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것이라 하면 어떤 인상으로 다가오는가? 막연하게 종교나 점성술 등 비과학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한가?
이쪽은 현대물리학을 대표하는 그야말로 과학적인 이미지가 강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영적인 것을 알면 알수록 사실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요번에는 그런 공통점에 대해서 다뤄보려 한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뭐였더라?
양자역학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문과 쪽을 전공한 사람은 모를 수도 있으니 잠시 그 특징들을 정리해 보겠다.
-이중슬릿 실험으로 밝혀진 모든 것은 사실은 파동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물체들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분자는 원자의 조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원자는 전부 110종류 정도가 있으며, 그 조합에 따라서 세상의 모든 물질을 형성한다. 원자는 중심에 핵이 있어서, 그 주위를 전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물질인 전자를 이용해서 행해진 유명한 실험이 ‘이중 슬릿 실험’이다.
이 실험은 물리학 잡지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10’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실험이 되었다. 어떤 실험인고 하니, 전자를 발사할 수 있는 총으로부터 전자를 한 개 쏘아 보내어, 두 개의 틈새가 있는 슬릿의 어느 쪽을 통과해서 최종의 판에 도달하는 가를 보는 실험이었다.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한 결과 전자가 도달하는 판에는 간섭무늬가 출현하게 된다.
간섭무늬라는 것은 물에서 파도가 출렁일 때 두 개 이상의 파장이 겹쳐지는 부분에서 파도의 파동 강약이 강조되면서 나타나는 문양과 비슷하다.
즉, ‘전자라는 물질도 빛과 같이 파장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알아 낸 것이다. 하지만 이 이중슬릿의 실험 결과는 연구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왜냐하면, 전자를 한 개만 쏘아 보냈으니 두 개의 틈이 있는 슬릿의 어느 한 쪽으로만 통과 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양쪽 모두에서 간섭무늬가 나왔기 때문이다. 간섭무늬는 분명 두 개 이상의 파장이 서로 간섭을 일으켰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자가 날아 갈 때에 동시에 두 개의 파장이 있었다는 말이고, 두 개의 슬릿 양쪽으로 전자가 통과했다는 말이 된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서 각각의 슬릿에 센서를 달고 실험을 다시 행했다. 그러자 센서는 매번 한쪽씩만 반응을 했고, 이것은 전자는 한 개가 오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인 것이다. 이건 무슨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하는가? 연구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가능성이 중첩된다고?
이 이상한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 해석 중 하나가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나아가고 있는 동안은 공간적으로 퍼지는 성질을 지니지만(많은 가능성이 중첩), 판에 닿는 순간(관측)에 그 존재는 한 점으로 모아진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이 전자의 움직임을 해명하려고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한다. 이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었고, 마이크로의 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확실히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세계만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이다. 나아가고 있는 동안의 전자는 ‘그곳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확률로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또한 이 코펜하겐의 해석에 대한 반론으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슈뢰딩거도 스스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이 페러독스를 표현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어떤 장치를 한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있다. 이 고양이는 우리가 상자를 열기 전 까지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양자역학적으로 말하면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 슈뢰딩거는 입자의 세계의 애매함을 고양이에 적용함으로서 코펜하겐의 해석의 모순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 한 것이었다.
-평행우주는 존재한다.
양자역학에서 이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이 바로 ‘다세계 해석’ 이다.
1957년 프린스톤 대학의 학생이었던 휴 에버렛이 제창했다. 그는 고양이가 생과 사의 상태가 중첩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열어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같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살아있는 고양이를 보게 되는 자신과, 죽어있는 고양이를 보게 되는 자신이다. 이것은 생과 사의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존재하는 세상인 것이다.
가령, 상자를 열어 고양이가 살아있었다고 해 보자. 그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산 고양이가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죽어있는 세상과, 자신이 죽은 고양이를 보게되는 세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스스로가 인식을 못할 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수한 다양한 세계가 병행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자신이라는 인간은 그 중 단 하나의 세계에 속해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다세계 해석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가 있다. 페러렐 월드는 물리학적으로 그 존재가 인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영적인 파장의 법칙
지금까지 양자역학을 대충 이해했으면, 요번에는 영적인 측면에서 한번 이야기를 해 보자.
-모든 물체는 고유의 파동을 지니고 있다.
영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것이 파동(파장)을 지니고 있다. 파동이라는 것은 고저가 있는 파도와 같은 것이고, 각각의 고유한 진동수를 지니고 전파되어가는 에너지를 가리킨다.
양자역학에서도 모든 물질은 파장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었다. 세상에 있는 인간이나 동물, 물, 나무, 풀, 철이나 플라스틱도 모두 고유의 파동을 지닌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언어 등에도 파동이 있다. 이런 것을 언령(言靈)이라고도 한다. 물리학적으로 소리는 음파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감정이나 사념에도 파동이 있고, 고유의 에너지가 있다. 세상만물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고유의 파동이 있고 서로 이런 에너지들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한다.
-파동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파동이 높다는 것은 진동수가 많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이다, 밝다, 활기가 있다, 자신감이 있다, 잘 웃는다.
그리고 반대로 파동이 낮은 사람이라는 것은, 어둡다, 부정적이다, 의욕이 없다, 자신감이 없다, 화난 얼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파동이 높은 사람은 좋은 상태, 파동이 낮은 것은 나쁜 상태에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파동은 변화한다.
지금껏 높은 파동을 발산하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풀이 죽거나 자신감을 잃어 낮은 파동을 발산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반대로 파동이 낮던 사람이 마음을 다잡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즐겁게 살게 되면 높은 파동으로 변하기도 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양자역학으로도 증명 가능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영적으로 풀어보면 이런 것이 된다.
-파장은 서로를 끌어 당긴다.
파장은 고유의 진동수를 지니고, 전파되는 에너지이다. 그것들이 지닌 고유의 에너지가 주위에 전파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공명이나 공진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진동하고 있는 추 A가 있다. 그 진동이 같은 고유진동수를 지닌 추 B에 전해지면, B도 진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고유진동수를 지닌 추 C는 A의 진동이 전해지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더욱이 A와 B의 고유진동수에 근접한 진동을 추가하면 진동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진동수의 진동이 추가되더라도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흔들리는 판 위에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움직이는 메트로놈을 여러 대 설치 해 보면, 처음에는 제각기 움직이더라도 서서히 같은 타이밍으로 진동이 모아진다. 이것은 바닥을 통해서 진동이 차츰 전해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장의 진동은 그 진동수가 근접한 것일수록 서로를 끌어들이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상은 자신의 마음의 반영이다.
이 파장의 끌림 현상은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사람은 스스로가 발산하는 파동에 맞는 사람이나 사건들을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라디오 주파수를 조절해서 듣고 싶은 채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은 안테나가 되고 비슷한 주파수역을 지닌 사람이나 사건들이 그 사람의 주위로 모여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보이는 세계는,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출근길에 전철에서 다른 사람이 싸우는 것을 목격하고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보자. 하지만 그런 것도 사실은 본인의 마음 상태가 그런 싸움이 보이도록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는 이 사람의 원래 기분에서 그런 공격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먼저 돌아보라고 말하곤 한다.
직장 분위기가 나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기분으로 회사에 들어오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파장을 지니고 있기에 만나게 되는 것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거울 삼아 반성을 하고, 반대로 자신의 파동을 높여간다면, 자신의 파동에 맞는 긍정적이고 밝은 높은 파동의 사람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밝고 즐거운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그 주위에도 높은 확률로 높은 파동의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잠재의식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러면 ‘노력해서 높은 파동을 유지하고 행운도를 높여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때에 신경을 써야 할 부분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바로 잠재의식이다.
높은 파동을 발산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즐거운 일들도, 좋은 사람도 모여들지 않는다. 그럴 때에는 부정적인 잠재의식이 방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물을 인지하거나 사고할 때에는 현재의식이 반영된다. 의식전체를 빙산에 비유한다면 해면 위로 튀어나와 있는 10%정도의 부분이 현재의식이다.
잠재의식은 바다 밑에 감춰진 남은 90%의 부분으로,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의 데이터 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의식할 일은 거의 없지만, 우리의 사고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랜 세월 부정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은,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잠재의식에 새겨져 10%의 현재의식이 아무리 표면을 바꾸려고 하더라도 좀처럼 진짜로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럴 경우에는 우선 잠재의식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고치려는 습관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명상을 할 때나, 잠자기 직전, 기상 직후 등이 잠재의식으로 연결되기 용이하므로 이 때를 긍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도록 노력하다 보면 서서히 잠재의식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퍼메이션 강좌에서도 이런 시간대를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영적인 가르침은 과학과 연관된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항들을 잘 돌이켜 본다면 양자역학과 영적인 것들이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 눈치 챘을 것이다.
세상에 만연하는 영적인 이야기들에는 호기심을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유령이나 혼령, 영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영적인 것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주위와 어떻게 연관되어 가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보다 분명하게 원인과 결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영적인 길을 탐구하는 목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