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양자론은 불교의 가르침과 같다

fiction-google 2024. 2. 15. 15:56
반응형

 

생과 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에서 상자 안에 있다고 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관측을 시작하면 양자의 움직임이 변한다고 판명 된 ‘이중 슬릿 실험’. , 우리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 양자역학이다. 그 결과 많은 영역에서 우리들의 현실인식이 재고되고 있다. 이러한 양자론과 불교의 가르침이 서로 양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달라이 라마 14세다.

 

*달라이 라마가 종교계와 과학계의 융합과 협동을 제창하다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중요인물’의 한명으로 뽑힌 티벳 불교의 최고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오래 전 모택동과도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었다.

어느날 모택동은 달라이 라마를 찾아가 좀 더 “과학적인 마인드”를 가질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회과학의 힘으로 중국사회의 변혁에 착수하던 모택동에게 있어, 이 티벳 불교의 승려는 당최 비과학적인 인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가 민중에게 끼치는 역할은 인정하면서도 “종교는 독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19세기의 거장인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한 것 보다 도 더한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인 것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오히려 흥미를 가지고 과학을 가까이 하던 인물이었다.

201511월에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과학과 불교의 교의(가르침)의 융합을 토론하는 컨퍼런스에서, 자신과 현대과학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1959) 난민으로 인도에 와서, 나는 과학자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전부터 우주론과 신경생물학, 물리학, 양자역학, 심리학에 초점을 둔 일련의 대화를 행하고 있습니다. 전문가와의 디스커션은 서로에게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14)

근래 수년, 양자론은 불교와 정신적 가르침의 올바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눈에 뜁니다.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시대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 되어온 과학과 종교는, 최근에 들어 급속히 접속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를 시작으로 많은 정신세계의 리더들이, 종교계와 과학계의 융합과 협동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론은 나가르주나의 불교사상과 같다

달라이 라마는 이 외에도 이 회의의 연설에서, 불교의 가르침과 양자론의 많은 일치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도 물리학자 라자 라마나 박사와 나눈 대화가 의미 깊다 하겠다.

20년 전쯤, 어느 회의에서 인도 물리학자 라자 라마나 박사가 나가르주나의 불교사상과 양자론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치점이 있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인도 프레지덴트 대학의 부총장이 이전, 양자학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유가행파(瑜伽行派)와 중관학파(中觀學派)의 견해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물은 설명 여하에 따라서 존재한다는 나가르주나의 불교사상과 같은 맥락입니다.” (달라이 라마 14)

나가르주나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중관학파의 선조라고 불리며, ‘()’ 사상을 설파했다.

공 사상에 따르면 사물에는 실체가 없으며, 어떤 프로세스 도중의 모습으로서 인식될 뿐이며, ()도 아니고 유()도 아닌 공()이라고 논증하고 있다.

한편 양자론에서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인간이 상자 속을 ‘관찰’하는 행위를 함으로서, 처음으로 고양이의 생사가 결정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 관찰자의 해석에 따라, 현실이 형태를 만들어 가는 셈이 되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현실이란 어떠한 해석도 담을 수 있는 빈 상자와 같은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확실히 나가르주나의 사상과 양자론은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불교이론과 양자론간의 융합 실험은 이제 막 시작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장래에 과학과 종교가 통합되는 날에는 인류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진화를 맞이 할지도 모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