들고 왔다는 데 있었다. 고인의 아내와 딸 둘은 빈소 배정도 하기 전에 시우를 붙잡고 말했다.
“이걸 먼저 좀 봐주세요.”
보통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유서, 재산 관련 메모, 사과문, 연락처, 혹은 혼란을 더 크게 만드는 미완성 문장들. 죽음은 종종 남겨진 사람들에게 ‘설명되지 않는 문서’를 선물처럼 남긴다. 선물이라기보다 폭탄일 때가 더 많지만.
시우는 가족들을 빈 회의실로 안내했다.
거기엔 희미한 커피 냄새와 오래된 에어컨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가장 익명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편지를 펼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거든요.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던 사람이라… 이런 걸 남길 줄은 몰랐어요.”
편지는 짧았다. 깔끔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당신에게는 미안한 말이 많고,
아이들에게는 못 한 말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에 제일 많이 생각나는 건,
우리가 결국 서로를 끝까지 사람으로 대해주지 못한 순간들이다.
여자는 여기서부터 이미 울고 있었다.
시우는 조용히 끝까지 읽었다.
좋은 남편이진 못했지만,
당신이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뒷모습은 평생 미안할 만큼 아름다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잠든 얼굴은 보면서도
왜 나는 자꾸 회사로만 달아났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하자는 말을 너무 믿었다.
나중엔 항상 더 피곤했고, 더 늙었고, 더 서툴렀다.
그리고 마지막 줄.
혹시 다시 기회가 있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더 먼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둘째 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요?”
첫째 딸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내는 한숨처럼 말했다.
“그 사람은 원래… 후회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말을 안 했지.”
시우는 편지를 돌려주며 조용히 말했다.
“남기고 싶었던 건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눈가를 닦았다.
“근데 왜 이렇게 늦게…”
그 질문엔 답이 없었다.
혹은 너무 흔한 답만 있었다.
사람은 늘 늦기 때문이다.
피곤해서, 겁나서, 생활이 급해서, 아직 시간이 있다고 믿어서.
그리고 죽음은 대체로 그 믿음보다 먼저 온다.
그런데 그 편지를 읽고 난 뒤 시우는 문득 알았다.
사랑이 왜 중요한지.
정확히는, 왜 ‘다시 사랑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인간의 핵심에 닿는지.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이 가장 자주 늦는 지점이고,
동시에 가장 다시 하고 싶어 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지 못한 후회, 승진하지 못한 후회, 여행을 덜 간 후회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이런 류다.
더 다정할 수 있었는데.
더 물어볼 수 있었는데.
그날 먼저 안아줄 수 있었는데.
나중에 말하지 말고 지금 말할 수 있었는데.
사랑은 인간의 가장 큰 후회이면서,
어쩌면 가장 큰 구원 가능성이기도 하다.
회의실에서 나온 뒤 준범이 물었다.
“무슨 내용이었어요?”
“후회.”
“어떤 후회요.”
“평범한 거.”
“그게 더 무섭죠.”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준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팀장님, 사람은 왜 꼭 평범한 데서 제일 많이 후회할까요?”
시우는 아주 천천히 답했다.
“거기서 제일 많이 살기 때문이겠지.”
준범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민트 사탕을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사랑은 진짜 좀… 무섭네요.”
“왜.”
“거기서 제일 많이 사는 거잖아요.”
시우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웃다가도 금세 진지해졌다. 맞는 말이었다. 인간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결국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관계의 반복 속이다. 식탁, 전화, 퇴근길, 병원 앞, 집 앞 골목, 잠들기 전 짧은 대화. 거기서 잘 살았는지가 마지막에 남는다.
그날 밤 그는 소설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
삶이 실제로 벌어지는 장소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인지도 몰랐다.
며칠 뒤, 나래와는 오랜만에 낮 시간을 같이 보냈다.
둘 다 드물게 쉬는 날이 겹쳤다. 대단한 계획은 없었다. 서울숲 근처를 걷고,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벚꽃이 아직 남아 있으면 조금 보고.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 시우는 이상하게 전날부터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장례식장과 병원과 빈소와 초고 밖에서, 정말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같이 보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문턱과 경계에서만 만나다가
일상의 한낮에 만나면
사람은 오히려 더 낯설어지기도 한다.
서울숲 입구에서 나래를 기다리며 그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주말 낮의 공원엔 유모차를 미는 부모들, 돗자리 깔고 앉은 연인들, 자전거 타는 아이들,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너무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장례식장과 병원에서 자주 보던 얼굴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표정들이었다.
나래는 연한 회색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왔다.
머리는 묶지 않고 내려놓았다. 병원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덜 단단해 보이고, 더 가볍고, 더… 젊어 보였다. 시우는 그걸 보자마자 잠깐 말문이 막혔다.
“왜 그렇게 봐요?”
“처음 보는 사람 같아서.”
“좋은 쪽이에요?”
“네.”
나래가 웃었다.
“다행이네요. 전 오늘 한시우 씨가 진짜 쉬는 사람처럼 보여서 좀 신기해요.”
“그건 드문 장면입니다.”
“아껴봐야겠네요.”
둘은 공원 안으로 천천히 걸었다.
햇빛은 밝았고, 바람은 부드러웠고, 나무들은 거의 다 연두빛으로 올라와 있었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 잔디 위에 눕는 사람들, 멀리서 들리는 버스킹 음악. 평화로운 풍경인데도 시우는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이 평화 속에 자기가 제대로 섞일 수 있나 싶어서.
나래가 먼저 알아챘다.
“불편해요?”
“조금.”
“왜요.”
“너무 멀쩡해서.”
나래는 피식 웃었다.
“우리는 진짜 이상한 커플이네요.”
“왜요.”
“보통은 병원이나 장례식장이 불편하고 공원이 편한데.”
“우린 반대군요.”
“네. 근데 괜찮아요. 적응하면 되죠.”
“여기에도요?”
“네. 살아 있는 데에도요.”
그 말이 좋았다.
살아 있는 데에도 적응하면 된다는 말. 사랑이란 어쩌면 그런 훈련인지도 몰랐다. 죽음과 슬픔에만 익숙해진 사람이 다시 빛과 웃음과 한낮의 소음에 자기 몸을 놓아두는 훈련.
걷다가 나래가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고 했다.
시우는 반사적으로 “추울 텐데”라고 했다가, 나래에게 “그런 말은 오십대 아저씨 같아요”라는 놀림을 들었다. 결국 둘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벤치에 앉았다.
“한시우 씨.”
“네.”
“우리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앉아 있으니까 좀 웃기죠.”
“왜요.”
“처음 만났을 땐 다들 죽어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지금은 그냥 아이스크림 먹고 있잖아요.”
시우는 아이스크림 끝을 한입 먹고 말했다.
“그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죠.”
“뭐가요.”
“결국 이런 쪽으로 와야 하니까.”
나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봤다.
“맞아요.”
“뭐가.”
“저도 요즘 그 생각해요. 민하가, 교수님이, 준서 씨가… 다들 결국 우리를 이쪽으로 밀어준 거 아닐까.”
“어느 쪽으로요.”
“살아 있는 쪽으로.”
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공원 한쪽에서 아이 하나가 넘어졌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곧 엄마가 달려와 안아줬고, 아이는 조금 울다가 금방 다시 걸었다. 그 평범한 장면을 보며 시우는 이상하게 마음이 저려왔다. 인간은 태어날 때 울고, 살아가며 수도 없이 울고, 누군가 안아주면 또 조금 걸어간다. 어쩌면 삶 전체가 그런 반복인지도 몰랐다. 다치고, 울고, 안기고, 다시 걷는 것.
“한시우 씨.”
“네.”
“혹시…”
나래는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
“우리가 나중에 진짜 오래 같이 있게 되면, 무서울 것 같아요?”
시우는 정직하게 말했다.
“네.”
“왜요.”
“잃을 게 커지니까.”
“그럼에도요?”
“그럼에도.”
“왜.”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안 시작해서 놓치는 쪽이 더 크다는 걸.”
나래는 그 말을 오래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아주 조용히 웃었다.
“요즘의 한시우 씨는 예전 한시우 씨가 들으면 많이 놀라겠네요.”
“아마도.”
“좋네요.”
“왜죠.”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 문장은 단순했지만 아름다웠다.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뜻.
만약 삶이 회복실이라면, 결국 가장 중요한 희망은 거기 있을 것이다. 인간이 완전히 같은 상처와 같은 회피와 같은 두려움에 갇힌 채 끝나는 게 아니라, 어느 시점엔 방향을 조금 바꿀 수 있다는 것. 더 다정해질 수 있고, 더 늦지 않을 수 있고,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시우는 문득, 사랑이 왜 다시 시작되는가에 대한 답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랑은 인간이 바뀔 수 있다는 마지막 증거일지도 모른다.
다시 누군가를 위해 자기 시간을 내고, 말을 고르고, 밥을 같이 먹고, 상처를 감수하고, 내일을 같이 상상하는 것. 이미 한 번 끝나거나 닳아버린 존재가 그런 일을 다시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완전히 소진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는 나래를 보며 말했다.
“간호사님.”
“네.”
“사랑은 아마…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감각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래가 고개를 기울였다.
“설명해봐요.”
“사람이 아무리 닳고, 상처 입고, 끝을 많이 봐도, 어떤 한 사람 앞에선 다시 처음처럼 신경 쓰게 되잖습니까.”
“네.”
“그건 곧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뜻 아닐까요.”
나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말, 소설에 써요.”
“써도 됩니까.”
“네. 대신 출처는 저라고 해도 돼요.”
“그건 곤란합니다.”
“왜요.”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아, 한시우 씨도 농담할 줄 아네요?”
“요즘 좀 배웠습니다.”
“좋아요.”
둘은 같이 웃었다.
그날 저녁, 나래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조금 내렸다.
우산 하나를 같이 썼다. 골목은 조용했고, 빵집은 문을 닫았고, 가로등 아래 빗물이 옅게 번졌다. 나래는 자연스럽게 시우 팔에 매달리듯 붙어 걸었다. 그 동작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시우는 좋았다. 인간은 가끔 어떤 친밀함이 ‘낯설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이 진짜라고 느낀다.
현관 앞에서 나래가 말했다.
“오늘 좋았어요.”
“저도요.”
“되게 평범해서.”
“네.”
“근데 묘하게 감동적이었어요.”
“왜죠.”
나래는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한번 보고 말했다.
“우리가 이제 슬픈 데서만 만나지 않잖아요.”
시우는 그 말에 한동안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그렇다.
처음엔 죽음이 이어준 만남이었지만, 이제는 그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병원과 장례식장이라는 경계의 장소가 아니라, 공원, 칼국수집, 집 앞 골목, 저녁 식탁, 우산 아래. 사랑이 정말 건강하게 자라는 방향은 아마 이쪽일 것이다. 슬픔을 공유하는 관계를 넘어, 생활도 공유하는 관계로 가는 것.
“간호사님.”
“네.”
“저 하나 더 약속하고 싶습니다.”
“뭔데요.”
“우리가 앞으로 힘든 일을 같이 겪더라도, 관계의 중심을 항상 고통에 두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래는 아주 진지하게 그를 봤다.
“좋아요.”
“슬픔 때문에 깊어진 건 맞지만, 슬픔만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싫습니다.”
“맞아요.”
“우린 살아 있는 쪽으로 가야 하니까.”
나래는 눈빛이 조금 젖은 채 웃었다.
“네. 그거 좋아요. 아주.”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발끝을 들고 시우에게 입을 맞췄다.
짧았지만, 이번엔 이전보다 더 분명했다. 우산 아래, 젖은 밤공기 속에서,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 사람의 입맞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시우는 이상하게도 자기 몸이 가볍다고 느꼈다.
삶은 여전히 무겁고, 소설은 아직 멀었고, 장례식장은 내일도 바쁠 것이다.
그런데도 몸이 가벼웠다.
아마 사랑이란 영혼보다 먼저 몸을 설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쪽으로 가도 된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반복과 생활과 평범함 속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그날 밤 그는 소설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보다,
평범한 반복을 견딜 수 있는 존재로 다시 빚어놓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구원이란,
바로 그 평범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일 것이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 그는 오래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제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왜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지.
왜 끝을 많이 본 사람일수록, 다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더 결정적인지.
사랑은 끝난 존재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명일지도 모른다.
제16장. 다 쓰지 못한 사람들의 뒤를 잇는 법
소설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장례와 닮아 있었다.
한시우는 그 사실을 어느 밤 문득 깨달았다.
죽은 사람의 삶을 정리할 때도 그렇고, 이야기를 쓰며 사라진 사람들의 문장을 이어갈 때도 그렇고, 가장 중요한 건 ‘과장하지 않는 것’이었다. 슬픔을 더 웅장하게 만들지 말 것, 사랑을 더 순결하게 꾸미지 말 것, 죽은 사람을 성인처럼 만들지 말 것. 인간은 원래 어설프고, 늦고, 미완성이고,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걸 잃는 순간 장례도 소설도 거짓말이 된다.
그래서 시우는 요즘 자주 멈췄다.
문장이 너무 근사해지면 지웠고, 누군가의 죽음이 지나치게 의미심장해 보이면 다시 낮췄고, 설명이 너무 매끈하면 일부러 망설임을 남겼다. 현실은 대개 그렇게 매끈하지 않다. 병원 복도엔 늘 커피 자국이 있고, 장례식장 식당 밥은 가끔 설익고, 사랑의 고백은 타이밍이 어색하고, 죽음 직전의 마지막 말은 꼭 명언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 엉성함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그날 밤도 그는 초고를 고치고 있었다.
김준서가 지하철에서 경험한 ‘틈’ 장면을 어떻게 다룰지 오래 붙잡고 있었다. 녹음 파일에 잡힌 아주 작은 목소리, “기억났어요?”라는 속삭임. 그 장면을 그대로 옮기면 너무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고, 설명으로 눌러버리면 이 이야기의 맥이 죽는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문장 하나를 적었다.
그 목소리가 실제였는지 아닌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중요한 건, 그 순간 김준서에게 세계가 처음으로 완전히 닫힌 구조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시우는 그 문장을 읽고 한참 손을 멈췄다.
맞는 말 같았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귀신이나 환영의 실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어떤 순간에 인간이 세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틈이 사랑과 죽음 가까이서 더 자주 열린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오직 논리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경험은 사실 여부보다도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직 써요?
네. 지하철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조금 뒤 답장이 왔다.
그럼 너무 무섭게 쓰지 마요.
그 장면이 진짜 무서운 건 초현상 때문이 아니라,
그걸 혼자 겪었다는 데 있잖아요.
시우는 곧바로 그 문장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녀는 정말 자주 핵심을 짚었다.
사람이 설명되지 않는 경험을 했을 때 가장 무서운 건 경험 자체보다, 그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그래서 김준서는 윤태식에게 메일을 보냈고, 서경은 너무 늦게 장례식장을 찾아왔고, 나래는 응급실 아이의 말을 오래 잊은 척했고, 시우는 이제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그 질문을 바깥으로 꺼내고 있었다.
이야기의 반대는 침묵이 아니라 고립인지도 몰랐다.
맞습니다.
그가 답했다.
이 소설이 해야 할 일도 결국 그거겠죠.
혼자 겪는 질문을 조금 덜 혼자이게 만드는 것.
나래의 답은 짧았다.
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시우는 그 메시지를 보고 웃었다.
이제 둘 사이엔 ‘늦지 않기’가 농담이면서도 거의 신앙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농담이 오래가면 관계는 단단해진다. 반복해 부를 수 있는 문장이 있다는 건 중요하다. 인간은 슬픔뿐 아니라 작은 합의들로도 함께 산다.
며칠 뒤, 시우는 김준서의 형수와 수민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근처 작은 식당이었다. 형수가 먼저 보자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준서 얘기를… 그냥 장례로만 끝내고 싶지 않아서요.”
그 말이 시우는 좋았다.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장례로만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건 애도이면서 동시에 복원에 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끝난 사건으로만 남기지 않으려는 시도. 어쩌면 장례 이후의 삶은 늘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식당은 동네 백반집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뒤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된장찌개 냄새와 조용한 트로트가 얇게 깔려 있었다. 수민은 교복 차림이었다. 학교를 다녀온 듯 가방도 옆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학생이 여전히 학교를 가고 급식을 먹고 숙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세상은 아이에게도 생활을 멈춰주지 않는다.
“아빠 원고…” 수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소설로 쓸 거예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아빠 이름도 나와요?”
“그대로 나오진 않을 것 같아.”
“왜요?”
“그 사람이 그냥 한 사람의 사례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수민은 잠깐 생각했다.
“좋은 쪽으로요?”
“응. 아빠를 아빠답게 남기려면, 동시에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도 읽혀야 하거든.”
형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 뜨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처음엔 솔직히 무서웠어요.”
그녀가 말했다.
“남편이 남긴 걸 남들이 읽는다는 게.”
“그럴 수 있죠.”
“근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저 사람, 결국 누군가한테 들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들키고 싶었다.”
“네. 자기 이상한 질문이요.”
형수는 옅게 웃었다.
“집에서는 너무 멀쩡한 척했지만.”
시우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느꼈다.
인간은 종종 숨기면서도 동시에 들키고 싶어 한다.
특히 가장 깊은 질문일수록 그렇다. 정말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사람쯤은 알아봐주길 바란다. 그래서 글을 남기고, 메일을 보내고, 이상한 말을 반쯤 농담처럼 던지고, 마지막엔 소설이라는 우회로까지 찾는다.
수민이 말했다.
“아빠요. 저한테는 가끔 그런 말 했어요.”
“어떤 말?”
“‘수민아, 너는 나중에 커도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하지 마’라고.”
시우는 잠시 멈췄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모르죠. 저는 그냥 잔소리인 줄 알았는데…”
수민은 국에 말아둔 밥을 젓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말했다.
“요즘은 좀 알 것 같아요.”
“뭘.”
“어른들은 다들 너무 빨리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아요.”
형수가 웃다가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누굴 닮아서 저런 말을 하는지.”
수민이 말했다.
“아빠요.”
세 사람은 잠시 같이 웃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좋았다. 죽은 사람 이야기 앞에서 웃을 수 있다는 건, 상실이 줄었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형수는 가방에서 작은 공책 하나를 꺼냈다.
“이건 준서가 원래 들고 다니던 메모장이에요. 집 정리하다 찾았는데…”
그녀는 시우에게 건넸다.
“혹시 소설에 도움이 될까 해서.”
공책엔 짧은 메모들이 빼곡했다. 회의 일정, 책 제목, 문장 파편, 장보기 목록, 전화번호, 뜬금없는 철학 문장, 수민 참고서 사기 같은 생활 메모까지 뒤섞여 있었다. 그 혼재가 오히려 더 좋았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산다. 존재론과 계란 가격이 같은 페이지에 있다.
그중 시우의 눈에 걸린 문장 하나가 있었다.
삶은 거대한 의미를 찾는 일이라기보다,
사소한 것을 끝까지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문장을 읽고 시우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소한 것을 끝까지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는 과정.
그것은 거의 사랑의 다른 정의 같았고, 동시에 윤태식이 말한 “누구를 사람으로 대할지”의 생활 버전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건 결국 사소한 것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일에 가깝다. 밥 먹는 시간, 피곤한 얼굴, 작은 습관, 말투의 온도, 대답의 속도. 거기서 삶의 품위가 갈린다.
“좋은 문장이네요.” 시우가 말했다.
형수가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 사람은 문장으로는 늘 좀 너무 좋은 사람 같았어요.”
“실제론 어땠습니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실제로도 좋은 사람이긴 했어요. 근데…”
“근데?”
“늘 반쯤 딴 데 있었죠.”
그 말에 시우는 가슴 어딘가가 찔리는 걸 느꼈다.
그건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장례식장에 몸은 있었지만 삶엔 반쯤만 있던 시절. 상실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혹은 자기 기능에 너무 익숙해져서.
형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소설이… 그 사람이 딴 데 있었던 이유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요?”
“그래도 끝엔 여기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는 것도 같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쓰겠습니다.”
그 말은 약속 같았다.
그날 저녁, 시우는 소설 구조를 크게 손봤다.
지금까지는 사건의 연결에 초점이 있었다면, 이제는 ‘돌아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더 앞에 두기로 했다. 처음부터 삶이 낯설었던 사람들. 윤태식, 김준서, 민하, 그리고 시우 자신.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낯섦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그 낯선 세계 속에서도 끝끝내 돌아오고 싶어 했던 것들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딸기우유.
반찬통.
장례식장 영정사진 속 웃는 얼굴.
칼국수.
병원 옥상.
잘 자라는 말.
누군가의 뒷모습.
손의 온기.
그런 것들이 너무 중요했다.
그는 초고에 새 장 하나를 통째로 끼워 넣었다. 제목은 임시로 이렇게 적었다.
생활은 망각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귀환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 장 안에 한시우가 장례식장 식당에서 식은 국을 먹다가 문득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장면, 나래의 집에서 계란말이를 먹으며 이상하게 안심하는 장면, 김준서가 딸 소풍 김밥 때문에 글을 멈추는 장면을 더 자세히 넣었다.
삶이 회복실이라면,
회복은 늘 구체적이어야 했다.
그렇게 쓰고 있을 때 나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바빠요?”
“아닙니다.”
“잠깐 볼래요?”
“어디십니까.”
“병원 근처요. 오늘 좀… 이상한 날이라.”
시우는 더 묻지 않았다.
“갑니다.”
병원 근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나래는 생각보다 더 지쳐 보였다.
눈가가 붉었고,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고, 손엔 편의점 물병 하나만 들려 있었다. 시우는 가까이 가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나래 표정을 보니 먼저 앉는 게 맞겠다고 느꼈다.
둘은 나란히 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밤공기는 약간 차고, 나무 잎은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멀리 응급실 불빛이 흐리게 보였다.
“오늘 환자 한 분이 그러셨어요.”
나래가 먼저 말했다.
“‘살고 싶다’고.”
시우는 조용히 들었다.
“그 말 자체는 자주 듣죠. 근데 오늘은 좀 달랐어요. 그분이 덧붙였거든요.”
“뭐라고.”
“‘죽기 싫은 게 아니라, 이제야 좀 살고 싶은데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무섭다’고.”
나래는 물병을 만지작거렸다.
“그 말 듣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네.”
“그분이 거창한 걸 말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집에 가서 창문 열고 바람 냄새 맡고 싶고, 손주랑 편의점 아이스크림 먹고 싶고, 부인이 해준 콩나물국 먹고 싶고… 그런 거.”
그녀는 한숨처럼 웃었다.
“근데 그게 갑자기 너무 큰 소원처럼 들리는 거예요.”
시우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사랑이 왜 다시 시작되는지.”
나래는 놀란 듯 그를 봤다가 작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요즘 우리 둘 다 그 질문 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맞아요.”
나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밤하늘을 봤다.
서울 하늘엔 별이 거의 없었다. 대신 비행기 불빛 하나가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전 예전엔 사랑이 생의 보너스 같은 건 줄 알았어요.”
“지금은요.”
“아니에요.”
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너무 쉽게 기계처럼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기계처럼.”
“네. 해야 할 일 하고, 버티고, 효율적으로 슬퍼하고, 효율적으로 밥 먹고, 효율적으로 포기하고.”
시우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근데 사랑이 생기면요?”
“갑자기 효율이 깨지잖아요.”
나래가 웃었다.
“답장 기다리고, 괜히 걱정하고, 밥 챙겨 먹으라고 말하고,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하고.”
“그게 나쁜 겁니까.”
“아니요. 그래서 좋은 거죠.”
그녀는 시우를 봤다.
“사람이 다시 사람처럼 돌아오니까.”
그 말은 거의 답처럼 들렸다.
사랑은 왜 다시 시작되는가.
인간이 다시 사람처럼 돌아오기 위해서.
시우는 그 순간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정확히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다. 윤태식의 질문, 김준서의 기록, 민하의 말, 장례식장의 후회, 병동의 절박함이 한 점으로 모이는 느낌.
“간호사님.”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 문장, 소설에 쓰겠습니다.”
“뭐를요.”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너무 쉽게 기계처럼 산다는 거.”
나래가 웃었다.
“저작권 주세요.”
“칼국수 두 번으로 합의 가능합니까.”
“세 번.”
“좋습니다.”
둘은 같이 웃었다.
그리고 한참 뒤, 나래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
“한시우 씨.”
“네.”
“우리 나중에도 계속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럽시다.”
“무서운 얘기, 이상한 얘기, 별거 아닌 얘기 다.”
“네.”
“그리고 누가 먼저 반 발짝 뒤로 가면, 다른 쪽이 끌어오고.”
시우는 웃지 않고 대답했다.
“좋습니다.”
“진짜로요.”
“진짜로.”
나래는 그제야 안도한 듯 어깨 힘을 조금 풀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시우 어깨에 기대었다.
시우는 그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죽은 뒤의 회복실이든 아니든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장면일지 모른다고.
말해도 되는 사람 하나.
이상한 질문을 나눠도 되는 사람 하나.
반 발짝 뒤로 물러나면 다시 불러주는 사람 하나.
우주는 아무리 거대하고, 죽음은 아무리 확실하고, 삶은 아무리 낯설어도
인간은 결국 그런 한 사람을 통해 다시 이쪽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시우는 집에 돌아가 거의 쉬지 않고 장 하나를 통째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장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끝난 존재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아직 끝까지 포기되지 않았다는 통지서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인간은 한 번 닳고, 한 번 무너지고, 한 번 죽은 것처럼 살아도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아직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가장 따뜻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쓰고 나자 이상하게 손끝이 떨렸다.
좋은 문장이라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삶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문장을 썼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는 노트북을 닫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아마 끝까지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장 앞에서 조금씩 자기 쪽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몰랐다.
제17장.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
초고가 백 페이지를 넘긴 날, 한시우는 이상하게 겁이 났다.
처음엔 그저 몇 장면만 붙잡고 시작한 일이었다. 장례식장, 병원, 민하의 말, 윤태식의 눈빛, 김준서의 미완성 기록. 그 조각들을 잇다 보면 어쩌면 하나의 방향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이야기는 자기 생명 같은 것을 갖기 시작했다. 장면은 다음 장면을 불러왔고, 문장은 그다음 문장을 요구했다. 그는 쓰고 있는 동시에, 무언가에게 끌려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무서웠다.
사람은 자기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 늘 조금 겁이 난다.
사랑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처음엔 내가 선택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선택이 나를 다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
시우는 장례식장 사무실 창밖을 봤다.
늦은 오후 빛이 복도 바닥에 길게 번져 있었다. 식당 쪽에선 국 끓는 냄새가 올라왔고, 멀리선 누군가 조문객을 맞는 낮은 인사말이 들렸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례식장의 언어는 늘 정중하고 비슷하지만, 그 비슷한 문장들 사이로 흐르는 슬픔은 매번 달랐다.
준범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팀장님.”
“왜.”
“오늘은 밥 먹었어요?”
시우는 피식 웃었다.
“너도 이제 그 질문 하냐.”
“나래 선생님한테 배웠죠.”
“둘이 언제 친해졌냐.”
“친한 건 아니고, 팀장님 관리 차원에서.”
준범은 민트 사탕을 까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근데 솔직히 요즘 팀장님 좀 위험해 보여요.”
“무슨 뜻이냐.”
“좋은 쪽으로 너무 빨리 가고 있다고요.”
“그게 왜 위험하지.”
“사람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보통 대가가 있잖아요.”
시우는 잠시 그를 보다가 웃었다.
“너 진짜 나이답지 않은 소리 한다.”
“장례식장에 있으면 다 이렇게 됩니다.”
준범은 사무실 책상 위 초고 뭉치를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썼어요?”
“조금.”
“다 쓰면 보여줄 거예요?”
“네가 읽을 수 있겠냐.”
“왜요.”
“무섭고 이상하고 슬플 텐데.”
준범은 어깨를 으쓱했다.
“장례식장 일하는 사람이 그런 걸 무서워하면 안 되죠.”
“너는 맨날 무서워하잖아.”
“맞아요. 근데 읽는 건 또 다르죠.”
그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팀장님이 쓴 거면 좀 궁금해요.”
“왜.”
“요즘 팀장님은 예전 팀장님이랑 좀 다르니까.”
“또 그 소리냐.”
“네. 전 그게 재밌어요. 사람이 진짜 바뀌는 걸 보는 거.”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이 진짜 바뀌는 걸 보는 일.
그건 장례식장에선 드문 장면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잠깐 달라졌다가도 곧 원래 삶으로 돌아간다. 그게 비겁해서가 아니라, 생활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주 드물게, 정말 드물게 누군가는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한다. 늦게 하던 전화를 바로 걸고, 미뤘던 이혼을 결심하고, 멀어진 자식에게 먼저 찾아가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던 사람이 말한다. 죽음은 모두를 바꾸지 않지만, 바뀌는 사람은 분명 있다.
시우는 자기가 그 부류에 속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날 저녁, 그는 나래와 함께 수민을 만났다.
수민이 먼저 연락해왔다.
아저씨, 아빠 책 중에 이상한 거 하나 더 찾았어요.
근데 이건 저 혼자 보기 싫어요.
세 사람은 김준서의 집이 아니라 근처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수민이 집에서 보기 싫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집 안엔 이미 너무 많은 부재가 쌓여 있을 것이다. 어떤 문장은 집보다 바깥에서 봐야 덜 무너진다.
카페는 한산했다.
평일 저녁이라 학생 몇 명이 노트북을 펴놓고 있었고, 창가엔 중년 부부가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봄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유리창엔 물방울이 가느다랗게 흐르고 있었다. 이런 날의 카페는 이상하게 고백과 회상에 어울린다.
수민은 가방에서 얇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철학 입문서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군데군데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고, 마지막 장 근처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아빠가 밑줄 그어놓은 데가 있어요.”
시우가 책을 받아 펼쳤다.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인간은 종종 자기 삶의 진실을 직접 아는 대신,
반복해서 끌리는 것을 통해 우회적으로 알아본다.
옆엔 김준서가 연필로 짧게 메모해두었다.
나는 왜 자꾸 장례식장, 병원, 출생, 사랑의 문장으로 돌아가는가.
아마 내가 아직 끝나지 않은 데가 거기에 있어서.
나래가 그 문장을 가만히 읽었다.
수민은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 같아요?”
시우는 책을 덮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들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상처를 아직 다 못 살았는지,
어떤 질문을 아직 못 끝냈는지
좋아하는 것과 반복해서 돌아가는 데서 드러난다는 뜻 아닐까.”
수민은 잠시 생각했다.
“아빠는 그러면…”
“장례, 병원, 출생, 사랑. 그런 데로 자꾸 갔다는 거지.”
“왜죠.”
나래가 아주 부드럽게 대답했다.
“거기에 아직 다 못 이해한 자기 삶이 있었나 보지.”
수민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설명을 생각보다 빨리 받아들인다. 다만 받아들인 뒤 오래 품는다.
“그럼 아빠는 지금은 이해했을까요?”
그 질문 앞에서 시우와 나래는 둘 다 쉽게 말하지 못했다.
결국 시우가 말했다.
“전부는 아니어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알게 됐을지도 모르지.”
수민은 그 대답을 오래 굴리는 얼굴을 했다.
“그 말, 윤태식 할아버지 같네요.”
나래가 웃었다.
“응. 조금 닮아가고 있나 보다.”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좀 부담스럽군.”
수민이 처음으로 조금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이 나래를 안심시키는 걸 시우는 봤다.
민하를 잃은 뒤 나래는 또래 아이들의 웃음에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더 소중하게 반응하게 됐다. 죽음을 본 사람은 살아 있는 표정들을 전보다 오래 본다.
카페를 나서기 전, 수민이 갑자기 물었다.
“아저씨, 소설 제목 정했어요?”
시우가 잠깐 멈췄다.
“응. 아마.”
“뭔데요.”
“사후의 봄.”
수민은 그 제목을 입 안에서 한번 굴려보듯 따라 했다.
“사후의 봄.”
“이상하냐.”
“아니.”
수민은 창밖 비를 보며 말했다.
“좀 슬픈데 예뻐요.”
나래가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맞아. 딱 그래.”
시우는 그 순간, 제목이 비로소 자기 것이 된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뒤, 그는 소설 후반부 설계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질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만나고, 기록이 이어지고, 사랑이 조금씩 생활이 되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후반부에선 반드시 다뤄야 할 것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소설이 정말로 사람을 흔들고 싶다면, 사후 세계의 가능성을 늘어놓는 데서 끝나면 안 됐다. 독자가 책을 덮고 나서 자기 식탁, 자기 가족, 자기 미뤄둔 말, 자기 늦은 사랑을 다시 보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건 근사한 몽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는 빈 페이지 위에 크게 적었다.
- 살아 있는 사람을 다시 시작시키는 장면 필요
- 너무 늦은 사람 / 아직 늦지 않은 사람 대비
-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선택과 반복으로 드러나야 함
- 죽음을 설명하는 것보다, 죽음 이후 삶의 태도를 바꾸는 쪽
- 결말은 닫히지 않되, 생활 쪽으로 돌아와야 함
적고 나니 이상하게 조금 무서워졌다.
결말이 가까워진다는 건 늘 그런 일이다. 끝내야 한다는 책임과, 끝내고 싶지 않다는 미련이 같이 온다. 실제 삶의 어떤 관계들도 그렇다. 사랑도 처음엔 시작이 어렵지만, 오래 가면 오히려 끝맺음이나 약속이 더 어려워진다. 책임이 생기니까.
그때 나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괜찮아요?”
“네.”
“목소리가 좀 이상해요.”
“결말 생각 중입니다.”
“소설이요?”
“네.”
“그럼 당연히 이상하죠.”
나래가 웃었다.
“결말은 원래 쓰는 사람도 아프게 하잖아요.”
시우는 의자에 기대며 물었다.
“간호사님은 결말이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모든 답을 주진 않아도,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는 남겨야죠.”
“이후에.”
“네. 사람은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가니까.”
시우는 그 말을 듣고 거의 즉시 메모했다.
“좋군요.”
“그리고요.”
“네.”
“너무 큰 장면보다 작은 장면 하나가 더 오래 남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이를테면… 누가 누구한테 밥 먹었냐고 묻는다든가.”
시우는 웃었다.
“간호사님은 진짜 일관적이군요.”
“그게 중요하니까요.”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나래의 목소리가 아주 조용해졌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끝날 때,
누가 자기한테 밥 먹었냐고 물어줬는지를 기억할 것 같아서요.”
시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문장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더 깊었다.
거대한 철학보다 밥 먹었냐는 질문. 사랑의 핵심이 그런 곳에 있다면, 인간의 구원도 대체로 그 근처에서 일어날 것이다.
“한시우 씨.”
“네.”
“우리도 나중에… 아무리 익숙해져도 그 말 계속 해요.”
“뭐를.”
“밥 먹었냐고 묻는 거.”
그는 아주 천천히 답했다.
“좋습니다.”
“진짜로.”
“진짜로.”
그 짧은 약속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사랑은 가끔 이런 식으로 미래를 만든다.
화려한 서약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반복을 계속하기로 하는 약속으로.
며칠 뒤, 장례식장에 뜻밖의 손님이 또 찾아왔다.
이번엔 김준서와 같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후배 편집자였다. 이름은 박선호. 서른쯤 되어 보였고, 어딘가 늘 피곤한 직장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시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준서 선배 얘기를 좀 들었습니다. 혹시… 그분이 남긴 원고 관련해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요.”
“어떤 겁니까.”
“회사 컴퓨터 정리하다 보니까, 선배가 작업하던 파일 중에 메모가 하나 남아 있었어요.”
선호는 USB 하나를 건넸다.
“사적인 내용인지 모르겠어서 회사에서도 함부로 안 봤는데, 제목이 좀 이상했어요.”
“뭔데요.”
선호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들 이라고요.”
시우는 그 제목을 듣는 순간 심장이 아주 미세하게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날 밤, 나래와 함께 그 파일을 열었다.
장례식장 사무실이었다. 밖은 이미 조용했고, 식당 불도 반쯤 꺼져 있었다. 두 사람은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나래는 퇴근 뒤 그대로 들른 차림이라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파일 안엔 짧은 목록이 있었다. 메모 형식이었다.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들
- 태어날 때 인간은 운다.
- 죽기 직전 사람은 자주 어린 얼굴이 된다.
- 사랑에 빠지면 시간의 밀도가 달라진다.
- 장례식장에선 모두 같은 질문을 잠깐 같은 표정으로 한다.
- 아이들은 오기 전을 어른보다 덜 잊은 것 같다.
- 너무 아픈 사람은 가끔 멀리를 본다.
- 밥 냄새, 체온, 손, 계절의 냄새 같은 것은 이상하게도 영원보다 더 영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 인간은 완전히 끝났다고 믿으면서도 누군가를 또 사랑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닫힌 구조 안에만 살고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 만약 그렇다면, 삶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라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끝.
파일을 다 읽고 나서 나래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건 거의 선언문이네요.”
“네.”
“근데 마지막이 좋다.”
“어느 부분이요.”
“삶의 목적이 탈출이 아니라…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시우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저도 그 문장이 좋습니다.”
나래는 잠깐 모니터 불빛에 비친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시우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한시우 씨.”
“네.”
“우리 지금 그거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뭘요.”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
시우는 그 말에 대답 대신 손을 뒤집어 그녀 손을 잡았다.
장례식장 사무실의 형광등 아래, 죽은 사람의 목록을 읽고,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상한 장면인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어울렸다. 삶은 원래 그런 곳인지도 몰랐다. 죽음 곁에서 사랑이 자라고, 사랑 곁에서 죽음이 다시 설명되고, 그 사이에서 인간이 자기 질문을 조금 덜 무서워하게 되는 곳.
그날 밤 시우는 소설 후반부의 중심 문장을 찾았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이든,
끝까지 사랑을 다시 고를 수 있다면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셈이었다.
그 문장을 적고 나서, 그는 드디어 결말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닫힌 진실이 아니라
열린 선택으로.
설명된 우주가 아니라
살아가야 할 생활로.
죽음의 비밀이 아니라
그 비밀을 안 뒤에도 여전히 밥을 먹고, 손을 잡고, 늦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쪽으로.
아마 그게 이 이야기의 끝일 것이다.
혹은 끝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시작일 것이다.
제18장. 닫힌 진실보다 열린 선택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한시우는 오히려 처음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사람은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 더 쉽게 거짓말한다.
처음엔 잘 모르니까 솔직한데, 끝에 가까워지면 뭔가를 정리하고 싶어지고, 의미를 붙이고 싶어지고, 독자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설득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결말은 늘 위험하다. 삶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다. 너무 쉽게 아름다워지면 거짓이고, 너무 쉽게 냉소적이면 비겁하다.
시우는 그 중간을 찾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정말 죽은 뒤의 회복실에 대한 소설인지, 아니면 상실과 사랑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위로인지, 그걸 완전히 결정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김준서도, 윤태식도, 민하도 확신의 언어를 완전히 갖지 못한 채 떠났다. 그 불완전함은 오히려 진실의 일부 같았다. 인간은 본래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의 몫은
닫힌 정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린 선택을 남기는 것일 것이다.
그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런 방향 메모를 적었다.
- 독자가 “사실 여부”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게 만들 것
- 결말은 설명보다 태도의 변화
- 사랑이 세계관의 부속물이 아니라 핵심이라는 점 분명히
- 마지막 장면은 아주 생활적이어야 함
- 너무 아름답게 끝내지 말 것, 그러나 희망은 남길 것
그 메모를 적고도 그는 한참 모니터를 바라봤다.
밖은 저녁이었다. 장례식장 사무실 창문엔 형광등이 먼저 비쳤고, 유리 너머론 하늘이 짙은 남색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식당에선 저녁 밥 짓는 냄새가 올라왔고, 복도에선 유족 몇 명이 조용히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건물 안에서, 그는 누군가의 삶을 다시 시작시키고 싶은 소설의 결말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 대비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 무렵, 나래는 조금 지쳐 있었다.
민하 이후 병동엔 또 다른 아이가 들어왔고, 보호자 응대가 겹쳤고, 밤근무가 몰렸다. 그녀는 원래도 무너지지 않는 쪽의 사람이었지만, 오래 보면 알 수 있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과 괜찮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시우는 병원 앞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걸 바로 알아봤다.
나래는 평소처럼 웃었지만, 웃음 뒤에 아주 얇은 균열이 있었다. 커피를 받는 손이 느렸고, 의자에 앉을 때 어깨가 한 번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괜찮냐고 바로 묻지 않았다. 사람은 너무 빨리 괜찮냐는 질문을 받으면 오히려 괜찮다고 대답하게 되니까.
대신 그는 말했다.
“오늘은 말 많이 안 해도 됩니다.”
나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그를 보았다.
“티 났어요?”
“조금.”
“많이?”
“내가 알아볼 만큼.”
나래는 피식 웃었다.
“그럼 꽤 심한 거네요.”
둘은 한동안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창밖으론 병원 로비가 보였다. 보호자들이 오가고, 택시가 서고, 자동문이 열리고 닫혔다. 누군가는 지금 좋은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같은 유리문을 통과해 지나간다. 삶은 그렇게 한 입구를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벌어진다.
나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환자 보호자분이 저한테 화를 많이 내셨어요.”
시우는 조용히 들었다.
“약이 늦었다고, 설명이 부족하다고, 왜 더 빨리 못 알아봤냐고. 다 이해는 가는데…”
그녀는 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오늘은 좀 아프더라고요.”
“왜죠.”
“제가 진짜로 못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시우는 곧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주 천천히 말했다.
“간호사님이 그렇게 느낄 수는 있겠죠.”
나래는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보통은 아니라고 바로 말해주지 않아요?”
“그럼 간호사님은 그 말 못 믿을 것 같아서.”
나래는 한참 그를 보다가 아주 작은 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대신 이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뭔데요.”
“누가 아프고 무서울 때, 그 고통이 항상 정확한 방향으로 나오진 않습니다.”
“네.”
“그걸 다 맞는 방향으로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래는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간호사님이 자꾸 무너지는 이유는 못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고 있어서일 겁니다.”
나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손으로 눈가를 한번 눌렀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기 직전의 정적 같은 것이 있었다.
“한시우 씨.”
“네.”
“요즘은 왜 자꾸 딱 필요한 말만 해요.”
“장례식장 쪽 사람은 원래…”
“또 직업 핑계 대면 화낼 거예요.”
시우는 웃었다.
“그럼 요즘 내가 조금 덜 도망쳐서 그런가 봅니다.”
나래는 그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좋네요.”
잠시 뒤 그녀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저 좀 무서워요.”
“뭐가요.”
“이런 식으로 오래 일하면, 언젠가 사람을 사람으로 못 볼까 봐.”
시우는 그 문장을 오래 받았다.
병원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 장례식장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 법정이나 응급실이나 콜센터나 돌봄 노동을 오래 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기능으로 보기 시작할 수 있다. 그건 악의가 아니라 생존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으면 자기 일부가 같이 닳는다.
“그럴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뭘요.”
“간호사님이 사람을 사람으로 덜 보기 시작하면.”
나래는 그를 보며 웃었다.
“그럼 저도 알려줄게요.”
“무엇을.”
“한시우 씨가 다시 반 발짝 뒤로 가면.”
그 약속은 단순했지만 아주 좋았다.
사람은 혼자선 자기 변화를 잘 못 본다. 좋아지는 것도, 나빠지는 것도. 사랑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대신 봐줄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무뎌지는 순간, 내가 멀어지는 순간, 내가 다시 닫히는 순간을 알아차려주는 사람.
“우리 서로 문지기 노릇 하는 거네요.” 나래가 말했다.
시우는 웃었다.
“그럴지도요.”
“좋아요.”
“왜죠.”
“문은 원래 혼자 지키면 좀 무섭잖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시우는 소설 결말부에 아주 중요한 장면 하나를 추가했다.
윤태식이 죽고, 김준서의 기록이 정리되고, 민하의 말이 자꾸 되살아나는 와중에도, 한시우와 서나래가 결국 아주 평범한 장면으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 병원 앞도, 장례식장도 아닌, 저녁 식탁이나 마트 계산대나 집 앞 골목 같은 곳. 그리고 그 장면 안에서, 둘이 거대한 우주의 진실을 말하는 대신 “밥 먹었어?”라고 묻는 장면.
그는 그 장면을 쓰면서 자주 멈췄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했다. 이 소설이 정말 닿아야 할 곳은 바로 거기다. 흰 공간의 존재가 아니라, 그런 질문을 들은 뒤에도 여전히 밥을 챙겨 먹는 사람의 쪽. 죽음의 비밀이 아니라, 그 비밀을 들은 뒤 더 함부로 살 수 없게 된 생활의 쪽.
그는 장면 속 한시우에게 이런 문장을 생각하게 했다.
만약 여기가 죽은 다음의 회복실이라 해도,
결국 회복은 늘 밥과 손과 대답의 속도 같은 데서 시작될 것이다.
그 문장을 쓰고 나자,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질문이 잠깐 한 점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인간은 너무 쉽게 우주적 의미만 찾으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살게 만드는 건 늘 더 작은 것들이다. 밥 먹었냐는 질문, 우산을 같이 쓰는 일, 약봉지를 대신 챙겨주는 손, 늦었다고 미안해하는 얼굴.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수민이었다.
아저씨,
오늘 학교에서 애들이 아빠 얘기했어요.
막 슬픈 얘기만 아니고, 아빠가 옛날에 학부모 면담 가다 길 잃어버린 얘기 같은 거요.
이상하게 좀 좋았어요.
시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로 답했다.
좋았겠다.
그런 게 진짜 기억이지.
잠시 후 수민이 다시 보냈다.
근데 이상한 건,
그렇게 웃고 나니까 갑자기 또 울었어요.
이것도 정상이에요?
시우는 그 질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이렇게 적었다.
아주 정상.
사람은 누군가를 진짜로 기억하기 시작하면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게 돼.
답은 곧 왔다.
그럼 다행이네.
저 요즘 너무 이상한 줄 알았어요.
그 문장을 읽고 시우는 문득, 소설이 해야 할 일도 이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자기 슬픔과 사랑과 이상한 질문을 두고 “나 너무 이상한 줄 알았어요”라고 말할 때, “아니, 아주 정상이다”라고 대답해주는 것. 그리고 그 정상이라는 말이 평범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답다는 뜻으로 들리게 만드는 것.
그는 초고 끝부분에 새 메모를 남겼다.
- 독자가 읽고 자기 이상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만들 것
- 슬픔, 늦음, 사랑, 질문 모두 인간적인 것으로 남길 것
- 정상/비정상보다 사람다움
며칠 뒤, 예상치 못한 사건이 하나 더 왔다.
윤정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선생님, 시간 되세요?”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 연구실 정리하다가… 음성 파일이 하나 나왔습니다.”
시우는 바로 몸을 세웠다.
“윤태식 교수님 음성입니까?”
“네. 날짜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같아요.”
“내용은.”
“안 들었어요. 혼자 듣기 좀 그래서요.”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학교 연구실이요.”
“갑니다.”
한 시간 뒤, 시우와 나래는 정훈과 함께 윤태식의 옛 연구실에 있었다.
연구실은 이미 정리가 많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오래된 책 냄새와 종이 냄새가 났다.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의 공기는 늘 조금 과거 같다. 책장엔 철학서, 심리학 책, 종교학 자료가 빼곡했고, 칠판엔 지우다 만 분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그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훈이 노트북에 파일을 연결했다.
파일명은 단순했다.
마지막 강의 메모
재생 버튼을 누르자, 처음엔 의자 끄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윤태식의 목소리가 나왔다. 약해져 있었지만 분명 그 목소리였다.
“이건 강의라기보다 메모다.
내가 끝까지 정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생각들을,
누군가가 이어서 생각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남긴다.”
셋은 숨을 죽인 채 들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도착한 존재라고 의심해왔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 명제가 전부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왜 다시 사랑하는가다.”
나래와 시우는 동시에 서로를 아주 짧게 봤다.
윤태식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만약 우리가 한 번 끝난 뒤 다시 이곳에 오는 존재라면,
그 목적은 지식을 회수하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전생을 기억하고, 우주의 구조를 깨닫고,
신비를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망각은 이렇게까지 철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목적은 아마 앎이 아니라 선택이다.”
정훈이 아주 미세하게 숨을 삼켰다.
“잊은 상태에서도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는가.
상처 입은 채로도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가.
늦을 것을 알면서도 지금 손을 내밀 수 있는가.
나는 그 질문이 인간 존재의 핵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윤태식은 잠시 기침을 했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길었다. 그 뒤로 목소리는 조금 더 약해졌지만,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니 누군가 이 메모를 듣는다면
사후 세계를 증명하려 들기보다
자기 삶에서 더 늦지 않게 다정해질 방법을 먼저 찾길 바란다.
만약 여기가 정말 회복실이라면,
회복은 대개 그런 방식으로만 일어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는
우리가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파일은 거기서 끝났다.
연구실 안은 아주 오래 조용했다.
누구도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윤태식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문장들은 여전히 공기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책 냄새, 분필 자국, 기울어진 햇빛, 그리고 방금 들은 목소리까지. 마치 연구실 전체가 잠깐 하나의 문장이 된 것 같았다.
정훈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는 결국…”
그는 말을 찾다가 포기한 듯 웃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얘기만 하셨네요.”
나래가 아주 조용히 답했다.
“네. 근데 이제야 그게 철학이었나 봐요.”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알았다.
결말은 이제 정해졌다.
사후 세계의 비밀을 푸는 소설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들은 인간이 그래서 어떻게 더 늦지 않게 사랑하게 되는지에 대한 소설.
그게 이 이야기의 가장 정확한 끝일 것이다.
아니, 끝처럼 보이는
살아 있는 선택의 시작일 것이다.
제19장. 아직 늦지 않았다는 감각
윤태식의 음성을 들은 뒤 며칠 동안,
한시우는 이상하게 말을 아끼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도, 나래와 있을 때도, 심지어 혼자 소설을 쓰는 시간에도.
머릿속에 문장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바로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어딘가 가벼운 일처럼 느껴졌다. 어떤 생각은 조금 더 오래 몸 안에 있어야 한다. 말을 하는 순간 설명이 되어버리고, 설명이 되면 약간 덜 진실 같아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자주 윤태식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잊은 상태에서도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이제 철학적 문장이라기보다
거의 생활 규칙처럼 들렸다.
그날 아침 장례식장에 들어왔을 때, 시우는 처음 보는 광경 하나를 보았다.
빈소 복도 끝에서 한 중년 남자가 울고 있었다.
울음이라고 해도 통곡은 아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얼굴을 손으로 덮은 채, 숨이 들썩거리는 정도. 그런데 그 울음에는 어떤 단어가 자꾸 섞여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시우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괜찮으십니까.”
남자는 놀라 얼굴을 들었다.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복장을 보니 조문객은 아니었다. 아마 막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 같았다.
“여기… 박정수 씨 빈소 맞습니까.”
시우는 잠시 생각했다.
아침에 들어온 장례 중 하나였다. 육십대 남성, 지병 악화. 가족은 아내와 아들 하나.
“맞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떨궜다.
“제가… 늦었습니다.”
그 말 뒤에 아무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늦었다는 말은 늘 구체적인 사건을 숨기고 있다.
전화 한 통을 미루었던 날, 마지막 병문안을 가지 않았던 주말, 싸운 뒤 화해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던 계절.
“친구십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 년 친구였습니다.”
그는 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근데 마지막 몇 년은… 연락을 안 했어요.”
시우는 조용히 들었다.
“별일 아닌 걸로 싸웠거든요. 서로 자존심 세워서… 몇 번 전화 올 때도 있었는데, 그냥 안 받았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되겠지 했죠.”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나중이 없네요.”
시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이런 말을 할 때, 위로보다 증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누군가 자기 늦음을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남자가 계속 말했다.
“오늘 새벽에 아내분한테 전화 왔어요. 정수 아프다고… 빨리 오라고. 근데 제가 지방 출장이라…”
그는 눈을 감았다.
“도착하니까 이미…”
문장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시우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지금이라도 오신 건 잘하신 겁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너무 늦었어요.”
그 말은 사실일 수도 있었다.
어떤 늦음은 정말로 늦다.
죽음은 그 사실을 가장 잔인하게 증명한다.
하지만 시우는 다른 문장을 떠올렸다.
삶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라 다시 사랑을 고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말했다.
“정수 씨한테는 늦었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남은 삶에는 아닐 겁니다.”
남자는 잠깐 말을 잃었다.
시우는 이어 말했다.
“사람이 늦었다는 걸 아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때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릅니다. 더 닫히거나, 아니면 다른 데서는 늦지 않기로 하거나.”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저… 아들한테 전화해야겠네요.”
그 문장은 아주 작았지만
시우는 그것이 하나의 선택이라는 걸 알았다.
늦음을 안 사람이 다시 늦지 않기로 하는 선택.
그런 선택들이 어쩌면
이 세계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시우는 나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병원 뒤 작은 벤치였다.
가로등 불빛이 나무 잎 사이로 흩어져 있었고, 멀리서 응급차 사이렌이 짧게 울렸다.
나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사람이 늦었다는 걸 아는 순간이 중요하네요.”
“왜죠.”
“그때 대부분은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거든요.”
“어떻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버리거나, ‘원래 그런 관계였다’고 줄여버리거나.”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근데 그분은 아들한테 전화하겠다고 했잖아요.”
“네.”
“그럼 아직…”
나래는 문장을 완성하지 않았다.
시우가 대신 말했다.
“아직 늦지 않은 데가 있는 거죠.”
나래는 그 말을 한동안 곱씹었다.
그리고 갑자기 물었다.
“한시우 씨.”
“네.”
“우리는 늦은 게 있을까요.”
그 질문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왔다.
시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 삶을 돌아보면 늦은 일은 많았다.
사랑을 미뤘던 시간, 사람을 피했던 시간,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도 삶의 쪽을 보지 않았던 시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시작했으면 그건 늦음이 아니라 순서일 수도 있습니다.”
나래가 웃었다.
“순서라.”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좋네요.”
잠시 둘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나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우는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손은 따뜻했고, 약간 거칠었다. 병원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그 손을 잡고 있으면,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밤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지 느껴졌다.
“한시우 씨.”
“네.”
“저 가끔 생각해요.”
“뭘요.”
“민하가 마지막에 한 말 있잖아요.”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말.”
“네.”
나래는 가로등 빛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근데… 그 말 덕분에 제가 지금 좀 다르게 살고 있는 건 맞아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미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요.”
나래는 잠깐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저 요즘 환자들한테 조금 더 솔직해졌어요.”
“어떻게.”
“너무 큰 말은 안 하고… 대신 ‘지금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같은 말은 해요.”
시우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 말 좋군요.”
“네. 저도 좋아요.”
“왜죠.”
나래는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희망이라는 말보다 덜 거창해서요.”
그 문장은 소설에 들어가야 한다고
시우는 바로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시우는 결말 직전 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 장에는
여러 사람의 선택이 겹쳐 있었다.
늦은 친구를 보내고 아들에게 전화하는 남자,
아버지 이야기를 웃으며 다시 말하기 시작한 수민,
지금도 병실에서 환자 손을 잡고 있는 나래,
미완성 기록을 남기고 떠난 김준서,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이어 쓰고 있는 자신.
그는 마지막 부분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우리는 아마 이 세계가 무엇인지 완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왜 태어났는지,
왜 잊었는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우리가 아직 늦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이 남아 있다는 것.
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썼다.
그것만으로도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셈이다.
문장을 다 쓰고 나자
가슴 안쪽이 조금 조용해졌다.
결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수민이었다.
아저씨.
아빠 꿈 꿨어요.
시우는 바로 답했다.
어땠어.
잠시 후 메시지가 왔다.
아빠가 그냥 웃고 있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시우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이렇게 보냈다.
그럼 좋은 꿈이네.
수민의 답이 왔다.
네.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어요.
시우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노트북 화면을 다시 봤다.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을
그는 이제 거의 정해두고 있었다.
마지막 장: 우리가 다시 사랑을 고르는 순간
아직 쓰지 않았지만
어떤 장면으로 끝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거대한 계시도, 우주의 문도 아니다.
누군가 누군가에게
아주 평범하게 묻는 장면.
“밥 먹었어?”
그리고 그 질문이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처럼 들리는 순간.
그 장면으로
이 이야기는 끝날 것이다.
혹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제20장. 우리가 다시 사랑을 고르는 순간
어떤 이야기는 거대한 사건으로 끝난다.
세상이 뒤집히거나,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거나, 누군가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순간으로.
하지만 한시우는 이제 알았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걸.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우주가 무엇인지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대개 아주 평범한 장면에서 계속된다.
소설 초고를 마지막까지 다 쓴 날,
시우는 장례식장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창밖엔 늦은 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물방울이 길게 흘렀고, 복도 끝 전등이 흐릿하게 번졌다. 식당에선 설거지하는 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TV 뉴스 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밤이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완전히 알지 못해도,
우리가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세계는 완전히 닫힌 곳은 아닐 것이다.
문장을 읽고 나서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끝났다는 느낌보다
어떤 긴 숨을 내쉰 느낌에 가까웠다.
소설을 완성했다는 것보다
어떤 질문을 더 이상 혼자 품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
그는 노트북을 천천히 닫았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나래였다.
“끝났어요?”
“네.”
전화기 너머에서 작은 웃음이 들렸다.
“진짜로요?”
“네. 방금.”
“기분 어때요?”
시우는 잠시 생각했다.
“조용합니다.”
“조용하다?”
“네. 큰일 끝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숨이 좀 편해졌습니다.”
나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했다.
“잘했어요.”
그 말은 짧았지만 이상하게 깊었다.
시우는 물었다.
“지금 병원입니까?”
“네. 오늘 조금 늦게 끝나요.”
“그럼…”
그는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끝나면 밥 먹겠습니까.”
나래가 웃었다.
“당연하죠.”
밤 열 시가 조금 넘어
둘은 병원 근처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칼국수집이었다.
처음 같이 밥을 먹었던 곳과 같은 곳.
식당은 거의 비어 있었다.
주인은 TV를 보며 국을 끓이고 있었고, 창밖엔 비가 조금 더 굵어져 있었다.
나래가 앉으며 말했다.
“결말 얘기 안 해줄 거예요?”
“아직은 아닙니다.”
“왜요.”
“간호사님이 읽을 때까지는.”
나래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작가병.”
“그럴지도요.”
칼국수가 나왔다.
둘은 잠시 말없이 먹었다.
따뜻한 국물 냄새가 올라왔고,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나래가 물었다.
“한시우 씨.”
“네.”
“소설 다 쓰고 나니까… 이제 답을 좀 알 것 같아요?”
시우는 젓가락을 잠깐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요.”
나래가 웃었다.
“역시.”
“대신 하나는 더 확실해졌습니다.”
“뭔데요.”
“답이 완전히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는 것.”
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시우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아마 완벽한 답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질문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래는 그 말을 듣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그럼 우리도 계속 질문할까요?”
“네.”
“앞으로도.”
“네.”
“답 없어도.”
시우는 웃었다.
“네.”
그녀는 잠깐 창밖을 보았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한시우 씨.”
“네.”
“저 요즘 가끔 이런 생각해요.”
“뭘요.”
“정말 여기가 죽은 다음의 회복실이라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리는 지금 꽤 잘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시우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식당에서 나온 뒤
둘은 비가 조금 잦아든 골목을 걸었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길 위에 번져 있었고, 멀리 편의점 불빛이 밝게 켜져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조금 걸었다.
그러다 나래가 말했다.
“한시우 씨.”
“네.”
“우리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시우는 잠시 웃었다.
“그 질문 또 합니까.”
“네.”
“답은 여전히 같습니다.”
“뭔데요.”
“모르겠습니다.”
나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좋아요.”
“왜죠.”
“예전 같으면 도망쳤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모른다고 말하잖아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하나는 압니다.”
“뭔데요.”
“지금은 늦지 않았다는 것.”
나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그의 팔에 기대었다.
우산 위로 빗소리가 가볍게 떨어졌다.
둘은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나래가 문득 물었다.
“한시우 씨.”
“네.”
“밥 먹었어요?”
시우는 웃었다.
“방금 먹었습니다.”
“그럼 됐네요.”
“왜요.”
“그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니까.”
둘은 같이 웃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
시우는 소설 파일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아주 짧은 문장을 하나 덧붙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완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는 파일을 저장했다.
창밖에는 비가 멎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늦은 밤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평범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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