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원인를 찾으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필요악으로 지정하고 전쟁을 벌인다느니, 심각한 환경악화로 새로운 병원체가 만들어 진다는 병원체설, 최근 들어서는 인간의 자연 퇴화설과 천체 충돌설까지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화제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많은 가설들은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예언되었던 때를 넘겼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 한 과학사이트에서는 우리의 옆동네 은하계인 안드로메다에서 블렉홀이 시간당 40만킬로의 속도로 팽창하며 지구를 위협한다고 한적이 있는데, 그 글의 마지막에 앞으로 40억년 후에 지구를 삼킨다고 해서 ‘멍뮈’한 적이 있었다. 사실 살아 생전 벌어질 일이 아니라면 지구가 없어지든 우주가 폭발하던 무슨 상관이 있으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는 ‘종말’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문화적 기반인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종말이 올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현대에서 그 이미지에 부합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는 하지만 그 성서의 이미지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왜인지 안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말이된다.
그들은 어떤 대목을 모델로 불안해 하는 것일까?
*종말의 때는 어떤 식으로 오는가?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경우 예언자 에젤키엘이 ‘종말의 날’에 일어날 사건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고, 예언자 다니엘은 그 ‘시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유력한 설로는, 러시아와 동맹국에 의해 이스라엘 침공을 하게된다는 것이었고 그 시기는 예루살램 재건(1948년)으로부터 69년 후(2017년)라고 했다.
이때 예언되었던 메시아가 등장하며 태고에 신과 유다야족이 맺은 계약이 이루어 질것이라고 한다.
이미 2017년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모를일이다.
그리스어 신약성서에서는 ‘종말의 예언’이 구약성서 이상으로 강조되어진다. 마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예언을 하고, 마지막에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언으로 끝을 맺는다.
어쩐 일인지 그리스도교는 불교와는 다르게 매우 명확한 종말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종교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구의 사람들은 점차 그 의식이 강해지고 있는 듯 하다.
구체적인 예언에 대해서 알고싶은 사람들은 신약성서 마태복음부터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성경 자체가 상당히 철학적인 책에 속하므로 일부로 전체를 판단하거나, 직설적인 이미지 만을 보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또한 한번 봐서는 잘 이해도 안갈 뿐더러, 너무 양이 많아 보기도 힘들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사실 그 내용도 각 언어마다 다른 부분이 많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죽은 후 얼마안되 십수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예수의 가르침의 원형을 기술하고 있다. 불교로 치면 가장 오래된 경전인 ‘슷다니파다’ 조차도 싯다르타가 죽고 1세기가 지나서야 나왔는데 말이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탄생에서 처형, 부활까지의 생애를 그린 ‘전기’의 성격을 띤다. 요한계시록은 그야말로 ‘예수의 대예언’이라 할만하다.
(본 내용은 성경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료가 아닌 소설임)
*그리스도의 대예언!
올리브산에 앉아있는 예수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예수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말지어다. 나의 이름을 사칭하는 자들이 들끓고 스스로가 메시아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현혹시킬 것이다. 전쟁의 소란과 소문을 접하게 될 것이지만 당화하지 말지어다. 그런것들은 언제든 일어날 지어다. 하지만 종말의 때는 아닐지어다.
국민과 국민, 나라와 나라가 적대시하고 들고 일어나 사방에서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들은 출산의 고통에 시작이다. 그 때에 그대들은 고통받고 죽임당할 것이다. 또한 내 이름 아래에 많은 민족에게 미움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서로를 배신하고 서로를 증오하게 된다. 가짜 예언자도 나타나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불법이 만연하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식는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은 구원받으리라.”
마태복음에서 ‘세상의 끝’의 특징으로 전쟁, 기근, 지진이 사방에서 일어난다고 하고 있다. 거기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네들은 살해될 것이다’라든가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얻으리라’ 라는 경고를 한 것으로보아, 세상의 끝에서 그리스도 교도의 대처형이 일어남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예언자란 ‘신의 말을 대변하는 인물’로 신탁자, 신의 대변인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도 ‘예언자’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가짜 예언자’라는 것은 가짜 예언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은 이렇게 말하셨다’ 라든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등등 거짓으로 신을 대변한다고 떠드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세상의 끝에는 그런 종류의 거짓을 일삼는 무리들이 대거 나타나 사회를 혼란시키는 듯 하다. 참고로 성경에는 예언자가 빈번하게 미래를 예언해서 적중시키는 등의 묘사가 나오기도 해서 진위를 가리기가 애매해진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患難)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이것은 참으로 고민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다니엘서를 읽어보아도 ‘증오의 파괴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대환난은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사고가 나듯 갑자기 덮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용에서 보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라는 급박한 상황이 전해진다. 이것은 마치 지진이 일거나, 미사일이 떨어질때의 지시사항과 흡사하다.
하지만 앞서 전쟁, 기근, 지진이 먼저 찾아온다고 했으므로 이것은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이 대환난이 끝이 나야 예수는 다시금 찾아온다고 스스로가 예언하고 있다.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어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여기서 인자는 The Son of man이고, 일반적으로 신이 예언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구약에서 에젤키엘이나 다니엘도 신이 인자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예수를 칭한다.
그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는 표현은 아마도 예수의 재림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 시기에 대해서는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니, 하늘의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고 예수 자신이 말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다음을 보면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잡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여담이지만 기원전 1500년경에 기술된 창세기보다도 천 년 이상 전에 만들어진 ‘길가메쉬 서사시’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음 내용은 이렇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때를 갈고 있으매 하나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이것으로 신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에 의한 ‘선별’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은 궁극적, 근원적으로는 같다라고 생각하는 힌두교나 불교, 신도와는 다른 점이다. 그 기준은 아마도 ‘타인에게 얼마나 잘 대했는가’일 것이다. 마가복음에 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대목이 유명하다.
다음으로는 ‘그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임금은 예수를 말한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그런 것을 했는지 몰라 묻는다. 그 질문에 예수가 대답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자’란 약자를 가리키고, 어린아이, 노인,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너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이렇게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악인과 선인으로 가르고 각각 영원한 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이 선별의 때를 ‘심판의 날(the day of judgement)’,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종말의 날(doomsday)’ 등으로 부른다. 모두 영화 제목으로 쓰였었다.
예수가 말을 마치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이것은 스스로가 신의 대변인인 인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이 적중함으로서 지금까지 말한 종말에 관한 예언도 더 힘이 실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류를 거의 전멸시킨다는 대환난이란?
이상이 예수가 했다는 예언들이다. 미국의 기독교를 가진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교육받는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나 미신을 싫어하거나 무신론자들은 이런 종교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종교도 하나의 교양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최후의 심판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종교가 생긴다는 것도 그 시대에 필요한 어떤 사건과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뜻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를 표방하면서도 상당한 부분이 서구사회의 거래, 계약, 조건, 벌칙, 선동, 손익 등을 강조하게 만든다. 동양이 스스로의 개인적인 깨달음을 중심으로 한다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사후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부터 종말 예언까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사실도 현대에 와서는 경계심을 일게한다. 하지만 예수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목격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또한 부정할 필요도 없다.
성서에 나오는 대환난의 정체는 아마도 ‘소행성 충돌’이 유력해 보인다. 그 이유는 기술된 표현 자체가 지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이 흔들린다라는 조건으로 보면,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져 그 여파로 분진이 하늘을 덮는다는 가정을 할 수있다. 또한 하늘이 흔들리는 것은 충돌로 인해 아니면 주기적으로 극이동(폴시프트)과 겹쳐져 자전에 영향을 주게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종합해보면 지구가 종말을 맞을 때에는 우선 전쟁과 기근, 지진이 찾아오며 마지막으로 행성충돌로 대부분이 사라진다는 시나리오라는 개인적인 결말이다. 물론 전쟁과 기근은 해성충돌과는 별도로 지구적인 이변이 우선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기후변화 등)
실제로 6500만년전에 공룡이 전멸할 때 빙하기가 있었듯 요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사회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리고 인간끼리의 릴레이션쉽이 없이는 정말로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예언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허상을 대비해서 나쁠 것이 있겠는가? 좋고 나쁨을 정해버리기 전에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정말로 빙하기가 온다면 서로가 똘똘 뭉쳐 살아남거나, 혜성이 떨어지기 전에 격추해 버리자! 어쩌면 신은 모두의 옆집에 살고 있는 인간들인지도 모르겠다.